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어업협정 실무협상과 북-미 금창리 협상타결에 즈음해 남-북한 외교력이 다시 비교대상이 되고 있다. 동일한 시기에 남-북한이 각각 일본과 미국을 상대로 벌인 협상 결과가 극명하게 대조를 보인 탓이다.일본과 대등한 입장에서 출발한 어업협상은 타결이 끝난 마당에 다시 일본을 상대로 굴욕적 협상을 벌어야 하는 참담한 상황을 연출한 반면 명분에 있어 다소 밀리는 상태에서 미국과 담판을 벌인 북한은 이번에도 실리를 챙겼다는 것이 대체적 관전평이다.

물론 두 협상을 결과만 놓고 동일선상에서 단순비교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더욱이 국제사회의 룰을 무시한 북한식 외교가 북한의 「깡패 국가」(rogue state) 이미지를 더욱 굳혔다는 비판도 타당한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외교관은 연미복 속에 칼을 숨기고 협상에 임한다는 말이 있듯이 자국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것 또한 외교 목표중 하나라면 우리정부 외교력엔 회의가 들지 않을 수 없다. 한-일 어업협상 과정을 복기해 보면 더욱 그렇다. 외교부는 金大中(김대중)대통령 방일전 타결이라는 마지노선을 먼저 공개,운신의 폭을 스스로 좁히는 실책을 범했다. 자연 협상의 추진력이 약화될 수밖에 없었다.

일본이 일방적으로 어업협정을 파기한 뒤 협상 시작 때까지 해양수산부 대응은 더욱 안일했다. 10개월 남짓한 기간을 십분 활용하지 못하고 5명에 불과한 팀으로 협상에 임한 대목은 수년 동안 치밀하게 준비해 온 일본과 대비된다. 외교부와 해양수산부 공조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평가다.

94년 북-미 제네바 회담 직후에도 유엔 외교가에서는 「한국의 외교실패」라는 분석이 나왔다. 그 분석은 아직도 유효하다는 생각이다. 조남규 정치부 기자  1999년 3월19일

김대중 대통령 당선자 비자금 고발사건 수사 막바지에 터져 나온 김태정 검찰총장의 한나라당 이회창 명예총재에 대한 비난 발언을 두고 뒷말이 무성하다.검찰 총수가 고발사건 참고인에 불과한 사람의 조사거부 태도를 공개적으로 문제삼은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다. 더욱이 그 대상은 제1야당의 전 대통령 후보이자 명예총재다. 그 표현도 이명예총재를 「법조인 출신이라기보다는 자기 인기관리만을 위해 교묘하게 여론을 이용하는 타고난 정치인」이라고 규정해 사뭇 「원색적」이었다.

자연 김총장의 발언에 모종의 정치적 의도가 깃든 것 아니냐는 의혹이 불거졌고,한나라당측의 즉각적인 정치공세가 이어졌다. 한나라당이 최근 김종필 총리 인준안 거부를 당론으로 정하자 검찰이 총대를 메고 「야당 길들이기」에 나선 것이라느니,김대중 당선자의 비자금 문제보다 실명제 위반 쪽에 무게를 둔 수사결과 발표를 앞두고 본질을 호도하려는 술책이라는 등의 의혹이다.

물론 검찰은 그동안 금융실명제 위반 부분의 실체적 진실을 밝히기 위해서는 이명예총재 조사가 불가피하다는 점을 누누이 강조해 왔다. 수사실무 차원에서 비자금을 폭로한 당시 신한국당과 자료를 수집했던 청와대 사정비서관의 「중간 연결고리」인 이명예총재에 대한 조사가 필요하다는 검찰 입장에 이견은 없었다.

게다가 이명예총재의 신분을 고려해 서면조사 방법을 택했고 김당선자 또한 서면조사에 응했다는 점,이명예총재가 비자금 폭로를 방조했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더욱 그랬다. 검찰도 「처벌」보다는 「진상규명」차원이라고 설명,검찰 안팎에서 서면조사 정도는 응해야 한다는 견해가 우세한 상황이었다.

