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일 헌법재판소가 일부 재판도 헌법소원 대상이라고 결정한 배경을 살펴보면 헌재와 대법원간의 「권한다툼」성격이 짙다는 생각을 떨어버릴 수 없다. 이 결정은 표면적으로는 대법원이 헌재의 한정위헌판정을 받은 구소득세법 조항을 헌재 결정을 무시한 채 그대로 적용해 판결한 데 대한 반작용으로 나왔다.헌재가 95년 11월 『실거래가를 기준으로 과세할 수 있는 경우를 구체적으로 명시하지 않은 구소득세법은 조세법률주의에 어긋난다』고 위헌결정하자,대법원은 이같은 결정이 법원의 고유권한인 법률해석권을 침해한 것이며 내용상으로도 부동산투기를 방조하는 것이 돼 따를 수 없다고 판단한 것. 당시 헌재는 대법원이 『헌재의 위헌결정은 단순한 견해 표명에 불과하다』고 한 점을 「모독」으로까지 받아들였다.

그 때문인지 헌재 관계자들은 24일 결정 직후 『그쪽(대법원)에서는 돌을 던졌는지 몰라도 우리는 그 돌에 맞아죽는 개구리 처지』라는 등 원색적인 표현으로 결정의 불가피성을 설명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대법원이 헌재의 퇴노를 완전히 차단하고 선제공격했기 때문에 헌재로서도 물러설 수 없었다』고도 했다.

이번 결정을 계기로 표면화한 두 헌법기관의 대립양상은 사실상 6공 당시 대법원 외에 헌법재판소라는 또 하나의 최고재판소를 만들 때부터 잠복해 있던 것이다. 법률의 위헌여부 심사권을 갖는 헌재와 명령­규칙 등 하위법률의 위헌심사권을 갖는 법원이 심리과정에서 그 경계선이 모호해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90년 10월 헌재가 대법원규칙인 법무사법 시행규칙을 위헌이라고 결정한 것이 그 대표적 케이스다. 당시 헌재에 법무사법 시행규칙에 대한 헌법소원이 접수되자 대법원이 규칙개정을 약속하며 위헌결정 보류를 요청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한 법원관계자는 『이 일로 대법원이 헌재에 대해 좋지 않은 감정을 갖게 돼 헌재와의 갈등 국면이 조성된 것 같다』고 분석했다.

물론 양자간 견해차는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두 기관 모두 국민 기본권을 보장하는 최후보루라는 점을 감안하면,견해차가 지금처럼 권한다툼 양상으로 전개돼서는 곤란하다. 조남규 사회부기자 1997년 12월26일

검찰이 개혁의 기치를 들었다. 타의가 아니라 검찰 스스로 추진하는 제도개혁 작업이다. 19일 발족한 검찰제도개혁위원회가 그 작업을 주도하고 있다. 검찰간부 외에도 대학교수 언론인 변호사 판사 등 외부 인사들이 위원으로 위촉됐는데, 평소 검찰에 비판적인 인사도 여럿 포함됐다고 한다.검찰은 이같은 점을 들어 통과의례나 일방통행이 아닌 심도 있는 의견수렴이 이뤄질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특별검사제 도입과 같은 부담스런 사안도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백지상태에서 다루겠다는 것이다.

김태정 검찰총장도 이날 개혁위 첫 회의에서 『과감하게 발상을 전환하고 구각을 깨뜨리는 자기혁신을 추구하지 않고서는 국민들에게 외면당하고 만다는 것이 역사의 교훈』이라고 지적했다.

그런데 검찰의 개혁작업을 바라보는 시각에는 이른바 「음모론」도 엄연히 존재한다. 그 하나가 야당시절 줄곧 검찰개혁을 주창해 온 새 정부가 칼을 빼들기에 앞서 검찰 스스로 제도개혁을 추진해 예봉을 피하려는 속셈이라는 주장이다. 검찰이 재정신청 범위 확대 등 일부 사안은 받아들이는 대신에 특별검사제나 검찰총장 인사청문회 등은 개혁위의 이름을 빌려 자신들의 입장을 관철시키려는 전략이라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검찰이 집권자로 입장이 바뀐 새 정부의 검찰관이 달라지기를 기대하며, 일단 개혁위를 가동시켜 시간을 벌고 있다는 의심의 눈초리다.

