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2' 2000년도 추경예산안은 15일까지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돼야 한다고 기획예산처 관계자가 13일 강조했다. 그래야 국무회의와 대통령 결재를 거쳐 이달 분 추경예산의 원만한 집행이 가능하다는 것이다.추경안이 처리되지 않을 경우 당장 100만명에 이르는 자활보호자 생계비 지원과 18만7000여명의 생활보호자 중-고생 자녀 학비지원이 차질을 빚게 된다. 공공근로사업은 중단될 위기에 놓여있고 보상금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는 강원도 산불 및 구제역(口蹄疫) 피해 주민의 기다림도 인내심의 한계를 넘고 있다. 추경안에는 2만8000명에 이르는 청소년 고용안정 지원자금도 포함돼 있다.

그런데도 정치권은 추석 연휴가 끝나고도 드잡이를 계속할 태세다. 한나라당은 김대중(金大中) 대통령 일본 방문(21일) 이전 영남지역 장외집회 일정을 짜고 있다. 여권에서 뭔가를 내놓을 때까지 장외에서 대여 압박공세를 벌이겠다고 벼르고 있는데, 과연 '추석민심'을 제대로 읽었는지 의심스럽다. 서민생계가 걸려있는 추경안은 안중에도 없는 태도다.

물론 민주당 지도부도 한나라당에 돌을 던질 자격이 없다. 국회법 개정안을 변칙처리, 국회파행의 빌미를 제공한 것도, 선거사범 수사 외압 의혹이라는 심지에 불을 댕긴 것도 다름 아닌 민주당이기 때문이다. 불 질렀으면 어떤 형태로든 책임을 지는 것이 일반의 상식이다. 빈 손 들고 앉아 상대당에 책임전가나 하고 국회파행의 장기화를 초래해 결과적으로 민생에 부담을 끼치는 현 모습은 '중산층과 서민을 위한 정당'이라는 캐치프레이즈에 어울리지 않는다.

정치권은 하루빨리 국회의 문을 열어 귀향 발걸음이 가볍지 않았던 서민층의 고단함이 더 이상 가중되지 않도록 배전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게 추석민심이다.

<정치부 趙南圭기자>

이한동(李漢東) 총리서리 인사청문회를 하루 앞둔 지난 25일 국회 원내총무실. 휴일인데도 민주당 특위위원 일부가 모였다. 전략회의를 갖기 위해서였다. 취재기자 1명이 이총리서리 부동산 매입 부분을 꺼내들자 특위위원들은 "상속받은 거라더라" "사서 묵혀놓고 값도 오르지 않은 땅이라서 별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라는 해명을 내놨다. 이어진 "(자민련과의) 공조문제도 걸려 있고" "대통령이 임명한 총리인데…"라는 언급은 민주당의 청문회대책 방향을 여실히 보여줬다.아니나 다를까 26,27일 청문회 기간동안 여당위원들의 질의에서는 예기(銳氣)를 찾아보기 어려웠다. 오히려 변호인 반대신문과 구분이 되지 않은 옹호성 질문에 같은 특위위원을 공격하는 어처구니없는 장면까지 연출됐다. 한 민주당 특위위원 말대로 '대어(大魚)'가 없는 이번 청문회에서 그나마 쟁점으로 등장한 부동산 매입과 말 바꾸기, 시국사건 고문방조 의혹, 노조 강경진압 등에서 민주당 위원들은 쟁점 희석에 힘썼다.

민주당 위원들은 인사청문회가 공직후보의 국정수행능력을 검증하는 정책청문의 장이 되어야 한다는 논리를 폈지만, 이마저도 진의를 의심케 하는 대목이 많았다. "주 5일 근무제에 대한 의견이 뭐냐"든지 "한미행정협정 개정과 관련한 견해는 뭐냐"는 식의, 기자간담회 석상에서나 어울릴 법한 질문을 던졌다.

미국에서는 상원 인준청문회를 통해 1000명에 가까운 공직자를 대상으로 인준청문을 실시하고 있지만 당파성은 최대한 배제하고 있다. 인준청문회 도입 이래 1989년 조지 부시 대통령 시절 국방장관 인준을 부결되는 등 각료급 인사만 12명이 청문회를 통과하지 못했다. 제도보다 중요한 것이 운영하는 사람들의 마음가짐이라는 사실을 이번 청문회는 다시 한번 증명하고 있다.

-정치부 趙南奎기자-

민주당의 최근 행태에서는 '원칙'을 찾아보기 힘들다.야당시절 누구보다 큰목소리로 고위공직자 인사청문회 도입을 외쳤던 장본인인 민주당이 집권당이 된 요즘 과거 맞서 싸웠던 상대방의 목소리와 어투를 그대로 흉내내며 가급적 청문회 강도를 낮추려 안간힘을 쓰고 있다.

급기야는 "인사청문회는 여타 청문회와 다른 성격이 있는 만큼 비공개로 해야 한다"는 선까지 나갔다.

여론의 반발에 밀려 7일 뒤늦게 비공개 주장을 거둬들이기는 했으나 무소신 무원칙을 여실히 드러내 보인 사례였다.

당소속 전국구 의원인 박상희(朴相熙) 중소기업협동중앙회장 건도 그렇다. 박회장의 입당 당시부터 논란이 돼온 중기협 회장직 사퇴문제에 대해 민주당은 손을 놓고 있다. 박회장측은 "입당 교섭 당시 당과 상의해서 들어갔다" "법적 하자가 없고 당에서도 본인 판단에 일임하고 있다"는 논리로 당분간 사퇴의사가 없음을 분명히 하고 있다.

