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자체마다 공공병원 추진 활발 신·증축 통해 5000병상 추가 확보 계획 예비타당성 조사 면제·국고 지원 확대 부산·대전·광주·울산 등 설립 적극 나서 시설·장비 등 열악해 부정적 인식 팽배 기존 문제점 해결 없이는 확충에 한계 위기 때 거점병원 역할 못 하면 무의미 “공공의료 확대 신중 접근을” 목소리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유행을 계기로 공공의료 강화에 힘이 실리고 있다. 정부는 공공병원을 신·증축해 5000개 병상을 추가로 확보한다는 계획이다. 공공병원 신축 시 예비타당성(예타) 조사를 면제하고, 공공기관이 민간의료기관을 매입할 수 있도록 했다. 각 지방자치단체는 공공병원 설립을 적극 추진하고 나섰다. 공공의료 강화 움직임에 대해 내실 있는 추진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공공병원 예타 면제… 부산·대전·광주 등 설립 움직임
정부는 지난해 12월 공공의료체계 강화방안을 발표했다. 400병상 규모의 지방의료원을 2025년까지 20개 내외로 확충해 5000병상을 확보한다는 게 핵심이다.
10일 이 방안에 따르면, 진료권 내 적정 규모의 병원이 없는 지역을 중심으로 앞서 신축한 6곳을 포함해 의료원 최소 9곳을 신축한다. 이를 통해 약 3500개 병상을 늘린다. 11곳은 증축할 예정이다. 적십자병원을 비롯한 지방의료원은 전국 41곳, 병상은 1만450개다. 이 중 11곳을 증축해 2022년까지 병상을 약 1700개 추가한다. 이들 지방의료원은 감염병 및 중증응급의료의 대응이 가능하도록 설비와 시스템을 갖춘다.
정부는 공공병원을 신축할 때 국무회의 의결을 거쳐 예비타당성 조사를 면제하기로 했다. 지방의료원 신·증축에 대한 국고 지원도 도(특별자치도 포함)와 시·군·구에 한해 3년간 한시적으로 50%에서 60%로 확대하고, 165억원으로 설정된 의료원 신축 국고보조 상한액은 상향하기로 했다.
지난달에는 지방의료원을 신설, 매입 등의 방법으로 설립할 수 있도록 규정한 지방의료원의 설립 및 운영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경제성이 없다는 이유로 통과가 어려운 공공의료원 설립의 최대 관문인 예타 조사가 면제되자 공공병원 설립 움직임이 활발해졌다.
부산시는 사하구 신평동 신평 지하철역 공영주차장 부지에 서부산의료원 건립을 준비하고 있다. 경영난으로 파산한 민간병원을 인수해 동부권 공공병원으로 전환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대전시는 동구 용운동 17만8000㎡ 규모에 310여개 병상을 갖춘 대전의료원 설립을 진행하고 있다.
진주권에도 2013년 진주의료원 폐업 8년 만에 공공병원 설립이 본격화하고 있다. 경남도는 서부경남 공공병원 설립 후보지로 진주시 정촌면 옛 예하초등학교 일원을 선정했다. 오는 8월까지 설립 운영계획과 타당성 조사를 완료하고, 9월 사업계획서를 제출한다는 계획이다.
울산과 광주도 예타 조사 면제를 기대하며 공공병원 유치를 추진하고 있다. 인천에서는 적자를 호소하는 인천적십자병원을 인수해 제2인천의료원으로 운영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양적·질적 갖춰져야 공공의료 역할 수행”
전문가들은 공공의료를 강화하려면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제대로 갖춰야 한다고 강조한다. 공공의료기관에는 취약계층과 취약지역에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고, 건강보험 적용 진료를 통해 질병에 따라 환자에게 가장 적합한 표준진료를 민간병원에 제시하는 역할이 요구된다.
하지만 현재의 공공의료기관은 비효율적이고, 시설과 장비, 인력 상황도 열악해 의료의 질이 낮다는 인식이 팽배하다. 이처럼 인력난과 적자경영 같은 기존 지방의료원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채 병원 수만 늘린다고 공공의료가 확충되는 것은 아니다.
서울대 의과대학 의료관리학교실 김윤 교수는 “정부의 공공의료체계 강화방안은 관련 법과 예산이 뒷받침되지 않았다는 한계가 있다”며 “실행력을 담보해야 한다”고 평가했다. 김 교수는 “취약지 공공병원은 몇 개가 필요한지, 얼마의 예산을 들일지 책임성이 필요하다”며 “병상 수를 지금보다 늘려 공공의료가 전체 의료시스템 내에서 발언권을 가지고, 안전장치로 존재감이 있도록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건강권 실현을 위한 보건의료단체연합’ 전진한 정책국장은 “지방의료원 중 300병상 이상은 6개밖에 없다. 정부 계획에 따라 증·신축해도 300병상 이상 병원은 15개 정도에 그친다”며 “공공의료시스템 강화를 위해서는 양적으로 더 늘려야 한다”고 말했다.
공공의료 확대에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더구나 감염병 대응을 위해 추진되는 것이라면 공공병원 설립만이 답이 아니라는 지적이다.
연세대 의과대학 예방의학과 박은철 교수는 “감염병은 올림픽 주기와 비슷하게 발생한다. 감염병 대응을 이유로 공공병원을 만들게 되면 평창동계올림픽 후에 방치되는 슬로프와 다를 바가 없게 된다”고 꼬집었다. 코로나19처럼 대규모 감염이 벌어질 경우 공공병원이 거점병원 역할을 해야 하는데 일반병원과의 차별성이 없었다는 것이다. 박 교수는 “민간병원은 악이고, 공공은 선이라는 프레임은 나쁘다”며 “중요한 것은 현재 있는 공공병원이라도 병원답게 만드는 것이다. 평상시에는 공공병원이라고 세금 더 쓰면서 코로나19 같은 사태가 터지면 그냥 일반병원처럼 운영되면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이진경·정진수 기자 ljin@segye.com
“지역 간 불균형… 의사 수 확대” vs “기존 인력 균형 배치가 우선”
공공의료 확충과 지역 의료 시스템 강화 논의에 필연적으로 따라오는 것이 ‘인력’ 문제다. 병원을 추가로 짓고, 병상을 확충해도 의료인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제대로 활용할 수 없다. 이를 위해 정부는 의사 수 확대가 필요하다고 본다. 반면 의료계는 기존 인력의 균형 배치가 우선이라는 입장이다. 코로나19 이후에도 의사 수 확대 문제는 정부와 의료계 간 핵심 이슈가 될 전망이다.
10일 보건복지부 등에 따르면 지난해 8월 현재 35개 지방의료원 중 26곳은 의사 수가 부족한 것으로 조사됐다. 간호사가 부족한 공공의료원은 35개 중 34개에 달했다.
정부는 지난해 7월 2006년 이후 3058명으로 동결된 의대 정원을 늘리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2022년학년도부터 10년간 의대 정원을 400명씩 증원해 총 4000명을 양성하겠다는 것이다. 부족한 지역의사 인력을 확충해 수도권과 지역 간 의료 서비스 격차를 줄이기 위해서다.
지역 내 의료 이용률을 보면 2017년 기준 서울은 93%이지만, 경북은 23%이다. 치료 가능한 환자 사망률도 서울은 인구 10만명당 40.4명인데, 충북은 53.6명으로 차이가 있다. 소아외과, 역학조사관 등 필수·특수분야 인력은 더 부족하다.
시민사회단체도 의사 확충이 시급하다고 촉구한다. 민관 협의체인 ‘이용자 중심 의료혁신협의체’에서 시민사회단체들은 전체 의사 숫자가 부족해 지역과 공공분야의 의료공백이 발생하는 만큼 의대 증원과 국립의전원 등 공공분야 인력 확충이 시급하다고 제안했다.
