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17회 임시국회가 개회된 지 15일로 6일째다. 한나라당이 216회 임시국회 폐회 바로 다음날 단독 소집했다. 개회 후 한나라당의 행태를 보면 올해부턴 일해 보자고 마음을 고쳐 먹은 게 아니다. 검찰이 자당 소속 강삼재(姜三載) 의원의 체포영장을 청구한 데 대한 반사작용일 뿐이다.민주당과 자민련은 이를 '방탄국회'로 규정하고 의사일정 협의를 보이콧했다. 이번 국회는 '임시회는 국회 재적의원 4분의 1 이상의 요구에 의해 집회된다'는 헌법 조항에 따라 적법하게 열렸는데도 결과는 개점휴업 상태가 됐다.

한 손으로는 '방탄국회'를 비난하며 국회를 공회전시키고, 다른 손은 임시국회 회기 내 강 의원 체포동의안 처리를 위한 전략 마련에 사용한 민주당은 이중적이다. 그러더니 총재인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의 등원 지시에 있고서야 15일 3당 총무회담을 갖자느니, 국회 본회의를 개최하자느니 부산을 떨고 있다.

이번엔 한나라당이 틀 차례가 된 모양이다. 기다렸다는 듯이 자민련 총무를 협상 파트너로 인정할 수 없다는 조건을 걸고 나왔다. 민주당 의원을 자민련에 '임대(賃貸)'하는 편법으로 이뤄진 자민련 교섭단체 구성은 절차상 흠결(欠缺)이 있다는 것이다. 경위야 어떻든 자민련은 지난 11일 국회법 교섭단체 조항(33조)에 따라 국회 교섭단체 등록까지 마쳤다. 한나라당으로서는 '위원회에 각 교섭단체별 간사 1인을 둔다'는 국회법(50조 1항)에 의거, 자민련 이완구(李完九) 의원을 한빛은행 국조특위 간사로 결정하는 데 동의한 바 있어 자기모순이다.

국회법에는 '교섭단체 대표의원과 협의하여' '교섭단체 간사와 협의하여'라는 문구를 지닌 조항이 많다. 국회를 여야 협의 하에 운영하라는 취지일 것이다. 잦은 국회 파행은 협의과정에서 소속 정당의 정략적 당론이 국회법 원칙과 관행을 짓밟은 탓이다. 다음엔 또 무슨 꼼수가 나올지….

조남규 정치부 기자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 취임식(20일)에 우리 정치인들이 앞다퉈 달려가고 있다. 방문일정이 확인된 의원만 30명을 넘는다. 이 중 미국측에서 초청장과 비용을 지원하는 경우는 한-미 의원협의회 소속 한나라당 박근혜(朴槿惠) 현승일(玄勝一),민주당 유재건(柳在乾) 김운용(金雲龍),민국당 한승수(韓昇洙) 의원 정도다. 국회 통일외교통상위 소속 한나라당 박명환(朴明煥) 김덕룡(金德龍) 조웅규(曺雄奎),민주당 박상천(朴相千) 문희상(文喜相) 의원은 외교통상부를 통해 초청장을 입수,국회 예산으로 미국행 비행기에 오른다.물론 6만명이 넘게 참석하는 취임식장에서 부시 대통령과 개별접촉을 갖는다는 것은 힘든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나마 국회 등에서 대미(對美)현안을 다뤄야 하는 이들의 경우는 취임식 참석 자체에 의미를 부여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들 외엔 거액의 돈을 써가며 굳이 취임식에 몰려가야 하는지 선뜻 납득하기 어렵다.

민주당 한화갑(韓和甲) 최고위원과 한나라당 하순봉(河舜鳳) 부총재는 부시 대통령 취임식 준비위측 초청으로 18일 출국한다. 민주당 유용태(劉容泰) 조성준(趙誠俊) 추미애(秋美愛) 정범구(鄭範九) 의원 등이 한 위원을 동행한다. 민주당 이인제(李仁濟) 최고위원은 헤리티지재단 초청으로 개별 방문하고 김근태(金槿泰) 정동영(鄭東泳) 정대철(鄭大哲) 최고위원과 장영달(張永達) 이호웅(李浩雄) 의원도 개인적으로 초청장을 받아 출국한다. 민주당은 선출직 최고위원 7명 가운데 김중권(金重權) 대표를 제외한 나머지 최고위원들이 모두 취임식에 참석하는 셈이다. 한나라당에서도 정재문(鄭在文) 이부영(李富榮) 박주천(朴柱千) 박원홍(朴源弘) 의원이 당 대표 자격으로 나간다.

이들은 방미 기간 중 백악관의 새 주인이 된 부시 진영 인사들과 만나 의원외교 채널을 구축한다고는 하지만 세계 각 국에서 수 만명이 모여드는 북새통 속에 과연 비중있는 면담이 가능할지 미지수다. 조선왕조 시대 중국에 사대(事大)하던 이미지가 겹쳐져 씁쓸하다.

정치부 趙南奎기자

한나라당 김용갑(金容甲) 의원의 '민주당은 조선노동당의 2중대'발언으로 14일 국회 본회의 대정부질문이 파행으로 얼룩졌다.김 의원은 이날 헌법이 보장한 국회의원 면책특권을 방패삼아 위험천만한 질문을 거침없이 던진 것이다. 하지만 김 의원의 발언은 근거도 미미하고 무책임하기 짝이 없다. 먼저 민주당이 국가보안법을 개정하려고 하니까 북한 '조선노동당의 2중대'라는 김 의원의 지적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국가보안법에 대한 국민여론은 "개정해야 한다"는 쪽이 대세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또 김 의원은 발언 직후 기자간담회에서 "택시기사들이 2중대 아니냐는 말을 했다. 사회 일각의 얘기를 간접 전달했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조선노동당 2중대'발언의 근거가 어느 택시기사의 일반적인 얘기라고 하니 쓴웃음이 절로 나온다. 김 의원은 좀더 이념적-역사적인 근거를 제시했어야 했다. 자신의 발언이 국론분열은 물론 남북관계에 엄청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을 숙고했어야 했다.

