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지니아 정착기(2) - 조남규(세계일보/조지타운대)

사회보장 카드 발급


사회보장카드(Social Security Card) 발급은 미국 내에서 일할 수 있는 필수 조건이다. 사회보장 카드에는 고유의 납세자 번호 또는 사회보장 번호가 기록돼 있다. 미국 시민이 아닌 외국인은 미국에서 일할 수 있는 허가를 받은 경우 사회보장 번호를 받을 수 있다.
단기 체류하는 연수생들에게는 운전면허 딸 때나 은행계좌 개설 할 때 사회보장 번호를 요구하는 경우가 많지만 돈벌이와는 거의 무관할 듯 싶다. 조지타운 대학에서는 자신들이 발급한 DS-2019로 입국한 J-1이 대학 외에서 일하는 것을 엄격히 제한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것도 DS-2019의 4번 항목(Exchange Visitor Category)에 기재된 분야에 관련된 수업이나 연구에 한해 대학과 임금 계약을 맺을 수 있다. 대학 내의 일자리라 하더라도 대학이 아닌 조직과의 고용 계약은 원칙적으로 금지되나 J-1을 발급한 대학이 아니더라도 단기간의 강의나 자문 활동은 가능하다. 다만, 지속적인 활동이어서는 안 되고 그에 따른 보수를 받았다면 반드시 세금을 납부해야 한다. 어떤 경우든 방문 연구 영역을 벗어나는 돈벌이여서는 안 된다. 연구 영역이 Political Communication으로 기재된 내가 한국어나 수학 과외를 통해 돈을 벌 수는 없다는 것이다. 더욱 황당한 규정은 대학이 제공한 일자리라 하더라도 J-1 고용 관련 규정에 위배된 경우, 모든 책임은 J-1이 져야한다는 대목이다.
방문 연구원의 사회보장 카드 발급 절차는 의외로 간단하다. 가까운 곳에 위치한 사회 보장국을 찾아가 신청서(SS-5)를 작성하고 방문 연구원 자격으로 미국에 체류할 것임을 증명하는 DS-2019와 I-94, 여권을 제시하면 된다. 동반가족(J-2)은 고용 허가를 받은 경우에만 사회보장 번호를 신청할 수 있다.

