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장 선출이 이뤄지기 직전인 8일 오후 1시40분쯤 국회 본회의장 앞 로비. 민주당 조순형 의원이 기자들과 마주앉아 국회의장 출마의사를 철회할 생각이 없고, 당론으로 김영배 의원을 후보로 내정한 것은 부당하다는 취지의 발언을 하고 있었다. 이 때 신기남 최고위원과 송영진 수석부총무, 이희규-조배숙 부총무가 와서 "다들 기다리고 계시니 의원 총회장으로 들어가시죠"라고 요청했다. 조 의원은 "내가 참석하면 괜히 분란이 일어나니 그냥 들어가서 당이 결정한 대로 진행하시라"고 고사했다. 한 동안 승강이가 오가고 있는데, 송영진 의원이 느닷없이 "개×이구만 개×, 저게 의원이야 개××지, ××을 확 뽑아버릴까 보다"고 욕설을 해대기 시작했다. 송 의원은 동료 의원들의 제지에도 아랑곳없이 "자기 ×꼴리는 대로 하고 말이야. 개××" "모가지를 비틀어…" 등의 민망한 말을 계속 쏟아냈다. 조 의원은 갑작스런 봉변에 어이가 없는지 쓴웃음을 흘렸다. 동료 의원들은 "저게 무슨 국회의원이야"라고 혀를 찼다.같은 날 국회에서 열린 한나라당 최고위원회의. 자민련 출신인 강창희 의원이 이규택 총무에게 최근 자민련에서 이적한 함석재 의원의 상임위원장 배정을 요청했다. 이 총무가 "당내 중진이 많아 어렵다"고 난색을 표하자 강 의원이 발끈하며 "야, 당신이 뭔데 그런 말을 해. 한번 붙어볼래"라는 험한 소리를 버럭 질러댔다. 한 사람이 윗도리까지 벗고 멱살잡이 직전까지 가자 이회창 대통령 후보가 "이게 시정잡배들 모임이냐, 뭐냐. 너희들끼리 다 해라"라고 고성를 지르고 옆방으로 자리를 옮겼다.

두 당의 풍경은 다른 나라가 아닌 한국 정치의 현주소다. 먼저 개개인의 자질이 문제지만 궁극적으로는 패거리적이고 속좁은 한국정치의 고질병을 보여준 상징적인 사건이다. 축구는 월드컵을 통해 일류로 올라섰지만 한국정치는 여전히 4류에서 맴돌고 있다.

정치부 趙南奎기자

국회가 ''자유투표'' 원칙을 국회법에 명문화하기로 합의한 것은 올 2월이다. 정치개혁을 촉구하는 여론이 비등점에 이른 시점이었다.우여곡절 끝에 ''의원은 국민의 대표로서 소속 정당의 의사에 기속(束)되지 아니하고 양심에 따라 투표한다''는 자유투표 조항은 만장일치로 본회의를 통과, 국회법에 신설됐다. 그 법률에 따라 한나라당과 민주당 총무는 최근 16대 국회 후반부 국회의장 자유투표에 어렵게 합의했다. 8일로 예정된 국회의장 선출은 바로 국회법 신설 조항과 양당 총무간 합의에 따라 치러지는 첫 의장 자유투표 선거다.

그러나 한나라당이나 민주당의 최근 움직임을 보면 5개월 전의 국회법 합의나 총무간 약속은 휴지조각이 돼가고 있는 느낌이다. 한나라당은 의원총회를 통해 박관용 의원을 단독 후보로 만들어 놨고 한나라당의 후보 내락을 취소하라고 목청을 높이던 민주당마저 김영배, 조순형 의원 두 명이 의장선거 출마를 선언하자 당 대표와 최고위원회의가 나서 김영배 의원으로 단일화시켰다. 소속 의원의 의사는 아랑곳없이 사실상 ''당론 투표''를 강요하고 있는 셈이다. 이럴 바에야 당론투표 관행을 지속할 일이지, 무엇 하러 아까운 시간과 정력을 낭비해 가며 자유투표 원칙을 국회법에 명문화하고 국회의장 자유투표 합의를 이끌어 냈는가. 정치가 운명적으로 이래저래 욕먹는 직업이라지만 요즘 정치권은 비난받을 짓을 스스로 찾고 있는 인상이다. 한국의 월드컵 4강 이후 국민들은 감동의 정치를 정치권에 그렇게 요구해도 그들은 여전히 오불관언(吾不關焉)이다.

