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미셸 리 워싱턴DC 교육감의 사퇴 선언이 나오기 전까지 기자의 심경은 착잡했다.

그가 한국계 미국인이라는 사실 때문만은 아니었다. 미 공교육 개혁의 아이콘으로 인정받던 그가 정치 바람에 휩쓸려 임기도 마치지 못한 채 중도 하차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 안타까웠다. 미셸 리의 운명은 그의 교육 개혁 열정과 성과가 아닌 교육감 임명권을 쥐고 있는 워싱턴DC 시장 쟁탈전 결과에 좌우됐다. 미셸 리와 갈등 관계에 있던 빈센트 그레이 워싱턴DC 의회 의장이 민주당의 워싱턴DC 시장 후보 경선에서 승리하면서 미셸 리의 사퇴는 시간의 문제로 남게 됐다. 워싱턴DC는 민주당의 아성으로 민주당 경선이 사실상 본선이나 다름없는 지역이다.

미셸 리는 교육 개혁 추진 과정 내내 교사 노조, 시 의회 등과 충돌했다. 시 의회가 지난해 ‘서머 스쿨’ 예산을 줄이자, “학업 능력이 뒤처진 학생들을 위한 서머 스쿨은 폐지할 수 없다”면서 대신 교장과 교사 등 388명을 해고하기도 했다. 당시 기자는 미셸 리를 만나 “교육 개혁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교사 노조나 시 의회, 다른 공동체 구성원들과 협력해야 하지 않느냐”고 물어본 적이 있다. 그의 대답은 단호했다. “모두가 조화롭게 지내는 것은 좋은 일이다. 하지만 내 임무는 교사 노조도 시 의회도 아닌, 아이들을 위해 일하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나는 일부 어른들이 불쾌하게 생각하는, 하지만 아이들에게는 옳은 결정들을 내렸다. 누군가는 정치적 이유나 다른 미친 짓들로부터 아이들을 지켜야 한다. 노조나 시 의회는 나에게 화가 나 있다. 나는 다른 사람들이 나를 욕하건 말건 개의치 않는다.”

 



미셸 리의 단호한 개혁 조치는 성과로 이어졌으나 동시에 반(反) 미셸 리 정서도 확산됐다. 경선에서 승리한 그레이 의장은 반 미셸 리 진영의 중심에 서 있는 인물이다. 미셸 리의 사퇴는 미국에서도 교육감이라는 자리가 정치적 외풍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사실을 보여줬다. 오죽했으면 미셸 리가 경선 막바지에 자신을 발탁한 애드리언 펜티 현 시장 유세전에 동참했을까. 두 후보의 진흙탕 싸움 속에 뛰어든 미셸 리를 바라보면서, 민선 교육감 체제 출범 이후 교육 현장이 진보, 보수 진영의 전쟁터로 변한 한국의 현실이 겹쳐졌다. 정치 논리에 교육계가 휘둘리기는 미국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미셸 리는 지난 13일(현지 시간) 사퇴 결정을 내렸다. 기자와의 인터뷰 자리에서 “임기가 끝날 때까지 공교육 개혁에 헌신하고 싶다”고 말한 미셸 리였기에, 그의 사퇴 결정을 정치 논리 외에 다른 이유로는 설명하기 힘들다. 하지만 미국의 정치 논리가 교육 현장에 개입된 것은 여기까지였다. 그레이 의장은 미셸 리가 추구한 교육 개혁을 이어갈 수 있는 인사를 후임자로 선택했다. 후임자인 카이야 헨더슨 워싱턴DC 부교육감은 미셸 리가 교육개혁 전사를 양성하는 ‘새로운 교사 프로젝트’ 활동을 전개했을 당시 동고동락했던, 미셸 리의 ‘분신’과 같은 인물이다. 미셸 리가 워싱턴DC 교육감에 임명됐을 때, 함께 일하자고 가장 먼저 손을 내민 사람도 다름 아닌 헨더슨이었다. 미셸 리는 회견장에서 “교육개혁을 지속하기 위한 최선의 방법은 현재의 개혁가(자신)가 물러나는 일이라는 데 (나와 그레이는) 의견 일치를 봤다”고 밝혔다.

자신을 던지고 교육 개혁이 지속될 수 있도록 정치적 타협을 이끌어 낸 미셸 리는 이날 회견장에서 가장 빛나는 인물이었다. 정적(政敵)이었던 펜티 시장의 교육 개혁 정책을 이어가겠다고 공언한 그레이 의장도 이날의 또 다른 주연이었다. 민주당 내의 권력 이동이라서 그런 정치적 타협이 가능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조지 W 부시 공화당 행정부는 ‘성적이 뒤처지는 학생이 없게 하자는 정책’(No Child Left Behind)을 펴며 미셸 리 교육 개혁을 뒷받침했다. 버락 오바마 민주당 행정부가 추진 중인 교육 정책인 ‘정상을 향한 경주’(Race to the Top)는 미셸 리 교육 개혁의 연장선이다. 미국 교육 현장도 정치적 무풍 지대는 아니다. 그렇지만 학업성취도 향상과 교사 자질 개선 같은 교육 개혁을 놓고는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조남규 워싱턴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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