미국 교육청에서 학교 배정받기


한국에서 고1, 중3 과정의 1학기를 마치고 온 두 아이들은 버지니아주의 공립 고등학교 1학년과 2학년 과정(초등, 중등, 고등 과정이 각각 6년, 2년, 4년씩인 미국 학제로는 각각 9학년과 10학년)에 편입됐다. 다행히 페어팩스 카운티 교육청에는 친절하고 자상한 두갠 경(Dougan Kyong) 여사가 한국인들의 편입학을 담당하고 있어 복잡한 수속을 한결 편하게 마칠 수 있었다.
수속 당일 아이들은 교육청에서 영어와 수학 시험을 치렀다. 고등학교 성적은 대학 입학시 중요한 사정 기준이 되는 만큼 학업 이수 능력을 엄격히 검증했다. 한국 학생의 경우 수학은 잘하는 편에 속한다고 한다. 실제 우리 애들도 수학은 상위권에 속하는 것으로 평가됐다. 문제는 영어인데 아이들은 한국에서 영어 학원을 꾸준히 다녔는데도 에세이나 독해 부문이 힘들었다고 토로했다. 나는 두 아이의 영어 테스트 결과가 A로 나왔다고 해서 최고 등급을 맞은 줄 알고 내 귀를 의심했다. 그러나 그 것은 사실이었다. 문제는 A가 가장 낮은 등급이라는 점이다.
영어 테스트 평가가 A로 나오면 학점 취득 불능 단계로 분류된다. ESOL(The English for Speakers of Other Language) 과정을 우선 밟으며 수업은 청강해야 한다. B1으로 평가되면 영어 능력보다는 수리-탐구 능력 등이 중요한 수학이나 과학 과목 등은 이수할 수 있으나 역시 영어나 사회 과목은 이수할 수 없다. B2 단계부터 전 과목을 이수할 수 있게 된다. 통상 ESOL을 통해 A에서 B2로 올라가는데 걸리는 시간은 개인차가 있지만 1년에서 2년 정도라고 한다. B2 단계부터 9학년 영어를 수강할 수 있다. 이 경우 B2도 졸업을 위해 이수해야 하는 영어 학점(과목당 1학점씩 4년 동안 4학점)으로 인정해 준다. 비영어권 학생을 배려하는 차원이다. 어떻든 ESOL을 통해 영어 능력을 높이지 않는 학생은 4년 내에 대학 진학을 위한 학점을 따낼 수 없다.
섬머 스쿨 등을 통해 낙제한 과목을 보충하고도 18세까지 졸업 학점을 채우지 못한 학생은 계속 학교를 다녀야 하는가. 그렇지 않다. 일단 학교는 떠나야 하고 외부 교육기관(예컨대 성인 재교육 프로그램 등)에서 필요한 학점을 딴 뒤 뒤늦게 졸업하게 된다. 단, ESOL 과정을 거친 비영어권 학생들에게는 영어 핸디캡을 인정, 21세까지 학교에 남아있을 수 있도록 하고 있다. ESOL 과정의 학생들이 단기간에 영어 능력을 비약적으로 향상시키기는 것은 힘든 일이다. 고등학교 영어 과목에서 통과하더라도 미국의 대학수학능력 시험인 SAT 영어 과목에서 높은 점수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의미다. 그래서 ESOL 출신들은 미국 대학 진학시 TOEFL 성적을 별도로 첨부해 SAT를 보충한다고 한다.
우리는 애들 성적 증명서를 한국에서 준비하지 못해 한국 학교에 연락해 팩스로 송부받아야 했는데 필요한 서류는 다음과 같다. 고등학교 입학 대상자는 중학교 전 학년 성적증명이 필요하다. 기관과 기관끼리는 팩스로 전달받으면 공신력이 생긴다.
영문 재학 증명서, 영문 호적 등본, 영문 성적 증명서, 영문 예방 접종 기록(한국 소아과 병원에서 확인서를 해왔으나 결핵 검사가 누락돼 있어 이 곳 보건소에서 결핵 검사를 받아야 했다. 보건소 결핵검사는 공짜이나 기준이 엄격해서 통과하기가 쉽지 않다. 첫째 아이의 손이 조금 부어있자 Inconclusive 판정을 내리고 재검사를 받도록 요청했다), 여권과 비자, 거주 증명(아파트 계약서) 등.
예방접종 기록은 아이들이 다니던 소아과 병원에서 한 사람당 3만원씩 내고 발급받아 왔다. 물론 이 기록도 필요하지만 교육청에서 건네준 입학용 종합검진 기록을 작성하려면 미국 내 병원을 거치지 않을 수 없다. 소변 검사와 시력 검사, 청력 검사, 빈혈 검사 항목 등을 채워야 하기 때문이다. 교민이 운영하는 소아과 병원에서 검진 기록 작성비 40달러, 소변 검사비 20달러, 결핵 검사비 20달러(보건소에서 재검사 대상이 된 첫째는 여기서 돈 내고 다시 검사했다) 등 80달러를 받고 해준다. 빼먹은 예방 접종이 있다면 돈 내고 추가로 받아야 한다. 학교 입학을 위한 필수 접종 항목은 DTP(Diphtheria, Tetanus, Pertussis), OPV(Poliomyelitis), Measles, HBV(Hepatitis B Vaccine), Varicella Vaccine 등이다.
작성해야 할 서류들에 학부모 연락처를 기재해야 하는 만큼 전화나 핸드폰이 개통된 이후 교육청을 방문하는 것이 좋다. 모든 서류가 완비되면 교육청에서는 이를 밀봉해서 학부모에게 준다. 학부모는 이 봉투를 들고 해당 학교에 찾아가 카운슬러와 상담한 후 편입 수속을 밟는다. 어디든 사전 약속은 필수다. 학교는 거주지 근처로 배정된다. 우리 애들은 버지니아 페어펙스 카운티 내의 비엔나에 있는 제임스 메디슨 공립 고등학교로 배정됐다.

