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변화 법안’으로 알려진 ‘미국 청정에너지 및 안전보장법안’(HR 2454)이 최근 미 하원을 통과했다.
한국의 수출산업에도 영향을 미치는 법안인 까닭에 관심 있게 지켜봤다. 그러나 결과는 찬성 219표, 반대 212표로 다소 의외였다. 찬성표가 오바마 대통령을 배출한 민주당의 투표 참가 의원 수(256명)보다 적었다. 집계 결과 민주당 의원 중 44명이 반대표를 던진 것으로 나타났다. 이 법안으로 ‘러스트 벨트’(미 중서부 공업지대) 지역 출신 의원들은 큰 타격을 받았다. 법안은 부결될 뻔 했으나 상대당인 공화당 의원 8명이 오바마 대통령 편에 가담해 극적으로 가결됐다. 한편의 드라마를 보는 듯했다.
무엇보다 오바마 대통령을 정점으로 한 행정부의 대국민·의회 설득 노력이 돋보였다.
오바마 대통령이 백악관 진용을 짜면서 의회 변수를 우선 고려한 점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헨리 왁스먼 미 하원 에너지·상무위 위원장을 25년 동안 보좌한 최측근 필 슈릴로가 백악관 의회국장으로 발탁된 직후 왁스먼 위원장이 기후변화 법안 발의를 주도한 것은 우연의 일치가 아니다. 건강보험 개혁 법안 소관 상임위(재정위) 위원장인 막스 바커스 상원 의원이 친아들처럼 대했다는 그의 비서실장 출신 짐 메시나가 백악관 부실장이 된 것도 마찬가지다. 법안 심의 과정에서 하원 의원 출신인 람 이매뉴얼 백악관 비서실장과 오바마 대통령의 에너지·환경 분야 자문역인 캐럴 브라우너 등은 반대파 의원 설득을 위해 하원 레이번 빌딩의 의원 사무실을 문턱이 닳도록 들락거렸다.
또 하나, 눈길을 끈 대목은 오바마 행정부와 미 의회가 보인 ‘타협과 절충’의 자세였다.
공화당은 시작부터 법안에 반대했다. 온실가스 규제가 도입되면 에너지 가격 등이 상승해 국민의 부담이 증가하고 제조업에 과도한 규제가 가해진다는 논리에서였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투표에 참가한 공화당 의원 176명 중 168명이 반대표를 던졌다. 이 논리에 민주당 내 친기업 성향의 중도 보수계 의원들과 ‘러스트 벨트’ 의원들이 가세했다. 오바마 정부가 당초 의도한 기후변화 법안을 밀어붙일 경우, 하원 본회의에서 부결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 전개됐다. 그러자 오바마 정부는 기업이 허용치를 초과한 온실가스 전부에 대한 배출권을 구매해야 한다는 기존 입장을 접고 기업이 배출량의 85%는 무상으로 부여받되 나머지 15%는 경쟁입찰을 통해 구입하도록 하는 절충안을 수용했다. 이런 양보가 없었다면 법안은 상임위도 통과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미 워싱턴포스트는 분석했다.
미 하원은 법안의 본회의 표결 직전, ‘러스트 벨트’ 의원들의 표를 얻기 위해 미 대통령이 온실가스 감축 노력을 하지 않는 국가의 생산품에 관세를 부과하도록 의무화한 조항을 삽입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생각이 달랐으나 의회의 조율 과정에 직접 개입하지 않았다. 오바마 대통령은 처음부터 기본 원칙만 정한 뒤 세부 사항은 의회가 자율적으로 조율하도록 일임했다.
민주당이나 공화당 의원 공히 소신껏 투표하고 당 지도부 방침과 달리 투표했다고 해서 비난받지 않는 분위기도 인상적이었다.
오바마 대통령은 자신이 사활을 걸고 추진해온 핵심 법안에 반대표를 던진 민주당 의원 44명이 내심 야속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오바마 대통령은 투표 결과를 전해들은 뒤 “지역구 사정상 어쩔 수 없이 반대표를 던진 민주당 의원들을 이해 한다”고 밝혔다. 민주당이나 공화당 지도부 그 어느 누구도 당 지도부 노선과 다른 선택을 한 소속 의원들을 비판하지 않았다. 투표는 자신을 뽑아준 지역구민을 대리해 행사하는 신성한 권리라는 인식이 미 의회 내에선 불문율로 확립돼 있다. 민주당이 공화당 의원들의 도움으로 법안을 가결하고, 공화당은 소수당임에도 불구하고 민주당의 반대표에 힘입어 상원에서 법안을 부결할 수 있는 동력을 확보한 것도 이런 ‘교차 투표’(Cross voting) 관행 덕분이랄 수 있다.
한국 국회가 여야로 편을 갈라 멱살잡이를 하고 있는 지금도, 미 대통령과 의회, 정당 지도부와 소속 의원들은 다양한 대화 채널을 가동해 상충되는 이해를 절충해나가고 있다.
조남규 워싱턴 특파원
*아래 글은 중앙일보가 2014년 10월13일,14일자에 '당론 늪에서 정치 구하자'는 문패를 달고 보도한 기사.
