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퍼스 페리(Harpers Ferry)는 미국의 양수리.

북한강과 남한강이 합수되는 양수리처럼

이 곳에서도 포토맥강과 쉐난도어강이 만납니다.

그렇게 합쳐진 뒤

동쪽으로 내달려 대서양으로 흘러갑니다.

워싱턴DC를 가로지르는 바로 그 강입니다.

비가 추적 추적 내리던 2005년 어느 주말,

하퍼스 페리를 찾았습니다.

 

 

 

 

하퍼스 페리는

일천한 미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장소입니다.

 

1859년 10월16일.

노예폐지론자인 존 브라운이 추종자 15명을 이끌고

하퍼스 페리에 있던 연방 무기고를 습격합니다.

연방 무기고에는 10만 정의 총기와 엄청난 분량의 탄약이 있었지요.

브라운은 무기고를 점령한 뒤 흑인 노예들과 함께

애팔래치아 산맥에 흑인 공화국을 세운 뒤

남부 흑인 노예주를 상대로 전쟁을 벌인다는

야심찬 구상을 품고 있었습니다.

그를 따르던 수하들이 수 십 명 정도였음을 감안하면

매우 무모한 구상이 아닐 수 없습니다.

역시나 현실은 브라운의 구상과는 달랐습니다.

흑인 노예들은 동조하지 않았고

민병대들은 브라운이 점령한 무기고를 봉쇄했습니다.

제임스 뷰캐년 미 대통령이 파병한 미 해병대가

브라운 반란을 진압하는데는 채 3분도 걸리지 않았다고 합니다.

 

브라운은 신속한 재판을 거쳐 교수형을 당했습니다.

브라운의 교수형을 지켜보던 인파 속에

후일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을 암살하게되는

존 윌크스 부스가 끼어있었던 것은 유명한 에피소드입니다.

 

하지만 브라운의 죽음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었습니다.

브라운이 뿌린 노예제 폐지의 씨앗은 무럭무럭 자라났습니다.

"나는 이 죄 많은 나라의 범죄는 오직 피로써만 씻길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브라운이 사형 직전 남긴 이 말은 예언이었습니다.

5년 뒤 노예제를 둘러싼 내분이 증폭된 끝에 남북전쟁이 발발,

미국의 대지는 피로 물들게 됩니다.

남,북군 병사들만 무려 60만 명 이상이 전사하게됩니다.

당시 남부군을 이끌었던 로버트 리가

남북전쟁의 예고편이었던 브라운 반란을 진압했던 장군이었다는 사실은

역사 앞의 인간을 한 없이 겸손하게 만듭니다.

저는 이런 사실(史實)을 대할 때마다

'역사의 신'이 내뿜는 숨결을 느낍니다. 

 

신생 미국의 병기창 역할을 하며 잘 나갔던 하퍼스 페리는

남북전쟁 기간 시쳇말로 작살이 났습니다.

웨스트 버지니아와 메릴랜드, 버지니아 등 3개주의 접경이고

미 동부를 종단하는 애팔래치안 산맥 속에 자리잡은 지리적 환경 때문에

남군과 북군이 사활을 건 쟁탈전을 벌였기 때문이죠.

남북전쟁 당시 이 곳의 주인은 여덟번이나 바뀌었습니다.

하퍼스 페리 전투 중 남부군의 토머스 잭슨 장군이

일거에 북군 1만2500명을 포로로 만든 작전은

오래도록 전사(戰史)에 남았습니다.

단일 작전에서 가장 많은 포로를 획득한 이 기록은

2차대전의 바탕, 코레지도르 전투 전까지는 깨지지 않았습니다.

토머스 잭슨은 'Stonewall'(돌벽)이라는 영예로운 별명을 얻어

스톤월 잭슨으로도 불렸는데,

몇 개월 뒤 부하가 쏜 오발탄에 맞아 전사했습니다.

그도 브라운 반란 진압에 참가했던 병사로

하퍼스 페리와는 인연이 깊은 인물입니다.

 

하퍼스 페리는

남북전쟁으로 폐허가 된 뒤 한 세기 만에

남북전쟁을 상품화한 역사 관광 도시로 부활합니다.

 

 

 

 

 동네 주민들은 당시 민병대 복장을 입고

 관광객들을 맞이합니다.

 


 

 

 

한 때 신생 미국의 산업 중심지였던 시절,

초기 식민자들의 생활 모습도 느껴볼 수 있구요,

 

 

전체적인 도시 분위기도 한 나절 산책 코스론 제격입니다. 

 

 

 

 

 

 

 

 

 

 

 

 

하퍼스 페리는 애팔래치안 트레일러들에겐 각별한 곳입니다.

이 곳에 애팔래치안 트레일 콘퍼런스(ATC) 본부가 있기 때문이죠.

애팔래치안 트레일러들은 본부 앞에서 인증 샷을 찍기도 합니다.

 

 

 

애팔래치안 트레일은,

미 동부 해안을 따라 솟아있는 애팔래치안 산맥 위로

남부 조지아주에서 북부 메인주까지 14개주를 관통하며

무려 3360km에 걸쳐있는 길입니다.

 

울릉도에 집 짓고 사는

'한 잔의 추억'의 가수 이장희씨도

애팔래치안 트레일에 도전했다고 해서

관심을 갖고 있던 차에,

올 여름 휴가 때

미국 작가인 빌 브라이슨이 직접 애팔래치안 트레일을 걸어보고

그 경험에 바탕해 쓴 '나를 부르는 숲'(A walk in the woods, 홍은택 번역)을 읽으며

간접 경험을 해봤습니다.

휴가지로 떠나는 기차에 올라타자마자 읽기 시작해서

고향인 정읍역에 도착할 때까지 눈을 떼지 못했습니다.

산을 좋아하시는 분들께 강추합니다.

 

하퍼스 페리는

이 유명한 애팔래치안 트레일의 중간 쯤에 위치해있습니다.

역자인 기자 출신의 홍은택씨는 '옮긴이 후기'에서,

애팔래치안 트레일 종주 등반객(Thru-Hiker)과 조우했던 경험을 전하면서

"이들은 우리로 치면 백두대간을 종주하고 있는 셈이었다.

 백두산에서부터 지리산까지는 대략 1400km 정도인데

 애팔래치안 트레일은 두 배가 넘는다"고 썼습니다.

제가 이 블로그 '여행 에세이' 편에서 소개했던

그레이트 스모키 마운틴이나 쉐난도어 공원, 블루리지 파크웨이 등이

애팔래치안 트레일을 숲 속 깊이 감춰두고 있었더군요.

저는 자동차로 달리기도 힘이 들었던 그 먼 거리를

애팔래치안 트레일러들은

쌀 반가마 정도 무게인 베낭을 메고

곰과 방울뱀, 독충, 독초, 불개미, 질병,

때론 살인마의 위협을 무릅쓰고 걸어간다고 하니,

절로 존경심이 우러납니다.

 

참 얘깃거리가 많은 하퍼스 페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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