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달 22일, 서울시 강남구 수서동에 위치한 서울시아동복지센터에서 서울시립교향악단의 실내악 공연이 열렸다. 공연장에 모인 관람객은 모두 5∼12세 어린이. ‘아기상어’ ‘멋쟁이 토마토’ ‘할아버지의 시계’ 등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는 공연과 함께 율동과 타악기 연주 체험도 이어졌다. 클래식 공연을 처음 경험한 아이들은 공연 후에도 들뜬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평범해 보이는 연주회 같지만, 사실 이날 공연은 경제적인 이유로 문화 관람이 어려운 ‘문화 소외계층’을 위한 특별 무료 공연이었다.

삶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어주는 이런 ‘예술·문화’ 경험은 누구나 손쉽게 누릴 수 있어야 하지만, 자본력에 따라 예술 향유의 기회가 제한되는 것이 현실이다. 수십만원을 호가하는 클래식 공연만의 얘기가 아니다. 최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로 공연이 줄어드는 속도보다 더 빠르게 무료 공연이 쪼그라들고 있는 것이다. 문화 경험의 ‘빈익빈 부익부’는 또 다른 계층화를 빚어내고 있다.


◆소득 낮을 수록 문화 관람도 낮아

‘문화 양극화’는 정부 통계를 통해서도 확인된다. 문화체육관광부의 ‘2020년 문화예술활동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600만원 이상 최고 소득과 100만원 미만 최저 소득의 문화예술 관람률 격차는 50.6%포인트로 전년에 비해 더 벌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코로나19로 모든 가구의 관람률이 감소했지만 저소득 가구의 관람률 감소폭이 더 커진 탓이다. 2016년 58.6%였던 가구소득별 문화예술 관람률 격차는 2018년 49.4%포인트, 2019년 40.8%포인트로 감소하는 추세였지만 지난해 50.6%로 다시 확대됐다.

예술 접근성을 방해하는 것은 자본 격차뿐만이 아니다. 지역에 따라서도 달라진다. 지난해 읍·면 지역의 문화예술 관람률(46.5%)은 도시 지역(63.5%)보다 현저히 낮아 대도시와 읍면 지역의 문화예술 관람률 격차 역시 전년(12.7%)에 비해 17.0%포인트로 벌어졌다.

대도시에 살고 소득이 높을수록 다양한 문화 향유의 기회가 많은 반면 소도시에 살면서 소득이 적을 수록 그 기회가 줄어든다는 의미다.

이런 자본력에 따른 문화 경험의 차이를 줄이기 위해 정부와 각 지자체는 문화누리카드와 ‘찾아가는 공연’을 운영하고 있다.

문화누리카드는 저소득층이 1인당 10만원의 지원금을 받아 공연, 영화, 여행, 스포츠 등 다양한 분야에서 쓸 수 있도록 한 카드다. 문화예술위원회는 “문화누리카드로 50∼80% 할인된 나눔티켓을 구매하면 클래식, 뮤지컬 등을 다양하게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의도와 달리 문화누리카드 사용처는 도서와 영화 분야에 쏠렸다. 지난해 문화누리카드 사용처는 문화분야 71.4%, 관광 분야 26.5%, 체육분야 2.1%를 차지했다. 문화 분야 중에서도 도서 분야 사용액이 849억원으로 전체 사용액의 60%를 차지했다. 영화 비중도 7.6%로 비교적 높았지만 공연은 0.4%에 불과했다. 도서의 경우 참고서와 학습교재, 실용서를 구매하는, 사실상 여가와 문화의 개념보다는 ‘실용적’인 용도로 사용됐다.

◆소외계층 품는 문화생태계 구축해야

‘카드깡’도 여전히 성행하고 있다. 문화누리카드 홈페이지에서는 카드를 양도하거나 카드를 사용해 구입한 나눔티켓을 양도하는 부정행위에 대해서 자격 박탈을 경고하고 있지만 중고물품 판매 사이트와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문화누리카드 7만원에 팔아요” 등의 글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배가 고픈데 무슨 문화생활이냐”는 비아냥과 함께 일부에서는 최근 유튜브 등 인터넷을 통한 실황 중계가 늘어난 만큼 디지털이 ‘문화적 평등’을 이뤄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문화 소외계층을 위한 혜택이 불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디지털로 재생되는 ‘복제’와 현장 ‘직관’을 동일시하면 안 된다고 강조한다. 현장에서 느끼는 정서적 울림은 복제품과 비교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지자체의 ‘찾아가는 공연’이 더욱 확대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굳이 돈을 내고 공연장에 가지 않아도 생활 속에서 다양한 문화를 접할 기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서울시향이 서울시와 함께 ‘우리동네 음악회’와 ‘우리 아이 첫 콘서트’ 등의 무료 공연을 개최하고, 민간 오케스트라 심포니 송이 대형 트럭을 오케스트라 홀로 개조한 ‘윙트럭’으로 지방 소도시 등을 찾아가 주민들을 위한 음악회를 여는 것이 대표적이다.

주연주 서울시향 제1바이올린 단원은 “아이들과 음악회를 통한 만남은 연주자에게도 힐링이 된다. 음악과 문화는 차별 없이 누구나 누릴 수 있는 권리가 돼야 한다”며 ‘문화복지’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대중문화와 실용서에 편향된 문화누리카드에 과감하게 분야별 쿼터제를 도입하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전문가들은 특히 기초예술 분야에 대한 지원이 더욱 커져야 한다고 지적한다.

김대현 문화평론가는 “인터넷 등 ‘복제’ 공연으로 느낄 수 있는 정서적 울림은 현장에서 느낄 수 있는 생동감과 비교할 수도 없다”며 “특히 공연수익 등 상업성보다는 다양한 창의력과 실험을 시도하는 클래식, 연극, 본격 문학 등 기초예술 분야에 대한 기회 제공이 확대돼야 그 뼈대 위에 또다시 예술의 경계가 확대되고 다양한 콘텐츠가 생산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예술인 10명 중 4명 ‘투잡’… 한국판 조앤 롤링 요원하나

지난 2001년 전세계는 ‘해리포터’의 마법에 걸렸다. 해리포터의 작가는 이제 전 세계인이 아는 조앤 K 롤링. 오랜 시간 생활보조금을 받고 근근이 살아가던 가난한 예술인은 책 판매만으로만 3조원, 영화 등으로 300조원으로 추산되는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쾌거를 이뤘다.

