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화 경선에 유일하 트럼프 독주 저지 후보 크루즈였다.

크루즈 트럼프 ‘매 넘버(공화 지명 확정짓는 대의 1237) 달성 효과적으 막아냈다 공화당에 전당 경선 실시 있었다. 이른 전당대회 contested convention*(주1). 그렇게 됐으공화대선후보 달라졌을지 른다. 트럼프 마땅 공화 지도부 막후에 전당대 의원들 설득, 트럼프 배제한다 복안 세워뒀 때문이다.

크루 상원의원 2016 35 캔자스 경선(당원대회)트럼 후보 25% 포인 꺾으면 트럼 대안으 급부상했다.

캔자스 크루즈 압도적으 지지했을까.

질문 답하 위해서 캔자스 정치권 우경화됐는지 살펴봐 한다.

대평 지대 위치 캔자스 20 초반에 농민조직 강했 진보 땅이었다. 시어도 루스벨트 용어로 ‘복지국가’ 뜻하 ‘신국가주의’ 선포 오사와토미 캔자스주 위치해 있다. 오바 대통령 2011 12 오사와토미 정부 추진했 진보 정책 정당성 확인받 여론 이끌어내 했다. 오바 대통령 (시어도어) 루스벨트 이곳에 (신국가주의) 연설 급진주의자, 사회주의자, 심지 공산주의자라소리까 들었지만, 주창 때문미국 부강나라, 강력민주주 나라 되었다” 역설했다. 지금 캔자스에 급진 도시라는 ‘래디 시티Radical city 지명 있다.

하지 도시화, 산업화 진척되면 캔자스 보수화했다.

농민 줄어들 조직 약해지 캔자스 정치 공화당 주도했다. 캔자스 공화당 실용 수였다. 1996 대선에 공화 후보 지명 Bob Dole 상원의원 캔자스 대표적 중도 공화당원이었다.

1990 캔자스 지형 극적으 변화시키 사건 발생했다. 시위였다. 전국에 시위대 캔자스 위치토 위치 유명 앞에 시위를 시작했다.( 병원에 시술 담당했 George Tiller 박사 2009 5 위치토 교회에 반대론자 숨졌다.) 시위 계기 캔자 주민들 낙태 둘러싸 양론으로 분열했다. 대다수 기독교인들 캔자 주민들 반대 가담하면 이뤄 선거에 낙태 찬성 공화당 중도파 민주 의원들 캔자 정치권에 전원 축출되 말았다. 캔자스에 반대 기치 공화 우파 됐다.*(주2)

과정에 ‘복음주의evangelism 대표되 기독 우파 공화 우파 잡았다. 기독 우파 학교에 진화론 수업하는 반대하고, 학교에 기도 허용해 한다 주장하 낙태, 동성결혼 격렬 반대한다. 우월주의 강하 소수인종이 여성, 이민자 우습 경향 있다. ‘작 정부론’ 신봉하 신자유주의 선호한다. 상식적 미국인들 보기 크루즈도 트럼 못지않 ‘꼴통’이었다.

크루즈 복음주 우파 주자였다. 캔자스 공화 당원 대회 사람들 모여 행사였다.

캔자 경선에서 2위와 격차 문제였 크루즈 승리 당상이었다. 트럼프 낙태옹호단체 ‘가족계획연맹’ 활동 지지하 합법화 지지 전력 있었다. 트럼프 공화당 후보 반대 돌아섰다.

캔자스 노예제 유지하려 농장주 자작농들이 주다. 1859 1016 노예 폐지 무장봉기에 나섰다 교수형 브라John Brown 캔자 출신이다. 북전 노예제 존속시키려 연방군 캔자스 공격 유린 역사 캔자 주민들 노예 혐오 . 인종차별주의자라 딱지 트럼프 애초부 캔자스의 선택 주자였다. 캔자스 공화당원 반대론자는 아니었다. 기독 우파 공화 우파 손잡 시작 시점부 낙태 반대 전역 공화당원들 공유하 가치 떠올랐다. 크루문제 쟁점화하 사정 구보 있었 때문이다. 공화 대선경 기간에 해도 문제 트럼프 ‘아킬레 건’이었다.

정서로 이해 않지 지금 문제 미국 정치권 ‘뜨거 감자’다.

문제 진보 보수 가르 대표적 쟁점이다. 대부분 미국인들 시술 관련, pro-choice(낙태를 여성 선택, 권리 문제 관점) 아니 pro-life(낙태 행위 관점) 입장으 양분 있다. 민주 성향 유권자 대체 낙태 찬성하고, 공화 유권자 낙태 대한다.

연방대법원 1973 웨드Roe vs. Wade 소송에 “임신 3개월 여성 여부 선택 권리 갖는다”면 낙태 합법화하 판결 진영 판결 뒤집 사력 다해왔다. 1980 기독 우파 적극적으 지원 로널 레이 공화 정권 들어서 대법관 연방대법원에서 다수 차지 계기 대법원 요건 까다롭 하는 판결 잇따 내놨다. 과정에 공공병원이 시설의 사용 제한하 18 이하 보호자 승인 의무화했다.

하지 거기까지였다. 합법 판례 뒤집 낙태 금지하는 판결까지 않았다.

그러 보수성 주들 차원에 낙태 어렵 잇따 제정하면 대법 판결 무력화시키 했다. 아직까 연방대법원 입장 바꾸 있다. 연방대법원 20166 20 태아 낙태 금지 텍사스 낙태금지법이 위헌이라 판결했다. 이는 낙태 합법화 웨이드 가장 중요 판결로, 당분 낙태 금지하 차원 제정 제동 걸리 됐다.(트럼프 공화 후보 생명을 존중하 pro-life 대법관 임명 웨이 판결 뒤집겠다고 공약했다.)

‘트럼 대항마’ 부상 크루즈 트럼프 성채 무너뜨리기 문제 공략했지 크루즈 트럼프 달성 저지하 못했다. 공화당 신주류 등장 파티 계열 공화 성향 복음주 세력 출마했다. 부시, 마르 루비오 이후에 이들 밀었 공화 지도부 지원까 받았지 허사였다.

크루즈 무너졌을까. 무엇보 ‘독 장군 행태 반감 샀다. 크루즈는 2012 당선 상원의원이다. 국회 그렇지 미국 의회에서 선수(選數) 중요 기준이다. 선수 기준으 당내 랭킹매겨진다. 상원하원보 전통관행존중하 분위기 강하다. 상원에 1970년생 크루즈 1942 공화 원내대표 맥코넬 맞짱 떴다. 2013 맥코 비롯 공화 지도부 백악관·민주당과 예산 정에 오바마케 예산 포함시키 타협안 마련하자, 루즈 맥코넬 ‘거짓말쟁이’라 부르 강하 비판했다. 공화당 지도부 대해서 공화 유권자 저버리 오바 정부에 투항 인사들 매도했다.

