洪淳瑛(홍순영)외교통상장관은 외교에 관한 한 여야를 떠난 초당적 노력이 필수적이라는 입장을 피력해 왔다. 洪장관은 지난해 12월 고려대 국제대학원 강연에서 『효과적 외교가 되기 위해서는 초당적 노력이 필수적』이라며 당시 한-일 어업협정 비준에 비판적인 한나라당의 협조를 촉구하기도 했다.그러나 2일 국회 통일외교통상위에서 불거진 국회의원단 訪美(방미)외교 논란은 洪장관의 「초당외교론」을 곱씹게 한다. 의원단 방미외교 논란은 한나라당 李信範(이신범)의원이 지난 2일 제기했다. 외교부가 법적 근거 없이 6천4백여만원의 의원단 방미외교 경비를 지원하면서 국회 통외위나 한-미 의원외교협의회와 상의조차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외교부는 「외교 목적」을 위해 필요할 경우 국회의원 해외 방문-활동경비를 지원할 수 있다고 해명하고 있으나 전례가 드문 일이다. 당초 의원단 방미는 지난해 6월 金大中(김대중)대통령 방미의 후속조치로 추진됐으나 한나라당 반대에 부닥친 사안이다. 의원단 방미예산을 국회 사무처에서 따내기 힘드는 상황에서 외교부가 예산을 지원한 것이다. 야당이 방미의원단 단장인 朴定洙(박정수)의원의 외교장관 경력과 연결짓는 것도 이런 정황 때문이다.

李의원은 특히 외교부가 국회 통외위 한나라당간사인 자신에게도 한 마디 상의 없이 일을 처리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과연 여야가 첨예히 맞서 있는 사안에 야당과 배치되는 방향으로 외교부가 나설 필요가 있었을까.

洪장관은 『외교정책은 정부만의 배타적 영역이 되기에는 너무 중요한 것인 만큼 집권당과 야당 진영의 사려 깊고 책임감 있는 의견이 반영돼야 한다』고 말했다. 「초당외교론」이 설득력을 얻으려면 이 전제가 먼저 충족돼야 한다. 조남규 정치부기자  1999년 3월4일

윌리엄 페리 미국 대북정책조정관이 최근 집필한 책을 통해 金大中(김대중)대통령의 대북 포용정책을 비판했다는 보도가 나온 6일 정부는 신속히 대응했다.외교통상부는 즉각 페리 조정관의 시각이 金대통령의 포용정책에 관한 「비판」이라기보다는 「우려」로 해석해야 한다고 브리핑했다. 보도가 「과장」됐다는 요지다. 우선 원문 중 「북한의 대량파괴무기 개발 지속은 金대통령의 포용정책이 성공하기 위해 필요한 시간을 앗아가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는 대목은 북한이 핵-미사일과 같은 대량살상무기 개발을 지속할 경우 金대통령의 포용정책이 효과를 볼 수 없다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오히려 「햇볕정책」 테두리내에서 핵-미사일 문제를 해결해야 된다는 점을 강조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외교부의 해석이 과연 옳은 것인가.

그렇지 않다. 페리는 북한 핵과 미사일 문제 해결을 대북 포용정책 선행 조건으로 보고 있으며,현 정부의 대북정책이 현실성을 결여하고 있다는 비판으로도 해석될 수 있다.

보다 중요한 것은 페리의 문제제기가 의미를 갖는 것은 그가 향후 미국의 대북정책을 새로 짜고 있는 장본인이라는 점이다. 뿐만 아니라 정부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페리와 우리 정부의 시각차가 엄존하고 있는 상황이다. 페리의 언급을 「아전인수」로만 해석하는 데 급급한 외교부 모습에선 흡사 수단이어야 할 포용정책이 목표로 인식되고 있는 듯한 인상을 풍긴다.

