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의 내부반발로 백지화 위기에 놓인 26일 여야 총무회담 결과는 아무리 뜯어봐도 '이상한 합의'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민주당 이상수(李相洙), 자민련 이완구(李完九), 한나라당 정창화(鄭昌和) 총무는 이날 오전 오후 두차례 만나 오는 30일 국회 본회의에서 두 사안중 어느 안건을 우선하느냐는 지엽적인 문제를 놓고 신경전을 폈다. 여야가 필사적으로 순서 다툼을 벌인 이면에는 우리 정치권의 고질병인 불신이 자리잡고 있다.

개혁입법 우선 처리를 주장한 민주당은 한나라당이 해임건의안 표결 과정의 절차를 트집잡아 국회를 파행시킬 경우 숙원인 개혁입법 처리가 4월 임시국회에서도 물거품이 될 수 있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있는 인상이었다. 오전 회담이 결렬된 직후 이상수 총무는 "한나라당이 해임건의안 표결 과정을 문제삼아 단상을 점거하거나 하면 또한번 국민을 실망시킬 수 있다"며 "한나라당이 납득할 만한 정당한 표결방법이 무엇인지 확실히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나라당은 한나라당 대로 개혁입법 처리를 담보로 잡고 있어야만 민주당의 해임건의안 '변칙' 처리를 막을 수 있다는 판단 하에 협상에 임하는 모습이었다. 정창화 총무는 "(민주당과 자민련 의원들이) 전원 표결에 불참하거나 표결 직전 퇴장하는 경우, 투표에 참여하더라도 명패만 넣는 경우, 명패와 투표지를 모두 받더라도 기표소엔 안 들어가고 백지투표하는 경우가 있다"면서 "정상적인 무기명 비밀투표를 보장해 달라"고 맞섰다.

팽팽한 힘겨루기 끝에 총무회담은 개혁입법 4건을 둘로 나눠 중간에 해임건의안을 처리한다는 어정쩡한 절충안을 마련했다. "국회 파행을 막기 위한 충정으로 이해해 달라"는 부연 설명과 함께. 정 총무의 자탄(自歎) 그대로,'옹색스러운' 결론이었다. 불신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우리 정치의 한 단면을 보는 것 같아 뒷맛이 씁쓸했다. 조남규 정치부 기자

민주당과 한나라당이 오는 29일부터 1박2일로 원내외 지구당위원장 전원을 대상으로 '연수회'와 '연찬회'를 개최한다. '돈이 없어' 변변한 당원 연수 한번 하지 못했다는 민주당은 박상규(朴尙奎) 총장이 자신의 후원금을 털었다고 한다. 한나라당 또한 원내외 지구당위원장을 모두 소집, 합숙 연찬회를 열기는 16대 국회 출범 후 처음이다.정치가 정당을 매개로 이뤄지는 상황에서 연수든 연찬이든 소속 당원들의 모임은 장려할 만한 일일망정 지적의 대상은 아니다. 문제는 그 내용이다.

민주당은 당초 민주적 당무 운영과 지식정보화 시대 대비 등을 토의 주제로 설정했다가 돌연 정국운영 방안만을 선정했다. 김중권(金重權) 대표의 지시에 따른 것이다. 동참 수준을 끌어올리겠다는 표면상 이유 이면엔 2월 임시국회를 앞두고 연수를 '단합대회'로 활용하자는 의도가 깔려있는 듯하다. 개혁 의원들은 '크로스 보팅'(자유투표) 도입문제를 거론할 태세이지만 김 대표는 26일 "안된다"고 쐐기를 박았다.

반면 한나라당은 아예 '의원 꿔주기' '안기부 비자금수사' 대응전략과 '당내 결속'을 목표로 내걸었다. 당내 '개혁파' 의원들이 계획하고 있는 국가보안법 개정이나 정쟁 지양 등의 목소리는 그 출구를 찾기 힘든 분위기다. 많은 돈을 들여가며 마련한 연수-연찬 자리가 자칫 소속 당원의 '전의'(戰意)를 고취한 채 끝나지 않을까 우려된다.

