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러리 미국인 호불(好不好) 분명갈리정치인이다. 힐러리 2016 출마 선언 실시 여론조사에 응답자 이상 싫다 답변했다. 2016 8 워싱턴포스트·ABC 조사에서 비호감률 56%달했다. 호감률 41% 그쳤다. 트럼프 비호감률(63%) 만만 않았다. 유권자들에 2016 대선 후보’ 선택하 선거 됐다. 트럼프 극단적 인종· 행태 미국인들, 소수인종 여성층 반발 샀다. 힐러리 싫다 이유 넘쳤다. 거짓말쟁이라서, 스캔들 많아서, 진보적이어서, 남편 바람둥이여서….

일리 주장이지 근본적 이유 있었다.

정치 힐러리 지지 추이 살펴보 일관 패턴 견된다. 힐러리 정치 야망( 대통 ) 드러 때마 지지율 하락했다. 힐러리 지지율 상원의 시절(2001 12009 1) 곡선 그리다 출마설 피어 오르 시점부 꺾이 시작해 2008 민주 대선후 기간 내리막길 걸었다. 경선에 오바마에 패배한 힐러리 지지율 올라가 시작했다. 힐러리 지지율이 높았 시기 오바 대통 밑에 국무장관으 묵묵 일할 때다. 재직기 지지율 66%(갤럽) 치솟았다. 그런데 힐러리 2013 2 국무장관직에 물러 직임 보이 지지율 50% 떨어졌다.

힐러리 정치 도전 때마 지지율 떨어지 이유는 뭘까.

‘섹시즘Sexism이다.

여성 체질이 성격, 면에서 남성보 열등하다 인식( 의식) 이뤄지 차별 행태 섹시 말이다. 미국 대통령 남성이었다. 자리 여성 도전한다니, 사람들 힐러리의 도전 뺨이라 얻어맞 반응 보였다. 힐러리 정치 시작하 전에 여론 그녀 전통적 여성상에 벗어나려 때마 들었다.

1993 퍼스 레이 힐러리 백악 이스트East Wing (퍼스트 레이 집무공간) 웨스트West Wing(대통 집무공간) 사무실 마련했 , 건강보 개혁 지휘했 힐러 들끓었다. 웨스트윙 퍼스 레이디 힐러리 음이 마지막이었다. 그러 힐러리 건강보 반발 따른 1994 중간선 패배 책임 일선에 물러 이스트 다소곳 머무르 힐러리 인기 높아졌다.

1997년 2월 빌 클린턴 정부 2기 취임식날의 빌과 힐러리. 힐러리인스타그램.

정치권에 섹시즘 ‘정치적으 올바르 않는 행위 기시된다. 그런 트럼프‘정치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 따위는 무시 거침없 성·인 행태 여론 관심 집중시키 공화당 기반 남성표 결집 대선후보 . 힐러리 민주 후보 트럼프 선거운 과정에서 중도파 민주 진영 남성들 힐러리 갈라놓 시즘 구사했다.

트럼프 폭스뉴스 Megyn Kelly 섹시즘 압권이다. 트럼프 2015 8 공화 선후 TV토론에 발언 지적 메긴 ‘빔bimbo(예쁘지 머리 여자) 비하했다. 메긴 겨냥해 “토론회 진행하 그녀 눈에 나오 있었다. 그녀 어디에서 나오 있었 것”이라 말했 여성들 경악했지 남성들 트럼 지지 견고해졌다.

트럼프와 메긴 켈리

트럼프 2016 9·11 추모행사장에 휘청거 힐러리 겨냥해 (힐러리) 클린턴 하루 쉰다. 그녀 휴식 필요하다” 섹시즘 일종이었다. 트윗 이면에 여성은 남성보 신체적으 열등하다 전제 있었다.

힐러리 민주 과정에서 섹시즘 장벽 넘어서 . 2016 민주 경선에 남성들 힐러 샌더스를 밀었다. 샌더스 힐러리보 진보적이라 때문만 아니. 힐러리 여성이어 그랬다. 오바마 힐러리 2008 민주 남성들 ‘여 대통령 ‘흑 통령’ 선택했다.

정치인에게 대수롭 문제 정치인에게 점으 작용하 경우 많다. 힐러리 기침 멈추 않거 오르다 삐끗해 경호원 부축 받거 어지럼증으 휘청거리기라 그때마 미디어 법석떨었다. 2015 샌더스 수술 받았지 미디어 았다.

