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창간 대선주자 여론조사
李지사 지지율 32.5% 선두 고수
60대 이상·TK 제외 모두 앞서
“서울시장 야당 후보 당선” 32%
“잘 모르겠다” 40%… 부동층 변수

이재명 경기도 지사가 차기 대선주자 선호도 조사에서 처음으로 30%대에 진입한 것으로 나타났다. 두 달 앞으로 다가온 보궐선거 전망은 “잘 모르겠다”는 응답이 40%대에 달했다.

세계일보가 창간 32주년을 맞아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서치앤리서치’에 의뢰해 지난달 26∼28일 사흘간 전국 만 18세 이상 성인 남녀 101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이 지사는 가장 높은 32.5%의 지지율을 기록했다. 그 뒤를 윤석열 검찰총장(17.5%), 더불어민주당 이낙연 대표(13.0%)가 이었다. 차기 대권 구도가 이 지사의 ‘1강 구도’로 재편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 지사는 60대 이상을 제외한 전 연령층, 대구·경북을 뺀 전 지역에서 이 대표와 윤 총장을 앞섰다. 60대 이상과 대구·경북에선 윤 총장이 1위였다. 지지정당별로 보면 더불어민주당(49.2%)과 정의당 지지층(43.0%)·무당층(27.6%)에서 이 지사가 가장 높은 지지를 받았다. 윤 총장은 제1야당인 국민의힘 지지층(44.6%)과 대구·경북(33.2%)에서 가장 많은 지지를 받았다.

오는 7월 24일 임기가 끝나는 윤 총장의 대선 출마 여부에 관해서는 “출마하지 않을 것”이란 응답(39.0%)과 “잘 모르겠다”는 응답(38.5%)이 비슷하게 나왔다. 응답자의 19.8%는 “야당 후보로 출마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여당 후보로 출마할 것”이라는 의견은 2.6%에 그쳤다. 오는 4월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나선 후보를 제외한 야권 후보인 무소속 홍준표 의원(3.9%), 미래통합당 황교안 전 대표(2.0%), 유승민 전 의원(1.8%) 등은 지지율이 저조했다.

한편 보궐선거 전망과 관련해 서울시장 선거에서는 “야당 후보가 당선될 것”이라는 응답(32.0%)과 “여당 후보가 당선될 것”(27.8%)이란 응답이 오차 범위 내로 나왔다. ‘잘 모르겠다’는 응답은 40.2%에 달했다. 부산시장 선거의 경우 야당 후보 당선 전망(43.3%)이 여당 후보 당선 전망(13.7%)을 압도했으나 역시 “잘 모르겠다”(43.0%)는 응답도 많았다. 아직 여야 후보가 확정되지 않은 상황 등이 반영된 결과로 해석된다.

임기 5년차에 접어든 문재인 대통령의 직무수행 평가는 부정평가가 53.2%, 긍정평가가 40.6%였다. 1년 전 세계일보 창간 31주년 여론조사에서는 긍정 평가 48.6%, 부정 평가 46.1%였다. 긍정 평가는 8%포인트 하락하고 부정 평가는 7.1%포인트 상승했다.

장혜진·김민순 기자 janghj@segye.com

◆조사 어떻게 했나

세계일보가 창간 32주년을 맞아 실시한 여론조사는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서치앤리서치에 의뢰해 이뤄졌다. 지난 26~28일 3일간 전국 만 18세 이상 성인 남녀 1010명을 대상으로 일대일 전화면접조사(CATI)로 진행했다. 유선 전화면접 21%, 무선 전화면접 79%를 합산했다. 2020년 12월 말 행정안전부 주민등록 인구를 기준으로 성, 연령, 지역별 가중값(셀가중)을 부여했다. 응답률은 10%(총 통화시도 1만55건)이며 신뢰 수준은 95%, 표본오차는 ±3.1%포인트다.

일부 백분율 합계는 99.9% 또는 100.1%가 될 수 있는데 이는 소수점 반올림으로 나타나는 현상으로, 전체 결과 해석에는 영향을 주지 않는다.

전체 표본 중 남자는 546명(54.1%), 여자는 464명(45.9%)이었다. 연령별로는 만 18~29세 142명(14.1%), 30대 128명(12.7%), 40대 183명(18.1%), 50대 230명(22.8%), 60세 이상 327명(32.4%)이었다. 지역별로는 서울 214명(21.2%), 인천·경기 310명(30.7%), 대전·세종·충청 99명(9.8%), 광주·전라 108명(10.7%), 대구·경북 100명(9.9%), 부산·울산·경남 143명(14.2%), 강원·제주 36명(3.6%)이었다.

조사는 △국정평가 및 전망 △외교·안보 △경제·산업 △정치·선거 등 분야에서 이뤄졌다. 응답자 특성은 △성·연령·지역 △직업·소득·이념 성향 등으로 구분했다. 그 밖의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www.nesdc.go.kr)에서 확인할 수 있다.

차기 대선주자 적합도
재난기본소득 등 주도… 선명성 부각
주목도 떨어진 윤석열 지지층 흡수
“중도·보수층 아우르는 확장성 갖춰”

尹, 야권주자 가운데 독보적 지지율
안철수 5%·홍준표 3.9%·오세훈 2.7%

세계일보 창간 32주년 여론조사 결과에서 이재명 경기지사가 더불어민주당 지지층과 호남 지역의 높은 지지율에 힘입어 차기 대선주자 선호도 30%를 돌파했다. 이 지사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등록된 여론조사에서 30%대 지지율을 기록한 것은 처음이다.

이 지사는 최근 차기 대선주자 선호도에서 선두로 치고 나온 뒤에도 지지율 20%대 박스권에 갇혀 있었다. 이번 조사를 통해 무당(중도)층 유권자를 끌어올 수 있는 확장 가능성을 보였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 지사의 지지율은 대구·경북(TK) 지역을 제외한 전 지역에서 고르게 높았다. 특히 정치 연고지인 경기·인천 지역(40.0%)에서 경쟁자인 민주당 이낙연 대표(13.3%)를 크게 앞섰다.

정의당 지지층(43.0%)도 이 지사에 대해 호의적이었다. 재난기본소득 등 진보적 의제를 주도하며 선명한 노선을 보여준 점이 주효한 것으로 보인다. 지지하는 정당이 없거나, 지지 정당을 밝히지 않은 ‘무당층’에서도 이 지사 지지율은 27.6%로 윤석열 검찰총장(11.6%)과 이 대표(7.0%)를 앞섰다.

민주당의 텃밭이자 이 대표의 고향인 호남에서 이 대표보다 25.6%포인트 높은 지지율이 나온 점은 주목된다. 사실상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의 판세를 좌우할 민주당 지지층이 이 지사 쪽으로 쏠리는 현상이 나타나면서 그간 이 지사에 우호적이지 않았던 친문재인 지지층의 향배가 관심사로 떠올랐다. 친문 진영에서는 김경수 경남지사와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 등이 대선 불출마 의사를 밝히면서 이들의 대안을 모색하려는 움직임이 있었다. 이 대표와 이 지사의 지지율이 20%대 정체 구간에 갇혀 있을 때는 정세균 총리나 이광재 의원, 임종석 전 대통령비서실장이 제3후보로 나서서 판을 역동적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이 지사의 독주 상황이 지속되면 이런 친문 진영의 흐름에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다. 대권 행보를 가속화하고 있는 정 총리는 이번 조사에서 2.8%에 그쳐 유력 주자로 발돋움할 수 있는 기준으로 평가되는 ‘지지율 5%’ 벽을 좀체 넘지 못하고 있다. 정 총리의 지지율은 같은 호남 주자인 이 대표의 지지율과 연동돼 있다는 분석이다.

올해 초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사면을 거론한 뒤 지지층 이탈 현상이 나타났던 이 대표가 4월 보궐선거 등을 계기로 반전에 성공할지도 관전 포인트다.

1년 전 세계일보 창간 31주년 여론조사에서 이 지사는 이 대표(32.2%)와 윤 총장(10.8%), 미래통합당 황교안 전 대표(10.1%)에 이어 5.6%로 4위에 그쳤다. 지난해 이 대표의 호남 지역 지지율은 59.7%였다.

최창렬 용인대 교수는 “이 지사의 30%대 진입은 중도·보수층을 아우르는 확장성을 갖췄다는 의미심장한 결과라고 볼 수 있다”며 “친문의 행보를 지나치게 의식한 이 대표에 대한 지지와 추미애 전 법무장관과 갈등 이후 주목도가 떨어진 윤 총장의 지지율을 일부 흡수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민주당 내 제3후보의 등장이나 중도지대를 대표하는 주자의 출현 등 의외의 변수가 없다면 이 지사의 1강 체제는 당분간 유지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윤 총장은 여전히 20% 가까운 지지율을 보이며 여권 후보에 맞설 유력 야권 주자임을 입증했다. 문재인정부에 맞서 각종 권력형 의혹 사건 수사를 몰아붙이고 추 전 장관과 갈등을 빚으면서 야권 지지층이 윤 총장을 중심으로 결집한 결과라는 분석이다. 윤 총장의 독주에 야권의 대선 주자들은 5% 이하의 지지율을 보이며 부상하지 못하는 현상이 나타났다.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 5.0%, 무소속 홍준표 의원 3.9%, 오세훈 전 서울시장 2.7%, 미래통합당 황 전 대표 2.0%, 유승민 전 의원과 원희룡 제주지사는 각각 1.8% 순이었다.

윤 총장은 50·60대 이상(48.3%)과 대구·경북(33.2%), 국민의힘 지지층(44.6.%)에서 높게 나타났다.

다만 윤 총장의 대선 출마 여부를 두고는 39.0%가 “출마하지 않을 것”이라고 답해 윤 총장 지지율은 사실상 반문재인 여론이 윤 총장에 몰려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김민순·배민영 기자 soon@segye.com

 

 

2021년 취재담당 부국장 시절 기획한 시리즈물

전 세계를 강타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세계는 이른바 ‘뉴노멀 2.0’으로 명명되는 패러다임 전환기를 맞고 있다. 코로나19가 종식되더라도 인류는 코로나19 이전으로 돌아갈 수는 없다. 우리는 코로나 사태에 미리 대비하지 못했지만 코로나 이후의 시대는 선제적으로 준비해야 한다. 그런 국가와 국민이 코로나 이후 시대를 선도할 수 있다.

