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노벨평화상을 받은 파키스탄 소녀 말랄라 유사프자이는 2012년 10월9일 통학 버스 안에서 총에 맞았다. 이슬람의 악성 변종인 탈레반은 여자가 학교에 다닌다는 이유로 말랄라의 얼굴에 총을 쐈다. 한때 아프가니스탄 정권을 장악했던 탈레반은 이슬람 근본주의로 포장된 야만의 세력이다. 화석화된 이슬람 율법을 강요한 탈레반은 주민에게서 노래하고 춤출 수 있는 자유, 공부할 수 있는 자유, 토론할 수 있는 자유를 빼앗았다. 말랄라는 저서에서 기회만 있었다면 자신에게 총을 쏜 두 남자에게 “왜 우리 여자들을, 당신의 누이와 딸을 학교에 보내야만 하는지 설명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탈레반은 열다섯 살 소녀의 자유를 향한 열망을 향해 총을 쏜 것이다.
자유의 아이콘으로 떠오른 말랄라 뒤에는 아버지가 있었다. 말랄라는 “아들이 태어나면 축포를 쏘고 딸이 태어나면 커튼 뒤에 숨기는 나라, 그저 요리를 하고 아이를 낳는 일이 여자의 평생 역할인 나라”에서 태어났다.(‘나는 말랄라’·문학동네) 여성 천시는 그가 속한 파슈툰족의 문화였다. 하지만 말랄라의 아버지는 달랐다. 말랄라가 태어나자 남자들의 이름만 적힌 족보에 말랄라의 이름을 적어넣었다. 남 보란 듯이 딸의 이름은 아프가니스탄의 위대한 여걸 이름인 말랄라이를 따서 지었다. 주변의 손가락질과 탈레반의 위협을 무릅쓰고 딸을 학교에 보냈다. 아버지는 항상 “말랄라는 새처럼 자유롭게 살 거야”라고 말하곤 했다.
여행을 좋아했던 동독의 물리학자 앙겔라 메르켈은 60세가 되면 미국에 가겠다는 소망을 품고 살았다. 구동독 정권 시절엔 연금 수령 개시 연령인 60세가 돼야 서방국으로 여행을 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메르켈은 어린 시절 영화와 책을 통해 미국을 접하며 미국에 대한 그리움을 키웠다고 한다. 메르켈이 꿈꾼 것은 자유의 정신이었을 것이다.
마치 ‘신의 한 수’가 작용한 듯이, 냉전의 얼음이 녹기 시작하고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면서 메르켈의 미국행 꿈은 24년이나 앞당겨 실현됐다. 독일이 통일을 이룬 뒤 메르켈은 최초의 여성 총리이자 최초의 동독 출신 총리가 됐다. 35년 동안 억압된 체제에서 살아온 메르켈에게 자유는 어떤 의미였을까. “자유는 내 평생 가장 행복한 경험이다. 자유만큼 나를 감탄시키고 격려하는 것은 아직 없다. 자유보다 더 강하게 나를 만족시키는 좋은 감정은 없다.” (‘위기의 시대 메르켈의 시대’·책담)
메르켈의 뒤에도 아버지가 있었다. 목사였던 아버지는 메르켈이 태어나자마자 동독으로 이주했다. 그리고 딸이 동독의 억압 체제 하에서 자유를 꿈꿀 수 있도록 배려했다. 그는 언젠가 언론 인터뷰에서 “동독만으로도 이미 압박은 충분했다. 집에서만큼은 아이들에게 자유를 주고 싶었다”고 회고했다.
시대착오적인 3대 세습독재 체제와 이웃해 살고 있는 우리에게 말랄라와 메르켈이 꿈꾼 자유는 각별한 의미를 지닌다. 북한 내에도 수많은 메르켈과 말랄라가 자유로운 세상을 꿈꾸며 살고 있다. 목숨을 걸고 북한을 탈출한 수많은 탈북민들이 그 증인이다.
인간이 평생을 바쳐 완성해야 할 여러 작품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인간 그 자신이라고 ‘자유론’의 저자인 존 스튜어드 밀은 역설했다. 자유가 없이는 개성의 완성이 가능하지 않다. 우리가 지난 시절 군사독재정권에 저항했던 이유 중 하나도 그들이 우리의 자유를 억압했기 때문이다. 국회가 ‘북한 인권법’을 제정해 북한 내 인권 침해범들의 등골을 서늘하게 만들어야 하는 이유도, 일본 아베 신조 총리가 일본군 성노예(위안부) 강제동원 사실(史實)을 인정하고 피해 할머니들에게 사과해야 하는 이유도 매한가지다. ‘자유’의 가치를 지키는 것이야말로 문명사회에 부여된 제1의 도덕적 책무이기 때문이다. 과거 군사독재정권까지도 ‘자유’의 기치를 내건 탓에 우리 사회에서 ‘자유’에 담긴 본래의 의미는 심하게 왜곡됐다. ‘자유’를 전면에 내세운 단체가 스스럼없이 타인의 자유를 침해하는 행태를 보이는 곳이 자유대한민국의 현주소다. 말랄라의 노벨상 수상이 자유의 가치와 한계를 성찰해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조남규 외교안보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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