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한동(李漢東) 총리서리 인사청문회를 하루 앞둔 지난 25일 국회 원내총무실. 휴일인데도 민주당 특위위원 일부가 모였다. 전략회의를 갖기 위해서였다. 취재기자 1명이 이총리서리 부동산 매입 부분을 꺼내들자 특위위원들은 "상속받은 거라더라" "사서 묵혀놓고 값도 오르지 않은 땅이라서 별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라는 해명을 내놨다. 이어진 "(자민련과의) 공조문제도 걸려 있고" "대통령이 임명한 총리인데…"라는 언급은 민주당의 청문회대책 방향을 여실히 보여줬다.아니나 다를까 26,27일 청문회 기간동안 여당위원들의 질의에서는 예기(銳氣)를 찾아보기 어려웠다. 오히려 변호인 반대신문과 구분이 되지 않은 옹호성 질문에 같은 특위위원을 공격하는 어처구니없는 장면까지 연출됐다. 한 민주당 특위위원 말대로 '대어(大魚)'가 없는 이번 청문회에서 그나마 쟁점으로 등장한 부동산 매입과 말 바꾸기, 시국사건 고문방조 의혹, 노조 강경진압 등에서 민주당 위원들은 쟁점 희석에 힘썼다.

민주당 위원들은 인사청문회가 공직후보의 국정수행능력을 검증하는 정책청문의 장이 되어야 한다는 논리를 폈지만, 이마저도 진의를 의심케 하는 대목이 많았다. "주 5일 근무제에 대한 의견이 뭐냐"든지 "한미행정협정 개정과 관련한 견해는 뭐냐"는 식의, 기자간담회 석상에서나 어울릴 법한 질문을 던졌다.

미국에서는 상원 인준청문회를 통해 1000명에 가까운 공직자를 대상으로 인준청문을 실시하고 있지만 당파성은 최대한 배제하고 있다. 인준청문회 도입 이래 1989년 조지 부시 대통령 시절 국방장관 인준을 부결되는 등 각료급 인사만 12명이 청문회를 통과하지 못했다. 제도보다 중요한 것이 운영하는 사람들의 마음가짐이라는 사실을 이번 청문회는 다시 한번 증명하고 있다.

-정치부 趙南奎기자-

민주당의 최근 행태에서는 '원칙'을 찾아보기 힘들다.야당시절 누구보다 큰목소리로 고위공직자 인사청문회 도입을 외쳤던 장본인인 민주당이 집권당이 된 요즘 과거 맞서 싸웠던 상대방의 목소리와 어투를 그대로 흉내내며 가급적 청문회 강도를 낮추려 안간힘을 쓰고 있다.

급기야는 "인사청문회는 여타 청문회와 다른 성격이 있는 만큼 비공개로 해야 한다"는 선까지 나갔다.

여론의 반발에 밀려 7일 뒤늦게 비공개 주장을 거둬들이기는 했으나 무소신 무원칙을 여실히 드러내 보인 사례였다.

당소속 전국구 의원인 박상희(朴相熙) 중소기업협동중앙회장 건도 그렇다. 박회장의 입당 당시부터 논란이 돼온 중기협 회장직 사퇴문제에 대해 민주당은 손을 놓고 있다. 박회장측은 "입당 교섭 당시 당과 상의해서 들어갔다" "법적 하자가 없고 당에서도 본인 판단에 일임하고 있다"는 논리로 당분간 사퇴의사가 없음을 분명히 하고 있다.

시작부터 법적 하자보다는 중소기업을 대표하는 단체의 장이 당론에 얽매일 수밖에 없는 정당원이 될 수 있느냐는 정치도의적 차원에서 제기된 문제에 대해 공당(公黨)인 민주당이 취하고 있는 자세는 무책임하다 못해 한심한 지경이다.

공과 사에 있어서 자신에게 엄격하기로 소문난 서영훈(徐英勳) 대표조차 7일 "본인이 알아서 할 일인데…"라며 말을 흐리는 데는 민주당이 유독 박의원에게는 관대하다 못해 눈치를 보는 인상이 든다. 행여 민주당이 박의원에게 말 못할 약점을 잡힌 게 아니냐는 의혹이 들 정도다.

16대 국회는 새로운 천년,21세기에 부응하는 창조적-생산적 국회가 되어야 한다는 민주당 논평이 말에 그치지 않기 위해서는 원칙을 지켜나가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趙南奎 정치부기자>

미전향장기수 북송발언 파문으로 낙마한 민주당 이재정(李在禎) 전정책위의장은 21일 당에 출근하지 않았다. 사의(辭意)도 출근길의 김옥두(金玉斗) 사무총장에게 전화를 걸어 전했다.이틀전까지만 해도 "9월 전당대회까지는 직을 맡아 수행하고 싶다"고 의욕을 보였던 이 전의장은 그러나 20일 장기수 북송발언 문제로 논란이 일자 훌훌 털어버리겠다는 생각으로 사의표명을 결심했다고 한다.

이를 바라보는 당내 반응은 갈렸다. 한 당직자는 "재야출신은 밖에 있을 때와 당에 들어왔을 때의 차이점을 가끔 망각하는 경향이 있다"고 이 전의장의 처신을 문제삼았다. 또 다른 당직자도 "사견이라고는 하나 책임있는 당직을 맡은 사람이 장기수 북송과 같은 민감한 현안에 대한 견해를 피력하는 것은 나이브(순진)한 태도"라고 지적했다. 이들은 나아가 16대 총선을 통해 진보성향의 정치신인이 대거 수혈된 점을 들며 "통일이나 주한미군 지위 문제같은 사안을 놓고 돌출발언이 나오지 않을까 염려된다"고 걱정했다.

