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년 10월8일

 

 

'새 죽을 때 그 목소리 아름답고, 사람 죽을 때 그 말은 참되다'


아무리 악한 사람이라 하더라도 죽음을 앞둔 시점에서는 마음 깊은 곳에 잠자고 있던 선한 본성이 드러난다는 이 말은 6일(1994년 10월6일) 사형당한 흉악범들의 경우에도 어김없이 증명됐다.

지난 90년 일가족 4명을 야산에 생매장한 오태환(35)등 10명에 대한 사형 집행은 이날 서울구치소에서 6시간 여 동안 진행됐다.

타인의 가슴에 못을 박은 자는 그만한 고통에 상응하는 벌을 받아야 한다는 국민들의 공분에도 불구,이들 대부분은 수감기간을 통해 자신의 죄를 참회하는 모습을 보여 입회했던 일부 교도관은 눈물까지 흘렸다고 한다.

한 교도관은 사형수 10명이 한결같이 죽음의 순간을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죽기 직전 『가족과 피해자들에게 참회한다』는 말을 남겼다고 전했다.

지난 86년 금품을 빼앗기 위해 피해자(43)를 유인한 후 쇠스랑으로 찍어 살해한 서채택(48)은 사형선고를 받은 후 불교에 귀의했는데 죽기 직전 『딸 아이가 대학가는 것을 못보고 가는게 아쉽다』며 『다음 세상에선 스님으로 태어나 살겠다』고 말했다는 것.

이날 사형된 10명중 이필완을 제외한 9명은 모두 불교 기독교 천주교에 귀의했고 사형 직전 기증의사를 밝힌 서채택을 비롯해 7명이 안구및 사체를 기증,생의 마지막 순간을 뜻깊은 선행으로 마무리했다.

한편 이번 사형집행 입회검사는 종래 형사부 검사 중에 자원자를 받아 결정되던 관행을 깨고 지명 형식으로 선정됐다.

이번 집행이 비밀리에 이뤄진 탓에 공판이 없던 두 검사가 졸지에 '악역'을 떠맡게 된 것.

입회했던 서울지검 두 검사와 사무과 직원 등은 형 집행이 종료된 후 곧바로 귀가하지 않고 밤늦도록 술을 마셨다는 전문이다.

죽은 이의 귀신이 따라 붙지 못하도록 밤을 새운 뒤 집에 들어가는 관행을 따른 것이다.

한 입회검사는 『사형수들의 마지막 모습에서 인간의 본래 모습을 보았다』고 말했다.<조남규기자>

 

 

 사형집행은 어느 대통령이나 꺼리는 일이다.

그래서 가급적 자신의 재임 중엔 사형집행을 미루는 경향이 있다.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 재임 시절엔 단 한 건의 사형집행도 이뤄지지 않았다.

그러나 반인륜적 흉악범죄가 잇따라 발생하고 사회 분위기가 흉흉해지면

대통령은 사형집행을 통해 사회의 기강을 세워야한다는 여론의 압력을 받게된다.

엽기적 범죄가 발생할 때 마다 사형수들이 히스테리 증상을 보이는 것은 그 때문이다.

초년병 법조 기자로 활동했던 94년의 상황이 그랬다.

결국 김영삼 대통령은 사형수 10명의 집행명령을 재가했다.

나는 사형이 집행된 다음 날,

사형장에 입회했던 서울지검 공판부 오모 검사를 만나 집행 당시의 정황을 들었다.

1명을 제외하곤 담담히 죽음을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고

오검사도 "인간의 본성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됐다"고 말했다. 

'새 죽을 때 그 목소리 아름답고, 사람 죽을 때 그 말은 참되다'는 리드 문장은

그 말을 듣는 순간 결정됐다.

내가 만든 문장은 아니다.

지금은 제목도 생각이 나지 않는 책에서 차용한 것이다.

당시 법조팀장이던 이선호 전 편집국장이 "좋은 리드"라고 격려했고

호랑이 같던 대선배 기자로부터 칭찬을 듣고 우쭐했던 내 모습이 어제 일처럼 생생하다.

지금은 내가 그 선배 연조의 기자가 돼서 후배들의 기사를 손질하고 있다.

사형제 존폐론이 일 때마다, 그 날이 살아난다. 200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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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9월14일

 

「영장없는 피의자의 보호실 유치는 위법」이라는 대법원 판결이후 검찰과 경찰이 불법구금 방지를 위해 「24시간 영장신청체계」를 운영하고 있으나 당직판사들이 자정 이후에는 퇴근, 재택근무를 하는 바람에 영장발부가 늦어져 피해를 보는 사람이 많다.

대법원의 판결이후 서울지검등 검찰은 당직근무제도를 대폭 개선,종전에는 당직검사들이 대개 밤11시쯤이면 퇴근했으나 요즘은 다음날 오전9시까지 「24시간당직근무」를 하고 있다.