코로나19가 격발한 변화는 정치·경제·사회·문화 부문, 삶의 방식과 관행, 생각하는 방식, 인간관계 등 전방위로 나타나고 있다. 비대면, 디지털화, 원격화, 가상화가 진전되면서 정부와 민간 모두 탈중앙화·분권화 흐름이 빨라진다. 변화를 제대로 읽고 이런 변화를 선제적으로 이끌어가야 한다. ‘코로나 이후’ 시대를 열어가야 하는 우리 모두의 과제다.

무엇보다 공생·공존을 위한 틀을 새로 짜야 한다. 코로나 와중에 인류는 각자도생할 수 없다는 소중한 교훈을 얻었다. 긴밀히 연결된 세계 공동체 구성원들이 서로 손잡지 않으면 생존 자체가 어렵다는 사실을 값비싼 희생을 치르고서야 알게 됐다.

산업 현장에 몰아친 변화의 파고는 산업 구조와 체질 자체를 바꾸고 있다. 4차 산업혁명의 물결과 함께 다가온 언택트·디지털화는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우리 일상에 더 깊숙이 자리 잡았다. 물건과 서비스를 사고파는 상거래뿐 아니라 직장, 학교, 의료 생활 등 일상 전체에 확산했다. 기업들의 재택근무는 어느새 자연스러워졌고 교사와 학생들도 원격수업에 익숙해졌다. 특히 최첨단 정보통신기술(ICT)을 기반으로 한 업종과 그렇지 않은 전통 제조업종은 희비가 엇갈리고 있다.

이병훈 중앙대 교수(사회학)는 “코로나19로 비대면 일상과 재택근무 등 겪어보지 않았던 것들을 경험하고 있다”며 “주력산업이 코로나19의 악영향에 흔들리고 (노동시장 인력) 구조조정이 진행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안정된 일자리가 급격하게 줄면서 청년은 암담한 취업 절벽 앞에서 절규하고 있다.코로나19 방역조치에 장기간 영업을 못 하고 손님마저 뚝 끊겨버린 자영업자들은 생존의 위협을 받고 있다.

정부의 전염병 대처 과정에서 개인의 자유권이 과도하게 침해당하는 문제를 어떻게 해소할지도 큰 숙제가 됐다. 김승주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 교수는 “4차 산업혁명 시대와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는 개인 정보의 활용과 보호가 조화를 이뤄야 한다”고 말했다.

앞으로 닥쳐올 또 다른 팬데믹(감염병 대유행)에 대비해 공공의료 체계를 강화하는 것도 시급해졌다. 김윤 서울대 의대 의료관리학과 교수는 “공공의료가 약한 현실에서 재난 시, 의사 파업 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봤다”며 “공공의료는 의료 시장 질서를 제시하고, 안전장치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상이 복지국가소사이어티 대표는 “재난은 모두에게 평등하지 않다”며 “불평등이 커지면 결과적으로 경제와 복지가 어려워지고 사회의 지속가능성이 떨어지는 만큼 정부 재정 확대 필요성을 인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진경·이종민·유지혜·권구성 기자 ljin@segye.com

우리 사회 풀어야 할 과제
확진자 자택서 대기 중 사망 속출
메르스 교훈에도 공공병상 태부족

국가 방역·개인 자유권 충돌 논란
허용 한계 등 사회적 합의 있어야

원격수업에 따른 교육 격차 심화
절대적 학습시간 확대 고민 필요

산업 현장 구조조정 전면화 될 듯
실효성 있는 일자리 대책 내놔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은 그야말로 미증유의 재난이다. 다른 나라와 마찬가지로 우리 사회도 깊은 상처와 후유증에 신음하고 있다. 충분히 대비할 시간도, 대응할 방법도 없는 상황에서 닥친 코로나19는 사람들의 인식과 일상, 사회 작동 방식마저 바꿔버렸다. 코로나19 사태를 극복하고 이후 시대를 살아가야 할 우리 사회에 던져진 과제가 숱한 이유이다.

◆어떤 감염병에도 대응 가능한 공공의료체계 확충 시급

코로나19에 우리는 ‘K방역’으로 맞섰다. 광범위한 진단검사와 역학조사를 통한 신속한 접촉자 조사 및 차단이 K방역의 핵심이었다. 여기에 국민의 자발적 거리두기 실천이 더해지면서 K방역은 세계적으로 인정을 받았다.

그러나 코로나19 사태로 드러난 취약한 의료시스템의 민낯은 보기 민망했다. 1∼3차 유행 과정에서 하루 수백명에서 많게는 1000명 넘게 확진자가 발생할 때마다 전담 치료병상 확보에 비상이 걸렸고, 병원 배정을 받지 못해 자택에서 대기 중 사망하는 사례도 잇따랐다.

이는 국가에서 동원할 공공병상이 부족했던 탓이 크다. 2017년 기준 인구 1000명당 공공의료기관 병상 수는 1.3개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3개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병상 대부분이 민간에 집중된 탓에 동원할 수 있는 공공병상이 다 동원된 뒤 추가 병상을 구하는 데 어려움이 적지 않았다.

 

그동안 공공의료 확충 요구가 지속됐지만 실현되지 않았다. 2015년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때에도 공공의료 확충이 추진됐지만 공염불에 그쳤다. 소를 잃고도 외양간을 고치지 않아 코로나19 대응에 다시 위기를 맞았다. 코로나19 사태 속에 정부는 지난해 12월, 2025년까지 공공병상을 5000개 추가로 확보하는 내용의 ‘공공의료체계 강화 방안’을 내놓았다. 이제 중요한 것은 실행이다.

김윤 서울대 의대 의료관리학과 교수는 “시장에 의존할 경우 의료 서비스 공급이 안 되는 지역들이 있다”며 “이들 의료취약지는 공공에서 역할을 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정부가 의지를 가지고 정책과 예산을 투입해야 한다”며 “효율성의 논리만으로 돈을 쓰지 않으면 달라지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건강권 실현을 위한 보건의료단체연합’의 전진한 정책국장은 “공공의료 강화를 위해서는 양적으로 늘리는 것이 기본”이라며 “공공의료기관 숫자가 적고, 현재 있는 기관도 규모가 작다 보니 기능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비단 감염병 대응만을 위해 공공병원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의료기관 간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비급여 진료 확대 등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고, 신약 개발을 뒷받침할 의료기관 인프라도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김정회 건강보험연구원 연구조정협력센터장은 “공공의료는 표준화된 비용으로 진료를 제공할 수 있다. 불필요한 비급여 감소로 의료비 절감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며 “지역사회-보건소-지방의료원-국립대학병원과 같은 의료전달체계 구축에도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사생활 침해와 가짜뉴스 범람, 교육격차 심화 해법도 모색해야

국가가 감염병 확산 방지를 위한 방역을 최우선하면서 개인 정보와 동선 등이 무차별 수집되거나 종교나 집회의 자유를 과도하게 막는 조치 등에 대한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이번 기회에 국가의 방역권과 헌법상 개인의 자유권이 충돌할 때 어디까지 허용하고 제한해야 하는지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대목이다.

김승주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 교수는 개인정보 문제와 관련해 “현재 감염병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이란 근거에 따라 정부가 개인정보를 수집하고 일부 공개하고 있다”며 “법을 근거로 하기 때문에 위법성을 따질 수는 없지만, 과도하게 정보를 수집한다는 논란이 나올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해외 일부 국가에서는 개인정보 수집 범위를 조절했지만 그만큼 확진자 추적의 정확도가 떨어지기도 했다”며 “감염병 대응과 함께 개인정보를 보호하는 방안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코로나19는 미디어의 문제점도 노출시켰다. 온라인 속보 경쟁에서 자유롭지 않은 신문·방송 등 전통 매체는 물론 유튜브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사실과 다르거나 확인되지 않은 정보가 사실 보도인 양 범람하면서 근거 없는 공포와 불안감을 확산하기도 했다. 한동섭 한양대 교수(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는 “어떤 것이 가짜뉴스인지 확인하기 어려운 환경 속에서 ‘레거시 미디어’로 불리는 전통 언론사와 기자들이라도 사실관계 확인에 철저해야 한다”며 “취재원 등 정보의 출처가 믿을 만한지도 먼저 확인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어려서부터 각종 미디어를 통해 쏟아지는 정보와 뉴스의 사실 여부를 분별하고 확인토록 하는 ‘미디어 리터러시(문해력)’ 교육의 필요성도 강조한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원격수업이 일반화하면서 부모의 경제력과 관심도 차이 등에 따른 교육 격차가 더 심화된 것은 교육 부문의 가장 큰 문제로 꼽힌다. 정부는 코로나19 사태 대응 과정에서 우리나라의 첨단 ICT(정보통신기술)를 기반으로 한 원격교육의 강점을 강조했지만 수업의 질 하락과 사교육 의존도 심화, 계층 간 교육 격차 확대 문제에는 사실상 속수무책이었다.

홍후조 고려대 교수(교육학)는 “가장 두드러지는 게 집중력이 부족해 원격교육에 취약한 중위권 이하 학생의 학력이 떨어지고 있다는 것”이라며 “현 상황에서 교육당국은 수업일수나 수업시수를 연장해 절대적인 학생 학습시간을 늘리는 방안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그는 “교육부나 EBS, 한국교육학술정보원이 보유한 양질의 콘텐츠를 등교 전과 하교 후 일정 시간대를 활용해 제공하면 원격교육의 학습 효율 문제를 어느 정도 보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근로 취약계층 구제 방안 찾아야… 생태적 환경 중시하는 산업구조 조성도

코로나19 사태로 산업구조의 변화 속도가 빨라지면서 노동시장도 양극화가 심해지고 있다. 많은 국민이 취업난과 안정적인 일자리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 이병훈 중앙대 교수(사회학)는 “재난 상황으로 인해 고용보험 사각지대가 극명하게 드러나면서 정부가 전 국민 고용보험 로드맵 마련에 나선 것은 긍정적”이라면서도 “올해 코로나19로 타격을 입은 산업 등의 구조조정 문제가 전면화될 것으로 보인다”고 우려했다. 이 교수는 “코로나19로 고용 위기가 매우 심각해진 만큼 정부가 실효성 있는 일자리 대책을 시급하게 내놓을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코로나19 장기화로 정부의 복지지출도 크게 늘었다. 특히 재난지원금이 3차에 걸쳐 지급되며 복지재원의 규모와 분배 방식에도 관심이 쏠린다. 이상이 복지국가소사이어티 공동대표는 “국채를 더 발행하더라도 경제와 복지, 사회의 지속가능성을 위해 재정을 확대해야 한다”며 “다만, 국채는 언젠가 갚아야 한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취약계층을 비롯해 소비 진작, 재분배 효과가 큰 선별적인 형태로 지원돼야 한다”고 말했다.

