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아베 신조 총리의 참배로 또다시 논란거리가 된 야스쿠니 신사의 전신은 도쿄 초혼사(招魂社)다. 초혼사는 히로히토 일왕(日王)의 할아버지인 메이지 일왕의 뜻에 따라 세워졌다.
 도쿠가와 막부를 무너뜨리고 일왕 중심의 체제를 수립하는 과정에서 숨진 전몰자, 그중에서도 일왕 편에 섰던 이들의 영혼을 위로하기 위한 추모 시설이다. 제국주의로 치닫던 일본은 메이지 일왕의 명령으로 도쿄 초혼사를 ‘나라를 태평하게 한다’는 뜻의 야스쿠니(靖國)로 개칭했다. 그런 뒤 청·일, 러·일 전쟁 전사자들이 야스쿠니 위령자 명부에 등재됐고 야스쿠니는 군국주의의 도구로 활용됐다. 일왕은 야스쿠니 신사의 주요 제전(祭典) 때마다 직접 참배했다. 야스쿠니는 패전 직후 국가 시설에서 종교 법인으로 격하됐으나 일왕은 꾸준히 야스쿠니를 찾았다.
 그런데 히로히토의 야스쿠니행은 1975년 11월21일 이후 돌연 중단됐다. 히로히토의 뒤를 이은 아키히토 일왕도 1989년 즉위 이후 지금껏 야스쿠니에 참배하지 않고 있다.

 

                                                                                                        아키히토 일왕


 아베 총리는 지난 26일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한 뒤 “두 번 다시 전쟁의 참화로 사람들이 괴로워하는 일이 없는 시대를 만들겠다는 결의를 전하기 위해 참배했다”고 밝혔다. 총리 재임 시절 야스쿠니를 6차례나 참배했던 고이즈미 준이치로는 당시 “가족을 두고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분들 모두에게 충심에서 추도를 행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런 숭고한 이유에서 이뤄진 참배라면, 왜 일왕은 근 40년째 야스쿠니를 외면하고 있는 것일까.
 고이즈미나 아베가 애써 외면하고 있는 ‘불편한 진실’이 바로 야스쿠니와 관련된 일왕의 마음이다. 일왕의 야스쿠니 참배가 돌연 중단된 이유를 놓고는 갑론을박이 있었다. 그러던 차에 2006년 궁내청(일본 왕실 주무부처) 장관을 지낸 도미타 도모히코의 메모가 공개됐다. ‘도미타 메모’에는 다음과 같은 히로히토의 독백이 기록돼 있다. “언젠가 A급(전범)이 합사되었다. …쓰쿠바는 신중하게 대처했다고 듣고 있지만, 마쓰다이라의 아들은 아버지의 마음을 모르고 있다. 그 때문에 나는 그때 이후 참배하고 있지 않다. 이것이 나의 마음이다.” ‘쓰쿠바’는 1966년 A급 전범 14명의 제신명표를 수령하고서도 그들을 합사하지 않았던 쓰쿠바 후지마로 궁사(宮司), ‘마쓰다이라의 아들’은 1978년 10월 비밀리에 A급 전범 합사를 단행했던 마쓰다이라 나가요시 궁사다. 해군 장교 출신인 마쓰다이라는 “도쿄 전범 재판을 부인해야 일본의 부활이 가능하다”는 소신을 갖고 있었다고 한다. 그는 A급 전범 합사 과정에서 일왕이나 유족의 뜻도 묻지 않았다.(도요시타 나라히코의 ‘히로히토와 맥아더’)
 마쓰다이라는 일본 우익 진영의 영웅이 됐다. 우익 진영을 대변해온 일본 자민당 정권은 야스쿠니에 합사된 전범들을 ‘쇼와(昭和)의 순난자(殉難者)’(히로히토 시대의 애국자)로 미화시켰다. A급 전범 용의자를 외조부(기시 노부스케 전 총리)로 둔 아베 총리는 정치 초년병 때부터 그 선봉에 섰던 인물이다. 아베의 야스쿠니 참배는 뼛속 깊이 각인된 우익 DNA의 발현인 셈이다.
 하지만 아베를 포함한 일본 우익이 야스쿠니를 부각시키면 시킬수록 일왕은 야스쿠니로부터 멀어질 수밖에 없다. 종전 이후 일본 체제는 연합군최고사령부 더글러스 맥아더 사령관과 히로히토 일왕 간 타협의 산물로, ‘히로히토의 전쟁 책임 면제-일왕제 유지-평화헌법’이라는 토대 위에 서 있기 때문이다. 일본 우익은 전범들을 야스쿠니에 합사한 뒤 총리의 참배를 이끌어내며 군국주의 시대로 시곗바늘을 되돌리려 하고 있으나 그러면 그럴수록 일왕의 전쟁 책임론이 부각되고 일왕을 전범 법정에 세웠어야 했다는 목소리들이 커진다. 일본 우익의 시대착오적 행태는 무엇보다 즉위 당시 “항상 국민의 행복을 염원하면서 일본국 헌법을 준수하고…우리나라가 한층 더 발전해 국제사회의 우호와 평화, 인류의 복지와 번영에 기여할 것을 간절히 희망”했던 아키히토 일왕의 뜻에 배치되는 것이다.

조남규 외교안보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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