국회 드라마 익숙 우리로서 와닿 않지 의회에서 의원 ‘거짓말쟁이’ 부르 정도 발언도 논란거리 된다. 언론 다룬다. 2009 공화당 Joe Wilson 하원의원 상·하 합동연설 오바 통령 “당 거짓말이야!You lie! 소리쳤다 성명을 했다. 정당 의원이 의회품격락시키 행위 용납하 않는다. 워싱턴특파원으로 사태의 추이를 지켜봤던 필자는 같은 공화 의원들 윌슨 않는 점에 눈길이 갔다. 민주당 의원 규탄결의안까 추진했다. 의사규칙 구체적으 의원들 직·간접적 비난 발언 못하도 규정하 있다. 그러 의원 눈에 크루즈 거침없 언행 시쳇말 ‘싸가지 없는 행태 보였 것이다. 크루즈에 앙심 공화 의원들 았다. 과정에 의원들 크루즈 사과 지지하 않겠다 말했다. 크루즈 공화당 통합 치면 의원들에 러브콜 보냈지 때늦 외침이었다.

크루즈 2012 텍사스 상원의 선거에 대중운동인 세력 전폭적 지원 받았다. 덕분 공화 예비경 과정에 텍사스 부지사 이변 연출하면 전국적으 이름 알렸다. 크루즈 파티 대사(大使)’를 자처하면 오바 정부 건강보험개혁이 이민개혁, 정책 반대하 파티 목소리 대변했다. 공화 주류 정부 정책 반대한다 점에서 파티 다르 았다. 공화당 2010 중간선 과정에서 운동 편승, 다수 탈환 성공했다. 의원들 공화당 하원 유입됐다.

하지선명성 투쟁시기필요덕목이다. 2010 중간선 공화당 비타 노선으 일관하 의원들에 발목 잡혀 오바 정부와 타협 불가능 정당으 변해갔다. 공화당 우경화됐다. 의원들은 공화당 골칫거리 됐다. 운동 과도 지출 반대하면 시작 운동이었는 우파 개입하면서 사실 오바 정부 반대하 운동으 변질됐다. 종교 우파 기독 복음주의 인종주 세력까 파티 흘러들어갔다. 2013 연방정 사태 야기 주범 루즈 필두 의원들이다. 크루즈 오바마 집행예산 2014 회계연 예산안 포함되 위해 21 19 필리버스터 했다. 크루즈 전국 인물 상했지 공화당 연방정 책임론 휩싸였다.

파티 원리주의 노선 공화 지도부 바라는 진로 아니었다. 공화 지도부 인구 늘어나 히스패닉 소수인종이 중도층 끌어안 않고서 공화당 미래 생각했 때문이다.

그런 세력 자신들 노선대 운영하 않는다 이유 2014 6 공화 원내대표 지역 예비선거에 낙선시키 반란까 일으켰다. 희생자 2010 간선거에 공화당 승리 원내대 자리 올랐 에릭 캔터다. 다수 원내대표 예비선거에 낙선 의회 역사 초유 참사였다. 캔터 은퇴 선언했다. 사건을 계기 공화 주류 세력 사이 멀어졌다. 2008공화 대선후보였 점잖 매케 상원의원 크루즈 ‘미 자식wacko bird 이라 해댔 정도였다.

*(주1) 공화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과반 대의원을 확보한 주자가 나오지 않을 경우 대선후보를 선출하는 전당대회. 현행 공화당 룰에 따르면 전당대회 대의원들은 1차 투표에서는 원칙적으로 각 주의 경선 결과대로 표를 던져야 한다. 1차 투표에서도 과반 후보가 안나오면 2차 투표부터는 아무 후보에게나 자유롭게 투표할 수 있는 대의원들이 늘어난다. 이때부터는 공화당 지도부 등 유력 정치인들이 개입, 막후에서 중재에 나선다. 그래서 '중재 전당대회' brokered convention 라고도 한다.

*(주2) 왜 가난한 사람들은 부자를 위해 투표하는가, 토마스 프랭크(김병순 옮김, 2012), 갈라파고스, p119-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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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통합당이 ‘김종인 비대위’ 문제로 갑론을박하던 20일 오후 논란의 당사자인 김종인 대한발전전략연구원 이사장을 만나러 갔다. 4·15 총선에서 총괄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아 통합당을 지원했던 김 이사장은 서울 광화문 대한발전전략연구원에서 책을 읽고 있었다. 인터뷰 도중 쉴 새 없이 휴대전화가 울렸다. 그는 보수, 진보 정당을 가리지 않고 선거 때마다 위기에 처한 정당의 구원투수로 등장해 선거를 승리로 이끌었다. 2012년 총선과 대선에선 새누리당(통합당 전신)을, 2016년 총선에선 더불어민주당을 살려냈다. ‘닥터K’라는 별칭이 생겼다. 하지만 이번 총선에서는 ‘김종인 마법’이 통하지 않았다.

―민주당이 180석 대승을 거뒀다.

“문재인정부 3년간의 정책 결과만 보면 여당이 선거에서 이길 수 있는 요인은 하나도 없었다. 그런데 코로나19 사태가 터졌다. 그런 천재지변이 나면 항상 집권세력에 대해 국민이 신뢰를 갖고 그걸 의지하려는 성향이 생긴다. 국민 모두에게 긴급재난지원금 주겠다는 말도 여당 호재로 작용했을 것이다. 독일은 무조건 국민 일인당 5000유로씩 지급했다. 선거 때 돈을 푸는 계기가 생기면 그게 유리하게 작용한다는 건 틀림 없다. 독일 유학 중이던 1965년 독일 총선이 있었다. 당시 기민당 루트비히 에르하르트 총리가 대학생들에게 매월 용돈을 주겠다는 공약으로 이겼다. 그런 식으로 나가다가 재정이 악화돼서 결국 물러났다.”

―통합당도 긴급재난지원금 주겠다고 하지 않았나.

“야당 이야기는 잘 안 먹힌다. 유권자들은 집행 능력도 없는 야당이 무슨 힘으로, 하는 생각을 하면서 야당 공약을 안 받아준다.”

―코로나19 변수뿐이었나.

“민주당이 빅데이터를 이용해서 선거구별로 성향 파악도 하고 준비를 철저히 했다. 공천 잡음도 거의 없었다. 그러다 선거 막판에 돈(긴급재난지원금)을 준다는 한 방이 나왔다. 반면 통합당은 선거 준비가 철저하지 못했다. 공천도 당선 가능성을 따지며 세밀하게 하지 못했다. 적재적소에 맞춤형 공천을 못했다. 공천잡음도 너무 많았다.”

―올 1월에 민주당 공천 작업에 관여한 고위 인사를 만났는데 민주당이 지역구 130석이면 대승이라고 했다.(이번 총선에서 민주당은 지역구 당선인 163명을 배출했다.)

“그 당시엔 코로나 사태가 이렇게 전개되리라곤 상상도 못했겠지. 전 세계가 다 그렇다. 코로나 사태 와중에 집권당 지지율이 엄청나게 오르고 있다. 이탈리아는 내각이 잘 못하는데 주세페 콘테 총리 지지율이 70% 이상이다. 독일 앙겔라 메르켈 총리 지지율도 80%가 넘는다. 그런 현상이 우리나라 총선에도 영향을 미친 건 사실이다. 코로나 사태가 민주당 대승에 가장 크게 기여했다.”

