成 장관 “먼저 진출한 日·中 이길 수 있도록 ‘정교한 전략’ 추진” [아세안을 기회의 땅으로]

성윤모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왼쪽), 안덕근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미·중 무역분쟁과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일본의 대(對)한국 수출규제 등으로 통상환경의 불확실성이 높은 상황에서 기존 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 중심 외교에 머물지 않고 아세안(동남아국가연합) 지역과의 외교와 교역관계를 도약시키는 것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일입니다.”

성윤모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세계일보가 20일 개최하는 ‘2019 세계아세안포럼’ 관련 특별 대담에서 “자금이나 인력 등 가용 자원이 경쟁국에 비해 제한되어 있지만 우리보다 앞서 아세안에 진출한 일본, 중국과의 경쟁에서 이길 수 있도록 정교한 전략을 수립, 추진해나가겠다”고 말했다. 성 장관과 안덕근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의 특별 대담은 지난 18일 서울 종로구 세종로 정부서울청사 외빈접견실에서 조남규 세계일보 산업부장의 사회로 진행됐다.

성윤모 산업통상자원부 장관(가운데)과 안덕근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왼쪽)가 지난 18일 서울 종로구 세종로 정부서울청사 외빈접견실에서 한·아세안 경제협력 방안 등을 주제로 대담하고 있다. 남정탁 기자


―아세안 국가들에는 중국과 일본이 오랜 시간 공을 들여왔다. 일본은 1970년대에 아세안 프로젝트를 가동했고 90년대에는 일·아세안 특별 정상회의를 개최했다. 중국도 90년대부터 화교 등을 지렛대로 아세안에 진출했다. 아세안 진출 후발주자인 한국의 전략은 무엇인가.

(성 장관) “아세안이 일본의 텃밭으로 여겨지고 있지만 베트남에서는 현대기아차가 일본 도요타와 대등하게 경쟁하고 있다. 삼성전자 베트남 공장에는 10만명이 넘는 베트남 청년 노동자들이 일하고 있다. 아세안을 비롯한 신남방 지역은 중동 지역을 제치고 우리 기업이 해외 인프라 사업을 가장 많이 수주한 지역이 됐다. 우리 금융기관이 가장 많이 진출한 지역이기도 한다. 최근에는 말레이시아 신재생에너지 융복합 실증사업, 베트남 티바이 LNG 터미널 사업 같은 핵심 인프라를 따내는 성과가 나오고 있다. 더욱이 아세안 국민들은 한국을 일본이나 중국보다 더 가깝게 느낀다. 베트남 청년 70%는 한국 문화에 동질감을 느낀다는 여론조사 결과도 있다. 아세안 국가 입장에서는 중국이나 일본이 진출한 이후 20, 30년 동안 자기들이 크게 나아진 게 없다는 인식도 하고 있다. 그런 만큼 우리의 강점과 상대국의 특성을 세밀히 분석하고 정교한 전략을 수립해나가면 아세안은 우리의 핵심 파트너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 아세안 국가에 일방적으로 ODA(공적개발원조)를 주면서 끌고가는 것이 아니라 개발 프로젝트 등에 참여해 함께 발전해나가야 한다.”

(안 교수) “이미 일본, 중국의 기업들은 대규모 투자를 통해 상당수 아세안 국가들의 국내 제도까지 자국 기업들에 유리한 방식으로 구축해둔 상황이다. 현재 아세안 국가에서 유행하는 한류(韓流)는 한국 기업들과 제품에 대한 좋은 이미지를 구축하고 있는데, 민관 차원의 노력으로 이를 활용하는 게 중요하다. 정부 차원의 개발협력사업과 민간 차원의 사회적 책임활동 강화로 아세안 국가들을 이용하는 게 아니라 함께 발전하겠다는 인식을 가져야 한다.” 성윤모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오른쪽)과 안덕근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가 지난 18일 서울 종로구 세종로 정부서울청사 외빈접견실에서 한·아세안 경제협력 방안 등을 주제로 대담하고 있다. 남정탁 기자

―최근 전 세계 인구 4위 국가인 인도네시아와 CEPA(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 협상이 타결됐다. 사실상 한·인도네시아 FTA(자유무역협정) 타결이다. 이제 말레이시아, 필리핀과의 FTA가 남아 있다. 기존 한·아세안 FTA와 아세안 국가들의 양자 FTA는 어떻게 차별되나.