"나는 헌법을 어겼다"
대한민국은 당론공화국이다. 때론 이념, 때론 선거…. 명분은 그때그때 달랐지만 당론이 정해지면 민생이고, 국익이고 없다. 국회의원들은 하수인이 됐다. 가까이는 세월호특별법 논쟁이 그랬고, 멀리는 세종시 수정안 논쟁이 그랬다. 당론 정치는 대한민국 정치의 깊고 넓은 늪이다. 익명에 숨었지만 여야 4인의 고백은 그 늪의 실체를 이렇게 증언했다.
"‘국회의원은 국가 이익을 우선하여 양심에 따라 직무를 행한다.’(헌법 제46조 2항)
‘의원은 소속 정당의 의사에 기속되지 아니하고 양심에 따라 투표한다.’(국회법 제114조2)
우리는 헌법을 어겼다. 국회법을 지키지 못했다. 하지만 우리는 오늘도 법을 만든다.”
#1. 2013년 11월 18일 국회 본회의장
괜히 일어섰구나. 후회가 밀려왔다. 앉아 있는 의원들의 눈총이 셔츠 속까지 파고드는 것 같다. 머릿속에는 3일 전 의원총회 장면이 떠올랐다.
“대통령에 대한 예의? 솔직히 (박근혜) 대통령 시정연설은 참석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차라리 모두 검은색 옷을 입고 참석합시다.”
여기저기서 나오는 고성. 머리가 지끈거렸다. 이건 좀 아닌데…. 이런 것도 당론으로 정해야 하나. “외국 원수가 와도 기립하고 예의를 갖추는데 조금 지나친 건 아닐지….” ”무슨 소리예요? 노무현 대통령 때 저쪽(한나라당)은 어떻게 했는데요?”
노 전 대통령 당시 청와대 정무수석이었던 유인태 의원이 나섰다. “노 대통령이 왔을 때 한나라당은 5명만 일어났지만 원래 국가원수가 국회에 올 땐 일어나는 거다. 자유의사에 맡기자.” 하지만 의총 분위기는 유 의원의 말과는 반대로 흘렀다.
생각을 마친 나는 엉거주춤 앉았다. 박수까지 칠 용기는 없었다. 대학 제자들에게 ‘국회의원 각자가 헌법기관’이라고 가르쳤던 게 떠올라 쓴웃음이 났다.
#2. 2013년 7월 2일 국회 본회의장
“의사일정 제97항 2007년 제2차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녹음기록물 등 국가기록원 보관 자료 제출 요구안을 상정합니다.”
남북 정상회담 회의록을 공개하라니…. 아무리 생각해봐도 명분도 실리도 없다. 국회 본회의장에 앉아 있던 나는 한숨이 나왔다. 곧 투표가 시작될 참이다. 얼마 전 “정상회담 결과는 비밀을 지키는 게 원칙인데… 국익에 불행한 일”이라며 한숨 쉬던 중진 의원이 떠올랐다. 둘러보니 그는 표결에 아예 불참했다. 의총에서 정권 실세인 윤상현 원내수석부대표는 ‘찬성’을 강제적 당론으로 정하는 데 앞장섰다. 의원들은 서로 눈치만 봤다. 반대했다간 청와대에 제대로 찍힐 게 뻔하다.
세종시 수정안, 장외투쟁 … 당론 나오면 무조건 따라
국회의원이 개별적인 헌법기관이라지만 당론이 정해지면 따르는 것도 당원의 의무 아닌가. 따지고 보면 당을 통해 정치를 하는 건데…. 나는 이렇게 마음을 다잡았다. 손가락은 ‘찬성’ 버튼으로 옮겨졌다.
#3. 2014년 8월 25일 국회 본관 246호실
‘장내외 병행투쟁을 실시한다’. 당론이 정해졌다. 다시 거리로 나간다. 박영선 비상대책위원장의 낯빛은 어두워 보였다. 협상안을 연거푸 거부한 강경파가 주도권을 잡았다.
“비대위원회는 그야말로 비상기구다. 권한을 인정해 줘야 한다”거나 “거리에 나가봐야 얻는 건 떨어지는 지지율뿐”이라는 의견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세월호 유가족들이 동의하지 않는다”는 말은 이제 신성불가침이 됐다. 거리로 나가자고 적극 주장한 건 10여 명의 의원. 수는 얼마 안 되지만 ‘세월호 유가족’이라는 말에 토를 달기가 어려웠다. 반대했다간 집중포화를 맞을 판이었다. ‘결국 아무것도 얻지 못할 텐데…’. 이렇게 생각하면서도 나는 거리로 나가는 수밖에 없었다.
#4. 2010년 6월
등에선 식은땀이 났다. 동료 의원들의 수군거림이 들려왔다. 원고를 집어던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하지만 얼마 전 전화로 “똑바로 하라”며 질책하던 정권 실세 A의 얼굴이 떠올랐다. “동료 의원 여러분, 행정수도 이전은….”
