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일(현지시간) 112대 의회 개막식이 열린 미 연방하원 본회의장은 의원들의 배우자와 자녀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111대 의회 하원의장인 낸시 펠로시 민주당 원내대표는 개원식이 진행되는 동안 그의 품에 안기려는 손자, 손녀들의 응석을 받아줘야 했다. 어린 자녀에게 뭔가를 열심히 설명하는 의원들이 있는가 하면, 다른 한 쪽에선 사진사를 불러 가족들과 기념촬영을 하는 의원들도 보였다. 지루한 행사에 지친 아이들 중 일부는 의석 사이의 통로에 드러누워 장난을 쳤다. 아빠의 무릎을 베고 잠이 든 아이도 있었다. 의원 전원에 대한 호명투표(roll call)로 이뤄진 차기 하원의장 선출 과정에서 일부 의원들은 가족과 함께 일어나 자신이 지지하는 의원 이름을 합창, 폭소를 자아냈다. 가족들에게 자리를 내준 의원 일부는 통로에 선 채로 개원식을 치렀다. 2년마다 한번씩 개최되는 개원식에 가족과 친지를 초청하는 것은 미 의회의 오랜 전통이다. 새 출발하는 개원식 날 민주, 공화 의원들이 가족들과 한데 어울리며 덕담을 나누는 모습은 보기 좋았다.
하원의장 투표 결과를 집계하는 동안 환담하는 의원들
기자는 지난해 6월 특파원 칼럼을 통해 미 상원이 인준 청문회 자리에 청문 대상인 고위 공무원 가족들을 초청하는 관행을 소개한 적이 있다. 미국의 인준 청문회에서 맥락 없이 호통을 치는 의원이나 부당하게 모욕을 가하는 의원이 없는 이유 중 하나가 어쩌면 청문 대상자의 가족들이 지켜보고 있기 때문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미 의회 개원식을 지켜보면서도 비슷한 생각이 들었다. 이날 개원식은 공화당이 4년 만에 하원 다수당 지위를 탈환하면서 의회 권력이 공식적으로 교체되는 날이었다. 몸집이 커진 공화당이 2012년 대선을 앞두고 버락 오바마 정부 견제를 본격화하면서 민주, 공화 양당의 대치도 날로 가팔라지고 있는 환경이다. 그런 분위기는 개원식에서도 십분 감지됐다. 그렇지만 의원들은 상대당 대표의 연설 내용이 아무리 못마땅하더라도 시종 예의를 잃지 않았다.
펠로시 의원이 고별 연설을 통해 111대 의회가 이뤄낸 건강보험 개혁 법안 등의 성과를 자평하는 대목에선 민주, 공화 의원들의 반응이 엇갈렸다. 민주당 의원들이 박수로 화답할 때 공화당 의원들은 경청했다. 존 베이너 신임 하원의장이 취임 연설을 통해 민주당 정부의 국정기조를 비판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공화당 의원들이 기립 박수를 치며 환호할 때, 민주당 의원들은 자리에 앉아 그들의 환호가 그칠 때까지 조용히 기다렸다. 양당 모두 정파적 견해가 아닌 대목에서는 민주당 펠로시 대표의 연설이든, 공화당 존 베이너 하원의장의 연설이든 박수를 아끼지 않았다. 동료 의원은 말할 것도 없고 현직 대통령의 국회 연설 중에도 무례하고 경박한 언동을 서슴지 않는 한국의 국회의원들이 생각났다.
프레스 갤러리에서 보이는 하원 본회의장 전경
가장 감동적인 장면은 펠로시가 베이너에게 의사봉을 넘기는 과정에서 연출됐다. 펠로시 의원은 2층 갤러리에서 남편의 하원의장 취임식을 지켜보던 베이너 의장의 부인 데비를 올려다보며 “남편이 의회에 봉사할 수 있도록 해줘서 정말 고맙다”고 치하했다. 그러자 모든 의원들과 방청객들이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나 데비를 향해 우레 같은 박수를 보냈다. “감사하다”고 말하는 데비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앞줄 가운데가 데비, 그 양쪽이 베이너의 두 딸이다. 출처:뉴욕타임스
여야 만장일치로 국회의장을 선출하는 한국과 달리 모든 의원들이 하원의장 선출 과정에서 자신이 지지하는 의원 이름을 호명하는 광경도 신선했다. 공화당 의원들은 전원이 베이너를, 민주당 의원들은 19명의 이탈표를 제외한 전원이 펠로시를 호명했다. 호명 방식도 제각각이어서 성만 간단히 말하고 앉는 의원들이 있는가 하면 “공화당의 미래인 베이너”, “나의 영웅 펠로시” 등과 같이 존경심을 담은 답변도 많았다.
펠로시와 베이너 출처:뉴욕타임스
“나는 이제 의사봉과 그에 담긴 신성한 의무를 새 하원의장에게 넘깁니다. 신이여, 베이너 의장을 축복하소서.” 펠로시가 의사봉을 건네자, 본회의장은 함성과 박수 소리로 가득 찼다. 개막식을 축제로 승화시킨 품위 있고 감동적인 권력교체의 현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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