인간과 자연이 공존하는 생태적 환경 조성의 중요성이 커지면서 산업구조도 이에 맞춰 전환돼야 한다는 주장에 힘이 실리고 있다.

인하대 녹색금융금융특성화대학원의 김종대 교수는 “코로나19로 촉발된 생명의 위기가 결국 환경, 기후변화, 생태계 등 문제와 밀접하게 관련돼 있다는 것을 사람들이 깨닫고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현상은 매우 의미 있다”며 “소비자와 투자자들이 ESG(환경보호·사회적 책임·윤리경영) 기준으로 기업을 평가하고 투자·소비하는 문화가 자리 잡으면 기업들이 움직이고 사회가 바뀔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진경·김승환·권구성·이정우·김희원·이복진 기자 ljin@segye.com

세계적 석학 조지프 나이 교수 전망
韓, 민주적 시스템으로 코로나 대응 입증
中은 美와 ‘협력적 경쟁관계’ 설정할 듯

전세계 대량실업 우려… 보호주의 득세
수입관세 강화 등 무역 충돌 가능성 고조

 

“한국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 방역 성공은 동아시아를 넘어 세계적인 모델이 됐습니다. 한국은 중국과 같은 전면적인 통제 방식이 아닌 민주적인 시스템으로 코로나19 문제에 대처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입증했습니다. 한국은 코로나19 대유행 사태에 대응하는 데 독재 방식이냐, 민주주의 방식이냐의 논쟁을 넘어 거버넌스의 질이 관건이라는 점을 보여주었어요. 그렇지만, 미국이나 서구 민주주의 국가들이 코로나19 사태를 극복하지 못하고 있는 것과는 달리 중국도 독재주의 방식으로 이 사태를 극복한 뒤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서 세계 질서를 주도하는 국가로 부상하고 있습니다. 이제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 주도의 세계 자유 질서 체제가 붕괴하고, 중국이 주도하는 새로운 세계 질서 시대가 열릴 것입니다. 중국은 앞으로 한국과 미국을 포함한 많은 시장주의 경제 체제의 약점을 악용해 국제 경제 질서도 조종하려 들 것입니다. 그렇다고 이 때문에 신냉전 시대가 오는 것은 아닙니다. 그 반대로 국가 간 경제적·생태학적 상호 의존도가 크게 올라갈 것이고, 바로 이런 이유로 국가 간 정책 공조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질 것입니다.”

미국의 세계적인 국제관계 분야 석학인 조지프 나이(Joseph S. Nye Jr.) 하버드대 케네디스쿨 석좌교수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 진단을 위한 세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이같이 강조했다. 나이 교수는 미국의 외교 전문지 포린폴리시(FP)가 2011년 전문가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글로벌 사상가’ 1위로 선정됐었다. 그는 국제정치에서 군사력, 경제력 같은 물리적·경합적 힘을 지칭하는 ‘하드 파워’에 대응하는 권력 개념으로 문화적·정신적 가치, 대외정책의 무형 자원을 뜻하는 ‘소프트 파워’ 이론을 정립했다. 나이 교수는 또 국가권력의 시장 개입을 비판하고 시장의 기능과 민간의 자유로운 활동을 중시하는 이론인 ‘신자유주의’(neoliberalism) 이론을 정립한 국제 정치학계의 현존하는 최고 석학 중 한 명으로 꼽힌다.

-코로나19 이후 세계에 나타날 가장 의미 있는 변화는.

“코로나19 이후의 세계를 한마디로 말할 수는 없다. 코로나19 이후의 지정학적인 변화 측면에서만 봐도 여러 가지 가능성이 있다. 그렇지만, 2030년 정도의 세계를 생각해 보면 중국이 주도하는 세계 질서가 구축돼 있을 것이다. 중국은 코로나19 사태를 극복했고, 미국 등 서구 국가들과 경제 회복 측면에서 커다란 격차를 두고 앞서가고 있다. 중국 경제는 성장하고, 미국 경제는 쇠퇴하고 있어 2025년을 전후해 중국이 미국을 제치고 세계 1위 경제대국이 될 것이다. 중국의 영향력이 향상됨에 따라 중국이 다른 나라에 존경과 복종을 강요하는 것은 놀랄 일도 아니다. 중국의 ‘일대일로’(一帶一路) 대상국은 인접국뿐 아니라 유럽과 남미 국가에까지 확대되고 있다. 어느 나라든 중국에 반기를 들면 중국의 경제 지원과 투자를 받을 수 없고, 세계 1위의 수출 시장을 놓치게 된다. 코로나19 이후에 중국과는 정반대로 미국과 유럽 등 서구 국가들의 경제는 갈수록 쇠퇴할 것이다. 이렇게 되면 중국 정부와 중국 기업이 국제기구를 재편할 것이고, 중국의 입맛대로 국제적 기준을 설정할 것이다.”

-그렇다면 ‘쇠퇴하는 미국’과 ‘부상하는 중국’ 사이에서 한국의 선택은.

“나는 미국과 중국이 반드시 대결의 길로 갈 것이라고 보지 않는다. 미·중 양국의 상호 의존성으로 인해 두 나라는 ‘협력적 경쟁’(cooperative rivalry) 관계가 될 것으로 본다. 미국과 중국은 모두 전환기적 도전에 직면해 있고, 서로 상대국의 도움 없이는 이 도전을 헤쳐갈 수 없다. 기후변화 대응이 그 대표적인 예가 될 것이다. 한국은 미·중 관계의 변화에 맞춰 무엇보다 다른 나라와 긴밀한 협력 체제 속에서 대외 정책을 추진해야 할 것이다.”

-코로나19 팬데믹 속에 출범한 조 바이든 새 행정부의 한·미 관계를 어떻게 전망하나.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과 비교할 때 바이든 대통령은 한국 등 미국의 우방국과 동맹 관계를 보다 중시할 것이다. 또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사람에 치중하는’(personalistic) 접근 방식을 취했으나 바이든 대통령 정부에서는 그런 경향이 줄어들 것이다. 바이든 대통령도 북한과의 협상에 나설 것이나 그에 앞서 한국과 보다 긴밀하게 사전 협의를 할 것이다.”

-코로나19가 북한의 미래에는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

“북한이 코로나19 여파로 과거보다 더 심각한 경제난을 겪을 것이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1월5일 당 대회에서 국가 경제 발전 5개년 계획 기간이 2020년 말에 끝났지만, 당초 내세웠던 목표를 거의 모든 부문에서 달성하지 못했다고 자인한 연설만 봐도 북한이 처한 경제난의 현실을 짐작할 수 있다. 코로나19는 북한에 이중의 경제 제재로 작용하고 있다. 북한이 국제사회의 제재를 받는 와중에 코로나19에 따른 고립 심화로 경제 정책 실패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 사진=하상윤 기자

-일본군 위안부 배상 문제 등으로 한국과 일본의 갈등이 첨예해지고 있는데 코로나19 이후 한·일 관계는.

“한국과 일본은 이제 과거사의 굴레에서 벗어나야 한다. 코로나19 이후 한·일 양국이 공통으로 직면한 미래의 도전에 대응하려면 과거사를 뒤로한 채 새로운 협력 체제를 시급히 모색해야 한다. 한·일 양국이 공동의 안보 위협과 코로나19 확산 사태 극복 및 기후변화 문제 등에 함께 대응해 나가야 한다.”

-코로나19가 몰고 올 세계 각국 공통의 대내외 환경 변화는.

“대규모 실업, 빈부격차와 불평등 심화, 사회 공동체 붕괴 등의 현상이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 이는 1930년대와 유사한 독재 정권이 출현하는 기반이 될 수 있다. 세계 각국의 정치권에서 권력 쟁취를 위해 민족주의 감정을 부추기고, 포퓰리즘을 내세우는 정치 지도자들이 출현할 수 있다. 또한 ‘토착주의’(nativism·외국인, 외국의 관습, 사상 등을 없앰으로써 자신들의 삶의 방식을 개선하고자 하는 운동)와 보호주의가 득세할 것이다. 국가 간 무역도 관세와 수입 쿼터제가 강화될 것이고, 각국에서 이민자와 난민이 희생양이 될 가능성이 크다. 코로나19로부터 경제가 회복하는 속도가 느려질수록 세계 각국에서 권위적인 정권이 들어서고, 이들 정권이 해당 지역에서 자국 이익 확대를 노리며 서로 충돌할 위험이 커지고 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7일(현지시간) 워싱턴DC 백악관에서 '기후변화 대응' 행정명령에 서명하기 전 연설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그렇다면 코로나19 이후에 국제사회를 누가 통제하나.

“미국이 당분간 세계 최고 강대국으로 남아 있을 것이나 과거와 같은 영향력을 발휘하지는 못할 것이다. 미국이 주도한 세계 질서는 코로나19 글로벌 확산 이전부터 중국의 부상과 서구 국가에서의 포퓰리즘 정권 등장으로 인해 거센 도전을 받았었다. 코로나19로 인해 국제사회에서 ‘시스템 매니저’로서 미국 역할이 크게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21세기는 초국가적인 상호 의존의 시대이고, 고립은 선택할 수 있는 옵션이 아니다. 바이든 정부가 얼마나 빨리 다른 나라와 다층적인 협력 관계를 복원하느냐에 따라 대외정책의 성패가 갈릴 것이다.”