그런데 김총장의 느닷없는 발언으로 상황이 반전된 듯한 느낌이다. 대검 관계자들은 김총장의 비난발언 배경에 대해,『이명예총재 조사가 사실상 물건너가자 섭섭하다는 차원을 넘어선 감정을 갖게 된 것 같다』고 말했다.

정권교체가 이뤄진 상황에서 검찰의 행보에 대한 국민의 관심이 어느 때보다 큰 시점인 만큼 경찰은 보다 신중해야 할 것 같다. 조남규 사회부 기자  1998년 2월23일

종착역을 앞두고 있는 문민정부 경제실정 수사에서 검찰은 과거 그 어느때보다 이같은 상충되는 두 요인 중 어느 쪽을 우선해야 하느냐는 해묵은 話頭(화두)로 고민해야 했다.첫번째 화두는 이번 수사가 역대 어느 정권보다 인권을 중시하는 金大中(김대중) 정부가 들어선 이후 첫 대형수사라는 점에서,두번째 것은 IMF체제하의 첫 경제수사라는 점에서 각별하게 다가왔을 법하다.

그 때문인지 검찰은 형식 면에서 기존 수사와는 사뭇 달라진 모습을 보였다. 그간 불법 논란이 끊이지 않았던 「밤샘조사」 관행을 한솔 임원의 자해 소동이 있은 후부터이기는 하나,상당 부분 자제한 점이 대표적 예다. 「소환=구속」이라는 전통을 자랑하는(?) 대검 중수부가 피의자 성격이 강한 사람도 본인이 원하면 자정 전에 돌려보내는 생소한 수사 기법을 선보인 것.

소환예정자를 미리 언론에 공개하는 친절도 베풀었다. 비밀수사가 빚을 취재 경쟁으로 경제인 소환이 대서특필될 경우 국가신인도에 타격을 줄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한 결정이라는 설명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검찰의 수사과정을 뜯어보면 이런 외면상 모습과 다른 구태가 반복됐던 것도 사실이다.

밤샘조사 문제부터가 그렇다. 밤샘조사 관행이 문제되는 것은 단순히 자정을 넘겨 조사한다는 것보다는 밤샘조사를 자백 강요의 수단으로 삼는 데 있다. 참고인에 불과한 사람을 죄인취급하며 자백을 강요하는 검찰과 밤샘수사를 자제하겠다는 검찰,어느 쪽이 참모습인지 선뜻 결론짓기 어렵다.

기업 수사의 경우도 올초 검찰이 주창한 「경제살리기 수사」 원칙에 부합하는 것인지 아리송하다. 수사상 필요한 압수 수색이나 관련자 출국금지를 문제삼는 게 아니다. 기업 현장에서는 검찰이 의도한 정답을 털어놓지 않는다는 이유로 기업 활동의 발목을 잡는 수사를 벌이고 있다는 불만이 제기되고 있다.

한 검찰 간부도 밝혔듯이,이제 수사는 자백에 의존하기보다는 장기간 내사를 벌여 증거를 수집하는 방향으로 바뀌어야 한다. 사전준비 없이 사사건건 검찰이 총대를 메고 나서는 것은 자칫 「한풀이」나 「마녀사냥」에 그칠 수 있다는 생각이다. 趙南奎 사회부 기자  1998년 6월9일

북한 문제에 관한 한 한국 정부는 영원한 주변인인가. 최근 불거진 북한 寧邊(영변)지하시설 공사와 미사일 발사 문제,인공위성 발사발표 소동 등을 지켜보면서 외교통상부 당국자들은 강한 무기력증과 소외감을 느끼고 있다.먼저 寧邊(영변) 부근 산악지대에 굴착중이라는 터널 공사. 여기에 핵 시설 의혹이 있다는 보도 직후 정부는 『정확한 용도를 알 수 없다』며 별로 문제삼지 않았다. 북한의 핵 동결을 조건으로 건설되는 북한 경수로 비용 46억달러 중 32억달러를 국민의 혈세로 부담해야 할 처지에 있는 우리다.

