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언론의 2004 대통령 선거 보도는 공정했나?

대통령 선거 때마다 신문사 입장(특정 후보 지지든 중립이든) 독자들에게 밝히는 것이 미국 언론의 오래된 전통이다. 이런 상황에서 ‘선거 보도의 당파성(Partisanship)’을 여하히 최소화할 것이냐는 문제는 미국 언론계의 해묵은 숙제이기도 하다. 미국 신문들은 이런 골치 아픈 사안에 대해 “신문사의 정치적 견해를 밝히는 사설과 객관적이고 공정한 뉴스 보도는 엄밀히 구분된다”는 논리를 傳家의 寶刀처럼 사용하고 있다. 과연 그런가. 언론의 선거 보도 행태를 분석한 중립적인 언론 감시 기관들의 평가는 부정적이었다.

 

  당파적인 언론 감시기구인 Project for Excellence in Journalism(이하 PEJ)  대통령 후보 TV토론이 진행중이던 2주일(2004 101~14) 동안 13 미디어(신문 4, 방송 뉴스 프로그램 7, 케이블 프로그램 2) 선거 보도를 모니터한 결과, 공화당 부시 후보의 경우 관련 기사의 59% 부정적인 반면 민주당 케리 후보 기사는 전체의 25%만이 부정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반대로 긍정적인 기사는 케리의 경우 전체 34% 달했으나 부시는 14% 불과했다. 이같은 케리 후보 편향성은 신문의 선거 보도에서 더욱 뚜렷이 확인된 것으로 분석됐다. 해당 신문들이 다룬 후보 관련 기사(사설과 오피니언 기사 포함) 양적 측면에서 후보가 비슷했으나 내용면에서 부정적인 기사의 비율이 부시의 경우 전체 68% 달한 반면 케리는 26% 그쳤다. 신문사의 정치적 입장이 개입될 있는 사설과 오피니언 기사를 포함해서 그런 것일까. PEJ 이같은 의문에 답하기 위해 순수한 보도 기사만을 대상으로 다시 분석했으나 결과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고 밝혔다. 사설이나 칼럼 못지않게 기사 또한 대체로 부시 후보에게 부정적이고 가혹했다는 것이다.

 

  이런 결과가 나왔을까.  PEJ 첫째로 신문들이 후보에 대해 다룬 주제가 달랐다는 점을 들었다. 부시 스토리 대부분이 부시가 해내지 못한 것으로 평가된 TV토론 관련 기사(22%) 선거 기간 내내 악재로 작용했던 이라크 전쟁 관련 기사(20%)였다는 것이다. 반면 케리 후보에 대해서는 미디어 관련 기사(18%, 예컨대 공화당 성향의 싱클레어 방송 그룹이 자사 소유의 방송사에 케리 기록물을 방영토록 지시하자 케리 후보 진영에서 소송을 제기하고 일대 소동이 벌어졌다는 등의 기사) 유세 기사(14%) 등이 주류를 이뤘기 때문에 기사의 톤이 부드러웠다는 설명이다. 둘째로 신문들이 기사 발제 과정에서 후보에 대해 다른 접근을 했다는 . 케리에 대해서는 주로 그날 그날의 유세 일정 위주의 스트레이트 기사(28%) 많았으나 부시에 대해서는 특정 사안을 집어서 분석하는 해설 기사(38%) 압도적으로 많다보니 비판적인 기사의 비율이 높아졌다는 분석이다.

 

  이유 모두 신문들의 케리 편향성을 설명해 있는 요인이 있을 것이다. 나는 여기에 덧붙여 해당 신문들의 정치적 성향을 다른 요인으로 추가해야된다고 생각한다.

 PEJ 조사 대상으로 삼은 4 신문은 뉴욕 타임스와 워싱턴 포스트, 마이애미 해럴드(플로리다주), 컬럼버스 디스패치(오하이오주). 부시 후보를 지지한 컬럼버스 디스패치를 제외한 나머지 3 신문 모두 2000 대선 당시 민주당 고어 후보에 이어 이번 대선에서도 민주당 케리 후보를 지지했다.  신문의 부시 관련 보도 3분의 2 정도가 부정적이었다는 PEJ 조사 결과는 조사 대상 신문의 4분의 3 케리 지지 성향의 신문이었다는 점과 관련이 있다는 추론이 가능한 대목이다. 