경찰도 대법원 판결이후 인권침해시비를 없애기 위해 형사피의자에 대한 조사가 끝나면 시간을 가리지 않고 수시로 구속영장을 신청하고 있다.

그러나 전국 대부분의 법원에서는 이 판결이후에도 여전히 당직판사들이 대개 밤12시쯤이면 퇴근,집에서 당직근무를 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서울형사지법의 경우 판사 34명이 한달에 한번꼴로 당직근무를 하며 당직판사는 대부분 자정이후 퇴근한다.

이 때문에 새벽에 청구되는 영장에 대해서는 법원직원들이 서류를 들고 일일이 당직판사집을 찾아가 결재를 받아야 하는 실정이어서 법원과 당직판사집을 오가는 시간 때문에 피의자의 보호실 대기시간이 길어져 인권침해소지가 많고 수사에도 지장을 준다는 것.

서울 성북경찰서는 지난달 9일 「고려대 프락치 사망사건」과 관련,긴급구속한 고려대생 4명에 대해 이날 밤11시30분쯤 구속영장을 신청했으나 당직판사가 퇴근한 뒤여서 법원직원들이 판사집을 다녀와 다음날 오전2시15분 영장을 발부받았다.

당직판사의 재택근무로 인해 새벽에 법원에 접수된 영장의 발부가 늦어지는 것은 영장 접수대장을 보면 명확히 드러난다.

서울 성북서는 지난 6월10일 변모씨(38·여)에 대해 현주건조물방화혐의로 이날 새벽3시쯤 법원 당직실에 구속영장을 접수시켰으나 이 영장이 당직판사집에 도착한 시간은 2시간20분이 소요된 5시10분.10분만에 영장이 발부돼 다시 직원이 법원 당직실로 영장을 가져와 경찰직원에게 전달된 시간은 1시간20분이 지난 6시50분이었다.

결국 당직판사의 「재택당직」으로 인해 10분이면 발부될 영장이 3시간50분만에 발부된 것이다.

지난 3월30일 이후 8월말 밤12시가 지나 서울 형사지법에 접수된 영장은 1백50여건으로 대부분 이같은 과정을 거쳐 발부되고 있는 실정이다.

서울형사지법의 한 부장판사는 『당직법관은 영장처리가 주업무이기 때문에 영장접수가 뜸한 새벽에는 퇴근을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대법원이 지난 3월 전국법원에 시달한 「각종 영장발부에 관한 사무처리지침」에서 당직법관의 재택근무를 용인하고 있다』고 말했다. <조남규기자>

 

 

 동가식 서가숙의 시절이었다.

집이 먼 탓에 서울 서초동 서울지방법원 기자실을 숙소로 삼던 때였다.

온갖 인간사가 난마처럼 얽힌 채 시끄럽던 법원 청사도

밤이 되면 정적 속에 잠긴다.

저녁을 먹고 불꺼진 기자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나는 쉽게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 때마다 찾아간 곳이 서울지검 당직검사실이었다.

당직검사의 주 임무는 그날 저녁에 경찰이 신청하는 영장을 검토해서

구속 사안이다싶으면 법원에 영장을 청구하는 일이다.

어떤 날은 서 너 건 처리하고 마는 경우도 있어

그런 날은 기자의 방문도 반가운 것이다.

대체로 검사와 기자라기 보다는

인생 선후배로서의 만남이었다.

그렇게 오랜 얘기를 나눈 검사들은

승승장구해서 검찰의 별인 검사장이 되기도 했고

정치 바람에 휩쓸려 시쳇말로 물을 먹고 옷을 벗은 이들도 있다.

어느 경우든 소주잔을 기울일 땐 그 시절 얘기가 으레 화제가 되곤 한다.

이 기사도 당직검사의 불평섞인 말 한마디가 시작점이었다.

당직검사는 밤새도록 청사에 남아서 근무하는데

당직판사는 집에 들어간다는 투덜거림이었다.

확인해 보니 사실이 그랬다.

그런데 판사 집이 법원 청사에서 멀리 떨어진 곳일 경우

문제가 심각했다.

구속영장이 기각되는 경우,

경찰서 유치장에 구금돼있던 피의자는

경찰관이 판사 집까지 오고가는 시간 만큼

더 오래 유치장에 머물러야하기 때문이다.

그게 단 30분의 시간일지라도

그건 당직판사 한 사람 편하자고 생긴

불합리한 구금의 연장 아닌가?

이런 문제의식으로 작성한 기사가

'당직판사 재택근무 문제있다'는 위의 기사다.

보도 직후인 그 해 10월 서울지방법원 국정감사장에서

새정치국민회의 조순형 의원이 이 기사를 흔들며

제도 개선을 촉구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뿌듯해했던 기억이 새롭다. 200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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