하지만 의료계는 의료인력·서비스의 지역 간 불균형 상황에 동의하면서도 의사 수 확대가 능사가 아니라고 반박한다. 의사가 부족하지 않다는 것이다. 의료계는 우리 국민의 1인당 의사 외래진료 횟수가 연간 16.6회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7.1회)의 2배가 넘는다는 점을 근거로 제시한다. 의사 1인당 환자 진료 횟수도 OECD 평균(2181회)의 3배가 넘는 7080회다. 의료계는 지역, 전공, 병·의원 등이 불균형하게 배치된 것이 문제라며 의사들이 자발적으로 비수도권과 해당 분야에서 일하도록 더 높은 의료수가를 적용해주는 등의 유인책을 요구하고 있다.
지난해 의료계 파업으로 정부가 한발 물러서면서 의대 정원 확대 논의가 의정협의체에서 진행되고 있지만 양측 의견 차로 평행선만 달리고 있다. 지난해 12월 1차 회의 후 지금까지 7차례 회의를 했지만 이견이 좁혀지지 않고 있다. 복지부는 올해 최근 다시 의대 정원 확대 논의를 시작하자고 제안했지만, 의료계는 코로나19 안정화 이후에 논의하자는 입장인 것으로 전해졌다.
팬데믹 이후 대면 진료 한계 드러나 정부, 작년 2월 전화로 약 처방 허용 노인 상시 질병 관리·소외지역도 이용 환자 만족도 87% 달해 긍정적 평가 “환자상태 설명 어렵고 과잉진료 늘 것 대형병원에 쏠림 가속화” 반대 목소리 의료진 만족도는 49.7% 그쳐 ‘대조적’ “AI 확산으로 확대 불가피” 관측 많아
#1. 경기도의료원 이천병원은 지난해 6월 비대면 진료 운영 시스템을 도입했다. 비대면 운영 병동은 의료장비를 동시에 100대까지 전자의무기록(EMR)과 연동해 환자생체정보를 실시간으로 확인하거나 기록할 수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환자의 체온과 혈압, 산소포화도 등 생체상태를 각 병동과 복도, 진료실 모니터에서 실시간으로 체크할 수 있다.
#2. 서울대병원은 코로나19 1차 유행이 한창이던 지난해 3월5일부터 한 달여 동안 문경 생활치료센터 운영을 담당했다. 환자 관리는 비대면으로 진행됐다. 생활치료센터에 입원 중인 환자가 착용한 웨어러블 장비를 통해 혈압과 산소포화도 등의 데이터가 병원정보시스템에 실시간으로 공유됐다. 의료진은 환자와 스마트폰 화상통화로 하루 2회 문진하고 고혈압약이나 당뇨약 등을 처방했다.
원격의료는 국내에서 아주 오래된 논쟁거리였다. 2000년대부터 시범사업을 진행해왔으나 눈에 띌 만한 진전은 없었다. 그러나 코로나19로 분위기가 달라지고 있다. 코로나19 유행 상황에서 대면진료의 한계가 드러났기 때문이다. 병원들은 필요에 따라 속속 비대면 시스템을 도입하고, 정부는 감염병 상황에서 전화 처방을 허용했다. 이 같은 변화는 코로나19가 지나가도 계속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코로나19로 원격진료 한시적 허용
24일 의료계에 따르면 국내 의료법상 원격으로 환자를 진료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있다.
그러나 코로나19라는 감염병 유행 상황에서 예외가 인정됐다. 정부는 지난해 2월24일부터 전화로 약 처방을 받을 수 있게 허용했다. 12월에는 감염병 위기 ‘심각’ 단계에서 한시적으로 전화 상담·처방을 허용하는 내용으로 감염병예방법을 개정했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에 따르면 지난해 2월24일부터 올해 1월31일까지 이뤄진 전화 상담·처방은 총 9462개 의료기관, 약 145만건에 달한다.
재외국민에 원격의료 제공도 시작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해 6월 산업융합 규제특례심의위원회를 열고 재외국민 비대면 진료·상담 서비스 사업 2개에 임시 허가를 내줬다. 재외국민에게 2년간 전화·화상으로 의료상담과 진료를 할 수 있고, 환자가 요청하면 처방전도 발급할 수 있다.
환자들의 평가는 긍정적이다. 은평성모병원 정형외과 박형열 교수 연구팀이 지난해 2월24일~3월7일 이 병원에서 시행한 전화 진료에 참여한 환자 906명을 설문한 결과 전화 진료 전반에 대한 환자들의 만족도는 87%였다. 환자들은 편의성(79.9%)과 상호 소통(87.1%), 신뢰도(87.1%), 재이용 의사(85.1%) 등 대부분의 항목에서 만족도가 높았다.
병원들도 태도가 변했다. 대한병원협회는 지난해 정부의 비대면 진료 활성화 방침에 원칙적으로 찬성했다. 초진환자의 경우 대면진료와 적절한 대상 질환 선정 등 기본 원칙을 전제하면서도 국민 편의 증진 차원에서 비대면 진료의 필요성에 공감한다고 밝혔다.
◆찬반 논쟁 있지만 피할 수 없는 흐름
고혈압과 당뇨 등 반복적인 처방이 필요한 환자는 원격의료를 활용하면 병원을 오가는 불편을 덜 수 있다. 의사와 원격으로 상의해 처방받을 수 있다면 고령층의 상시적인 질병 관리도 가능하다. 의료시설이나 의료 인력이 부족한 소외지역도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감염병 유행 상황에서는 환자가 병원을 찾았다가 혹시 모를 감염 위험에 노출되는 상황을 줄일 수 있다. 의료진과 의료기관도 감염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다.
산업계에서는 의료산업이 고부가가치를 창출해 국가경제를 성장시킬 원동력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ICT(정보통신기술)와 인공지능(AI) , BT(바이오), 의료를 접목하면 새로운 시장을 창출할 수 있다는 것이다.연평균 14∼15%씩 성장하는 해외 원격의료 시장 장악을 위해 미국과 중국 등 주요 국가가 치열하게 다투고 있다.
연세대 의과대학 예방의학과 박은철 교수는 “코로나19로 인해 4차 산업혁명이 원래 타임스케줄보다 30년은 앞당겨질 것”이라며 “구한말 쇄국정책 같은 규제로는 우리나라가 4차 산업혁명 시대 기술 수입국으로 전락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반면, 의료계는 우려를 제기한다. 원격진료 시 오진 가능성과 개인정보 유출, 기기 구축 비용 증가, 과잉진료 등을 이유로 반대하는 입장이다.
은평성모병원 연구팀의 전화 진료 만족도 조사에서도 의료진 만족도는 49.7%에 그쳤다. ‘대면진료에 비해 환자 상태에 대한 설명이 어려웠다’(91.6%), ‘환자 또한 자신의 상태를 이해하기 어려웠을 것이다’(83.9%) 등 안전성 문제를 제기했다.
대형병원으로의 쏠림이 가속화할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대형병원과 서울 등 대도시 병원에 대한 선호가 높은 상황에서 지방의 동네 의원들의 재정이 어려워질 수 있다. 한 대형병원 관계자는 “비율로만 봤을 때는 병원 의사들이 60%가 넘기 때문에 찬성할 것으로 보지만, 실상을 들여다보면 전공의 등 병원 내 의사들 일부가 개업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는 만큼 섣불리 찬성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나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원격의료 확대는 불가피하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가톨릭대학교 의과대학 예방의학교실 정혜선 교수는 “옳다 그르다를 떠나 최근 원격진료를 느슨하게 풀어주면서 편리성을 알게 된 사람들의 요구가 커지고, AI 확산으로 생각보다 빠르게 도입될 것”이라며 “의료인의 결정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변화가 오게 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美, 전자장치로 환자 건강 파악… 코로나 후 활용률 ‘쑥’
해외 주요국은 오래전부터 원격의료를 도입해 운영하고 있다. 이들 나라에서도 코로나19 발생 이후 원격진료가 확대되는 추세다.
24일 미국 시장조사업체 스태티스타에 따르면 전 세계 비대면 의료 시장은 2015년 181억달러에서 지난해 355억달러, 올해 412억달러 규모로 성장할 전망이다.
미국의 경우 연방법 차원에서 원격의료를 금지하는 법은 없다. 주별로 원격의료를 순차적으로 도입했고, 연방정부 차원에서 1997년 법이 제정되면서 본격 시행됐다. 전자장치를 통해 환자의 건강정보를 의사에게 전달, 환자의 건강을 지속적으로 살펴보는 방식이 일반적이다.