통일부 당국자는 한 발 더 나아갔다. 그는 『페리조정관의 저서 방향은 페리보고서 내용과는 무관할 것』이라면서 『이 책은 페리가 직접 저술했다기보다 그의 특별보좌관인 애슈턴 카터의 생각이 주로 들어있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이어 『그 내용 역시 개인의 견해일 뿐 여러 사람이 관여하는 페리보고서에는 결정적인 역할을 하지 못할 것』이라고도 했다. 우리 정부당국에게 필요한 것은 섣부른 예단이나 자의적 해석보단 페리의 진의 파악이 우선이다. 조남규 정치부기자  1999년 3월9일

한-일 어업협정 실무협상과 북-미 금창리 협상타결에 즈음해 남-북한 외교력이 다시 비교대상이 되고 있다. 동일한 시기에 남-북한이 각각 일본과 미국을 상대로 벌인 협상 결과가 극명하게 대조를 보인 탓이다.일본과 대등한 입장에서 출발한 어업협상은 타결이 끝난 마당에 다시 일본을 상대로 굴욕적 협상을 벌어야 하는 참담한 상황을 연출한 반면 명분에 있어 다소 밀리는 상태에서 미국과 담판을 벌인 북한은 이번에도 실리를 챙겼다는 것이 대체적 관전평이다.

물론 두 협상을 결과만 놓고 동일선상에서 단순비교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더욱이 국제사회의 룰을 무시한 북한식 외교가 북한의 「깡패 국가」(rogue state) 이미지를 더욱 굳혔다는 비판도 타당한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외교관은 연미복 속에 칼을 숨기고 협상에 임한다는 말이 있듯이 자국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것 또한 외교 목표중 하나라면 우리정부 외교력엔 회의가 들지 않을 수 없다. 한-일 어업협상 과정을 복기해 보면 더욱 그렇다. 외교부는 金大中(김대중)대통령 방일전 타결이라는 마지노선을 먼저 공개,운신의 폭을 스스로 좁히는 실책을 범했다. 자연 협상의 추진력이 약화될 수밖에 없었다.

일본이 일방적으로 어업협정을 파기한 뒤 협상 시작 때까지 해양수산부 대응은 더욱 안일했다. 10개월 남짓한 기간을 십분 활용하지 못하고 5명에 불과한 팀으로 협상에 임한 대목은 수년 동안 치밀하게 준비해 온 일본과 대비된다. 외교부와 해양수산부 공조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평가다.

94년 북-미 제네바 회담 직후에도 유엔 외교가에서는 「한국의 외교실패」라는 분석이 나왔다. 그 분석은 아직도 유효하다는 생각이다. 조남규 정치부 기자  1999년 3월19일

김대중 대통령 당선자 비자금 고발사건 수사 막바지에 터져 나온 김태정 검찰총장의 한나라당 이회창 명예총재에 대한 비난 발언을 두고 뒷말이 무성하다.검찰 총수가 고발사건 참고인에 불과한 사람의 조사거부 태도를 공개적으로 문제삼은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다. 더욱이 그 대상은 제1야당의 전 대통령 후보이자 명예총재다. 그 표현도 이명예총재를 「법조인 출신이라기보다는 자기 인기관리만을 위해 교묘하게 여론을 이용하는 타고난 정치인」이라고 규정해 사뭇 「원색적」이었다.

자연 김총장의 발언에 모종의 정치적 의도가 깃든 것 아니냐는 의혹이 불거졌고,한나라당측의 즉각적인 정치공세가 이어졌다. 한나라당이 최근 김종필 총리 인준안 거부를 당론으로 정하자 검찰이 총대를 메고 「야당 길들이기」에 나선 것이라느니,김대중 당선자의 비자금 문제보다 실명제 위반 쪽에 무게를 둔 수사결과 발표를 앞두고 본질을 호도하려는 술책이라는 등의 의혹이다.