사실 세종시 원안도 수정안도 뭐가 좋고 나쁘다는 건지 잘 모르겠다. 서울·충청권 외에는 제대로 따져본 의원이 없을 게다. 하지만 청와대가 결정했다는데 뭘 어떻게 하겠나. 게다가 ‘세종시 수정안 찬성을 당론으로 만들라’는 임무까지 주어졌다. 반발심도 생겼지만 A의 위세에 눌려 한마디 항변도 못했다. 나는 그렇게 A가 건네준 원고를 읽어내려 갔다.
여당은 청와대, 야당은 강경파 … 소수가 독점한 당론
‘정당(政黨)=동일한 정치적 견해를 가진 사람들이 정권의 획득·유지를 통해 정치적 견해를 실현하려 만든 단체’.
한민족문화대백과는 정당을 이렇게 정의한다. 같은 견해를 가진 사람들의 자발적 모임인 만큼, 이들의 공통된 의견인 당론(黨論)은 자연스러워 보인다. 미국 등 의회 선진국에도 당론은 있다. 영국이나 독일 등 집권당이 곧 정부인 내각제 국가에선 당론에 대한 기율도 강한 편이다.
그러나 한국의 당론은 엄밀히 말해 당론이 아니다. 여당 지도부나 청와대, 또는 야당 강경파 등 소수가 독과점하고 있는 ‘독과점당론’이다. 서강대 이현우(정치학) 교수는 “집권 여당에선 대통령의 뜻이 곧 당론이 되는 등 상향식이 아닌, 소수가 독과점하는 게 우리의 당론 문화”라며 “과거 공천권과 정치자금이라는 무기로 당론을 쥐락펴락했던 관성이 남아 있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지금은 이런 ‘당근’이 많이 약해져 지도부 입장에서도 대부분 ‘권고적 당론’에 그친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우리 정치 문화에선 권고적 당론 역시 강제 당론과 비슷한 효력이 있다. 익명을 요구한 새정치민주연합의 한 초선 의원은 “(본회의장에선) 실시간으로 찬반 투표 여부가 모니터에 뜨기 때문에 권고가 곧 강제”라고 말했다. 본회의에서 처리되는 모든 안건을 속속들이 알기 힘든 국회의원들은 하향식으로 내려온 당론에 맞춰 투표를 하기도 한다.
의회주의자인 조병옥 박사의 아들로 현 야권에서 7선을 지낸 조순형 전 의원은 “당론을 정하는 과정에서 일부 강경파가 분위기를 이끌면 다른 생각이 있더라도 침묵하는 게 현 야권”이라며 “강경파들의 의견이 곧 당론이 되고 다수 의견이 되는 게 문제”라고 말했다. 지역 유권자들의 여론 수렴에서부터 시작하는 미국의 당론 형성 과정과 본질적으로 다른 점이다.
노무현 정부에서 청와대 정책실장을 지낸 국민대 김병준(행정학) 교수는 “여론 수렴 등 절차를 거치지 않고 소수에게서 튀어나온 당론은 질이 문제가 된다. 일관성 없이 시류에 따라 움직이는 당론의 피해자는 결국 국민”이라고 말했다.
정작 당론이 필요한 경우 눈을 감아 버리는 경우도 많다. 지난 9월 3일 본회의에서 부결된 새누리당 송광호(4선·제천-단양) 의원 체포동의안이 대표적이다. 당시 여야는 세월호특별법을 두고 당론을 앞세워 치열하게 맞붙었지만, 이날 표결에선 당론을 정하지 않았다. 결국 비밀투표로 진행된 표결에 223명이 참여해 찬성 73, 반대 118, 기권 8, 무효 24로 부결시켰다. “방탄국회는 없다”고 공언했던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는 "나는 찬성표를 던졌다”면서도 고개를 숙였다. 박영선 당시 새정치연합 원내대표는 부결 직후 “새누리당이 두 얼굴을 가진 정당이라는 점을 보여주는 한 사례”라고 비판했지만, 야당에서도 최소 14명의 의원이 반대하거나 무효·기권을 선택했다. 옛 민주당 출신인 민영삼 포커스컴퍼니 원장은 "체포동의안은 국민 여론을 의식해 당론을 정해야 하는 사안이지만 당론 없이 투표해 다시 방탄국회라는 비판을 받게 됐다”고 말했다.
공무원연금 개혁을 둘러싼 최근 새누리당의 태도도 마찬가지다. 새누리당 경제혁신특별위원회는 연금 납입액을 43%가량 올리고 수령액은 34% 낮추는 ‘더 내고 덜 받는’ 방식의 개혁안을 내놨다. 그러나 공무원 노조가 거세게 반발하고, 일부 의원에게 항의가 빗발치자 새누리당은 지난달 29일 열린 당·정·청 회의에서 “연금 개혁은 안전행정부가 주도하는 게 맞다”며 연금 수혜자인 공무원에게 개혁을 떠넘겼다. 용인대 최창렬(교양학부) 교수는 “공무원 개혁안처럼 특정 의원이 부각될 경우 정치적 부담이 커지는 사안에 대해선 오히려 당이 짊어지고 당론으로 채택해야 한다”고 말했다.