미국은 최근 코로나19 경제대책의 하나로 원격의료를 실질적으로 제한하던 각종 제도적 장애물을 일시적으로 완화했다. 코로나19 이전에는 미국 내 전체 환자 기준 11% 정도에 머물렀던 원격의료 서비스 활용률은 코로나19 이후 46%로 증가한 것으로 분석됐다.
영국은 2019년 발표한 국민보건서비스(NHS) 장기계획을 통해 디지털치료제와 원격의료 확대를 지원하고 있다. 2022~2023년 원격의료를 NHS 표준으로 만들겠다는 계획을 발표하기도 했다. 코로나19 영향으로 영국도 원격의료가 급속도로 확산됐다. NHS 앱을 통해 영국의 모든 1차 병원과 연결되도록 해 모든 국민이 앱을 통해 진료기록을 열람하고, 장기 복용하는 약은 자동으로 처방받도록 했다. 일부 병원은 앱을 통해 원격진료도 할 수 있다.
일본은 20여년에 걸쳐 단계적으로 원격의료를 확대해왔다. 1997년 낙도와 산간벽지 환자를 대상으로 9가지 만성질환에 대해 원격진료를 처음 허용했다. 2015년 지역 제한을 없애고, 재진환자로 원격의료 허용대상을 확대했다. 2018년에는 건강보험을 적용했다. 일본 ‘온라인진료의 적절한 실시에 관한 지침’을 보면 원격진료에 대해 의사·환자 간 사전합의가 필요하며, 진료계획도 사전합의해야 한다. 초진, 급성 질환 및 돌발사고 환자, 새로운 질환에 대한 약품 처방의 경우 대면진료를 원칙으로 한다.
중국은 2014년 ‘의료기구의 원격의료 추진에 관한 의견’을 통해 원격의료에 대한 개념을 수립하고 온라인병원을 개소했다. 온라인병원은 실제 의료기관을 기반으로 정보통신기술(ICT)을 활용해 온라인을 통해 원격진료와 처방 등이 모두 가능한 병원을 말한다. 온라인병원은 재진만 가능하며, 초진 때는 이용할 수 없다. 2014년 광둥성 제2인민병원이 최초의 온라인병원으로 설립된 이래, 900여개가 운영 중이다.
사회적 거리두기 중심 발생 억제 총력 중앙정부·지자체 유기적 협력 시너지 단계별 행동 제한 등 세부대책도 실효 결정 전 정책 유출 등 보안유지는 숙제
감염병 대응 시스템 메르스때 머물러 권역별 전담병원 작년 겨우 1곳 추가 2020년 3∼4월 공공병원이 환자 80% 담당 의료계 “민간 동원 시스템 등 대책 시급”
#1. 지난해 2월28일 대구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감염된 70대 남성은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하고 숨졌다. 집에서 병상 배정을 기다리던 중 갑자기 상태가 나빠졌다. 긴급하게 병원으로 이송됐지만 끝내 숨졌다. 70대 남성 이후로도 자택 대기 중 사망이 잇따랐다. 당시 대구에선 확진 후 바로 입원을 하지 못한 사람이 하루 2000여명에 달했다. 대구의료원 442개 외에 신축 공사 후 개원 전으로 비어 있던 동산병원 1000여개 병상, 생활치료센터 등 겨우 의료체계 붕괴를 막은 아슬아슬한 상황이었다.
#2. 서울·인천·경기는 12월23일 0시부터 5인 이상 집합금지 행정명령을 내렸다. 코로나19 3차 대유행의 확산을 막기 위한 특단의 조치였다. 친목모임은 일절 금지되고, 직계가족이 돌봄을 위해 만나는 등 예외적인 경우만 인정했다. 수도권이 먼저 강도 높은 대책을 내놓은 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도 12월24일부터 시행하는 연말연시 특별방역대책에 5인 이상 집합금지를 포함했다. 지자체가 방역을 주도하고, 중앙정부가 따라간 사례다.
1년을 넘긴 코로나19와의 싸움에서 ‘K방역’은 좋은 평가를 받았다. 국민의 방역수칙 준수와 사회적 거리두기 실천을 바탕으로,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유기적 협력과 대응이 시너지를 냈다. 그러나 1∼3차 코로나19 대유행 상황에서 병상이 부족해지고, 병원은 인력난에 시달리는 등 의료체계는 미흡한 부분을 드러냈다. 코로나19 이후 찾아올 감염병 등 국가재난에 대비해 긍정적 성과를 낸 시스템은 공고히 하고, 부족한 점은 가다듬을 필요가 있다.
◆중앙·지자체 공동 대응 성과…거리두기는 개편 필요
코로나19 K방역은 3T와 사회적 거리두기를 통해 확진자 발생 억제, 대규모 환자 발생 시 피해 최소화를 전략으로 한다. 3T란 검사(Test), 조사·추적(Trace), 격리·치료(Treat)를 말한다.
정세균 국무총리(가운데)가 지난 9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응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를 주재하며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를 시행하는 데 중앙정부와 지자체의 공조가 큰 역할을 했다. 매일 오전 8시30분 열린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화상 회의에는 관계부처와 각 지자체 관계자 100∼200명이 참석한다. 각 지역 방역 대응 경험을 공유하고, 의견을 나눈다.
대규모 집단감염을 제외하고 지역 코로나19 확진자 1차 역학조사는 지자체가 맡았다. 사랑제일교회와 IM선교회 등 전국적인 코로나19 집단감염이 발생했을 때 각 지역 내 상황이 빠르게 파악됐다. 다중이용시설이 방역수칙을 지키는지 점검도 지자체의 몫이었다. 거리두기는 확진자 규모에 따른 단계를 마련하고, 단계별 행동 제한과 다중이용시설 운영제한 수준을 세세하게 마련했다. 지역 현장의 의견도 반영됐다.
권덕철 보건복지부 장관은 “중대본과 보건복지부 중앙사고수습본부, 중앙방역대책본부, 지자체는 지금까지 K방역을 잘 유지할 수 있도록 하는 큰 조직체였다”며 “계속 평가하고 보완하며 실시간으로 소통하는 게 필요하다”고 평가했다.
많은 사람이 논의에 참여하다 보니 보안이 유지되지 않은 점은 개선할 점이다. 지난 1월 수도권 거리두기 조정 문건 등 여러 차례 결정되기 전인 정책 내용이 유출돼 혼선을 빚었다.
사회적 거리두기는 다중이용시설 집합제한 조치로 자영업자들의 일방적인 희생을 강요했다는 점에서 보완이 필요하다. 정부 방역수칙을 지켰을 경우 발생하는 보상에 대한 사회적 합의와 기본 체계가 논의돼야 한다.
◆재난상황 시 의료·병상 동원 시스템 정비해야
감염병 대응 의료시스템은 2015년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를 겪고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지적이 많다.
그동안 공공병원에 대한 투자가 없었던 것이 약점이 됐다. 권역별 감염병 전담병원은 2015년부터 필요성이 논의됐지만, 수년간 진전이 없다가 지난해 7월에야 영남권에 한 곳이 추가됐다. 또 400병상 규모의 지방의료원 등을 2025년까지 20개 내외 신·증축하고, 5000여병상을 늘린다는 공공의료 확충 계획도 지난해 11월 내놓았다.
이렇다 보니 환자가 폭증한 지역에서는 제대로 된 치료가 제공되지 못했다. 서울대 의과대학 의료관리학교실 김윤 교수에 따르면 지난해 3~4월 코로나19 환자는 공공병원이 80.1%를 담당했다. 문제는 환자를 맡은 공공병원 상당수가 300병상 이하로, 중환자 진료능력이 부족했다는 점이다. 김 교수는 “중등도 환자 31.8%가 일반병동에 입원해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했다”고 밝혔다.
