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정부가 임기 초반 ‘더 내고 덜 받는’ 국민연금 개혁을 추진했을 때 반대 여론이 70%를 넘었다. 당시는 평균 소득의 9%를 보험료로 내고 평균 소득의 60%(소득대체율)를 연금으로 받았을 때다. 30년 정도 보험료를 낸 직장 가입자는 보험료(절반은 회사 부담)의 2배 정도를 연금으로 돌려받았다. 이런 짭짤한 연금 체계를 ‘보험료율은 점진적으로 15.9%까지 올리고 소득대체율은 즉시 50%로 낮추자’고 했으니 국민은 선뜻 동의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좌파 정당인 열린우리당(새정치민주연합)이 연금 축소에 반대한 것은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명색이 우파 정당이라는 한나라당(새누리당)까지 반대하고 나선 것은 기이한 모습이었다. 대체로 우파 정당들은 복지 같은 군살을 뺀 ‘작은 정부’를 추구한다. 국민연금은 가입자의 보험료로 운영되지만, 장기적으로 연금기금이 고갈되면 우파가 싫어하는 ‘증세’로 가야 한다. 4년여의 국민연금 개혁 논란 끝에 한나라당은 2007년 2월 노무현정부의 국민연금법 개정안을 부결했다. 그것도 열린우리당보다 더 좌파적인 민주노동당(정의당)과 손잡고 그랬다. 이런 블랙 코미디가 따로 없다.
당시 한나라당과 민주노동당의 기이한 정책연합은 ① 65세 이상의 모든 노인에게 매달 국민연금 가입자 평균의 20%에 해당하는 연금(2007년 기준 34만원)을 지급하고 ② 국민연금은 보험료율과 소득대체율을 각각 7%, 20%로 낮추는 국민연금 개혁안을 만들어냈다.

①은 2012년 대선 과정에서 박근혜 후보가 약속했던 ‘기초연금(65세 이상 모든 노인에게 월 20만원씩 지급)’ 공약보다 급진적이다. 노인 기초연금은 매년 세금을 거둬서 지급하는 것이라 고령화 속도가 빠른 우리에게는 재정 부담이 만만치 않다. 오죽했으면 약속은 반드시 지킨다는 박근혜 대통령조차 65세 이상 노인 중 소득 하위 70%를 대상으로, 그것도 국민연금과 연계해서 차등 지급하는 식으로 공약을 후퇴시켰겠는가. ②는 소득대체율 40%인 지금도 ‘용돈 연금’으로 불리는 연금을 ‘껌값 연금’으로 전락시켰을 것이다. 다행히 좌·우파 정책연합의 이율배반적인 개혁안도 정부안과 함께 부결됐다. 이런 우여곡절을 거친 뒤에야 여야는 2007년 7월 보험료율은 9%로 유지하고 60%인 소득대체율만 2028년까지 점진적으로 40%까지 인하하는, ‘그대로 내고 덜 받는’ 국민연금법 개정안을 합의 처리했다. 현행 국민연금 제도가 만들어진 ‘흑역사(黑歷史)’다.
당시 한나라당은 70%가 넘는 반대여론이 두려워서 국민연금 개혁에 반대했을 것이다. 재원 조달 계획도 없이 불쑥 꺼내든 노인 기초연금 제도는 해마다 늘어나는 노인 표를 노린 선심 정책이었다. 대중에게 영합한 것이다.

여야가 바뀌자 이제는 새정치민주연합이 그 길을 따라가고 있다. 박근혜정부의 공무원연금 개혁에 딴지를 걸고 과거 자신들이 인하했던 국민연금 소득대체율을 다시 올리자는 자가당착에 빠져있다. 공무원 표밭을 다지고 노후가 불안한 국민의 마음을 사서 정권을 되찾아오겠다는 속내가 빤히 보인다.

개혁은 누군가의 손해를 전제로 하는 것이다. 그런데 사람 심리가 그렇다. 뭔가를 빼앗기지 않으려는 욕망이 자신에게 없는 것을 소유하려는 욕망보다 더 크다. 개혁이 혁명보다 어렵다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그래도 개혁을 이뤄내는 지혜로운 국민과 정당은 있다. 연금 개혁만 놓고 봐도 나라 밖으로 눈을 돌려보면 국민의 노후 보장과 재정 안정성을 동시에 이룬 사례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이들은 머리를 맞대고 상충하는 이해를 절충할 수 있는 최적(最適)의 지점을 찾아냈다.

우리 정치권이 만들어낸 공무원연금 개혁안은 최선의 선택이었나. “그렇다”고 대답할 국민은 공무원 가족을 제외하면 많지 않을 것이다. 이해 당사자의 과도한 욕망과 정치권의 대중영합주의가 손잡으면 개혁은 성공할 수 없다. 로마 시대의 철학자인 세네카는 “국민의 뜻을 따르기만 하면 국민과 함께 망하고 국민의 뜻을 거스르기만 하면 국민에 의해 망한다”고 말했다. 대한민국이 저출산·고령화의 덫에서 빠져나와 선진국으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국민과 지도자 모두 세네카의 충고를 마음에 새겨야 할 것이다. 조남규 사회부장


                                                'The dying Seneca' by Peter Paul Rube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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