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1997-11-22|06면 |정치·해설 |컬럼,논단 |977자
15대 대선을 눈앞에 둔 시점에서 돌출한 부부간첩 사건이 지난달 말 신고자 정모씨의 언론 제보로 처음 일부 공개됐을 때,「또 북풍이 부는구나」라고 생각한 사람이 많았다.92년과 87년 대선 직전 발표된 이선실 간첩단 사건과 KAL기 폭파범 김현희 사건이 선거에 큰 영향을 미친 사실을 기억하는 이들의 조건반사적 반응이었다.
역대 선거에서 북풍의 가장 큰 피해자였던 국민회의 김대중 후보가 지지율 1위를 달리는 상황을 반전시키기 위한 카드라는 「음모론」도 제기됐다. 이후 국민회의측 인사가 이 사건에 연루됐다는 말이 돌면서 이같은 시각의 신빙성을 더했다.
당사자인 안기부는 세간의 이런 평가를 매우 곤혹스러워했다. 안기부 관계자는 부부간첩 검거 직후 각 언론사에 보도유보(엠바고)를 요청하는 자리에서 『왜 하필이면 (간첩이) 대선직전에 넘어와서 오해를 사게 하는지 모르겠다』고 푸념했다. 수사를 지휘한 고성진 대공수사실장도 기자간담회에서 『국민 의식수준이 안기부가 공작차원에서 간첩사건을 조작하는 일을 용납하겠는가. 우리로서는 모처럼 대어를 낚아 놓고도 대선을 앞둔 정치상황 때문에 오해받는 것이 원망스럽다』고 했다.
발표된 안기부 수사결과 당초 거론됐던 국민회의 관련자는 검찰 송치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다. 이와 관련,한 검찰 관계자는 『김대중총재 측근이 이번 사건에 관련됐다는 진술이 나왔지만 사건의 순수성을 해칠 수 있다는 판단아래 발표하지 않기로 했다』고 말했다. 안기부도 이번 사건은 순수한 의미의 대공사건일 뿐 일체의 정치적 의도가 없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이번 사건에서 보여준 안기부의 자세는 과거 당사자 진술만을 근거로 제대로 검증되지 않은 사안을 언론에 터뜨렸던 모습과는 사뭇 대조적이었다. 여당후보의 당선 가능성이 불확실한 상황에서 정보기관이 「눈치보기」를 하는 것 아니냐고 해석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이런 오해는 안기부가 앞으로 어떤 정치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의연한 자세로 대공수사를 함으로써 불식시켜야 할 것이다. 조남규 기자

1996년 11월27일

 

1973년 소송을 통해 석가탄신일 공휴일 지정을 성사시킨 법조계의 「기인」 화세 용태영 변호사(67·고시8회)가 법조생활 39년을 회고하는 자서전을 펴냈다.


56년 독학으로 고시에 합격한 뒤 결코 평범하지 않은 행적으로 숱한 화제를 낳았던 그 답게 자서전이 모두 7권이며 26일 발간된 것이 제1권 「황야의 노방초」다.

용변호사 이름 앞에 「기인」이라는 수식어가 처음 붙게 된 것은 대구지법­지검 시보시절이다.

당시 그가 사법관 시보로서는 건국이래 처음으로 경북도경에 신년 초도순시를 나간 일이나,대구지검에 신임인사차 온 경찰서장을 30분동안 부동자세로 세워 둔 일화는 유명하다. 또 대구 대륜중­고 경리부정사건을 맡아 당시 법무부차관 집안뻘인 교장과 교감 등을 독단으로 구속하는 바람에 대구지검이 발칵 뒤집히기도 했다. 이런 일들로 법원장과 검사장을 지방장관으로 호칭했던 당시 대구에는 대구고­지법,고­지검의 장관 외에 「시보청의 용시보 장관」이 있다는 농담이 회자되기도 했다.


법관을 지원한 그는 5·16쿠데타가 일어나면서 뜻밖의 사건에 휘말려 변호사의 길을 걷게 됐다. 61년 12월 군법무관으로 소집된 뒤 시험관인 한 육군대위의 욕설에 울화가 치밀어 전술과목 OX답안지에 모두 X표시를 했던 것. 결국 그는 다른 군법무관 후보 7명과 함께 집단항명 혐의로 군법회의에 회부돼 1년동안 옥살이를 했다. 후에 검찰총장의 비상상고로 대법원에서 무죄판결이 난 이른 바 「작대기항명사건」이다.
그는 다른 변호사들이 기피하는 현직 검사와 판사 변호사를 상대로 한 사건을 수임,적극적인 변론을 펴 법조인들이 두려워하는 변호사다.