자동차 구입하기


자동차 구입시 가장 중요한 고려 사항은 예산이다. 예산은 차량 가격과 함께 보험료와 세금을 동시에 고려해야 한다.
자동차 구입은 우선 새 차와 중고차 중 어떤 것으로 할 것인지를 결정해야 한다. 새 차가 초기 비용만 투입하면 사후 보증이나 편의성 등 모든 측면에서 뛰어나지만 1년 동안의 단기 체류자에게는 부담스럽다. 신차 구입 후 2년 동안 가격 하락 폭이 가장 크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선호되는 차량 중 하나인 도요다 캠리의 경우, 새 차를 사서 1년 만에 팔면 가격이 4000~5000 달러 정도 하락한다는 것이 현지 딜러들의 설명이다. 그 이후부터는 대체로 1년에 2000 달러 정도 가격이 빠진다. 물론 중고차는 수리비를 감안해야 한다. 자동차 리스는 최저 기간이 2년이다. 1년 체류자의 경우 2년 리스로 빌려서 1년 사용하고 다른 사람에게 리스 계약을 넘길 수는 있지만 정상적으로 계약이 이전되지 않을 경우 본인이 2년치 리스료를 부담해야 하는 등 리스크가 높다. 나는 이런 점들을 고려, 출시된 지 3~4년 정도에 주행거리는 4만~5만 마일 정도의 중고차를 사서 타다가 팔고 가는 것이 1년 정도의 단기 체류자에게는 가장 좋은 옵션이라는 판단을 내렸다.
차종은 거리에서 가장 많이 보이는 도요다의 캠리로 결정했다. 이제부터는 협상이다. 대부분의 도요다 딜러 샵에는 한국인 딜러가 있는 만큼 너무 위축될 필요는 없다. 그러나 미국에서 중고차 딜러는 Vulture로 부른다. Vulture가 죽은 짐승을 뜯어먹고 사는 새이니 중고차 딜러의 위상이 어느 정도인지 미뤄 짐작할 수 있다.
딜러 샵을 방문해 차를 구입하는 경우라면 차에 붙어있는 가격표에서 최소 2000 달러는 후려치고 들어가는 것이 전략이라면 전략이다. 일단 딜러 샵에서는 차에 붙여놓은 가격표로 딜을 시작한 것이고 다음 딜은 고객이 맨 처음 제시한 가격에서부터 시작되기 때문이다.
중고차의 경우는 딜러 샵에서도 고객이 깎는 것을 당연시하고 애초에 높은 가격을 붙여 놓는다. 물론 흥정에 들어가기 전에 차를 꼼꼼히 점검하고 시승도 해보면서 협상시 활용할 하자를 최대한 많이 찾아내야 한다. 사고 유무나 소유주 변동 상황, 차량 분해 여부, 침수 등으로 인한 차량 피해 여부, 연도별 마일리지 등을 확인할 수 있는 Vehicle History Report도 필수 확인 사항이다. 출시 연도에 비해 마일리지가 과도하게 많은 차량(1년 동안 1만 2000~1만 5000마일 정도면 평균치로 봐도 된다), 보증(Warranty) 기간이 지난 차량 등은 이 점을 협상에 활용하면 유리하다.
나는 75년의 신용을 자랑한다는 Kelly Blue Book(www.kbb.com)의 가격을 참고해서 도요다 딜러샵 두어 군데를 들른 뒤 2002년식 캠리(42582 마일)를 1만3989달러에 샀다. 추가로 딜러 Fee(299달러)와 딜러 등록세(25달러)를 부담했는데 딜러 등록세를 왜 내가 부담해야하는지는 의문스러웠다. 참고로 Kelly Blue Book에 내가 구입한 캠리와 비슷한 조건의 차량 매입 추정가(딜러샵 매입)는 1만4998달러였다. 물론 딜러샵에 전시된 차량에는 1만4000달러~1만8000달러의 가격표가 붙어있다. 개인간 매매 추정가는 1만2590달러로 나왔다. 딜러샵 매입 추정가가 개인간 매매 추정가 보다 비싼 이유는 딜러샵에서 파는 차는 필수 검사와 정비를 끝내고 일정 기간 동안(내 경우는 출시 후 6년 동안 6만 마일) 주요 부품의 고장 부분을 보증해주기 때문이다.

