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과 검찰이 최근 영장실질심사제(구속전 피의자심문) 운용과정에서 벌이고 있는 공방을 보면 정치판의 성명전을 방불케 한다.양측은 이 제도 시행 한달만인 지난 2월 영장실질심사 대상피의자 유치문제로 맞붙었다.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전까지 법원에 구인된 피의자 신병을 누가 유치해야 하느냐는 문제였다. 당시 양측은 보도자료를 통해 책임을 떠넘기는 데 급급해했을 뿐 아무런 해결책도 마련하지 못했다.

또 지난 4월엔 대검 총무부가 「구속전피의자 심문제도에 관한 고찰」이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통해 영장 발부기준의 무원칙성을 비판하자 대법원이 공보관 명의의 서신으로 반격하고 대검 공보관이 맞받아친 「서신공방」이 벌어졌다. 언론기고 형식의 지상전도 펼쳐졌다.

서울지법 동부지원 윤남근판사가 지난 15일 모일간지에 『검찰이 청구한 영장을 법원이 대부분 발부,피의자가 사실상 인민재판을 받았다』는 취지의 기고문을 내자 서울지검 동부지청 허용진검사가 바로 그 면에 「윤판사 기고에 대한 반론」을 실었던 것.

뿐만 아니다. 검찰은 이날 대법원이 지난 13일 「과감한 법정구속을 통한 불구속재판 원칙의 구현」이란 제목의 보도자료를 배포한 데 대해 「법원의 법정구속방침의 문제점」이란 반박자료로 응수했다. 적어도 영장실질심사제에 관한 한 양측은 한치의 양보도 있을 수 없다는 태세다.

물론 법원과 검찰이 쟁점사안에 대해 각자의 견해를 피력하는 행위는 자연스러운 일이며 서로 다른 기관의 견해차는 불가피한 일이다. 양측이 영장실질심사제 도입취지인 「국민의 인권옹호」라는 대승적 차원에서 의견을 수렴해나간다면 견해차는 오히려 이 제도의 정착을 앞당기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제도가 그토록 문제라면 법조인과 법학자,시민이 참가하는 공청회라도 열어 개선방향을 모색하는 게 합당한 처사다. 지금처럼 언론을 매개로 상대방을 비난하는 볼썽사나운 모습을 연출하는 양측의 공방전은 국민은 물론 법원과 검찰에 조금도 득될 게 없다. 이 사회의 최고 엘리트집단이라는 법원과 검찰마저 제로섬게임을 펼치는 정치판을 닮아서야 되겠는가.  조남규 기자  1997년 5월23일

7일 오전 8시20분 대한항공 추락사건 희생자 합동분향소가 마련된 괌 퍼시픽스타호텔 차모로 볼룸.희생자 유족들 사이로 칼 구티에레스 괌 주지사(56)가 들어섰다. 그가 구조작업과 시체발굴 현황을 설명한 뒤 『가톨릭 신자로서 모두를 위해 기도하겠다. 서로 위로하며 고통을 이기자』고 말하자 곳곳에서 흐느낌이 터져나왔다. 그의 눈도 충혈됐다.

그는 사고직후 맨 먼저 현장에 도착했다. 6일 오전 2시쯤 사고 소식을 듣자마자 손전등을 들고 수풀을 헤치며 현장을 찾아갔다. 그와 동행한 사람은 비서 2명과 경찰관 1명이었다. 그는 폭파위험을 경고하며 만류하는 수행비서의 충고를 뒤로 한채 화염에 휩싸인 기체에 다가가 한국계인 마쓰다 리카양(11)등 4명을 구했다. 군부대의 구조반이 도착할 때까지 구조작업을 벌인 후 파김치가 됐지만 병원방문,군부대 및 연방정부와의 공조체제 구축,보도진 사고현장 방문 안내,브리핑 등으로 밤늦도록 뛰어 다녔다. TV를 통해 교민 피해자 유족들을 위로하고 부하들에게 조속한 사고수습을 독려했다.