그로부터 10여년이 흐른 후, 한국에서는 독립영화 등에서 실력을 인정받던 젊은 작가가 지병에 영양결핍이 겹치면서 사망했다. 촉망 받는 젊은 작가의 ‘아사’ 소식에 사회는 들끓었고, 작가 이름을 딴 일명 ‘최고은법’(예술인복지법)이 국회를 통과했다.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지난 2012년 한국예술인복지재단이 출범하면서 가난한 예술인들이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예술활동을 이어나갈 수 있도록 한 창작준비금 지원, 생활안정자금 융자, 예술인 파견지원 등의 혜택이 생겨났다. 1년에 300만원이 지원되는 창작준비금은 창작활동이 중단된 공백기간에 ‘실업급여’처럼 생활비로 쓸 수 있다. 또 생활안정자금 융자를 통해 은행 문턱이 높은 예술인들이 낮은 금리로 전세자금 등을 마련하고, 파견지원 사업을 통해 예술활동과 관련된 부업으로 재능을 활용하면서도 활동비을 받을 수도 있게 됐다.

그러나 아직도 갈 길이 멀다. 예술인복지법 이후에도 심심찮게 예술인들의 극단적 선택 소식이 들리는 것이 이를 반영한다.

지난 2018년 문화체육관광부가 발표한 예술인 실태조사에 따르면 ‘투잡’을 뛰는 예술인은 42.6%에 이르렀다. 겸업 예술인의 70% 이상은 불규칙하고 낮은 소득으로 예술활동에 전념하지 못한다고 답했다. 예술인의 가구 총 수입은 평균 4225만원. 배우자의 소득과 ‘부업’으로 벌어들인 돈을 합한 것으로, 예술활동으로 인한 개인 수입만 놓고보면 평균 1281만원을 벌어들인다. 분야별로는 문학과 사진 분야가 각각 550만원, 329만원으로 적은 소득을 기록했다. 건축과 방송연예 분야는 각각 5808만원, 2065만원으로 상대적으로 높은 소득을 올리는 것으로 나왔다.

창작준비금 지원도 지난해 신청자가 3만명이 넘었지만 실제 지원이 이뤄진 것은 1만5260명으로 절반에 불과했다. 그나마 코로나19로 지원이 대폭 늘어난 것이 이 정도다.

한국예술인복지재단 관계자는 “창작준비금이 큰돈은 아니지만 절박한 상황에서 지원금을 받고 예술활동을 이어가고 이후 영화제나 공모전에서 수상하는 사례들이 이어지고 있다”며 “예술생태계 보호를 위해서 불공정 계약이나 예술활동에 참여하고 돈을 받지 못하는 등의 상황을 방지하고 정당한 보상을 위한 사회안전망이 탄탄히 구축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진수 기자 jen@segye.com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은 일반 대기를 통해 전염되는 공기감염병이다/몸이 닿기만 해도 감염된다/눈을 바라만 봐도 감염될 수 있다/모기가 코로나19를 전파한다/중국산 김치, 식재료로 감염될 위험이 있다/비타민C가 코로나19를 퇴치한다/중국 당국이 공문을 통해 마늘이 예방책이라고 권고했다/특정 업체 가글액을 쓰면 코로나19를 예방할 수 있다/헤어드라이어를 쐬어주면 바이러스가 죽는다.’

지금 보면 어처구니없는 말들이지만, 한때 우리들 가운데 누군가는 이를 믿고 실천하기까지 했던 코로나19 관련 대표적인 ‘가짜뉴스’다. 잘못된 정보는 바이러스 확산으로 이어지는 등 피해도 왕왕 발생했다. 2020년 3월 국내 모 교회에서 코로나 소독을 이유로 분무기를 이용해 교인들의 구강에 소금물을 분사한 사건이 대표적이다. 이는 집단감염으로 이어져 국가방역체계를 흔들어놨다.

여기에 방역을 위한 정부의 관리·감시체계가 강화되면서 개인정보유출·인권침해 등 부작용도 나타났다. 비정부기구 국제앰네스티는 감염병이 침해하는 권리 가운데 가장 큰 것은 건강권이지만, 인권침해도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검열과 감시, 통제, 차별, 혐오, 국경통제 등 코로나19 관련한 각종 분야 대처에서 침해사례가 발생했다고 덧붙였다.

코로나19 백신 접종 와중에도 ‘인포데믹’은 계속되고 있다. 특히 화이자, 모더나, 아스트라제네카(AZ) 백신에 대한 허위 정보들이 퍼지며 백신 접종을 기피하는 ‘백신 포비아(공포증)’가 극성이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중심으로 퍼진 ‘화이자와 모더나 등의 mRNA(메신저 리보핵산) 방식 백신을 맞으면 유전자가 변한다’는 가짜뉴스가 대표적이다. 최근 포브스에 따르면 지난해 코로나바이러스 확산 이후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에서 백신 관련 정책 위반으로 삭제된 게시물이 1600만건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가짜뉴스는 사회적 혼란을 초래하고 당국의 대처를 어렵게 한다. 거기에 개인의 생명까지 위협할 수 있다. 정보가 중요한 시대에 거짓정보가 가진 위험성은 감염병 못지않다. 코로나 이후 시대를 준비해야 할 우리에게는 가짜뉴스에 대한 ‘백신’도 필요하다. 코로나바이러스가 사라져도 가짜뉴스는 남을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 디지털 뉴스 신뢰도 세계 최하위권

디지털 시대에 정보 전파 속도는 이전과는 비교가 안 된다.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 SNS, 메신저앱, 유튜브와 같은 동영상 플랫폼 등 정보의 유통 창구도 다양해졌다. 이를 통해 가짜뉴스와 허위정보 역시 확산 속도에 날개를 날았다. 워낙 넓고 빠르게 퍼지는 탓에 출처를 찾아내기도 힘들고 검증하기도 어려운 현실이다.

이런 가운데 디지털 시대 우리나라 뉴스는 국민의 신뢰를 받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23일 발간된 영국 옥스퍼드대학교 부설 로이터저널리즘연구소가 수행한 ‘디지털 뉴스 리포트 2021’에 따르면 ‘뉴스 전반에 대한 신뢰도’ 조사에서 한국은 신뢰한다는 응답률이 32%로 46개국 가운데 38위를 기록했다. 46개국 평균은 38%다. 한국은 조사에 참여한 2016년 이후로 매년 최하위권에 머물렀다. 이번 조사는 세계 주요 46개국 9만2372명(한국 2006명)을 대상으로 올해 1월13일부터 2월9일까지 온라인으로 진행됐다.