자동차 보험 가입하기


보험료는 보상 범위(Coverage)를 어떻게 정하느냐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우선 종합보험(Comprehensive coverage)으로 할 것인지 책임보험(Liability coverage)만 들 것인지를 판단해야 한다. 책임보험도 기본 항목에 보상 범위를 추가할 수 있는데 보상 범위가 넓어질수록 당연히 보험료도 올라간다.
특히 미국 내 운전 경력이 없고 미국 운전면허를 취득하지 못한 사람의 경우 보험료가 껑충 뛴다. 내 경우, 버지니아주 페어펙스 지역의 한국인 보험 대행 업소(All star Insurance)를 통해 AIG 보험에 가입했는데 보험료가 무려 6개월에 1138 달러(부부 동반)가 책정됐다. 한국에서의 자동차 보험 가격만 입력돼 있는 나로서는 터무니없이 높은 가격에 입이 쩍 벌어질 정도였다.
한국 내 자동차보험사가 발급한 무사고 운전 증명은 미국 보험사들이 인정해 주지 않았다. 대행사측에 따르면 단기 체류자들의 경우, 미국 운전면허를 발급받기 전이라도 한국에서의 무사고 운전 경력이 확인되면 보험료를 할인해줬으나 이들의 사고 빈도가 높아지면서 4년 전부터 정책이 바뀌었다고 한다. 갓 미국에 도착한 이들은 미국 도로에 익숙치 않고 영어에 익숙치 않아 한국에서의 무사고 운전 경력이 사고 확률을 낮추는 요인으로 작용하지 않는다는 판단을 내렸다는 것이다. 또 다른 보험사 직원은 9.11 테러 이후 보험 정책이 엄격해졌다고 설명했다. 어느 쪽이든 보험사가 이런 저런 핑계를 들어 이익을 극대화하겠다는 정책을 세웠고 그 정책에 대행사들이 발을 맞추고 있다는 점만은 분명해 보였다. 대체 테러와 보험료 할인이 무슨 상관관계가 있다는 말인가.
보험은 주 정부 보험과 민간 보험사 보험 중 선택하면 되는데 주 정부 보험이 민간 보험에 비해 가입이 쉽다. 보험료는 1년분을 한꺼번에 내기보다는 분할 납부하는 것이 유리하다. 미국 생활을 하면서 보다 유리한 조건의 보험사로 변경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운전면허를 따도 보험료가 할인된다.
내가 가입한 AIG 보험 내역(Policy Information)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Bodily Injury Liability(보험든 사람 부주의로 사고를 냈을 경우 상대방 인명에 대한 피해보상):사고당 5만 달러, 1인당 2만5000달러
2)Property Damage(보험든 사람 부주의로 상대방 차에 손상을 입혔을 경우의 피해 보상): 사고당 2만 달러
3)Medical Expense:1인당 5000달러
4)Uninsured Motorist Bodily Injury(UMBI, 무보험인 상대방 과실로 보험자가 다쳤을 경우 보험든 사람에 대한 피해보상):1인당 2만5000달러, 사고당 5만달러
5)Uninsured Motorist Property Damage(UMPD, 무보험인 상대방 과실로 보험자 차량이 파손된 경우 보험든 사람에 대한 피해보상):2만달러
6)Collision(보험든 사람 잘못으로 인한 自車 피해보상):보험든 사람 500달러 부담, 나머지 금액 보험사 보상
7)Comprehensive(차량 도난, 돌멩이나 동물과의 충돌, 제3자에 의한 차량 파손 등 보험든 사람 잘못 외의 사유로 인한 보험자 차량 피해보상):보험든 사람 100달러 부담, 나머지 보험사 보상
이상 7가지 항목에 대한 보험료 중에서 가장 금액이 큰 항목은 6번째 항목인 自車 피해 보상으로 404달러다. 차량 가격이 그다지 높지 않다면 이 항목은 제외해도 무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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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찾은 미국 사회는 내게 각박한 곳이라는 이미지로 다가왔다.

살 집을 계약할 때의 일이다. 워싱턴 특파원으로 미국에 주재하고 있는 회사 선배가 아파트 임대회사와 가계약을 맺고 내게 연락했다. 미국에 오기 전이었던 나는 집 문제는 일단 해결됐다고 생각했으나 본계약이 체결될 때까지는 상당한 시일이 소요됐다. 무엇보다 내가 월세를 꼬박꼬박 낼 수 있을 만한 재정 능력을 보유하고 있음을 임대 회사측에 확신시켜야만 했다. 나는 재직 증명서와 근로소득원천증명서, 한국언론재단의 연수비 지원 증명 서류를 팩스로 송부했으나 회사측은 서류의 원본을 받을 때까지는 계약을 보류했다. 국제우편으로 원본을 보낸 후에야 임대차 계약이 체결됐다. 올 7월 27일 미국에 도착해서도 그 달 말일까지 5일 동안의 임대료를 지불한 후에야 아파트 열쇠를 손에 쥘 수 있었다.

나는 이 것이 미국식이구나, 라고 생각했다. 맺고 끊는 것이 확실한 미국식이 합리적이고 배울 점이 있다고 판단했다. 아무리 월세라 하더라도 보증금 정도받고 세를 놓고, 자투리 5일 정도라면 그냥 살게 해주는 한국의 집 주인과 기업형으로 운영되는 미국식 임대 회사와는 달라야 하지 않겠는가.

그런데 미국에 도착한 직후, 나는 미국식의 추한 뒷모습을 봤다.

미국에 도착한 다음 날 임대 사무소에서 서류 한 뭉치가 전달됐다. 나는 계약 서류들을 읽어 내려가다 화가 치밀어 올랐다. 전날 임대 사무소에서 서명하라고 내밀던 것들이었는데 크고 작은 명목으로 나의 부담을 명문화한 서류들이었다.