1994년 11월 미국 공화당이 상-하 양원 중간선거에서 승리한 후 이례적으로 가진 소속 의원 전체모임 주제는 '미국이 지향해야 할 보수적 가치는 무엇인가'였다. 토니 블레어의 영국 노동당은 '사회주의의 가치를 지키면서 생산성을 고양시키는 정책개발'이 지난해 연수회 토론의 화두였다고 한다. 민주-한나라당의 연수-연찬회는 최소한 "싸우지 말고 민생을 챙기라"는 민심이나마 겸허히 반추, 자성하는 자리였으면 한다. 조남규 정치부기자

제217회 임시국회가 개회된 지 15일로 6일째다. 한나라당이 216회 임시국회 폐회 바로 다음날 단독 소집했다. 개회 후 한나라당의 행태를 보면 올해부턴 일해 보자고 마음을 고쳐 먹은 게 아니다. 검찰이 자당 소속 강삼재(姜三載) 의원의 체포영장을 청구한 데 대한 반사작용일 뿐이다.민주당과 자민련은 이를 '방탄국회'로 규정하고 의사일정 협의를 보이콧했다. 이번 국회는 '임시회는 국회 재적의원 4분의 1 이상의 요구에 의해 집회된다'는 헌법 조항에 따라 적법하게 열렸는데도 결과는 개점휴업 상태가 됐다.

한 손으로는 '방탄국회'를 비난하며 국회를 공회전시키고, 다른 손은 임시국회 회기 내 강 의원 체포동의안 처리를 위한 전략 마련에 사용한 민주당은 이중적이다. 그러더니 총재인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의 등원 지시에 있고서야 15일 3당 총무회담을 갖자느니, 국회 본회의를 개최하자느니 부산을 떨고 있다.

이번엔 한나라당이 틀 차례가 된 모양이다. 기다렸다는 듯이 자민련 총무를 협상 파트너로 인정할 수 없다는 조건을 걸고 나왔다. 민주당 의원을 자민련에 '임대(賃貸)'하는 편법으로 이뤄진 자민련 교섭단체 구성은 절차상 흠결(欠缺)이 있다는 것이다. 경위야 어떻든 자민련은 지난 11일 국회법 교섭단체 조항(33조)에 따라 국회 교섭단체 등록까지 마쳤다. 한나라당으로서는 '위원회에 각 교섭단체별 간사 1인을 둔다'는 국회법(50조 1항)에 의거, 자민련 이완구(李完九) 의원을 한빛은행 국조특위 간사로 결정하는 데 동의한 바 있어 자기모순이다.

국회법에는 '교섭단체 대표의원과 협의하여' '교섭단체 간사와 협의하여'라는 문구를 지닌 조항이 많다. 국회를 여야 협의 하에 운영하라는 취지일 것이다. 잦은 국회 파행은 협의과정에서 소속 정당의 정략적 당론이 국회법 원칙과 관행을 짓밟은 탓이다. 다음엔 또 무슨 꼼수가 나올지….

조남규 정치부 기자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 취임식(20일)에 우리 정치인들이 앞다퉈 달려가고 있다. 방문일정이 확인된 의원만 30명을 넘는다. 이 중 미국측에서 초청장과 비용을 지원하는 경우는 한-미 의원협의회 소속 한나라당 박근혜(朴槿惠) 현승일(玄勝一),민주당 유재건(柳在乾) 김운용(金雲龍),민국당 한승수(韓昇洙) 의원 정도다. 국회 통일외교통상위 소속 한나라당 박명환(朴明煥) 김덕룡(金德龍) 조웅규(曺雄奎),민주당 박상천(朴相千) 문희상(文喜相) 의원은 외교통상부를 통해 초청장을 입수,국회 예산으로 미국행 비행기에 오른다.물론 6만명이 넘게 참석하는 취임식장에서 부시 대통령과 개별접촉을 갖는다는 것은 힘든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나마 국회 등에서 대미(對美)현안을 다뤄야 하는 이들의 경우는 취임식 참석 자체에 의미를 부여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들 외엔 거액의 돈을 써가며 굳이 취임식에 몰려가야 하는지 선뜻 납득하기 어렵다.