단통법, 당론 투쟁에 묻혀 졸속 처리 … 국민만 피해
한국의 당론정치가 무서운 건 블랙홀이라서다. 한 번 매몰되면 민생과 국익까지도 내팽개친다. 네티즌들로부터 ‘단순히 통신사들만을 위한 법’으로 불리는 단말기유통구조개선법(단통법)도 당론 정치의 부산물이다.
지난 4월 30일 국회 본관 627호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미방위) 전체회의실. 정부 요청에 따라 단통법을 대표 발의한 새누리당 조해진 의원이 “보조금 상한제를 3년간 한시적으로 실시한다”는 등 법안 내용을 간략히 설명했다. 한선교 미방위원장이 말을 이었다.
▶한 위원장=“(법안) 제목에 이견 있나.”
▶일부 위원=“없다.”
▶한 위원장=“1조부터 5조까지의 조문에 이견 있나.”
▶일부 위원=“없다.”
단통법은 이런 식으로 다른 131개 안건과 함께 처리됐다. 미방위는 오후 3시5분에 개의해 4시33분에 산회했다. 88분 동안 132건을 처리했다. 5월 2일 본회의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단통법 등 6건 일괄 상정’→‘법안 설명’→‘전자투표’를 거쳐 재석 215인 중 찬성 213인(기권 2인)으로 통과됐다. 한국은 휴대전화 가입자 수가 5600만 명으로 인구보다 많다. 그런 만큼 법으로 인한 파장이 큰데도 국회 표결 결과는 반대 토론도, 반대표도 없었다.
사실 단통법이 발의된 건 지난해 5월이다. 발의 초기만 해도 두 차례 공청회를 여는 등 절차를 밟았다. 하지만 그 후론 1년 가까이 법안이 방치됐다. 법안심사소위가 두 차례 열렸지만 “연간 가구당 50만~60만원 절약효과가 있다”(윤종록 미래부 2차관)는 정부 측 설명만 듣는 정도였다.
이 기간 동안 여야는 치열한 당론 투쟁을 벌였다. 미방위는 KBS 사장 인사청문회 실시와 민영방송사에 노사 동수의 편성위원회를 설치하는 방송법 개정안을 두고 싸웠다. 그뿐만이 아니다. 국가정보원 대선 개입 의혹 사건 여파로 야당은 장외투쟁을 당론으로 정하고 지난해 8월 서울광장에 천막을 쳤다. 계속되는 대립 속에 세월호 참사(4월 16일)가 터졌다. 지방선거(6월 4일)를 앞두고 미방위가 ‘식물 상임위’라는 오명을 얻자 19대 국회 전반기 마지막에 단통법을 비롯한 법안들은 무더기로 처리됐다. 새누리당의 한 미방위원은 “당론 싸움 때문에 여야 의원들이 모여 법안소위 한 번 제대로 열지 못했다”며 “충분한 논의를 못해 단통법의 부작용과 후폭풍을 예상하지 못했다”고 토로했다.
사회안전망의 구멍을 메우기 위한 기초생활보장법 개정안 처리가 지연되고 있는 것도 당론 다툼 때문이다. 지난 2월 ‘송파 세 모녀 자살사건’이 벌어졌을 때만 해도 정치권은 앞다퉈 법안 처리를 약속했다. 경제력이 없는 자식이 부양의무자인 경우 부모와 자식이 모두 국가의 도움을 받지 못하는 기초생활보장법의 문제점을 고치겠다고 했다. 그 결과 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은 지난해 5월과 지난 3월 각각 개정안을 발의했다. 두 법안은 사실 크게 다르지 않다. 부양의무자 범위를 정하는 방식만 다르다. 새누리당은 대통령령으로 한 반면 새정치연합은 일용근로자를 부양의무자에서 제외하는 등 아예 법안에 명문화했다. 다만 야당 안이 재정 부담을 더 늘리는 정도의 차이다. 문제는 당론이었다. 새누리당 당론은 동시에 정부 안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수차례 개정안 처리를 촉구했다. 새정치연합 안은 민주당과 새정치연합이 지난 3월 합당한 뒤 내놓은 ‘1호 법안’이다. 안철수·김한길 당시 공동대표를 비롯한 129명 전원의 찬성으로 발의됐다. 내용이 비슷한데도 ‘박근혜법’ 대 ‘김한길·안철수법’이란 꼬리표가 달리다 보니 타협이 있을 수 없었다.
복지위는 지난 2월 한 차례 법안심사소위를 열었을 뿐이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기초생활보장법 대상자가 표의 위력이 작은 극빈층이다 보니 정치권이 관심도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당론 대립은 하루하루 생활이 어려운 수혜자들을 더 빈곤으로 내몰고 있다. 전산시스템 개편 등 준비기간만 6개월이 걸려 지금 당장 개정안을 처리해도 내년 4월이 돼야 돈이 지급된다. 하지만 여야의 당론 다툼 속에 법안 처리가 미뤄지다 보니 올해 10~12월 예산 2300억원과 내년 1~3월 예산안(잠정치) 2700억원 등 최소 5000억원이 37만 명(올해 기준)의 수급자에게 돌아가지 않고 예산 불용액으로 묶이게 됐다.