(성 장관) “2007년 발효된 한·아세안 FTA는 참여 국가들의 민감한 부분이 서로 달라서 우리의 이익을 모두 반영하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한·베트남 FTA(2015년 발효) 같은 양자 FTA를 통해 서로의 관심 사항을 추가로 반영하고 양국 간 교역과 협력을 확대시켜왔다. 인도네시아는 한·아세안 FTA에서 자국 시장의 80%를 우리에게 열었고 이번 CEPA에서는 자동차와 자동차 부품, 철강, 석유화학제품 등 우리의 주력 수출품목 시장도 개방했다. 시장 개방 비율이 93%까지 높아졌다.”



(안 교수) “아세안 국가와의 FTA는 시장개방뿐 아니라 무역 및 투자 관련 규제 조화를 심화시키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그래야 실질적인 경제 통합을 진전시킬 수 있다. 예를 들어 공산품, 가공식품 부문의 관세 인하뿐 아니라 기술표준과 위생기준 상호인증을 활성화해 비관세 장벽을 실효성 있게 제거해야 한다.”

―글로벌 통상 환경이 상당히 복잡하게 흐르고 있다. G2(미국·중국)의 무역 분쟁이 지속되는 가운데 지난해 12월에는 미국이 빠진 채로 CPTPP(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가 발효됐다. 이달 초에는 아세안 10개국과 한국, 중국, 호주, 뉴질랜드, 일본 등이 RCEP(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 협정문 타결을 선언했다.

(성 장관) “RCEP는 세계인구 절반, 전 세계 GDP의 3분의 1을 차지하는 세계 최대의 FTA이며, 우리가 참여하는 최초의 메가 FTA다. 젊고 성장 잠재력이 풍부한 국가들이 다수 참여하고 있는 만큼 새로운 기회 창출과 G2를 넘어선 교역 다변화가 기대된다. RCEP는 신남방정책을 더욱 본격화해 역내 교류·협력이 활성화되는 계기가 될 것이다. 투자 여건이 개선되고, 원산지 기준을 통일해 역내 무역·투자가 확대되는 등 신남방 국가와의 경제 협력 전반이 활성화될 것이다. 이번에 도입된 전자상거래 같은 새로운 통상 규범을 통해 한류를 더욱 확산하는 계기도 되고, 4차 산업혁명 분야의 협력도 기대된다.”

(안 교수) “RCEP는 미국이 포함되지 않은 상황에서 중국이 포함된 메가 FTA다. 현 시점의 미·중 대치 국면에서 의미가 크다. 무엇보다도 한·일, 한·중·일이 하나의 경제통합 틀 속에 묶인 부분이 주목할 점이다. 최종적인 협상 결과를 봐야겠지만 향후 이를 어떻게 발전시킬지 여부에 따라 동아시아 경제통합에 매우 중요한 계기가 될 수 있다.”

―2000년대 초반 일본 주도로 한·중·일과 아세안 국가가 참여하는 EAC(동아시아공동체)가 추진됐지만 성사되지 않았다. EU(유럽연합)가 모델이었는데 그때도 미국이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참여하지 않았다. 지금도 미국은 인도·태평양 전략을 펴며 중국의 세력 확산을 견제하고 있다. 중국과 일본이 참여하는 동아시아 경제공동체가 가능하기는 한가. 미국과 밀월관계인 일본이 중국 주도의 RCEP에 참여한 배경이 궁금하다.

(성 장관) “EU 같은 경제통합 형태는 매우 이상적이지만 아시아 지역에서 그런 모델이 실제 작동하기는 쉽지 않다. 경제통합협력체를 만든다기보다는 역내에 새로운 협력의 유형과 공동체 유형을 만들어가는 게 중요하다. 과거처럼 선진국의 제조업이 후진국으로 이전되는 산업발전 전략은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중국과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중국은 과거 세계의 생산 기지에서 세계의 시장으로 변해가고 있다. 제조도 단순 제품 생산만이 아니라 고부가가치 상품이 생산되는 나라가 됐다. 중국의 변화를 직시하면서 중국과의 협력 형태와 유형을 변화시켜 나가야 한다.”

