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은 27일에도 밤 10시가 넘은 시간에 선대위 확대간부회의를 열어 때아닌 공천심사를 했다. 법원이 민주당의 전북 군산 공천효력을 정지시키는 결정을 내린 24일 이래 하루도 빠짐없이 개최되고 있는 심야행사다.24일 밤은 전북 군산 강현욱(姜賢旭) 후보의 재공천 근거를 마련하기 위해 열렸다. 16대 총선 군산선거구 후보자 공모 및 접수와 강후보 재공천으로 이어지는 시나리오는 회의가 시작되기 전 이미 짜여졌다. 이를 위해 공직후보로 등록하는 데 제한이 될 사유 등 공천취소사유 발생시 공천을 취소하고 재공천한다는 조항을 당규에 신설했다.

25일 밤에는 이날 하루동안 공모에 응한 신청자를 놓고 심사를 거쳐 공천자를 결정하기 위해 또 모였다. 민주당 후보자 추천규정에 맞게 공천신청기간인 2월1∼7일 군산에 공천신청한 12명 가운데 두 사람이 또다시 신청을 냈지만 들러리에 불과했다.

민주당은 다음날에도 전남 함평-영광과 인천 남구갑 등의 공천무효소 제기 대응방안 마련으로 부산했다. 또 한차례 당규를 뜯어고쳤다. 인천 남구갑 공천탈락자가 공천무효청구소송의 근거로 삼은 지구당 대의원대회 절차규정에 '긴급상황이 있는 지구당은 당무위 의결로 그러하지 아니할 수 있다'는 단서조항을 달았다. 구멍난 부분을 땜질한 셈이다. 민주당은 이같은 과정을 "사법부 판단을 존중, 법적 하자를 치유한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일련의 절차상 하자를 잉태한 숙주(宿主)인 밀실공천에 대해서는 눈을 감고 있다. 16대 총선공약으로 "공직후보 선출과정의 투명성을 제고, 정당의 민주화를 추진하겠다"고 내건 정당이 맞는지 의심스럽다.<조남규 정치부기자>

중국을 통해 러시아로 들어가려다 실패,중국 정부에 넘겨진 탈북자 7명이 다시 북한으로 강제 송환된 12일 외교통상부 당국자는 "한국 송환을 위해 노력중"이라고 말했다. 13일 우다웨이(武大偉) 주한 중국대사가 이 사실을 통보하기 전까지 했던 얘기를 되풀이한 것이다. 탈북자의 북한 송환은 중국의 일방적 결정,일방적 통보였다. 우다웨이 대사는 북-중 국경조약에 따라 '법대로’처리했다고 설명했다.

러시아 국경수비대가 이들 탈북자를 중국으로 추방할 당시 상황도 비슷했다. 정부는 러시아가 모스크바 유엔난민고등판무관(UNHCR)의 탈북자 접촉을 허용하고 이들에게 출국비자까지 발급한데 안도하고 있다 뒤통수를 맞았다. 러시아 외무부는 "우리도 몰랐다"고 시치미를 뗐으나 예브게니 아파나시예프 주한 러시아대사는 "중-소국경조약에 따른 결정"이라고 당당히 말했다.

탈북자 추방은 이인호(李仁浩)주 러시아 대사가 그리고리 카라신 러시아 외무차관을 만나 협조를 구한 지 3일만에 이뤄졌다. 북한 송환은 홍순영(洪淳瑛)당시 외교통상장관이 탕자쉬안(唐家璇)중국 외교부장관에게 협조서한을 보낸 지 1주일만이다. 한국 정부와 상의는 커녕 사전 통보도 없었다.

외교당국은 그동안 김대중(金大中)대통령 러시아 방문을 계기로 한-러관계가 그 어느 때보다 밀월상태임을 강조해 왔다. 탕자쉬안 부장과는 통상적 외교관례를 넘어 온천욕을 함께 할 정도가 됐다고 자평했다.

결과는 정반대였다.