여론조 전문기관 갤럽 2014 3 미국인들에 힐러 대통령감 아니냐’ 물었다. ‘힐러리 대통 자격 갖추 못하 때문’이라 응답 많았다. 힐러리 통령 퍼스 레이 경험 상원의원, 국무장 출신이다. 정치인 정도 경력이라 논란 않았을 것이다. 시비 공연 주장이 ‘여 대통령 원하 않는다’ 답변 오히 솔직 답변일지 모른다. 힐러리 Y염색체 않다 사실 문제였다. ‘남편 대통령 백악관 재입성하 모습 싫다’ 응답도 나왔다. 남편 불륜 힐러 책임이라 말이다. 부인 불륜으로 추궁받 정치인 없었다. 섹시즘이다. 섹시즘 보이 벽이다.

도널 럼즈펠Donald Rumsfeld 국방장관 2002 이라 대량살상무기 테러리스트에 제공했는 여부 밝히 했다면 ‘알려 무지known unknown 표현 있다. 누리 루비Nouriel Roubini 뉴욕 교수 경제 불확실성 명하면 용어 사용하기 했다. 힐러리에 섹시즘 ‘알려진 무지’ 영역이었다. 자신 효과적으 통제 없고, 자신 영향끼칠정확 섹시즘. 힐러리 정치 여정 섹시즘과 투쟁사였다.

2008 도전 나섰 힐러리 역사 대선에 도전했 여성 가운 백악관 근접했 후보였다. 역사성 캠페 과정에 어떻 활용 것인지 놓고 힐러 캠프 갑론을박했다. 2007 초반까지 힐러리보다 유력 후보 떠오르 상태였다. 퍼스 레이 중에 대권 도전 인물 힐러리 유일했다. 민주 인맥 선거자금 능력, 진영에 쌓아 명성만으로 충분하다 조언이 많았다. 참모 Mark Penn ‘철 여인’으 마거릿 Margaret Thatcher 수상 마킹하라 조언했다. 힐러리 강인함으 자신 연단시 왔다.

2001 상원의원으 정치 시작 힐러리는 2003 군사 위원 됐다. 전통 관행 중시하 상원 의원 군사위 배정되 경우 이례적이었다. 러리상원들어직후부 군사위 주목했고, 오랫동 기회 군사위 자리 기회붙잡았다. 전문가들 힐러리 군사위 집착 행태 대통 결시키 했다. 최고통수권자(대통령) 힐러리 여성 한계 식으 극복하 했다 것이다. 힐러리 군사 활동 계기 군심(軍心) 된다.

힐러리 인식 않았다. 힐러리 트남 시위 주도했다. 사회 나와서 미국 이스라엘 정책 비판하면 팔레스타인해방기PLO 인사들 친하게 지냈다. 남편 클린턴 베트남전 반대하면 베트남 징병 회피했다. 클린 부부 성향 군인들이 가 싫어하 유형 정치인이었다. 사실 러리 군사 위원으 활동하 인식 돌려놓 위해 애썼다. 장성들 힐러 의원에게 자신들 생각해 러리 흔적 찾아 없었다. 힐러리 패권 유지 군대 지지했다.

힐러리 2002 주니 대통령에 이라크전 권한 여하 결의안 찬성했다. 결의 기록 2008 민주 대선경 과정에 오바 후보 결의 투표 대비되면 이라 전쟁 반대하 민주 좌파 오바마에 쏠리 요인 됐지 힐러리 평판 좋아졌다. 오바 정부 무장관으 재임하 기간에 힐러리 공화당원 로버 게이츠 국방장관 호흡 맞추 오바 내에 강경파 목소 대변했다. 게이츠보 강경입장섰다. 민주 내에 힐러리 대외정책 , ‘매파hawks 분류됐다.

2008 민주 도전 앞두 내에서 힐러리 대선 승리하 역사 대통령이라 의미 부각시키라 요청 있었지 힐러리 그러 않았다. 대통령 대한 유권자들 거부감 촉발시 있다 우려 있었 것이다. 경선 오바마 ‘변화’ 외치 대통탄생역사 적절 활용했지 힐러리 ‘준비 대통령’으 대통 탄생 메시지 부각시키 않았다.

경선에 패배 힐러리 연설 메시지 고민했다. 오바마 지지하 것만으로 충분 않았다. 힐러리 경선 패배실망힐러지지자들 투표장 나와오바마에 표를 던지 메시지 필요했다. 힐러리로서 도전 가능성 열어두 지지층 설득 필요성 있었다.