(안 교수) “일본 아베 정부는 TPP(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 타결 이후부터 매우 적극적으로 미국과 경제협력에 나서고 있다. 미·일 무역협정 타결은 물론이고 WTO(세계무역기구)를 개편하려는 미국 정부의 입장을 적극 지지하면서 유럽연합과 함께 개편안 준비작업을 추진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이번 RCEP 합의는 중국을 견제하려는 미국의 입장과는 다소 배치되는 측면이 있다. 좀 의아한 부분이다. 아베 정부가 TPP 타결 시 대외개방정책을 전방위적으로 추진했다는 점에서 실마리를 찾아야 할 것 같다.”

―RCEP 협정문 타결이 일본의 한국에 대한 수출규제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나.

(성 장관) “RCEP에서도 WTO와 마찬가지로 자유로운 상품 교역을 위해 수량제한조치를 일반적으로 금지하고 있다. 이런 차원에서 봤을 때 참여국들이 RCEP의 틀 내에서 자의적이고 일방적인 수출규제 조치 등을 공동으로 논의해 나갈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안 교수)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는 한·일 청구권협정 문제와 얽혀 있고 이 사안에 대한 아베 정부의 입장이 확고하다. 단기적으로는 RCEP 합의가 일본 정부의 입장을 변화시킬 것으로 예상되지 않는다.”

―아세안과의 경제협력을 성공시키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안 교수) “FTA 확대로 아세안과의 무역, 투자는 지속적으로 확대될 전망이다. 무역흑자도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런데 이런 상황은 아직 경제개발 수준이 낮은 아세안 국가 입장에서는 큰 부담이다. 그런 만큼 비경제 분야에서 한국의 이미지와 인식을 제고할 수 있는 경제개발 관련 협력이나 문화협력사업을 지속적으로 확대해나가야 한다. 통상교섭의 성과를 보다 폭넓은 경제외교의 발판으로 만드는 작업이 추진됐으면 한다.”

정리=김수미 기자 leolo@segye.com, 사회=조남규 산업부장

 

성윤모 산업부 장관은… ●1963년 대전, 대전 대성고, 서울대 경제학과, 서울대 행정대학원 정책학 석사, 미국 미주리대 경제학 박사, 행시 32회, 국무조정실 경제조정실장, 특허청장

안덕근 서울대 교수는… ●1968년 대구, 대구 덕원고, 서울대 국제경제학과, 미국 미시간대 경제학 박사·법무박사, 국민경제자문회의 자문위원, 무역구제학회 회장

 

 

최근 노모가 시내 병원을 다녀오다 낙상했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크게 놀랐다. 구순을 바라보는 노모에게 몇 십리 떨어진 병원을 오가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혈압약 정도는 집에서 의사로부터 원격진단을 받은 뒤 배송받으면 좋으련만 현행법상 이런 원격의료 행위는 위법이다.

그동안 정부가 손을 놓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고령층이 많고 의료환경이 열악한 지역을 중심으로 원격의료 시범사업을 추진해 왔다. 거동이 불편한 환자가 인근 보건진료소를 찾아 혈압이나 혈당을 측정한 뒤 그곳에 비치된 원격의료시스템을 통해 의사가 있는 보건소로 전송하는 방식이다. 보건소 의사나 간호사는 관내 보건소 전문의와 협진을 통해 해당 보건소를 찾은 환자에게 보다 질 높은 의료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 그마저 여의치 않은 환자라면 가정에서 직접 혈압 등을 측정해서 스마트폰 앱으로 보건소 의사에게 전송한 뒤 서비스를 받는다. 원격 처방전이 있으니 보건소에 비치된 약도 바로 받을 수 있다. 바로 필자의 노모가 간절히 원하는 의료서비스다. 필자의 노모뿐일까.

보건복지부가 2016년 전남 완도군, 장성군, 옹진군 주민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이 같은 원격의료는 참여 주민의 83%가 만족해한 것으로 조사됐다. 88.9%는 건강관리에 도움이 됐다고 답변했다. 그 전해 실시한 원격의료 시범사업 평가에서는 참여 주민의 만족도가 10점 만점에 8.3점으로 집계됐다. 원격의료 관련 합병증 발생, 이상반응은 없었다. 이런데도 원격의료는 먼 나라 얘기다. 박근혜정부의 정책이라서 폐기된 것도 아니다. ‘스마트진료’로 이름이 바뀌긴 했지만 문재인정부에서도 원격진료는 주요 정책 과제다.