새정치연합의 한 의원은 “이런 사정을 만일 유권자인 국민이 속속들이 안다면 민란이 일어날 판”이라며 “현재의 당론정치 구조에선 국회의원은 300분의 1 대접도 제대로 못 받고 있다”고 자조했다. 동국대 박명호(정치학) 교수는 “당론이 대립돼 여야가 싸우고 법안을 제때 처리하지 않으면 결국 피해자는 국민이 된다”며 “각 정당이 당론으로 처리할 부분을 최소화하고 의원 개인의 양심에 맡기는 비율을 높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미국선 의원들이 결정 … 상향식 당론, 강제성 없고 주로 지역이해가 우선
미국 의회에도 당론이 있을까. 정답은 “있다”다. 그러나 한국의 당론과 미국의 당론은 다르다는 게 전문가들의 얘기다.
서강대 이현우(정치학) 교수는 “미국은 일괄투표를 강요하는 우리 식 당론이 존재하지 않는다”며 “권고적 당론이랄 수 있는 가이드라인 정도”라고 설명했다. 강제성이 없으니 당론을 따르지 않았다고 해서 출당하거나 당원권을 정지시키는 등의 제재는 없다. 이 교수는 “여야가 맞부딪쳤을 때 힘을 과시하기 위해 소속 의원들의 자유의사를 무시하는 우리완 전혀 경우가 다르다”며 “우리 국회에선 16대 국회부터 기명투표제도가 도입돼 권고적 당론이라도 당론을 거부하기가 더 어려워졌다”고 말했다.
당론을 정하는 절차도 한국과 다르다. 미 공화당의 경우 연방 하원은 매주 한 차례 비공개 의원총회를 연다. 주로 화요일이나 수요일에 열리는 의원총회에선 주말 동안 의원들이 지역구에서 접한 민심이 주로 논의된다. 같은 문제의식을 공유하는 의원이 많을 경우 당론 채택 여부를 논의한다. 상향식 당론인 셈이다. 1992년부터 6년간 연방 하원의원(3선)을 지낸 김창준 미래한미재단 이사장은 이렇게 전했다. “당시 캘리포니아에선 멕시코인 등의 불법이민 관련 민원이 많았다. 의원 중 일부가 이 문제를 제기하자, 다른 지역은 어떤지 묻더라. 비슷한 문제를 지적한 이들이 30여 명 되자 불법이민에 대해 엄정 대처하는 것을 당론으로 정할지 여부를 따졌다. 반대하는 이들이 없었고, 당론으로 채택한 직후 당의 싱크탱크인 헤리티지재단에 자료 조사 등을 의뢰하더라.”
당론이 정해져도 반드시 따라야 하는 건 아니다. 경희대 서정건(정치학) 교수는 “미국에선 당락이 아슬아슬한, 소위 스윙스테이트 지역일수록 당론을 거부하는 경향이 있다”며 “지나치게 한쪽 입장을 내세울 경우 중도파 지지를 잃을뿐더러 지역 이해와 의원의 소신을 지키는 게 재선의 밑거름이란 인식 때문”이라고 말했다. 미국에서도 이슈에 따라 정당별 입장이 갈리는 경우가 있다. 기후변화 협약이나 오바마케어(건강보험개혁법) 등이 대표적이다. 중앙대 손병권(정치학) 교수는 “이런 경우라도 당 지도부가 분위기를 몰아가는 게 아니라 각 정당에 모인 의원들의 소신과 일치했기 때문에 당론이 된다”고 설명했다.
의총만 하면 대한민국 쪼개졌다
청와대나 당 지도부의 ‘지시’를 당론으로 만드는 곳. 일부 지지층의 입맛에 맞는 주장을 펴는 소수 강경파가 온건파들을 “변절자” 또는 “패배자”로 위축시킨 채 자신들의 주장을 당론으로 밀어붙이는 곳. 21세기판 붕당(朋黨, 파벌)정치의 온상은 의원총회다. 세월호특별법을 둘러싼 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의 논쟁은 바로 이 의원총회를 통해 확대재생산됐다.
두 당은 7월 11일 세월호특별법 협상을 시작해 9월 30일 합의에 이르기까지 82일간 국회를 공전시켰다. 그 사이 새누리당과 새정치연합은 각각 11차례와 17차례의 의총을 열었다. 언뜻 보면 치열하게 고민한 시간 같다. 속살은 그렇지 않았다.
#8월 19일 새누리당 의원총회. 2차 합의안을 만든 뒤 이완구 원내대표가 등장했다. 의총은 박수로 시작됐다.
▶이 원내대표=“합의가 됐다. (중략)제가 절할 테니 받아달라.”
▶김진태 의원=“잠깐만요. (세월호 특검후보 추천위원 중 여당 몫 2명을 유가족에게 사전동의 받기로 했다는 합의안에 대해) 동의 대신 협의로 하면 안 되나.”
▶김무성 대표=“우린 여당이다. 우리가 풀 책임이 있다.”
▶김 의원=“저는 반대다.”
▶김 대표=“(대꾸 없이)큰 박수로 추인하자.”
#8월 25일 새정치연합 비공개 의원총회. 새누리당이 ‘여야+유가족 3자 협의체’ 구성에 반대한다는 소식이 들리자 소집됐다.