힐러리 2008 67 워싱 국립건축박물 그레이 섰다.

2008년 6월7일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패배한 뒤 오바마 지지를 선언하는 힐러리. Ron Edmonds, AP

“오바마 캠페인 시작했 사람들 어디에서나 똑같 질문 던졌다. 여성 최고통수권자 봉사 있을까? 그렇다 답변했다. 아프리 어메리컨 우리 대통령 있느냐고 했다. 오바마 질문 응답했다. 오바마와 미국 진보 핵심적 이정표 세웠다. 그것 완전한 연방 만들 우리 의무였다.

힐러리 연설 오바마 써내려가려 통령 역사 자신 이루려했 대통령 소명 결합시켰다.

오랫동 힐러리 괴롭혔 섹시 문제 거론했다.

“이 개인적으 있다. 여성으로 대통령 도전 의미냐 질문 때마 여성으로서 자랑스럽 최고 대통령 있다 생각했 때문 마했다 말했다. 그러 여성이다. 수많 여성들처럼 세상에 의식되 장벽 편견 있다 사실 알고 있다. 모두가, 최후 사람까 존중받 잠재력 정받 미국 건설하 원한다.

힐러리 도전 의미 성과 함축적으 표현 명문장 이어졌다.

“우리 이번 단단 유리천장 깨뜨리 했지만, 여러 덕분 천장 1800 균열(민주 참여 유권 가운 1772 클린턴에 던졌다) 있었다. 틈으새어들어오 것이다. 우리 번에 쉬워것이희망확신어넣 것이다.

힐러리 연설문 포함시 1800 균열 대목 러리 정치 도전 특징짓 키워드 됐다.

“정치권에서 여성에 끊임없 잣대 들이댄다. 옷이건 체형이 헤어스타일이건. 현실 좌절해 된다. 미소를 지으 전진하라.

섹시즘 힐러리 대응법이었다.

2016 재수 힐러리 섹시즘 정면으 맞섰다. 외동 첼시 외손주 할머니로서 일상 공개하 대통 내각 절반 여성으 것이 메시지 전하 대통령 역사성 적극적으 활용했다.

2016 67 1030.

힐러리 마침 민주 대선후 승리 선언했. “지 토요일(64) 어머니(도로 Dorothy Howell Rodham) 97 생일이었는데, 어머니 태어 그날 참정권 보장 수정헌 19통과 날이었다. (돌아가신) 어머니 자리에 민주 후보 모습 좋겠다.

도로시 하웰 로댐과 어린 시절의 힐러리. 힐러리인스타그램.

힐러리 1848 최초 뉴욕 세네 Seneca Falls에서 여성 참정 획득 선언 채택 사실 상기시 “우 세네 선언 참여 이들에 있다” 조했다. 트럼프와 대결에서 대통 탄생 의미를 적극적으 부각시켰다.

트럼프 행보 힐러리 마케 효과 대화했지 힐러리 마지유리천장 못했다. 2016대선에 남성들 압도적으 트럼프 지지했다.

 

 

 

 

 

2015 4 샌더스 선언 주목 못했다. 버몬트주에서 압도 지지 정치인이었지 미국인들은 샌더스 몰랐다. 지지율 고사하 인지도 5% 미쳤다. 샌더스 서서 지지율 높이더 여름쯤에 확실 맞수 부상했다. 민주 첫날 2016 21 이오와주에 힐러리 간담 서늘하 만들었다. 힐러리와 격차 0.35% 포인트. 샌더스 1 힐러리보다 주목 받았 힐러리 승리 바랬다. 이어 뉴햄프셔주 경선에서 22% 포인 승리하면 ‘힐러대세론’ 어퍼컷 날렸다.

샌더스 뉴햄프셔 압승으 초반 승기 굳히 했던 힐러리 구상 물거품 됐다. 힐러리 ‘슈 화요일 경선에서 흑인들 몰표 힘입 샌더스 이겼지 샌더스 미시간 경선에 자릿 지지 격차 패배 것이 여론조사 기관전망뒤엎힐러리 제치이변연출하 화려하게 부활했다. 샌더스 미시간 승리‘샌더 돌풍’ 실체확연히 드러났다. 샌더스 2016 대선에 시위 공감했던 미국인들 주자 선정 것이다. 민주 경선 앞두 진보 진영에서 엘리자베 상원의원 힐러리 맞상대 세우려했으 의원 불출 결정 내렸다. 워런 방황하던 표심 샌더스에게 쏠렸다.