 

 신문사의 후보 지지가 독자들의 투표에 영향을 미치느냐는 문제를 놓고는 “요즘 같은 매스 미디어 시대에는 의미가 없다”는 견해에서부터 “박빙 접전지에서는 승부를 가르는 요인이 있다”는 주장에 이르기까지 의견이 다양하다. 박빙 승부처였던 플로리다주의 경우 2000 대선에서 부시를 지지했던 주요 신문들이 케리호로 배를 바꿔탔는데도 부시가 승리한 사례는 앞의 주장을 뒷받침한다. 반면 콜럼버스 디스패치와 신시내티 인쿼러 대부분의 신문이 부시 후보 쪽으로 쏠린 오하이오에서 부시가 결정적 승리를 거둔 사례는 뒤의 주장에 힘을 실어준다


 어느 주장이 맞느냐는 논란이 분분한 가운데 전역의 신문들은 이번 대선에서도 깃발을 들어 올렸다. 뉴욕 타임스와 워싱턴 포스트 등이 케리 후보 지지를, 뉴욕 포스트와 시카고 트리뷴 등이 공화당의 부시 후보 지지를 각각 선언했다. 내가 연수중인 워싱턴 타임스는 지난 선거에 이어 이번에도 부시 대통령을 지지했다. 주요 언론의 특정 후보 지지 표명은 CNN이나 FOX 등을 통해 전국 시청자에게 전달된다. 때에 따라서는 신문사 관계자가 직접 출연해 지지 표명 이유를 설명하기도 하는데 워싱턴 타임스의 경우 신문에 부시 지지 사설이 실린 아침, 관계자가 FOX TV 출연해 "지금이야말로 부시에게 힘을 실어줘야할 "라며 부시를 지지하는지를 시청자에게 밝혔다


 워싱턴 포스트는 케리 지지 사설을 통해 부시의 失政을 조목 조목 나열하고 케리의 취약점도 아울러 지적한 “그럼에도 불구하고 케리가 나은 대안”이라고 결론지었다. 워싱턴 타임스는 부시 지지 사설에서 보다 단호한 어조로 작금의 위기의 시대에 케리는 부적합한 지도자라고 규정한 “부시야말로 재선 대통령으로 국가에 봉사할 자격이 충분하다”고 맺었다. 지지 사설만 떼어놓고 보면 지지 후보 진영의 출정 선언문으로 사용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다.

 

 언론 관련 웹사이트인 ‘편집자와 발행인’에 따르면 전국 신문 213개사(발행 부수 합계 20882889) 케리 후보를, 205개사(15743799) 부시 후보 손을 들어준 것으로 나타났다.
케리 후보 지지 신문이 과거 보다 증가한 이유는 2000 선거에서 부시를 지지했던 신문 60 이상이 케리 지지로 돌아서거나 중립을 지키기로 결정한 때문이라고 ‘편집자와 발행인’은 밝혔다. 지난 대선 당시 민주당의 고어 후보를 지지했다 공화당 부시 쪽으로 방향을 선회한 신문은 10개도 되지 않았다. 10여개의 신문사에서 편집진은 케리 지지, 경영진은 부시 지지로 의견이 갈린 것으로 파악됐다고 ‘편집자와 발행인’은 공개했다.

  

 미국 신문들의 당파성은 선거 보도 과정에서 어떤 형태로 표출됐을까.

 2004 10월 한달 동안 미국 수도를 근거지로 한 두 신문인 워싱턴 포스트(케리 지지)와 워싱턴 타임스(부시 지지) 선거 보도를 모니터한 결과,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두 신문 모두에서, 자사가 지지한 후보를 배려했다는 의혹을 살 수 있는 기사들이 다수 발견됐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워싱턴 타임스는 105일자 1면 톱으로 부시의 테러-국내 경제 관련 특별 연설을 비중있게 다뤘으나 워싱턴 포스트는 1면에서 다루지 않았다. 워싱턴포스트는 이날 케리가 유세 도중 부시의 hard work 발언을 꼬집고 있다는 뉴스를 정치면 톱으로 올렸다. 문제의 발언은 부시가 1차 대선후보 TV토론에서 자신의 행정부가 수많은 hard work에 둘러싸여 있다고 말한 대목으로, 케리는 유세 도중 이를 비꼬며 나는 hard work을 원한다. 피곤하면 나에게 넘기라고 공격했다.