지난 5일 영종도 인천국제공항에서 임시 격리시설로 가는 해외 입국자들이 경찰과 육군 현장지원팀의 안내를 받고 있다. 연합뉴스
가톨릭대 의과대학 예방의학교실 정혜선 교수는 “공공병원이 단기적으로는 효율이 떨어져 보일 수 있지만 장기적인 관점에서는 오히려 비용 면에서도 효율적”이라며 공공병원 확충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정 교수는 “코로나19에서 공공병원이 감염병 체제로 전환하는 등 대응에 미흡했다”며 “메르스로 음압병동의 필요성이 제기됐듯 이번 사태로 공공병원의 감염병 대응 시스템 전환이 필요하다는 것이 나타났고 이를 수정해 나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국가재난상황 시 민간 병상 동원 시스템도 정비가 필요하다. 지난해 11∼12월 코로나19 3차 유행이 정점을 찍던 당시 즉시 가용 가능한 전국 중환자 병상은 한자릿수까지 떨어졌다. 민간병원 병상 동원 행정명령까지 내렸지만, 기존 환자들을 전원시키는 등 시간이 필요해 병상 부족이 해소되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렸다.
연세대 의과대학 예방의학과 박은철 교수는 “필요한 것은 일반 병원 내의 감염병 전문센터”라며 “공공병원 추가 대신 현재 공공병원 활용의 효율을 높이면서 ‘전시동원계획’처럼 신종감염병 민간 동원 시스템이 구축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진경·정진수 기자 ljin@segye.com
백신 확보 뒤늦게 ‘발동동’… 국내 제품도 2022년 상반기 출시
코로나19가 전 세계를 뒤덮으면서 각국은 코로나19 백신 경쟁에 뛰어들었다. 경쟁은 백신 개발과 백신 확보 두 갈래로 진행됐다. 이 경쟁에서 한국은 좋은 점수를 받기 힘든 상황이다.
코로나19 백신은 화이자, 모더나,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이 개발돼 접종이 진행되고 있다. 지난해 12월 영국에서 첫 접종이 이뤄진 백신은 화이자 백신이었다. 러시아산 백신 스푸트니크V, 중국산 시노팜과 시노백도 개발돼 곳곳에서 접종이 이뤄지고 있다. 이밖에 얀센, 노바백스의 백신은 임상 3상이 진행 중이다.
국내 제약사들은 글로벌 제약사들과 비교하면 개발에 늦은 편이다. 내년 상반기 국산 코로나19 백신 출시가 전망된다.
국내 백신 개발 인프라가 부족한 것이 원인으로 지목된다. 국내 제약사는 복제약 위주로 성장해 신약 개발 역량과 경험치가 부족했다. 신약 개발을 뒷받침할 기초과학 연구 기반도 부족하다. 노벨상 과학 분야에서 일본은 수상자가 24명인데, 한국은 한명도 없다는 점이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국가 차원에서 바이오신약 개발을 꾸준히 지원하고, 기초과학 투자를 늘리는 노력이 필요하다. 최근 한국과학기술원(KAIST) 개교 50주년 온라인 서밋에 참석한 라파엘 라이프 미 매사추세츠공대(MIT) 총장은 “코로나19 백신이 1년여 만에 개발된 것은 수십년에 걸친 조심스럽고 신중한 기초과학 연구가 있었기 때문”이라며 “당장 효용성이 눈에 보이지 않는 기초연구도 꾸준히 추진해 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해외 개발 백신을 선제적으로 확보하는 것도 한발 늦었다. 미국은 ‘초고속 작전’팀을 만들어 전권을 부여하고 화이자와 모더나 등 제약회사에 사전 구매 형태로 약 15조원의 자금을 지원했다.
반면 우리는 백신 선구매에 주저했다. 안전성을 검증하기 위해 시간이 필요했다는 해명이었지만, 실상은 과감한 결정을 내릴 수 있는 환경이 아니었다는 지적이다. 미국과 영국은 지난해 12월 접종이 시작됐으나 우리는 계약조차 제대로 체결하지 못하는 등 소극적 태도를 보였다. 여론이 악화하자 뒤늦게 계획했던 4400만명분에 1200만명분을 추가로 계약했다.
이재갑 한림대성심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우리는 백신 선구매 관련 법적 근거나 예산 근거도 없다”며 “신종플루 유행이 끝난 뒤 백신이 남자 국정감사 때 예산을 과소비했다고 비판했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공무원들이 적극 행정을 할 수 있는 기본적인 구조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사회경제적 위상, 거주지가 좌우 최근 4년간 서울 집값 평균 5억 올라 주거비 부담에 경기·비수도권 이사 ↑ 지방대생들은 취업도 하늘의 별따기 서울 올라와도 경제적 부담에 허덕
서울대생 40%는 강남3구 출신 대학 간판 따라 직업·소득수준 결정 지방서도 ‘교육특구’가 집값 더 비싸 계층 대물림돼 상대적 박탈감 커져 미시적인 지역균형발전전략 세워야
#1. 경기 고양시 일산에서 서울로 출퇴근하는 정지훈(34)씨는 요즘 치솟는 집값에 일할 의욕을 잃는다. 정씨는 “3년 전 서울을 떠날 때만 해도 2년 정도 악착같이 돈을 모으면 다시 돌아갈 수 있겠거니 생각했지만 지금은 다락같이 오른 집값에 엄두를 못 낸다”고 하소연했다. 그러면서 정씨는 “내년 아들이 초등학교에 들어가는데, 서울이 아닌 경기도민으로 계속 살게 될까봐 부모로써 미안한 마음” 이라고 속내를 털어놓았다.
#2. 오는 8월 안동대학교를 졸업하는 구민정(24)씨는 진지하게 상경(上京)을 고려 중이다. 구씨는 이른바 ‘지여인’(지방대에 다니는 여자 인문대생)이다. 취업이 힘들다는 세 가지 조건을 모두 갖췄다. 그는 “고향에서 계속 살고 싶은데 대구·경북 지역에선 일자리가 바늘구멍”이라며 “집세에 식비, 생활비 등 경제적 부담은 크지만 일자리가 많은 수도권에서 일찍 터전을 잡는 게 장기적으로 도움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계층 이동 사다리’가 무너지고 있는 요인 중 하나는 지역격차다. 수도권과 비수도권, 서울과 경기·인천, 서울 강남과 강북 어디에 사느냐에 따라 사회경제적 위상이 다르고, 해를 거듭할수록 그 격차는 커지고 있다. 대표적 지표는 집값과 일자리, 교육이다.
같은 세금을 내고도 거주 지역에 따라 주거환경과 취업 기회, 교육의 질이 달라지다 보니 상대적 박탈감은 커지고, 국가 발전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다. 계층 사다리 복원을 위해서는 지역균형발전에 힘을 쏟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이유다.
◆치솟은 집값으로 서울 떠나는 인구 늘어
정씨의 경우처럼 치솟는 집값 때문에 거주지를 옮기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9일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에 따르면 문재인정부 출범 이후 서울 아파트값은 5억원 상승했다. 서울의 30평(99㎡) 아파트값은 2017년 5월 평균 6억4000만원이었는데 2021년 1월에는 11억4000만원으로 폭등했다. 약 4년간 아파트값이 78% 상승한 것인데 이는 노동자 평균 연임금이 2017∼2019년 약 9%(3096만원→3360만원) 오른 것과 대조된다.
5억원은 평범한 직장인이 1년에 1000만원씩 50년을 저축해야 마련할 수 있는 돈이다. 서울 강남3구(강남·서초·송파) 집값 상승폭은 입이 쩍 벌어질 만한 수준이다. 강남 30평 아파트 시세는 2017년 5월 13억원에서 올 1월 22억4000만원으로 올랐다. 비수도권은 물론 같은 기간 5억5000만원에서 9억9000만원으로 오른 서울 비강남권 거주자들에게도 강남은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철옹성이 됐다.
서울 강남을 정점으로 집값이 폭등하다 보니 주거비 부담에 경기·인천, 비수도권으로 이사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국토연구원이 2019년 사유별 인구이동 현황을 분석했더니 주택이 38.9%, 가족 23.9%, 직업 21.6%, 교육 4.7% 순으로 나타났다. 핵심생산인구(25∼49세)의 시·군·구별 주택에 따른 순이동을 살펴본 결과 경기 고양과 용인, 화성, 남양주, 시흥, 인천 연수구 등 서울 주변 지역에서 순유입이 많았다.
