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가 존경하는 역사 인물은 다카스기 신사쿠(高衫晋作)다.

아베 총리의 이름 중 ‘신(晋)’자는 그의 이름에서 따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다카스기는 아베의 고향인 조슈 출신으로 민병대를 조직해 도쿠가와(德川) 막부의 숨통을 끊어놓은 인물이다. 아베 총리의 부친인 아베 신타로(安倍晋太郞) 전 외상의 이름에도 ‘晋’자가 들어있다. 그에 대한 아베 부자의 존경의 깊이를 짐작케 한다. 다카스기의 스승인 요시다 쇼인(吉田松陰)은 일본을 제국주의로 몰아간 ‘정한론(征韓論)’ 주창자다. 아베 총리가 정한론자를 존경하는 것과 그의 외조부인 기시 노부스케(岸信介)가 태평양전쟁의 A급 전범이었다는 점은 동전의 양면이다.
일본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역사 인물은 일본 근대화의 영웅인 사카모토 료마(坂本龍馬)다.

 

                                                                                                    <사카모토 료마>

하급무사 출신인 그는 견원지간인 사쓰마번(현 가고시마현)과 조슈번(현 야마구치현)이 오랜 반목과 불화를 넘어 동맹(삿초동맹)을 맺도록 하고, 메이지유신의 토대를 닦은 인물이다. 그가 성사시킨 삿초동맹은 백제와 신라를 손잡게 하는 일에 비견할 만한 기적 같은 일이다. 일본의 메이지유신사는 가슴을 뛰게 한다. ‘서양 오랑캐를 내쫓고 국왕을 받들어 모시자’(尊王攘夷·존왕양이)는 대의명분 아래 수많은 지사들이 목숨을 초개와 같이 버렸다. 그들의 헌신에 천운이 더해진 덕분에 일본은 주변국보다 먼저 근대화에 성공했다. 메이지유신을 통해 일본은 도쿠가와 막부 중심의 봉건체제에서 일왕을 정점으로 한 근대국가로 탈바꿈했다. 중국의 국부(國父) 쑨원(孫文)이 한때 “우리는 메이지유신의 지사들이다”고 말한 데서 당시 메이지유신을 바라보는 조선과 중국 개혁가들의 선망 어린 눈길을 느낄 수 있다.

사카모토 료마 등 개명한 지사들은 일본의 근대화가 주변국과의 연대속에 진행되길 바랐다. 여론의 인정을 받는 좋은 정치를 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료마와 같은 개명파 지사들이 암살당하거나 메이지유신 이후 노선 투쟁에서 극우파들이 승리하면서 일본은 아류 제국주의의 길로 폭주했다. 이는 일제의 침략으로 자주적 근대화가 좌절된 조선과 중국뿐 아니라 일본에게도 불행이었다. 청일전쟁에서 태평양전쟁으로 이어진 일제의 침략전쟁으로 수백만의 ‘황군(皇軍)’이 목숨을 잃었다.

일본사 연구의 세계적 권위자인 마리우스 잰슨의 분석은 명료하다. 그는 저서 ‘사카모토 료마와 메이지유신’(푸른길)에서 “진정한 진보로 이어질 이성적인 계획에 눈을 뜨면서 폭력적인 수단을 버렸던 메이지유신의 선각자들과, 입으로는 그들의 후계자를 자처하면서 실제로는 이성에 등을 돌리고 근거 없고 시대착오적인 미신의 불합리로 조국을 내모는 허망한 시도를 하면서 폭력에 호소한 후세의 아류들의 차이점을 보지 못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평가했다. 잰슨이 살아있다면 아베 총리에게 이런 충고를 할 것이다. 메이지유신 선각자들의 이상을 곡해한 채 ‘폭력에 호소한 후세 아류들’의 전철을 밟지 말고 주변국과의 협력을 통해 일본을 존경받는 나라로 만들라고.

개인적으로 필자는 아베 총리가 요시무라 간이치로(吉村貫一郞)의 꿈을 실현하기 위한 정치를 펼쳐 보이길 기대한다.

그는 영화 ‘철도원’의 원저자로 우리에게도 친숙한 아사다 지로(淺田次郞)가 그의 장편소설 ‘임생의사전(壬生義士傳)’에서 주인공으로 삼은 인물이다. 아사다는 사료에 이름 정도 기록돼 있던 평범한 무사를 주인공으로 삼아 대의 명분의 기치 아래서 스러져간 민초들의 삶을 그려 보인다. 메이지유신 시대의 영웅전에 익숙한 독자라면 요시무라는 파격 무사다. 주군(또는 일왕)에 대한 충성과 의리를 앞세우며 시도 때도 없이 배를 그어대던 다른 사무라이들과 달리 그는 처자식을 위해 목숨을 걸었다. 그는 형식만 남은 껍데기 무사정신에 얽매이지 않았다. 사무라이가 목숨을 바칠 상대는 주군이 아니라 우리를 먹여 살리는 백성이라고 외치면서. 사카모토나 요시무라 같은 무사들이 근대 일본을 주도했다면, 일본은 주변국의 존경을 받는 동북아 강국이 돼 있을 것이다. 아베 총리가 그런 나라를 만드는 데 힘쓰길 바란다.

조남규 외교안보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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