허위정보에 대한 우려는 커졌다. 보고서에 따르면 인터넷에서 접하는 정보의 진위에 대해 한국은 65%가 우려한다고 답했다. 지난 한 주 동안 어떠한 주제의 허위정보를 접했는지에 대한 질문에 한국 응답자들은 정치(51%), 코로나19(46%), 유명인(38%), 기후변화·환경(15%) 순으로 응답했다.

김대중 동아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는 지난 25일 이메일을 통해 “가짜뉴스가 생성·확산되는 이유는 근본적으로는 수용자들의 듣고자 하는, 혹은 듣고 싶어하는, 이른바 확증편향 정보 욕구가 증가했기 때문이라고 본다”며 “정보욕구 대상의 대부분은 정치 및 정치현상에 쏠려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언론의 신뢰도가 낮은 이유는 이러한 수용자의 양극화 현상과 맞물려 언론사의 정치적 편향성과 양극화 현상이 심화되기 때문”이라며 “언론수용자들이 자신의 정치적 성향과 맞지 않은 기사를 가짜뉴스로 취급하는 현상이 두드러지게 강화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가짜뉴스 온상 ‘유튜브’

유튜브는 우리나라 가짜뉴스의 온상으로 지목됐다. 보고서에서 허위정보 경로로 우려되는 미디어 플랫폼으로 한국인들은 압도적으로 유튜브(34%)를 꼽았다. 특히 정치·사회이슈·사건·사고 등을 다루는 유튜버들이 몇 년 사이 대거 등장하면서 이와 관련한 가짜뉴스, 음모론, 비방, 명예훼손 등 사회문제의 가짓수도 늘었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이 지난 2월 발표한 ‘유튜브 이용자들의 유튜버에 대한 인식’ 보고서에 따르면 이용자 10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87%는 유튜버가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사례 가운데 ‘매우 심각’한 문제로 가짜뉴스 전파를 꼽았다. 허위사실임을 알고도 콘텐츠를 제작하거나 유포하는 행동에 대해 ‘약간 심각’하다고 답한 응답자는 11.1%로 집계돼 ‘가짜뉴스 전파’를 심각한 문제라고 인식하는 비율은 98.1%에 이른다.

게다가 일명 ‘사이버렉카’(인터넷상에서 이슈가 된 각종 사건·사고들을 짜깁기한 영상이나 비판하는 영상을 주요 콘텐츠로 하는 유튜버를 부르는 멸칭)라 불리는 유튜버들의 무책임한 태도와 발언 등이 조명받으면서 별다른 제재수단이 없는 유튜브에 대한 비판여론도 거센 상황이다. 유튜브 측은 자체 가이드라인에 따라 유해성 콘텐츠에 세 번 경고, 계정 일시정지, 영구폐쇄 등을 하지만, 가이드라인 자체가 광범위하고 모호해 실질적인 규제는 어렵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주류 언론들이 유튜브나 커뮤니티를 ‘받아쓰기’하는 행태도 도마 위에 올랐다. 정덕현 문화평론가는 지난 25일 세계일보와의 통화에서 “주류 언론이 유튜브 등을 뉴스로 재생산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면서 “화제가 된다고 해서 경쟁적으로 보도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언론이 필터링해 주는 기능을 상실한 것이다. 무시해도 될 만한 정보들은 무시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디지털 환경 안에서 개인 미디어들이 뉴스를 생산하는 단계로 들어왔기 때문에 통제수단이 필요하다”며 “포털 등도 책임이 있다. 언론사들의 경쟁을 조장하는 구조적인 문제가 있는데 개선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개인정보, 보호와 활용에 균형 필요

최근 코로나19 대응 차원에서 국가가 개인 건강정보 등을 수집·활용하는 일이 잦아지며 민감정보 사용에 대한 경고등도 켜졌다.

지난해 12월 한국인터넷진흥원(KISA) 보고서에 따르면 영국 NHS 산하의 NHSX는 ‘Covid-19 데이터스토어’를 구축하고 공중보건 현황 및 건강 서비스와 관련한 실시간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프랑스는 정부 주도의 ‘SI-DEP’ 시스템을 통해 코로나19 진단 결과 등을 기록·관리한다. 미국 보건복지부는 CBTS(지역기반검진장소)에서 이뤄지는 환자 건강정보의 수집 및 보호에 대한 규제를 완화했다. 중국은 치료 목적 등을 이유로 시민들의 개인정보를 대대적으로 수집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광범위한 개인정보 수집은 정보 연동을 통한 침해사례를 만들 수 있다. 전문가들은 코로나19 방역과정에서 수집된 개인 건강정보가 쿠키 및 온라인 추적 기술과 결합할 경우 표적광고나 마케팅 목적으로 개인정보가 이용될 가능성을 제기했다. 데이터 유출 사고도 잇따랐다. 영국에서는 지난해 2월부터 8월까지 코로나19 양성반응을 보인 웨일스 주민 전체의 개인정보가, 뉴질랜드에서는 코로나19 확진 환자의 세부 개인정보가 유출됐다. 인도에서는 정부 서버에 저장된 8만건 이상의 코로나19 환자의 의료기록을 탈취했다는 해커들의 주장이 제기되기도 했다.

건강정보는 가장 대표적인 민감정보다. 포스트코로나 시대에 앞서 이런 민감정보에 대한 개인정보 보호의 원칙과 정보주체의 기본 권리를 희생하지 않는 균형 잡힌 접근 방식이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되는 중이다. 지난 18일 폐막한 ‘제55차 아시아·태평양 지역 개인정보 감독기관장 회의(APPA) 포럼’에서 아·태 지역 12개국 19개 개인정보 감독기관장과 산업계 관계자 등 450여명은 코로나19 사태로 개인 건강정보 등 민감정보 이용이 불가피하지만, 정보 최소수집, 보관 기간 제한 등 보호조치가 필요하다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

조성민 기자 josungmin@segye.com

“다양한 분야에서 전문성을 가진 법조인이 나올 것으로 기대합니다.”

2007년 7월3일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법이 통과될 때만 해도 이 같은 기대가 현실로 이뤄질 것이란 장밋빛 희망이 있었다. 2009년 로스쿨 체제가 본격 출범하고 11년이 지난 현재, 로스쿨은 다양성 함양 대신 ‘현대판 음서제’ 논란의 중심에 섰다.