한인회 홍승일(50) 부회장은 『지난 해 연말 교민들이 자체방범순찰대를 조직했을 때 주지사는 흔쾌히 경찰차에 동승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등 물심양면으로 우리 교민들에게 신경을 썼다』고 말했다.

아가냐 태생으로 72년 괌의회 상원의원으로 뽑힌 이후 내리 8번 당선된 뒤 95년 주지사로 선출된 그는 낙후지역 주민 의료서비스 지원을 목적으로 한 비영리재단 「남을 돕는 사람들」까지 운영하고 있다. 공직자의 바른 자세가 무엇인지를 새삼 일깨워준 그를 보면서 대형사고만 터지면 수행원을 잔뜩 거느리고 나와 브리핑을 받는 한국의 「높은 분」들 모습이 떠올랐다.  괌=조남규 기자  1997년8월8일

WTO 각료회의 개막을 하루 앞둔 29일 오전 8시(현지시각) 시애틀 쉐라톤 호텔 1층 풀러식당. 애국가가 울려 퍼졌다. 국회 농림해양수산위 김영진(金泳鎭.국민회의) 위원장 주최로 열린 조찬 기도회장이었다. 'WTO (의원)대표단의 나라를 위한 조찬기도회’에는 한나라당 윤한도(尹漢道)의원 등이 당적을 떠나 자리를 함께 했다.강춘성(姜春成)농민단체 협회장도 손훈(孫薰) 시애틀 총영사도 한 목소리로 애국가를 제창했다. 이어 열린 '국제농업의원회의’는 시애틀 총영사관이 장소와 통역을 제공했다. 김 위원장은 "우루과이 라운드 때는 정부 협상단이 우리(의원)를 만나주지도 않았다"고 말했다. 외면상 여야도 초월하고 민간과 정부가 따로 없는 풍경이었다.

그러나 속내는 서로 달랐다. 조찬기도회를 마치고 돌아가던 WTO국민연대 장원석(張原碩)집행위원장은 "아직도 정부가 농업부문을 끝까지 지켜줄 지 확신이 서지 않는다"고 토로했다. 정부 협상단도 국내 NGO와는 영원히 같이 갈 수 없다는 점을 숨기지 않고 있다.

최근 국책연구소인 산업연구원은 '시장개방 바로알기’라는 책자를 발간,시장개방 홍보에 나섰다. 이 책자는 "보호정책은 정당과 이익집단이 일반 소비자의 희생하에 이익을 얻기위한 과정에서 실시되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국회와 농민단체 등의 개방반대 움직임을 '표 지키기’와 '제 몫 챙기기’ 차원으로 이해하고 있다는 오해를 살만한 대목이다.

NGO와 국회,정부의 현 동거(同居)체제는 흡사 결별을 준비하고 있는 부부처럼 위태롭기만 하다. 국익이라는 같은 배를 탓으면서도 사안에 따라서는 노젓는 방향을 달리할 수밖에 없는 정부와 NGO가 전체와 부분과의 조화 속에서 상생의 묘수를 찾아주기를 기대한다. <시애틀=趙南奎기자> 1999년12월1일

서울 1993년 겨울.

외무부에 비상이 걸렸다. '일본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는 주 제네바 대표부 발(發) 긴급 전문(電文). 한국과 함께 쌀 시장 개방을 끝까지 반대하겠다고 철석같이 약속한 일본이었다. 정의용(鄭義溶)외무부 통상국장이 황급히 일본 외무성 오구라 가즈오(小倉和夫)경제국장을 통해 일본의 입장 변화 여부를 타진했으나 일본은 딱 잡아뗐다. 며칠 후 한국 정부는 주한 미대사관으로부터 일본의 쌀 시장 개방 소식을 전해 들어야 했다. 일본의 배신은 한국이 우루과이 라운드 협상에서 미국의 쌀 개방압력에 굴복하게 된 결정적 계기가 됐다.

시애틀 1999년 겨울.