지난 93년 11월 대법원도 문민정부의 개혁바람이 불어오자 사법제도발전위원회를 구성해 자체 개혁을 추진한 일이 있다. 당시 상고제도 개선과 행정법원 신설 등 일부 개선방안이 마련됐으나, 정부는 진정한 사법개혁이 이뤄지려면 법조인 양성이나 선발제도의 틀부터 뜯어고쳐야 한다는 여론이 일자 95년 초 또다시 사법개혁에 나섰다.

검찰의 자기혁신도 사심 없는 여론수렴이 전제되지 않을 경우, 「타의」에 의한 개혁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시사하는 사례이다. 검찰 개혁을 음모론으로 보는 게 옳으냐 그르냐에 대한 해답은 전적으로 검찰의 손에 달려 있다. 조남규 사회부기자  1998년 1월20일

서울지법 의정부지원 전­현직 판사들의 금품수수 파문이 불거진 16일,대법원은 매우 침통한 분위기였다. 이날로 예정됐던 고법­지법원장 인사마저 연기한 채 「진상조사단」을 구성했다. 이순호 변호사 비리사건 수사과정에서 판사들의 금품수수설이 보도될 때마다 「자체 조사」 내용을 근거로 보도 내용을 부인하던 법원이 또 다시 자체조사에 나선 것이다.법원은 이날 금품수수 자체를 부인하던 종전과 달리 금품수수 행위는 인정했다. 판사들은 대부분 이번 파문이 검찰의 「의도적 흘리기」 탓으로 확산됐다고 불만을 토로한다. 개인간 금전 거래를 「뇌물」로 곡해한 악의적 비난이라는 시각도 있다. 법원의 진상조사가 과연 환부를 스스로 도려내겠다는 각오 아래 진행되는 것인지 의심스럽게 하는 대목이다.

검찰의 반응은 더욱 이해하기 힘들다. 검찰은 파문이 불거지자 의정부 지원 전­현직 판사들의 금품수수 혐의와 관련한 계좌추적 자체를 부인한 뒤,『수사할 수도 없고,할 계획도 없다』고 잘라 말했다.

검찰 수뇌부의 표정에는 곤혹스러운 기색이 역력했다. 한 검찰 고위 간부는 『검찰의 판사 수사는 금기사항이다』고 강조했다. 『개인간 금전거래를 어떻게 수사하느냐』는 설명을 듣노라면,검찰이 「빌린 돈」이라고 주장하는 판사들의 일방적 해명을 「변호」하고 있는 듯한 느낌마저 든다. 검찰은 이변호사 비리수사에서 비롯된 이번 파문으로 자칫 법원과의 관계가 악화될 것을 우려하는 눈치다.

검찰은 71년 당시 서울형사지법 이범렬(작고) 부장판사와 배석판사,참여서기 등 3명에 대해 수뢰혐의로 영장을 청구했다가 전국 법관 4백15명 가운데 1백51명이 사표를 내는 「사법파동」을 초래한 바 있다.

그 때 혐의는 이판사 등이 심리중인 국가보안법위반 사건 증인의 증언청취를 위해 3일간 제주도를 다녀오면서 변호사에게서 왕복 항공료와 식대 술값 등 9만7천여원어치의 향응을 받았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검찰이 수천만원이 오간 사실을 알고도 수사를 하지 않겠다니 격세지감이 아닐 수 없다.  조남규 사회부 기자  1998년 2월18일