예를 들면 이런 것들이다.

방문객용 주차증은 가구당 1장씩 발급되며 읽어버리거나 도난 당하면 재발급은 없다, 방문객용 주차증으로 거주자 주차장 외의 장소에 주차하면 알리지 않고 견인한다, 열쇠 잃어버리면 개당 50달러 물어내야 한다, 임대료는 매달 1일에 납부해야 하고 4일 이상 지체하면 임대료의 5%를 지체료로 부과한다, 미불 임대료가 50달러 넘으면 매달 6일에는 변호사에게 넘겨 소송 진행하겠다, 임대주택 안이든 밖이든 뭔가를 교체하려면 사전에 허가받아라...

한 마디로 단 돈 1센트도 손해보지 않겠다는 자세다. 방 빼기 70일 전에 사무소에 계약 종료 의사를 밝혀야 하고 손상 부분 발견되면 공정한(?) 시장 가격을 기준으로 배상액을 책정해 문서로 통보하겠다는 규정도 있었다. 미국에서는 밀린 월세 떼어먹고 야반도주하는 일이 많다고 하니 임대 회사의 입장을 이해 못할 바 아니다. 계약이야말로 자본주의의 핵심 요소라는 사실도, 배워서 안다.

문제는 그들이 임차인에게 가혹한 만큼 자신에게도 같은 잣대를 적용하고 있느냐다. 가구 하나 없이 텅 빈 아파트에서 유일하게 장판이 깔린 주방에 이불을 펴고 첫 날 밤을 지샌 우리 가족은 한 밤 중에 바퀴벌레들과 격전을 치러야 했다. 화장실 세면대의 물받이 플러그는 헐거워져 제 구실을 못했고 에어컨 바람은 프레온 가스가 떨어져 시원하지 않았다. 주방의 유리창 하나는 금이 가 있었다. 이 것은 불합리한 상황이다. 임대회사가 자신에게 관대한 또 다른 잣대를 들고 있다는 점에서 불합리했다. 직전 임차인에게 하자 부분에 대한 배상을 받아냈거나, 내가 주장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계약 만료 시점에 그 하자들의 배상을 나에게 요구할 수 있다는 점에서 임차인은 부조리한 상황에 처하게 된다.

가뜩이나 시차 탓에 눈은 쑤시고 머리는 어질어질한 속에서 나는, 매우 화가 났다. 임대 사무소로 찾아갔으나 그 날은 수요일이었다. 사무소 직원들은 월,목,금,토요일은 오전 10시에서 오후6시까지 일하고 나머지 요일은 낮 12시부터 오후6시까지 근무한다. 요일 별로 임차인의 민원 분량에 차이가 있는 것도 아닐텐데 말이다. 오후에 다시 찾아가 바퀴벌레부터 부엌 유리창까지 모두 해결해달라고 요구했다. 약간 금이 갔을 뿐인 부엌 유리창은 통째 교체하기엔 너무 아까운 생각이 들어 전 날 집을 점검할 때는 한국식으로 그냥 넘어갔던 부분이었다.

후에 케이블과 인터넷을 설치할 때도 그랬다. 사전 예약은 필수라는 미국 사회라서 시간 관념이 정확한 것으로 믿고 있다가 낭패를 당했다. 분명 오후 3시~5시에 온다던 케이블 회사 기사는 오후 6시가 넘어서야 도착했다. 케이블 회사측에 3차례나 독촉 전화를 걸어 채근한 후였다.

''권리 위에 잠자는 자는 법의 보호를 받을 수 없다''는 法諺이 생생히 살아 숨쉬는 나라에 왔다는 자각 속에, 우리 가족은 정말 정신차리고 살고있다. 조남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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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지니아 정착기(1) - 조남규(세계일보/조지타운대)
해외 연수를 온 단기 체류자가 미국에서 정착하는 것은 이민 온 사람들과는 많은 차이가 있다. 특히 신용도 없고 사회보장번호나 운전면허 같은 신원 증명문서를 마련하기 전에 전화 개설이나 자동차 구입 등 정착에 필수적인 문제들을 해결해야 하는 문제는 간단한 일이 아니다. 버지니아 지역의 특수한 상황이기는 하나 개인적인 정착 경험을 소개한다.

