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에로 소데리니(1450~1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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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렌체의 명문가 출신이었습니다.
동생 프란체스코는 추기경이 됐습니다.
성실하고 청렴한 관료로 칭송받았습니다.
그는 법의 사람이었습니다.
적군이 코 앞에 이른 상황에서도
결정을 국회의 토의에 맡길 정도로 말이죠.
특정 분파를 만들지 않았습니다.
소란스런 피렌체 정계에서
항상 중립적 태도를 견지했습니다.
어느 한 쪽을 편들어
다른 쪽과 싸우려들지 않았습니다.
피렌체가 공화국 정체였을 당시인 1502년 9월,
그는 공화국의 종신 대통령으로 선출됐습니다.
소데리니의 삶은
고건 전 총리의 역정과 닮은 데가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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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전 총리,
훌륭한 가풍(家風) 속에서 성장,
관료로 입신했습니다.
평생 '선(禪) 철학'을 궁구한 선친은
관료가 된 아들에게 '공직 3계'를 내렸다고 합니다.
첫째,파벌 만들지 말고 줄 서지 마라,
둘째,돈 받지 말라,
셋째,술 잘 먹는다고 소문내지 마라.
그는 언젠가 '첫 번째와 두 번째 계율은 잘 지켰지만,
세 번째 계율만은 제대로 지키지 못했다'고 말했습니다.
관료로서 올곧게 살아왔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박정희 정권부터 노무현 정권까지
무려 6대 정권에 걸쳐 요직에 중용됐습니다.
참여정부 초대 총리에 오른 그는,
국회의 노무현 대통령 탄핵소추안 발의로
대통령권한대행이 됐습니다.
소데리니는,
'평시라면 이상적인 지도자였을 것'(작가 시오노 나나미)입니다.
'시대와 그의 행동하는 방식이 부합하는 동안에
그와 그의 도시는 번영을 누릴 수 있었다.
그러나 후일 그가
자신의 인내와 겸손을 중단할 필요가 있는 시기에 직면했을 때,
그는 그렇게 할 수 없었다.
그러므로 그 자신의 도시와 함께 몰락하고 말았다'
마키아벨리의 평가입니다.
인간 소데리니는 훌륭했지만
지도자 소데리니는 시대상황에 부합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고 전 총리가 5월 지방선거 불개입을 천명했습니다.
열린우리당과도 민주당과도,
손 잡을 생각이 없다고 했습니다.
열린우리당 정동영 의장이
반(反) 한나라당 연대를 제안해도,
그는 응답하지 않았습니다.
지난 정동영-고건 회동에 앞서 양측은,
'참여정부의 성공을 기원한다'는 사전 합의문을 준비했으나
고 전 총리측이 꺼려 채택되지 않았다는 후문입니다.
대신 그는 '창조적 실용주의'를 외치고 있습니다.
부패한 보수세력,
무능한 개혁세력에 등을 돌린 이들이
그의 외침에 귀를 기울이고 있습니다.
이 대목이 범 여권의 대선 주자들 중,
그의 지지율이 최고인 이유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정황 속에서 그는,
우리당이 지방선거에서 깨질 때까지,
그 여파로 정치판 재편이 시작될 때까지
기다리려 한다는 관측이 나옵니다.
다른 경쟁 후보가 스스로 무너질 때를 기다리면서.
이런 태도는 마치 소데리니가,
피렌체 공화국을 무너뜨리려는 세력의 성장 속에서
우호 세력인 프랑스의 힘에만 기대어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았던 행태를 연상시킵니다.
그런데 그런 소데리니의 피렌체 공화국은 결국,
스페인과 손을 잡은 메디치가의 쿠데타로 붕괴합니다.
유리한 여건과 충분한 시간을 갖고도
힘을 키우지 않은 소데리니는,
조국 피렌체에서 추방되고
평생 피렌체 땅을 밟지못하는
운명이 됩니다.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를 창출한
민주개혁세력은 지금,
분열해있습니다.
우리당의 지방선거 참패는,
이들의 분열을 가속화시킬 것입니다.
민주개혁세력은 큰 타격을 입을 것입니다.
이때 쯤 고 전 총리는 '창조적 실용주의'의 기치를 들고
소집나팔을 불 것입니다.
그러나 의문입니다.
피와 땀을 공유하지 않은 장수의 부름에
응답할 병사가 얼마나 될 것인지.
미국의 정치학자이자 역사학자인 게리 윌스가 말했습니다.
고상한 부름이 응답받는 것이 아니라,
응답할 만한 부름이 응답받는 법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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