자신감도 중요하지만 '외교관이란 자기 나라를 위해 거짓말을 하라고 외국에 보내진 정직한 사람’이라는 정의를 되새겨봐야 할 때가 아닐까.

<趙南奎 정치부기자>

24일 헌법재판소가 일부 재판도 헌법소원 대상이라고 결정한 배경을 살펴보면 헌재와 대법원간의 「권한다툼」성격이 짙다는 생각을 떨어버릴 수 없다. 이 결정은 표면적으로는 대법원이 헌재의 한정위헌판정을 받은 구소득세법 조항을 헌재 결정을 무시한 채 그대로 적용해 판결한 데 대한 반작용으로 나왔다.헌재가 95년 11월 『실거래가를 기준으로 과세할 수 있는 경우를 구체적으로 명시하지 않은 구소득세법은 조세법률주의에 어긋난다』고 위헌결정하자,대법원은 이같은 결정이 법원의 고유권한인 법률해석권을 침해한 것이며 내용상으로도 부동산투기를 방조하는 것이 돼 따를 수 없다고 판단한 것. 당시 헌재는 대법원이 『헌재의 위헌결정은 단순한 견해 표명에 불과하다』고 한 점을 「모독」으로까지 받아들였다.

그 때문인지 헌재 관계자들은 24일 결정 직후 『그쪽(대법원)에서는 돌을 던졌는지 몰라도 우리는 그 돌에 맞아죽는 개구리 처지』라는 등 원색적인 표현으로 결정의 불가피성을 설명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대법원이 헌재의 퇴노를 완전히 차단하고 선제공격했기 때문에 헌재로서도 물러설 수 없었다』고도 했다.

이번 결정을 계기로 표면화한 두 헌법기관의 대립양상은 사실상 6공 당시 대법원 외에 헌법재판소라는 또 하나의 최고재판소를 만들 때부터 잠복해 있던 것이다. 법률의 위헌여부 심사권을 갖는 헌재와 명령­규칙 등 하위법률의 위헌심사권을 갖는 법원이 심리과정에서 그 경계선이 모호해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90년 10월 헌재가 대법원규칙인 법무사법 시행규칙을 위헌이라고 결정한 것이 그 대표적 케이스다. 당시 헌재에 법무사법 시행규칙에 대한 헌법소원이 접수되자 대법원이 규칙개정을 약속하며 위헌결정 보류를 요청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한 법원관계자는 『이 일로 대법원이 헌재에 대해 좋지 않은 감정을 갖게 돼 헌재와의 갈등 국면이 조성된 것 같다』고 분석했다.

물론 양자간 견해차는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두 기관 모두 국민 기본권을 보장하는 최후보루라는 점을 감안하면,견해차가 지금처럼 권한다툼 양상으로 전개돼서는 곤란하다. 조남규 사회부기자 1997년 12월26일

검찰이 개혁의 기치를 들었다. 타의가 아니라 검찰 스스로 추진하는 제도개혁 작업이다. 19일 발족한 검찰제도개혁위원회가 그 작업을 주도하고 있다. 검찰간부 외에도 대학교수 언론인 변호사 판사 등 외부 인사들이 위원으로 위촉됐는데, 평소 검찰에 비판적인 인사도 여럿 포함됐다고 한다.검찰은 이같은 점을 들어 통과의례나 일방통행이 아닌 심도 있는 의견수렴이 이뤄질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특별검사제 도입과 같은 부담스런 사안도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백지상태에서 다루겠다는 것이다.

김태정 검찰총장도 이날 개혁위 첫 회의에서 『과감하게 발상을 전환하고 구각을 깨뜨리는 자기혁신을 추구하지 않고서는 국민들에게 외면당하고 만다는 것이 역사의 교훈』이라고 지적했다.