 

같은 사안을 놓고 두 신문이 상반된 판단을 내리는 경우도 있었다. 109일 치러진 아프가니스탄 대통령 선거와 관련, 워싱턴 포스트는 다음날 논란에 휩싸인 아프간 선거라는 제하에 낙선 후보들이 부정 선거 의혹을 제기하며 선거 보이콧을 선언했다는 내용을 강조한 반면, 워싱턴 타임스는 평화롭게 치러진 아프간 선거라는 제목을 뽑았다. 아프간 침공의 성공적 결말을 부각시키고 싶어했던 부시 후보는 아마 워싱턴 타임스의 제목이 좋아 보였을 것이다.

 

이밖에 反 케리 성향의 베트남전 참전 용사 모임(Swift Boat Veterans for Truth)의 경우, 워싱턴 타임스가 워싱턴 포스트에 비해 더 많은 지면을 할애했다. 특히 이들이 자비로 워싱턴에 와서 케리는 군 통수권자 자격이 없다는 취지의 反 케리 TV 광고를 찍었을 때 워싱턴 타임스는 다음 날 1면 톱으로  다뤘으나 워싱턴 포스트는 기사화하지 않았다. 반대로 싱클레어 방송 그룹(Sinclair Broadcasting Group Inc.) 자사 소유의 62 지국에 케리 기록물(Stolen Honor: Wounds that never heal) 방영토록 지시한 사실이 로스엔젤레스 타임스에 의해 특종 보도되고 케리 후보 진영이 싱클레어측을 선거법 위반 혐의로 제소하면서 펼쳐진 일련의 소동은, 워싱턴 포스트가 1 톱기사로 다루며 주도해 나갔으나 워싱턴 타임스는 비중있게 다루지 않았다. 싱클레어 방송 그룹은 2001 9.11 사건 직후 지국에 부시 행정부의 카에다 비난 입장을 지지하는 사설을 방송하도록 지시했고 이번 대선에서는 전체 기부금 97% 공화당에 건넨 공화당 성향의 미디어다.

 

 워싱턴 포스트는 1016일자에 케리 후보 지지자가 In 2000 They stole the election. Now they stole my kerry sign(공화당이 2000 대선에선 민주당이 승리한 선거를 훔쳐가더니 이번엔 나의 케리 후보 홍보판을 훔쳐갔다) 적힌 피켓을 들고 있는 사진을 1면에 게재했다. 사진은 자신의 앞에 꽂아둔 케리 홍보 피켓이 사라지자 이를 부시 지지자들의 소행이라고 성토하는 장면인데   2000 대선 당시 민주당 고어 후보가 일반 유권자 투표에서 앞서고도 부시 후보에게 석패한 사실을 은연중에 상기시키고 있다.

 

 워싱턴 타임스는 1025일자 1면에 The Presidents Secrete weapon(대통령의 비밀 병기) 제목으로 퍼스트 레이디 로라 부시의 사진을 박스 기사와 함께 실었다. 당시 나온 여론조사를 보면 일부 민주당 지지자들조차 로라 부시에 대해서 만큼은 좋은 평가를 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로라 부시의 확실한 선전 효과를 말해준다. 선거가 앞에 다가온 1029일과 30, 워싱턴 포스트와 워싱턴 타임스는 각각 케리 집회장에 찬조 출연한 스타 부르스 스프링스턴 사진과 승리를 다짐하며 번쩍 손을 치켜든 부시와 아놀드 슈와제네거 켈리포니아 주지사 사진을 1면에 대문짝만하게 실었다.

 

 11 2 투표가 종료되고 다음날 오전 112 케리가 부시 후보에게 전화를 걸어 그의 승리를 인정하기 전까지, 신문들은 은연중에 정치적 성향을 표출한 것으로 조사됐다.

 

 ‘편집자와 발행인’에 따르면 대부분 케리를 지지한 메이저 신문들은 선거 다음날인 113일자 헤드 라인을 기껏해야 부시가 앞서고 있다는 정도에 그칠 정도로 신중하게 뽑았다. 뉴욕 타임스는 초판에 Bush and Kerry Locked in Tight Race(부시와 케리 박빙 경합)으로 헤드라인을 달았다가 다음판에서는 Bush holds Lead, Kerry Refuses to Concede Tight Race(부시 우세, 케리 승복 거부) 바꿨다. 워싱턴 포스트는 Presidential Race is Too Close to Call(대선 초박빙 접전)으로, 다른 케리 지지 신문인 피츠버그 포스트-가제트(펜실베니아주) All Eyes on Ohio(국민의 , 오하이오주에 쏠리다) 뽑았다.

