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6년 11월27일

 

1973년 소송을 통해 석가탄신일 공휴일 지정을 성사시킨 법조계의 「기인」 화세 용태영 변호사(67·고시8회)가 법조생활 39년을 회고하는 자서전을 펴냈다.


56년 독학으로 고시에 합격한 뒤 결코 평범하지 않은 행적으로 숱한 화제를 낳았던 그 답게 자서전이 모두 7권이며 26일 발간된 것이 제1권 「황야의 노방초」다.

용변호사 이름 앞에 「기인」이라는 수식어가 처음 붙게 된 것은 대구지법­지검 시보시절이다.

당시 그가 사법관 시보로서는 건국이래 처음으로 경북도경에 신년 초도순시를 나간 일이나,대구지검에 신임인사차 온 경찰서장을 30분동안 부동자세로 세워 둔 일화는 유명하다. 또 대구 대륜중­고 경리부정사건을 맡아 당시 법무부차관 집안뻘인 교장과 교감 등을 독단으로 구속하는 바람에 대구지검이 발칵 뒤집히기도 했다. 이런 일들로 법원장과 검사장을 지방장관으로 호칭했던 당시 대구에는 대구고­지법,고­지검의 장관 외에 「시보청의 용시보 장관」이 있다는 농담이 회자되기도 했다.


법관을 지원한 그는 5·16쿠데타가 일어나면서 뜻밖의 사건에 휘말려 변호사의 길을 걷게 됐다. 61년 12월 군법무관으로 소집된 뒤 시험관인 한 육군대위의 욕설에 울화가 치밀어 전술과목 OX답안지에 모두 X표시를 했던 것. 결국 그는 다른 군법무관 후보 7명과 함께 집단항명 혐의로 군법회의에 회부돼 1년동안 옥살이를 했다. 후에 검찰총장의 비상상고로 대법원에서 무죄판결이 난 이른 바 「작대기항명사건」이다.
그는 다른 변호사들이 기피하는 현직 검사와 판사 변호사를 상대로 한 사건을 수임,적극적인 변론을 펴 법조인들이 두려워하는 변호사다.

83년 자유민족당 총재였던 그는 정당국고보조금을 타간 뒤 탈당한 소속의원 신순범씨를 공갈죄로 고소하자 이 사건을 맡은 남부지청 이종찬 검사(현남부지청장)가 『선배님을 외포케 할 수 있는 사람은 이 세상에 존재할 수 없으므로 선배님에 대한 공갈죄는 원시적 불능범』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49년 육사 생도 1기로 입학했던 용변호사는 6·25전쟁으로 북한의용군으로 끌려가 미군 포로생활을 했고,전쟁이 끝난 뒤 미군수물자 하역회사 십장 등 밑바닥 인생을 전전했으며 일본밀항을 했다가 강제송환된 전력도 있다. 용변호사는 『힘든 삶을 사는 사람들에게 인생이란 여러가지 어려움속에서도 운명을 탓하지 않고 새 삶을 창조하는 것임을 일깨워 주고 싶었다』고 자서전 집필동기를 밝혔다.〈조남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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