洪淳瑛(홍순영)외교통상장관은 외교에 관한 한 여야를 떠난 초당적 노력이 필수적이라는 입장을 피력해 왔다. 洪장관은 지난해 12월 고려대 국제대학원 강연에서 『효과적 외교가 되기 위해서는 초당적 노력이 필수적』이라며 당시 한-일 어업협정 비준에 비판적인 한나라당의 협조를 촉구하기도 했다.그러나 2일 국회 통일외교통상위에서 불거진 국회의원단 訪美(방미)외교 논란은 洪장관의 「초당외교론」을 곱씹게 한다. 의원단 방미외교 논란은 한나라당 李信範(이신범)의원이 지난 2일 제기했다. 외교부가 법적 근거 없이 6천4백여만원의 의원단 방미외교 경비를 지원하면서 국회 통외위나 한-미 의원외교협의회와 상의조차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외교부는 「외교 목적」을 위해 필요할 경우 국회의원 해외 방문-활동경비를 지원할 수 있다고 해명하고 있으나 전례가 드문 일이다. 당초 의원단 방미는 지난해 6월 金大中(김대중)대통령 방미의 후속조치로 추진됐으나 한나라당 반대에 부닥친 사안이다. 의원단 방미예산을 국회 사무처에서 따내기 힘드는 상황에서 외교부가 예산을 지원한 것이다. 야당이 방미의원단 단장인 朴定洙(박정수)의원의 외교장관 경력과 연결짓는 것도 이런 정황 때문이다.

李의원은 특히 외교부가 국회 통외위 한나라당간사인 자신에게도 한 마디 상의 없이 일을 처리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과연 여야가 첨예히 맞서 있는 사안에 야당과 배치되는 방향으로 외교부가 나설 필요가 있었을까.

洪장관은 『외교정책은 정부만의 배타적 영역이 되기에는 너무 중요한 것인 만큼 집권당과 야당 진영의 사려 깊고 책임감 있는 의견이 반영돼야 한다』고 말했다. 「초당외교론」이 설득력을 얻으려면 이 전제가 먼저 충족돼야 한다. 조남규 정치부기자  1999년 3월4일

윌리엄 페리 미국 대북정책조정관이 최근 집필한 책을 통해 金大中(김대중)대통령의 대북 포용정책을 비판했다는 보도가 나온 6일 정부는 신속히 대응했다.외교통상부는 즉각 페리 조정관의 시각이 金대통령의 포용정책에 관한 「비판」이라기보다는 「우려」로 해석해야 한다고 브리핑했다. 보도가 「과장」됐다는 요지다. 우선 원문 중 「북한의 대량파괴무기 개발 지속은 金대통령의 포용정책이 성공하기 위해 필요한 시간을 앗아가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는 대목은 북한이 핵-미사일과 같은 대량살상무기 개발을 지속할 경우 金대통령의 포용정책이 효과를 볼 수 없다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오히려 「햇볕정책」 테두리내에서 핵-미사일 문제를 해결해야 된다는 점을 강조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외교부의 해석이 과연 옳은 것인가.

그렇지 않다. 페리는 북한 핵과 미사일 문제 해결을 대북 포용정책 선행 조건으로 보고 있으며,현 정부의 대북정책이 현실성을 결여하고 있다는 비판으로도 해석될 수 있다.

보다 중요한 것은 페리의 문제제기가 의미를 갖는 것은 그가 향후 미국의 대북정책을 새로 짜고 있는 장본인이라는 점이다. 뿐만 아니라 정부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페리와 우리 정부의 시각차가 엄존하고 있는 상황이다. 페리의 언급을 「아전인수」로만 해석하는 데 급급한 외교부 모습에선 흡사 수단이어야 할 포용정책이 목표로 인식되고 있는 듯한 인상을 풍긴다.

통일부 당국자는 한 발 더 나아갔다. 그는 『페리조정관의 저서 방향은 페리보고서 내용과는 무관할 것』이라면서 『이 책은 페리가 직접 저술했다기보다 그의 특별보좌관인 애슈턴 카터의 생각이 주로 들어있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이어 『그 내용 역시 개인의 견해일 뿐 여러 사람이 관여하는 페리보고서에는 결정적인 역할을 하지 못할 것』이라고도 했다. 우리 정부당국에게 필요한 것은 섣부른 예단이나 자의적 해석보단 페리의 진의 파악이 우선이다. 조남규 정치부기자  1999년 3월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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