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일 실시된 미국 중간선거에서 당선돼 연방 하원의원 8선 고지에 오른 스티븐 로스만 의원(민주·뉴저지).
그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론자로, 지난 7월 말 한미 FTA 비준에 앞서 자동차와 쇠고기 분야를 재협상해야 한다는 내용의 서한을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에게 보낸 110명의 하원 의원 중 한 사람이었다. 그런 로스만 의원은 선거 직전, 기자회견을 갖고 “나는 한미 FTA 반대론자가 아니다”면서 “한미 간에 쟁점 사항들이 타결되면 한미 FTA의 의회 비준을 위해 앞장서겠다”고 약속했다. 그동안 미국 자동차 노조의 입장을 대변해왔던 로스만 의원이 한미 FTA에 관한 강성 입장을 누그러뜨린 것은 지역구에 거주하는 한인 유권자들의 압력 때문이었다. 로스만 의원의 뉴저지 제9연방지역구에 등록된 한인 유권자는 1만5000여명에 이른다. 그는 “한미 FTA가 재미 한국동포들에게 그렇게 중요한 현안인지 미처 몰랐다”면서 “한인 유권자들이 이번 선거에서 나를 지지해준다면 한인사회를 위해 더 열심히 일하겠다”고 약속했다.
민주당 내 대표적 외교통인 게리 애커맨 의원(뉴욕).
15선 관록의 중진인 애커맨 의원도 이번 선거를 앞두고 한인 밀집지역인 뉴욕 플러싱 오픈 센터에서 공화당 후보로 나선 제임스 밀라노와 토론회를 가졌다. 연방 하원의원이 한인 사회의 토론회 초청에 응한 것은 역대 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를 움직인 것도 다름 아닌 3만명에 달하는 지역구 한인 유권자들의 힘이었다. 그는 토론회에서 “한미 FTA 지지 성명에도 서명했고 의회 내에서 한미 FTA 비준을 위해 지도적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힐다 솔리스 미 노동장관 지역구 보궐선거에서 승리한 주디 추 의원(민주·캘리포니아).
중국계 여성 의원인 그 또한 로스만, 애커맨 의원과 마찬가지로 한인 밀집지역을 지역구로 두고 있다. 더욱이 뉴욕 한인유권자센터(KAVC)가 집계한 바에 따르면 추 의원은 한인 사회가 가장 많은 정치자금을 후원한 의원이다. 그럼에도 그는 민주당 내 한미 FTA 반대 진영의 선봉에 서 있다. 로스만, 애커맨 의원의 사례와 추 의원의 사례가 극명한 대조를 이루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KAVC의 김동석 소장은 최근 기자와 만나 “재미 한인 사회의 정치력 결집의 차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만약 캘리포니아 지역에서도 뉴욕과 같은 한인 사회의 풀뿌리 유권자 운동이 조직화돼 있었다면 추 의원을 움직일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 소장은 로스만 의원의 기자회견과 애커맨 의원의 토론회를 이끌어 낸 주역 중 한 사람이다.
코리아 코커스 4명의 공동의장과 한덕수 주미대사. 왼쪽부터 제리 코넬리 (Gerry Connolly 민주. 버지니아 페어팩스) 에드 로이스 (Ed Royce 공화. 캘리포니아) 한덕수 주미대사. 로레타 산체스(Loretta sanchez 민주. LA) 댄 벌튼 (Dan Burton 공화. 인디애나)
미 의회는 2011년 1월 임기 2년의 112회기를 시작한다. 한미 양국의 FTA 추가 협의가 연내 타결된다고 해도 비준안은 새 의회에 제출된다. 새 의회는 미 국민들의 ‘반 워싱턴 정서’로 의원들이 대거 물갈이됐다. 한국 정부 차원의 노력만으론 미 의회 설득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한미관계 개선을 목적으로 미 워싱턴DC에 설립된 싱크탱크 한국경제연구소(KEI)는 이달 초순부터 재미 동포들의 한미 FTA 인식을 제고하기 위한 강연회를 시작했다.
강연회는 지난 8일(현지시간) 로스앤젤레스를 시작으로 샌프란시스코, 시애틀, 보스턴, 시카고, 댈러스, 애틀랜타 등에서 개최될 예정이다. 이 강연회는 주미 한국대사관과 한국무역협회(KITA)가 공동으로 후원한다. 주미 대사관은 지난 9월 한미 FTA 홈페이지 내에 재미 동포들이 미국 정책 결정에 손쉽게 참여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액션 센터’를 설립해 운영하고 있다. 이를 통해 재미 동포들이 해당 지역구 연방 상·하원 의원에게 한미 FTA 비준을 촉구하는 이메일을 손쉽게 전송할 수 있도록 했다. 이 모두가 좀 더 일찍 시작됐어야 하는 노력들이나 지금도 늦지 않았다.
이번 중간선거에서 재미동포들은 주(州) 상·하원 선거 등에 28명이 출사표를 던져 16명이 당선됐다. 출마자와 당선자 수 모두 역대 기록이다. 이를 토대로 재미동포 사회가 김창준 의원 이래 대가 끊긴 연방 하원의원, 나아가 주지사, 연방 상원의원을 배출해 냈으면 하는 바람이다. 국내의 재외국민 선거권 부여 정책이 이런 재미 동포들의 정치력 신장 노력에 찬물을 끼얹지나 않을지 걱정이 앞선다.
조남규 워싱턴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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