/趙南奎정치부기자

31일 국회 본청 중앙홀에서는 ''주인 없는'' 국회개원 기념식이 열렸다. 1948년 5월 31일 제헌국회가 개막된 지 54년이 되는 날을 기념하기 위한 자리였으나 정작 주빈이 되어야 할 국회 의장단도, 상임위원장도 없었다.각 당이 자기 욕심을 양껏 채우려다 16대 국회 후반기 원구성 법정시한을 넘겨버린 탓이다. 국회 제도개선 차원에서 원구성 시기를 국회법에 못박은 94년(14대 국회 후반기) 이래 국회는 지금까지 단 한 차례도 자신들이 만든 법정시한을 지키지 않고 있다.

이날 행사는 궁여지책으로 이만섭 전 국회의장이 주관했으나 기념사를 읽을 때는 ''전 의장'', 우수 직원 표창 때는 ''의장''의 자격이 되는 웃지 못할 상황이 연출됐다.

현장에서 읽어야 하는 기념사와 달리 표창장 수여 날짜는 전반기 국회의장의 임기중인 ''5월 29일''로 기재해 놨기 때문이다. 이 땅에 민의의 역사가 펼쳐진 날을 기리는 이날 행사는 국회가 16대 국회 후반기를 새롭게 출발하는 계기로 삼을 수 있었음에도 사정이 이렇다 보니 파장(罷場) 분위기 속에 진행됐다. 전반기 상임위원장을 맡았던 의원들 태반이 불참했고 전체 참석 의원도 30여명에 그쳤다.

이 전 의장은 기념사에서 "국회 개원을 기념하는 오늘 이 순간 감히 국민과 선배의원 앞에 고개를 들 수가 없다"고 자탄했다. 그러나 기념식 직후 열린 총무회담은 "가급적 빠른 시일내 원구성이 되도록 노력한다"는 수사(修辭)로 그쳤다.