올 들어서는 중소벤처기업부가 원격진료를 ‘규제개혁’ 목록에 포함시키면서 새로운 국면이 열렸다. 중기부는 강원도를 디지털 헬스케어 규제자유특구로 지정하면서 원격의료 시범사업을 시작했다. 박근혜정부 당시 이미 합격판정을 받은 바로 그 원격의료다. 보건복지부도 도서벽지나 원양선박, 교도소, 군부대 같은 의료 취약지에 한해 원격의료를 허용하는 내용의 의료법 개정을 2019년 주요 업무계획에 포함시키며 발을 맞추고 있다. 그렇지만 이번에도 결과는 낙관하기 힘든 상황이다. 강원도 시범사업은 참여 의원이 거의 없어 사업이 유명무실해졌다. 의사단체의 조직적 반발 탓이다.

의사단체는 원격의료를 ‘핸드폰진료’로 폄하하면서 오진 가능성, 과잉 진료, 대형병원 쏠림현상 등을 반대 이유로 들고 있다. 그런 우려가 나올 수 있지만 원격의료를 반대하는 논리로는 궁색하다. 전국의 수재들만 모인다는 한국 의료계다. 우리나라는 통신속도와 반응속도가 월등히 향상된 5세대 이동통신(5G)을 세계 최초로 상용화한 나라다. 이만한 인재와 기술을 갖추고도 원격의료의 리스크를 최소화할 수 있는 서비스를 개발하지 못한다는 게 말이 되나. 미국이나 일본은 의료 후진국이라서 원격의료를 허용한 게 아니다. 우리보다 앞서 고령사회로 진입한 일본은 병원 중심에서 자택 진료 등 지역사회 중심으로 의료체계를 전환시켰다. 우리도 이제는 의사와 간호사, 사회복지사, 요양보호사가 팀을 이뤄서 종합적인 의료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 농·어촌이나 격오지 같은 의료 취약지에서 이런 서비스가 가능하려면 원격의료가 허용돼야 한다.

정보통신기술이 발달하면서 민간 보험회사와 헬스케어 업체들도 국민의 건강을 관리하는 주체로 새롭게 등장했다. 해외에서는 환자의 건강상태를 체크해서 의사에게 전달하는 웨어러블 기기들이 속속 출시되고 있다. 보험사들은 이런 기기들을 활용해서 고객들에게 다양한 헬스케어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헬스케어 시장이 날로 커지는 추세이지만 아직은 ‘의료행위의 주체는 의료인’이라는 의료법 규정에 막혀 한정적인 서비스에 머물고 있다. 각종 규제가 의료서비스의 질은 높이지 못한 채 관련 산업의 혁신만 옥죄고 있는 꼴이다.

지금의 의료계를 바라보면 독점으로 이권을 챙겨온 중세 유럽의 동업자조합(길드)이 떠오른다. 진입 장벽을 높이 쌓아놓고 기득권을 굳게 지키던 길드는 근대가 열리면서 무너졌다. 길드로 대표되던 독점체제가 포용적 제도로 바뀐 이후에야 산업혁명이 가능해졌다.

조남규 산업부장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대한(對韓) 수출규제 행보를 보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겹쳐 보인다. 기존의 국제 규범이나 관행을 무시하는 ‘자국 우선주의’, 국내 유권자를 의식하는 포퓰리즘 행태가 그렇다. 이런 행태는 국내 선거를 앞두고 도드라지는데, 그 첫 번째 수순이 외부의 적을 만들어내는 일이다. 트럼프는 2016년 대선 후보 시절부터 줄기차게 중국을 때리고 있다. 미국 제조업 일자리가 사라진 것은 ‘세계화’ ‘국제 분업’의 불가피한 산물이었는데, 트럼프는 그 책임을 대미 무역흑자국에 돌리면서 무역장벽을 높이고 있다. 미국이 과연 자유무역을 선도해온 나라인지 의심스러울 정도가 됐다. 일찍이 데이비드 리카도는 자유무역이 교역 상대국의 경제 발전 정도에 관계없이 두 나라 모두를 이롭게한다는 ‘비교우위론’을 주장했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국가 간 무역전쟁은 끊이지 않는다. 무역전쟁이라고 하지만 한 꺼풀 걷어내고 보면 경제를 수단으로 한 정치전쟁, 외교전쟁이다. 정치인들은 국내 경기가 위축되거나 하면 전가의 보도처럼 무역규제 공약을 내세우며 유권자를 회유하곤한다. 트럼프 정부가 시작한 미·중 무역전쟁도 양국 사이의 무역 불균형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지 않다. 맞수로 떠오른 중국을 견제하려는 미국의 세계 전략이 녹아있다.