물론 검찰은 그동안 금융실명제 위반 부분의 실체적 진실을 밝히기 위해서는 이명예총재 조사가 불가피하다는 점을 누누이 강조해 왔다. 수사실무 차원에서 비자금을 폭로한 당시 신한국당과 자료를 수집했던 청와대 사정비서관의 「중간 연결고리」인 이명예총재에 대한 조사가 필요하다는 검찰 입장에 이견은 없었다.

게다가 이명예총재의 신분을 고려해 서면조사 방법을 택했고 김당선자 또한 서면조사에 응했다는 점,이명예총재가 비자금 폭로를 방조했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더욱 그랬다. 검찰도 「처벌」보다는 「진상규명」차원이라고 설명,검찰 안팎에서 서면조사 정도는 응해야 한다는 견해가 우세한 상황이었다.

그런데 김총장의 느닷없는 발언으로 상황이 반전된 듯한 느낌이다. 대검 관계자들은 김총장의 비난발언 배경에 대해,『이명예총재 조사가 사실상 물건너가자 섭섭하다는 차원을 넘어선 감정을 갖게 된 것 같다』고 말했다.

정권교체가 이뤄진 상황에서 검찰의 행보에 대한 국민의 관심이 어느 때보다 큰 시점인 만큼 경찰은 보다 신중해야 할 것 같다. 조남규 사회부 기자  1998년 2월23일

종착역을 앞두고 있는 문민정부 경제실정 수사에서 검찰은 과거 그 어느때보다 이같은 상충되는 두 요인 중 어느 쪽을 우선해야 하느냐는 해묵은 話頭(화두)로 고민해야 했다.첫번째 화두는 이번 수사가 역대 어느 정권보다 인권을 중시하는 金大中(김대중) 정부가 들어선 이후 첫 대형수사라는 점에서,두번째 것은 IMF체제하의 첫 경제수사라는 점에서 각별하게 다가왔을 법하다.

그 때문인지 검찰은 형식 면에서 기존 수사와는 사뭇 달라진 모습을 보였다. 그간 불법 논란이 끊이지 않았던 「밤샘조사」 관행을 한솔 임원의 자해 소동이 있은 후부터이기는 하나,상당 부분 자제한 점이 대표적 예다. 「소환=구속」이라는 전통을 자랑하는(?) 대검 중수부가 피의자 성격이 강한 사람도 본인이 원하면 자정 전에 돌려보내는 생소한 수사 기법을 선보인 것.

소환예정자를 미리 언론에 공개하는 친절도 베풀었다. 비밀수사가 빚을 취재 경쟁으로 경제인 소환이 대서특필될 경우 국가신인도에 타격을 줄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한 결정이라는 설명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검찰의 수사과정을 뜯어보면 이런 외면상 모습과 다른 구태가 반복됐던 것도 사실이다.

밤샘조사 문제부터가 그렇다. 밤샘조사 관행이 문제되는 것은 단순히 자정을 넘겨 조사한다는 것보다는 밤샘조사를 자백 강요의 수단으로 삼는 데 있다. 참고인에 불과한 사람을 죄인취급하며 자백을 강요하는 검찰과 밤샘수사를 자제하겠다는 검찰,어느 쪽이 참모습인지 선뜻 결론짓기 어렵다.

기업 수사의 경우도 올초 검찰이 주창한 「경제살리기 수사」 원칙에 부합하는 것인지 아리송하다. 수사상 필요한 압수 수색이나 관련자 출국금지를 문제삼는 게 아니다. 기업 현장에서는 검찰이 의도한 정답을 털어놓지 않는다는 이유로 기업 활동의 발목을 잡는 수사를 벌이고 있다는 불만이 제기되고 있다.

한 검찰 간부도 밝혔듯이,이제 수사는 자백에 의존하기보다는 장기간 내사를 벌여 증거를 수집하는 방향으로 바뀌어야 한다. 사전준비 없이 사사건건 검찰이 총대를 메고 나서는 것은 자칫 「한풀이」나 「마녀사냥」에 그칠 수 있다는 생각이다. 趙南奎 사회부 기자  1998년 6월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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