강남의 치솟는 집값과 더 벌어진 지역 격차는 전국을 서열화해 위화감 및 박탈감을 조성한다. 전희정 성균관대 교수(행정학)와 박사과정 김태완씨가 계간지 ‘한국행정연구’에 발표한 논문을 보면 직업·소득수준과 상관없이 거주지만으로 ‘계층이 상향됐다’고 인식하는 강남3구 주민 비율은 노·도·강(노원·도봉·강북) 주민들보다 1.4배가량 높다. 논문은 “주거지역 간 물리적, 사회문화적 자원의 불균등한 분포는 시장원리에 따라 가격을 중심으로 주거지역으로의 진입장벽을 형성하게 되며 이는 사회집단별 거주지의 분화로 이어진다”고 지적했다.
서울 강남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집값이 높고 주거환경이 괜찮은 지역으로 꼽히는 경기 분당, 용인 주민들의 박탈감도 서울 비강남권 못지않다. 분당에 거주하는 직장인 박모(42)씨는 “분당 집값이 올랐다지만 이곳 60평대 아파트를 팔아도 인근 강남의 30평대 아파트를 사기 어렵다”고 말했다. 박씨가 분당에 이사온 1990년대 초 강남과 40평대 아파트 매매가 차이는 2억원에 불과했다.
◆서울 일반고 출신 서울대생 40%는 강남3구
집값은 주민의 재산·소득 수준은 물론 해당 지역의 교육·교통·치안·보건·문화 등 제반 주거환경·생활여건의 ‘바로미터’다. 대표적인 게 대입 결과다. 한국은 대학 간판에 따라 어느 정도의 직업과 소득수준이 결정되는 학벌사회다. 입시업체 종로학원하늘교육이 서울대 합격생을 배출한 서울 일반고를 자치구별로 본 결과 강남3구 비율은 2017학년도 45.1%, 2018학년도 38.0%, 2019학년도 44.0%로 절반 수준에 육박했다.
비수도권도 비슷한 상황이다. 이른바 ‘교육 특구’를 중심으로 집값이 서열화돼 있다. 학성고, 울산여고 등 명문고와 대형학원가들이 밀집해 있는 울산 남구의 아파트는 다른 지역에 비해 많게는 4000만원 높게 가격이 형성돼 있다. 남구 옥동에 30년 넘은 아파트(22평형)에 전세로 살고 있는 김소영(35)씨는 최근 아파트 가격을 알아보다가 깜짝 놀랐다. 매매가가 한 달 전보다 1억원 오른 4억원대에 거래되고 있어서다. 김씨는 “부담이 되긴 하지만 교육은 때를 놓치면 안 되지 않으냐”며 “아이가 내년 초등학교 입학을 하는데 ‘영끌’해서라도 집을 사야 하나 싶다”고 말했다.
수도권에 견줄 만한 기관·기업·대학이 없는 비수도권은 일자리 찾기도 힘들다. 올 초 광주의 한 대학 간호학과를 졸업한 김모(24)씨는 요즘 스트레스성 탈모증세를 겪고 있다. 지난해 11월부터 수도권 대학병원 4곳에 원서를 냈지만 모두 퇴짜를 맞아서다. 대학 입학 때부터 수도권 병원 취직을 위해 어학성적은 물론 국내외 자원봉사, 관련학과 실습 등 ‘스펙’을 쌓았지만 ‘지잡대’ 문턱을 넘진 못했다. 김씨는 “블라인드 면접에서 ‘서울에서 살아본 경험이 있느냐’는 질문을 받고 황당하고 분했다”며 “수도권 병원마다 간호인력이 없어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고 하는데 지방대 출신이 들어갈 자리는 없는 모양”이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정부가 지역격차에 따른 상대적 박탈감을 해소하려는 실질적이고 미시적인 맞춤형 지역균형발전전략을 세워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소진광 가천대 교수(행정학)는 “공간불평등은 사회적으로 정의롭지 않고 경제적으로 효율적이지 않으며 환경적으로도 건전하지 않다”며 “성장 몫의 분배기준을 놓고 지역끼리의 갈등으로 표출되면 국가 정체성은 유지되기 힘들다”고 지적했다.
송민섭, 고양·안동·울산·광주=송동근·배소영·이보람·한현묵 기자 stsong@segye.com
지방대 ‘취업 사다리’ 붕괴 위기 부산대 작년 취업률 58.6% 그쳐 서울 소재 대학 쏠림 갈수록 심화 ‘지역인재 의무채용’ 있으나 마나 “국립대 통폐합해 경쟁력 강화를”
경북지역 국립대인 안동대를 졸업한 김민석(28)씨는 2년째 취업시장에서 낙방했다. 인턴 자리마저 하늘의 별 따기라 이렇다 할 경력을 쌓지 못했다. 김씨는 “예전엔 지방 국립대를 졸업하면 어느 정도 취업이 보장됐는데 요즘은 서류를 내기 무섭게 탈락한다”면서 “일자리가 워낙 없다 보니 연봉 2200만원에 세금 떼면 실수령액 175만원 남짓한 중소기업도 들어가기 어렵다”고 말했다.
한국대학교육협의회에 따르면 대구·경북지역 4년제 대학 12곳의 평균 취업률은 2019년 기준으로 59.9%다. 이 지역 4년제 12곳 중 취업률이 70%가 넘는 대학은 포항공대(74.1%)와 김천대(72.3%)뿐이었다.
부산을 대표하는 국립대학인 부산대 졸업생들도 역대 최악의 취업난 속에 ‘지방대 위기’를 실감하고 있다. 지난해 부산대 취업률은 58.6%다. 경남지역 중·소형 조선소 등의 연쇄적인 구조조정으로 양질의 일자리가 줄어들었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코로나19까지 겹친 지난해 지역 내 일자리는 말 그대로 씨가 말랐다. 일자리를 찾아 청년들이 부산을 떠나면서 지역 공동화가 현실화됐다.
지방대 취업난은 올해 대규모 신입생 미달 사태로 이어졌다. 지난 2월 마감한 정시모집 기준으로 전국 162개교에서 2만6129명의 미달이 발생했다. 국립대에 들어가더라도 지방 출신이면 취업이 힘든 실정이 되자 서울 소재 대학으로 쏠림 현상은 점점 심해지고 있다.
비수도권 청년들의 이탈을 방지하기 위해 도입된 ‘지역인재 의무채용’도 힘을 쓰지 못하고 있다. 이 제도는 지방 혁신도시 내 공공기관에 일정비율(30%까지 단계적 상향) 이상 해당 지역 출신 인재를 채용하도록 한 것으로, 권고에서 의무화로 바뀐 지 3년이 지났지만 성과는 미미하다.
전체 채용 시장에서 공공기관이 차지하는 비중 자체가 많지 않은 데다 최근 채용 규모도 축소되면서 지방대 출신 청년이 이 제도에 기대기에는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2019년 기준으로 19개 공공기관이 이전한 세종은 지역인재 의무화 전형 채용인원이 0명이었다. 5명 이하를 뽑고 석·박사, 경력 채용 시에는 의무화 규정이 제외되는 탓이다. 강원 원주시(9.2%), 울산(10.2%) 등도 지역인재 채용 비율이 10% 안팎에 머물렀다.