83년 자유민족당 총재였던 그는 정당국고보조금을 타간 뒤 탈당한 소속의원 신순범씨를 공갈죄로 고소하자 이 사건을 맡은 남부지청 이종찬 검사(현남부지청장)가 『선배님을 외포케 할 수 있는 사람은 이 세상에 존재할 수 없으므로 선배님에 대한 공갈죄는 원시적 불능범』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49년 육사 생도 1기로 입학했던 용변호사는 6·25전쟁으로 북한의용군으로 끌려가 미군 포로생활을 했고,전쟁이 끝난 뒤 미군수물자 하역회사 십장 등 밑바닥 인생을 전전했으며 일본밀항을 했다가 강제송환된 전력도 있다. 용변호사는 『힘든 삶을 사는 사람들에게 인생이란 여러가지 어려움속에서도 운명을 탓하지 않고 새 삶을 창조하는 것임을 일깨워 주고 싶었다』고 자서전 집필동기를 밝혔다.〈조남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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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04-02|21면 |사회 |컬럼,논단 |1019자

 

1일 오전10시 서울 서초동 서울지검 6층 상황실에서는 「미국 로스쿨제도의 현황과 문제점」 「한국법조의 적용타당성 검토」라는 민감한 주제의 세미나가 열려 관심을 끌었다.미국에서 로스쿨을 마치고 변호사자격을 딴 크리스 서씨(35·여)와 김현변호사(39)가 주제발표한 세미나에는 검사 20여명이 참석했다.
세미나 시작에 앞서 이경재형사1부장은 『최근 법조개혁과 관련해 논란이 되고 있는 로스쿨에 대해 찬성­반대론자 모두 제대로 알고 있는지 의심스럽다』면서 『검사들부터 로스쿨을 제대로 알아야 한다는 취지에서 세미나를 갖게 됐다』고 말했다.
이부장의 발언은 이날 세미나가 당초부터 로스쿨과 관련해 어떤 의도를 갖고 열린 것은 아니라는 뜻으로 해석됐다.
주제발표에 나선 크리스 서씨는 미국 로스쿨 입학 자격,졸업생들의 변호사 합격률등 전반적인 현황설명을 마친 뒤 『로스쿨은 미국에만 있는 특유한 제도이므로 무작정 도입하면 엄청난 후유증을 겪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김변호사도 『로스쿨은 인성교육보다 소송기술교육에 치중하는 소송기술가양성소』라고 정의한 뒤 『미국에서도 혹평을 받고 있는 로스쿨을 굳이 도입하려는 의도를 모르겠다』고 로스쿨도입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를 내놓았다.
주제발표를 통해 로스쿨제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지적한 김변호사의 발언이후부터는 로스쿨 도입의 타당성을 「검토」하겠다던 세미나가 로스쿨 성토대회로 변질돼 버렸다.
『변호사 수가 80여만명에 이르는 미국에서도 수임료는 소송가액이 5천만원 이하인 소송은 수임료가 소송가액보다 더 많이 나올 정도로 세계최고다.수임료를 내리기 위해 변호사 수를 늘린다는 주장은 잘못됐다』(김변호사)
『인원은 현행 제도하에서도 늘릴 수 있고 문제점은 사법연수원 제도개선으로 고쳐나갈 수 있는데 굳이 로스쿨을 도입하겠다는 이유를 모르겠다』(검사)
이날 세미나는 법조개혁의 당사자인 검사들이 논쟁의 대상이 되고 있는 로스쿨도입에 대한 검토를 자발적으로 시도했다는 점은 평가할 수 있으나 다양한 의견이 제시된 가운데 활발한 토론이 이뤄졌더라면 하는 아쉬움을 남겼다.<조남규 기자>