―총선이 끝나고 정치적 지형 자체가 진보 위주로 재편됐다는 분석이 많이 나왔다. 특히 50대가 진보로 기울었다는 것이다.

“정확한 분석이 아니라고 본다. 이번 선거에서도 정당투표율을 보면 미래한국당(통합당의 비례위성정당)이 앞섰다. 지역구 투표 득표율에서도 차이가 크지 않다. 진보가 주류되고 보수가 비주류되고 하는 식의 분석은 너무 피상적이고 깊게 생각하지 못한 사람들의 이야기다.”

(이번 총선에서 민주당의 비례연합정당인 더불어시민당과 미래한국당의 정당득표율은 각각 33.10%, 33.84%. 지역구 후보 득표율은 민주당 49.9%, 통합당 41.5%였다.)

―통합당의 가장 큰 문제는 뭐라고 보나.

“시대 흐름에 대한 파악이 제대로 안 돼 있다. 유권자 정서는 항상 변하는데 그것에 제대로 적응을 못한다.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당했을 때 새누리당도 사실은 탄핵을 당한 것이다. 그런데 그런 인식을 하지 않았다. 왜 그렇게 됐는지를 놓고 솔직하게 잘못한 것은 잘못했다고 시인을 해야 하는데 지금까지 그걸 안 하고 있다. 보수 정권을 담당했던 두 대통령(박근혜, 이명박)이 법의 심판을 받고 있다. 그런데 통합당은 ‘보수’만 강조하니 국민이 짜증날 수밖에 없다.”

―‘보수 세력’만 남고 ‘보수의 가치’는 사라졌다는 얘기인가.

“나는 보수라는 말 자체를 별로 좋아하질 않는다. 세상이 옛날하고 달라졌는데 무슨 보수, 진보를 따지나. 그런 진영논리로 끌고간다는 게 잘못이다. 막연하게 보수만 부르짖는다고 국민이 동조한다고 생각하면 착각이다. 진보도 마찬가지다. 진보라는 가치로 실질적으로 실현하고자 하는 바가 뭔가. 5000만 국민을 누구는 진보, 누구는 보수라고 구분하면 안 된다. 이번 선거에서 나타난 유권자 성향이 다음 대선에도 이어진다고 생각하면 큰 착각일 것이다.”

―2022년 대선에선 다른 결과가 나올 수 있나.

“다음 대선은 완전히 다를 수 있다. 코로나 사태 이후 전 세계적으로 경제가 상당히 침체상황에 빠졌다. 일각에서 나오는 V 자 상승 예측은 너무 낙관적이라고 본다. 유세에서도 계속 말했지만 현 정부의 경제 정책 실력으로 봐선 코로나 이후 경제문제를 해결할 능력은 없다고 본다.”

―보수가 대선에서 부활할 수도 있다는 얘기로 들린다.

“통합당도 결국은 생존의 위기에 처한 것 아닌가. 생존위기에 처하면 살기 위해 몸부림칠 수밖에 없다. 지금까지 무엇을 잘못했는지 뼈저리게 느끼고 그 반성 위에서 새롭게 구축하면 기회가 있다. 그러지 못하면 영원히 사라지는 거다.”

―통합당 비대위원장을 맡게 된다면 어떻게 변화시키고 싶나.

“선거가 끝난 다음 날부터 내 일상으로 돌아간다고 이야기한 사람이다. 솔직히 이야기해서 나는 뭘 하겠다는 뚜렷한 목적의식이 없다. 그런데 (통합당 내에서) 무슨 내 이름을 자꾸 거론하고 그런 상황 자체가 불쾌하다.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 통합당의 생리는 2012년에도 경험해봤다. 아마 꽤 오래 논쟁하다 결론도 안 나고 적당히 넘어갈 가능성도 있다. 그러면 통합당은 다음도 기약하기 힘들어진다.”

―여당 180석 시대가 열렸다.

“숫자가 많다고 좋은 것도 아니다. 180석 있으니 마음대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게 쉽지 않다. 내년이 되면 대선 국면으로 간다. 과거 노태우정부 때 보수대연합인 3당합당이 이뤄졌다. 그때 여당이 217석이었다. 그래도 여당이 특별히 뭘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거대 의석을 만들어낸 여당이 그 힘으로 무슨 일을 해야 한다고 보나.

“180석이 됐으니 나라가 좋은 방향으로 가도록 해야 한다. 우리 경제를 위해서 제일 중요한 게 노동관계법을 정비하는 일이다. 앞으로 진행될 경제구조 개편,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걸맞은 개혁을 하면 거대 여당의 탄생이 긍정적이라고 본다. 하지만 여당이 그런 일을 하기는 힘들 것이라고 본다. 민주노총, 한국노총이 반대할 텐데 여당이 그걸 하겠나.”

―대한민국이 살려면 ‘제왕적 대통령제’를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우리나라 권력은 절제를 안 한다. 여태까지 성공한 대통령이 없었다. 말년이 모두 비참하게 끝이 났다. 그럼 현재 대한민국 제도에 문제가 있는 것만큼은 틀림없지 않나.”

―어떤 권력구조로 가야 하나.

“내각제로 가는 수밖에 없다. 그런데 대통령하고 싶은 사람은 내각제를 죽어도 안 하려고 한다.”

―국민에게도 의식과 판단의 ‘창조적 파괴’, ‘각성의 대전환’이 필요하다고 했다.

“정치인뿐 아니라 국민도 각성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내 고향사람이라서 찍어주고 아니라서 안 찍어준다. 권력을 비판적으로 평가하지 않고 맹목적으로 추종한다. 그러면 나라가 발전을 못한다. 재난지원금 준다는 정당에 180석을 몰아줬다.”

―어떤 지도자가 필요한가.

“보수에서 젊은 사람이 나왔으면 좋겠다. 1970년 이후에 출생한 사람들 중에서 대권 후보가 나와야 한다. 지난해에도 프랑스의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 같은 젊은 지도자가 등장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런 지도자가 제3세력이 돼서 거대 양당을 좀 허물어뜨려야 한다고 했는데 젊은 지도자가 나오질 못한다. 꿈적대던 사람들도 기껏해야 거대 정당에 붙어서 국회의원하는 걸로 마무리돼버렸다.”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가 ‘마크롱 혁명’을 말하면서 나오지 않았나.

“그 사람은 이미 시험이 끝났다. 20대 총선에서 제3세력으로 38석이나 얻었는데 그걸 계속 발전시키지 못했다. 더 이상 이야기할 게 없다.”

정리=김예진 기자 yejin@segye.com, 대담=조남규 정치부장

김종인 대한발전전략연구원 이사장은… ●서울 출생(1940) ●중앙고·한국외국어대학교 ●독일 뮌스터대학교대학원 박사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 ●노태우정부 보건사회부 장관, 청와대 경제수석 ●제11·12·14·17·20대 국회의원 ●국민경제자문회의 자문위원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 ●새누리당 박근혜 대선경선캠프 공동선대위원장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 ●21대 총선 미래통합당 총괄선거대책위원장

보수 진보 강경파 소수다.