그래서인지 한나라당은 목요상(睦堯相) 정책위의장과 부총무단의 원고검토과정에서 '조선노동당 2중대' 표현은 없었다고 강조했다. 이회창(李會昌) 총재는 "나라경제와 민생이 어려운데 김 의원 발언으로 국회가 파행되는 것은 바람직스럽지 않다"고 유감을 표명했다. 이부영(李富榮) 부총재도 "지금까지 한나라당이 조선노동당 2중대와 정치를 하고 협상을 했느냐"면서 "그런 사람과 어떻게 국회를 같이할 수 있느냐"고까지 했다. 김 의원은 소속 정당 내부에서조차 '돈키호테'취급을 받은 셈이다.

이제 국회의원은 면책특권이 있다고 해서 'KKK단' '조선노동당 2중대'발언을 함부로 해도 되는지 심각하게 생각할 때가 됐다. 우리에게 국회의원은 '왕후장상(王侯將相)이 아니기 때문이다.조남규 정치부기자

24일 서울지법 국정감사에 한나라당 정인봉(鄭寅鳳) 의원은 불참했다. 전날 서울지검장을 상대로 편파수사의혹을 목청 높여 제기했던 정 의원은 측근을 통해 "내 사건이 배당된 판사 앞에서 나 자신을 합리화시키는 것처럼 비칠 수 있다"고 불출석 이유를 설명했다. 해당 재판부에 대한 배려라는 것이나 그간 재판받던 태도와는 사뭇 다른 자세다.정 의원은 사전선거운동 혐의로 서울지법에 기소된 후 8번의 공판 중 단 두차례만 얼굴을 내밀곤 재판을 기피했다. 참다 못한 재판부는 국회에 체포동의안을 내는 방안을 추진했을 정도다. 정 의원은 국정감사를 이유로 이달 19일로 잡힌 공판기일의 연기를 신청하고도 정작 국감에는 나오지 않은 꼴이 됐다.

의원과 피감기관간의 이같은 어색한 광경은 23일 서울지검 국정감사장에서도 연출됐다. 야당의 한빛은행 불법대출 사건수사에 관한 추궁과정에서다. 박헌기(朴憲基) 법사위원장을 제외한 한나라당 법사위원 전원이 한빛은행 사건의 핵심인물인 이운영(李運永) 전 신용보증기금 영동지점장의 변호인이라는 점이 걸림돌로 등장했다. 검찰은 이를 이유로 답변을 회피하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

"변호인이라 답변 않는 것 같은데 우리는 인권보호 차원에서 변호인 명단에 서명한 것이다"(김용균.金容鈞 의원), "이운영의 변호인이건 아니건 수사과정의 문제점에 대해 질의하면 답변해야 한다(최연희.崔鉛熙 의원)"는 한나라당 의원들의 항의가 터져나왔다. 이어 "이운영이 무슨 양심선언이라도 했느냐"는 민주당 의원들의 반박이 제기되면서 국감장은 한 순간에 아수라장이 됐다. 국감장은 흡사 여야가 각각 이운영의 검사와 변호인으로 갈린 법정을 방불케 했다.

피감기관에 떳떳한 의원만이 제대로 된 국감을 수행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두 사례였다.

/조남규 정치부 기자

'D-2' 2000년도 추경예산안은 15일까지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돼야 한다고 기획예산처 관계자가 13일 강조했다. 그래야 국무회의와 대통령 결재를 거쳐 이달 분 추경예산의 원만한 집행이 가능하다는 것이다.추경안이 처리되지 않을 경우 당장 100만명에 이르는 자활보호자 생계비 지원과 18만7000여명의 생활보호자 중-고생 자녀 학비지원이 차질을 빚게 된다. 공공근로사업은 중단될 위기에 놓여있고 보상금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는 강원도 산불 및 구제역(口蹄疫) 피해 주민의 기다림도 인내심의 한계를 넘고 있다. 추경안에는 2만8000명에 이르는 청소년 고용안정 지원자금도 포함돼 있다.

그런데도 정치권은 추석 연휴가 끝나고도 드잡이를 계속할 태세다. 한나라당은 김대중(金大中) 대통령 일본 방문(21일) 이전 영남지역 장외집회 일정을 짜고 있다. 여권에서 뭔가를 내놓을 때까지 장외에서 대여 압박공세를 벌이겠다고 벼르고 있는데, 과연 '추석민심'을 제대로 읽었는지 의심스럽다. 서민생계가 걸려있는 추경안은 안중에도 없는 태도다.

물론 민주당 지도부도 한나라당에 돌을 던질 자격이 없다. 국회법 개정안을 변칙처리, 국회파행의 빌미를 제공한 것도, 선거사범 수사 외압 의혹이라는 심지에 불을 댕긴 것도 다름 아닌 민주당이기 때문이다. 불 질렀으면 어떤 형태로든 책임을 지는 것이 일반의 상식이다. 빈 손 들고 앉아 상대당에 책임전가나 하고 국회파행의 장기화를 초래해 결과적으로 민생에 부담을 끼치는 현 모습은 '중산층과 서민을 위한 정당'이라는 캐치프레이즈에 어울리지 않는다.

정치권은 하루빨리 국회의 문을 열어 귀향 발걸음이 가볍지 않았던 서민층의 고단함이 더 이상 가중되지 않도록 배전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게 추석민심이다.

<정치부 趙南圭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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