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년모임이 잦은 연말을 맞아 미국 전역에서 대대적인 음주운전 단속이 펼쳐지고 있다.
경찰 당국은 지난달 추수감사절 연휴기간부터 내년 초까지를 음주운전 집중단속 기간으로 정해 교통순찰 활동을 대폭 강화하고 있다. 한인 식당가 주변 도로엔 위장 순찰차들이 곳곳에 잠복하고 있으며, 일부 지역에선 길을 막고 음주운전을 단속하는 체크 포인트까지 등장했다.
추수감사절 연휴부터 시작된 경찰의 집중단속은 연휴기간 교통사고 통계가 그 이유를 설명해 준다. 미 연방 교통부 통계에 따르면, 추수감사절 하루 동안 교통사고 사망자는 1982년 이후 2008년까지 평균 567명으로 집계돼 미국의 주요 휴일 중에서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성탄절과 새해 첫날에도 각각 평균 414명, 410명이 교통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그중에서도 음주 관련 사망자는 지난해 추수감사절 교통사고 사망자의 41%에 달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미국은 몇년 전 부터 ‘음주운전과의 전쟁’을 선포하고 음주운전 행위에 대한 처벌 수위를 매년 높이고 있다. 뉴욕주 의회는 최근 16세 미만 어린이를 태운 음주운전자를 중범죄로 처벌하는 내용의 ‘린드라법’을 제정했다. 린드라법 제정은 지난 10월 사고 당시 11세이던 린드라 로사도가 엄마의 음주운전 탓에 숨진 이후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법안에 따르면, 16세 미만 어린이를 태운 음주운전자는 중범죄로 기소돼 최고 4년의 징역형에 처해지며, 동승한 어린이가 음주사고로 숨지면 최고 25년형까지 선고될 수 있다.
하와이 호놀룰루 경찰국은 음주운전자의 사진을 찍어 웹사이트에 게재하는 방안을 시범실시하고 있다고 미 언론은 전했다. 하와이 경찰 당국이 일각의 인권 침해 논란을 무릅쓰면서 음주운전자를 공개 망신시키기로 결정한 것도 음주운전 피해를 줄여보자는 취지에서다. 캘리포니아주는 로스앤젤레스 카운티를 중심으로 신년 초부터 음주운전 적발 운전자 차량에는 음주측정기를 의무적으로 부착하도록 하는 제도를 도입했다. 뉴욕주는 2007년 10월부터 음주운전에 따른 인명사고 처벌 규정을 대폭 강화했다.
미국에선 단순 음주운전이라 하더라도 한국에 비해 엄청난 정신적, 물질적 고통을 감수해야 한다.
기자가 거주하는 버지니아주의 경우, 음주운전(혈중 알콜농도 0.08% 이상)으로 적발되면 경찰차에 태워져 경찰서로 연행된다. 카운티 구치소에서 풀려나면 차량 보관소에 가서 300달러에 이르는 견인비용과 보관료를 물어야 차를 되찾을 수 있다.
재범일 경우엔 한 달 동안 차량이 압류된다. 하루 50∼60달러의 보관료는 차량 소유주 부담이다. 면허는 1년 동안 정지된다. 본격적인 제재는 이때부터다. 음주운전 형량은 최고 징역 1년 또는 벌금 2500달러 이하이다. 변호사 선임비로 1000∼2000달러가 들어간다. 음주운전 예방교육 이수 비용도 본인 부담이다. 재범이면 변호사 선임비와 교육비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최소 96시간 수감생활을 해야 한다. 향후 보험사의 보험료 인상은 물론 재계약 거부 조치도 각오해야 한다. 면허정지 기간 대체 교통수단 이용에 따른 비용 부담과 정신적 고통 역시 음주운전자 몫이다. 음주운전으로 걸리면 최소 1만달러 안팎의 돈이 깨지는 셈이다.
전미고속도로안전협회에 따르면, 미 전역의 음주운전 관련 사망자는 2007년 1만3041명에서 2008년 1만1773명으로 감소한 것으로 집계됐다. 매년 증가해온 음주운전 관련 사망자 수가 감소세로 돌아선 것은 10년 만에 처음이라고 협회는 밝혔다.
정부의 단호한 음주운전 단속 의지와 엄격한 처벌, 음주운전자에게 가해지는 엄청난 경제적 부담 등이 이 같은 감소세를 이끈 요인이라고 미 언론은 분석했다.
최근 한나라당 손숙미 의원이 발표한 경찰청 자료 분석 결과를 보면 한국의 음주운전 실태는 점차 심각해지는 양상이다. 2008년 한국의 교통사고 사망자 5870명 중 음주운전 관련 사망자는 969명으로 전체 16.5%에 달하며, 전체 교통사고 사망자 중에 음주운전 관련 사망자 비율은 2006년 14.5%, 2007년 16.1%로 매년 증가세를 보인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의 음주운전 처벌은 미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경미한 편이다. 자동차의 나라인 미국에서 시행하고 있는 음주운전 처벌 강화 정책을 우리도 적극 검토해볼 시점이 됐다.
조남규 워싱턴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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