보수진 내에 ‘다 보수적somewhat conservative 유권자 대다수다. ‘온건·중 보수’ 있다. 온건·중도라고 쟁점에 온건하거 중도라 아니다. 쟁점마 다갔다하 사람들이다. 세력처 소신 뚜렷 전사 (戰士) 아니다. ‘다 보수적’ 유권자들 트럼프 띄웠다. 트럼프 크루즈 ‘다 보수적’이라 응답 권자로부 지지 받았다. 유권 지지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고 학력’ 대체 ‘블 칼라’ 지칭되 노동자층 겹친다.

칼라 민주 성향이었다. 그들 프랭클 루스벨 민주 정부 대공황 극복하 과정에 시행 ‘새로 New Deal 전폭적으 지지했다. 뉴딜 재정 풀어 공황으 무너 농민 노동자, 구제 조치다. 실업보 도입되 사회보 정책 도입됐다.

뉴딜 수혜자 노동자들 민주당 기반 ‘뉴 합’ 주력군 됐다. 노동자들 기업 탐욕 노동자 경제 이익 지키려 민주당 지지해 한다 루스벨트의 주장 공감했다. ‘백노동자층(이 책에서는 저소득, 저학 백인 통칭하 념으 사용했다) 정치성 변화 대선 가르 변수 작용했다.

트루먼 F. 케네디, 민주후보 승리 1944, 1960, 1964 대선에서 남부 민주당 아성이었. 남부 노동자들 ‘뉴 연합’ 있었다 방증이다. 그런 행정부 보호 민권 제정에 나서면 남부 노동자들 공화당으 바꿔타 된다. 남북전 남부연합 공격 공화당 백인들 적이나 없었다. 백인들 자신들 노예였 흑인 친구 되느 자신들 공격했 북부 공화 백인들 화해하 택한 셈이다. 1968 이후로 남부에 파란색 찾아보기가 됐다.(1976 대선 1992·1996 대선 예외다. 민주당 조지아 출신 카터 아칸소 출신 클린 후보 내세웠 때문이다.)

공화 리처 대통령 베트 전쟁 반대하 학생들의 시위사회혼란상 불안감 ‘조용 다수silent majority 움직였다. 대통령 정부 징병 조치 계기 대학에 사태 빚어지 “불량배들대학 엉망으로 만들 있다. 세계에 젊은이들 대학교에 책을 불태우 한편(베트남)에서 젊은이들 의무를 다하 있다” 말했다. 징병 유예 대학생들 시위 트남 자식들 노동자들 마음 움직였다. 대학생은 징집 연기됐 때문 베트 정글에 노동자층 청년들 파병됐다.

운동 선봉 힐러리 “닉슨 시위자에 ‘불량배’라 낙인 찍었지 그들 불량배 아니었다” 항변했다. 힐러 대학생들에 반감 품었 은이들 공화 지지층 토대 이루 된다. 진영 논객들 지금 민주당 ‘엘리트 정당’이 ‘리무 리버럴Limousine liberal 정당으 색칠하 배경 노동자층 공화당 붙잡 두려 의도 있다. 1972 선거에 대통령 백인 노동자들 포함 다수 미국인들 전폭적 지지 받았다.

레이건 공화 후보 나섰 1980, 1984 선거에서 주당 아성 동북부 서부까 빨간색(공화당 상징색)으로 물들었다. 레이 시대 전역 노동자들 민주당에 공화당으 전향했다. 이른바 ‘레이 민주당원Reagan Democrat이다. 레이건 카드 노동자들 유인했다. 이건 “재 흑자 났으 열심 국민들에 돌려줘야한다” 소신 잇따 조치 실행 보였다. 레이건에 선량 시민들 세금 좀먹 정책이었고, 차원에 정부 작을수 좋았다. 취임사에 “정부 우리 안고 있 문제 해결책 아니다. 정부 문제”라 역설했다. 당시만 수혜자 대부 흑인이었다. 중산층 일원이었 백인 노동자층 레이건 박수 쳤다.

주니 대통령 낙태 동성애, 문화 쟁점으로 백 노동자들 보수화시켰다. 2001 발생 9·11 테러 백인 노동자들 정부 애국주 아래 결집시켰다. 노동자층 민주당으 불러들 정치인 오바마다. 오바마 2008 대선에 25 이하 세금 아주 이상 고소득자 대해서 증세( 증세)하겠다 제시하 공화당 감세안 맞불 놨다. 노동자층 25 달러 고사하 5 달러짜 일자리 위협받 실정이었다. 오바마 “공화당 중산층 서민층 희생시 25 이상 부자 옹호하한다” 영리 시지 던지 세금 쟁점에 민주당 수비수에 공격수 전환시켰다.

더욱 2008 대선 금융위기 초래 주니 행정부의 실정(失政) 응징 선거였다. 1997 대선에 국민들 환위기 김영 정부 심판했 정서 비슷했다. 공화당은 대선 아니 동시 치러 상·하 선거에서 참패했다. 당시 민심 경기침체 고통받 국민 편에 정치 하라 것이었. 하지 워싱 정치 민생 챙기기보다 정쟁으 일관했다.

공화당 백악관·민주당과 과정에 시종일 부유 반대하 사회보 예산 삭감하 했다. 하지 노동자 층 포함 공화당원들 오바마 경기부 조치 사회보 정책 선호했다.

2014 ‘시카고카운실’ 실시 여론조 결과, 공화 지도부 50%사회보 삭감 찬성 공화당원 10% 삭감 찬성했다. 트럼프 공화당 지점에 차별된다. 트럼프 캠페 “사회보 예산 드리 말아 한다” 주장했다. 트럼프 개혁 FTA 대했 유권자들 () 이민, () 세계 정서 대변한 공약이었다. 공화당 골드워터 레이 시절 구닥다 맹신하 부질없 정쟁 벌이 사이 트럼프 밑바 화당원들 불만 대변하 지도자 자처하 것이다.

공화 유권자들 대체 이념적이 않다 사실 ‘트럼상’ 확인됐다. 저학력, 저소득 유권자일수 공화당 우파 신봉하 이념 고사하 정치에 관심 조사됐다. 공화당원들 민주 기조 정부 정책을 선호한다 결과 나왔다. 막판 불거 트럼프 담패 파문에 이들 영향받 않았다.(워싱턴포스트 보도 녹취록에 트럼프 (미녀들이) 스타 짓이하도허용한다”, XX(여성 성기) 움켜쥐 짓이 있다” 말했다.)

그렇다 공화우파그동민주당에 전향백인들 제대 대변하 못했다 된다. 오바 정부 8 권하면 오바 피로감 확산됐지 공화당 세력으 정받 못했다. 불만트럼프 흡수했다. 미국 불만, 정치권 문제라 비판 오바마, 민주당만 향하지는 않았다.

공화 우파 ‘작 정부’, ‘감세’, ‘사회보장(복지) 축소’라 도그마 결과, 미국인 밑바 정서와 동떨어 ‘이 정당’으 화석화됐다.