29일 세계일보 조사 결과 올해 6대 로펌 신입 변호사 10명 중 7명은 이른바 ‘SKY(서울대·고려대·연세대) 로스쿨’ 출신으로 집계됐다. 이들의 출신 학부 역시 SKY 일색이었다. ‘SKY 학부→SKY 로스쿨→대형 로펌 취업’이 공식처럼 굳어진 것이다. 대학별 전문분야를 키우고, 학생은 원하는 분야에 특화된 로스쿨에 진학해 법조 인력을 다양화한다는 이상적 로스쿨 모델은 온데간데없고 고질적인 ‘대학 줄세우기’와 학벌주의만 악화된 모양새다.

법조계에선 “로스쿨의 존재 의의를 모르겠다”는 자조 섞인 목소리까지 들린다. 전문가들은 변호사시험을 자격시험화하는 등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6대 로펌 신입, SKY 로스쿨 출신이 77%

로스쿨 제도는 법조 현장의 학벌 장벽을 오히려 공고히 한 것으로 조사됐다. 대학 진학 때부터 SKY를 포함한 서울권 주요 대학에 입성하지 못하면 이후 로스쿨 진학·취업 과정에서 법조계 주류에 안착할 확률은 극히 낮아졌다.

올해 6대 로펌(김앤장·태평양·세종·광장·율촌·화우)에 입사한 187명의 신입 변호사 중 SKY 로스쿨 출신은 143명이나 됐다. 사법연수원 출신 2명을 제외하면 전체 신입 변호사 10명 중 약 7명(77.3%)이 SKY 출신이었다. 학교별로는 서울대가 72명(38.9%)으로 가장 많았고, 연세대(36명·19.4%), 고려대(35명·19%)가 뒤를 이었다. 대형 로펌은 검사·로클럭(재판연구원)과 함께 로스쿨생이 가장 원하는 취업지다.

SKY가 아닌 신입 변호사 역시 대부분 서울권 로스쿨 출신이었다. 비 SKY 중에선 성균관대가 14명(7.5%)으로 가장 많았고, 한양대(6명·3.2%), 중앙대(4명·2.1%), 이화여대(4명·2.1%), 서강대(3명·1.6%) 순이었다. SKY 출신과 비 SKY 서울지역 출신 입사자를 합치면 94.6%나 됐다. 사실상 서울 지역 로스쿨에 입학하지 못하면 6대 로펌 들어가기는 ‘하늘의 별따기’ 수준인 셈이다.

지방 로스쿨 중에선 경북대와 부산대, 인하대가 2명씩 6대 로펌 입사자를 배출했고, 전북대와 전남대, 아주대, 충남대에서 1명씩 6대 로펌에 취업했다. 올해 6대 로펌 입사자가 1명도 나오지 않은 로스쿨은 9개교(강원대·건국대·경희대·동아대·제주대·동아대·충북대·영남대·원광대)다.

지방 로스쿨에 재학 중인 A씨는 “회계사 등 전문자격증이 있거나 외국어를 모국어처럼 사용하는 드문 경우가 아니면 대형 로펌에 들어간 경우는 주변에서 거의 없다”며 “대형 로펌에 취업하고 싶은 사람들은 리트(LEET·법학적성시험) 몇 수를 해서라도 SKY 로스쿨을 간다”고 했다.

◆공식화된 ‘SKY 학부→SKY 로스쿨→대형로펌 취업’

대형 로펌 취업자가 SKY 로스쿨 일색인 것보다 더 큰 문제는 SKY 로스쿨 입학자 대다수가 SKY 학부 출신이라는 점이다. 20살 안팎에 SKY에 입학하지 못하면, 대형 로펌 취업길이 사실상 막히는 셈이다. 계층사다리를 늘리기 위해 만든 로스쿨이 오히려 사다리를 치워버리고, 다양한 진로 모색이나 인생 역전을 꿈꾸기 힘들게 만드는 형국이다.

시민단체 사법시험준비생모임이 올해 전국 24개 로스쿨(인하대 제외)을 상대로 ‘2021학년도 입학생의 출신대학 자료’를 받은 결과, SKY 로스쿨에 입학한 SKY 대학 출신은 87.1%였다. 학교별로 보면 서울대 로스쿨 신입생 153명 중 138명(90.2%), 연세대 신입생 126명 중 108명(85.7%), 고려대 신입생 124명 중 105명(84.7%)이 SKY 학부 출신이다. 자연히 대형 로펌 신입 변호사들의 출신 학부도 쏠림현상이 나타날 수밖에 없다. 올해 대형 로펌 5곳(김앤장·태평양·세종·율촌·화우) 입사자 중 80.6%는 SKY를 졸업한 것으로 집계됐다.

범위를 서울 지역 로스쿨로 넓히면 SKY 학부 출신이 싹쓸이하는 현상이 더욱 두드러진다. 서울 지역 로스쿨 중 SKY 학부 출신 비율은 90.2%였다. 서울 지역 로스쿨에 들어갈 수 있는 비SKY 출신은 10명 중 1명뿐이라는 얘기다. 지방대 로스쿨의 경우 SKY 학부 출신은 28.8%였다.

◆“변호사시험 자격시험화 등 확 바뀌어야”

법조계에선 로스쿨 제도가 ‘다양한 분야에서 전문성을 쌓은 법조인 양성’이라는 본래 취지를 살리려면 변호사시험을 자격시험으로 바꾸는 등 제도 변화가 필요하다고 본다. 현재 변호사시험은 암기 위주에다 합격률이 정해져 있어, 로스쿨에 다니는 3년 내내 시험 준비에 매달릴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이를 자격시험화하면 학생들이 관심 있는 전문분야를 3년 동안 파고들 여유가 그나마 늘어날 것으로 법조계에서는 기대한다. 각자 전문분야를 기르면 출신 학부·로스쿨의 ‘서열’은 상대적으로 덜 중요해질 수 있다.

방효경 변호사(법무법인 피앤케이)는 “변호사시험이 자격시험이 되면, 학교에서 변호사 시험공부는 최소화로 하고 남는 시간에 전문분야를 공부할 수 있다”며 “그렇게 되면 (SKY 로스쿨이 아니어도) 대형 로펌 내 전문팀에 가는 게 가능해진다”고 했다.