반면 이 전의장과 같은 재야출신이나 젊은 그룹의 생각은 다소 달랐다. 김근태(金槿泰) 부총재는 "이 전의장 발언을 너무 확대해석하거나 예민하게 받아들일 필요가 없다고 본다"고 신중한 입장을 취했다.

이 전의장 경질은 민주당내 하나의 세력으로 자리잡고 있는 진보그룹의 행동양식이 어떠해야 하느냐는 화두를 던졌다. 이번에 수혈된 이른바 '젊은 피' 가운데는 과거 통일과 주한미군 문제 등에서 민주당보다 더 진보적 주장을 펼쳤던 인사도 포함돼 있다. 향후 이뤄질 남북관계 개선과정에 이들이 건설적 역할을 담당하기 위해서는 신중하고 섬세한 접근이 요구된다는 점을 이 전의장 경질사건은 보여주고 있다.<정치부 기자 趙南奎>

민주당은 11일 '한나라당은 1994년 야당의 태도에서 배워야 한다'는 제목의 논평을 냈다. 김영삼(金泳三) 정부 시절 남북 정상회담이 합의됐을 때 야당이던 민주당은 당리당략을 떠나 대승적으로 대응했는데 한나라당은 왜 그러지 못하느냐는 문제제기였다.민주당은 그 증거로 94년 당시 김대중(金大中) 아-태재단이사장과 국민회의(현 민주당)가 남북 정상회담 합의 직후 내놓은 환영 논평과 발언을 소개한 뒤 "민족의 문제는 당파가 아닌 민족의 가슴으로 수용할 줄 알아야 한다"고도 했다. 실제 한나라당은 민주당 주장대로 남북 정상회담을 총선용 정략으로 규정하고 북한과의 이면합의 의혹을 집중 제기하고 있다.

현상만 놓고 보면 민주당의 지적에 일리가 없지 않다. 그러나 민주당은 한나라당을 향해 손가락질하기 전에 스스로를 먼저 돌아봐야 한다.

13대 대선을 하루 앞둔 87년 12월15일 대한항공(KAL) 858기 폭파사건 주범인 김현희(金賢姬)가 서울로 전격 압송됐을 때 민주당(당시 평민당)은 공작의혹을 제기하며 거세게 반발했다. 14대 대선을 불과 3개월 앞둔 시점에 '남한조선노동당 사건'이 발표됐을 때도,15대 총선 당시 집권당이 북한의 판문점 비무장지대 무력시위 사건으로 위기론을 조장할 때도 민주당은 '선거용'이라고 목청을 높였다.

그 때 그 목소리와 지금 한나라당의 외침 사이에는 얼마만한 거리가 있는 것인지,선뜻 가늠이 되지 않는다. 김영삼 정부의 남북 정상회담 합의 발표가 94년이 아닌 96년 15대총선을 코 앞에 둔 시점에 발표됐어도 민주당이 환영 논평을 냈을지는 의문이다. 북한이 국내에서 펼쳐지고 있는 여야간 정상회담 공방을 바라보며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조남규 정치부 기자>

시오노 나나미는 '로마인 이야기'에서 로마 공화정 초기,귀족이 높은 신분에 따르는 도의적 의무인 '노블레스 오블리제(Noblesse Oblige)'의 모범을 보였던 점을 높게 평가했다. 그녀는 이를 당시 로마의 정치적 안정에 이바지한 요인 가운데 하나라고 봤다. 귀족이 기득권에 안주,평민에게만 희생을 강요했다면 권리의식에 눈 뜬 평민의 거센 저항에 부닥쳐 급진적인 정치체제의 변동이 초래됐을 것이란 게 그녀의 분석이다.그러면서 그녀는 어린 후계자 한 명만을 남기고 일족 300여명이 모두 전쟁터에 나가 전사한 파비우스 가문을 들고 있다.

그로부터 대략 2000년이 흐른 지금,한국에서는 정반대의 현상이 빚어지고 있다. 군대도 안가고 세금 한 푼 안낸 이들이,로마시대라면 시민의 권리도 누릴 수 없는 이가 국민 대표가 되겠다고 앞다퉈 나서고 있다.

선거제도 도입 이후 처음으로 병역과 납세사실을 공개하도록 한 16대 총선 후보등록 결과는 밖에 내놓기 부끄러울 정도다. 등록후보 1040명 중 병역 미필은 220명,소득세 제로는 214명이었다. 병역 미필에 소득세-재산세 0원으로 3개 항목 모두 낙제점을 기록한 후보도 24명이나 됐다. 재산 규모와 재산세 신고 항목에 0이라고 써넣은 후보도 28명이었다. 국민 눈에는 가정이나 제대로 꾸려나갈 수 있는 인물인지 의심스러울 정도다.

당사자는 나름대로 이유를 대고 있지만 후보등록 내역이 신문에 실린 이후 신문사 편집국에는 거친 톤의 독자 전화가 빗발치고 있다. "세금도 안낸 사람이 의원이 돼서 국민의 혈세를 받아먹겠다는 것이냐" "군대도 못갈 정도로 결함이 있는 사람이 의원이 돼서 무슨 일을 하겠다는 거냐"는 비난이 대부분이다. 거꾸로 돌고 있는 한국의 지도층 시계는 언제쯤 똑바로 갈 것인지. <趙南奎 정치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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