-코로나19가 몰고 올 긍정적인 변화는.

“세계 각국은 코로나19와 같은 글로벌 팬데믹에 독자적으로 대처할 수 없다는 현실을 깨닫고 있다. 기후변화에 대한 인식이 달라질 것이고, 인간과 지구가 함께 공존하는 ‘그린 인터내셔널 어젠다’(green international agenda)가 부상할 것이다.”

 

워싱턴=국기연 특파원 kuk@segye.com

 

◆나이 교수는 △미 프린스턴대 졸업 △영국 옥스퍼드대 석사(로즈장학생) △하버드대 정치학 박사 △하버드대 교수 △미 국방부 국제안보 담당 차관보 △미 국가정보위원회(NIC) 위원장 △하버드대 국제관계연구소 소장 △하버드대 케네디스쿨 학장 △하버드대 케네디스쿨 석좌교수(현) △아스펜 안보포럼 공동의장(현) △2008년 국제관계 학자 2700명 대상으로 조사한 ‘미국 대외정책에 가장 영향력 있는 학자’ 1위 △2011년 미 포린폴리시 선정 ‘글로벌 사상가’ 1위 △2014년 포린폴리시 선정 ‘세계 100대 사상가’ △저서 ‘소프트 파워’, ‘도덕은 중요한가’(2020) 등 14권 외 논문 200여편

 

뚫기 힘든 대기업 정규직 취업문
2020년 정규직 전환율도 6.6% 그쳐
비정규직과 급여차이 매년 벌어져
2020년 월 평균 323만원vs171만원
상여금 수혜율도 2배 이상 차이나
갈수록 직업 안정성 양극화 커져
“정규직 과도한 보호로 문제 야기
하청업체에 부담… 근로자도 고통”

대기업에 다니는 이모(36)씨는 2019년 여름휴가를 맞아 모처럼 고향으로 내려가 친구 강모씨를 만났다. 공무원 시험에 실패한 강씨는 한 지역기업에서 무기계약직으로 일했고 주말에는 대리운전이나 배달 일을 하며 돈을 벌었다. 매달 세금을 제하고 400만원가량을 급여로 받는 이씨가 회사에서 휴가비도 줬다며 저녁을 사겠다고 하자 강씨의 기분이 마냥 좋지는 않았다. 친구보다 훨씬 힘든 일을 하는 것 같은데도 월소득은 150만원 정도 적고 휴가비는 꿈도 꿀 수 없기 때문이다.

 

두 사람은 지난해 추석 때 다시 만났다. 그동안 이씨의 지갑은 더 두둑해진 반면 강씨의 지갑은 얇아졌다. 호봉제 근로자인 이씨의 월급은 올랐지만, 강씨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본업 외 다른 일을 하기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강씨가 자신을 초라하게 느끼는 순간 이씨가 “오늘은 네가 사라”고 하자 불편한 감정을 드러냈고, 급기야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크게 다퉜다. 강씨는 고용이 불안하고 이직도 쉽지 않은 처지를 비관하면서 ‘취업의 첫 단추부터 잘못 끼운 것 아닌가’ 하고 자책만 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사이가 멀어지고 있다. 급여 수준과 사회보험 가입률 등 격차가 확대되면서 직업 안정성도 양극화로 치닫고 있다. 문재인정부 들어 기업 규모를 막론하고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비율은 지난해 상반기에 가장 낮았다. 중소기업에서 대기업으로 직장을 옮기는 근로자는 10명 중 1명이 될까 말까 했다. 노동 사다리가 붕괴됐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12일 노동계와 통계청 등에 따르면 지난해 상반기 계약이 만료된 조사대상 비정규직 근로자 3만5216명 중 2332명만 정규직으로 전환됐다. 전환율은 6.6%에 불과했다. 일자리를 최우선 과제로 꼽은 문재인정부가 출범했던 2017년 상반기 이후 최저치다. 정규직 전환율은 △2017년 상반기 14.0%·하반기 10.3% △2018년 상반기 14.6%·하반기 8.2% △2019년 상반기 13.7%·하반기 10.0%를 각각 기록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급여 차이도 해마다 벌어지고 있다. 경제활동인구조사를 보면 2019년 6~8월 정규직의 평균 월급은 316만5000원이었지만 비정규직은 172만9000원이었다. 1년 뒤인 지난해 같은 기간 평균 급여의 경우 정규직은 323만4000원으로 6만9000원이 늘어난 반면 비정규직은 1만8000원 줄어든 171만1000원으로 조사됐다. 두 일자리의 급여 차이가 143만6000원에서 152만3000원으로 1년 새 8만7000원 벌어졌다. 2017년 비정규직과 정규직 급여 차이는 129만1000원이었다.

 

사회보험 가입률이나 근로복지 수혜율에서도 격차가 커졌다. 2019년 정규직의 국민연금 가입률은 87.5%에서 2020년 8월 88.0%로 0.5%포인트 늘었지만, 같은 기간 비정규직의 가입률은 37.9%에서 37.8%로 0.1%포인트 줄었다. 또 퇴직급여를 받는 정규직은 91.7%에서 91.9%로 0.2%포인트 증가한 반면 비정규직의 경우 42.9%에서 40.4%로 2.5%포인트 낮아졌다. 지난해 상여금 역시 정규직은 86.6%가 받은 데 비해 비정규직은 37.6%만 받았다. 1년 전보다 정규직은 0.2%포인트 늘었고 비정규직은 0.6%포인트 감소했다.

비정규직 중 시간제 근로자가 늘어난 것도 우려스럽다. 시간제 근로자는 동일 사업장에서 같은 종류의 업무를 맡아 일주일에 36시간 미만 일하는 사람들로, 비정규직 중 처우가 특히 열악한 것으로 평가된다. 지난해 시간제 근로자는 325만2000명으로 1년 전과 비교해 9만7000명(1.6%포인트) 많아졌다. 이는 전체 비정규직의 43.8%를 차지한다. 여기에 시간제 근로자 중 폐업이나 구조조정 등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계속 직장에 다닐 수 있는 시간제 근로자는 2017년 60.0%를 기록한 뒤 2018년 58.7%, 2019년 56.4%를 기록하며 해마다 낮아졌고, 지난해에는 52.5%까지 떨어졌다. 처우도 열악하기 짝이 없다. 이들의 급여는 2019년 92만7000원에서 지난해 90만3000원으로 감소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근로자의 격차도 좁혀지지 않고 있다. 고용노동부와 중소기업연구원이 2019년 상용근로자 300인 미만 중소기업 근로자 평균 임금총액을 살펴본 결과 이들의 급여는 313만9000원으로 조사됐다. 이는 300인 이상 대기업의 535만6000원의 59.6% 수준에 불과하다. 1~4인 사업체의 경우 213만4000원으로 대기업의 39.8%에 그쳤다. 하지만 중소기업에서 일하는 근로자들이 대기업으로 이직하기는 사실상 하늘의 별 따기처럼 어려워 보인다. 2018년 중소기업 이직자 중 대기업으로 직장을 옮긴 근로자는 9.4%에 불과했다.

전문가들은 정규직에 대한 과도한 보호가 노동시장의 심각한 이중구조를 야기했다고 지적한다. 대기업의 경우 성과중심의 임금체계가 아닌 안정적인 호봉제로 기득권 유지가 가능한 구조로 굳어졌다. 이러한 임금구조는 대기업 하청업체에 버거운 부담을 지우고, 결국 중소 하청업체 근로자들은 충분한 대우를 받기가 힘들어진다.

 

재계 관계자는 “정규직에 고임금 저효율 임금체계를 적용하다 보니 기업 입장에서는 인건비에 대한 부담이 커지는 것”이라며 “고임금 저효율 근로자들의 임금을 조정하지 못하면 기업 입장에서 신규 채용이 어렵고 생산성도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대형노조, 취약 노동자 포용 못해 불평등 심화”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임금 격차 등을 좁히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12일 경영계와 노동계 등에 따르면 근로자 사이의 임금과 복리후생 격차는 대기업 등의 대형 노동조합과도 관계가 있다. 이들 노조가 주로 대기업과 정규직, 고임금 근로자의 이해를 대변하면서 노동시장의 불평등을 심화시켰다는 것이다.

 

대형 노조가 하청업체 비정규직 등 취약 노동자를 포용하지 못하는 것은 통계로도 나타난다. 고용노동부의 전국 노조 조직현황을 보면 사업장 규모가 300인 이상인 사업장 소속 근로자 54.8%는 노조에 가입돼 있다. 하지만 299명 이하 100명 이상이 근무하는 회사 직원들 중 노조에 속한 이들은 전체의 8.9%에 불과했다. 30명 미만 사업장에서는 가입률이 0.1%에 그쳤다.

결국 대형 노조는 기득권 세력이란 인식을 각인시켰을 뿐 대기업과 중소기업, 정규직과 비정규직 등 노동시장 이중구조 해소에 큰 역할을 하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이병희 한국노동연구원 사회정책연구본부장은 “기업별 노사 교섭이 대부분이라 노조 상급단체가 기업 간 임금격차를 축소하는 역할을 잘하지 못한 데다 비정규직 확대에 대응해 노조의 조직기반도 확대하지 못하면서 기업 간 임금 격차를 억제하지 못한 것이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경총 관계자는 “정규직 근로자의 고임금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비정규직의 임금 문제를 법이나 제도적으로 해결하려는 시도는 노동시장에서 형성되는 임금 결정 구조의 왜곡을 초래할 것”이라며 “이 경우 노사나 노노갈등, 기업부담 증가로 이어져 피해는 결국 회사 근로자들에게 돌아갈 수 있다”고 말했다.

 

노사협의회 등에 비정규직이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제도적으로 보장하거나 비정규직 및 중소기업의 생산성 향상을 위한 지원방안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비정규직이나 중소기업의 이윤을 근로자에게 보상해 성과를 공유하고 다시 근로의욕을 높이는 선순환 체계가 구축돼야 한다는 취지다.

