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22일(현지 시간)부터 사흘 동안 미국 워싱턴 DC에서 개최된 미·이스라엘 공공문제위원회(AIPAC·에이팩) 연례총회를 취재하면서 유대계 미국인들의 저력을 새삼 실감할 수 있었다.
에이팩은 미 정부와 의회를 상대로 로비하는 단체이다. 하지만 에이팩 연례총회에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미 연방 상·하원 지도부 등 미국의 수뇌부가 총출동한다. 미국 대통령의 에이팩 총회 참석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빌 클린턴, 조지 W 부시 대통령도 재임 시절 에이팩 총회에서 ‘충성 서약’을 했다. 2008년 대선 당시 오바마 민주당 후보와 존 매케인 공화당 후보가 이스라엘 지지를 선거 공약으로 제시한 곳도 에이팩이다.
<에이팩 반대 집회>
23일 만찬에는 350명이 넘는 연방 의원들이 참석했다. 오바마 대통령과 의원들은 빈 손으로 오지 않았다.
오바마 대통령은 에이팩 개막식 연설에서 이스라엘 정부를 격앙시킨 ‘1967년 국경선’ 제안에 대해 해명했다. 당초 오바마 대통령의 제안은 답보 상태인 중동 평화협상의 돌파구를 마련하기 위해 이스라엘이 3차 중동전쟁으로 얻은 영토를 돌려줘야 한다는 취지로 해석됐으나 오바마 대통령은 “오해가 있었다”고 한 발 물러섰다. 오바마 대통령은 팔레스타인을 국가로 인정하려는 유엔 차원의 움직임에 대해서도 분명한 반대 입장을 밝히며 이스라엘 편에 섰다. 미 국방부는 에이팩 총회 기간에 이스라엘에 대한 미사일 방어 구상 기술 지원을 재개하겠다고 발표했다. 이스라엘이 중국에 관련 기술을 유출했다는 의혹 속에서 미국의 기술 지원이 중단된 지 6년 만이다. 같은 날 미 국무부는 이란의 대량살상무기(WMD) 개발을 막기 위한 추가 제재를 단행했다. 이들 사안은 모두 에이팩이 올해 로비 목표로 선정한 것들이다.
미국 정부와 의회가 에이팩을 외면할 수 없는 이유는 에이팩의 탄탄한 조직력과 자금력 때문이다.
연례총회에 참석한 1만여명의 회원들은 미 전역에서 선발된 유대계 미국인 대표들이다. 현장에서 만난 김동석 뉴욕·뉴저지 한인유권자센터 소장은 “에이팩 조직은 미 연방하원의원 선거구를 기준으로 결성돼 있으며 회원들이 자기 지역구 의원들을 움직인다”고 전했다. 미 언론은 72년 민주당 대선 후보로 나섰던 조지 맥거번의 낙선을 에이팩의 영향력을 상징하는 사례로 인용하곤 한다. 맥거번은 당시 F-15 전투기를 사우디 아라비아에 판매하겠다는 지미 카터 미 행정부 조치에 동조했다가 에이팩의 ‘살생부’에 올랐다. 공화당 상원 외교위원장을 지낸 거물 정치인 찰스 퍼시는 팔레스타인과 협상해야 한다고 언급했다가 낙선의 고배를 마셨다.
막강한 영향력을 지닌 에이팩이지만 영향력을 행사하는 방식은 영리했다.
올 연례총회는 오바마 대통령의 전격적인 ‘1967년 국경선’ 제안으로 미·이스라엘 관계가 서먹해진 가운데 개막됐으나 에이팩은 “우리는 유대인이기에 앞서 미국 시민”이라는 기조를 견지했다. 김 소장은 “에이팩은 총회 기간 내내 이스라엘을 편들기보다는 미국의 이익을 위해 미·이스라엘 관계가 악화돼선 안 된다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 주력했다”고 말했다. 연방 하원의 유대계 의원이 민주당에는 30명 넘게 포진한 데 반해 공화당에는 에릭 켄터 원내대표가 유일하다. 에이팩이 유대계 후보를 지원하는 과정에서 전통적으로 친(親)이스라엘 성향인 공화당 후보 대신 민주당 후보를 전략적으로 지원한 결과다.
에이팩은 50년대 초반 유대계 미국인과 의회 인사들의 친목 단체로 출발했다. 세계 각지의 이민자들로 구성된 단체이다 보니 초창기엔 갈등도 없지 않았다. 난관이 적지 않았지만 에이팩 리더들의 헌신적인 봉사와 유대계 미국인들의 단결이 지금의 에이팩을 만들어냈다.
재미 한인 동포들의 수도 꾸준히 늘어 600만 미국 유대인들의 3분의 1 수준에 이르렀다. 그러나 재미 한인들의 영향력이 재미 유대인들의 3분의 1 수준은 아니다. 김 소장은 “재미 동포들이 에이팩과 같은 행사를 개최했을 때, 자비로 행사에 참석할 동포들이 그리 많지 않을 것”이라면서 “미국 내 한인과 유대인의 차이는 유대인들은 에이팩과 같은 영향력 있는 조직을 만들어냈고, 우리는 만들어내지 못했다는 사실”이라고 말했다.