1. 공항에서 짐 부치기
규정상 성인 한 사람 당 32㎏짜리 짐을 2개씩 부칠 수 있다. 우리 가족은 고1, 중3 아이들을 포함, 4명이 8개까지 짐을 부칠 수 있는 만큼 샘소나이트 이민 가방(롯데백화점 샘소나이트 코너에서 11만8000원 짜리를 50% 할인한 5만9000원에 판매)을 7개가 준비했다. 그러나 막상 공항에 도착해 출국 수속코너 앞에 준비된 저울에 달아보니 7개 중 6개가 적게는 2㎏에서 많게는 13㎏까지 초과한 상태였다. 부랴부랴 가방 가게로 달려가 이민가방(샘소나이트 것 보다 천이 얇고 폭이 좁았는데 개당 5만2000원) 1개를 사서 뭇사람이 지켜보는 가운데 부엌 살림이며 옷가지들을 옮겨담을 수 밖에 없었다. 결국 1개로 부족해 1개를 더 사서 나누는 바람에 수하물이 초과되고 말았는데 항공사측은 초과 수하물 1개당 13만5000원씩 부과했다. 비행기 출발 시각(10시 45분)보다 무려 3시간 30분 가량 일찍 나왔는데 짐부치는데 시간이 많이 걸려 환전하고 스카이 패스에 마일리지 등록하고 출국증명 발급(직장의료보험을 1년 동안 정지시키기 위해 필요한 서류로 당일은 발급이 안되므로 공항 출입국 등록소에서 위임장 서류를 가져다가 작성하고 미리 신분증 사본을 한 장 준비해 뒀다가 환송나온 지인에게 맡기면 출국 후 지인이 가까운 동사무소에 가서 발급받아 회사로 보내주도록 부탁하면 된다)하는 등 여기저기 다니다보니 출국 수속 후 면세점 들릴 시간이 없을 정도로 빠듯했다.

2. 덜레스 공항에서 아파트로
미국 워싱턴 덜레스 공항에 도착해서도 걱정거리는 무려 9개(핸디케어 4개는 제외)로 늘어난 보따리였다. 무엇보다 수하물 통과가 문제였다. 1995년 입국 당시 세관에서 일일이 짐 검사를 당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누군가 포터를 사면 수월하다고 말했던 기억이 났고 짐 자체도 많았던지라 포터를 샀는데 그 값을 했다. 검사원은 식품류가 포함돼 있느냐는 질문 하나만으로 통과시켰다. 가방에는 고추장과 마른 반찬, 건어물 등이 가득 들어있었지만, 나는 물론 없다고 대답했다. 공항에서 임대한 아파트까지는 밴 택시로 이동했다. 20분 정도 거리인데 요금은 짐이 많다는 이유로 40달러를 요구했다. 팁을 안주면 요구한다.

3.아파트 계약서
임대 사무소에서 계약서와 함께 서류를 한 뭉치 갔다준다. 계약서는 은행계좌 개설이나 사회보장번호 신청시 필요하니 별도로 관리해야 한다. 도착한 날 임대 사무소에서 서명하라고 내밀던 것들이었는데 대부분이 이런 저런 명목으로 나의 부담을 명문화한 서류들이었다.
대충 이런 내용이다.
방문객용 주차증은 가구당 1장씩 발급되며 읽어버리거나 도난당하면 재발급은 없다, 방문객용 주차증으로 거주자 주차장 외의 장소에 주차하면 알리지 않고 견인한다,주차증 반납안하면 25달러 물린다, 열쇠 잃어버리면 개당 50달러 물어내야 한다, 임대료는 매달 1일에 납부해야 하고 4일 이상 지체하면 임대료의 5%를 지체료로 부과하며 미불 임대료가 50달러 넘으면 매달 6일에는 변호사에게 넘겨 소송을 통해 해결하도록 하겠다, 임대주택 안이든 밖이든 뭔가를 교체하려면 사전에 허가받아라, 기존 열쇠 교체하기 원하면 25달러 부담해라, 발코니나 현관 앞, 복도 등에 쓰레기버리면 자동적으로 25달러 벌금이 부과된다, 계약 여부를 계약 만료 75일 전에 통보해야하고 임차인은 임대차 계약 종료 의사를 60일 전에 문서로 통지해야 한다, 임차 물건을 점검한 뒤 손상 부분이 발견되면 공정한(?) 시장 가격을 기준으로 배상액을 책정해 방 빼기 30일 전에 문서로 통보하겠다는 등등.
거꾸로 임차인도 불편한 사항의 시정과 편의 증진을 위한 조치를 적극적으로 요구할 권리가 있다. 우리 집은 가스 레인지 4곳 중 3곳의 점화장치가 고장난 상태였고 화장실 세면대는 물을 받아놓는 플러그가 망가져 있었다. 바퀴벌레도 눈에 띄었고 에어컨 바람도 시원하지 않았다. 요구하면 고쳐주나 여러 번 채근해야 한다. 이런 하자들을 그냥 놔두면 나중에 방 뺄 때 덤터기쓸 수 있다.