민주 경선 장기전 됐다.

불굴 정치인 샌더스 젊은층 금융위 여파 경제 여건 지역 악화 러스 벨트에 강세 민주 막판까 힐러리 위협하 저력 보였다.

샌더스 존경하 인물 데브Eugene V. Debs .

1912 대선 사회주의 후보 출마 90만표(득표 6%) 대표 사회주의자다. 샌더스 ‘민주 사회주의자Democratic socialist 자처했 민주당원 아니었다. 버몬트주에시장(4)하원의원(8), 상원의원(재선) 지냈지 무소속으 출마했다. ‘영혼없 정치’ 혐오했다. 그래 민주당 들어가 았다 말했다. 이번 민주 경선 참여했을까. 1971자유연합당 입당 자유연합 간판 상원의원 버몬 주지 선거 출마했다. 5% 못미치 득표율 기록했다. 1976 주지선거마지막으 자유연합당 탈당했다. 양당제 정착 미국에 공화당 민주당 3 종속 변수 불과했다. 샌더스 “무소속이 3 대선후보에게는 넘어서 장벽 존재한다” 말했다. 민주당 혐오하 보주의자들샌더스 결정 실망했지 샌더스 자신 무소속 3 후보 출마 공화당 어부지리 있다 생각했다.

민주당원들 2000 대선 쓰라 패배 남아 있다.

민주당 후보 일반투표에 공화 주니 후보 54만여 앞섰으 승부 좌우하 선거인 집계에 후보 5 앞섰다.( 271, 266) 연방대법원까 개입하 우여곡 부시 537 고어 누르고 플로리 선거인 25 차지하 대선에 승리했다. 플로리다 고어에 갔으 정반대 결과 나왔 것이다. 영에서 녹색 후보 출마 네이Ralph Nader 책임론 러나왔다. 성향 네이더 잠식 플로리다 빼앗겼다 비판이었다. 종로에 한강에 이다. 그렇기 하지 고어 네이더 지지층 겹친다 점을 고려하면, 2000 승부 네이더 플로리다에 97488 갈랐다 있다.

2016 대선에서 진영에 녹색당 스타Jill Stein 보가, 진영에 자유당 Gary Johnson 후보 3후보 나섰다.

민주, 양당제 정착 대선에서 3후보 여간해 판세 좌우하 힘들다. 대선에 3후보들 있었 존재감 미미했다.

이번에 후보들 비호감도 최고치 기록하면 스타인이 3후보 공간 확장됐지 캠페인 전개되면 힐러리 트럼프 구도로 짜여졌다.

샌더스 민주 좌파보다 급진적이었다.

민주 경선 참여했지 샌더스도, 지지자들 민주당원 생각 없었다. 민주당 공화당보 진보적이었으 샌더스 눈에 똑같 기득 정당이었다.

샌더스 1992 대선에 민주 후보 출마 클린턴 지했으 민주당 우경화시 정책에 반대했다.

클린턴 힐러리 앞세 추진했 의료보 개혁에 반대했고(샌더스 한국 전국민의료보 제도 선호했다) 화당 손잡 추진 자유무역협정에 반대했다. 지개혁 국방예 기조에 반대했다. 샌더스 ‘민주 회주의’ 주창했 북유럽 복지국가 지향점으 삼았다. 샌더스 눈에 클린턴이 공화당원 차이 없었다. 민주당 힐러리 그렇다 봤다. 경희사이버 안병 교수(미국학) 저서 《미국 주인 바뀐다》에 민주당 1968 리처 집권 민주당 잇따 현실 타개하 () 장주 성향 클린턴 중심으 리버럴Neoliberal 탄생시켰 힐러리 운동 전사에 금융자본 손잡 네오 리버럴 변신 이러 민주당 변화 보여준다 진단 했다.*(주1)

2008 금융위기 터지 샌더스 정치인들 차이 드러났다.

재무부 위기 금융기관 살리 2008 9 7000 규모 부실자산구제프로그TARP 마련해 의회 넘기 민주당 공화 지도부 후보( 바마, 매케인) TARP 법안 찬성했지 샌더스 “월가 구제하 싶으 세금 완화 악용해 돈을 사람들에 비용 부담시켜 한다”면 반대했다. “월가 규제 완화되 저소득, 저학력층 부추겨 주택담보대출을 난해 금융상품 팔아 재산 상여 잔치를 벌이 금융위기 불렀다”면 “월가탐욕 빚어 참사 미국인들 감당해 하느냐” 일갈했다. TARP 법안 929 하원에 1 부결됐으 패닉 화들 황급 법안 통과시켰다.