 

 부시를 지지한 신문들을 보면 뉴욕 포스트가 최종판에서 Bush Seals Second Term in White House(부시, 재선 확실) 치고 나갔고 시카고 트리뷴은 Bush Leads Popular Vote; Kerry Camp Vows A Fight(부시 일반 유권자 투표 우세, 케리 진영 개표 투쟁 공언)으로 1 머리 기사 제목을 장식했다.  

 113 새벽 최종판 기사 마감 시간까지도 오하이오와 아이오와, 멕시코주에서 후보가 1% 내외의 접전을 벌이고 있었던 만큼 조간 신문들의 편집 간부들은 최적의 헤드 라인을 뽑아내기 위해 피를 말리는 구수 회의를 수없이 가져야 했다. 선거 결과에 관한 케리 지지 신문들의 다소 유보적인 태도는 이같은 접전 상황도 주요한 요인으로 작용한 것으로 판단된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케리 지지 신문들이 2000 대선 당시 너무 일찍 부시 후보를 승자로 선언했다는 사실을 반면교사로 삼아 이번 대선에서는 보다 신중한 입장을 취했다는 분석(‘편집자와 발행인’) 나왔다.

  

 케리 지지 신문들 일부는 예측불허의 접전을 펼쳤던 3개주에서 모두 부시가 승리한 후에도 케리의 승복 기자회견 전까지는 부시의 승리를 공식화하는 기사를 꺼렸다. 이들은 오하이오주의 ‘잠정 투표’(Provisional votes, 선거인 명부에 등록돼 있지 않은 유권자가 행한 투표로 유효 여부는 후에 판단한다) 모두 확인할 때까지는 부시의 승리를 인정할 없다는, 승복 전의 케리 후보 진영 입장에 동조한 셈이다.

 

 케리의 본거지인 메사추세츠주의 보스톤 글로브(케리 지지) 걸음 나아가 케리 후보가 113 오후 2 공식적인 결과 승복 회견을 갖기 10 전까지 자사의 사이트에 Not Over Yet(아직 끝나지 않았다)라는 헤드라인을 남겨뒀다. 케리가 이날 오전 부시 후보에게 전화를 걸어 결과에 승복하고 그의 당선을 축하한 사실도 사이트는 기사화하지 않았다. 뉴저지주의 유력지인 스타-레저(케리 지지) 자사의 사이트에서 케리 후보의 승복 회견을 줄도 보도하지 않았다.

 

 케리의 승복 선언으로 부시의 승리가 확정된 시점인 11 4, 케리를 지지 신문들은 일부 예외도 있었지만 대체로 냉정을 되찾은 모습이었다.

 

 케리를 지지한 신문들의 4일자 사설을 살펴보면, 뉴욕 타임스는 투표장을 찾은 유권자 49% 선거 결과에 만족하지 않는다는 점을 먼저 상기시킨 다음, 그럼에도 다수의 뜻을 수용하는 것이 민주주의의 본령임을 강조하고 이제는 승리감에 도취된 공화당원이나 부시를 반대한 민주당원 모두 앞으로 무엇을 것인지 결정해야 때라는 입장을 밝혔다. 워싱턴포스트는 대선 승리와 공화당의 다수 의석 점유라는 두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은 부시이지만 그의 길에는 수많은 난제들이 놓여있다는 점을 환기시킨 , 어찌됐든 일반 유권자 득표에서도 앞선 부시는 의심할 여지 없이 대통령으로서의 정통성을 확보하게 됐다고 평가했다. 필라델피아 인쿼러(펜실베니아주) “당사 편집진은 2004 10 동안 구체적으로 거론한 수많은 이유들 탓에 부시의 재선을 강력히 반대했다. 그러나 최종 결정권자는 누구도 아닌 유권자로 이제는 하나로 뭉칠 때”라고 밝혔다.