파고 트럼프 동물적 감각 소유자였다. 그는 이념 목매 이데올로그와 거리 멀다. 사업가 트럼프는 대중 불만 정확 그들 가려 시원하 긁어줬다. 전형적 ‘포퓰리스트populist 였다. 브루킹스연구 선임연구 위원 로버 케이 Robert Kagan 트럼프 ‘공화당 만들어낸 프랑켄슈타인Frankenstein이라 규정했다.

힐러리 노동자층 정서 완화시키 애썼으 않았다.

언론 노동자층 인터뷰 기사 살펴보면 힐러리 싫어하 몇가 흐름 감지됐다. 무엇보 대통령 개념거부감 보였다. 해법없다. 대통령 찮지 힐러리 여성이 찍어주겠다 부류 있었다. 이유 대체 공화당 포인트 비슷했다. ‘이메 스캔들’에 신뢰 월가 유착 잘해봐 ‘오바 짝퉁’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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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그대 반복되 않지만, 흐름 반복된다.History Doesnt Repeat Itself, But It Does Rhyme

2016 대선 소설 트웨인 예지력 증명해 선거였다.

예전에 트럼 공화 주자 있었다. 1964 공화 대선후 경선 나섰 골드워 상원의원이다.

공화 주류 동북부 기반으 중도 당원들이 었다. 이들 성향 록펠Nelson Rockefeller 지사 대선후보 밀었다. 미국 대부호 D. 록펠러의 손주다. 출신 인지도, 그리 탄탄 기반. 누구공화대선후보 록펠러라 생각했다. 공화당 1928허버 Herbert Hoover 1960 리처 닉슨까 후보 내세웠다. 록펠러 공화당 전통에 부합 적임자였다.

하지 예상 빗나갔다. 캘리포니아 경선 후보 골드워터 사실 결정됐다. 록펠러 정사 의혹 변수 작용하 했지 골드워터 밑바 동력 기존 정치권 백인들 불만이었다. 백인들 F. 케네 추진 흑인차 정책 탐탁 생각했다. 케네디가 암살 대통령직 승계 부통령 케네디 유산인 민권법 완성시켰다. 공화당 민권 과정에 민주 정부 협조했다.

그러 골드워터 백인들 불만 대변하 나섰다. 대선 후 경선 나서 직전, ‘민권법’ 상원 상정되 반대표 졌다. 상원의 100 반대표 의원 8명뿐이었다. 흑인 노예들 수세기 쟁취 흑인들 ‘권리장전’ 것이다. 골드워터 인종차별주의자 아니었다. 방정부 민권 집행 정부 권한 침해 있다 이유에 민권법 반대했다. 하지 결론 엎어치 메치나다. 골드워터 지지자들 흑인 어떻 백인 동등 대우 있느냐는 인식 있었다.

골드워터 1964 샌프란시스코에개최 공화 전당대회장 수락문 읽어내려갔다.

“자유 지키 ‘극단주의’ 아니라 상기시키고 싶다. 오히정의추구하 과정에 ‘온건주의’야말 미덕니다.

문구 로마 정치가 키케Cicero ‘카틸리 탄핵 연설’에 것이다. 키케로 공화정 전복 시도했던 카틸리나 탄핵하면 “자유 지키 극단 애국주의 결코 범죄 아니라 상기시키 싶다. 정의 추구하 있어 우유부단함 로마에 미덕 없다” 외쳤다. 골드워터 키케로 문구 “극단주의 아니다” 것이다.

하지 공화 중도파들 골드워터 연설 동의하 않았다. 당시까지 공화 주류 동북부 기반으 도파들이었다. 중도파들 골드워터 오른쪽 있다 각했다. 온건파들 골드워터 대선후보 인정하 않았다. 공화당 록펠러파 골드워터파 쪼개졌다. 본선 자중지란 것이다.

골드워터 후보 되고서 대선후보와 행보 보였다. 후보 지명 뒤에 중도층이 부동층인 ‘산토끼’ 전략 구사하는 골드워터 때나 마찬가지 지지층 ‘집토끼’ 바라보 선거운동 펼쳤다. 남북전 100 민주당 지지했 남부 사우Deep South (미시시피, 루이지애나, 조지아, 사우 캐롤라이나, 앨라배 ) 지역 1964 대선에 공화 지지 돌아 골드워터 민권 입장 고려하 않고 설명하 힘들다.

공화당 노예 폐지 다수 정파들 모여 창당 정당이다.

에이브러 링컨 창당 공화당 합류 공화 선출됐 공화당 대통령 당선됐다. 노예제 유지하려 남부 연방에 탈퇴하 링컨 공화 정부 전쟁도 불사했다. 그리 전쟁에 승리 노예제 폐지했다. 인들 투표권 인정하 흑인 권리 강화하 수정헌 통과시켰다. 그렇지 주에서 유무형 흑인차별 속됐다. KKK Ku Klux Klan 대표되 백인우월주 단체들 흑인 테러 일삼았다. KKK 2016 대선에 트럼 후보 찍겠다 선언했다. 트럼프 흑인 히스패 소수인종 향 해 독설 퍼부으면 백인우월주의자들 환호 이끌어냈다. 안보 무슬림 입국 봉쇄하 멕시코와의 국경 장벽 건설하겠다 했다.

다민 국가 사회 시행착 세워놓‘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 원칙 있다. 위키백과 ‘다민족 국가 등에서, 정치Political 관점에 차별·편견 없애 올바르Correct 의미에 사용되 용어’라 명하 있다. 트럼프 정치권 관행으 정착시 원칙을 마음 조롱했다.

골드워터 대선에 민주 대통령 맞붙었다.

대통령 44 주에 승리하 486 선거인단 확보했다. 골드워터 승리 6개주(선거인 52) 그쳤다. 43129484(61.1%) 27178188(38.5%). 선거인단은 486 52.

역사 기록적 참패였다.

골드워터 대선에 패배했지 공화 우파 주류 부상 이념적, 토대 마련했다.

공화당 중도파 우파1976 공화대선후 경선에 격돌했다. 중도파 주류였 우파 비주류였다.

대표 로널 레이건 주류 공화 대통 제럴 Gerald Ford 도전장 던졌다. 캘리포니 주지사 출신 레이건 1964 골드워 연설에 공산주의 발흥 정부’ 등장 경계하면 개인 자유 ‘작정부론’ 창했다. 골드워 사단 내세 주자였 것이다. 레이건은 1976 공화대선후 경선에 포드에 졌지1980년에 정권 창출하면 ‘신보수주 시대’ 개막시켰다.

분석가들 1964 대선 진영 이념 푯대를 제시 선거였다 평가한다. 남부에서 새로 바람 불기 시작했다.

전역에 수많 골드워 지지자들 골드워 선거운동원으 뛰었다. 1964 샌프란시스 전당대회장 골드워터 지지자들 새로 유형 공화당원들이었다. 무엇보 충성심이 남달랐다. 소신뚜렷비주류일수 응집력 강해지 법이다. 공화당원들 ‘공적(公敵) 1호’ 힐러리 당시 골드워 운동원이었다. 골드워 지지자들 공화 핵심으 성장, 당내 주도권 거머 공화 작업 주도하 된다.