2009 금융기 해체 ‘대마필사(大馬必死)법’ 발의했던 샌더스 2010 1210 감세 합의 리버스터 구제금융 비판했다.

“미 국민들 금융기관들 무너지 경제 피해 너무 크 일자리 사라진다 월가 구제해줬는 금융기 4 3 긴급구제 전보 거대해졌다. 덩치 수수료 신용카 이자율 높아졌다. 그렇 벌어 보너잔치벌이있다. 그러다 문제생기 그들 구제해줘 한다. 그들 없다똑같논리 동원된다. 금융기관 그들 무너졌 경제가 감당 없다 그들 것이다. 우리 그들 해체해야 한다.

샌더스 주장 오바 정부 출범 금융기관 대한 규제 강화 도드-프랭 법안 반영됐다.

2016 민주 대선경선에 샌더스 사실 패배 확실시 이후에 경선 완주했다. 경선 뒤에 자신 지지 유권자들 근거 힐러리와 투쟁 돌입했다. 이번 민주 경선에 민주 인사들 ‘슈퍼대의원Superdelegates *(주2) 대부분 힐러리 지지했다.

그런데 샌더스 힐러리 따라잡았다. 밑바 지지세는 힐러리보 강했다. 2008 오바마 지지했 젊은층 이번 대선에 힐러 샌더스 밀었다. 샌더스 미국 젊은층 무당파 민주당으 견인, 정치 지형도 주당 유리하 그려 계기 마련했다.

힐러리 샌더 지지층 흡수하 부심했으 문제 더스 내세 중에 성향 민주당원들조 부담 것들 많았다 점이다. 샌더스 국공 학비 전액 국가지원하 국민의료비 국가전적으 책임져 한다 주장했다. 오바 대통령 치적으 내세우 오바마케어 쪽짜 개혁으 치부했다. 최저임금 연방정 차원에 시간당 15달러 인상하 실업급 기간 지금보 연장하겠다고 공약했다. 방향에 북유럽 복지국가 지향 것이다.

샌더스 소득자 소득세율 인상 재원 마련하겠다 약속했다. ‘부 증세’다. 레이건, 주니 공화 정부 단행 조치 중단하 상속세율 이자·배당 소득 세금 인상하겠다 공약했다.

힐러리 이번에 2008 때보다 진보적 공약 보였다. 고소득 인상 포함 세제개 추진 교섭 입장 밝혔다. 국무장 시절에 오바 대통령 도와 FTA 체결 힘썼으 과정에서 FTA 입장 바뀌었다. 오바 정부 의욕적으 추진했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 찬성에 반대 선회했다. 자유무역으 미국인들 자리사라지 있다샌더스 주장수많유권자들 호응 때문이다. ‘샌더 돌풍’ 힐러리 왼쪽으 이동시킨 것이다. 힐러리 ‘부 증세 공약 강화됐다. 힐러리 소득 세 구간 신설 500 달러(부부 별도 신고하면 250 달러) 이상 소득계층에 최고세 43.6% 부과하겠다고 약속했다.

힐러리 시간 최저임금 15달러 인상하거 학비 국비 지원하 샌더 공약 시기상조이 비현실적이라 공격했다. 오바마케어 수준에 개선해나가 리적이라 반박했다.

하지 힐러리 민주 대선후보 선출 샌더스 지지 선언 이끌어내 샌더스 공약 수용했다.

시간 최저임 15달러 인상, 공립 지원, 월가 방정 회전 제한, 금융규제기 확대, 부유층 최대 65% 상속 민주 공약 반영됐다. 힐러리 45%상속세 공약으 내놨으 샌더스 견해 10 달러, 1 5 부자들 상속세율 65% 올렸다. 65% 상속 대상 억만장자 소수 불과하지 힐러리 상속 강화 트럼프 상속 공약과 대비되 상징적 조치였다. 샌더패배결정원인이었 퍼대의 제도 개혁 약속했다.

샌더스 힐러리 양보 때까 선언 미뤘다. 민주 도부 압박 힐러 지지자들 공세 감수했다. 자신 관철시키 위해서였다.