한국과 일본은 뉴라운드 출범을 위한 WTO 각료회의에서 또 한번 손을 잡았다. 역시 농-수산물 분야의 공조다. 양국 협상대표단은 아침 저녁으로 만나 공동 대응방안을 조율하고 있다. 양국 의원 대표단은 2일 '국제농업의원회의 공동선언문’을 채택했다. 국제농업의원 연맹 창설에도 보조를 맞췄다. 일본 NGO(비정부기구)는 숙소를 예약하지 못한 한국 NGO 대표단 29명의 방을 마련해 주기위해 파견숫자를 줄였다.

여러 면에서 아직은 마주잡은 손에 온기가 흐르고 있다. 결정적 고비는 미국이 한국과 일본을 분리,각개격파에 나설 때 찾아올 것이다. 우루과이 라운드 당시에도 한-일은 미국의 분리전략에 휘말려 공조를 해친 경험이 있다.

더욱이 지난 4월 쌀에 대해 관세제도를 도입,수입제한을 푼 일본이다. 상대적으로 농산물 협상에서 부담을 덜었다고 할 수 있다. 한 협상 대표는 "일본이 하루아침에 말을 뒤집는 무례는 범하지 않을 것으로 본다"고 낙관했다. 그런데도 자꾸만 5년 전의 악몽이 되살아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시애틀=趙南奎기자> 1999년 12월2일

『정태수씨 진술을 그대로 인정한다 하더라도 범죄구성 요건에 해당되지 않아 수사하지 않았습니다』

지난 4일 국회 한보국정조사특위에서 「정태수 리스트」관련,정치인 수사에 관한 특위위원들의 질문에 대한 김기수 검찰총장의 답변이다. 또 김총장은 국민회의 조순형 의원이 수사를 거듭 촉구하자 『예를 들어 범죄혐의가 짙지도 않은데 조의원을 검찰에서 확인할 게 있으니 나와 달라고 하면 명예는 뭐가 되겠는가』고 되묻기도 했다.

그러나 이후 시작된 「정태수 리스트」수사는 이같은 김총장의 답변과는 전혀 다른 결과를 낳고 있다. 상당수 정치인이 한보에서 「범죄가 되는」 청탁성 돈을 받은 혐의가 드러났기 때문이다.

검찰 조사결과 국민회의 김상현 의원은 96년 9월 (주)한보 이용남사장에게 5천만원을,같은 당의 김봉호 의원도 96년 12월 1천만원을 받은 사실이 드러났다. 정태영 전 의원도 95년 9월 한보 돈 3천만원을 받았다고 털어놨다. 김의원 등은 한결같이 정치자금으로 받았다고 주장했으나 이씨는 국감무마조로 줬다고 진술했다. 특히 이들 정치인이 돈받은 시점이 국감전후로 「청탁금」일 개연성을 높여주고 있다. 또 이씨에게 3천만원을 받은 사실이 확인된 최두환 전 의원의 경우 검찰 스스로 『대가성이 높다』고 밝히고 있다.

결국 김총장은 국민의 대표인 의원들 앞에서 한달도 못돼 번복해야 할 무책임한 발언을 한 셈이다.

검찰은 지난 10일 「정태수 리스트」에 포함된 정치인의 소속 정당별 숫자까지 공개하며 수사에 나섰다. 이후 대선주자든 중진의원이든 「가차없이」 소환조사했다. 김수한 국회의장도 입법부 수장이란 점을 고려,방문조사 형태를 취했지만 공개적으로 조사했다. 검찰의 이같은 태도는 「모든 국민이 법 앞에 평등한」 법치국가에서 당연한 일이다.

그런 검찰이 한보사건 1차수사 때는 왜 이처럼 「당연한」 일을 하지 않았는지 납득하기 어렵다. 정치권의 눈치를 보며 수사수위를 조절하려 한게 아니냐는 항간의 의혹이 부당하다면 검찰 스스로 그 이유를 밝혀야 한다. 조남규 사회부 기자   1997.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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