경제학자 프리드Milton Friedman 케인스주의자였으 60 골드워터 의기투합 때쯤 () 케인스주의자 있었다. 케인스주의 정부 크기 키우 바람 시장 자유 침해됐다 비판했다. 프리드먼 골드워 후보 경제참 역할 했다. 프리드먼 대선 거치면 하이예크 대표 보수 자유주 경제학자로 입지 혔다. 레이건 1967 캘리포니아 주지시절프리드먼 슬림 작업 추진했다. 레이 대통령 1986대법원장 지명하 윌리 렌퀴스William Rehnquist 골드워터 사단 일원이었다.

뷰캐Pat Buchanan 표현 빌리 골드워터 선거운동 보수주의자들에 ‘첫사랑’과 같았다. *(주1)

골드워 사단 전사들 보수주의라 선명 기치 내걸 진영 싸움 시작했다. 그들 공화 모지 다름없 지역에 공화 조직 장악 나갔다.

영화배 출신 레이건 민주당원이었다.

1950 리처 공화 상원의 후보 반대하 선거 운동 했다. 레이건 뉴딜 신봉자였다. 민주당 정부론’에 경도됐 레이건 제너 일렉트릭(GE) TV프로그램 GE 극장 해설자 활동하 기간서서민간기 옹호론자 바뀌 된다. 전역 GE공장 방문하면서 종업원들 애기를 나눴다. 그 과정에서  경제 발전하 위해서 정부 개입보 기업 자율성 보장하 중요하다 됐다 술회했다. 보수화 레이건 1960 대선에서 리처 공화 지지했다. 민주 후보였 F. 케네디 아버지 레이건 찾아 케네 지지 요청했으 레이건 거절했다. 레이건 자신의 정치변신관련, “나 변했으 민주당 변한 것만변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자신민주당 아니주당자신떠났다 취지였다. 1962 공화당원으로 등록했다. 그리1964 대선에서 골드워 공화후보의 캘리포니아 선거대책위원장으 활동했다.

레이건 “케네디 백악관 들어 존슨은 세금으 해결한다 정부지 일변도 정책 추구하 있었 상황 바로잡 위해서 골드워 사람 절실 필요하다 생각하 있었다” 회고했다. *(주2)

가능성 않았 골드워 후보 운동 난관의 연속이었으 레이건 일생일대 기회 됐다.

1964 , 로스엔젤레 앰배서 호텔에 레이건의 골드워 연설 캘리포니 공화 후원자들 레이건 TV 지지연설 요청했다.

1964 1027 레이건 골드워 연설 NBC 전역 방송됐다. 제목 ‘선택 시간Time for Choosing 었다.

레이건 미국인 부담 과중하다 역설했다. 정부 경제개 정책으 경제 망가졌으 개인 시장 많은 자유 방식으 문제 해결해 한다 주장했다. 민주당 정부 정책 국민 근로의욕 감퇴시키 도덕 해이를 초래한다 했다. 국제이슈에서 미국 국제사회 여론 휘둘려서 안되 미국 국익 우선해 한다 ‘일방주의 논리 . 소련 대해서 강경하 대해 한다 목청 높였다. 연설 주제였 정부, 경쟁, 감세, 레이 행정부 기조 됐다. 레이건 연설 방송되 전역에 정치헌금 쏟아 들어왔다.

연설 계기 레이건 단숨 보수진영 기대주 떠올랐다. 진영 레이건 주목했 2 캘리포니아 주지 후보 밀었다. 레이건 민주 소속 주지사 에드 브라Edmund Brown 가볍게 이기고 공화 후보군 이름 올렸다. 골드워 연설 1980 레이 대통 탄생 발점 셈이다.

레이건 “나 당시에 모르 있었으나, 그때 연설 나의 일생 있어 중요 이정표 하나였고, 뜻하 이끌어가 뜻하 않았 인생 전기 가운 하나였다” 회고했다.

대목 오바 대통령 일리노이 상원의 시절인 2004 7 매사추세츠 보스톤에 개최 민주 전당대 기조 연설 전역 오바마라 이름 대선 함께 치러 상원의 선거에 승리하2008 승리 발판을 다졌 드라마 연상시킨다.

2004 민주 후보였 상원의원 4시카 기간 오바마에 인상 보스톤전당 기조연설자 오바마 지목했다. 2000 Al Gore 대선 후보 지명했 민주당 로스엔젤레 전당대 전당대 입장권 못했 오바마 4 기조연설자로 당당하 보스 전당대회장 섰다.

“진보 미국인 없고, 보수 미국인 없습니다. 미합중 뿐입니다. 흑인 백인 라티노, 아시미국 없습니다. 미합중 국민 뿐입니다. 냉소주 정치에 참여하겠습니까, 아니 희망 정치 참여하겠습니까.

그날 케 후보 전당대회 주인공 오바마였다.

레이건 보수주 이념 설파해 흥행 성공 오바마 ‘통합’ 외치 국민 마음 사로잡았다.

워싱턴특파 시절 2011 26 레이 100주년 날이었다. 전역 레이건 이름으 뒤덮였다.

이날 프로풋NFL 챔피 결정전슈퍼볼열리 날이어 뜻깊 됐다. 슈퍼볼 열리 텍사스 카우보이 스타디움에서 경기 시작되 대형스크린을 레이 대통령 탄생 축하하 메시지 방영됐다. 어느 평론가 표현대로, 레이 100주년 슈퍼볼 6‘기 선데이Gipper sunday 됐다.

1940 영화배 시절 레이건 실화 바탕 《누 라크니》 출연 있다. 영화에 레이건 25 폐렴으 비운 기퍼 나왔다. 노트르담대 풋볼 챔피 결정전 병상 기퍼 라크 감독에게 “아무래 같다. 동료들에 기퍼 이겨 달라 달라” 유언처 말한다. 라크니 선수들에 “기 승리하자” 독려했 승리했다.

선수 뛰었 레이건 기퍼 자신과 동일시했다. 기퍼레이건 부르 이름됐고, 레이건 별칭 좋아했다. 레이건 1984 대통 재선 “기퍼 승리하자Win one for the Gipper 호소했다. 국민 ‘기퍼’ 던졌다. 레이건 선거인단 538 525 석권하 압도 고지 올랐다. 국인들 지금 레이건을 주저없 링컨이 루스벨 ‘위대 통령’ 반열 올려놓는다.

미국인들 레이 특유 낙관주의 매료됐다. 레이건 어린 시절 불우했다. 판매원 아들 태어 성인 때까지 셋방 전전했다. 아버지 실직으 이사 때마 작아졌다. 알코 중독자 아버지 살았다. 레이건 그런 가난 없었다 한다. 레이건 달랐다. 가난 개면 사라 먹구름으 봤다. 《대통령 어머니들 First Mothers 저자 앤젤로 (레이건 어머니인) 시련이 지나 가 폭풍우 불과하 먹구름 것이라 믿었다. 어머니 비현실적이기조 낙관주의 아들 레이건 받아들였다” 썼다.*(주3) 대통레이건 낙관주의는 베트 전쟁 상흔 침체 실의 빠졌 미국인들에 부심 있다 정신can-do spirit 불러일으켰다.