각 당 지도부도 기념식이 끝나자마자 뇌사상태 국회는 내버려두고 ''새 정치''를 외치며 지방선거 표밭으로 달려갔다.  조남규 정치부 기자

[세계일보]|1997-12-09|06면 |정치·해설 |컬럼,논단 |997자
96년 국민회의 채영석 의원이 검사의 도박행태를 지적했을 때 검찰은 『검찰조직의 명예를 훼손한 발언』이라며 발끈했다. 일선 검사들은 『채의원이 발언의 근거를 대지 못하면 명백한 명예훼손』이라며 목청을 높이기도 했다. 실제 채의원이 그 발언으로 한 시민에 의해 명예훼손 혐의로 고발되자 검찰은 채의원을 입건,수사를 벌이고 있다.그러던 검찰은 6일 저녁 현직 검사가 제주도까지 가서 도박판을 벌이다 「현행범」으로 체포되는 사건이 발생하자 입을 다물었다. 그것도 판당 1만∼50만원씩 오간 수천만원대 도박판이었다.
조사 결과 이 검사는 휴가를 얻어 제주도에 골프를 치러 갔다가 날씨가 나빠 칠 수 없게 되자 대신 도박판을 벌였다는 것이다. 도박장까지는 고급 외제승용차로 이동했고 도박판에서는 달러도 나왔다고 한다. 이번 사건은 대검 감찰부가 검찰직원 비리에 대해 대대적 감사에 착수한다고 경고하고,이어 서울고검이 서울 의정부 지역 이순호 변호사 「싹쓸이 수임」사건에 연루된 검찰 직원 2명을 해임결정한 직후에 발생했다.
국제통화기금(IMF)의 긴급자금 지원으로 연명해야하는 경제위기도 아랑곳 없이 벌인 도박판이었다. 이 사건을 한 조직인의 일탈행위로 치부하기엔 그가 맡은 직책의 무게가 너무 무겁다. 그러나 보다 심각한 문제는 검찰의 자세다. 이 사건이 보도되자 검찰은 먼저 「축소」에 나섰다. 우선 언론과 방송에 보도되는 것을 막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모습을 보였다.
사건이 공개된 뒤에도 『하필이면 지금같은 시점에 터졌는지 모르겠다』 『차기 정권에서 우선 법조계를 손댄다는 말이 나도는데 악재로 작용하지 않을까 걱정이다』는 등의 푸념들이 자성의 목소리보다 높다.
그동안 경찰의 수사권 독립문제가 거론될 때마다 검찰은 시기상조론을 들고 나왔다. 아직 경찰의 수준이 낮아 수사권을 줄 수 없다는 논리였다. 그러나 텔레비전 화면을 통해 얼굴을 가린 채 『손 들어. 현행범으로 체포한다』는 경찰의 명령에 따르는 도박검사의 모습을 지켜본 국민들이 검찰의 수준은 어느 정도라고 생각할지 의문이다.  조남규 기자

[세계일보]|1997-11-30|06면 |정치·해설 |컬럼,논단 |974자
변호사법 제1조 1항은 「기본적 인권을 옹호하고 사회정의를 실현함」을 변호사의 사명으로 천명하고 있다. 국민에 대한 약속이다.지난 28일 검찰은 그 약속을 저버린 변호사 한 명을 기소했다. 사건 브로커를 사무장으로 고용,교통사고 피해자의 손해배상사건을 수임한 뒤 의뢰인 몰래 가해자측과 합의해 합의금 1억여원을 가로챈 혐의였다.
지난달 30일에는 차관급인 법무연수원장 출신 변호사가 상속세를 면하게 해주겠다고 의뢰인을 속여 1백억원대의 부동산을 가로챈 혐의로 구속됐다. 이 변호사는 의뢰인이 빼앗긴 부동산을 되찾기 위해 소송을 내자 허위소송이라며 되레 의뢰인을 무고하기까지 했다.
이에 앞서 판사출신인 한 변호사는 자신이 근무한 법원 관내에 개업한 뒤 경찰관과 법원­검찰 출신 직원을 사무장으로 두고 관내 형사사건을 「싹쓸이」하다 검찰 수사망이 조여오자 지난달 해외로 달아났다.
이 변호사 사무실에서는 관내 판­검사 이름들이 적혀 있는 비밀장부가 발견돼 현직 판­검사들에게까지 로비를 벌인게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그런가 하면 지난 9월에는 부산지방변호사회 소속 변호사가 히로뽕을 주사한 혐의로 구속되는 어처구니 없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시오노 나나미는 그녀의 책 「로마인 이야기」에서 로마 공화정 초기,귀족들이 높은 신분에 따르는 도의적 의무인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의 모범을 보여 당시의 정치적 안정에 기여했다고 분석했다.
변호사는 법치주의 국가의 「노블레스」다. 그런만큼 사회는 변호사들에게 중요한 역할을 담당케 하는 대신 그에 걸맞는 수준의 책임 또한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많은 변호사들이 인권보호와 정의실현,의뢰인에 대한 신의라는 「오블리주」를 다하기 위해 힘쓰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최근 발생한 사건의 장본인들처럼 의뢰인을 치부의 대상으로 여기고,공익보다 사리를 앞세우는 이들이 하나 둘 늘어날수록 변호사를 천박한 장사치로 보는 사람들의 수도 그에 비례해 많아질 것이다.  조남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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