교사 출신의 박은선 변호사도 “변호사시험의 합격률 통제가 (현 상태의) 근본 원인”이라며 “‘변호사시험만 붙자’는 생각으로 공부하다 보니 전문성에 대한 중요성이 사라져 버렸다”고 지적했다.

올해 초 잠깐 타올랐던 ‘방통대 로스쿨’ 논의도 대안 중 하나다. 지난 1월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의원은 방송통신대학교에 로스쿨을 설치하는 내용의 특별법을 발의했다. 법학 학점 12점 이상만 이수하면 방통대 로스쿨에 입학할 수 있도록 한 것이 골자다. 현재까진 통과 가능성이 낮지만, 방통대 로스쿨이 실현되면 다양한 분야에서 사회경험을 쌓은 전문가들이 변호사로 유입될 길이 늘어난다.

이희진 기자 heejin@segye.com

‘다양한 법조인 양성’을 내세운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이 오히려 학벌주의를 공고화하는 현상에 대해서 현직 로스쿨 교수들은 제도 설계부터가 불공정했다고 비판했다. ‘변호사 자격 시험화’로 로스쿨 교육을 정상화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한국외대 로스쿨 이창현 교수는 29일 세계일보와 통화에서 “‘SKY(서울대·고려대·연세대)’ 인문·사회계열 졸업자의 지원이 많고 또 SKY로스쿨의 선발 인원이 서울대 150명, 연세대·고려대 각각 120명으로 다른 로스쿨을 압도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SKY 출신이) 대형로펌으로 이어지는 구조가 굳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우수한 자원이 몰리고 환경이 좋다 보니 SKY 로스쿨에서는 상승작용이 일어나고 반대로 지방의 로스쿨은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로스쿨 제도 설계 자체가 불공정하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이 교수는 “사법시험의 합격자 배출자 수를 토대로 로스쿨 정원이 정해진 것 자체가 지방과 서울 소재 로스쿨의 가장 큰 격차”라고 꼬집었다. 이어 “서울대 로스쿨은 일부 필수과목을 절대평가로 바꿔 학생들의 변호사시험 준비 부담을 덜어줬지만 정작 엄격한 학사 관리에 책임이 있는 로스쿨 협의회나 교육부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있다”며 “(다른 로스쿨) 1학년들이 반수해서라도 SKY, 서울대 로스쿨을 진학하려는 게 오히려 합리적인 선택”이라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지방 소재의 한 로스쿨 교수는 “대형 로펌을 목표로 한다면 애당초 지방의 로스쿨을 선택하지도 않는다”며 “학생 수도 적은 상황에서 우수한 인재는 서울에 빼앗기고 (지방대 로스쿨 출신의) 변시 합격률도 갈수록 떨어지면서 악재만 반복되고 있다”고 토로했다.

로스쿨 도입 당시 제도 연구에 참여했던 건국대 로스쿨 한상희 교수는 “로스쿨은 ‘변호사시험 자격 시험화’를 전제로 만들었다”며 “변시를 상대평가에 의한 선발시험처럼 운영하면서 제도가 엇박자를 내고 있다”고 비판했다. 한 교수는 “변시 합격에 목매게 되면서 로스쿨 교육은 황폐해지고 학생들은 사교육에 의존하게 됐다”며 “결국 로스쿨도 변시 합격을 위해 학벌로 대표되는 ‘범생이’를 선호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변호사로서의 성공 여부는 자격시험 통과 후에 결정될 내용”이라며 “로스쿨 교육을 충실히 받았다면 변호사 자격이 부여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창훈 기자 corazon@segye.com

#1. “좌절의 연속이었죠.”

울산 동구에서 중학교 1학년 아들과 살고 있는 40대 후반 A씨의 자존감은 최근 바닥으로 추락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일자리를 잃으면서다. 피아노학원을 운영했지만 코로나19로 학생 수가 줄면서 문을 닫아야 했다. 다른 피아노학원에서 파트타임 강사로 일하는 것도 잠시뿐. 일자리는 다시 사라졌다.

A씨는 어렵사리 딴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이용해 일자리를 알아봤지만 이 분야 역시 코로나19 사태가 휩쓸었고, 적응도 잘 되지 않았다. A씨에게 주어지는 일은 호텔 하우스키퍼 등 단기 일자리뿐이었다. 생계를 유지하기 어려워진 A씨는 이혼한 전 남편과의 재결합을 선택했다. A씨는 “내가 가지고 있는 능력을 활용할 수 있는 일은 구할 수 없고, 일자리 질은 점점 낮아지니 머리가 복잡하고 마음은 참담했다”고 토로했다.

#2. 60대 방문 요양보호사 B씨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 B씨와 같이 살고 있는 딸은 2019년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재취업 준비를 시작했다. 그러나 코로나19 확산으로 딸의 실직 상태는 길어졌고, B씨마저 지난해 2월말 ‘감염 우려’를 이유로 일이 줄었다. 한 달에 약 130만원이던 소득은 반토막이 됐다. 월세·보험료·생활비 등 지출해야 하는 비용은 그대로였고, B씨 소득만으론 살아갈 수 없게 됐다. 결국 어렵게 취업한 딸은 직업훈련생계비 1000만원을 대출받아야 했다. 코로나19를 벗어나도 모녀가 갚아야 할 다른 빚이 생긴 것이다.

◆코로나19 팬데믹은 여성에 더 큰 충격파

코로나19가 국내에 상륙한 지 1년6개월 정도 지났다. 코로나19를 겪는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힘든 일이지만, 일자리 측면에서는 여성들이 더 큰 충격을 받았다. 16일 한국은행의 ‘코로나19와 여성고용’ 보고서에 따르면 코로나19 확산 이후인 올해 1월 남성 취업자 수는 코로나19 확산 이전인 지난해 2월에 비해 2.4% 줄었지만, 여성은 이보다 2배 이상 많은 5.4%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팬데믹 1년 동안 여성고용률은 남성보다 0.9%포인트 떨어졌고, 실업률은 남성보다 1.7%포인트 올랐다.