 

노민선 중소기업연구원 미래전략연구단장은 “5년 한시의 특별법을 제정해 국가 차원에서 중소기업 생산성 향상 종합계획을 수립하고 전담 조직을 만들어야 한다”며 “중소기업 핵심 인력의 장기 재직과 역량전수를 위한 프로그램 등 내부 시스템도 활성화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정필재 기자 rush@segye.com

 

 

 

 

기울어진 운동장 ‘계층 대물림’

조국·이정옥 등 부모의 ‘입김’ 이용
자녀 입시 특혜로 국민들에 허탈감
일부 국회의원들 자녀 채용 청탁
역대 정권서도 고위직 사퇴 수두룩

불공정한 특혜 공정사회 가치 흐려
“출발선 다르면 노력해도 성공 못해”
서민층 자녀들 계층 이동 희망 꺾어
양극화 사회 갈등 해소 방안 과제

“피고인은 조국 전 법무부 장관에 대한 청문회 시작부터 재판의 변론이 종결될 때까지 자신의 잘못에 대해 솔직하게 인정하고 반성한 적이 없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 25-2부(재판장 임정엽)는 지난해 12월 23일 조 전 장관의 부인 정경심 동양대 교수가 딸 조민씨의 입시 관련 ‘스펙’쌓기에 개입한 혐의를 모두 유죄로 인정해 법정 구속하면서 엄중한 훈계를 덧붙였다. 재판부는 정 교수에 대한 이 같은 훈계는 고위공직자인 조 전 장관의 자녀 특혜 의혹이 사회에 끼치는 부정적인 영향을 고려한 것이었다는 평가다. 조민씨는 고등학교 재학 시절 단국대 의과학연구소에서 인턴을 한 뒤 공주대 생명공학연구소 인턴 프로그램을 수료한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대 인권법센터와 아쿠아펠리스호텔에서도 인턴을 했다고 주장하면서 이런 스펙들을 고려대 입시에 활용했다. 재판 결과 이 스펙들은 사실상 부모가 만들어준 것으로 대부분 허위 스펙이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검찰의 수사와 법원의 재판 과정에서 이런 사실들이 공개되자 일반인들은 허탈감에 빠졌다.

계층 상승 사다리 역할을 해온 교육이 부모의 경제력과 결합하며 계층 대물림 수단으로 전락한 지 오래다. 고위공직자의 ‘엄빠(엄마·아빠) 찬스’는 이른바 ‘흙수저’들의 계층 상승 희망에 찬물을 끼얹고 있다. 임병식 서울시립대 초빙교수는 “사회적 배경이 없는 부모를 둔 자녀들은 기울어진 운동장 정도가 아니라, 대부분은 아예 그런 운동장이 있다는 것도 몰랐다”고 지적했다.

◆사퇴 또 사퇴…‘부메랑’ 된 자녀 특혜

고위공직자가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자녀에게 특혜를 주는 사례는 부지기수다.

2019년 8∼9월 조 전 장관과 같은 시기에 국회 인사청문회를 거친 이정옥 전 여성가족부 장관도 자녀 입시 특혜로 구설에 올랐다. 이 전 장관의 딸은 2007년 고교 3학년 때 책을 출간했는데, 책에 당시 압둘 칼람 인도 대통령의 추천사가 포함돼 논란이 일었다. 이 전 장관 딸은 수시 전형을 통해 2008년 연세대 법학과에 입학했다. 이 전 장관은 이에 “(추천사는) 내가 도왔다고 볼 수 있다”고 인정하고 사과했다.

국회의원도 예외가 아니다. 딸의 ‘KT 채용비리’ 사건으로 법정에 선 김성태 전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해 11월 2심 재판에서 유죄 선고를 받았다. 2심 재판부는 “김 전 의원이 2011년 서유열 KT 홈고객부문 사장에게 딸의 이력서를 전달하면서 KT 자회사의 파견계약직 채용을 청탁했고, 이에 따라 딸이 입사한 사실이 인정된다”며 김 전 의원에게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김 전 의원은 대법원에 상고한 상태다.

더불어민주당 윤후덕 의원도 19대 국회 당시 딸이 자신의 지역구(경기 파주)에 위치한 LG디스플레이에 지원한 뒤 해당 회사 대표에게 전화를 건 사실이 드러났다. 윤 의원은 “부적절한 처신이었다”며 사과했다.

자녀 특혜 의혹으로 사퇴한 고위공직자들도 수두룩하다.

1993년 김영삼정부 초대 법무부 장관으로 지명된 박희태 전 국회의장은 딸이 이화여대 특례입학 특혜 논란에 휘말리면서 취임 10일 만에 자리에서 물러났다.

2005년 노무현정부 당시 이기준 부총리 겸 교육인적자원부 장관은 장남이 연세대 화학공학과에 정원 외 특례 입학한 의혹이 제기되자 노 전 대통령으로부터 임명장을 받은 지 57시간 만에 전격 사퇴했다. 같은 해 강동석 건설교통부 장관은 장남의 인사청탁 의혹으로 사퇴하기도 했다.

문재인정부에서 발탁된 조동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후보자는 카이스트(KAIST) 무선전력연구단 단장 시절 군 복무를 마친 장남을 자신이 사내이사로 있던 전기차 개발 업체 ‘올레브’와 이 업체 미국 법인의 인턴으로 근무하도록 했다. 조 후보자는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는 행동이었다”며 공식 사과했지만 논란은 수그러들지 않았다. 결국 문재인 대통령은 정부 출범 이후 처음으로 장관 후보자 지명을 철회했다.

◆“자녀 특혜, 사회 증오 키우는 촉매제”

고위공직자의 자녀 특혜 비리는 사회적 신뢰 자본을 잠식한다.

신율 명지대 교수(정치외교학과)는 “고위공직자의 자녀 특혜 사례가 반복되면 대중이 사회에 대한 불필요한 증오를 키울 수 있다”고 우려했다. 문 대통령의 지난 11일 신년사에서 현 정부 핵심 가치인 ‘공정’을 내세우며 “사회가 공정하다는 믿음이 있을 때 우리가 ‘함께 사는 길’을 선택할 수 있다”, “실패해도 다시 일어설 수 있다는 용기로 혁신의 힘이 강해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고위공직자의 자녀 특혜 비리는 공정의 가치를 오염시킨다. 공정이 사라진 사회에선 문 대통령의 바람처럼 ‘함께 사는 길’을 선택할 수 없고, 실패해도 다시 일어설 수 없다. 신 교수는 이에 대해 “사회 시스템 중 가장 중요한 것은 노력한 만큼 결과를 얻는 것”이라며 “(고위공직자 자녀 특혜 비리는) 노력하고 있는 많은 젊은이에게 상당한 좌절감을 안기게 되고, 그로부터 파생된 사회적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선 매우 큰 사회적 비용을 치러야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정경심 1심 재판부도 정 교수에게 같은 문제점을 지적한 바 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피고인의 입시비리는 공정하게 경쟁하는 많은 사람에게 허탈감과 실망감을 야기하고 우리 사회 입시 시스템에 대한 믿음을 저버리게 했다”고 강조했다.

 

◆비리때 마다 쏟아지는 ‘자녀특혜 방지법’… 효과는 없어

 

고위공직자의 자녀 특혜 비리가 드러날 때마다 정치권은 각종 ‘방지법’을 내놓았지만 아직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는 못했다.

 

26일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20대 국회 당시 정의당 이정미 대표는 ‘공직자 자녀 부정채용 방지법’을 발의한 바 있다. 공직자의 배우자 및 직계 존비속의 직업 등록을 의무화하는 방안이 주요 내용이다. 이 대표는 “많은 국민이 배우자 혹은 부모의 힘이 자녀들의 채용에 영향을 미친다는 의심을 가지고 있다”며 법안 배경을 설명했다. 그러나 법안은 소관 상임위 문턱을 넘지 못하고 20대 국회 종료와 함께 폐기됐다.

 

21대 국회 들어선 자녀 특혜 비리와 관련해 ‘조민 방지법’이 거론되고 있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딸 조민씨가 자격 논란 속에 최근 의사국가고시에 합격한 데 따른 파장이다. 의사가 자격 요건을 갖추는 데 부정한 방법을 동원한 사실이 드러날 경우 무죄 확정판결 때까지 면허 발급을 보류하자는 것이다. 조씨는 부산대 의학전문대학원 입학 과정에서 조작된 서류를 제출한 의혹을 받고 있다. 국회 보건복지위 소속 조명희 국민의힘 의원은 조만간 이 같은 내용이 담긴 의료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 발의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의 노력으로 자녀 특혜 비리의 사각지대가 일부 해소된 사례도 있다. 국민권익위원회는 지난해 9월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상 부정청탁 대상 직무에 인턴·장학생 선발과 논문심사·학위수여 업무 등을 추가했다. 조씨의 공주대 인턴 청탁 의혹, 부산대 의학전문대학원 장학생 선발 특혜 의혹 등도 청탁금지법상 위반 대상 직무에 포함됐다. 일각에선 ‘조국 방지법’으로 불렀다.