그런데 검찰의 개혁작업을 바라보는 시각에는 이른바 「음모론」도 엄연히 존재한다. 그 하나가 야당시절 줄곧 검찰개혁을 주창해 온 새 정부가 칼을 빼들기에 앞서 검찰 스스로 제도개혁을 추진해 예봉을 피하려는 속셈이라는 주장이다. 검찰이 재정신청 범위 확대 등 일부 사안은 받아들이는 대신에 특별검사제나 검찰총장 인사청문회 등은 개혁위의 이름을 빌려 자신들의 입장을 관철시키려는 전략이라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검찰이 집권자로 입장이 바뀐 새 정부의 검찰관이 달라지기를 기대하며, 일단 개혁위를 가동시켜 시간을 벌고 있다는 의심의 눈초리다.

지난 93년 11월 대법원도 문민정부의 개혁바람이 불어오자 사법제도발전위원회를 구성해 자체 개혁을 추진한 일이 있다. 당시 상고제도 개선과 행정법원 신설 등 일부 개선방안이 마련됐으나, 정부는 진정한 사법개혁이 이뤄지려면 법조인 양성이나 선발제도의 틀부터 뜯어고쳐야 한다는 여론이 일자 95년 초 또다시 사법개혁에 나섰다.

검찰의 자기혁신도 사심 없는 여론수렴이 전제되지 않을 경우, 「타의」에 의한 개혁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시사하는 사례이다. 검찰 개혁을 음모론으로 보는 게 옳으냐 그르냐에 대한 해답은 전적으로 검찰의 손에 달려 있다. 조남규 사회부기자  1998년 1월20일

서울지법 의정부지원 전­현직 판사들의 금품수수 파문이 불거진 16일,대법원은 매우 침통한 분위기였다. 이날로 예정됐던 고법­지법원장 인사마저 연기한 채 「진상조사단」을 구성했다. 이순호 변호사 비리사건 수사과정에서 판사들의 금품수수설이 보도될 때마다 「자체 조사」 내용을 근거로 보도 내용을 부인하던 법원이 또 다시 자체조사에 나선 것이다.법원은 이날 금품수수 자체를 부인하던 종전과 달리 금품수수 행위는 인정했다. 판사들은 대부분 이번 파문이 검찰의 「의도적 흘리기」 탓으로 확산됐다고 불만을 토로한다. 개인간 금전 거래를 「뇌물」로 곡해한 악의적 비난이라는 시각도 있다. 법원의 진상조사가 과연 환부를 스스로 도려내겠다는 각오 아래 진행되는 것인지 의심스럽게 하는 대목이다.

검찰의 반응은 더욱 이해하기 힘들다. 검찰은 파문이 불거지자 의정부 지원 전­현직 판사들의 금품수수 혐의와 관련한 계좌추적 자체를 부인한 뒤,『수사할 수도 없고,할 계획도 없다』고 잘라 말했다.

검찰 수뇌부의 표정에는 곤혹스러운 기색이 역력했다. 한 검찰 고위 간부는 『검찰의 판사 수사는 금기사항이다』고 강조했다. 『개인간 금전거래를 어떻게 수사하느냐』는 설명을 듣노라면,검찰이 「빌린 돈」이라고 주장하는 판사들의 일방적 해명을 「변호」하고 있는 듯한 느낌마저 든다. 검찰은 이변호사 비리수사에서 비롯된 이번 파문으로 자칫 법원과의 관계가 악화될 것을 우려하는 눈치다.

검찰은 71년 당시 서울형사지법 이범렬(작고) 부장판사와 배석판사,참여서기 등 3명에 대해 수뢰혐의로 영장을 청구했다가 전국 법관 4백15명 가운데 1백51명이 사표를 내는 「사법파동」을 초래한 바 있다.

그 때 혐의는 이판사 등이 심리중인 국가보안법위반 사건 증인의 증언청취를 위해 3일간 제주도를 다녀오면서 변호사에게서 왕복 항공료와 식대 술값 등 9만7천여원어치의 향응을 받았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검찰이 수천만원이 오간 사실을 알고도 수사를 하지 않겠다니 격세지감이 아닐 수 없다.  조남규 사회부 기자  1998년 2월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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