레이건 공화당원으전향 확고 보수주의자살았으나 당파성 매몰되지 않았다.

대통 시절에 민주 소속 토머 Thomas O’Neill 하원의장 손잡 사회보 개혁 선거공영 확립 힘썼다. 민주당 2011 레이건 행보 거론하면 정부 건강보 개혁 선거 개혁 반대하 공화당 격했다. 소비에트 ‘악 제국’으 몰아붙이 행정부의 데탕트(긴장완화) 정책폐기그였으 온건파 미하고르바초프 소련 리더 부상하 시니 부통령 소련으 급파, 미· 정상회담 가동시켰다.

레이 재임기간 냉전 종식됐다. 수많 세계인들 자유의 세례 받았다. 역사 물줄기 혼자만 힘으 바뀌 않았다. 결함 지도자였다. 현안무지했다 자질론 거론되고, 시절 양극 심화 재정적 대상 있다. 고르바초프 등장 없었다 냉전 다른 양상으 전개됐을지 모른다. 저격 당하고 살아 레이건에게 성공 대통령이라 평가 나온다. 냉소적 사들 레이건 “아 적었지 많았 대통령”으 폄하하기 한다. 하지 난관 속에서 희망 잃지 않았 ‘긍정 힘’ 위대 유산이었다. 낙관주반대 세력까 전염시켰다. 이로 보수진영 미국을 자유세계 영웅 됐다.

골드워터 레이건 관계 그다 돈독하 않았으 레이건은 부분에 골드워터 신념 공유했다.

레이건 1964 골드워 연설에 공산주의 발흥 ‘큰 정부’ 등장 경계하면 개인 자유 ‘작 정부론’ 주창했. 그러면 “우리 (진보) 오른쪽(보수)이냐 선택하기 보다 아래냐 선택해 한다, 개인 자유 양시키 쪽으 올라 것이냐, 전체주의 나락으 추락 것이 선택해 한다” 목청 높였다.

레이 정부 특징짓 기조 캘리포니 주지 시절 완성됐다. 레이건 1967 1 주지 연설 재정적자 줄이 감축 공무 등을 선언했다. 재정 세금환 형태 납세자 려줬다. 부분에 ‘생산 복지 개념 도입, 신체 건강 수혜자들 일터 보냈다. 정부’ 반대 이유도 처리과정에 낭비된다 때문이다.

1980 민주 카터와 TV토론에 레이건 “사 형편 4 전보 나아졌으 후보에 투표하라” 말했다. 유권자들 레이건 선택했다.

레이건 시니 부시 중도파였다. 집권기에는 공화 내에 깅리 하원의원 ‘우 반란’ 주도했다. 리치 1994 중간선거에 ‘깅리 혁명’ 성공 하원의장으 등극, 한동 공화 우파 전성기 구가했다.

“우파 치우 공화당 중도 한다”( Colin Powell 국무장관)

“콜 파월 차라 민주당으 전향하라( 림보 Rush Limbaugh)

공화당 2008 극심 갈등 겪었다. 국무장관 비롯 온건파들 공화당 노선이 지나치 우경화했다 비판했다. 하지 깅리치 대표하 강경파들 “지금 보수 원칙 나가면 내실 때”라고 반박했다.

투쟁 오바 스펙Arlen Specter 상원의원(펜실베이니아) 민주당으 당적 바꾸면 논란으 비화했다.

스펙의원1980 레이공화대선후보 인기힘입어 상원의원 당선 28 공화당 몸담았다. 범죄 국가 분야에 보수 성향이 낙태 환경, 분야에 진보적 견해 중도파 분류됐다.

스펙 의원 2008대선 거치면 펜실베이니 공화당이 보수적으 중도파 잃었다”면 성향공화당보다 민주당 가깝됐다” 탈당변을 밝혔다. “당 변경고통스러 결정이었지 오른쪽으 이동 공화당과 됐다”고 했다. 스펙 결정 백악관 민주당 “취 100 오바 정부에 최고 선물”이라면 반색했다. 오바 대통령 브리핑 스펙 메모 전달받자마 스펙 의원에 전화 “너 감격스럽다. 당신 최대 돕겠다” 말했다.

스펙 의원 변경으 민주당 의석수 59석으로 늘어 공화당 필리버스터 구애받 법안 처리 의석수 ‘슈 60석’ 다가섰다.

공화온건파들 “당 보수적이어 스펙 공화당원들 돌리 있다” 주장했다. 강경파들은 “차제 전열 재정비해 한다” 맞섰다. 장관이 “림보 대표하 공화당 우리 원했 정당 아니다” 말하자 림보 “파월 오바 후보 지지 어엿 민주당원”이라고 반격했다. 파월 2008 대선에 흑인 오바마 지지했다. 2016 대선에서 힐러 지지 선언했다.

공화당 내홍 지지자들 정체 혼란 연결 었다.

워싱턴포스트 ABC방송 2008 4 실시 여론조 결과에 따르면, 공화당원이라 응답자 21% 불과했다. 1983 이래 최저치였다. 조사에 자신 보수주의자라 응답자 35% 공화당 보수성 국민들로부터 외면당하 보여줬다.

뉴욕타임스-CBS 여론조사에서 자신 민주당원으 응답자 88% 민주당 지지 반면, 공화당원이라 응답자들 62%공화당 지지했다. 포브스지 “당 하나 결집시킬 카리스마 지도자 없다 공화 내분 원인”이라분석했다. 오바 초에 공화당 원내대표 매사추세 주지사, 나섰으 파티 대표되 대중운동 공화당 휩쓸 하나둘 사라져갔다.

2016 대선에서 트럼프 반란 이끌었다. ‘트럼 반란’은 경험 ‘아웃사이더’ 주역이 점에 골드워터 레이 건, 깅리치 주도 비주 반란보 혁명적이었다. 트럼 프 중도파 아니 우파 아니다. 공화 주류 아니라 정치 전체 대상으 상정했다. 공화 우파들 골드 워터 레이건, 깅리 반란 꾸준 몸집 키워왔다. 공화 갈수 우경화했다 의미다. 공화당 우파 장악하고 있다. 라이 하원의장 공화 우파 대표하 정치인이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폴 라이언 하원의장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오바마백악관 홈페이지. Photo by Pete Souza

 라이언 직전에 하원의장이었던 존 베이너는 협상 과정에서 오바마 행정부에 양보했다는 이유로 공화당 우파에 의해 축출당했다. 미국 의회 권력을 장악한 공화당 우파는 백악관까지 탈환하겠다는 각오로 대선에 임했다. 백악관 탈환을 위한 실행 계획 중 하나가 루비오, 크루즈를 각각 공화당 대선 후보와 부통령 러닝메이트로 내세우는 것이었다. 하지만 트럼프의 등장으로 이런 구상은 물거품이 됐다. 루비오는 경선 초반에 전사했고 크루즈도 2위에 그쳤다. '트럼프 반란'은 성공했다. '아웃사이더' 트럼프는 162년 전통의 공화당을 접수했다. 링컨과 레이건의 공화당은 어쩌다 아웃다이더 반란군에 점령하다는 신세가 됐을까.