시작부터 법적 하자보다는 중소기업을 대표하는 단체의 장이 당론에 얽매일 수밖에 없는 정당원이 될 수 있느냐는 정치도의적 차원에서 제기된 문제에 대해 공당(公黨)인 민주당이 취하고 있는 자세는 무책임하다 못해 한심한 지경이다.

공과 사에 있어서 자신에게 엄격하기로 소문난 서영훈(徐英勳) 대표조차 7일 "본인이 알아서 할 일인데…"라며 말을 흐리는 데는 민주당이 유독 박의원에게는 관대하다 못해 눈치를 보는 인상이 든다. 행여 민주당이 박의원에게 말 못할 약점을 잡힌 게 아니냐는 의혹이 들 정도다.

16대 국회는 새로운 천년,21세기에 부응하는 창조적-생산적 국회가 되어야 한다는 민주당 논평이 말에 그치지 않기 위해서는 원칙을 지켜나가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趙南奎 정치부기자>

미전향장기수 북송발언 파문으로 낙마한 민주당 이재정(李在禎) 전정책위의장은 21일 당에 출근하지 않았다. 사의(辭意)도 출근길의 김옥두(金玉斗) 사무총장에게 전화를 걸어 전했다.이틀전까지만 해도 "9월 전당대회까지는 직을 맡아 수행하고 싶다"고 의욕을 보였던 이 전의장은 그러나 20일 장기수 북송발언 문제로 논란이 일자 훌훌 털어버리겠다는 생각으로 사의표명을 결심했다고 한다.

이를 바라보는 당내 반응은 갈렸다. 한 당직자는 "재야출신은 밖에 있을 때와 당에 들어왔을 때의 차이점을 가끔 망각하는 경향이 있다"고 이 전의장의 처신을 문제삼았다. 또 다른 당직자도 "사견이라고는 하나 책임있는 당직을 맡은 사람이 장기수 북송과 같은 민감한 현안에 대한 견해를 피력하는 것은 나이브(순진)한 태도"라고 지적했다. 이들은 나아가 16대 총선을 통해 진보성향의 정치신인이 대거 수혈된 점을 들며 "통일이나 주한미군 지위 문제같은 사안을 놓고 돌출발언이 나오지 않을까 염려된다"고 걱정했다.

반면 이 전의장과 같은 재야출신이나 젊은 그룹의 생각은 다소 달랐다. 김근태(金槿泰) 부총재는 "이 전의장 발언을 너무 확대해석하거나 예민하게 받아들일 필요가 없다고 본다"고 신중한 입장을 취했다.

이 전의장 경질은 민주당내 하나의 세력으로 자리잡고 있는 진보그룹의 행동양식이 어떠해야 하느냐는 화두를 던졌다. 이번에 수혈된 이른바 '젊은 피' 가운데는 과거 통일과 주한미군 문제 등에서 민주당보다 더 진보적 주장을 펼쳤던 인사도 포함돼 있다. 향후 이뤄질 남북관계 개선과정에 이들이 건설적 역할을 담당하기 위해서는 신중하고 섬세한 접근이 요구된다는 점을 이 전의장 경질사건은 보여주고 있다.<정치부 기자 趙南奎>

민주당은 11일 '한나라당은 1994년 야당의 태도에서 배워야 한다'는 제목의 논평을 냈다. 김영삼(金泳三) 정부 시절 남북 정상회담이 합의됐을 때 야당이던 민주당은 당리당략을 떠나 대승적으로 대응했는데 한나라당은 왜 그러지 못하느냐는 문제제기였다.민주당은 그 증거로 94년 당시 김대중(金大中) 아-태재단이사장과 국민회의(현 민주당)가 남북 정상회담 합의 직후 내놓은 환영 논평과 발언을 소개한 뒤 "민족의 문제는 당파가 아닌 민족의 가슴으로 수용할 줄 알아야 한다"고도 했다. 실제 한나라당은 민주당 주장대로 남북 정상회담을 총선용 정략으로 규정하고 북한과의 이면합의 의혹을 집중 제기하고 있다.

현상만 놓고 보면 민주당의 지적에 일리가 없지 않다. 그러나 민주당은 한나라당을 향해 손가락질하기 전에 스스로를 먼저 돌아봐야 한다.

13대 대선을 하루 앞둔 87년 12월15일 대한항공(KAL) 858기 폭파사건 주범인 김현희(金賢姬)가 서울로 전격 압송됐을 때 민주당(당시 평민당)은 공작의혹을 제기하며 거세게 반발했다. 14대 대선을 불과 3개월 앞둔 시점에 '남한조선노동당 사건'이 발표됐을 때도,15대 총선 당시 집권당이 북한의 판문점 비무장지대 무력시위 사건으로 위기론을 조장할 때도 민주당은 '선거용'이라고 목청을 높였다.

그 때 그 목소리와 지금 한나라당의 외침 사이에는 얼마만한 거리가 있는 것인지,선뜻 가늠이 되지 않는다. 김영삼 정부의 남북 정상회담 합의 발표가 94년이 아닌 96년 15대총선을 코 앞에 둔 시점에 발표됐어도 민주당이 환영 논평을 냈을지는 의문이다. 북한이 국내에서 펼쳐지고 있는 여야간 정상회담 공방을 바라보며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조남규 정치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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