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일 커트 캠벨 미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 지명자의 인준 청문회가 열린 미 상원 덕슨 빌딩.

캠벨 지명자의 모두 발언이 시작되자마자 방청석 맨 앞줄에서 한 아이가 심하게 울기 시작했다. 아이를 달래던 엄마는 원활한 진행을 위해 아이를 안고 청문회장 밖으로 황급히 걸어나갔다. 그 아이는 캠벨 지명자의 셋째 딸인 크로에였다.
 상원 외교위 동아태 위원장으로서 청문회를 주재하던 짐 웹 상원의원은 미소를 지으며 두 모녀를 바라봤다. 캠벨 지명자는 “위원회가 우리 가족을 초청해준 데 감사의 뜻을 표한다”면서 아내인 라엘 브레이너드(재무부 국제업무 담당 차관 지명자)와 세 딸, 그리고 장인과 장모를 차례로 소개했다.
 장인인 앨버트 브레이너드에 대해서는 “냉전이 한창일 때 유럽에서 외교관으로 활동하면서 국가를 위해 헌신하신 분”이라고 경의를 표했다. 캠벨은 방청석의 친구들에게도 고마움을 전했다. 청문회가 끝난 뒤에는 가족과 친구들이 캠벨을 둘러싸고 그의 등을 두드리며 격려했다. 그의 장모인 조앤 브레이너드는 기자에게 “사위가 돌아가신 사돈 어른들을 대신해 우리를 불렀다”면서 “뜻 깊은 자리였으며 사위가 너무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청문회장에 초청된 캠벨 가족

 인준 대상자의 가족들을 청문회장에 초청하는 것은 미 상원의 오랜 전통이다.
 지난 4월 열린 고홍주(헤럴드 고) 미 국무부 법률고문(차관보급) 지명자의 인준 청문회장에도 그의 어머니인 전혜성 박사 등 가족들이 방청석에서 고 지명자를 격려했다. 한국계인 리아 서 내무부 정책관리 차관보 지명자 인준 청문회에서도 그랬다. 리아 서 지명자는 가족들을 일일이 소개한 뒤 “지금의 나를 있게 한 이들”이라고 자랑스러워했다.

 가족들이 청문회에 참석했다고 해서 미 의회의 청문회가 통과의례로 끝나지는 않았다.

 캠벨 청문회만 해도 그가 진보 성향의 싱크탱크인 신미국안보센터(CNAS)를 설립, 운영하는 과정에서 미 기업체로부터 받은 후원금 문제가 도마 위에 올랐다. 그는 빌 클린턴 행정부에서 국방부 아태담당 부차관보까지 지낸 뒤 공화당으로 정권이 바뀌자 CNAS를 만들었다. 지난 대선 때는 버락 오바마 후보의 외교 정책을 자문했고 오바마 정권 인수위에서 활동했다. 화려한 이력이 말해주듯, 그는 명실상부한 오바마 정부의 실세다. 의원들은 캠벨 지명자가 이런 영향력을 CNAS 후원금 모금 과정에서 악용하지 않았는지를 따져 물었다.
 특히 오바마 정부 들어 기업체들의 연구 용역이 CNAS에 대거 몰린 경위 등을 집중적으로 추궁했다. 검증 과정에선 여야가 따로 없었다. 캠벨 지명자는 준비한 자료를 제시하며 “규모에 비해선 큰 액수가 아니며 정부 윤리 규정에 어긋나지 않게 처리했다”고 답변했다. 맥락 없이 호통을 치는 의원도 없었고, 부당하게 모욕을 가하는 의원도 없었다. 그들은 묻고 대답할 뿐이었다.
 
 한국 국회의 인사청문회는 여야가 검사와 변호사로 갈려 공방을 벌이는 형사법정을 방불케 한다. 오랫동안 한국의 전투적인 인사청문 분위기에 길들여진 기자에게 미 의회청문회는 다소 생경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미 의회 관계자는 “청문회장의 신사적인 모습과는 달리 검증 과정은 지명자의 대학 시절 주차 위반 전력까지 파헤칠 정도로 철저하다”고 전했다.
  캠벨 지명자만 해도 오바마 정부 출범 직후 동아태 차관보로 내정됐으나 CNAS 후원금 모금 과정 의혹 등을 스크린하느라 인준 요청이 수개월 지체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관계자는 “의혹이 해소되지 않은 지명자는 지명 철회 등을 통해 깨끗이 물러나는 것도 미국 청문 과정의 관행”이라고 덧붙였다. 가족을 초청한 가운데 마치 지명 축하 행사를 치르듯 인사청문이 진행된 것은 겉모습일 뿐, 그 이면엔 철저한 검증 과정과 지명자들의 책임 있는 처신이 전제돼 있다는 것이다.

 의혹투성이 인사를 버젓이 고위직에 지명하는 정부, 의혹이 사실로 드러났는데도 변명으로 일관하는 지명자, 당리당략을 국익에 앞세우는 청문위원들이 존재하는 한, 가족을 초청한 가운데 축하 행사처럼 진행되는 인사청문회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이명박 대통령이 쇄신 인사를 단행할 것이란 보도가 나온다. 이번엔 가족들 앞에서도 부끄럽지 않은 지명자들이 인사청문회장에 서길 기대한다.

조남규 워싱턴 특파원

 

+아래 글은 제가 워싱턴 특파원 시절 워싱턴 입법관으로 활동했던 임재주 국회 감사관이 2012년 펴낸 '국회에서 바라본 미국 의회'에서 발췌한 내용입니다.