전문가들은 지방 거점 대학을 중심으로 본연의 경쟁력을 높이는 본질적 해결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최호택 배재대 교수(행정학)는 “경쟁력 강화를 위해 지역 국립대 중심으로 통폐합해야 한다”며 “치열한 경쟁을 통해 지방 사립대들이 경제적으로 독립하는 ‘국립형 사립대’의 모습을 갖춰야 한다”고 설명했다. 지금의 지방대는 정부 평가를 잘 받아 국책사업으로 유지하려다 보니 평가 지표를 높이는 데만 예산을 쏟아붓고 있어 대학 특성화에 소홀하고 교육의 질도 악화한다는 분석이다. 진종헌 공주대 교수(지리학)는 “지역에서 필요한 방식으로 커리큘럼을 바꿔야 한다”며 “지역 특화 산업에 시너지를 낼 수 있도록 연관 교육 체계를 만드는 등 변화가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국민일보가 2021년 3월2일자에 윤석열 검찰총장 단독 인터뷰를 게재했다. 국민일보가 서울 시내에 배달되는 마지막판에 넣은 기사라서 타매체는 온라인에 배포된 기사를 보고서야 국민일보가 단독으로 인터뷰했다는 사실을 알게됐다. 더불어민주당 일각에서 추진 중인 '중대범죄수사청' 설립을 둘러싸고 여권 일각과 검찰, 검찰과 법무부 입장이 첨예하게 갈린 사안에 대해 핵심 이해당사자인 검찰의 수장이 인터뷰를 통해 입장을 밝힌 것이다. 윤 총장은 여권의 중수청 입법 움직임과 관련, "힘 있는 세력들에게 치외법권을 제공하는 것", "70여년 형사사법시스템을 파괴하는 졸속 입법", "민주주의라는 허울을 쓰고 법치를 말살하는 것이며 헌법 정신 파괴"라고 강력 비판하면서 "직을 걸어 막을 수 있는 일이라면 100번이라도 걸겠다"고 밝혔다. 완벽한 단독 인터뷰 기사이고 다른 매체들이 받지 않을 수 없는 기사였다. 종합지들은 모두 3월3일자 1면에 주요 기사로 처리했다. 그런데 소스(기사 출처)를 밝히는 방식은 제각각이었다.
국민일보 인터뷰가 소스라고 밝힌 신문은 세계일보, 경향신문, 한겨레신문, 한국일보, 동아일보였다.
조선일보, 서울신문, 매일경제는 '언론 인터뷰'라고 두루뭉수리하게 표현했다.
중앙일보는 윤 총장과 별도 인터뷰를 갖고 처리하면서 기존 국민일보와의 인터뷰 내용은 소스 없이 인용했다. 동아일보는 1면 기사를 국민일보의 윤 총장 인터뷰 기사에 대한 대검의 입장문을 전하는 형식으로 다루면서 소스 없이 국민일보 인터뷰 내용을 보도하고 5면 관련 박스에 "윤 총장은 2일 입장문을 내기 전인 1일 현직 검찰총장으로서 집무실에서 국민일보와 언론 인터뷰를 했는데, 그 자체가 매우 이례적이다"는 문장을 담았다.
어느 매체가 단독 기사를 내보냈을 때 다른 매체가 그 기사를 사실상 받아쓰면서 소스를 밝히지 않는 것은 한국 언론의 오랜 관행이다. 특종한 매체를 숨기면 낙종의 부담이 덜어진다고 보는 것일까. 사실상 콘텐츠 무단 도용에 가깝다. 이런 관행에 대해서는 언론 스스로 기사의 신뢰도를 저하시키고 있다는 비판이 많다. 미국 뉴욕타임스나 워싱턴포스트 등은 아주 중요한 기사가 아니면 타 매체의 기사를 베끼지도 않지만, 보도 가치가 있으면 소스를 반드시 밝히면서 인용 보도한다. 한국 언론이 깊이 성찰해봐야 할 대목이다.
*관훈저널 2021년 여름호를 읽다가 연합뉴스 편집국장, 사장을 지낸 박정찬 선배의 기고글에서 필자와 같은 문제 의식을 피력한 대목을 발견했다. 대부분의 기자들이 같은 생각이지만 자사 이기주의에 사로잡혀 잘못된 관행을 여전히 바꾸지 못하고 있는 게 작금의 언론 현실이다.
*아래는 관훈저널 2022년 봄호에 실린 안수찬 세명대학교 저널리즘대학원 교수의 '한국 언론의 미개한 관행, 출처 표기 없는 복제 보도'라는 제하의 기고문이다.
19세기에 머물러 있는 한국 언론의 보도 관행 150년 전의 기준과 방식을 오늘에 적용하는 직업이나 분야가 있 다고 상상해 보자. 예를 들어, 19세기 많은 나라에서 그랬던 것처럼 구체적 물증 없이 추정에 따라 판결하는 법원, 의학적 검사 없이 짐 작에 따라 치료하는 병원이 2022년에도 존재한다고 상상해 보자. 현대성의 외양 아래 봉건적 습속을 적용하는 이들을 우리는 ‘미개하다’고 평가할 것이다.
사회 여러 분야에서 글로벌 스탠더드를 따라잡았다고 평가받는 21세기 한국에 여전히 미개한 분야가 있다. 언론이다. 한국 언론의 보도 관행은 19세기 수준에 머물러 있다. 많은 언론학자는 19세기 중후반 미국의 ‘페니페이퍼’(penny paper)를 현대 언론의 맹아로 평가한다. 대표 신문으로 조지프 퓰리처가 이끈 뉴욕월드가 있다. 이 신문은 매일 최대 100만 부를 발행한 사상 첫 대중 언론이었다. 19세기 초 반의 ‘정파 언론’(partisan paper)과 달리, 칼럼과 사설이 아니라 각종 사건·사고를 주로 보도했고, 스포츠 보도와 정치 만평을 시작했으며, 광고 수익 모델도 처음 도입 했다. 1887년 뉴욕 정신병원 의 실상을 알린 이 신문의 보도는 탐사보도 역사의 첫 페이지에 등장하는 기념비적 기사다. 다만 뉴욕월드는 한 가지 점에서 현대 언론의 기준에 도달하지 못했다. 아래는 1900년 4월 20일, 금요일 석간에 발행된 뉴욕월드의 1면 머리기사다.
'젊고 예쁜 여성이지만, 이 나라에 친구가 없는 것이 분명하고, 불행한 일을 겪어 한 푼도 없는 마리 로살리 다인스(Marie Rosalie Dinse)가 오늘 오후 2시 다리 에서 뛰어내렸다. (중략) 그녀는 의식을 잃은 채로 물에서 구조됐으나 병원에서 되살아났고, 이내 신경질적으로 변했다. (중략) 그녀는 자신이 음모의 희생양이 되어 조금씩 돈을 잃었다고 말했다. 그래서 그녀는 매우 지쳐 상심했다. 그녀가 다리를 건널 때, 강은 매우 아늑해 보였다. 그것은 평화롭게 보였다. (이하 생략)'
얼핏 보면, 별문제 없는 기사다. 인물 중심의 사건 기사를 문학적 방식으 로 잘 보도했다고 평가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 기사는 현대 언론의 거의 모든 요소를 갖췄던 뉴욕월드가 ‘황색 언론’(yellow journalism)의 대표 격으로 불린 이유를 보여준다. 여성이 다리에서 뛰어내린 것은 사실이지 만, 그녀가 돈을 잃어버렸다는 내용은 사실이 아니다. 정신질환자인 그녀의 말을 그대로 믿기 힘들다는 점도 기사에 나오지 않는다. ‘그녀는 … 말했 다’는 문장이 있지만, 언제 어디서 그녀를 만나 인터뷰했는지에 대한 정보도 없다. 정보 출처가 불분명한 내용에 기자의 상상을 덧대어 보도한 것이다.
이것이 19세기 기자들이 1면 머리에 올릴 대표 기사를 작성할 때 적용한 관행의 수준이다. 뉴욕월드가 쇠락하고 뉴욕타임스가 새로운 주류 언론으로 등극한 1920~1930년대는 이러한 ‘선정주의’(sensationalism)에 대한 반성의 시기였다. 여기서 선정주의는 도색잡지의 관능적 선정성이 아니었다. 출처와 근거가 불분명한 정보를 교묘하게 보도하는 관행이 19세기 선정주의의 핵심이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미국 언론이 채택한 규범이자 원칙이 ‘정보 출처의 투명한 공개’다. 취재원(news source)은 누구인지, 언제 어떻게 취재원을 만나거나 확보했는지, 그 정보를 왜 신뢰할 수 있는지 등을 두루 밝혀야 ‘기사의 내용이 조작이나 허구가 아니다’라는 믿음을 독자에게 줄 수 있다는 것이다.