 

최근 권익위는 올해 주요 업무 계획의 중점 추진 과제로 2019년부터 추진해온 공직자 이해충돌 방지법 제정을 꼽았다. 공직자가 공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혈연, 지연, 친분관계, 경제적 이익 등 인적·재산적 이해관계가 개입돼 공정한 직무 수행이 저해되거나 저해될 우려가 있는 상황을 막기 위한 법이다. 권익위 관계자는 “지난해 6월 정부 입법안을 만들어 국회에 제출했지만 여전히 계류 중”이라며 “올해는 반드시 통과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이동수 기자 ds@segye.com

2021년 취재담당 부국장 시절 기획한 시리즈물

입력 : 2021-01-02 13:34:57 수정 : 2021-01-02 13:34:52

자식들 신분 상승 가능성 묻자
국민 55% “불가능”… 10년새 26%P↑
부모 경제·사회적 입지에 좌우
“뉴노멀 전환기 교육 개혁 절실”

경찰공무원 시험 준비 3년째에 접어드는 강모(29)씨는 최근 평일 저녁 시간대에 하던 식당 홀 서빙 아르바이트를 그만둬야만 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에 따른 사회적 거리두기 강화로 손님이 줄어들자 식당 사장이 “더는 일손이 필요 없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매달 아르바이트비로 받던 60여만원은 학원비, 교재비, 식비 등에 빠짐없이 나가고 있었다. 애초 강씨는 대학 졸업 후 지방 중소기업을 다니다 1년도 채 안 돼 경찰공무원 시험 준비를 하겠다는 마음으로 서울에 올라온 터였다. 고향에 있는 어머니에게 사정을 말하고 당분간만 매달 송금하던 월세에 웃돈을 얹어 보내달라고 부탁했다. 최근 부모님이 운영 중인 식당이 장사가 안 돼 겨우 임차료만 내고 있는 사정을 아는 터라 그는 시험 준비를 하면서 짬짬이 새 아르바이트를 찾고 있다. 강씨는 “처음 취직한 회사가 미래도 없어 보이고 선배들도 금세 떠나는 걸 보고 내 처지에 그나마 도전해 볼 만한 선택이라고 생각해 경찰 시험에 도전한 것”이라며 “물론 이 또한 쉽지는 않을 거라 생각했지만, 시험에도 떨어지고 아르바이트까지 구하기 어려운 사정이 되니 ‘역시 부모 도움 없이는 되는 게 없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개천에서 용 난다’는 말이 이제는 전래동화에서나 들을 수 있는 얘기처럼 돼 가고 있다.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난 사람은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더 나은 계층으로 상승하기 어려운 시대다.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사람과 ‘흙수저’를 들고 태어난 사람은 어렸을 때부터 사교육에서 격차가 벌어지기 시작해, 상급 학교로 진학할수록 간극이 더 커지고 있다. 일자리를 갖게 된 뒤에도 부모의 도움을 받은 사람과 그러지 못하는 사람의 ‘내 집 마련’ 꿈은 출발선부터 다르다.

통계청의 사회조사에 따르면 2009년만 해도 ‘다음 세대(자식 세대)에서 사회·경제적 지위가 높아질 가능성’에 대해 긍정적인 응답이 48.3%, 부정적인 응답이 29.8%, 모르겠다는 응답이 21.9%였다.

그러나 10년 만인 2019년 조사에서는 긍정 답변이 28.9%로 20%포인트 가까이 하락했다. 반면 부정 답변은 55.5%로 26%포인트 가까이 상승했다. 불과 10년 만에 ‘계층 이동’ 꿈마저 시들해진 것이다. 개인이 처한 환경이 나쁘면 노력해도 성공하기 어려운 사회에서는 계층 간 반목과 위화감이 커지고 사회통합에 저해된다. 타고난 잠재력이 있어도 꽃피우지 못한 채 사장되기도 하고, 능력이 부족한 사람이 물려받은 지위로 사회적으로 큰 영향을 미쳐 사회에 마이너스가 되는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

과거에는 교육이 계층 이동 사다리 역할을 했다. 소수에게 한정돼 있던 교육의 기회가 공교육의 확충으로 보편화되고, 교육이 양질의 일자리와 연결되면 교육은 가난한 집 아이에게 계층 상승의 사다리가 될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교육을 받아도 좋은 학교를 나오지 않으면 좋은 일자리를 가질 수 없고, 좋은 학교에 가려면 부모의 경제력이 뒷받침돼야 한다는 인식이 강해지고 있다. 그 때문에 교육이 계층 이동의 사다리보다는 계층 대물림의 통로로 작용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해 가구소득별 초·중·고 사교육비는 100만원 미만 소득 가구가 10만4000원인데 700만원 이상 가구는 53만9000원으로 5.2배에 달했다.

김희삼 광주과학기술원(GIST) 기초교육학부 교수는 “지금 같은 자산가격 폭등은 계층 고착을 넘어 상대적 박탈감을 안긴다”고 꼬집었다. 김 교수는 이어 “세계적으로 ‘뉴노멀’이라고 하는 전환기를 맞고 있는데 이런 시대에 대응할 역량을 기르기 위해 교육의 변화가 필요하다”며 “형평성뿐 아니라 경제성장을 위한 인적자원의 효율적 활용 부분에서도 공교육에서 배제된 학생들, 기초학력 미달 학생들을 더는 방치하지 말고 다양한 성공 경로를 모색할 역량을 기를 수 있도록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세종=우상규 기자, 김승환 기자 skwoo@segye.com

 

좋은 학교… 좋은 직장… 내 집 마련까지 결국 ‘엄빠 찬스’
한국 부모 교육열 전 세계적으로 유명
자식에 좋은 대학 간판 달아주려 애써
더 나은 계층을 물려주기 위한 돌파구

억대 비용 받고 명문대 입학 책임지는
드라마 속 ‘입시코디’ 공공연한 비밀
‘부모의 재력=명문대’ 공식도 굳어져

SKY의대 신입생 70% 상위 계층 해당
25개 로스쿨 신입생 절반도 고소득층
더 이상 ‘계층이동 사다리’ 역할 못 해

서울 신혼부부 ‘영끌’해도 전세 못 얻어
대학 졸업 후에도 ‘부모 찬스’는 이어져
‘금수저’ ‘흙수저’ 양극화 갈수록 뚜렷

#. 직장인 김모(33)씨는 대학 동기 모임을 나갈 때마다 씁쓸하다. 로스쿨을 졸업해 변호사로 일하고 있는 동기 몇몇의 모습을 볼 때마다 부러움을 느끼기 때문이다. 김씨 역시 학부 졸업 후 진학을 꿈꿨지만, 넉넉지 않은 가정 형편 때문에 로스쿨 진학을 포기하고 곧바로 취업해야 했다. 김씨는 “변호사 친구들을 보면 박탈감과 열등감을 느낄 때가 있다. 연봉 얘기를 들어보면 더욱 심해진다. 나보다 3년 이상 늦게 사회 진출을 했지만, 유명 로펌에 입사한 친구들은 초봉부터 억대를 받고 있더라. 아무리 열심히 해도 그들과의 격차는 좁힐 수 없다는 좌절감 때문에 동기 모임을 나가는 걸 주저하게 된다”고 말했다.

 

로스쿨은 사법고시의 폐쇄적 기수문화, 몇몇 특정 대학에 합격자가 몰려 있는 것 등을 바로잡고자 하는 취지로 2009년 도입됐다. 2017년 사법고시가 폐지되면서 이제는 법조인이 되기 위한 유일한 길이 로스쿨 진학이다. 도입 때부터 ‘돈스쿨’, ‘귀족스쿨’ 논란을 일으켰던 로스쿨은 여전히 그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가장 비판이 큰 지점은 비싼 학비다. 3년, 6학기로 이뤄진 로스쿨을 졸업하기 위해선 평균 6000만원이 들어간다. 가장 저렴한 로스쿨도 3000만원이다. 애초에 집안 형편이 어려운 이들이 로스쿨 진학을 결정하기 어렵고, 고소득층 자녀들의 전유물이 되고 있다는 얘기다. 로스쿨이 ‘현대판 음서제’라 불리는 이유다.

이는 통계적으로도 드러난다. 김병욱 국민의힘 의원이 한국장학재단으로부터 제출받은 ‘의대·로스쿨 신입생 소득분위별 국가장학금 신청 현황’에 따르면 전국 25개 로스쿨 신입생의 51.4%가 고소득층으로 분류되는 소득 9·10구간으로 조사됐다. 2020년 기준 소득 9구간의 월소득 인정액은 월 949만8348원 이상, 10구간은 월 1424만7522원 이상이다. 서울대·고려대·연세대 등 이른바 ‘SKY 대학’의 로스쿨로 좁히면 58.3%로 더 올라간다. 전국 대학 신입생의 평균 고소득층의 비율이 24.5%라는 것을 감안하면 로스쿨이 계층이동의 사다리가 되기는커녕 고소득층의 부 대물림을 더욱 공고히 하는 역할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교육이 계층이동의 사다리? 현실은…

대한민국 부모들의 교육열은 전 세계적으로도 유명하다. 1945년 해방 이후 빠르게 산업화와 근대화를 겪은 한국은 양반-상놈의 신분구조가 한순간에 타파됐다. 그런 상황에서 부모가 자신보다 더 나은 계층을 자식에게 물려주기 위한 수단이 바로 교육이었다. 자신은 못 먹고 못 입어도 자식에겐 더 나은 교육과 더 나은 간판을 달아주기 위해 힘쓰는 게 한국의 부모들이다. 대학을 흔히 ‘우골탑’이라 부르는 것도 농가에서 가장 큰 재산인 소를 팔아서 자식을 대학 보낸 것에서 나온 말이다.

이러한 사회적 배경 때문에 한국 사회에서 교육의 공정성은 결코 건드려서는 안 되는 민심의 ‘역린’이 됐다. 지난 박근혜정권을 무너뜨린 ‘최순실 게이트’와 문재인정권의 공고했던 지지율에 가장 큰 균열을 냈던 ‘조국 사태’의 시작이 바로 자녀 교육 문제였다. 2018년 방영한 드라마 ‘스카이캐슬’이 한국 사회를 강타했던 것도 교육, 그리고 입시가 공정할 것이란 일종의 믿음 혹은 성역을 철저히 깨부수는 내용이었기 때문이다.

‘스카이캐슬’이 드라마 특유의 과장이 있긴 해도, 연 1억원이 넘는 비용을 받고 명문대 입학을 책임지는 ‘입시코디’가 있다는 것은 ‘가진 자들의 리그’에선 이미 공공연한 사실이다. 이는 부모의 재력이 자녀의 대학 간판, 나아가 미래를 결정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올해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을 치른 딸을 둔 회사원 장모(49)씨는 “스카이캐슬을 보고 가장 충격을 받은 점은 내가 딸에겐 도저히 해줄 수 없는 사교육을 고소득층은 척척 해줄 수 있다는 일종의 무력감이었다”면서 “딸이 공부로 힘들어할 때 족집게 과외는 시켜주지 못할망정 ‘공부란 건 결국 엉덩이를 누가 의자가 오래 붙이고 있느냐’라고 말했던 내 충고가 딸에겐 그저 현실감 부족한 아빠의 잔소리로 들리지 않았을까 싶어 슬프다”라고 말했다.

