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천년민주당이 창당 2년만에 간판을 내리고 있다. 10일 신당 창당을 당론으로 공식화한 당무회의는 "국민과 시대의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서"라고 군색한 이유를 댔다. 그럴듯한 포장을 하고 있으나, 실제로는 신당 추진론자들이 공공연히 말하고 있듯이 연말 대선 승리에 집착하고 있다. 그래서 눈앞의 권력욕구 때문에 철학과 명분도 없이 정당정치를 포기한다는 비판을 받는다. 대선과 총선을 앞두고 이뤄진 87년 평화민주당 창당, 95년 국민회의 창당, 한나라당과 그 전신인 신한국당과 민자당의 생성 과정과 다를 게 없다.미국의 양대 정당으로 뿌리내린 공화당과 민주당의 창당 연도는 각각 1854년,1792년이다. 공화당과 민주당이 선거전략만으로 강령과 당명을 포기했다면 지금의 양당제 정착은 힘들었을 것이다. 그들은 권력을 주고받으면서 오늘에 이르렀다.

상공업자가 주축이 되어 결성된 미 공화당은 1860년 노예제 폐지론자인 링컨을 공화당 최초의 대통령에 당선시킨 뒤 반세기 동안 집권당을 했다. 민주당은 줄곧 소수당에 머물렀으나 서민층 우선주의 정책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 때문에 1929년 대공황이 발생한 뒤 루스벨트 후보부터 트루먼, 케네디, 존슨 대통령을 배출했고 의회 다수당이 되었다. 1970년대부터는 미국 사회가 보수화하면서부터는 공화당의 득세로 이어졌다.

영국의 노동당과 보수당도 19세기말 설립된 이후 정체성을 유지하고 있다. 정치적 상황과 역사적 배경이 다른 우리를 미국 영국과 단순비교하는 것은 무리일지 모른다.

그러나 앞서 정당정치를 실험해온 나라들은 국민이 등을 돌렸을 때 채찍질을 견디며 자신을 연단해 온 정당만이 국민의 사랑을 받는다는 사실을 웅변해주고 있다.

趙南奎 정치부기자

국회의 격(格)이 떨어지고 있다. 16대 국회 전에도 "공업용 미싱으로 입을 막아야 한다" "제정구 의원은 억압받다 속이 터져 얻은 DJ암 때문에 사망했다"는 등의 상식 이하의 발언이 있었다. 하지만 16대 들어서 개선되기는커녕 악화일로다.지금까지 치러진 대정부질문 9차례가 모두 거친 발언 탓에 국회 일정이 중단되거나 멱살잡이 일보 직전까지 갔다. 한나라당은 주로 "청와대는 친북세력"(권오을) "민주당은 조선노동당 2중대"(김용갑) "빨치산 같은 정당"(이규택) 등의 색깔공세로, 민주당은 "이회창 총재는 악의 뿌리"(송석찬) 같은 인신공격성 발언으로 국회를 파행시켰다.

사적인 자리에서도 듣기에 민망한 발언이 공개석상에서도 거침없이 터져나오고 있다. "개헌의 ''개''자만 나와도 개 패듯이 패줘야 한다"(한나라당 박희태) "충청-호남출신 법관들이 민주당 편을 들고 있다"(" 김용균)는 표현은 적어도 공인의 입장에서는 적절치 않다.

대선후보를 비롯한 각 당의 지도부도 솔선수범은커녕 은근히 소속 의원들의 상대당 깎아내리기를 부추기는 인상이다. 노무현 민주당 대선후보는 지난 22일 서울 영등포을과 종로지구당 개편대회에 참석, 한나라당을 ''범죄 정당''이라고 지칭했다. 아무리 정적이지만 범죄정당 운운해서야 대통령후보로서 품위가 없다는 비난을 받을 만하다. 같은 날 한나라당 서청원 대표는 "(김대중 대통령) 자식만 썩은 것이 아니라 며느리, 친척, 몽땅 썩었다. 이런 놈의 대통령 가족이 어디 있느냐"고 대통령 일가를 매도했다.

국민의 이해를 대변하고 갈등을 조정해 나가야 할 정치인의 ''입''이 갈수록 갈등을 증폭시키고 특정인의 이해를 대변하는 도구로 전락하고 있다.

조남규 정치부기자

국회의장 선출이 이뤄지기 직전인 8일 오후 1시40분쯤 국회 본회의장 앞 로비. 민주당 조순형 의원이 기자들과 마주앉아 국회의장 출마의사를 철회할 생각이 없고, 당론으로 김영배 의원을 후보로 내정한 것은 부당하다는 취지의 발언을 하고 있었다. 이 때 신기남 최고위원과 송영진 수석부총무, 이희규-조배숙 부총무가 와서 "다들 기다리고 계시니 의원 총회장으로 들어가시죠"라고 요청했다. 조 의원은 "내가 참석하면 괜히 분란이 일어나니 그냥 들어가서 당이 결정한 대로 진행하시라"고 고사했다. 한 동안 승강이가 오가고 있는데, 송영진 의원이 느닷없이 "개×이구만 개×, 저게 의원이야 개××지, ××을 확 뽑아버릴까 보다"고 욕설을 해대기 시작했다. 송 의원은 동료 의원들의 제지에도 아랑곳없이 "자기 ×꼴리는 대로 하고 말이야. 개××" "모가지를 비틀어…" 등의 민망한 말을 계속 쏟아냈다. 조 의원은 갑작스런 봉변에 어이가 없는지 쓴웃음을 흘렸다. 동료 의원들은 "저게 무슨 국회의원이야"라고 혀를 찼다.같은 날 국회에서 열린 한나라당 최고위원회의. 자민련 출신인 강창희 의원이 이규택 총무에게 최근 자민련에서 이적한 함석재 의원의 상임위원장 배정을 요청했다. 이 총무가 "당내 중진이 많아 어렵다"고 난색을 표하자 강 의원이 발끈하며 "야, 당신이 뭔데 그런 말을 해. 한번 붙어볼래"라는 험한 소리를 버럭 질러댔다. 한 사람이 윗도리까지 벗고 멱살잡이 직전까지 가자 이회창 대통령 후보가 "이게 시정잡배들 모임이냐, 뭐냐. 너희들끼리 다 해라"라고 고성를 지르고 옆방으로 자리를 옮겼다.