4. 은행계좌 개설하기
미국은 공짜가 없는 나라다. 내가 임차한 아파트의 월세 납부일은 매 달 1일이다. 나는 7월27일 도착했으니 그 달 말일까지 5일을 보낸 뒤에야 8월치 임대료를 납부하는 날이 된다.
한국에도 월세가 있지만 나와 같은 상황에서 주인이 임차인에게 7월달 자투리 기간까지 돈으로 계산해서 받아냈을까 싶다. 그러나 이 곳은 반드시 받아낸다. 나도 3백달러 가까운 5일치 임차료를 지불한 뒤에야 아파트 열쇠를 받을 수 있었다.
현금은 안 받는다. 그래서 근처 가게에 가서 수수료를 내고 머니 오더를 받아 납부했다. 돈 거래를 투명하게 하겠다는 취지이리라. 이런 사정인지라 개인수표를 사용할 수 있는 은행계좌 개설이 급했다. 미국 계좌에는 크게 Checking Account와 Savings Account가 있다. 전자는 개인이 수표를 발행해 사용할 수 있는 계좌다. 보통은 횟수에 관계없이 수표를 발행해 쓸 수 있다. Checking Account에는 최저 잔고액수(Minimum balance requirement)를 정해놓은 상품과 최저 잔고액수를 정해놓지 않은 상품이 있는데 전자의 경우 수표 발행 수수료면제나 인터넷 뱅킹 무료 등 이런저런 혜택이 있는 반면 잔고가 설정한 최저 잔고 아래로 내려가면 수수료를 지불해야 한다. Savings Account는 Checking Account와 달리 시세 금리에 따라 이자를 지급 받는다. 대신 Savings Account는 수표 사용이나 계좌 이체 횟수가 제한돼 있다.
나는 인근에 위치한 SunTrust Bank에 가서 조지타운 대학에서 보내준 DS-2019와 비자를 신원확인 서류로 제출하고 Checking Account를 개설했다. 예치해놓고 곳감 빼먹듯 인출해 쓰는 단순한 입출금 통장이다. 은행 입장에선 이자는 주지않으면서 계좌 이체 수수료 등을 받아낼 수 있고 예치된 돈을 굴릴 수 있으니 무조건 남는 장사다. 그런데도 사회보장번호가 나오지 않은 예금자에게는 신상 정보를 꼬치꼬치 물어본 뒤에야 발급해준다. 9.11 사태의 여파다.
한국의 거래은행에 가서 인터넷 뱅킹을 신청하고 유학생 지정을 받아오면 편리하다. 국내에서 송금받는 것 보다 수수료도 저렴하고 환율 우대도 받을 수 있다. Routing number와 미국 현지 은행의 계좌번호 둘 다 필요한 경우도 있고(국민은행) 계좌번호만 입력하면 되는 은행(제일은행)도 있다.

5. 전기-전화-핸드폰-케이블-인터넷 가입하기
미국에 온 외국인은, 아직 사회보장번호를 받기 전이라면 전화 한 대 가입하는데만도 시간과 돈을 투자할 각오를 해야한다.
전기회사(Virginia Power)와의 계약은 임대 사무소에서 대행, 입주하는 날 사인 하나로 해결됐다. 전화는 Verizon Phone Company에 신청했는데 인적 사항을 확인하던 전화회사 직원은 내가 사회보장번호도 발급받지 못한 외국인으로 판명되면서부터 꼬장꼬장해졌다. 신원을 증명할 수 있는 증명서 2통(사진이 들어있는 여권이나 비자, 국제운전면허증 등)을 팩스로 확대복사해서 보내고 Advance payment 55달러와 deposit 40달러를 Vienna 지역에 위치한 Verizon Phone Company(웨스트 버지니아주 소재) 지점에 직접 찾아가 납부하도록 요구했다. 팩스로 송부할 때는 전화회사에서 알려주는 등록번호(14자리)를 증명서에 기재해야 한다. 지점이라고 해서 우여곡절 끝에 찾아간 곳은 슈퍼마킷이었는데 지역 상점과 위임 계약을 맺고 지점 업무 일부를 대행토록 하고 있었다. 단순 업무를 아웃소싱해서 조직을 경량화하겠다는 취지로 이해됐다.
어떻든 이 곳에서 팩스 보내고 영수증 받아 전화회사로 연락하면 회사측은 입금 사실을 확인하고 전화를 개통시켜준다. 그러나 개통까지 1주일이나 걸렸다. Local 통화 요금은 다른 옵션이 없다면 월 22달러 53센트(Tax 제외)로 무제한 통화가 가능하고 설치료는 38달러 50센트다. 설치료는 3分해서 첫 3개월 통화료와 함께 부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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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영 전 금감위원장이 대북송금 특검팀에 의해 지난 20일 긴급체포됐다. 특검팀은 이 전 위원장이 산업은행 총재로 재직중이던 2000년 6월 현대상선에 대한 4000억원 대출건을 승인한 행위에 업무상 배임 혐의를 적용할 방침이다. 이용근 전 금감위원장이 뇌물 수수혐의로 구속된 것이 이달 초다.전직 수장의 잇따른 형사처벌 소식에 금감원 직원들의 자괴감은 한없이 깊어가고 있다. 내부에서는 ''경제 검찰'' 금감원의 명성에 먹칠한 전직 수장들의 일탈행위를 탓하는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있다.