 

 모든 케리 지지 신문들이 차분한 자세를 견지한 것은 아니었다. 필라델피아 데일리(펜실베니아주) The Kerry Supporters Survival Guide; How to Get Through the Next Four Years With Your Activism Intact(케리 지지자들의 생존법; 공화당 세상을 변혁시키려는 의지를 견지하면서 공화당 정권 4년을 살아나가는 )이라는 도발적 제하의 사설을 게재했다. 필라델피아 데일리는 신랄한 표현을 동원해 부시 행정부를 성토한 케리 지지자들을 향해 공화당 대통령에 대한 공격을 멈추지 것을 촉구했다. 사설은 “체니 부통령에게는 유감이지만, 11400만명이 투표한 이번 대선에서 400만표 정도의 우세로는 국민으로부터 국가 정책을 좌지우지할 만한 정도의 위임을 받았다고 주장할 없다”. 덧붙였다. 일리노이주의 록포드 레지스터-스타는 “승자인 부시나 패자인 케리 모두 미국은 하나라고 외쳤지만 모든 미국인이 그러한 외침을 수용할 준비가 있는 것은 아니다. 케리를 지지한 당사의 편집진 내에도 다양한 반응이 존재한다. 편집인에게 있어서 지금은, 가슴이 뚫린 같은 실망감을 털어내고 통합을 말하기에는 너무 이른 시점이다”고 솔직하게 토로했다.         

 

 지금까지 나는 미국 언론이 ‘정치적, 이념적 시민 전쟁’으로 부를 만한 2004 대선 과정에서 어떤 입장을 취하고 개개의 사안들에 어떻게 반응했는지를 개략적으로 살펴봤다. 결과 일부 학자나 국내 언론에서 흔히 인용됐던 미국 신문에 대한 환상, 예컨대 미국 신문들은 사설을 통해 신문의 정치적 견해를 표명할 , 객관적 보도는 별개라는 주장도 이제는 비판적으로 수용해야 필요성이 있다는 결론에 이르게 됐다. 워싱턴 포스트 편집국장인 버넷이 지난해 취임 직후 인터넷 독자로부터 이런 질문을 받았다.

 “워싱턴 포스트는 진보적 편향성을 띤다는 비판을 줄곧 받아왔다.(물론 워싱턴 포스트는 줄곧 부인했지만) 그런 비판이 합당하지 않다고 생각하는가”   버넷 국장은 “그런 편향성에서 자유롭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감시와 자기 비판이 필요하다. 주제는 앞으로도 계속 논의돼야 사안으로 우리는 항상 염두에 두고 있다”고 답변했다.

 

 당파성 제로의 언론이 존재할 있을까.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매일 발생하는 많은 사건들을 취사 선택하고 해석해야 하는 언론의 속성상 100% 객관적인 보도는 어쩌면 무지개와 같은 것이다. 더욱이 언론은 시류에 영합하지 않는 나름의 분명한 觀을 세우고 세계를 창조적으로 해석해 나가야 하는 고차원의 책무도 담당해야 한다. 문제는 당파성이 언론사로서 견지해야 정체성의 차원을 넘어 객관성과 공정성이 생명인 보도의 영역을 부당히 침범하는 경우라 것이다. 버넷 국장이 강조한 ‘끊임없는 감시’와 ‘자기 비판’은 바로 이러한 상황을 염두에 것이라고 생각한다.

 

2002 한국의 대통령 선거는 언론의 당파성 문제를 한층 부각시킨 계기가 됐다특정 후보에 대한 언론사간 선호도가 역대 어느 대선 보다 극명하게 표출됐다고 본다. 그러나 한국 언론은 대외적으로 공정 보도를 표방할 , 어떤 신문도 특정 후보를 공식적으로 지지하지 않는다. 미국 언론의 정치적 입장 표명 관행도 많은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음은 이미 살펴본 바이나 그렇다고 한국 언론의 어정쩡한 태도 또한 바람직한 언론상은 아닐 것이다. 언론계 안팎의 진지한 논의가 필요한 대목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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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놀이 공원 디즈니 랜드로 유명한 미 플로리다주 올랜도에서

 동쪽으로 1시간 정도 차를 달리면

 대서양 파도가 넘실거리는 Space Coast와 만나게 됩니다.

 해변 이름 그대로 이 곳에

 우주를 향한 미국인의 도전 정신이 응축된

 Kennedy Space Center가 자리잡고 있습니다.

