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문제에 관한 한 한국 정부는 영원한 주변인인가. 최근 불거진 북한 寧邊(영변)지하시설 공사와 미사일 발사 문제,인공위성 발사발표 소동 등을 지켜보면서 외교통상부 당국자들은 강한 무기력증과 소외감을 느끼고 있다.먼저 寧邊(영변) 부근 산악지대에 굴착중이라는 터널 공사. 여기에 핵 시설 의혹이 있다는 보도 직후 정부는 『정확한 용도를 알 수 없다』며 별로 문제삼지 않았다. 북한의 핵 동결을 조건으로 건설되는 북한 경수로 비용 46억달러 중 32억달러를 국민의 혈세로 부담해야 할 처지에 있는 우리다.

그런 우리가 북한의 핵동결 의무 이행에 의문이 제기되고 미국 의회의 북한 평가가 악화되는 데도 오히려 북한의 눈치를 살피는 모습을 보인 것이다. 정부가 궁지에 몰린 북한이 제네바 합의를 파기하지나 않을까,또 이 일로 「햇볕론」에 흠집이 나지 않을까 전전긍긍하는 사이 정작 북한은 이런 상황을 역이용,미­북고위급 회담의 지렛대로 활용하려 했다. 딱하게도 우리 정부는 미­북 회담 결과에 목을 매는 모습을 보였다.

대응자세가 석연치 않기는 미사일 문제도 마찬가지다. 특히 洪淳瑛(홍순영) 외통장관은 한­일 외무장관 회담에서 난데없이 북한 경수로 본공사 착공을 위한 일본측의 분담금 지원이 조속히 이뤄지기를 요청했다.

외교수장이 다른 자리도 아닌 미사일 공조 협상 자리에서 경수로 얘기를 꺼낼 필요가 있었느냐는 비판이 제기됐다. 겨우 정부는 5일 국가안전보장회의를 열어 한­미­일 공조체제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절차를 거쳤다. 지난달 31일 발사후 며칠만인가.

지금 한국정부의 외교가 있는가라는 지적을 정부는 귀담아들을 필요가 있다. 북한이 「강성대국」을 선언하는 상황에서 「햇볕론」 때문에 단선적인 대응책에 붙잡혀있는 것은 아닌지 자문해볼 일이다. 조남규 정치부기자  1998년 9월7일

방미중인 洪淳瑛(홍순영) 외통부장관의 「북한 인공위성」 언급이 태평양을 건너 전해진 11일 국내는 혼란에 싸였다.지난달 31일 북한이 뭔지 모를 물체를 발사한 이후 「미사일」과 「인공위성」 사이를 오락가락하던 정부에 실망할 대로 실망한 끝이다. 또 미국 정부가 지난 8일 침묵을 깨고 『북한의 위성발사 여부를 확인할 정보를 갖고 있지 않으며 지구궤도를 돌고 있는 어떤 물체도 발견하지 못했다』고 공식 발표한 지 이틀 만이다. 방미 직전까지도 『한­미­일 3국이 확인중이어서 최종 결론이 내려지지 않았다』던 洪장관이었기에 의구심은 증폭됐다. 洪장관이 그 사이 미국으로부터 「확실한」 정보를 얻은 것인지,이미 미국에서 통보받은 인공위성 정보를 「흘린」 것인지 배경을 지금으로선 알길이 없다.

문제는 洪장관의 언급으로 북한 미사일 문제에 관한 한­미­일 3국 입장이 제각각이 돼버렸다는 점이다. 일본은 지금도 「미사일 시험발사」 입장을 고수하고 있는 상황 아닌가.

미국 정보에 의존하는 한국 외교수장이 미국 땅에서 미국 공식입장과 다른 견해를 편 것도 우습다. 정부가 그토록 강조하던 3국 공조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 「부적절한」 발언이었다는 지적이다.

미 국무부 제임스 루빈 대변인은 10일 아침(현지시간) 洪장관 발언에 대해 『그렇게 주장하는 사람도 있지만 미 정부는 지난 8일 발표한 공식입장을 여전히 견지하고 있다』 『북한 인공위성 문제에 관한 한 한­미­일 3국은 최종 결론에 이르지 못했다』고 말했다.

도대체 洪장관은 무슨 근거로 「인공위성」 가능성은 언급했는지,그리고 왜 미국땅에서 그랬는지 말해야 할 필요가 있다.  조남규 정치부 기자  1998년 9월12일

2년 넘게 한­일 어업협상을 진행해 온 외교통상부의 브리핑은 시종일관 무미건조하다. 우리 입장을 묻는 질문에는 더더욱 함구로 일관해 왔다. 그 근거는 國益(국익)이다. 『국가간 협상은 카드게임에 비유할 수 있다. 타결될 때까지 최대한 자신의 카드는 감춰야 한다. 언론도 도와줘야 한다』는 논리다.어업협상은 핵심 쟁점에 대한 「담판」만을 남겨두고 있는 막바지 상황인 만큼 더욱 그렇다고 누누이 강조해 왔다. 그러나 외교부의 이같은 기대는 정작 언론이 아닌 정부 내부에서 어긋나고 말았다.

金善吉(김선길) 해양수산부장관이 23일 오전 어업협상을 위한 訪日(방일)과 관련,장황한 출국 「설명회」를 열고 이같은 내용이 언론에 보도되자 외교부는 말을 잃었다. 실무 협상팀이 「카드」를 숨긴 채 마지막이 될지 모르는 협상을 하러 떠난 그날,담판의 당사자가 그 카드를 공개한 꼴이 됐다.