▶강기정 의원=“결론부터 말하면 투쟁해선 안 된다.”
▶한 남성 의원=“투쟁해야 된다. 위기를 찬스로 바꿔야 한다.”
▶우상호 의원=“왜 새누리당이 우리를 비판하는지 생각해봐야 한다.”
▶은수미 의원=“왜 우리가 박근혜 대통령 대신 욕을 먹어야 하나. 최선은 지도부가 그냥 (강경론으로) 가는 거다.”
양당의 의총은 매번 이렇게 전개됐다. 새누리당 의총은 ①원내대표의 합의안 보고→②지도부가 주도한 합의안 추인의 순으로 진행됐다. 반면 새정치연합은 ①원내대표의 합의안 보고→②강경파 중심의 강경당론 고집→③합의안 뒤집기→④장외투쟁 등 국회 파행 등의 순이었다. 새누리당 의총이 지도부의 의견을 하향식으로 전파하는 수단이었다면 새정치연합 의총은 강경파의 의견을 거꾸로 지도부에 강요하는 수단이었다.
양당 모두 온건론이나 건전한 토론을 유도하는 절차는 존재하지 않았다. 의총만 열리면 타협 없는 여야의 극한 대립이 반복됐고 민심은 둘로 쪼개졌다.
그러는 사이 한국은행은 올해 성장률 전망을 당초 4.0%에서 3.8%로 낮춘 데 이어 다시 3% 중반대로 내리겠다고 예고했다. ‘최경환 효과’에 7월 말 2100을 눈앞에 뒀던 코스피지수는 70여 일 만인 13일 1927.21까지 내려앉았다. 손병권 중앙대(정치학) 교수는 “의원총회가 국민 여론을 당내 의견에 반영하고 설득하는 장으로 활용돼야 의회정치가 산다”고 말했다. 의원총회가 미국 의회처럼 유권자들의 민심을 듣는 자리가 돼야 한다는 의미다.
강경파 의견이 당론으로 뻥튀기 … 다수결 왜곡하는 의총
2004년 9월 5일 노무현 당시 대통령이 TV 프로그램에 출연했다. MBC ‘시사매거진 2580’이었다. 노 대통령은 “국가보안법은 한국의 부끄러운 역사의 일부분이고 지금은 쓸 수도 없는 독재시대의 낡은 유물”이라며 “그 낡은 유물은 폐기하는 게 좋겠다. 칼집에 넣어서 박물관으로 보내는 게 좋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여의도는 발칵 뒤집혔다. 현직 대통령 입에서 국가보안법(국보법) 폐지 발언이 나온 대사건이었다. 당시 여당인 열린우리당이 가만있을 리 만무였다. 나흘 뒤 의원총회가 열렸다. 강경파들이 들고 일어선 의총의 결론은 뻔했다. ‘국보법 폐지’를 당론으로 확정했다. 열린우리당 내에서조차 “국보법 폐지 당론이 이렇게 빨리 정해져선 안 되는데…”라는 우려가 나왔다.
한국 정치에서 강(强)은 늘 강(强)을 부른다. 한나라당도 맞대응에 나섰다. 의원총회가 잇따라 열렸다. 국보법 폐지안 상정을 막기 위해 한나라당은 그해 12월 법사위 회의장을 점거했다. 일부 의원이 대치 상황의 어려움을 호소했다.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대표는 의총장에서 손으로 탁자를 내리치며 “도대체 국가관이 있는 겁니까, 없는 겁니까”라고 외쳤다. 이후 여의도 정치는 당론 대 당론이 맞서는 블랙홀에 빠졌다.
이처럼 대한민국 정당의 의원총회는 소수 당론을 뻥튀기하는 역할을 해왔다. 그렇게 뻥튀기된 강경 당론은 의회민주주의를 왜곡하곤 했다.
노 대통령 발언이 나오기 전 국회 상황은 그래도 타협의 여지가 있었다. 야당인 한나라당은 국보법 폐지에는 반대했지만 ‘찬양고무죄’와 ‘불고지죄’ 등의 일부 조항을 삭제하거나 수정하는 국보법 개정에는 찬성했다.
열린우리당도 마찬가지였다. 그해 8월까지만 해도 개정에 동조하는 의견이 적지 않았다. 일부 문제 되는 조항을 고친다면 국보법의 반인권적 요소를 해소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서울신문이 8월 28일 발표한 국회의원 299명 전수조사에서 보안법 개정 의견은 146명으로 폐지 의견 117명을 앞섰다.
당시 여야 정당엔 마지막 기회가 있었다. 정기국회 종료를 하루 앞둔 12월 30일 천정배 열린우리당 원내대표와 김덕룡 한나라당 원내대표가 김원기 국회의장 주재로 열린 회담에서 국보법을 폐지하는 대신 ‘국가안전보장특별법’이라는 대체법을 만들기로 합의했다.
문제는 역시 의원총회였다. 천 원내대표가 어렵사리 합의안을 갖고 왔지만 열린우리당 강경파는 막무가내였다. “한나라당 안을 받아들이는 것은 역사와 민족에 대한 반역”(임종인 의원) 등의 강경 발언이 쏟아졌다. 합의안에 찬성하는 의견은 묻히고 말았다.