과연 전직 수장들에게만 책임을 떠넘기는 것이 타당한가. 금감원은 지난해 말 대북 거액 송금문제와 관련, 산업은행의 현대상선 4000억원 대출배경에 의혹이 집중된 이후 산업은행에 대한 일차 감독기관으로서의 책임을 방기했다는 지적을 면할 수 없다. 금감원 관계자는 "감사원이 산업은행의 현대상선 대출 감사를 착수하기로 해 금감원이 개입할 여지가 없었다"고 해명했으나 선뜻 납득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올 1월 감사원이 산은의 현대상선 대출감사 결과 이근영 당시 산은총재와 박상배 부총재의 감독소홀 및 여신규정 위배 사실을 재경부 장관에게 통보한 이후라도 산은에 대한 검사에 나서는 것이 순서다. 일말이라도 수장인 이근영 전 금감위원장이 연루돼 있다는 점이 금감원의 칼날을 무디게 한 것은 아닌지 자문해 볼 일이다.

금감원이 취한 조치라곤 산업은행이 2000년 8월 ''50억원 이상 거액 신규여신 현황''을 금감원에 보고하면서 그 해 6월7일 현대상선에 4000억원을 여신 승인한 부분을 누락시킨 부분과 관련, 산은에 과태료 500만원을 부과한 것이 고작이다.

감독기관의 힘은 피감기관보다 우월한 도덕성에 기반한 것임을 금감원은 이번 사태를 계기로 뼈저리게 되새겨 봐야 할 것이다. 조남규 경제부기자

새천년민주당이 창당 2년만에 간판을 내리고 있다. 10일 신당 창당을 당론으로 공식화한 당무회의는 "국민과 시대의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서"라고 군색한 이유를 댔다. 그럴듯한 포장을 하고 있으나, 실제로는 신당 추진론자들이 공공연히 말하고 있듯이 연말 대선 승리에 집착하고 있다. 그래서 눈앞의 권력욕구 때문에 철학과 명분도 없이 정당정치를 포기한다는 비판을 받는다. 대선과 총선을 앞두고 이뤄진 87년 평화민주당 창당, 95년 국민회의 창당, 한나라당과 그 전신인 신한국당과 민자당의 생성 과정과 다를 게 없다.미국의 양대 정당으로 뿌리내린 공화당과 민주당의 창당 연도는 각각 1854년,1792년이다. 공화당과 민주당이 선거전략만으로 강령과 당명을 포기했다면 지금의 양당제 정착은 힘들었을 것이다. 그들은 권력을 주고받으면서 오늘에 이르렀다.

상공업자가 주축이 되어 결성된 미 공화당은 1860년 노예제 폐지론자인 링컨을 공화당 최초의 대통령에 당선시킨 뒤 반세기 동안 집권당을 했다. 민주당은 줄곧 소수당에 머물렀으나 서민층 우선주의 정책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 때문에 1929년 대공황이 발생한 뒤 루스벨트 후보부터 트루먼, 케네디, 존슨 대통령을 배출했고 의회 다수당이 되었다. 1970년대부터는 미국 사회가 보수화하면서부터는 공화당의 득세로 이어졌다.

영국의 노동당과 보수당도 19세기말 설립된 이후 정체성을 유지하고 있다. 정치적 상황과 역사적 배경이 다른 우리를 미국 영국과 단순비교하는 것은 무리일지 모른다.

그러나 앞서 정당정치를 실험해온 나라들은 국민이 등을 돌렸을 때 채찍질을 견디며 자신을 연단해 온 정당만이 국민의 사랑을 받는다는 사실을 웅변해주고 있다.

趙南奎 정치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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