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이 부시감세 연장문제로 치고받던 2010년 6월1일, 미국의 국가 부채는 사상 처음으로 13조 달러대에 진입했다. 12조 달러를 넘어선 지 7개월 만에 1조 달러가 더 늘었다.
주니어 부시 정부에서 1년에 1조 달러씩 증가했던 국가 부채는 오바마 정부 들어서는 증가 속도가 두 배로 빨라졌다. ‘테러와의 전쟁’ 을 치르면서 급증한 미국의 재정적자는 금융위기 극복 과정에서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이코노미스트들은 미국 경제가 금융위기 후유증에서 벗어나 정상 궤도에 진입한 이후에도 국가부채는 지속적으로 증가할 것으로 예측했다. 장기적으로 미국 국가부채 문제는 국제 결제의 기본이 되는 기축(基軸) 통화로서의 달러 위상을 약화시킬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우려했다. 국무장관 시절 힐러리는 미 정부의 천문학적인 규모의 부채와 재정적자를 국가안보 문제로 다뤄야 한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우리는 금융 위기 와중에 정권을 인수했으며 금융 위기와 경기침체 여파로 내가 대통령 취임 선서를 하기도 전에 이미 빚더미에 올라앉았다”면서 국가부채는 전임 부시 정부 탓임을 분명히 했다. 하지만 보수 진영에서는 의료보험 개혁 등 오바마 정부의 사회주의적 정책들이 국가부채 문제의 주범이라고 공격했다.
2011년 4월이 되자 국가부채는 의회가 정한 국가부채 법정한도* (당시 14조7000억 달러)의 턱밑까지 도달했다.
티머시 가이트너 재무장관은 의회 지도부에 보낸 서한에서 “부채 상한선을 올리지 않으면 엄중한 결과가 초래될 것”이라고 비상벨을 울렸다. 가이트너 장관은 민주·공화 양당 지도부들과 사적으로 만나 디폴트가 초래할 경제적 파급 효과를 설명하며 국가부채상한 인상을 요청했다.
미 정부는 2010년에도 국가 부채 한도를 12조4000억 달러에서 현 수준으로 높였다. 당시만 해도 정부와 공화당이 티격태격하긴 했지만 부채 상한선 조정은 순조로웠다. 하지만 2010년 중간선거로 공화당이 하원을 장악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재정적자에 반대하는 티 파티 계열 의원들이 대거 당선되면서 더 이상 부채 상한을 올려서는 안된다는 기류가 강해졌기 때문이다. 미 연방정부 부채가 법정 상한을 넘어선 것은 1962년 이후 74차례에 달했지만 그때마다 미 의회는 부채 상한을 올리는 법안을 가결시켰다. 이제 부채상한 인상은 공화당의 ‘정치적 핵무기’가 됐다. 공화당 내 보수 그룹은 오바마 정부가 정부 빚을 줄이기 위한 조치로 메디케어와 메디케이드 정책을 근본적으로 수술하고, 오바마케어를 손질하지 않으면 디폴트도 불사하겠다고 배수진을 치고 나왔다.
오바마 대통령은 진보적 사회정책을 추구했지만 재정은 보수적으로 운용하려 애썼다. 오바마의 정무보좌관인 데이비드 플루프David Plouffe 는 “오바마의 몸 속에서는 ‘블루독’ Blue Dog (균형예산을 주창하는 민주당 의원 그룹)의 피가 흐른다”고 말했다. 오바마는 집권 기간 동안 진보적 어젠다를 추진하면서도 재정 적자를 줄이기 위한 노력을 병행했다.
오바마는 얼마간 양보를 해서라도 가급적 공화당과 함께 가길 원했다. 민주당 내부에서 오바마를 ‘DINO’ Democrat In Name Only (무늬만 민주당원)라고 부르며 비아냥댔을 정도였다. (반대로 무늬 만 공화당원인 정치인은 ‘RINO’ Republican In Name Only 로 부른다. 가끔 민주당 편에 서는 존 매케인 같은 의원들이다.)