세월호특별법을 놓고 여야가 대립한 올해도 마찬가지다. 새누리당(158명)과 새정치민주연합의 온건파(15명)를 합하면 국회를 정상화해야 한다는 의견이 전체의 60%에 가까웠다. 하지만 새정치연합 의총의 결과는 늘 강경파가 지배했고, 36일간의 장외투쟁으로 국회는 개점휴업이었다.
의총을 통한 당론 결정 과정이 다수결을 왜곡할 뿐 아니라 효율성마저 잃게 만든 셈이다. 박영선 전 새정치연합 원내대표가 새누리당 이완구 원내대표와 두 번의 세월호특별법 협상안을 만들었지만 의총에서 거부된 게 단적인 예다.
1575년 동·서인 갈려 붕당정치 … 439년 지나도 못 고친 악습
민생과 국익을 외면하는 당론정치의 뿌리는 의외로 깊다.
소수가 주도한 당론 때문에 정치권이 대립했고 국익도 무시됐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이 짊어졌다. 우리 역사에는 이런 예가 적지 않다.
임진왜란이 대표적이다. 조선은 전쟁이 일어나기 전 동인과 서인에서 1명씩 선발한 통신사를 일본으로 보냈다. 심상찮은 일본을 살피라는 임무도 주어졌다. 하지만 돌아온 통신사는 당파에 따라 말이 달랐다. 정치권도 양분됐다. 치열한 토론 없이 자기 당론만 고집했다. 전쟁 준비를 제대로 할 수 없었다. 전쟁이 벌어지자 국토의 3분의 1이 폐허가 됐고, 수십만 명이 목숨을 잃었다. 당론정치의 모든 피해는 죄 없는 백성이 뒤집어썼다.
붕당(朋黨)의 시작도 국익과는 거리가 멀었다. 1575년 관료 인사권을 쥔 이조전랑에 누구를 천거하느냐는 문제를 놓고 김효원(동인)과 심효겸(서인)이 다툰 게 발단이 됐다. 이 때문에 동인과 서인으로 나뉘었다. 이른바 ‘을해당론’이라 부르는 사건이다. 439년 전이다.
이후 조선은 동인 대 서인에 뒤이어 노론·소론·남인·북인의 사색 당파 시대로 이어졌다. 송시열(노론), 유성룡(남인), 정인홍(북인) 등 영수(지도자)가 주도한 당론정치가 판을 쳤다. 같은 당파(서인)라도 중도적인 목소리(소론)보다는 강경한 목소리(노론)가 힘이 셌다. 이런 흐름은 광복 후 현대 정치사로 이어졌다.
이현우 서강대(정치학) 교수는 “우리나라 정당들은 이승만, 박정희, 3김 등 카리스마적 지도자의 리더십에 의존해 조직되다 보니 전체 의원들의 의사나 민의를 대변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고 지적했다. 손병권 중앙대(정치학) 교수도 “미국·영국·독일 등에서는 주요 이슈에 대해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이 모여 정당이 조직되고, 그 안에서 지도자가 나왔다. 당론이 만들어지는 과정도 민의와 당원의 뜻을 반영할 수밖에 없다”며 “반면 한국은 그런 과정이 생략돼 소수 지도층에 의해 당론이 악용되곤 했다”고 말했다.
한국의 의회민주주의를 고사 직전까지 몰아넣은 사건들은 ‘당론’이라는 이름으로 지도부가 강압적으로 밀어붙인 게 대부분이다.
1954년 자유당 지도부는 다수 의원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승만 당시 대통령의 장기 집권을 위한 3선 제한 철폐를 당론으로 밀어붙였다. 자유당은 국회 표결에서 개헌 정족수를 채우지 못하자 ‘사사오입’이라는 기상천외한 개념을 적용시켜 어거지로 통과시켰다. 69년 공화당도 박정희 대통령의 3선을 위해 개헌을 ‘당론’으로 밀어붙여 관철시켰다. 박 대통령은 이후 유신 개헌과 의회 해산 등의 무리수를 뒀다.
춤추는 당론 따라 기업들도 피해자
기업도 당론정치의 피해자다. 당론의 함정에 빠진 기업은 더 이상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하지 못한다.
노무현 정부에서 3년 동안 공정거래위원장을 지낸 강철규 전 위원장은 재임 당시 지주회사 전환을 통한 지배구조 개선을 대기업들에 촉구했다. SK는 정부의 이런 정책에 따라 2007년 7월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했다.
문제는 금융사인 SK증권이었다. 당시 공정거래법은 지주회사가 금융 자회사를 보유할 수 없도록 규정했다. SK는 SK증권을 매각하려 했으나 유예기간이 2년이어서 서두르진 않았다.
그러던 중 이명박 정부가 들어섰고, 2009년에 지주회사도 금융자회사를 보유할 수 있도록 공정거래법 개정안을 냈다. 매각 유예기간은 2011년까지 2년 더 연장돼 SK는 법안 통과를 기다렸다.
그러나 야당이 된 민주당(새정치민주연합의 전신)은 “대기업 특혜”라며 공정거래법 개정을 당론으로 반대했다.