아베 정부의 수출규제 조치도 트럼프의 행보와 다르지 않다. 수출규제 이면에는 보수 지지층을 결집하고 중도층을 회유하겠다는 속내가 엿보인다. 얼마 전 치러진 참의원 선거에서 승리했으니 아베로선 밑지지 않은 장사를 한 셈이다. 선거 이후에도 규제 고삐를 늦추지 않고 있는 아베는 더 먼 곳을 바라보고 있다는 의구심이 든다. 한국의 선진국 도약을 최대한 지연시키겠다는 의도가 아닌가 싶다. 그러지 않고서야 자유무역에 올라 탄 덕분에 선진국 반열에 오른 일본이 국제분업 체제를 흔들어대는 무리수를 두지는 않았을 것이다. 지금은 한국 경제가 갈림길에 서있는 비상한 시기다. 우리나라를 국내총생산(GDP) 12위(2018년) 국가로 밀어올린 성장 로켓의 1단 엔진은 추력(推力)이 떨어져가고 있다. 한 단계 더 도약하는 데 필요한 2단 엔진은 아직 점화되지 않고 있다. 삼성전자의 2030년 시스템 반도체 글로벌 1위 비전, SK하이닉스의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조성, 현대자동차의 수소전기차 프로젝트 등은 이를 위한 시도들이다. 아베 정부가 한국에 공급하지 않겠다는 핵심 소재(素材)는 바로 이런 프로젝트를 지연시키거나 무산시킬 수 있는 것들이다. 아베의 칼이 우리 산업의 아킬레스건을 겨누고 있는 형국이다.

불편한 진실은 단기간에 대체하기 힘든 일본의 소재 경쟁력이다. 일본의 경제평론가인 고무로 나오키가 한국 경제를 목줄(부품·소재 산업)에 묶여 물고기(완제품)를 잡아도 곧바로 주인(일본)에게 바치는 ‘가마우지 경제’라고 이름붙인 게 1988년이다. 고무로는 우리 경제를 두고 목이 끈으로 묶인 채 먹은 고기를 어부에게 고스란히 내줘야 하는 가마우지 신세라고 비꼬았지만 그 누구도 반론을 제기하지 못했다.

뒤늦게 근대화에 나선 우리는 수출 대기업 중심의 압축성장 경로를 밟아왔다. 그 결과 우리 기업은 한때 일본이 석권했던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부문 등에서 전개된 치열한 생존경쟁에서 살아남았다. 그 과정에서 소재·부품은 비교우위를 지닌 나라에 의존하는 국제분업의 틀이 짜였다. 이제 와서 우리는 왜 주요 소재·부품을 국산화하지 못했느냐고 추궁하는 것은 부질없다. 강대국의 패권 다툼과 각국의 국내 정치가 국제분업에 기반한 자유무역을 위협하고 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우리도 핵심 소재를 국산화하고 수입선을 다변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옳은 얘기지만 일본의 소재·부품 경쟁력이 하루아침에 생겨난 게 아니라는 점을 잊어선 안 된다. 혼을 담아 최고의 제품을 만든다는 일본의 ‘모노즈쿠리’(物作り) 정신은 세계 최고의 기술력을 갖춘 수많은 강소 회사를 만들어냈다. 중소기업 연구원이 노벨 화학상을 받고 100년 이상된 기업이 수만개 존재하는 나라가 일본이다. 반일(反日) 정서만으론 절대 일본을 넘어설 수 없다. 은인자중, 실력을 키워나가야 한다.

 

조남규 산업부장

정치도, 정치 무의미하다. 정치 ‘가능성 예술’ 불리 이유다. 그렇지 일이 지나치 모자람 법이다.

오바 정부 출범 정치권 금융위기 대처하 민주주 국가라 평가 부합하 않았다. 오바 정부 승리 야당 공화당 무시하 행태 보였 공화 오바 꼬리표 붙었 정책이 묻지 반대 관했다. 오바 정부 잘해 경제 살아나기라 오바 정부민주당 인기 높아 아니냐 투였다. 지체돼 오바 정부 책임이 때문 2010 중간선거에서 공화당 이익 것이라 생각하 당리당략 행태 것이다. 공화당 전략 먹혔다. 2010 중간선거에 공화 다수 지위 탈환했다. 중간선거 앞두 치러 과정에 후보들 대부 제거됐다. 자리 후보들 메웠다. 공화 그룹에 ‘작 정부’ ‘감세’ 주창하 강성 후보들 포함됐다.