 

 NASA(미 항공우주국)의 로켓 발사 센터였던 이 곳은

 케네디 대통령이 63년 암살된 이후

 현재의 이름을 갖게 됐습니다.

 “60년대가 저물기 전에 달에 인간을 보내겠다는 케네디 대통령의 遺志는

 69 716일 실현됐습니다.

 케네디 센터의 로켓 발사대(Launch Pads 39A)를 떠난 아폴로11호가 나흘 뒤 Neil Armstrong Buzz Aldrin을 달에 내려 놓습니다.


 두 아이와 함께 케네디 센터를 찾았습니다.

 관광객 대부분은 자녀들을 동반한 부모들이더군요.

 호기심 많은 어린이들의 눈빛 속에

 과학 선진국의 미래가 투영돼 있는 듯 했습니다.

  67년 케네디 센터 일반 관람객을 위해

 비지팅 센터가 문을 연 이래

 매년 83만여명이 이 곳을 방문했다고 합니다.

 

 우주 탐험대의 도전과 성취, 희생의 궤적을 좇다보면

 어른인 저도 벅찬 감동에 몸이 떨리는 순간이 있었는데

 눈 맑은 어린이, 가슴이 뜨거운 청소년들의 감동은

 말할 나위도 없겠지요.

 60년대라면 소련과의 우주 개발 경쟁이 한창이었을 시절인데

 어떻게 미 정부는 일반 국민들에게

 이처럼 중요한 시설을 공개할 생각을 다 했을까요?

 남북 대치 상황이 정치적으로 악용되던 시절,

 사방에 도배된 '민간인 출입 금지' 표지판에 익숙해 있던 나로서는

 쉽게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입구에 들어서면

 우주 개발 초창기 역사를 장식한 로켓들이 전시된

 로켓 가든이 맨 먼저 눈에띕니다.

  

 투어에 참가하면 버스를 타고

 실제 로켓이 조립되고 있는 건물과 발사대 등이 있는

 제한 구역을 둘러볼 수 있습니다.

  버스는 한쪽 벽면에 NASA 로고가

 미국 국기와 함께 선명한 빌딩을 끼고 한 바퀴 돕니다.

 



  가이드를 겸하고 있는 운전 기사는 이 로고를

 98 NASA 설립 40주년을 기념해 그려 넣었다고 설명하더군요.

 

 운전 기사는 환갑을 훌쩍 넘긴 할아버지였습니다.

일하는 노인들은 여행 기간 내내 익숙한 풍경이었습니다.

 고속도로 상의 관광 안내소나 국립공원 매표소 등에서 일하는 이들은

 대개가 노인이었습니다.

 그 연세에 모두가 용돈을 벌기 위해 나온 것은 아닐 것입니다.

 궁금해서 물어보니 대부분이 자원 봉사라고 답변했습니다.

 

  NASA 로고가 새겨진 빌딩이 바로

 우주 왕복선이 조립돼 발사대로 옮겨지는

Vehicle Assembly Building입니.

 우주왕복선 발사가 있는 날마다 TV카메라가 부각시키는 이 빌딩은

 이제 케네디 센터의 상징이라 할 만하지요.

 당초 로켓 저장 창고로 지어진 이 빌딩은

 세계에서 제일 규모가 큰 창고 중 하나라고 합니다.

 

 우주왕복선이 착륙하는 활주로는

 길이가 4572m에 이릅니다.

 활주로 옆 수로는 인근 습지에 서식하는 악어들이

 일광욕하는 단골 장소이니 잘 찾아 보라고,

가이드는 너스레를 떨었습니다.

 조립된 우주 왕복선은

 축구장 절반쯤 되는 크기에

 무게가 3000톤에 육박한다고 합니다.

 

 도대체 이렇게 큰 우주 왕복선을

 조립 빌딩에서 어떻게 발사대까지 옮길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더군요.

 가이드는 저의 이런 생각을 읽기라도 한 듯,

 이 목적만을 위해 특수 수송차를 만들었는데

 속도는 시속 1마일 정도지만

 언덕을 오를 때는 평형을 유지하는 등의

 첨단 장치가 내장돼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투어 버스는 발사대와 로켓 모형(달 탐험 로켓으론 처음으로

 우주인을 태우고 발사된 Saturn V)이 전시된 Apolle/Saturn V 센터 두 곳에서

 승객을 풀어 놓습니다.