민주당 한화갑(韓和甲) 최고위원과 한나라당 하순봉(河舜鳳) 부총재는 부시 대통령 취임식 준비위측 초청으로 18일 출국한다. 민주당 유용태(劉容泰) 조성준(趙誠俊) 추미애(秋美愛) 정범구(鄭範九) 의원 등이 한 위원을 동행한다. 민주당 이인제(李仁濟) 최고위원은 헤리티지재단 초청으로 개별 방문하고 김근태(金槿泰) 정동영(鄭東泳) 정대철(鄭大哲) 최고위원과 장영달(張永達) 이호웅(李浩雄) 의원도 개인적으로 초청장을 받아 출국한다. 민주당은 선출직 최고위원 7명 가운데 김중권(金重權) 대표를 제외한 나머지 최고위원들이 모두 취임식에 참석하는 셈이다. 한나라당에서도 정재문(鄭在文) 이부영(李富榮) 박주천(朴柱千) 박원홍(朴源弘) 의원이 당 대표 자격으로 나간다.

이들은 방미 기간 중 백악관의 새 주인이 된 부시 진영 인사들과 만나 의원외교 채널을 구축한다고는 하지만 세계 각 국에서 수 만명이 모여드는 북새통 속에 과연 비중있는 면담이 가능할지 미지수다. 조선왕조 시대 중국에 사대(事大)하던 이미지가 겹쳐져 씁쓸하다.

정치부 趙南奎기자

한나라당 김용갑(金容甲) 의원의 '민주당은 조선노동당의 2중대'발언으로 14일 국회 본회의 대정부질문이 파행으로 얼룩졌다.김 의원은 이날 헌법이 보장한 국회의원 면책특권을 방패삼아 위험천만한 질문을 거침없이 던진 것이다. 하지만 김 의원의 발언은 근거도 미미하고 무책임하기 짝이 없다. 먼저 민주당이 국가보안법을 개정하려고 하니까 북한 '조선노동당의 2중대'라는 김 의원의 지적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국가보안법에 대한 국민여론은 "개정해야 한다"는 쪽이 대세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또 김 의원은 발언 직후 기자간담회에서 "택시기사들이 2중대 아니냐는 말을 했다. 사회 일각의 얘기를 간접 전달했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조선노동당 2중대'발언의 근거가 어느 택시기사의 일반적인 얘기라고 하니 쓴웃음이 절로 나온다. 김 의원은 좀더 이념적-역사적인 근거를 제시했어야 했다. 자신의 발언이 국론분열은 물론 남북관계에 엄청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을 숙고했어야 했다.

그래서인지 한나라당은 목요상(睦堯相) 정책위의장과 부총무단의 원고검토과정에서 '조선노동당 2중대' 표현은 없었다고 강조했다. 이회창(李會昌) 총재는 "나라경제와 민생이 어려운데 김 의원 발언으로 국회가 파행되는 것은 바람직스럽지 않다"고 유감을 표명했다. 이부영(李富榮) 부총재도 "지금까지 한나라당이 조선노동당 2중대와 정치를 하고 협상을 했느냐"면서 "그런 사람과 어떻게 국회를 같이할 수 있느냐"고까지 했다. 김 의원은 소속 정당 내부에서조차 '돈키호테'취급을 받은 셈이다.

이제 국회의원은 면책특권이 있다고 해서 'KKK단' '조선노동당 2중대'발언을 함부로 해도 되는지 심각하게 생각할 때가 됐다. 우리에게 국회의원은 '왕후장상(王侯將相)이 아니기 때문이다.조남규 정치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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