29일 오후2시 서울형사지법 417호 법정.성수대교붕괴사고 2차공판이 열려 당시 트러스제작을 담당한 동아건설 부평공장 기술담당상무 이규대피고인(61)등 17명에 대한 변호인 반대신문이 진행됐다.검찰의 직접신문에서 『기억이 나지 않는다』『내 소관이 아니었다』며 혐의사실을 완강히 부인하던 피고인들은 이날 반대신문에서는 더욱 또렷한 목소리로 무죄를 주장했다.
맨먼저 답변에 나선 이피고인은 『트러스작업은 철골부장선까지만 관여했다』고 주장한 반면 당시 철골부장이었던 박효수피고인(58)은 『과장이 감독할 문제였다』고 떠넘겼다.
박피고인은 이어 『제작 후 가조립과 비파괴검사과정에서 서울시 감독관의 승인까지 받은 만큼 제작과정에는 문제가 없었고 유지관리부실이 사고의 원인』이라고 주장했다.
한편 현장조립을 담당한 현장소장 신동현피고인은 『트러스공법에서 상판을 받치는 수직재가 중요하다는 것을 설계회사는 도면에 표시했어야 했다』고 설계회사쪽에 책임을 돌린 후 『현장에서는 조립설치만 하면 되고 용접부실여부까지 검사할 필요는 없다』며 발뺌했다.한편 동아건설측 변호인은 지난 1차공판때 검찰이 제시한 트러스모형과 같은 플라스틱 축소모형물을 제시해 가며 검찰신문에 맞섰다.
『서울시가 성수대교 상판신축이음부에 배수로를 설치하지 않아 스며든 빗물이 오염된 대기속에 포함돼 있는 아황산가스와 겨울철 다리위에 살포한 염화칼슘등과 섞여 부식을 심화시켰다』
『건설시 충격을 완화시키기위해 상현재와 수직재를 핀으로 연결해 놨는데 서울시가 후에 이를 고착용접해 결국 하중을 견디지 못하고 붕괴됐다』
지난 1차공판때 관리감독과 보수책임을 맡고있는 서울시 고위간부와 동부건설사업소 직원들의 책임회피모습과 하나도 다를게 없었다.
피고인들의 말대로라면 성수대교는 누구도 어쩔 수 없는 「불가항력」에 의해 스스로 붕괴된 셈이 된다.
청천벽력과도 같은 사고를 당한 32명의 유족들은 묻고 있다.고귀한 생명들은 누구때문에 억울한 죽음을 당해야 했는가.<조남규기자> 1994년 12월30일

민주당 이상수(李相洙) 총무가 서울시장 출마를 공식화했다. 18일 자신이 공동대표를 맡은 '포럼 서울비전' 창립대회를 계기로 삼았다. 그동안 착실히 서울시장의 꿈을 키워온 끝에 나온 출마선언이다.최근 들어 그는 매주 한차례씩 주유소 주유원이나 환경미화원,구세군 자선냄비 자원봉사 등을 통해 서울시장 도전을 위한 정지작업을 해왔고, 지난 10월 창간호를 발간한 '이상수와 서울이야기'는 격주로 발간되며 3호까지 나왔다.

이 총무는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서울 지하철 24시간 운행 등 구상중인 공약을 공개하고 선거과정에서 사용할 마스코트도 소개하면서 "국민에게 잔잔한 감동을 안겨주겠다"고 의욕을 보였다.

정치인이 비전과 꿈을 갖고 실현을 위해 노력하는 것은 아름다운 모습이다. 그러나 그의 표현대로 꿈을 추구하는 행위가 국민을 '감동'시키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에게 부여된 의무를 완수해 놓은 다음이어야 하지 않을까? 서울시장 출사표를 던지기 전에 '집권당 원내총무'라는 직책에 충실하는 게 정도가 아닐까 싶다.

이 총무는 "국회가 늦어도 18일 전에는 끝날 것으로 예상하고 포럼 창립대회 날짜를 잡았다"고 밝히고 있으나 현실은 새해 예산안이 법정 시한을 넘긴 지 보름이 넘도록 여야 정쟁과 의원들의 내몫 챙기기 속에 표류하고 있는 상황이다.

더욱이 지금 그가 속한 민주당은 여권 인사들의 각종 비리의혹이 불거지고 대선후보 경선을 둘러싼 당내 알력으로 중심을 잡지 못하고 있다. 민주당 원내사령탑으로 당3역 중 한사람으로서의 이 총무는 국회와 당을 먼저 챙기는 모습을 보여줬어야 했다고 생각한다.  조남규 정치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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