金장관은 『한­일 어업협상이 정치적 타결만을 남겨두고 있는데 대통령 국빈 방일 전에 협상을 마무리짓기 위해 내가 방일하는 것』이라고 운을 뗀 뒤,핵심 쟁점인 중간수역 동쪽 한계선 문제 등에 관한 우리 입장을 언급한 것이다.

그는 나아가 『타결에 확신이 있어서 간다』면서 『모레 오후 공식발표가 있을 것이다』고도 했다. 상대방이 어떤 태도로 나올지,어떤 카드를 들이밀지 모르는 상황에서 金장관의 이같은 확신이 무엇에 근거하고 있는지 납득하기 어렵다. 자신감에 찬 협상태도는 나쁘지 않다. 그러나 외교부 내에서는 양국간 최종합의가 이뤄질 때까지 말을 아끼는 신중함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어업협상 타결이 특정인의 「광」을 내는 자리는 아니지 않은가. 趙南奎 정치부 기자  1998년 9월25일

 

사과받는 입장에서 이렇게 저렇게 사과해 달라고 요구하는 것은 국가적 자존심은 물론 내 개인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다』洪淳瑛(홍순영) 외교통상부 장관 입을 통해 확인되는 정부의 과거사 접근법은 가해자의 「자발적」 반성을 통한 매듭짓기인 듯하다. 이번 실무 협상 과정에서는 미리 사과 문안을 받아 절충을 벌이던 이전의 관행을 깨고 일본측에 전적으로 일임했다고 한다. 洪장관이 오부치 총리나 고무라 외상과 만난 자리에서 과거사 문제와 관련,「과」자도 꺼내지 않은 것도 같은 맥락이었다는 것이다.

정부는 한발 더 나아가 天皇(천황)호칭 수용 및 위안부 정부배상 불요구 등 선물을 안겨주며 일본측의 부담덜어주기에 힘써 왔다.

이는 金大中(김대중) 대통령의 「先(선)피해자 용서론」에 뿌리를 두고 있는 것으로,사과와 망언의 악순환이 반복된 저간의 사정을 고려하면 평가할 만한 발상의 전환이라 할 수 있다. 피해자가 먼저 손을 내밀어 가해자를 포용하는 모습은 고질적인 양국 국민의 反日(반일)­嫌韓(혐한) 감정을 녹이는 계기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이 해법이 설득력을 얻기 위해서는 가해자인 일본측의 진실된 사과라는 충분조건이 반드시 충족돼야 한다. 이와 관련,7일자 일본 요미우리(讀賣)신문이 보도한 일본측의 「답안」은 정부의 희망사항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95년 무라야마 총리의 사과 발언에 사과의 주체와 객체를 명확히 한 수준이라는 것인데,창씨개명과 군대위안부 문제 등을 적시해 반성한 93년 호소카와 총리 발언 이하라는 평가다.

『이제는 문구 하나 하나를 걸고 문제삼는 수준은 넘어서야 한다』던 洪장관의 언급은 기대에 못 미친 일본측 「답안」을 염두에 둔 것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趙南奎 정치부 기자  1998년 10월8일

24일 외교통상부에 대한 국회 통일외교통상위 국감은 흡사 李洪九(이홍구) 주미대사의 「停年(정년) 청문회」를 방불케 했다.3차례 정회 끝에 유회사태까지 몰고 온 이 문제에 대한 양측 입장은 이렇다. 한나라당 의원들은 현행 외무공무원법상 특임공관장 정년은 외교직 공무원 특1급 정년(64세)을 적용해야 하기 때문에 34년 5월9일생인 李대사는 지난 6월30일자로 당연퇴직된 상태라는 것이다. 그러나 외교부는 『특임공관장이 외무공무원법의 당연 적용대상인지 「해석상」 논란이 있으며 李源京(이원경),朴東鎭(박동진) 주미대사때도 같은 문제가 있었지만 임명된 선례가 있다』는 견해다. 외무공무원법상 특임공관장 정년에 대해서는 명문규정이 없어 법해석상 논란이 있을 수 있다는 주장은 수긍이 간다. 그러나 李대사 임명 당시부터 문제점으로 지적된 사안을 외교부가 여태껏 방치한 이유는 선뜻 납득하기 어렵다.

더욱이 지난 2월 정부가 이 법 개정안 마련 당시 李대사 정년 부담을 해결해 주는 쪽으로 손질하려 했으나 당시 여소야대 상황인 탓에 법안 통과에 자신이 없어 유보했다는 시각이 있는 터다. 李洪九 대사 임명문제는 최근 모 여당 중진들에 대한 주일,주중대사 제의설과 맞물려 「야당 흔들기」로 비쳐질 수도 있는 민감한 사안이기도 하다.

이날 국감에서 洪淳瑛(홍순영) 외교부장관은 「해석상 논란」 입장을 되풀이하다 한나라당 의원들이 『군사정권에서나 있었던 일을 「국민의 정부」도 하고 있단 말이냐』 『장관이 법 위에 군림하느냐』고 몰아붙이자 『법제처와 협의해 논란의 여지가 없도록 개정하겠다』고 한발 물러섰다. 洪장관이 우물쭈물하기에 앞서 첫 답변부터 당당히 법개정 의사를 피력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 국감이었다. 趙南奎 정치부 기자  1998년 10월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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