대목에 정치 돌아보 경선에 패배 주자 보따 떠나거 흔쾌 승자 밀어주 사례 많았다. 정치 정치인 비판하 칼럼 썼다. 미국 정치인 정치인 품격 것일까. 차원 아니었다. 정치 약속(공약) 신줏단 모시듯하 정치는 약속 헌신 버리듯하 관행 문제였다. 그러 선거에서 경쟁 뒷전으 밀리 선거 패거 싸움이 없게 된다. 정당이 후보 공약 모세 십계 정도 아니더라 권자와 엄중 약속이라 인식 굳어져 정치 한단계도약 것이다. 유권자만 그렇 있다.

샌더스 712 뉴햄프셔주에 힐러리 첫번 유세를 힐러 지지 선언했다. 유세장에 ‘함께하 강해 진다stronger, together 플래카드 파도쳤다.

민주당 힐러리 클린턴 대선후보가 2016년 7월12일 뉴햄프셔주 포츠머스에서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과 공동 유세를 갖고 집회 참석자들에게 손을 흔들고 있다. 힐러리는 이날 '연 소득 12만5000달러 이하 가정 학생의 공립대 등록금 면제' 공약을 발표했다. -힐러리클린턴 인스타그램

힐러리 변신 폭발력 않았다. 대통령 당선되 원래 러리돌아것이트럼캠프주장먹혀들었다. 힐러리는 샌더 지지층 전폭적 지지 이끌어내 못했다. 샌더스 지지층의 눈에 비친 힐러리는 정치인이었다. '구시대 정치인' 이미지는 힐러리 지지의 확장성을 제약했지만 그것만으로 힐러리가 쓰러진 것은 아니었다 .

*(주1) 미국의 주인이 바뀐다, 안병진(2016), 메디치, p60-62.

*(주2) 슈퍼 대의원: 경선 결과에 구속되는 일반 대의원들과 달리 자신이 원하는 후보에게 표를 던질 수 있는 대의원으로 전직 대통령이나 상원,하원 의원, 주지사 등으로 구성돼 있다. 2016년 민주당 경선에서는 전체 대의원 4765명 가운데 714명이 슈퍼대의원이었다. 샌더스의 문제제기로 슈퍼대의원 수를 줄이기로 했다.

 

“바람 쪽으부는지 기상예 캐스터 필요 없지.

2011 1118 맨해튼 주코 공원 찾았다. 시대 고민했 음유시 Bob Dylan ‘지하실에서 향수Subterranean Homesick Blues 흘러나오 있었다.

“자니 지하실에 약물 위에정부생각하 있었네”

딜런 1960~70 미국 달궜 민권, 운동 대표 가수 2016 노벨문학 수상자 선정 뉴스 인물로 등장했다.

주코 공원 월가 탐욕 사회 양극화 규탄하 시작 점령시위 본거지였다.

맨해튼 비롯 전역에서 월가 탐욕 경제 불평항의하 시위 불붙었다. 뉴욕에서 수백명 시위대 공원 집결, “우리 99%다” 구호 외치 상태 시위 재점화시키 애썼다.

시위대 이날 ‘집 궐기 날’ 선포하 증권거래소 정상 가동 작전펼쳤다. 하지 경찰은 주변 바리케이드 설치하 시위대 접근 차단, 래소 개장했다. 과정에 시위 수백명 포됐다. 시위 시작 격렬 시위였다.

시위 한창 주코 공원 메웠 시위대 규모 눈에 있었다. 뉴욕결정법원판결 공원에 텐트 시위대 일부 일부주저앉 채  시위 있었다.

경찰 주코 주위 바리케이드 시위대 텐트 못하도 감시했다. 저녁 뉴욕 기온은 떨어졌다. 동절기 주코 시위 동력 잃어 모습이었다. 시위 내부에서조 기존 방식 청산하 새로 전략 세워 한다 주장 제기되 . 현장에 셰인 “우리 그동 시위 상징 주코공원지키 썼으 시위는 주코 공원 초월 세계 확산됐다”면 “이 시위대 주코 공원 운동 동력 살려나가 마련에 나서 한다” 말했다.

온라 ‘애드버스터스Adbusters 2011 7 소셜미디어를 월가 점령하라 촉구하면 시작 시위 2010겨울부 중동북아프리 지역휩쓸었 민주시위‘아랍 Arab Spring *(주1) 영향 받았다. 시위대 맨해 공원에 집회 월가 탐욕 사회 불평등, 무능 워싱 정치 규탄했다.

시위 단기간 전역 세계 확산됐다. 진행돼 격차 양극화, 정치권 시위 토양 됐다.