오바마는 메디케어·메디케이드 예산 삭감과 국방예산 삭감, 부유층 감세 중단 등을 통해 재정적자를 줄여나가겠다는 타협안을 제시했다. 하지만 오바마 대통령의 이 같은 재정적자 감축 구상은 진보·보수 양측의 반발을 샀다. 진보 진영은 사회보장 예산 삭감을, 보수 진영은 부유층 감세 폐지를 반대했다. 양 진영의 협공을 당한 오바마가 돌파구를 마련하지 못한 채 허우적거리고 있는 사이에 미국의 국가부채는 법정 상한에 도달했다. 미 정부의 자구 노력이 한계에 도달하는 2011년 8월 초까지 정치권이 연방정부의 법정 채무한도를 올려주지 않으면 디폴트가 현실화하는 엄중한 상황이 도래한 것이다.
그런데도 정치권은 상대의 양보만 강요하면서 치킨 게임을 벌였다. 벤 버냉키 연준 의장은 “의회가 정부의 부채 한도액을 늘려주지 않으면 중대한 위기가 발생한다”며 “미국은 물론 세계 경제에도 재 앙을 가져올 수 있다”고 의회에 경고했다. 오바마 대통령과 베이너 하원의장은 막후 협상을 통해 ‘향후 10년 동안 사회보장 지출 감축 등을 통해 재정 적자를 4조 달러 줄이는 대신 부유층 감세 조치도 중단하고 정부 채무 상한도 증액하자’는 내용의 ‘빅딜’을 이뤄냈으나 공화당 우파는 ‘부유층 감세 중단’이 포함됐다는 이유로 이 협상안을 거부했다.
티 파티를 대변한 에릭 캔터 공화당 하원 원내대표가 반대파의 선봉에 섰다.
오바마 진영에서도 낸시 펠로시 민주당 하원 원내대표가 "사회보장 지출 감축은 수용할 수 없다"면서 쌍지팡이를 짚고 나섰다. 공화당 의원들에게 영향을 끼치는 보수 성향의 월스트리트저널도 4조 달러 짜리 협상안이 공화당의 선거공약 위반이라고 반대 입장을 밝혔다.
오바마는 인터넷·라디오 연설을 통해 디폴트 상황을 ‘아마겟 돈’Armageddon (엄청난 재앙)으로 비유하면서 “어느 당도 현 상황을 초래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면서 “이런 워싱턴의 행태가 국민을 화나게 만들고 있다”고 정치권을 채찍질했다. 이어 “이 문제는 보수와 진보의 문제가 아니다”면서 “협상 타결을 위해 민주당으로부터 비판을 받을 각오가 돼 있다”고도 했다. 말은 이렇게 했지만 오바마도 상원의원이던 2006년에는 주니어 부시의 국가부채한도 인상 법안에 반대표를 던졌다. 오바마는 대통령이된 후 당시 결정이 실수였다고 반성하고 “공화당 의원들은 나 같은 실수를 하지 말라”고 호소했다. 공화당이 영웅시하는 레이건도 대통령 시절 국가부채한도 증액에 반대하는 민주당 의원들을 비판했다. 결국 국가부채상한 인상을 둘러싼 백악관과 공화당의 갈등은 정쟁을 위한 정쟁이었던 것이다.
백악관과 민주당, 공화당 지도부는 날이면 날마다 무릎을 맞대고 협상을 벌였지만 나폴레옹 전쟁 직후 열렸던 빈 회의처럼 ‘회의는 춤만 추고 굴러가지 않았다’.
S&P, 무디스, 피치 등 3대 신용평가사는 미국에 대한 신용등급 강등 시점을 저울질하기 시작했다. S&P는 특히 이번에 단기적인 수습책이 나와도 장기적인 대책이 제시되지 않으면 미국의 신용등급을 낮추겠다고 경고했다.
'부시 감세 연장' 협상 때처럼 이번에도 조 바이든-미치 맥코넬 라인이 돌파구를 찾아냈다.