재계 관계자는 “열린우리당 시절 민주당은 지주회사 전환을 촉진하는 제도 개선을 약속했지만 야당이 되자 달라졌다”고 말했다.
한나라당(새누리당 전신)은 당론으로 찬성하면서도 다른 현안에 몰두하는 바람에 협상의 돌파구를 찾지 못했다.
그러다 유예기간 4년이 지났다. 공정위는 2011년 10월 자회사를 팔지 못한 SK에 과징금 50억8500만원을 물렸다. 노무현 정부와 이명박 정부의 정책 혼선에 의해 과징금을 물게 된 SK는 소송을 제기해 2012년 8월 승소했다. 하지만 매각협상에 어려움을 겪어 경영 불확실성을 떠안아야 했다. SK는 2012년 12월이 돼서야 지주회사 소속이 아닌 SK C&C 등에 지분을 매각해 5년 동안의 혼란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지주회사로 전환한 후유증은 이어졌다. 지난 1월 통과된 외국인투자촉진법과 연계돼서다. 외촉법은 지주회사의 손자회사가 외국기업과 증손회사를 세울 때 지분 제한을 100%에서 50%로 완화했다. 올해 국정감사에서 야당은 이를 “특혜법”이라며 SK 계열사 임원을 증인으로 채택했다.
"세종시 연 4조원 비효율" 경고 무시한 당론의 비극
“세종청사 공무원들의 통근버스에만 연간 142억원….”(새누리당 유의동 의원)
“예산 46억원이 투입된 세종시 통합관사의 이용률은 10%대.”(새정치민주연합 박수현 의원)
매년 국정감사만 열리면 세종시의 비효율이 도마에 오른다. 올해 국감도 그랬다. 한국행정학회는 2009년 일찌감치 정부청사가 세종시로 이전하면 유·무형 비용이 연간 4조8000억원이나 된다고 경고했지만 당론에 빠진 한국 정치는 귀를 닫았다. 그 결과가 오늘이다. 도로 무르지도, 그렇다고 내버려 두지도 못하는 세종시의 비극이다.
‘계륵(鷄肋)’이 돼 버린 세종시는 태생부터가 정파적이었다. 대통령선거 중인 2002년 9월 노무현 당시 민주당 후보가 행정수도 이전 공약을 내건 뒤 2010년 12월 ‘행정중심복합도시 계획안’이 확정될 때까지의 100개월은 기나긴 당론 투쟁의 역사였다.
행정수도 이전 공약으로 노 전 대통령은 충청권에서 쏠쏠한 재미를 봤다. 대선 직후 행정수도 이전은 집권당인 민주당의 당론이 됐다. 야당인 한나라당도 뒤늦게 충청권 표를 의식해 숟가락을 얹었다. 문제는 수도권과 영남지역 한나라당 의원들의 반대였다. 2003년 11월 국회 본회의에선 여야 지도부가 합의한 ‘신행정수도건설특별위원회’ 구성안이 재석 179명 중 찬성 84명, 반대 70명, 기권 25명으로 부결됐다. 당론 대신 자유투표에 맡긴 결과였다.
비상이 걸린 건 야당 지도부였다. 2004년 4월 총선을 치러야 하는 한나라당 홍사덕 원내총무는 “충청권 민심을 거스르지 않는 방향으로 최대한 빨리 사태를 수습하겠다”고 했고, 의원 자유투표에 맡겼던 행정수도 이전 관련 사안을 당론으로 밀어붙였다. 당론의 힘은 위력적이었다. 2003년 12월 ‘신행정수도특별법’은 재석 194명 중 찬성 167·반대 13·기권 14표로 통과됐다.
17대 국회가 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2004년 10월 헌법재판소가 신행정수도특별법을 위헌으로 결정했다. 그러자 당시 노 대통령과 열린우리당은 행정수도 대신 행정중심복합도시를 들고 나왔다.
2005년 2월 여야 지도부는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특별법’(세종시 건설법) 처리에 합의했다. 문제는 야당인 한나라당이었다. 합의안을 추인하기 위한 의원총회는 진통의 연속이었다. 당시 수도권의 이재오 의원 등은 “사실상 수도 이전”이라며 저항했다. 박근혜 대표는 “최선을 위해 노력했고 차선을 얻었다고 본다”며 당론으로 채택할 것을 독려했다. 의총에서 결론이 안 나자 당내 표결에 부쳐 ‘찬성 46표, 반대 37표’로 ‘권고적 당론’을 채택했다. 3월 2일 세종시건설법은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 일부 의원의 찬성으로 본회의를 통과했다.
세종시는 이렇게 탄생했다. 당시 당론정치의 현장에 있었던 이들은 각 당 지도부가 당론을 앞세우는 바람에 합리적인 논의가 자리할 공간이 없었다고 회고했다. 새누리당의 경제통인 이한구(4선) 의원은 “당론을 내세운 세종시 논쟁에 정치색이 가미됐고 의원들 간에는 제대로 된 토론 한 번 못했다”며 “정파적 논리를 없애고 여야 의원들끼리 자유롭게 토론했으면 오늘날 이 상태까지 이르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특별취재팀=권호·유성운·허진·정종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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