수많 지표들 시위 정당성 부여했다.

월가점 시위대 초창기부 경제불평타파기치 사회 불균형 성토해왔다. 시위대 구호인 “우리 99%”라 구호 미국 1% 국부 3분의1점유하 현실 반영 것이었다. 주코 시위대들 목소리 격앙 있었다.

1% 99% 적당 챙겨주면 사회 안정 자신 경제 토대 다져왔지 지금 1% 위해 99% 과도하 빼앗아가있다 시위대 목소리였다. 시위대 “경제 성장해 피폐해진다면, 성장 없다” 외쳤다. 시위대 미국 시스템 비롯 부자들 자본 포획 있어 99% 국민 이익 켜주기 1% 탐욕 편승하 있다 주장했다. 시위 “혁명 가까개혁하라 대통령 뽑아줬는 과거 들었 금융 인사들 고위직 임명하 행태 크게 실망했다” 불만 토로했다. 오바마 클린 정부 재무장관 출신 서머스 백악 국가경제 위원장 임명하 금융 위 방조자 다름없 티머 가이트 연방준비은 총재 재무장관 앉혔다 비판이었다.

시위대 지표들 근거 변혁 외치 있지만 그들 표적 금융인들 생각 달랐다.

월가에 BoA 메릴린치 부회장 제조업무너 경제 지탱하 산업 중심으 서비스업”이라면 “월 금융인들 연봉 시위 목표 잡았다” 지적했다. CEO 능력 성패 좌우되 현실 무시하 CEO 연봉만 문제 시위대 주장 자본주 체제 부정하 것”이라면서 “소 양극 문제지 길거 투쟁 정치권 제도 방식으 해소돼 한다” 말했다. 자본주 사회에 법적으 축적 이들 비난 대상으 삼아 재분 과정에 문제 있다 개선 시정해 한다는 주장이었다.

부회장 시장주의자들 양극화 본질 과거처 식주 위협 생존 차원 아니 상대 박탈감 불과하 인식 있다. 시위 동력약화된 이면 누구 노력하부자 있다 미국인들 ‘자본주의 방식’ 존재하 있다 설명했다.

시위대 종사자들 만나면 흥미로 사실 발견했다.

그들 인식 근본적으 달랐으 제도 개선 해결 나가 한다 점에 의견 수렴됐다 점이다. 공원 시위대 기존 길거 행태 벗어 정치권 작업 촉구하 운동으 전환하 방안 모색하 있었다.

민주 여론조 전문가 더글라 주코티공 시위 198 시위 참가했는 물었다. 보수주 정치 운동 파티 공화당 변화시켰듯 민주당 영향 미치기 시위 참가했다 응답자 35% 많았다. ‘진보진 파티 운동 확산시키겠다 것이다. ‘민주·공 정치 종식’(11%), ‘진보운 확산’ (9%), ‘국민 활성화’(9%), ‘직 민주주 실현’(7%) 이었다. ‘세 개혁’(5%) ‘부 재분배’(4%), ‘아프가니스철군’ (4%) 구체 요구조건 내걸 시위 참가 이들 있었다.

오바마 점령 시위 캠페인 전략으 했다.

금융인들 ‘살 고양이’라 비난했 오바마 시위 전역으 확산되면 불려나가 시위대 분노 캠페인 활용했다. Martin Luther King 기념 헌정식에 목사 살아있었다 우리에 탐욕 분노 실업자들 시위 정당하다 일깨웠 것이 믿는다”면 입장밝혔다. 시위오바 재선 동력 됐다.

오바마 캠페 과정에 출신 공화 대선 후보 ‘월 동조자’ 부르면 규제개 법안 추진했 대비시키 전략 구사했다. 시간 흐르면 시위 아들었다. 지도부 없었 지향점 막연했 시위였다. 잦아들었지 과정에 결집 분노까 사라지지 았다. 분노 2016 민주 경선에 ‘샌더 돌풍’으 되살아 났다.

딜런 노래 ‘바람’ 미국 잘못 들어섰다각성이었다. 캐스터에 물어보 않아 미국인들 바람이 방향 있었다. 그러어디 것인가. 목적지를 놓 미국인들 갈래 나뉘었다. 무리 샌더스 심으 모였다.

(주1) 2010년 말 튀니지에서 시작돼 이집트와 리비아 등지로 퍼져나간 반독재 민주화 시위.

공화 경선에 유일하 트럼프 독주 저지 후보 크루즈였다.

