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통합당의 올 대선 목표는 ‘어게인 2002’다. 2002년 대선에서 민주당 노무현 후보가 연출했던 역전 드라마를 이번에도 재연하겠다는 것이다. 올 대선은 겉모양만 보면 2002년 대선과 많이 닮았다.

새누리당 박근혜 대선 경선 후보는 2002년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처럼 독보적 지위를 점하고 있다. 새누리당 대선 후보 경선은 사실상 ‘박근혜 추대식’이나 다를 바 없게 됐다. 당시 노무현 대통령을 만들어냈던 친노(친노무현) 세력은 올 대선에서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를 중심으로 다시 뭉쳤다. 정당 밖의 제3후보가 기존 정치권에 염증을 느낀 여론을 등에 업고 대선 변수로 부상한 것도 판박이다. 지난해부터 시작된 안철수(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 바람은 2002년 월드컵 열기 속에 만들어진 정몽준 바람보다 더 강하게 불고 있다.

대선을 5개월 앞둔 시점에 이회창은 노무현, 정몽준보다 지지율(갤럽 조사)이 15%포인트가량 높았다. 민주당 후보에게 불리한 1강2중 구도였다. 이번엔 같은 시점에 박근혜, 안철수가 2강 구도를 형성하고 있다. 문 후보는 노무현보다 훨씬 힘든 조건 속에 놓여 있는 셈이다. 노무현은 정몽준과의 단일화라는 승부수로 난관을 돌파하고 마침내 대선에서 승리했다. 문재인도 그런 식으로 대통령이 되려 한다.

그런데 노무현 방식을 답습하겠다는 문 후보는 왠지 노무현답지가 않다. 문 후보는 오래전부터 안 원장에게 목을 매는 행태를 보이고 있다. 그가 안 원장을 향해 공동정부를 운영하자고 제안한 것은 대선 출마를 공식 선언하기도 전이었다. 그의 말 한마디에 민주당은 졸지에 ‘불임(不姙)정당’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하지만 안 원장은 “문 고문이 굳이 저를 거론해서 말한 게 아니라 앞으로 분열이 아닌 화합의 정치가 필요하다는 자신의 철학을 보여 주신 게 아닌가…”라고 언급, 문 후보의 제안이 무색하게 됐다. 그런데도 문 후보는 “안 원장이 대선 참여 뜻을 밝힌 것을 환영한다”느니 “이제는 안 원장을 견제할 때가 아니고 단일화 경쟁 상대로 생각해야 한다”느니 하면서 안철수에게 매달리고 있다. 안 원장은 단일화의 ‘단’자도 입에 올리지 않고 있는데 그는 그렇다. 지독한 짝사랑이다. 심하게 말하면 김칫국부터 마시고 있는 격이다.

 

                                                                                              문재인(왼쪽)과 안철수

안 원장이 뜨고 있다고 해도 그는 대선 출마 여부도 결단하지 않은 상태다. 문 후보는 한국 정당사에 뚜렷한 족적을 남긴 제1야당의 유력 대선 주자다. 얼마 전엔 민주당 지지자들이 안 원장보다 문 후보를 더 선호하고 있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발표되기도 했다.

10년 전 문 후보의 자리에 있었던 노무현은 달랐다. 노무현은 정몽준에 기댄 적이 없다. 결기가 있었고 배포가 느껴졌다. 누구보다 문 후보가 잘 알 것이다. 정권교체가 최우선 목표라고 해도, 일에는 순서가 있고 공당의 유력 후보로서 지켜야 할 도리가 있다. 우선 민주당 후보로 우뚝 서고 그 토대 위에서 연대를 모색해도 모색할 일이다. 문 후보는 내심 안 원장이 독자 후보로 완주, 대선 필패의 상황이 초래되는 것이 두려워서 그러는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상황이 온다 해도 민주당의 깃발 아래 옥쇄(玉碎)하겠다는 각오로 임할 일이다. 그런 각오라야 안 원장과 오롯이 연대할 수 있을 것이다.

안 원장 문제에 관한 한, 손학규 후보의 태도가 반듯해 보인다. 손 후보는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국민이 (지난 총선에서) 127석을 줬을 때는 이걸 갖고 정권을 만들어 보라는 뜻”이라며 “‘우리가 다시 잘하겠다’고 해야지 해보지도 않고 ‘손만 잡자’, 그래선 안 된다. 그런 지도자에게 누가 정권을 맡기겠나. 국민은 자신 있는 지도자를 원한다”고 말했다. 한나라당 출신이라는 사실을 ‘주홍글씨’처럼 안고 사는 손 후보가 ‘친노 적자(嫡子)’를 자처하는 문 후보보다 더 노무현다운 것은 아이러니다.

조남규 정치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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