 

 겉으로 보기에 발사대는

 우주 왕복선을 지탱하는 단순한 철골 구조물일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우주 왕복선 발사 직전 무려 30만 갤런의 물이 채워진다는

 발사대 물탱크 하나만 놓고 봐도,

 이 물의 용도가 발사시 발생하는 엄청난 양의 소리 에너지를

 흡수토록하는 용도로 사용된다고 하니

 사람은 아는 만큼 본다는 말이 맞는 것 같습니다.               

 

 Apollo/Saturn V센터에는 볼 거리가 풍성합니다.

  이 곳을 찾은 이들은 미국이,

 57 10월 사상 처음인 소련의 인공위성 발사 성공 이후

 소련과의 우주 개발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해왔는지,

 그리고 어떤 희생을 치러왔는지 이해할 수 있습니다.

  로켓 발사 장면을 당시의 발사 관제실을 재현한 방에서

 생생히 지켜볼 수 있습니다.

 카운트 다운이 실제와 똑같이 이뤄져 박진감을 더합니다.

 


 <달 탐험 로켓 발사 장면을 그대로 재현하는 The Firing Room Theater>

 무려 40만명이 넘는 과학자와 공학자, 기술자들이

 우주선을 만들고 발사시키기 위해 노력하지만

 달 표면을 걸어 본 12명을 포함해 소수만이 우주 여행을 떠날 수 있답니다.

  Apollo/Saturn V 센터는

 소수를 위해 땀을 쏟은 수많은 이들을 위해 바쳐진 전당입니다.

 압권은 실제 크기 그대로 전시된 Saturn V 로켓입니다.

 

   
<내 디카로는 로켓 전체를 담을 수 없어 밑부분만>

 딸 아이는 달에서 가져왔다는 돌(?)이 신기한 지 손을 대봅니다.

 



 60억 인류 중에
대기권의 두터운 벽을 뚫고

 우주로 날아간 행운아들은 500명 미만이라고 합니다.

 그런 만큼 우주비행사들이 찍어온 우주의 모습을

 5층 건물 높이의 스크린을 통해 입체 영상으로 즐길 수 있는 IMAX 영화관은

 필수 관람 코스이겠지요.


 우리는 관광을 마치고 밖으로 나오다

 검은색의 커다란 화강암 추모비를 발견했습니다.

 

추모비 위엔 S.Christa McAuliffe, Michael J.Smith, Ronald E.McNair

 20명 가까운 이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었습니다.

모두 우주 비행이나 훈련 도중 목숨을 읽은 우주 비행사들입니다.

  매컬리프,

 86 1월 발사 직후 폭발한 우주왕복선 챌린처호 승무원입니다.

 고등학교 교사이자 최초로 일반 국민 중에 선발된 여성 우주인.

 당시 대학생이던 저는 TV를 통해 환하게 웃던 그녀의 사진들을 바라보다가

 학생들에게 우주의 신비를 전하고 싶어했다는 그녀의 너무도 소박한 소망에

 눈시울이 뜨거워졌던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이 화강암 구조물은 'Space Mirror'로 부릅니다.

 화강암 표면이 거울입니다.

 정확한 과학적 원리는 알 도리가 없지만

 화강암 거울에 비친 하얀 구름 속에

 희생자들의 이름이 둥둥 떠있는 듯이 보입니다.

 그들의 영혼이 그토록 동경했던 우주 속에서

 안식처를 찾은 것 처럼 느껴졌습니다.

 팸플릿을 읽어보니 이 추모비는 정부가 세운 것이 아니었습니다.

 86년 첼린저호 참사 직후

 중부 플로리다 지역 기업인들이 주축이 돼 설립한

 '우주 비행사 추모 재단'이 건립한 것더군요.

 그렇다고 추모 재단의 운영과 이 재단에 부속된 우주 교육센터가

 몇 몇 기업인의 자금 지원에 의존하고 있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첼린저호 승무원을 기리는 자동차 번호판을 구입한 플로리다 주민 모두가,

 미 전역에서 추모비를 방문한 수 천 만명의 미국민 모두가

운영의 주체였습니다.

 

 넓은 땅 덩어리와 풍부한 자원,

 과학 기술만이 미국을 강한 나라로 만드는 요인은 아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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