두 당의 풍경은 다른 나라가 아닌 한국 정치의 현주소다. 먼저 개개인의 자질이 문제지만 궁극적으로는 패거리적이고 속좁은 한국정치의 고질병을 보여준 상징적인 사건이다. 축구는 월드컵을 통해 일류로 올라섰지만 한국정치는 여전히 4류에서 맴돌고 있다.

정치부 趙南奎기자

국회가 ''자유투표'' 원칙을 국회법에 명문화하기로 합의한 것은 올 2월이다. 정치개혁을 촉구하는 여론이 비등점에 이른 시점이었다.우여곡절 끝에 ''의원은 국민의 대표로서 소속 정당의 의사에 기속(束)되지 아니하고 양심에 따라 투표한다''는 자유투표 조항은 만장일치로 본회의를 통과, 국회법에 신설됐다. 그 법률에 따라 한나라당과 민주당 총무는 최근 16대 국회 후반부 국회의장 자유투표에 어렵게 합의했다. 8일로 예정된 국회의장 선출은 바로 국회법 신설 조항과 양당 총무간 합의에 따라 치러지는 첫 의장 자유투표 선거다.

그러나 한나라당이나 민주당의 최근 움직임을 보면 5개월 전의 국회법 합의나 총무간 약속은 휴지조각이 돼가고 있는 느낌이다. 한나라당은 의원총회를 통해 박관용 의원을 단독 후보로 만들어 놨고 한나라당의 후보 내락을 취소하라고 목청을 높이던 민주당마저 김영배, 조순형 의원 두 명이 의장선거 출마를 선언하자 당 대표와 최고위원회의가 나서 김영배 의원으로 단일화시켰다. 소속 의원의 의사는 아랑곳없이 사실상 ''당론 투표''를 강요하고 있는 셈이다. 이럴 바에야 당론투표 관행을 지속할 일이지, 무엇 하러 아까운 시간과 정력을 낭비해 가며 자유투표 원칙을 국회법에 명문화하고 국회의장 자유투표 합의를 이끌어 냈는가. 정치가 운명적으로 이래저래 욕먹는 직업이라지만 요즘 정치권은 비난받을 짓을 스스로 찾고 있는 인상이다. 한국의 월드컵 4강 이후 국민들은 감동의 정치를 정치권에 그렇게 요구해도 그들은 여전히 오불관언(吾不關焉)이다.

/趙南奎정치부기자

31일 국회 본청 중앙홀에서는 ''주인 없는'' 국회개원 기념식이 열렸다. 1948년 5월 31일 제헌국회가 개막된 지 54년이 되는 날을 기념하기 위한 자리였으나 정작 주빈이 되어야 할 국회 의장단도, 상임위원장도 없었다.각 당이 자기 욕심을 양껏 채우려다 16대 국회 후반기 원구성 법정시한을 넘겨버린 탓이다. 국회 제도개선 차원에서 원구성 시기를 국회법에 못박은 94년(14대 국회 후반기) 이래 국회는 지금까지 단 한 차례도 자신들이 만든 법정시한을 지키지 않고 있다.

이날 행사는 궁여지책으로 이만섭 전 국회의장이 주관했으나 기념사를 읽을 때는 ''전 의장'', 우수 직원 표창 때는 ''의장''의 자격이 되는 웃지 못할 상황이 연출됐다.

현장에서 읽어야 하는 기념사와 달리 표창장 수여 날짜는 전반기 국회의장의 임기중인 ''5월 29일''로 기재해 놨기 때문이다. 이 땅에 민의의 역사가 펼쳐진 날을 기리는 이날 행사는 국회가 16대 국회 후반기를 새롭게 출발하는 계기로 삼을 수 있었음에도 사정이 이렇다 보니 파장(罷場) 분위기 속에 진행됐다. 전반기 상임위원장을 맡았던 의원들 태반이 불참했고 전체 참석 의원도 30여명에 그쳤다.

이 전 의장은 기념사에서 "국회 개원을 기념하는 오늘 이 순간 감히 국민과 선배의원 앞에 고개를 들 수가 없다"고 자탄했다. 그러나 기념식 직후 열린 총무회담은 "가급적 빠른 시일내 원구성이 되도록 노력한다"는 수사(修辭)로 그쳤다.

각 당 지도부도 기념식이 끝나자마자 뇌사상태 국회는 내버려두고 ''새 정치''를 외치며 지방선거 표밭으로 달려갔다.  조남규 정치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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