조남규 워싱턴 특파원
(시카고=연합뉴스) 김현 통신원 = 미국에 거주하는 250만 한인 동포를 명목상
대표하는 단체이자 미국 내 168개 한인회의 전·현직 회장 2천300여 명을 회원으로
둔 미주 한인회 총연합회(이하 미주총연) 회장선거가 파행 속에 막을 내렸다.
지난 5월28일(현지시간) 미주총연 정기총회 및 회장 선거가 열린 시카고 북서교외
의 힐튼호텔은 입구에서부터 미국 각지에서 달려온 400여 명의 한인회장단으로 북적
거렸다.
이번 선거에는 애리조나주 한인회장 출신의 김재권(64) 미주총연 이사장과 조지
아주 오거스타 한인회장 출신의 유진철(57) 총연 부회장이 출마해 열띤 경쟁을 벌였
으며 김 후보가 임기 2년의 24대 회장에 당선됐다.
내년 4월 처음 도입되는 재외국민선거를 앞두고 정치적으로 예민한 시기인 때문
인지 일부에서는 김 후보를 민주당 후원을 받는 호남 출신으로, 유 후보를 한나라당
후원을 받는 영남 출신으로 언급하기도 했다.
두 후보 진영의 거리는 상당히 멀어 보였다. 양측 모두 "오랜 시간 미주총연에
서 함께 일해와 서로에 대해 잘 안다"고 이야기하면서도 도무지 같은 단체에 소속된
사람들처럼 보이지 않았다.
이날 미주총연 행사장 바로 옆 홀에서는 마침 한 유대인(Jewish) 가족이 주최한
'바르 미쯔바(Bar Mitzvah)' 파티가 열렸다. 회당에서 유대교 정통 의식에 따라 만
13세 생일을 기념하는 성인식을 거행한 후 자리를 옮겨 진행하는 이 파티에는 100여
명이 참석해 옆에서 치러지는 한인들의 선거 분위기를 지켜봤다.
여러 가지 공통점과 차이점으로 한인들과 자주 비교되는 유대인들은 자신들의
권익을 위해 하나로 뭉치기 잘하는 대표적인 민족이다. 유대인들이 미국에서 큰 영
향력을 행사하며 살 수 있는 건 그들이 '유대인'이란 이름 아래 하나로 단결하기 때
문이다.
비교적 순조롭게 진행되는 듯한 미주총연 행사는 투표 결과 발표 이후 극적인
반전을 보였다. 선거관리위원장이 김 후보의 당선을 선언하고 당선증을 전달한 직후
유 후보 지지자들이 행사장으로 뛰어들어와 "선거에 부정이 개입됐다"며 선거 무효
를 외쳤다.
이들은 "부재자 투표 발송지와 유권자 정보가 일치하지 않는 우편 봉투가 대량
발견됐고 김 후보 지지자의 중복 투표 증거도 포착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김 당선자 측은 "유 후보 측이 결과에 불복하는 것일 뿐"이라고 강조했
다.
이로 인해 참석자들은 동요하기 시작했고 행사장과 로비는 물론 호텔 1층이 모
두 술렁거렸다.
투표와 개표 작업이 진행된 별도의 방 입구에서는 언성 높인 항의가 제기되고
소란이 일면서 급기야 호텔 측 신고로 지역 경찰들이 두 차례나 출동하는 사태가 발
생했다.
이를 놓고 유 후보 진영의 한 회원은 "FBI(미 연방수사국)가 조사를 나왔다"는
웃지 못할 엄포를 놓기도 했다. 경찰에 직접 확인한 결과 "우리는 단지 싸움을 말리
러 나왔을 뿐"이라는 답을 들었다.
시카고 노스브룩 힐튼호텔 로비에서 '싸움하는' 일부 한인들 사이로 바르 미쯔
바 파티를 즐기는 유대인 아이들이 걸어 다녀 한눈으로 보기에도 민망할 지경이었다
.
2년 만에 열린 미주총연 정기총회 및 회장선거는 마무리가 제대로 안 된 채 그
렇게 끝이 났다. 행사 주최 측은 파행에 대한 공식 설명을 내놓지 않았기 때문에 일
부 참석자들은 영문도 모르는 채 차례로 행사장을 빠져나갔다.
참석자들은 너나 할 것 없이 "한국인으로서 너무나 부끄러운 일"이라고 탄식했
다.
유 후보 측은 "선관위가 적절한 해명을 내놓지 않을 경우 법정 소송도 불사하겠
다"는 입장이다.
이에 대해 한 참석자는 "한인들의 화합을 명분으로 존재하는 비영리단체 한인회
가 내부 갈등으로 인해 법정 소송을 진행하는 일이 잦다"며 안타까움을 표현했다.
1956년에 미국으로 건나와 뉴욕 롱아일랜드 한인회 2대 회장을 지낸 하세종(77
) 씨는 "앞으로 한국인도 미국의 대통령이 될 수 있다"면서 "미주총연은 한인 2, 3
세들이 미 주류사회에서 번영을 누리며 살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단결된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한다. 한인 파워를 만들어내는 기능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chicagorh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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