투명성은 현대 언론의 본론 언론학자들은 이를 ‘투명성’(transparency) 원칙이라고 부른다. 20세기 초반 이후 오늘의 디지털 시대에 이르기까지 지난 100여 년 동안 이뤄진 현 대 언론의 진화는 투명성 원칙을 더 정교하게 확대 발전시킨 과정이었다. 취재원의 말을 있는 그대로 인용하고, 취재원의 실체를 구체적으로 밝히며, 취재기자의 바이라인(by-line)을 적고, 취재의 계기·목적·방법·한계 등을 공개하는 편집자 주를 쓰고, 정보의 원자료 및 관련 아카이브의 링크를 덧붙이는 등의 변화는 모두 투명성의 극대화와 관련이 있다. 현대 언론의 또다른 중요한 규범으로 꼽히는 객관성과 공정성 등은 20세기 이전에도 존재했다. 의견이 아닌 사실을 중시하는 객관성 원칙이 19세기 페니페이퍼 시대에 등장했음은 위에 소개했다.
공정성은 어떨까?기자 양성을 위한 사상 첫 고등교육 기관인 미국 미주리대 저널리즘스쿨은 1908년 개교와 함께 ‘기자의 신조’(journalist’s creed) 8개 조항을 선포했는데, 세 번째 조항을 보면 “분명한 생각, 분명한 진술, 정확성 그리고 공정성이 좋은 저널리즘의 토대라는 것을 나는 믿는다”고 적혀 있다. 세기 전환기에 이미 공정성 규범이 자리 잡았던 것이다. 따라서 객관성과 공정성이 현대 언론의 서장을 열었다면, 투명성은 현대 언론의 본론이라 할 수 있다. 19세기 언론과 20세기 언론을 구분 짓는 경계에 투명성이 있다. 정보의 출처를 정확하고 투명하게 밝히면 현대 언론이고, 그렇지 않으면 전근대 언론이다. 그런데 오늘날 한국 언론은 19세기 방식으로 일하고 있다. 투명성 원칙이 한국 언론계에서 어떤 취급을 받는지 보여주는 사례가 있다. 세계일보는 2022년 1월 17일자 1면에 〈윤석열 부부와 친분 있는 무속인, 선거대책 본부에서 고문으로 일한다〉는 기사를 단독 보도했다. 국민의힘은 이튿날인 18일, 기사에 등장한 무속인이 활동했던 선거대책본부 산하 네트워크 본부를 전격 해산했다. 그만큼 중대 사안이었다. 다른 신문들도 이를 뒤따라 보도하거나 관련 상황을 보도했다. 그런데 대부분 신문은 ‘무속인이 선대본에서 일한다’는 정보의 출처를 제대로 밝히지 않았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가 17일 ‘무속 논란’에 또 휘말렸다. ‘건진법사’라 는 무속인 전모 씨가 선거대책본부에서 고문으로 활동하며 후보 일정과 메시 지, 인사에 개입했다는 한 언론의 보도가 나오면서다. (중략) 보도에 따르면 윤 후보가 전씨를 알게 된 것은 부인 김건희 씨를 통해서이고, 윤 후보가 검찰총장이던 시절 전씨가 대권 도전을 결심하도록 도왔으며, 자신이 국사가 될 사람이 라고 소개했다고 한다. (이하 생략)' (서울신문 1월 18일 지면 기사)
'(전략) 국민의힘은 ‘건진법사’로 알려진 A씨가 네트워크본부 고문으로 활동 하며 윤석열 후보 선거 캠페인에 관여한다는 의혹을 제기한 일부 보도는 “사실 이 아니다”라는 입장이다. 하지만 무속 논란이 계속되는 것을 차단하기 위해 네트워크본부 해체라는 강수를 둔 것으로 보인다. (이하 생략)' (조선일보 1월 19일 지면 기사)
'국민의힘은 18일 무속인이 윤석열 대선 후보의 선거운동에 개입했다는 논란과 관련해 활동의 근거지로 지목된 선거대책본부 산하 네트워크본부를 해산했다. 관련 보도가 나온 지 하루 만에 전격적으로 이뤄진 조치로, ‘무속 논란’을 조기에 차단하려는 의도다. (이하 생략)' (동아일보 1월 19일 지면 기사)
이들 신문은 ‘한 언론의 보도’, ‘관련 보도’, ‘일부 보도’ 등으로 정보의 출처를 흐렸다. 정간법에 따라 등록된 국내 언론은 2020년 말 현재, 2만 2,700 여 곳이다. 도대체 ‘한 언론’과 ‘일부 언론’이 2만여 언론사 가운데 어디인지 알 수가 없다. 위 기사들은 모두 지면에 보도됐다. 게이트키핑이 허술한 인터넷 기사도 아니고, 담당 부장, 그리고 편집국장까지 살펴봤을 중대 사안에 대한 지면기사에 정보 출처를 표기하지 않은 내용을 버젓이 보도한 것이다. 이 사안과 관련해 ‘세계일보가 …를 보도했다’는 구체적 정보를 담은 신문은 경향신문과 한겨레 정도였다.
연합뉴스 베껴 쓰는 관행도 저작권법 위반
이런 일은 수시로 일어난다. 연합뉴스는 2월 6일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 선대본부의 원희룡 정책본부장과 인터뷰했다. 원 본부장은 윤석열 후보와 안철수 후보의 통합이 필요하다고 인터뷰에서 주장했는데, 여러 신문이 그 내용을 받아 보도했다. 여기서도 똑같은 관행이 반복됐다. 조선일보는 “이날 국민의힘 원희룡 정책본부장도 언론 인터뷰에서 야권 단일화 후보 필요성을 언급하며 ‘때가 됐다’고 했다”(2월 7일 지면 기사)고 보도했다. 동아일보는 “국민의힘 원희룡 선거대책본부 정책본부장은 한 언론 인터뷰에서 ‘초박빙 대선에서 승리하려면 안 후보와 단일화를 해야 한다’”(2월 7 일 지면 기사)고 보도했다. 정보 출처인 연합뉴스를 표기해 보도한 신문은 중앙일보와 세계일보 정도였다.
이는 일종의 표절이다. 원작자를 밝히지 않고 내용을 옮겨왔기 때문이다. 사회 모든 분야에서 표절은 위법 또는 반윤리적 행위로 이해된다. 표절 기사도 마찬가지다. 국내 저작권법 및 국내외 판례를 보면, 누구나 쉽게 알 수 있는 사실을 전달한 기사는 저작물로 보기 힘들지만, 정보 수집과 유통에 상당한 노력과 비용을 투입한 기사의 저작권은 법률에 의해 보호된다. 이를 무단 전재·인용하는 것은 다른 언론의 취재보도 행위에 무임승차하는 부정경쟁 행위라고 볼 수 있다. 연합뉴스의 보도를 베껴 쓰는 관행도 마찬가지다. 이런 행위는 저작권법은 물론 언론사 간 계약 위반이다. 연합뉴스와 각 언론사가 맺은 전재계약의 핵심은 원칙적으로 통신사의 기사를 그대로 보도하는 것에 있다.
하지만 이런 관행을 법률의 힘을 빌려 바로 잡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저작권법 위반은 (상습적 영리 활동을 위한 행위가 아니라면) 친고죄에 해당한다. 위 사례를 예로 들자면, 세계일보가 직접 다른 신문사를 고발해야 한다. 뒤이어 법원은 세계일보의 첫 기사가 저작권을 인정할 만큼 독창적 보도인지 판단하는데, 이 과정에서 세계일보 측의 적극적 변론이 필요할 것이다. 저작권 침해 결정이 나더라도 손해배상액의 기준은 ‘저작물의 이용 허락의 대가로 지급했을 금액’이다. 그 배상액은 아마 소송비용에도 이르지 못할 것이다. 따라서 이 문제를 법률이 아니라 규범 차원에서 접근하는 게 낫지 않을까 제안해 본다. 불법 행위는 법률에 근거하여 강제로 규율할 대상이지만, 직업적 규범은 직능 단체가 자율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대상이다. 출처 표기 없이 다른 언론 보도를 베껴 쓰는 관행을 해소하는 일은 법원의 판단을 기다릴 만큼 엄청난 일이 아니다.
