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핵무장은 美·中 공존 위협
동북아 갈등 막기 위한 고육책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2002년 10월 중국 장쩌민(江澤民) 국가주석을 미 텍사스 크로퍼드에 있는 자신의 목장으로 초청했다.

북한이 미국에 고농축우라늄(HEU) 프로그램 추진 사실을 공개한 직후였다. 이로써 북핵 1차 위기를 봉합했던 제네바 합의 체제는 붕괴되고 2차 북핵 위기가 시작됐다. 부시 대통령은 장 주석에게 “북핵은 미국뿐 아니라 중국에도 위협이 된다”면서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압박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러자 장 주석은 “북한은 내 문제라기보다는 당신의 문제”, “북한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은 매우 복잡한 일”이라면서 미적지근한 반응을 보였다. 몇 달 뒤 부시 대통령은 장 주석에게 다른 방식으로 말했다. “만약 북한이 핵 개발을 지속하면 미국은 일본의 핵 개발을 막을 수 없다.” 그래도 중국이 움직이지 않자 부시 대통령은 마지막 카드를 꺼내들었다. “외교적으로 해결할 수 없으면 북한에 대한 군사조치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사실상 ‘협박’이나 다름없었다. 그런 다음에야 중국이 움직였고, 북핵 6자회담이 시작됐다고 부시 전 대통령은 회고록 ‘결정의 순간들’(Decision Points)에서 밝혔다.

6자회담 과정에서도 중국은 고비마다 북한 편을 들었다. 유엔 안보리가 대북제재 결의안을 준비할 때마다 한·미·일 3국은 북한을 싸고도는 중국을 설득하느라 바빴다. 그런 중국이 최근 들어 북한과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지난 주말 중국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은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과 만나 ‘북한의 핵무기 개발을 용인하지 않겠다’고 한목소리를 냈다. 불과 2년 전만 해도 워싱턴을 방문한 후진타오(胡錦濤) 중국 국가주석은 오바마 대통령의 북핵 저지 노력에 적극적으로 동참할 뜻이 없었다. 그 때문에 미·중 정상회담 실무팀은 정상회담 당일 새벽까지 공동성명 문구를 놓고 절충을 벌여야 했다. 미국은 “양국은 북한의 우라늄농축프로그램을 우려한다”는 표현에 만족해야 했다.

 

                                      <2013년 6월 미국 캘리포니아 휴양지 서니랜즈에서 만난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오른쪽)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중국의 북핵 기조 변경은 국익을 지키기 위한 고육책이다. 변화의 계기는 올 초 북한이 강행한 3차 핵실험이었다. 중국이 우려하는 것은 북한의 핵무기 자체보다 그것이 초래할 동북아의 갈등 상황이다. 핵무장에 성공한 북한은 동북아 핵 도미노 현상을 촉발시킬 것이다. 군국주의 역사를 지닌 일본의 핵 무장은 중국에게 재앙이다. 갈등의 대상이 미국이라면 중국에겐 악몽이다. 북한은 이미 63년 전에 6·25전쟁을 도발, 신생 중국을 강대국 미국과의 전쟁으로 끌어들인 전례가 있다.

신흥 강대국(독일)과 기존 패권국가(영국)의 갈등은 1차 대전을 불렀다. 아시아의 패권국으로 재부상하고 있는 중국과 아시아로 중심축을 이동(pivot to Asia)시키고 있는 미국은 태평양을 무대로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가고 있다. 미·중은 경쟁하면서 협력해야 하는 모순의 관계사를 써내려가고 있다. 중국은 미국이 자신을 포위하는 억지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고 의심한다. 미국은 힘이 커진 중국이 자신을 아시아에서 몰아낼지 모른다고 걱정한다. 그러면서도 미·중은 과거 독일과 영국이 실패했던 공존의 길을 진지하게 모색하고 있다.

북한의 핵무장은 미·중의 공존을 위협한다. 미 국방부는 1994년 북한의 영변 핵시설 폭격 시나리오를 검토했다. 영변 폭격은 미국과 중국을 갈등 상황으로 몰아갔을 것이다. 헨리 키신저 전 미국 국무장관은 저서 ‘중국에 대하여’(On China)를 마무리하면서 “미국과 중국이 전략적 갈등 상황에 빠지게 되면, 1차 세계대전 직전의 유럽과 비교할 만한 상황이 아시아에서 틀림없이 생길 것”이라고 경고했다. 핵 무기에 집착하는 북한 김정은 체제는 중·미의 협력을 가로막는 최대 장애물이다. 북한과 ‘항미(抗美) 원조 전쟁’(6·25)을 함께 치른 중국이 북·중 관계를 재조정하고 있는 것은 생존을 위해서다. 이달 말 이뤄지는 박근혜 대통령의 중국 방문은 순망치한(脣亡齒寒)에 비유되던 전통적인 북·중 관계가 변화의 조짐을 보이고, 미·중이 진지하게 공존을 모색하는 시점에 이뤄지는 것이다. 미·중 모두의 핵심 이해관계국인 한국에겐 외교의 공간이 확장됐다. 이 공간 속에서 어떤 성과를 만들어낼 것인지는 박 대통령의 몫이다.

조남규 외교안보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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