<미 의회 인준청문회>

 인준청문회(confirmation hearing)는 대통령이 지명하고 의회가 인준하는 고위직 인사의 사생활 문제와 재산형성 과정, 과거 전력과 성향 등을 조사하여 임명될 공직에 적합한지를 검증한다. 상원의 16개 상임위는 각각 별도의 기준을 가지고 인준청문회를 개최한다. 서면조사와 청문회를 병행하는데 청문회는 횟수에 제한 없이 이뤄질 수 있다.

연방헌법 제2조에서 대통령은 상원의 '권고와 동의'(advice and consent)를 얻어 고위직 정부관리를 임명한다고 규정하고 있기 때문에 인준청문회는 상원에서만 실시된다. 상원의 위원회에서 인준청문회를 반드시 열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장관이나 대법관 등과 같이 고위직 임명에 대해서는 심도 있는 청문회를 개최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 외에도 규제위원회 위원, 대사, 연방법원 판사, 연방법무부 검사 등 약 2000여 자리에 대해서도 청문회를 실시하고 있다. 그런데 대통령이 요청하는 임명동의안의 대략 99%는 요청한 대로 승인하는 것이 일반적이며, 청문회를 거치지 않고 만장일치로 통과시키는 경우도 많다.

인준청문회 절차는 먼저 대통령이 백악관 인사실(Office of Presidential Personnel)을 통해 여러 대상자를 선별하여 연방수사국(FBI), 국세청(IRS), 공직윤리실(Office of Government Ethics) 등의 검증을 통과한 공직후보자를 상원에 추천한다. 이어서 상원에서는 소관위원회에 회부하여 검토하도록 하며 그 중 일부 공직에 대해 청문회를 개최한다. 본회의에서 심사대상이 되려면 위원회에서 긍정적인 보고서가 올라와야 한다.

상원의원 1명이라도 임명동의안에 대해 반대표시를 한다면 본회의 안건에 오르는 것은 쉽지 않다. 상원의원은 필리버스터(filibuster,합법적 의사진행방해)처럼 명백하게 의사진행을 지연시키면서 임명을 막을 수 있고, '보류'(hold)를 활용해서 자신의 당 지도부에 해당 후보자의 임명을 반대한다는 의사표시를 전달하기만 해도 그 안건의 통과를 막을 수 있다.(애리조나주 공화당 소속 존 카일 상원의원이 2011년 버락 오바마 행정부의 대북정책이 유약하다는 이유를 들어 성 김 주한 미국대사 인준을 보류, 성 김 인준안이 수 개월 지체된 것이 대표적 사례)

각 주의 주요 공직자가 임명을 받고자 할 때는 그 공직자의 출신 주의 집권당 소속 상원의원들로부터 사전에 승인을 받고 있으며 여타 의원들도 그들의 결정에 따르는 경향이 있다. 이 처럼 상원의원은 자신의 출신주의 공직에 대한 임명동의안에 대해 관례적으로 사실상 거부권을 행사하고 있다. 이를 '상원 예우'(senatorial courtesy)라고 한다. 특히 사법위원회는 연방법관 후보자에 대해서 법관이 근무하게 될 주의 상원의원 2명에게 의견을 물어 의원들이 '승인', '거부', 또는 '의견없음' 중 하나를 종이에 적어 상자안에 넣은 뒤 사법위원회에 보내오면 이 것을 중요한 판단 요인으로 활용한다.(blue slip)

백악관은 인준청문회를 통과하기 위해 정식지명에 앞서 지명 대상 후보자들에 대한 철저한 사전 검증절차를 거친다. 그래서 흔히 인준청문회에서 논란을 낳을 만한 인사들은 인준청문회 대상이 아닌 자리에 기용한다. 또 인준청문회 대상이 된 후보자가 상원 인준이 어렵다고 판단하는 경우 미리 후보직을 사퇴하기 때문에 실제로 인준이 거부되는 사례는 많지 않다.

거부된 사례로, 제100대 의회에서 민주당이 다수인 상원 사법위원회에서 연방대법원 대법관에 지명된 보크(Robert Bork)의 임명 동의안이 거부되었고, 제101대 의회에서는 존 타원(John Tower) 상원의원의 국방부 장관 임명동의안이 거부됐으며, 제103대 의회에서도 베어드(Z. Baird) 법무부장관 후보의 지명이 철회되었다. 1789년 연방의회가 문을 연 이후 지금까지 158명의 연방대법관 후보자 중 36명이 인준을 받지 못했고 수 백 명의 장관 후보자 중 15명이 인준을 거부당했다. 제112대 의회에서는 오바마 대통령이 건강보험개혁을 위해 임명한 도널드 버윅 메디케어 및 메디케이드 서비스센터(CMS) 소장이 영국식 국영 의료서비스를 지지한다는 이유로 공화당이 반대해 결국 인준을 받지 못하고 사퇴했다.

상원 인준청문회는 후보자의 능력을 검증할 수 있는 훌륭한 기회라는 것은 분명하나 진행 속도가 너무 느리고 복잡하여 능력이 있는 대상자들이 공직을 피하는 이유가 될 수 있다. 또 상원의원 1명이라도 반대하면 행정부가 임명한 고위공직자에 대한 인준 절차가 장기간 정체된다.

그래서 상원에서는 인준청문회 절차를 간소화하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예를 들어 2011년 3월에 발의되었던 공직임명절차 간소화법안(Presidential Appointment Efficiency and Streaming Act)에서는 상원 인준을 거쳐야하는 공직을 줄이고 나머지는 대통령이 바로 임명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하지만 실제로 인준 절차가 바뀌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최근 게시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