로스쿨뿐만 아니라 명문대 진학에도 부모의 부가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통계도 수두룩하다. 정찬민 국민의힘 의원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2020년 1학기 SKY대학 신입생 중 장학금 신청자를 대상으로 소득구간을 나누자 9·10구간이 55.1%를 차지했다. 2017년 SKY 대학의 고소득층 비율은 41.1%에 그쳤지만 2018년 51.4%, 2019년 53.3%, 2020년 55.1%로 해마다 상승세다.

특히 SKY대학의 의대 신입생의 경우 10명 중 무려 7명 이상이 고소득층으로 분류됐다. 올해 1학기 이들 대학 의대 신입생 중 9·10구간 비율은 74.1%로 2017년 54.1%에 비해 20%포인트나 급증했다. 서울대 의대는 2017년 45.8%였던 고소득층 비율이 올해 84.5%까지 올랐다. 3년 새 고소득층 비율이 무려 38.7%포인트나 폭증한 것이다.

‘부모 찬스’는 대학 진학 이후에도 계속된다. 최근 교육부 종합감사를 통해 대학 사회의 이런 어두운 그늘이 드러나기도 했다. 지난 7월 발표한 연세대학교와 학교법인 연세대 종합감사 결과에 따르면 연세대 교수 1명은 2017년 2학기 회계 관련 강의를 담당하면서 식품영양학을 전공하던 대학생 딸에게 수강을 권유하고, 딸에게 A+ 학점을 줬다. 연세대 대학원 입학전형 서류심사에서는 평가위원 교수 6명이 2016년 이모 전 국제캠퍼스 부총장의 딸 A씨를 경영학과 일반대학원에 합격시키고자 주임교수와 짜고 지원자들의 구술시험 점수를 조작한 것으로 밝혀져 공분을 샀다.

김윤태 고려대 교수(사회학)는 “과거엔 재벌이나 최고 부유층만 계층을 세습했다면, 이젠 중산층도 세습하는 사회가 됐다. 저소득층이나 서민층이 교육이나 새로운 직업을 통해 계층을 상승할 가능성이 거의 없는 사회가 됐다”면서 “부모 소득 격차에 따라 교육 수준이 달라지지 않도록 입시제도 개편 등의 공교육 개혁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대학 졸업 후엔? 부동산도 ‘부모 찬스’

결혼을 준비 중인 직장인 이모(34)씨는 최근 서울 내 전셋집을 알아보다 예비신부와 다퉜다. 날로 치솟는 서울 아파트값을 한탄하다 예비신부가 대학 동창 얘기를 꺼낸 터였다. “걔 남편은 부모가 좀 사는지, 금호동에 아파트를 샀는데 그게 몇 년 새 두 배로 뛰었다네.” 그 얘기에 악의가 없는 줄 알면서도, 이씨는 마음이 상해 “우리 집은 거지라서 미안하네” 하고 빈정대면서 말다툼이 시작됐다.

이씨와 예비신부는 모두 지방에서 올라와 서울에서 대학생활을 했고, 현재는 유명 대기업을 다니고 있다. 둘 사이에 결혼 얘기가 나왔을 때만 해도 소위 ‘영끌’(영혼까지 자금을 끌어모음)하면 서울에 20평대 아파트 한 채 정도는 쉬이 구할 수 있을 줄 알았다. 막상 알아보니 아무리 둘이서 대기업 월급을 받아도, 자력으로는 서울 아파트 전세도 만만치 않다는 걸 깨닫게 됐다. 이씨는 “이전까지는 내 여건에 만족하는 편이었는데 결혼 준비를 하면서 내가 노력만으로 올라설 수 없는 ‘벽’ 같은 걸 느끼게 됐다”며 “금호동에 집을 샀다는 그 친구는 내 월급으로는 꿈도 못 꾸는 돈을 지금 이 시간에도 벌고 있는 거 아니냐”며 한탄했다.

특히 문재인정권 들어 아파트값이 폭등하면서 30대 사이에서 부동산 양극화 현상은 더욱 뚜렷해지는 모양새다. 이는 곧 부동산이 끊어진 사다리로 작용한다는 얘기다. 부자 부모를 둔 ‘금수저’들은 부모로부터 증여를 받아 서울의 아파트에 입성해 출발부터 수십억원대 자산가로 시작한다. ‘흙수저’들은 시작부터 은행 대출을 최대한도로 끼고도 서울 밖으로 밀려나야 한다. 김 교수는 “대학 간판이 직업의 귀천, 근로소득 수준의 고저를 결정한다면, 사회적 불평등이나 사회적 세습을 만드는 효과는 근로소득보다는 부동산이나 불로소득이 더 크다”고 말했다.

월급을 한 푼도 쓰지 않고 숨만 쉬고 살며 모아도 서울에서 아파트 한 채를 마련하려면 15.6년이 걸린다는 분석도 있다. KB국민은행 부동산 플랫폼 KB부동산 ‘리브온’(Liiv ON)에 따르면 지난 9월 말 기준 서울 3분위 가구(2인이상·도시가구)의 소득 대비 주택가격(PIR)은 15.6으로 2008년 조사가 시작된 이후 가장 높았다. PIR은 주택가격을 가구 소득으로 나눈 값으로, 가구 전체가 소득을 한 푼도 쓰지 않고 모았을 경우 주택을 구입하는 데 걸리는 기간을 뜻한다.

부동산 구입이 이렇게 힘들다 보니 2030 젊은 세대들은 결혼 자체를 잘 하려 하지 않고, 하더라도 아이를 낳지 않고 사는 ‘딩크족’의 비율이 늘어나고 있다.

최근 통계청이 발표한 신혼부부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결혼 5년차 부부 가운데 자녀가 없는 부부는 18.3%였다. 관련 통계 작성을 시작한 2015년엔 12.9%였으나 2016년 13.7%, 2017년 14.9%, 2018년 16.8%로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지난해 결혼한 김모(34)씨는 “결혼 전부터 아내와 아이를 낳지 않기로 합의했다. 내 처지로는 아이를 낳더라도, 그 아이에게 우리보다 나은 삶을 만들어줄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구정우 성균관대 교수(사회학)는 “과거엔 좋은 학교 가서 좋은 직장 잡아 열심히 일하면 집도 사고 가정도 꾸릴 수 있었지만, 부의 불평등이 워낙 심각해진 오늘날은 그렇지 않다. 부모 도움 없이는 개인이 경제적으로 자립해 살아가기 너무 힘들어졌다”면서 “부동산 문제가 이를 특히나 키웠다. 계층 상승의 사다리는 거의 끊겼다고 볼 수밖에 없다. 코로나19로 취업난은 더욱 심각해져서 젊은 층의 직업을 통한 계층 상승이나 제도권 진입은 더욱 어려워졌다”고 말했다.

남정훈·유지혜 기자 che@segye.com

 

‘고졸 신화’ 양향자 민주당 의원
“산업·교육 연계… 노동자 역량 강화
끊어진 ‘기회의 사다리’ 복원해야”

‘개천에서 용이 난다’는 속담이 신화가 된 지 오래다. ‘흙수저’가 ‘금수저’의 공간으로 오를 수 있는 사다리도 점점 사라지고 있다. 개천용으로 승천하거나 금수저로 신분상승한 신화를 일군 주인공들은 지금 이 한국 사회 세태를 어떻게 보고 있을까. 커피 타는 ‘미스 양’으로 시작해 삼성전자의 임원이 된 입지전적 인물로, ‘금배지’를 단 양향자 더불어민주당 의원, 고교 중퇴에 방직공장 노동자로 주경야독해 사법고시에 합격하고, 국회의원이 된 김미애 국민의힘 의원, 섬마을 고졸 출신으로 ‘재심 전문’으로 우뚝 선 박준영 변호사, 고졸임에도 ‘학력’과 ‘출신’이라는 차별의 벽을 깨고 스타트업을 창업해 연매출 280억원대 회사로 만든 강남구 아이엔지스토리 대표. 세계일보는 신축년(辛丑年) 소의 해를 맞아 신년 특집으로 이들 개천용 4인방이 우리 사회에 들려주는 희망의 메시지를 담았다.

“절대로 ‘백’ 있고 돈 있는 사람만 성공하는 게 아닙니다. 작은 성공을 여러 번 하길 바랍니다. 어제보다는 조금 더 나은 내일이 있을 거란 희망을 잃지 말아야 합니다. 아무리 아빠 찬스, 엄마 찬스를 쓰더라도 나이가 마흔이 넘으면 자기가 노력한 만큼 인생을 살게 됩니다. 결국 인생은 자신의 몫입니다.”

커피 타는 ‘미스 양’으로 시작해 삼성전자의 임원이 된 입지전적 인물로, ‘금배지’를 단 양향자(53·사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흙수저’라고 비관하는 이들에게 보내는 격려의 메시지다.

신파극의 데자뷔처럼 중학생 때 학교 갈 차비 65원을 어머니에게 달라기도 어려웠던 양 의원은 인문계 고등학교 입학원서 마감 하루 전 병상에 누워계신 아버지로부터 ‘엄마와 할머니, 동생을 잘 부탁한다’는 유언 같은 말을 듣고 광주여상에 입학했다. 졸업 후엔 삼성반도체에 ‘연구원 보조’로 입사해 커피 타기로 사회생활을 시작했고, ‘고졸은 안 된다’ ‘여자는 안 된다’ ‘엄마는 안 된다’와 같은 편견의 천장을 깨고 삼성그룹 역사상 첫 여상 출신 임원이 됐다.

성공 드라마를 쓴 그는 ‘금수저’와 ‘흙수저’로 나뉜 지금 청년들의 분노를 어떻게 받아들일까. 양 의원은 “지금의 청년들이 분노하는 이유는 경쟁 사회를 뚫고 이 자리까지 왔는데 그 경쟁에서 이겼음에도 불구하고 어떤 박탈당하는 느낌 이런 걸 분노하고 있는 것 같다”고 했다. 그는 “불평등하거나 불공정하거나 불의가 있거나 그런 걸 참지 못하는 세대가 지금 청년 세대”라면서 “그것을 해소할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말을 이었다.

양 의원은 기회의 단절을 의미하는 ‘끊어진 사다리’를 복원하는 최선의 방법으로 교육을, 특히 산업현장에서 노동자의 역량을 높여줄 교육 제도를 제안했다.