그런 우리가 북한의 핵동결 의무 이행에 의문이 제기되고 미국 의회의 북한 평가가 악화되는 데도 오히려 북한의 눈치를 살피는 모습을 보인 것이다. 정부가 궁지에 몰린 북한이 제네바 합의를 파기하지나 않을까,또 이 일로 「햇볕론」에 흠집이 나지 않을까 전전긍긍하는 사이 정작 북한은 이런 상황을 역이용,미­북고위급 회담의 지렛대로 활용하려 했다. 딱하게도 우리 정부는 미­북 회담 결과에 목을 매는 모습을 보였다.

대응자세가 석연치 않기는 미사일 문제도 마찬가지다. 특히 洪淳瑛(홍순영) 외통장관은 한­일 외무장관 회담에서 난데없이 북한 경수로 본공사 착공을 위한 일본측의 분담금 지원이 조속히 이뤄지기를 요청했다.

외교수장이 다른 자리도 아닌 미사일 공조 협상 자리에서 경수로 얘기를 꺼낼 필요가 있었느냐는 비판이 제기됐다. 겨우 정부는 5일 국가안전보장회의를 열어 한­미­일 공조체제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절차를 거쳤다. 지난달 31일 발사후 며칠만인가.

지금 한국정부의 외교가 있는가라는 지적을 정부는 귀담아들을 필요가 있다. 북한이 「강성대국」을 선언하는 상황에서 「햇볕론」 때문에 단선적인 대응책에 붙잡혀있는 것은 아닌지 자문해볼 일이다. 조남규 정치부기자  1998년 9월7일

방미중인 洪淳瑛(홍순영) 외통부장관의 「북한 인공위성」 언급이 태평양을 건너 전해진 11일 국내는 혼란에 싸였다.지난달 31일 북한이 뭔지 모를 물체를 발사한 이후 「미사일」과 「인공위성」 사이를 오락가락하던 정부에 실망할 대로 실망한 끝이다. 또 미국 정부가 지난 8일 침묵을 깨고 『북한의 위성발사 여부를 확인할 정보를 갖고 있지 않으며 지구궤도를 돌고 있는 어떤 물체도 발견하지 못했다』고 공식 발표한 지 이틀 만이다. 방미 직전까지도 『한­미­일 3국이 확인중이어서 최종 결론이 내려지지 않았다』던 洪장관이었기에 의구심은 증폭됐다. 洪장관이 그 사이 미국으로부터 「확실한」 정보를 얻은 것인지,이미 미국에서 통보받은 인공위성 정보를 「흘린」 것인지 배경을 지금으로선 알길이 없다.

문제는 洪장관의 언급으로 북한 미사일 문제에 관한 한­미­일 3국 입장이 제각각이 돼버렸다는 점이다. 일본은 지금도 「미사일 시험발사」 입장을 고수하고 있는 상황 아닌가.

미국 정보에 의존하는 한국 외교수장이 미국 땅에서 미국 공식입장과 다른 견해를 편 것도 우습다. 정부가 그토록 강조하던 3국 공조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 「부적절한」 발언이었다는 지적이다.

미 국무부 제임스 루빈 대변인은 10일 아침(현지시간) 洪장관 발언에 대해 『그렇게 주장하는 사람도 있지만 미 정부는 지난 8일 발표한 공식입장을 여전히 견지하고 있다』 『북한 인공위성 문제에 관한 한 한­미­일 3국은 최종 결론에 이르지 못했다』고 말했다.

도대체 洪장관은 무슨 근거로 「인공위성」 가능성은 언급했는지,그리고 왜 미국땅에서 그랬는지 말해야 할 필요가 있다.  조남규 정치부 기자  1998년 9월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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