처방은 단순하고 명쾌하다. 원래 출처인 언론사를 밝혀 적기만 하면 된다. ‘세계일보가 보도했다’거나 ‘연합뉴스가 인터뷰했다’고만 적으면 된다. ‘한 언론’, ‘일부 언론’ 등 표현은 일종의 ‘주저흔’ 다만 이처럼 간단한 일을 한국 언론이 기괴할 정도로 부자연스럽게 회피하는 이유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필자가 보기에는 ‘한 언론’·‘일부 언론’ 등의 표현은 일종의 ‘주저흔’이다. 잘못인 줄 알면서도 잘못을 저지르는 게 창피하므로 잘못의 증거를 조금이나마 숨기려는 ‘집단 심리’가 그 배경에 있지 않을까 한다. 그 잘못은 ‘직접 취재’(original report)의 원칙과 관련이 있다.
최근 국내에 번역된 『저널리즘의 기본원칙』 개정 4판을 보면, 저자들은 직접 취재의 원칙을 “투명성과 좋은 짝”(192쪽)이라고 적었다. 그만큼 두 원칙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직접 취재는 다른 언론의 보도를 따라 쓰지 말고, 제 발로 뛰어 직접 사실을 확인해 기사를 쓰라는 원칙이다. 사실을 가장 확실하게 검증하는 방법은 현장·사람·문서 등을 직접 취재하는 것이다. 이 경우의 취재 대상을 ‘1차 취재원’(primary source)이라 부른다. 간접적으로 목격한 사람이나 기록은 ‘2차 취재원’(secondary source)이다. 현장을 보았다는 사람의 이야기를 들었다는 사람과 인터뷰한다면, 이는 3차 취재원에 해당할 것이다. 1차 취재원에게서 멀어질수록 기사의 정확성과 진실성은 희 박해진다. 이런 경우일수록 취재원을 투명하고 구체적으로 밝히는 것이 중 요하다. 그래야 독자가 기사의 신뢰성을 판단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직접 취재 원칙은 투명성 원칙에 의해 보완되고, 투명성 원칙을 최고 수준에서 구현하는 것은 직접 취재 원칙의 극대화와 연결돼 있다. 한국 기자들이 『저널리즘의 기본원칙』에 소개된 현대 언론의 규범을 얼마나 숙지하고 있는지 알 수 없지만, 출처 표기 없이 다른 언론을 복제하는 행위가 직접 취재 원칙에 어긋나는 창피한 일이라는 인식은 제법 널리 퍼져 있는 듯하다. 그래서 ‘한 언론’ 등의 방식으로 최대한 간단하게,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하게 표기하는 것이 아닐까 한다.
창피한 잘못을 눙치는 기괴한 관행과 연결된 또 다른 집단 심리가 있다. 위에서 살펴봤듯이 출처 표기와 관련해 ‘이 정도면 됐다’는 인식이 한국 언론계 전반에 팽배해 있다. 이는 소속 언론사 연차·직급·부서 등을 가리지 않는다. 정보 출처를 제대로 밝히지 않아도 뭐라 하는 사람이 뉴스룸에 없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보자면, 단독 보도한 언론사를 자신의 기사에 표기 하지 않는 것은 투명성 규범 전반을 소홀하게 여기는 한국 언론의 19세기적 관행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예를 들어 앞서 소개한 세계일보의 단독 보도를 보면, 무속인이 선대본의 고문으로 활동한다는 정보의 출처 또는 취재원은 ‘무속인 전모 씨의 지인’과 ‘선대본부 사정을 잘 아는 한 관계자’로 표기돼 있다. 내부자의 신원을 드러내기 힘들었다 하더라도, 중대 고발 사안에 대한 익명 취재원을 어떻게 표기해야 좋은지에 대한 고심은 부족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정보 출처 표기, ‘원산지·유통 이력 표기’와 같아
21세기 언론이 투명성 원칙을 구현하는 수준을 보여주는 사례가 있다. 미국 시애틀타임스는 보잉사의 ‘737 맥스’ 기종의 안전성 문제를 폭로해 2020년 퓰리처상을 받았다. 대다수 취재원은 보잉사의 엔지니어들이었는데, 실명 인용을 원칙으로 삼는 영미 언론 기사 가운데는 이례적으로 대부분 익명으로 그 증언을 인용했다. 다만 출처 표기 방식은 한국 언론과 다르다.
'수십 년 동안 보잉사에서 일했고, 나중에는 미연방 항공청으로부터 권한을 위임받은 대리자로 일하면서, 737 맥스를 포함한 다양한 기종의 검증 과정에 관여한 베테랑 항공 안전 엔지니어는 연방 항공청의 (제조사에 대한) 안전 검증 위임에 “근본적으로 잘못된 것은 없었다”고 말했다.'
증언 내용보다 취재원을 설명하는 내용이 더 길다. 그래야 독점 취재한 내용의 신뢰성을 높일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기사를 상품에 비유하자면, 정보 출처 표기는 ‘원산지 및 유통 이력 표기’와 같다. 언제 어디서 도축 됐는지, 어떤 유통과정을 거쳤는지 등이 표시돼 있어야 소비자는 상품을 신뢰한다. 그런데 한국 언론은 원산지 및 유통 이력을 한사코 감춘 상품만 진열대에 올려놓았다. 머지않아 손님들은 이 가게를 찾지 않을 것이다. ‘출처 불명의 불량품’에 대한 나쁜 기억이 많기 때문이다. 출처 표기 없이 다른 언론 기사를 복제해 보도하는 관행은 현대적 외양 아래서 전근대적 습속을 적용하는 한국 언론의 수준을 드러내는 전형이다. 개별 행위 및 사례를 처벌하거나 비판하는 것으로는 문제의 개선에 한계가 있을 것이다. 그보다는 ‘상품 기준’에 대한 업계의 인식을 전반적으로 바꾸고, ‘제조 공정’에 대한 업계의 표준을 새로 만들어야 한다. 정부 개입이나 법적 규율의 힘을 빌리지 않는 자율 규제의 핵심은 언론업계를 이끄는 업체 대표들의 협약과 실천에 있다. 이 글의 게재를 허락해준 관훈클럽이 그러한 자율 규제를 실천할 좋은 직능단체가 되길 바란다.
*아래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이 발간하는 '신문과방송' 2023년 3월호 커버스토리 일부를 소개한 글이다. 안수찬 세명대 저널리즘대학원 교수가 '베끼기 저널리즘'이라는 제목으로 한국 언론의 복제 보도, 표절 관행을 비판한 것이다.
우연히 들여다본 미국 저널리즘대학원의 교과서에서 '인용과 출처'(Quotation and Attribution)를 20여 쪽에 걸쳐 설명한 것을 읽고, 기가 질려 버렸다. 이게 뭐라고 이토록 자세히 적는가 말이다. 그 무렵, 뉴욕타임스의 취재 보도 준칙(Standards and Ethics)을 읽었을 때는 그저 압도당했다. 10만여 글자를 문서에 옮기는 A4 용지 40쪽이 넘었다. 검증과 인용 등에 관한 일반 사항은 차치하고, '다른 언론 보도의 인용'(Other People's Reporting)에 관한 내용만 일부 옮긴다.
"다른 조직이 수집한 사실을 사용할 때, 우리는 그 출처를 밝힌다. 이 원칙은 뉴스통신은 물론 신문, 잡지, 단행본, 방송에 모두 적용된다.(...) 바람직한 것은, 시간과 거리가 허락하는 한, 우리 스스로 취재하거나, 다른 언론의 기사를 우리가 검증하는 것이다. 직접 확인한 사실에 대한 출처를 다른 언론으로 표기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그 경우에도 존중(courtesy)과 정직(candor)의 차원에서, 처음 보도한 언론을 우리의 기사에 밝힌다."(Standards and Ethics, The New York Times Company)
낙종했더라도 뒤늦게 따라 보도하더라도, 직접 취재한 것만 쓰되, 이를 먼저 보도한 언론을 존중해 정직하게 그 언론사를 밝히라는 것이다. 무려 존중과 정직이라니, 고귀하고 멋있지 않은가.
*2023년 2월, 조선일보는 세계일보가 1000만원이 넘는 비용을 들여서 집계한 국민의힘 전당대회 후보 지지도 조사를 아무런 출처 표시 없이 무단 게재하는 몰염치한 행태를 보였다. 아래 기사에서 뜬금없이 소개되는 한국갤럽 조사가 바로 세계일보 여론조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