한국고용정보원의 ‘코로나19가 내 직업에 미친 영향’에서도 고용시장에서의 남녀 간 충격파가 확연하게 다르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지난해 8월부터 11월까지 직업종사자 1만6244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코로나19 사태 이후 임금·소득이 감소했다는 답변은 전체의 35.8%였다. 성별로 살펴보면 남성(34.0%)보다는 여성(39.9%)이 상대적으로 소득 감소의 타격이 컸던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상황은 1997년 외환위기, 2008년 금융위기와는 사뭇 다르다. 외환위기와 금융위기 때는 남성 고용률이 여성보다 1.5%포인트 더 하락하고, 남성 실업률이 1.7%포인트 더 상승했다. 가장 큰 타격을 입은 업종은 건설업과 제조업이었다.

경기침체기 나타나는 ‘추가근로자 효과’는 찾아볼 수 없었다. 경기가 좋지 않으면 주 수입원인 남편의 소득이 줄면서 이를 메꾸기 위해 직업이 없던 아내가 고용시장에 뛰어든다. 보건·사회복지, 교육, 숙박·음식, 도·소매 등은 경기침체 상황에도 영향이 제한적이거나 오히려 취업자 수가 증가했다. 모두 여성 비중이 높은 산업들이다. 우리나라 여성 취업자 비중은 일반적으로 보건·사회복지(81%), 교육(67%), 숙박·음식(63%), 기타서비스(50%) 등에서 높게 나타난다.

맹점은 코로나19 이후 사회적 거리두기에 따라 이 같은 대면 서비스 산업이 크게 위축됐다는 점이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의 ‘코로나19 1년 - 여성의 일·돌봄 변화와 전망’을 보면 여성 노동자 3007명 중 퇴직자의 46.1%는 회사의 휴·폐업, 해고 등으로 일자리를 잃었다고 답했다. 업종별로는 교육서비스업, 도소매업, 숙박음식점업 등의 비중이 높았다. 퇴직 여성이 일을 그만둔 시점은 지난해 3월이 19.9%로 가장 많고, 4·8·11월이 각각 11%대로 나타났다. 8월과 11월은 코로나19 2차, 3차 대유행이 시작돼 권역별 거리두기가 상향된 시기다.

◆‘직장인 엄마’ 돌봄 부담 증가로 일 중단

코로나19는 특히 ‘직장인 엄마’에게 더 가혹했다. 팬데믹 1년간 30∼45세 여성의 취업자 수가 감소한 가운데 기혼여성 비중이 95.4%인데, 미혼여성은 4.6%에 불과했다. 코로나19로 일을 관둔 여성 대부분은 기혼여성이었던 것이다. 또 미혼여성 취업자는 코로나 확산 초기에 6% 내외 감소한 이후 6개월 만에 이전 수준을 회복했다.

하지만 육아 등의 부담이 있는 기혼여성 취업자는 코로나19 초반 약 10% 줄어든 이후 거의 1년 동안 이전 수준을 회복하지 못했다. 자녀 수가 많거나 초등학생 자녀를 둔 기혼여성의 고용률이 더 큰 폭으로 하락했다는 점도 코로나19의 직격탄을 맞은 여성의 현주소를 웅변하고 있다. 돌봄과 가사노동은 남성보다 여성이 더 많이 분담하고 있는데, 코로나19 확산으로 학교와 어린이집, 학원이 비대면으로 전환하면서 여성들의 돌봄 부담이 크게 늘었고 기혼 여성의 고용을 악화시킨 것으로 분석된다.

재취업한 여성의 일자리의 질은 전보다 더 나빠졌다. 코로나 시기 퇴직 후 재취업한 여성은 이전보다 더 일시적인 일자리에 취업했을 가능성이 더 크게 나타났다. 여성정책연구원의 보고서에 따르면 코로나19 이후 퇴직한 여성 3명 중 1명은 재취업했지만, 2명은 여전히 실직상태에 놓여있다. 20대, 저학력, 임시·일용직일수록 실직 상태가 길거나 일시적 취업-퇴직을 반복하고 있다.

재취업 여성의 코로나19 이전 일자리는 상용직 비중이 60.4%였으나 코로나19 이후 재취업한 일자리는 임시·일용직 비중이 57.1%였다. 상용직 비중은 42.9%에 불과했다. 시간제 비중도 코로나 이전엔 43.0%였지만 이후엔 49.3%로 증가했다.

여성들은 코로나19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을 남성보다 더 느낀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트라우마스트레스학회의 2021년 1분기 ‘국민 정신건강 실태조사’에서 여성의 코로나19에 대한 두려움은 1.81점(10점 만점)으로 남성(1.61점)보다 높았고, 불안(4.97점)도 남성(4.27점)보다 더 많이 느낀 것으로 집계됐다. 코로나19가 직업·사회·가정생활 등 일상생활에 방해된다고 느끼는 정도는 4.57점으로 역시 남성(4.27점)보다 더 점수가 많았다. 특히 어린 연령대의 자녀를 둔 경우가 많은 30대 여성의 경우 우울위험군 비중이 30.5%로 전 연령대에서 가장 높았다. 실직 등으로 인한 경제적 어려움과 비대면 수업으로 인한 아이 돌봄 부담 증가, 세 끼 식사를 집에서 준비해야 하는 가사업무 가중 등의 특성 때문으로 풀이된다.

◆여성고용 안전망 구축 필요

전문가들은 코로나19라는 전대미문의 팬데믹이 고용시장의 성별 양극화를 촉진시킨다며 고용안전망 사각지대 해소를 위한 중장기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원정 여성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보고서에서 “고용조정 사업장의 상당수가 여성·임산부, 육아휴직 사용자를 우선 대상으로 했다는 조사 결과는 코로나발 경제위기가 과거 경제위기 시 성별 불평등 양상을 되풀이할 가능성을 시사한다”고 지적했다.

박민정 울산여성가족개발원 정책연구팀장은 “여성의 경제활동 시작 단계에서부터 전문성을 키워가고, 안정된 직장에 취업하고, 가족돌봄이 안정적으로 지원되지 않는다면 지금과 같이 고용시장이 불안해지거나 가족돌봄을 위한 인력이 필요한 경우 여성은 언제든 경제활동을 하지 못하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고 진단했다.

박 팀장은 이어 “중장기적으론 산업 다각화를 대비하는 직업교육 프로그램을 중·고등학교 과정에서부터 진행해 여성을 산업이 필요한 인재로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며 “여성을 채용하는 기업에 고용 안정화 측면에 가점을 주는 등 여성고용 안정화를 위한 기업과 정부의 합의가 필요하다. 가족돌봄의 역할이 여성에게 한정되지 않도록 사회적 분위기와 제도적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여성 중에서도 20대 ‘직격탄’… 극단적 선택 급증

20대 여성은 코로나19로 다른 연령대에 비해 일자리 위기를 더 많이 경험했다. 일자리를 잃으면서 우울감은 커졌고, 극단적인 선택을 시도하는 경우도 크게 늘었다. 코로나19 이후 스스로 목숨을 끊는 20대 여성은 가파르게 늘고 있다.

