무소속 안철수 대선후보가 지난 12일 부산대 강연에서 재선에 성공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을 언급했다. 안 후보는 “4년 전 오바마 대통령은 정말 정치 경험이 적은 무명의 흑인 정치인이었다”면서 “그런데 그때 대통령이 됐고, 저와 나이 차가 한 살 정도 난다. 그러니까 거의 저와 비슷한 사람”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왜 그렇게 4년 전에도 되고 이번에도 됐을까를 봤더니 미국 국민들이 원하는 것이 ‘변화’이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분석했다.

안 후보가 오바마를 ‘정치 경험이 적은 무명의 정치인’으로 규정한 이유는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안 후보는 정치 경험이 전무하기 때문이다. ‘정치 경험이 적은’ 오바마도세계 최강 미국의 대통령이 됐는데 정치 경험이 없다는 이유로 한국 대통령이 되지 말란 법이 있느냐는 나름의 항변인 셈이다.

하지만 전제가 틀렸다. 오바마는 2007년 대선 출마 선언 당시 일리노이주를 대표하는 연방 상원의원이었다. 지금까지 선출된 미 대통령 44명 가운데 연방 상원의원 출신은 16명에 이른다. 연방 상원의원은 대선 때마다 주지사와 함께 대선 후보 풀을 구성하는 정치인 중의 정치인이다. 미 정치권에선 어느 날 갑자기 혜성처럼 등장해서 연방 상원의원에 선출되는 일은 흔치 않다. 오바마 대통령도 일리노이주 의회 상원의원으로 3선의 경력을 쌓은 후에야 연방 상원의원에 도전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주 의회 상원 시절엔 연방 하원의원 선거에 나섰다가 고배를 마신 경험도 있다. 오바마 대통령은 35살의 나이로 첫 공직선거에 나서기 전에도 민권 변호사이자 지역사회 운동가로 활동했다. 그의 준(準)정치경력은 명문 컬럼비아대를 졸업한 직후인 1985년, 24살의 나이로 빈민 운동에 투신했을 때부터 시작됐다고 봐야 한다.

안 후보는 미 국민의 ‘변화’ 열망을 오바마 재선의 이유로 꼽고 이를 안 후보가 대선 출마 기치로 내건 ‘정치 쇄신’과 중첩시킴으로써 자신을 ‘한국의 오바마’로 자리매김시키고 싶은 것 같다.

 



오바마가 2008년 대선에서 ‘변화’(Change)의 기치를 내걸고 당선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재선에 도전하는 현직 대통령의 당락을 좌우하는 가장 큰 변수는 집권 성적표다. 미국 대통령의 성적표는 누가 좌우할까. 미 연방의회다. 의회의 협조를 이끌어내지 못하면 단 한 건의 법안 통과도 어렵다. ‘식물 대통령’이나 다름없다. 오바마 집권 1기의 연방의회는 그 어느 때보다 당파적이었다. 2010년 중간선거에서 하원이 공화당 수중에 넘어간 후론 더욱 그랬다. 오바마는 사분오열된 민주당 의원들을 한데 모으고 중도 성향 의원들을 자기 편으로 끌어들이는 정치력을 발휘, 백전노장의 빌 클린턴 대통령도 실패했던 건강보험 개혁 등을 성사시켰다. 워싱턴특파원으로 오바마 집권 1기를 현장에서 지켜본 기자는, 오바마 재선의 원동력이 오랜 정치 경험의 산물인 그의 정치력이라고 생각한다.

안 후보 캠프에서는 요즘 오바마가 2007년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에서 힐러리 클린턴 후보를 무너뜨리고 승리하는 과정을 담은 ‘게임 체인지’(Game Change)라는 책이 인기라고 한다. 이 책의 저자들은 오바마 진영이 기존 정치권에 실망한 유권자들의 변화 열망을 자양분 삼아 미 대선의 ‘게임 규칙’을 바꾸며 승리를 일궈냈다고 평가했다. 안 후보 측의 대선 전략 기조와 일맥 상통하는 부분이 있다.

미 민주당 지지자들이 두 명의 클린턴(힐러리와 남편 빌)에게 피로감을 느꼈던 것처럼 한국의 야권 지지자들은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에게서 노무현 정부의 그림자를 본다. 안 후보 측은 미 민주당 지지자들이 클린턴의 대안으로 신상품 오바마를 선택했던 것처럼 한국의 야권 지지자들이 문 후보 대신 자신을 선택할 것이란 기대를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안 후보 측 인사들은 오바마 후보가 민주당 경선의 대세가 판가름난다는 이른바 ‘슈퍼 화요일’을 1년이나 앞둔 시점에 대선 도전을 공식 선언하고, 경선을 통해 당당히 민주당 후보 자리를 따냈다는 사실은 애써 외면하고 있다. 정치 경험이 전무한 상태에서 대선을 불과 90여일 앞두고 출마 선언을 한 뒤 후보 등록 10여일 전 민주당 후보와의 단일화 협상에 나선 안 후보와 오바마 대통령의 길은 전혀 달랐던 셈이다.

조남규 정치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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