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은 지난달 한·미 정상회담 계기에 “북한의 4차 핵실험은 동북아의 안보지형을 근본적으로 뒤흔들어 놓을 것”이라고 말했다.
세월호 참사 국면이라서 부각되지는 않았지만, 사실 이 언급은 매우 엄중한 상황 인식에 바탕한 것이다. 4차 핵실험을 통해 북한이 ‘핵무기 소형화’(미사일에 핵무기를 탑재할 수 있는 기술)에 성공할 수도 있다는 의미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물은 100도에 이르면 질적 변화를 일으킨다. 4차 핵실험이 물을 끓게 하는 마지막 불꽃이 될 수 있다.

한반도와 일본 전역을 타격할 수 있는 북한의 노동·스커드 미사일에 핵탄두가 탑재되면 북한은 절대무기인 핵을 흔들며 우리를 겁박하려 들 것이다. 북한의 도발에 맞선 우리의 칼날은 무뎌질 수밖에 없다. 북한의 도발 즉시 도발 원점은 물론 북한군 지휘부까지 타격한다는 계획이 북한 핵무기 앞에서도 주춤거림 없이 실행될지는 의문이다. ‘전쟁할 수 있는 나라’를 만들어가고 있는 일본은 이제 북한의 핵보유를 빌미로 군사대국화의 길로 폭주할 것이다. 국내에서도 핵보유를 주장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안보 위기를 해소하기 위한 경제적·심리적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 북한 핵문제가 이런 식으로 흘러가선 안 되지만 상황은 그런 식으로 흘러가고 있다.

지난 20년 동안 부침을 거듭한 북핵 협상은 북한이 더 이상 핵을 협상 대상으로 여기지 않고 있음을 스스로 증명했다. 북한은 언제부터인가 핵을 김일성·김정일·김정은 3대 세습정권의 유지를 위한 생존 수단으로 간주하기 시작했다. 북한 지도부가 이런 생각이라면 협상을 통해 자발적으로 핵을 포기할 가능성은 희박해진다. 한·미 행정부는 북한의 그런 생각이 바뀌지 않는 한 북핵 협상은 시간 낭비라는 생각을 공유하고 있다. 최근 만난 외교 당국자는 6자회담 전망을 묻는 질문에 “똑같은 일을 반복하면서 다른 결과를 기대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라는 앨버트 아인슈타인의 경구로 답변을 대신했다. 버락 오바마 미국 행정부는 북한이 ‘북·미 2·29 합의’ 문서의 잉크가 마르기도 전인 2012년 4월 장거리 로켓 ‘은하 3호’를 쏘아올린 이후 북한을 대화 파트너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이런 판국에 북한 풍계리 핵실험장에서 네 번째 폭발음이 들려온다면 그것은 6자회담의 종언을 알리는 조종(弔鐘) 소리가 될 것이다.

 



지금은 북핵 당사자들 사이의 불신감이 너무 커서 어느 쪽도 위기관리의 주체가 되지 못하고 있다. 박근혜정부의 ‘창조적’ 돌파구가 필요한 시점이다. 조만간 이뤄질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한국 방문에서 실마리를 찾아야 한다. “중국은 이제 북한이 문제가 될 뿐 아니라 자국의 안보에도 큰 문제라는 것을 지금 인식하기 시작했다”는 오바마 대통령의 발언은 출발점에 불과하다. 북한 비핵화의 짐을 중국에 떠넘기는 식의 접근법으로는 중국을 움직일 수 없다. 세계 전략 속에서 북핵을 바라보는 미국은 그럴 수 있어도 남북한 7500만의 생존 차원에서 북핵을 바라봐야 하는 우리는 그럴 수 없다.

동북아 패권을 다투는 미·중이 모두 만족할 수 있는 해법을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서로 이해가 엇갈리는 미·중을 설득해서 우리 국익을 극대화할 해법을 찾아내야 한다. 북한의 핵보유를 막는 일이야말로 박근혜정부 외교안보팀에 부여된 최우선 과제다. 그 어떤 과제가 남북한 주민의 생존 문제보다 중요할 수 있겠는가. 윤병세 외교장관은 최근 유엔에서 “북한이 핵실험으로 국제사회에 도전할 경우 가장 심각한 결과에 직면하게 될 것임을 분명히 경고해야 한다”고 역설했지만, 북한을 향해 으름장을 놓는 일이라면 군인 출신이 수장을 맡고 있는 청와대 국가안보실만으로도 충분하다. 미국과 중국을 움직여야 하는 보다 정교한 작업은 윤병세 외교부의 몫이다. 더 이상 감나무 밑에 누워서 홍시가 떨어지기만 기다려서는 안 된다. 북한을 향해 호통치고 중국이 나서야 한다고 떠들어대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이 또한 ‘똑같은 일을 반복하면서 다른 결과를 기대하는 어리석은 일’이 될 것이다.

조남규 외교안보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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