공화 우파 하원 접수했다. 의원들 좋게 표현하 소신 투철 정치 펼쳤다. 하지 부류 정치인 의회 싸움판으 만든다. 공화당 강경해졌 오바 공화당 대치 가팔라졌다. 워싱 정치 표류했다. 소식 전하 신문에 하루 ‘교착deadlock 이라 제목 대문짝만하 뽑혔다. 여파 연방정부 폐쇄 어이없 사태 빚어졌 미국 위기 내몰리기 . 공화당 국가부채상 인상 볼모 게임 벌인 결과다. 급기2011 미국신용평가기관 스탠더 푸어S&P 정부 신용등급 강등시키 초유 조치 단행, 미국 신뢰도 갔다.

파티 위기 부산물이었다.

2008 9 투자은 브라더스 파산 신청하 AIG휘청거리 의회 공황상태 시스템 구제하 위한 7000 규모 부실자산구제프로그TARP 마련했다. 부시 행정부 금융위기 초래 주범 금융기관 구제하는 사용했다. 부잣 주인 실수 가난 주민들 집까 붙었는 소방차 부잣집에 뿌려 형국이 었다. 뉴욕연방준비은행장이 티머 가이트Timothy Geithner “지금 방화 처벌 집중 아니 집중할 때”, “사람들 금융권 맡겨 안전하다 믿 있다면, 인기 자격 이들 구제하 되더라 무엇이든지 했다”면 재무부 조치 옹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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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에 “국민 몰아넣 금융기관 세금 구제하 말라” 항의 빗발쳤다. TARP 집행 감독했던 엘리자베 하버 로스 교수 금융기관 살리려 재무 관료들 금융위기 차압당 위기 소유자들 구제하라 목청 높였다. 워런 문제의식 오바 정부 위기 소유 일부 구제하 정책 맥상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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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티 ‘보스 사건Boston Tea Party 명명 용어다. 식민 미국인들 정부 부과 반발했듯이, 오바 정부 방만 재정지출 과도 부과 맞서자 것이다. 파티 TEA ‘그동 냈다Taxed Enough Already 의미 있다. 이들 세금신 마감일 415 기해 전역 도시에 일제 집회 오바 정부 ‘큰 정책’ 항의했다. 참석자들 ‘보스 사건 당시 복장 시위 여했으 보스턴에서 상자 바다 퍼포먼스 출됐다. 집회 뉴스 다루 중계방송 하다시 했다.

 티 파티 중간선거 앞두 TARP 법안이 오바마케 과정 참여 정치인들 대상으 캠페인 전개했다. 워싱턴포스트 대상 공화 후보들 탈락 사실 전하면 파티 정치 지형도 바꾸 있다”고 보도했다. 켄터키 공화 상원의 경선에 지지를 받 Rand Paul 후보 59% 득표율 기록하 공화 지도부 전폭적 지지 후보 상대 낙승 것이 대표 사례다. 파티 공화 지도부 통제하 못하 세력으 커갔다. 단초 오바 정부 압류대상 구제조치였는데 시간흐르면 정부사회보 정책포함재정지 확대로 공 대상 바뀌었다. 운동에 대기 자금 공화당의 주 후원자 석유재 Charles Koch, 데이비 David Koch 형제 흘러들어갔다. 운동 바람 공화 2010 중간선거에 다수 지위 탈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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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자동차 직원들의 근무 복장이 확 바뀌었다. 청바지에 면티 차림도 예사라고 한다. 상하관계에서 벗어나 보다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조직원들의 창의력을 높이겠다는 취지일 것이다.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수석부회장은 앞으로 현대차그룹의 기업 문화를 스타트업처럼 바꿔나가겠다고 했다. SK이노베이션 직원들은 회사에 도착하기 전에 앱으로 하루 동안 근무할 자리를 고른다고 한다. 부서간 칸막이를 없애고 다양한 의견을 융합하려는 시도로 보인다. 다른 회사들도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기존의 획일적인 업무 행태와 평가 시스템을 고쳐나가고 있다.