16일 더불어민주당 신동근 의원이 보건복지부로부터 제출받은 ‘2020년 응급실 내원 자살시도자 현황’에 따르면 지난해 ‘응급실 기반 자살시도자 사후관리사업’에 참여한 전국 응급의료기관 66곳에 실려온 자살시도자는 2만2572명이다. 이 중 20대 여성이 4607명으로 전체의 20.4%를 차지한다. 남녀 모든 연령대에서 가장 비율이 높다. 증가율도 가장 가팔랐다. 전체 자살시도자가 최근 1년 사이 2만1545명에서 2만2572명으로, 4.7% 증가할 때 20대 여성의 증가율은 33.5%(3449→4607명)로 늘었다.

복지부의 최근 ‘2021년 1분기 코로나19 국민 정신건강 실태조사’에서도 적신호가 켜진 20대 여성의 정신건강 상태를 엿볼 수 있다. 전체 우울위험군 비율이 코로나19 발생 이전인 2018년 3.8%에서 올해 22.8%로 6배 증가한 가운데 20대 여성의 우울위험군 비율은 30.4%로 나타났다. 이는 30대 여성(31.6%) 다음으로 높은 것이다.

20대 여성은 지난해 3월 4.6점(10점 만점)으로 우울감이 가장 낮았으나 급격하게 증가해 최근 조사에서는 7.1점으로 1년 만에 점수가 크게 높아졌다. 주로 숙박음식점업과 서비스·판매직 등에 종사하는 20대 여성의 경우 코로나19 확산으로 일자리 안정성이 악화하면서 정신적 압박을 더 받은 것으로 보인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20대 여성 가운데 특히 저학력 여성에게 일자리 위기가 집중됐다. 고졸 이하 20대 여성의 절반가량(44.8%)이 코로나19 확산 이후 “퇴직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퇴직·실직 비율은 높았지만 대부분은 당국의 고용위기 대응 지원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것으로 보인다. 20대 여성의 실업급여 수급률은 16.4%로 다른 연령대 여성(24.0%)보다 낮았고, 고졸 이하 여성 수급률은 7%로 이보다 더 낮았다. 비필수인력, 재택근무 불가 일자리를 관둔 비중 역시 20대 여성이 다른 연령대 여성들보다 압도적으로 높았다.

전문가들은 20대 여성의 경우 미래 준비에 대한 불확실성과 취업 및 아르바이트 등 일자리 감소, 사회적 관계 위축으로 코로나19 충격파가 더 클 것으로 진단했다. 배은희 울산정신건강복지센터 정신건강사업팀장은 “‘포스트 코로나’ 이후 사회적 지원 서비스가 줄어들고 재난 이전으로 돌아가려고 하는 시기에 우울, 자살 등의 문제는 더욱 심각해질 것으로 예상된다”며 “불안, 공포, 스트레스 등은 코로나19라는 비정상적인 사건에 대한 지극히 정상적인 반응이지만, 이것을 관리하지 않고 방치할 경우 우울, 불안장애, 중독문제, 심하면 자살로까지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적극적인 관여와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울산=이보람 기자 boram@segye.com

“(대입 수시전형에 대한) 신뢰가 형성될 때까지 서울의 주요대학을 중심으로 수시와 정시 비중의 지나친 불균형을 해소하라.”

문재인 대통령이 2019년 10월25일 교육개혁관계장관회의에서 당부한 말이다. 당시 ‘조국 사태’를 계기로 대입 선발 비중이 높은 수시 전형의 불공정성에 대한 비판 목소리가 높아지자 정시전형 확대를 주문한 것이다. 많은 학부모와 학생, 사교육 시장에 영향을 미치는 대학입시를 중심으로 교육의 공정성을 확보하라는 취지가 담겼다. 그만큼 입시를 비롯한 교육제도·정책에 대한 국민 불신은 상당하다. 계층 이동의 주요 사다리로 여겨졌던 교육과 입시가 사다리는커녕 빈부 격차에 따라 대물림된 지 오래이기 때문이다. 가난해도 공부만 잘하면 ‘좋은 대학’을 나와 안정적인 고임금의 일자리를 가질 수 있다는 얘기는 피부에 와닿지 않는 시대다. 고학력에 재산이 많은 부모를 둔 학생일수록 입시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고 좋은 대학에 갈 확률이 매우 높아서다. 이는 다시 삶의 질을 좌우하는 임금 격차로 이어진다.

◆한국 사회의 학벌 프리미엄

1일 한국노동연구원의 ‘대학서열과 생애임금격차’ 보고서에 따르면 좋은 대학으로 불리는 상위권 대학을 졸업한 근로자들은 그러지 못한 졸업자들에 비해 14.0% 많은 임금을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는 대학서열을 매길 수 있는 4년제 대학을 5~1분위로 나눠 출신학교에 따른 급여차이를 분석했다. 조사결과 최상위권인 5분위 대학을 졸업한 취업자들의 평균 연봉은 3766만원이었고, 최하위권인 1분위 대학 출신은 2912만원을 받았다. 두 그룹의 임금 격차는 시간이 흐를수록 더 벌어져 40~44세일 때 연봉차이는 46.5%나 됐다.

좋은 대학을 나오면 상대적으로 고임금을 받을 수 있는, 즉 학벌 프리미엄이 존재한다는 의미다.

한국개발연구원(KDI)도 ‘고등교육 노동시장 성과와 서열구조 분석’ 보고서에서 “대학 백분위 서열이 1%포인트 상승할 때 시간당 임금은 0.5% 늘어난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인적자본의 영향이 커서 학벌 프리미엄이 존재한다’고 설명한다. 인적자본은 교육 등으로 그 경제가치나 생산력을 높일 수 있는 배경을 의미한다.