워싱턴포스트 댄 Dan Balz 정치선임기자 지적했듯 ‘공화당 자업자득’이 평가 적절 같다. 우경화 치달았 공화당 2016대선에 트럼프 ‘나홀 유세’ 미국인 분노 결집시키 백악관 탈환하 모습 멀뚱 지켜 수밖 없었다. 2016 대선 공화당 승리 아니 트럼프 승리였다.

*(주1) 더 라이트 네이션, 존 미클레스웨이트, 아드리안 울드리지(박진 옮김, 2005), 물푸레, p83.

*(주2) 레이건 회고록, 로널드 레이건(고명식 옮김, 1991), 문학사상사, p73-90.

*(주3) 대통령을 키운 어머니들, 보니 앤젤로(이미선 옮김, 2001), 나무와숲, p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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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웃사이더 트럼프 공화 경선에 적자(嫡子) 후보들을 잇따 격파했다.

공화 지지자들 공화 노선이 따위 무시 하고 거침없 쏟아내 트럼프 열광했다.

트럼프 밀어올 지지층 중장년 백인들이었다. 그중에서 경기침체 힘들어 백인들 트럼 열풍 도했다. 트럼프 이들 체류자들 추방하 멕시 코와 국경 장벽 세우겠다 화끈 공약 제시하 가사리처 몸집 키웠다.

대통령 민주 오바 행정부의 의료보험, 이민개 조치 무효화하겠다 약속하 오바마 8 만들어 두터 비토층 스펀지 빨아들이듯 흡수했다.

미국주인자처해 백인들 위기감 트럼열풍부채질했다.

백인 출생 감소 2023년이 18 연령층에 소수인종으 전락 위기 있었다. 18 연령층에서는 히스패닉 주에 다수인 그룹으 부상하 있었다.

2016 공화 경선 참여 유권자 3300 명으 2012경선보 1400 가량 많았다. 트럼프 투표장으로 끌어 사람들이었다.

투표율 2004 67.2% 기록 추세였다.

2012 대선에 64.1% 그쳤다. 2004 비교해 1000만 명 정도 투표장 외면했다. 투표장 흑인 히스패유권자 400 가량 늘었다. 투표율 200460.0% 201266.2%, 히스패 투표율 200444.2% 2012 47.3% 상승했다. 공화당 백인 투표 , 소수인종 투표 상승 오바 대통령 2012 캠페 승리 이끌었다 봤다.

2008 대통령 탄생 이후 백인층 오바 정서 편승했 공화당 오바 이후 오바 정부 이민개 조치 동조 해마 유권자 어나 소수인종 끌어안 않고서 승리 요원하다 것이었다. 하지 트럼프 소수인종 버리 백인 어안 역발상 캠페인 펼쳤다.

단기필마 공화 경선 뛰어 트럼프 전략 통했다.

공화 1인자 라이Paul Ryan 하원의장마 트럼 앞에 무릎 꿇었다.

라이 의장 트럼프 지명 확정지 이후에 트럼프 공약들 공화 강령 배치된다면 입장 유보했다. 트럼프 생각 아니었지 라이언 “여전 사이에 이견 존재하지 이견보다 공통점 다”면 트럼프에 투표하겠다 밝혔다. 이로 라이언 트럼프  됐지 힐러리 미워한다 제외하 사 람 사이 공통점 없었다. 지점에 반대 목소리 냈다.

대표적 분야 이민개혁이었다.

이민개혁 오바 행정부 전유물 인식되 있지 앞서 추진했 대통령 공화 주니 행정부였다. ‘돌아 대통령 거듭 기독교인 ‘다문화주의’ 신의 섭리 받아들였다. 백인만 세상 만들려했 공화 우파와는 사 달랐다. 부시 정책 증가세 히스패 따진 정치 선택이기 했다. 친동생 부시 부인 히스패닉이 가정사 영향 미쳤 있다. 2007 부시 민주당 초당 이민개 법안 마련했으 공화 반발 밀려 실패하 말았다.

2008 대선에 히스패 표심압도적으 오바후보 쪽으 쏠리 목격 공화당 서서 이민개혁 수용 쪽으 이동 갔다. 그런 2010 중간선거에 () 이민 성향 의원들 공화 예비경선에 후보 되고 당선되면 기류 변했다. 급기야 오바 대통 불법체류 이민개혁 동조하 공화 의원들 신자 몰리 사태로까 발전했다. 라이언 오바마 이민개혁 동조했다. 대통령 1000 체류자 몽땅 추방하겠다 트럼프와 지향점 정치인이었다.

라이언 2016 트럼프와 일정 거리 유지 하다 막판 트럼프 승리 보이 트럼 의사 표명했다. 공화 내부에 트럼 대타 거론됐 라이언 2020 대선 노리 있다. *(주)

노인이 저소득층 연방정부 차원에 주어진다. 메디케어 메디케이드다. 고령 사회, 양극 심화하면 분야 들어가 예산 눈덩이처 커지 . 의무지 예산이어 연례행사처 이뤄지 백악관 의회 연방정 공방 소재 된다. 공화당 디케 나이 수령자 부담 높이 쪽으 메디케 스템 개혁하자 주장한다. 메디케이 예산 대상자와 대상 축소하 방식으 나가자 공화당 입장이다. 주장 논리 근거 마련 사람 라이언이 다. 전문가 예산위원 ‘미국 미래 위한 로드맵A Roadmap for Americas Future 연방예산 21 중반 균형예산으 만들겠다 발표했다. 하나가 메디케어, 메디케이 개혁이었다. 메디케어, 메디케이드 없이 문제 통제 없다”면 “의료보험 이슈라기보다 경제 이슈”라 주장했다.

하지 트럼프 노인 공경해 한다면 메디케어 말자 했다. 메이케이드 사회보장연금 마찬가지였다.

대외정책 놓고 공화당 전통적 ‘개입주의Interventionism 지지하 라이언 ‘미 우선주의America First 외치 국익 우선시하 트럼프는 혈액형이 달랐다. 자유무역 놓고 사람 이견 보였. 오바 시절 공화당 오바마 법안 비토하면서 흔쾌 찬성 표 한· 자유무역협정(FTA) 비롯 FTA 준안이었다. 그런 트럼프 FTA 목소리 높였다. 트럼프 공화당까 워싱 정치 일원으 몰아붙이 패대기쳤다. 정치 혐오세력 트럼 지지자 돌아섰다. 경선에서 화끈 후보 지지층 선택 쉽다.

공화 주류 트럼프로 대선에 민주 후보 없다 생각했다. 2008, 2012 대선 공화 후보였 매케인, 롬니까 트럼반대선언했다. 하지트럼프 화당까 공격하면 워싱 정치 신물 미국인 지지 끌어냈다.

*(주) 폴 라이언 하원의장은 2018년 4월 "2018년 11월 중간선거에 불출마하고 임기가 끝나는 내년 1월 은퇴하겠다"고 정계은퇴를 선언했다. 라이언 의장은 은퇴한 뒤 남편과 아버지로서 가정에 충실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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