그는 “실업계 고등학교 출신은 씨가 마르다시피 하고, 대학교는 실업자 양성소가 됐다”면서 “산업과 연계된 교육이 기회의 사다리가 될 수 있다는 게 제 경험”이라고 밝혔다.

인터뷰 말미, 양 의원은 청년들에게 두 가지를 당부했다. “신체적 건강이 정신적 건강을 견인하기 때문에 체력은 중요합니다. 그다음에는 내가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을 나눠서 생각하는 것을 연습해야 합니다. 빠르게 선택했다면 다른 건 생각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미리 걱정하지 말고일단 당장의 일을 잘 해내는 훈련을 하세요.”

엄형준 기자 ting@segye.com

 

‘재심 전문’ 박준영 변호사
대학 자퇴 등 좌절 끝에 사시 합격
“최선 다하면 새로운 기회 다가와”

부모의 경제력과 사회적 지위가 그대로 대물림된다는 ‘수저계급론’이 자리 잡아가는 것은 참으로 슬픈 일입니다. 희망이 있어야 노력도 할 수 있는데, 희망을 갖게 하는 상황이 점점 줄고 있어요.”

‘재심 전문’으로 알려진 박준영(47·사진) 변호사는 희망이 사라지는 것이 한국 사회의 위기라고 말했다. 화성연쇄살인 8차 사건의 범인으로 검거돼 20년간 억울한 옥살이를 한 윤성여씨를 변호했던 그는 지난달 재판을 마치고 세계일보와 서면인터뷰를 가졌다.

 

박 변호사는 SBS 드라마 ‘날아라 개천용’의 모델이다. 전남 완도에서 태어나 학창시절 학교를 100일이나 ‘땡땡이’쳤던 비행청소년이었으며, 대학을 한 학기 만에 자퇴한 고졸 출신.

법대생이었던 군대 선임을 따라 무작정 사법고시에 뛰어든 그는 수차례 좌절 끝에 법조인이 됐다. 하지만 사회생활을 시작한 뒤엔 늘 ‘벽’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박 변호사는 “대학을 나오지 않았다는 이유로 내 실력을 믿지 못하는 사람들을 몇 차례 겪으면서 자존심이 많이 상했다”며 “그런데 정작 나도 상대의 출신 대학에 따라 능력을 평가하는 습성이 있더라”고 털어놨다.

박 변호사는 특정 배경을 선호하는 분위기가 만연하면 결국 그 배경을 가진 사람과 아닌 사람으로 뚜렷이 나뉘게 된다며 편견을 타파해야 계층이동의 문이 열린다고 강조했다.

그는 “특정 지역, 특정 학교 출신 법조인의 비율이 높아지고 있다는 뉴스는 계층이동이 어려워지는 현실을 반영한다”며 “사회 변화의 출발은 선입견과 편견을 버리는 일에서 시작돼야 한다”고 말했다. 또 ‘용이 되는 것’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며 “돈을 많이 벌고 안정된 직장을 갖는 것이 성공의 절대적 기준이 되기보다는 좀 더 ‘인간적인 가치’가 반영되기를 소망한다”고 밝혔다.

박 변호사는 2007년 수원역 노숙소녀 살해사건의 국선변호를 맡으며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지만 이후에도 소위 ‘돈 되는’ 사건은 맡지 못했다. 파산에 이르자 스토리펀딩을 통해 기금을 모았고, 대신 사회적 약자를 변호하는 것을 평생 사명으로 삼게 됐다.

“국선변호 활동이 늘 좋거나 보람찬 일은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최선을 다했던 이유는 다른 기회가 열릴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었지요. 어떤 일에 몰두하면 분명 그 가치를 인정하는 사람이 다가오거나 또 다른 기회가 열립니다. 하지만 그 ‘일’을 찾기까지 ‘과정’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하고, 기회에 대한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김희원 기자 azahoit@segye.com

‘여공 출신’ 김미애 국민의힘 의원
고교 중퇴 뒤 주경야독… 법조인으로
“어두운 터널도 끝 있어… 희망이 빛”

“‘노력해도 안 된다’, ‘이번 생은 망했다’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마음이 너무 아픕니다. 절망하는 청년들을 보면서 세상을 바꿔야겠다는 사명감이 들고, 목표를 가지고 열심히 노력한 자가 꿈을 이룰 수 있는 세상으로 돌려놔야 한다는 책임감을 느낍니다.”

국민의힘 김미애(51·사진) 의원은 세계일보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정의와 공정의 가치를 다시 세워야 한다”며 “열심히 노력해서 꿈을 이루고 싶으면 가능한 사회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자신이 요즘 사회가 정의하는 ‘흙수저’ 출신이 맞는 것 같다고 했다. 차비가 없어 다니던 고등학교를 중퇴해야 했고, 열일곱에 노동3권도 보장되지 않는 3교대 방직공장에 다녔다. 야간근무가 힘들어 도망치고 싶었던 때다. 29세 때 주경야독으로 늦깎이 대학생이 된 김 의원은 “사법시험을 준비했던 5년이 어느 때보다 행복했을 정도로 열심히 공부했다”면서 “죽을 때 가장 괜찮은 모습이길 바라며 부족한 나를 더 채찍질한 것 같다”고 했다. 그는 2002년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김 의원은 가난하게 태어나 부자가 되고 싶은 것은 당연한 욕구고, 박수받을 일이라고 말한다. 오히려 명품을 좋아하면서 아닌 척하는, 자사고나 특목고에 반대하면서 자기 아이들은 보내는 위선에 분노한다.

김 의원은 “조국 전 장관, 추미애 장관 사태를 겪으면서 대한민국은 정의와 공정에 대한 신뢰를 완전히 상실해 버렸다”면서 “청년들이 패배주의에 빠진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다”라고 비판했다. 김 의원은 “기득권자들은 끊어진 사다리인 줄 알면서도 오를 수밖에 없는 이 시대의 젊은이들에게 사회적 책임을 다해야 한다”고 말을 이었다.

청년들이 직면한 문제는 자신들이 제일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는 김 의원은 피선거권을 21세로 낮추는 공직선거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로스쿨에 가지 않고도 변호사가 될 수 있는 법안도 발의할 예정이다.

김 의원은 “대한민국의 청년들에게 흙수저, 금수저 논쟁은 농담이 아니라 진지한 고민이 되었다”면서 “제가 젊었을 땐 ‘노력해도 안 된다’는 생각을 한 적이 없지만, 지금 세대는 그것조차 어렵게 된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다 보면 기회는 열리게 되어 있으니 절대 포기하지 말라고 말씀드리고 싶다”고 했다.

“학교 다닐 때 터널을 지나다녔는데, 걷다 보면 어두운 터널도 결국 끝이 있었어요. 그런 생각으로 버텼습니다. 고달픈 지금이 그 과정이라 생각하고 힘을 내셨으면 좋겠습니다.”

미래의 꿈을 잃지 말라는, 청년들에게 보내는 당부다.

엄형준 기자

‘흙수저 고졸’ 청년 CEO 강남구
가난 딛고 포브스 亞 청년 리더에
“실패해도 도전할 수 있는 사회로”

“안 될 거라는 생각은 해본 적 없습니다.”

강남구(30·사진) 아이엔지스토리 대표는 전국 400여개 매장을 가진 프리미엄 독서실 ‘작심’을 운영하는 청년사업가다. 그는 이른바 ‘흙수저’에 ‘고졸 출신’이지만, ‘학력’과 ‘출신’이라는 차별의 벽을 깨고 연매출 280억원 규모의 회사를 이끄는 대표로 성장했다. 포브스가 선정한 ‘2020년 아시아 30세 이하 리더 300인’ 중 한 명으로도 이름을 올렸다. 그는 지난달 서면으로 진행한 인터뷰에서 “어려웠던 환경을 원동력으로 삼아 항상 최선을 다하려고 노력한다”고 밝혔다.


강 대표가 어엿한 스타트업 대표가 되기까지는 우여곡절이 많았다. 어린 시절 집에 가스가 끊길 정도로 가정형편이 어려웠다는 강 대표는 “학원비를 1년씩 내지 못해 친구들 앞에서 수치스러운 일도 겪었다”고 기억했다. 이어 “가난한 환경이 정말 어려운 점은, 벅찬 위기를 맞닥뜨렸을 때 그것을 온전히 내 힘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라며 “등 뒤에 항상 낭떠러지를 둔 기분이었다”고 했다.

고졸 출신이란 꼬리표는 한때 넘기 힘든 벽이었다. 강 대표는 “자리를 잡은 지금은 내 이야기를 극적으로 봐주지만, 거기에 따라오는 시선들도 있다”며 “스스로도 사람들 앞에서 당당하지 못해 말수가 줄어들 때도 있었다”고 회상했다.

하지만 이런 환경은 그에게 오히려 힘을 내는 원동력이 됐다. 강 대표는 “남들보다 어려운 시기를 겪었기 때문에 결핍이 생겼고, 이런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 미친듯이 노력했다”고 회상했다. 지금의 자리에 오기까지 드라마 같은 ‘극적인 기회’는 없었다. 단지 주어진 환경에서 그가 택할 수 있는 최선을 향해 나아갈 뿐이었다. 그는 “어떤 일이든 그것이 기회라고 생각하고 최선을 다했다. 아이디어가 떠올랐을 때는 빠르게 실행에 옮겨보고, 많은 사람을 만나려고 노력했다”고 밝혔다.

강 대표는 “‘좀 더 나은 환경에 있었다면 돌아가지 않았을 텐데’란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라면서도 “힘든 시기가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금수저’에 대한 반감은 없었을까. 그는 “남들보다 출발선을 앞에서 시작하는 것이 나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더 잘돼서 많은 사람에게 선한 영향력을 발휘하면 된다는 것이다. 그는 지금의 한국 사회가 ‘개천에서 용 나기 어려운 사회’라는 의견에 공감했다. 강 대표는 “지금 사회는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나 리스크가 커서 다른 길에 도전하기 쉽지 않다”며 “실패해도 도전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돼야 할 것 같다”고 속내를 드러냈다.

 

권구성 기자 ks@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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