향후 10년 동안 재정 적자를 1조2000억 달러 줄이는 조건으로 미국의 부채상한을 2조4000억 달러 올리기로 합의했다. 오바마가 원했던 부자 감세 중단(증세) 조치는 포함하지 않기로 했다. 덧붙여 향후 10년 동안 1조2000억 달러 규모의 재정 적자를 추가 감축하는 방안을 모색하되, 이에 실패하면 매년 1100억 달러씩 10년 동안 연방 정부 지출을 자동삭감하기로 했다. 상·하원은 8월 초 이런 내용을 담은 ‘2011 예산통제법안’Budget Control Act of 2011 을 통과시켰다.
국가부채상한 인상 협상 와중에 공화당 내에서는 2012년 선거에서 백악관과 상원을 되찾아올 수 있기 때문에 오바마의 제안은 받아들일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의원들이 많았다. 베이너는 디폴트라는 중차대한 국가적 현안을 정치적 흥정거리로 만든 이런 인식에 동의하지 않았고 결과적으로 베이너가 옳았다. 2012년 선거에서 오바마는 재선에 성공했고 민주당은 상원 다수당을 지켰다.
벼랑 끝까지 갔던 정치권을 돌려세운 것은 디폴트가 초래될 경우, 정치권이 공멸할 수 있다는 위기감이었다. 국가부채인상 협상은 오바마가 증세 없이 정부지출을 줄이기로 양보하면서 극적으로 타결됐다. 하지만 정치권이 보여준 극한 대결 행태로 미국은 국가 신인도(信認度)에 큰 타격을 입었다.
S&P는 시급한 국가적 현안을 해결하지 못하는 정치권의 행태를 문제삼으면서 사상 처음으로 미 연방 정부의 신용등급을 강등시켰다.
2011년은 정쟁이 판쳤던 해로 기록됐다.
워싱턴포스트는 2011년 12월 “미 의회가 경기침체가 지속되고 국민불안이 가중되는 상황, 더욱이 사상 최초로 미국의 재정적 토대가 흔들린 상황에서 제 역할을 해내지 못했다”면서 의회를 최악의 해를 보낸 인사·기관 리스트의 맨 윗자리에 올렸다. 그해 의회가 상· 하원 합동으로 통과시킨 법안은 고작 62건에 그쳐 2009년(125건)의 절반에도 못 미쳤다. 이 같은 실적은 1991년 이후 가장 저조했다.
2010년 중간선거에서 하원 다수당 자리를 되찾은 공화당은 매번 백악관과 대립하며 오바마 대통령의 법안을 무산시켰다. 그 와중에 미국은 여러 차례 연방정부가 폐쇄되는 위기에 몰렸고, 의회가 정부부채 한도를 증액해주지 않는 바람에 미국이 디폴트 직전까지 몰리기도 했다.
국민들의 의회 지지율은 곤두박질쳤다.
갤럽 조사에서 의회 지지율은 1993년 이래 최저치인 13%를 기록했다. 갤럽이 유권자들에게 ‘현역 의원들을 다시 뽑겠느냐’고 묻자 ‘그렇다’고 답한 응답자는 20%에 불과했다. 미 의회가 일을 잘했다 고 평가한 응답자는 1%에 그쳤다.
디폴트가 초래됐다면 대공황 이후 최악의 경기침체기를 겨우 벗어난 미국 경제는 다시 극심한 침체에 빠져들었을 것이다. 2012년 선거는 현직 대통령인 오바마가 출마, 큰 이변없이 치러졌지만 국민들의 정치 불신은 더 깊어졌다. 잠복해 있던 불만은 2016년 민주, 공화당 대선 후보 경선에서 폭발했다.
*국가부채 법정한도란?
의회가 법으로 정해놓은 정부의 국채 발행 한도. 정부는 그 한도 내에서만 국채를 발행할 수 있도록 규정돼 있다. 그 한도를 넘어서면 미국 재무부는 비상조치를 통해 얼마간 버틸 수 있지만 종국엔 디폴트(채무불이행) 상황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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