이지영 KDI 전문연구원은 “좋은 학교를 졸업한 이들의 연봉이 높은 이유는 다양하겠지만 그중에서도 대학교육을 통해 더 높은 수준의 인적자본을 획득하거나, 재학 중 동료로부터 좋은 영향을 받아 더 높은 수준의 인적자본을 쌓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선배나 동료가 사회적으로 유리한 위치에 있는 모습을 보고 이와 유사한 수준의 일자리를 얻기 위해 노력하면서 결국 양질의 일자리를 확보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취지는 좋았으나 교육 불평등 심화 지적받은 수시전형

대입이 학력고사 체제에서 대학수학능력시험 체제로 바뀐 후 수시전형은 1997학년도 입시에서 처음 등장했다. 당시 1.4%에 그쳤던 수시 선발 비율은 2002학년도 입시 때부터 급증했다. 김대중정부 시절 이해찬 교육부 장관이 ‘한 가지 특기만 있어도 대학에 갈 수 있다’며 수시 선발 비중을 30% 가까이 확대한 것이다. 학생들이 입시 부담을 벗고 다양한 개성을 발휘하면서 대학에 쉽게 갈 수 있도록 하겠다는 취지였다. 취지는 살리지 못했지만 수시 비중은 계속 증가했고, 2007학년도에서는 처음으로 수시와 정시 비중이 역전됐다. 수시 전형의 모습도 변신에 변신을 거듭해 엄청 복잡해져 사교육 시장 의존도를 키웠다. 2008학년도에 도입된 입학사정관제도 학교생활기록부와 교내외 활동까지 모두 반영해 외부 스펙 경쟁을 유발한다는 지적을 받았다. 2013학년도에는 수시 학생부종합전형(학종)이 도입돼 학생부와 자기소개서 등 교내 활동 자료를 중심으로 신입생을 선발했고, 학종은 곧 수시 비중의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특기자 전형도 신설됐다. 내신은 우수하지 않아도 어학이나 과학 등 특정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낸 학생들은 특기자 전형으로 대학에 진학했다.

◆부모의 능력 경쟁된 수시

결과보다 과정을 중시한 수시전형의 도입 취지는 좋았지만 시행 과정에서 부작용이 상당했다. 대학은 학생들의 평소 학교생활을 평가하기 위해 스펙을 참조했고, 부모의 지원 사격을 충분히 받을 수 있는 학생들은 좋은 대학 입시에 유리한 고등학교를 들어간 뒤 논문 작성이나 인턴 경험 등 화려한 스펙을 뽐내며 수시 관문을 수월하게 통과했다. 학생 본인의 역량이나 노력 외에 부모 능력과 고교 유형 등 외부 환경이 입시 당락에 큰 영향을 주고 그 기준마저 명확하지 않아 ‘금수저 전형’이라는 비판까지 제기됐다. 특기자 전형만 해도 과학고와 외국어고, 국제고 등 사실상 특수목적고 학생들을 위한 제도라는 평가가 나오면서 고교서열화 논란으로 이어졌다.

특히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자녀의 입시 부정 의혹 사태가 수시전형 불신을 더욱 부채질했다.

문 대통령의 주문 이후 유은혜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불신받는 학종의 비율이 높은 대학은 불가피하게 정시와 학종의 비율을 적정하게 균형을 맞춰야 한다”고 말했다.

교육부는 뒤늦게 정시 확대방안을 내놨지만 그런다고 교육의 공정성과 사다리 역할이 회복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홍세화 전 학벌없는사회 대표가 “이젠 부모의 배경 없이는 학벌을 갖기도 어렵고, 가지더라도 당대의 노력으로 부모의 격차를 메울 수 없는 정도가 됐다”고 지적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정시’ 확대로 돌아섰지만… ‘사다리 재건’ 역할엔 의문

정부가 수시전형 비중을 축소하고 정시전형 비중을 늘리기로 한 것은 교육 기회의 공정성 확보를 위해서다. 취지와 다르게 교육이 계층 이동 사다리가 아니라 계층 대물림을 가속화한다는 비판 여론을 감안한 조치다. 하지만 임기응변식의 잦은 정책 변경에 따라 일선 교육 현장의 혼란이 가중된다는 우려와 함께 교육 문제의 근본적인 해법과 거리가 멀다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1일 교육계에 따르면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는 정시확대에 대해 “정치권에 떠밀려 정책을 급조했다”고 비판했다. 조성철 한국교총 대변인은 “교육정책에 대해 찬반이 엇갈릴 수 있지만 현장에서는 교육정책이 너무 자주 바뀐다고 우려한다”며 “잦은 정책 수정이 이뤄질 경우 정보에 가까운 쪽이 유리해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정부가 바뀔 때마다 교육정책은 수정됐다. 이번 정부에서도 마찬가지다. 2017년 8월 공개된 대학수학능력시험 개편안은 여론의 반발에 1년간 유예됐다. 유치원 방과 후 수업에서 영어교육을 금지하는 방안도 추진됐지만 역풍을 맞아 중단되기도 했다.

정시확대가 교육의 공정성을 담보할 수 있느냐를 두고도 의견은 갈린다. 정소영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대변인은 “대학 서열화가 공고한 상황에서 정시확대는 이를 옹호하는 정책이 될 수밖에 없다”며 “교육 계층 사다리를 복원하겠다는 취지에 어긋난다”고 꼬집었다.

수능에 서술형을 도입하거나 논술형으로 개선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이범 교육평론가는 한 토론회에서 “사고능력과 논증능력은 오지선다 시험인 수능으로 알아볼 수 없다”며 “선진국에서 입시를 논술형으로 치르는 것도 이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캐나다와 노르웨이를 제외한 모든 국가는 표준화된 대입 시험이 있고, 영국과 프랑스, 독일, 호주, 이탈리아, 덴마크 등에서는 대입 시험을 논술형으로 치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경회 성신여대 교육학과 “교수는 주입식 교육으로 회귀한다는 비판을 피하기 위해 서술형 문항 도입을 검토하는 것이 맞다”며 “논술이 도입됐을 때 채점 등 관리를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도 따라야 한다”고 조언했다.

임성호 종로학원하늘교육 대표는 “고교학점제 등 변화하는 제도에 맞춰 수능제도에 맞춰 논술형을 도입하는 방안을 논의할 수 있다”면서도 “문이과 통합수능이 치러지지도 않은 상황에서 수능제도에 변화를 주겠다고 하면 교육 소비자들은 불안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교육부는 2025학년도부터 전국 고등학교에 학점제가 도입되는 만큼 새로운 대입 평가방식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 2028학년도 수능부터 논술이나 서술형 시험을 도입하는 방안도 논의할 계획이다.

정필재 기자 rush@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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