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오노 나나미는 '로마인 이야기'에서 로마 공화정 초기,귀족이 높은 신분에 따르는 도의적 의무인 '노블레스 오블리제(Noblesse Oblige)'의 모범을 보였던 점을 높게 평가했다. 그녀는 이를 당시 로마의 정치적 안정에 이바지한 요인 가운데 하나라고 봤다. 귀족이 기득권에 안주,평민에게만 희생을 강요했다면 권리의식에 눈 뜬 평민의 거센 저항에 부닥쳐 급진적인 정치체제의 변동이 초래됐을 것이란 게 그녀의 분석이다.그러면서 그녀는 어린 후계자 한 명만을 남기고 일족 300여명이 모두 전쟁터에 나가 전사한 파비우스 가문을 들고 있다.
그로부터 대략 2000년이 흐른 지금,한국에서는 정반대의 현상이 빚어지고 있다. 군대도 안가고 세금 한 푼 안낸 이들이,로마시대라면 시민의 권리도 누릴 수 없는 이가 국민 대표가 되겠다고 앞다퉈 나서고 있다.
선거제도 도입 이후 처음으로 병역과 납세사실을 공개하도록 한 16대 총선 후보등록 결과는 밖에 내놓기 부끄러울 정도다. 등록후보 1040명 중 병역 미필은 220명,소득세 제로는 214명이었다. 병역 미필에 소득세-재산세 0원으로 3개 항목 모두 낙제점을 기록한 후보도 24명이나 됐다. 재산 규모와 재산세 신고 항목에 0이라고 써넣은 후보도 28명이었다. 국민 눈에는 가정이나 제대로 꾸려나갈 수 있는 인물인지 의심스러울 정도다.
당사자는 나름대로 이유를 대고 있지만 후보등록 내역이 신문에 실린 이후 신문사 편집국에는 거친 톤의 독자 전화가 빗발치고 있다. "세금도 안낸 사람이 의원이 돼서 국민의 혈세를 받아먹겠다는 것이냐" "군대도 못갈 정도로 결함이 있는 사람이 의원이 돼서 무슨 일을 하겠다는 거냐"는 비난이 대부분이다. 거꾸로 돌고 있는 한국의 지도층 시계는 언제쯤 똑바로 갈 것인지. <趙南奎 정치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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