기업들이 왜 이럴까. 국내외 생존 여건이 갈수록 악화하고 있는 탓이리라. 이제는 더 이상 규모의 경제가 성공을 보장하지 않는다. 변덕이 죽 끓듯 하는 소비자 기호에 맞춰 재빨리 변신하지 못하면 도태될 수밖에 없다. 가격 경쟁력은 성공의 필요조건일 뿐 충분조건이 될 수 없다는 얘기다.

경영학자인 윤석철은 기업의 생존 조건으로 ‘제품의 가치> 제품의 가격> 제품의 원가’라는 ‘생존 부등식’을 제시했다. 소비자가 특정 제품에서 느끼는 가치는 가격보다 커야 하고, 가격은 기업의 원가보다 커야 기업과 소비자 모두가 상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때 기업은 소비자에게 가치에서 가격을 뺀 만큼을 주고 가격에서 원가를 뺀 만큼을 받는다. 기업과 소비자가 상생의 주고받기를 하는 것이다.

사실 산업화 시대의 우리 기업은 ‘가격> 원가’의 경쟁력을 통해 지금의 위치까지 도약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과정에서 다양한 문제들이 생겨났다. ‘가격> 원가’의 부등식만 놓고보면 이익 최대화가 목표다. 그러려면 임금을 누르고 환경을 고려하지 않는 것이 합리적이다. 이제 그런 시대는 끝나가고 있다. ‘가격> 원가’의 부등식에서는 우리의 입지가 점점 좁아지고 있다. 신발 같은 노동집약적인 산업은 오래전에 가격 경쟁력을 잃었다. 이념의 잠에서 깨어난 중국은 어느 사이에 자동차와 조선, 철강, 휴대전화 시장의 강자로 등장했다. 우리가 세계 1위라는 메모리 반도체나 디스플레이 부문도 안심할 수 없는 처지다. 이 와중에 대기업 노조들은 매년 파업을 무기로 제품 원가를 높이고 있다. 문재인정부가 추진 중인 ‘최저임금 인상’ ‘주52시간 근무제’도 마찬가지다. ‘가격> 원가’의 부등식을 충족시키지 못하는 기업과 영세 자영업자들을 코너로 몰고 있다. 정책의 속도 조절이 필요하다.

원가가 높아져도 ‘가치> 가격> 원가’의 부등식을 충족시키는 기업은 생존한다. 그런데 가치를 높이는 일이 말처럼 쉬운가. 가치는 원가처럼 계량화하기도 어렵다. 어떤 제품이 1000만원의 가치가 있다고 해서 구매했지만 사용 과정에서 아깝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고 잘 샀다고 만족할 수도 있다. 상품의 가치를 높이려면 소비자의 욕구를 감지하고 이를 제품과 연결시키는 능력이 필요하다. 이런 능력은 실패와 실수를 용인하고 기탄없는 의견을 환영하는 분위기에서 제대로 발현될 수 있다. 기업들이 조직원들의 자율성을 키우기 위해 갖가지 방안을 짜내고 있는 이유일 것이다. 기업이 세금을 내거나 경영권을 방어하는 데만 급급해한다면 가치를 높이는 투자에 소홀할 수밖에 없다. 상법과 세법을 개정할 때 이런 점을 고려해야 한다.

기업의 신뢰 지수도 상품 가치를 좌우하는 주요 변수다. 유기농 건강식품을 생산하는 풀무원은 인삼 제품 판매를 접었다. 재배 과정에서 농약 사용이 불가피한 인삼 제품에서는 미량이라도 농약이 검출된다는 이유에서다. 단기적 손실을 감수하면서 유기농 식품업체라는 이미지를 지킨 것이다. 장기적으로 회사의 신뢰도가 높아졌음은 물론이다. 거꾸로 소비자의 신뢰를 갉아먹는 자충수를 두는 기업들도 적지 않다. 각고의 노력으로 생존 부등식은 만족시켰지만 정부의 규제나 기득권의 이해에 밀려 퇴출되는 기업과 서비스도 있다. 규제와 기득권의 폐해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최근에는 카풀과 같은 4차 산업혁명 시대의 혁신 서비스들이 희생당하고 있다. 멀쩡한 혁신 기업의 목을 조르는 꼴이다. 계속 이러면 한국 경제의 생존 부등식을 풀어나가기가 더 어려워질 것이다.

조남규 산업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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