크루즈 트럼프 ‘매 넘버(공화 지명 확정짓는 대의 1237) 달성 효과적으 막아냈다 공화당에 전당 경선 실시 있었다. 이른 전당대회 contested convention*(주1). 그렇게 됐으공화대선후보 달라졌을지 른다. 트럼프 마땅 공화 지도부 막후에 전당대 의원들 설득, 트럼프 배제한다 복안 세워뒀 때문이다.

크루 상원의원 2016 35 캔자스 경선(당원대회)트럼 후보 25% 포인 꺾으면 트럼 대안으 급부상했다.

캔자스 크루즈 압도적으 지지했을까.

질문 답하 위해서 캔자스 정치권 우경화됐는지 살펴봐 한다.

대평 지대 위치 캔자스 20 초반에 농민조직 강했 진보 땅이었다. 시어도 루스벨트 용어로 ‘복지국가’ 뜻하 ‘신국가주의’ 선포 오사와토미 캔자스주 위치해 있다. 오바 대통령 2011 12 오사와토미 정부 추진했 진보 정책 정당성 확인받 여론 이끌어내 했다. 오바 대통령 (시어도어) 루스벨트 이곳에 (신국가주의) 연설 급진주의자, 사회주의자, 심지 공산주의자라소리까 들었지만, 주창 때문미국 부강나라, 강력민주주 나라 되었다” 역설했다. 지금 캔자스에 급진 도시라는 ‘래디 시티Radical city 지명 있다.

하지 도시화, 산업화 진척되면 캔자스 보수화했다.

농민 줄어들 조직 약해지 캔자스 정치 공화당 주도했다. 캔자스 공화당 실용 수였다. 1996 대선에 공화 후보 지명 Bob Dole 상원의원 캔자스 대표적 중도 공화당원이었다.

1990 캔자스 지형 극적으 변화시키 사건 발생했다. 시위였다. 전국에 시위대 캔자스 위치토 위치 유명 앞에 시위를 시작했다.( 병원에 시술 담당했 George Tiller 박사 2009 5 위치토 교회에 반대론자 숨졌다.) 시위 계기 캔자 주민들 낙태 둘러싸 양론으로 분열했다. 대다수 기독교인들 캔자 주민들 반대 가담하면 이뤄 선거에 낙태 찬성 공화당 중도파 민주 의원들 캔자 정치권에 전원 축출되 말았다. 캔자스에 반대 기치 공화 우파 됐다.*(주2)

과정에 ‘복음주의evangelism 대표되 기독 우파 공화 우파 잡았다. 기독 우파 학교에 진화론 수업하는 반대하고, 학교에 기도 허용해 한다 주장하 낙태, 동성결혼 격렬 반대한다. 우월주의 강하 소수인종이 여성, 이민자 우습 경향 있다. ‘작 정부론’ 신봉하 신자유주의 선호한다. 상식적 미국인들 보기 크루즈도 트럼 못지않 ‘꼴통’이었다.

크루즈 복음주 우파 주자였다. 캔자스 공화 당원 대회 사람들 모여 행사였다.

캔자 경선에서 2위와 격차 문제였 크루즈 승리 당상이었다. 트럼프 낙태옹호단체 ‘가족계획연맹’ 활동 지지하 합법화 지지 전력 있었다. 트럼프 공화당 후보 반대 돌아섰다.

캔자스 노예제 유지하려 농장주 자작농들이 주다. 1859 1016 노예 폐지 무장봉기에 나섰다 교수형 브라John Brown 캔자 출신이다. 북전 노예제 존속시키려 연방군 캔자스 공격 유린 역사 캔자 주민들 노예 혐오 . 인종차별주의자라 딱지 트럼프 애초부 캔자스의 선택 주자였다. 캔자스 공화당원 반대론자는 아니었다. 기독 우파 공화 우파 손잡 시작 시점부 낙태 반대 전역 공화당원들 공유하 가치 떠올랐다. 크루문제 쟁점화하 사정 구보 있었 때문이다. 공화 대선경 기간에 해도 문제 트럼프 ‘아킬레 건’이었다.

정서로 이해 않지 지금 문제 미국 정치권 ‘뜨거 감자’다.

문제 진보 보수 가르 대표적 쟁점이다. 대부분 미국인들 시술 관련, pro-choice(낙태를 여성 선택, 권리 문제 관점) 아니 pro-life(낙태 행위 관점) 입장으 양분 있다. 민주 성향 유권자 대체 낙태 찬성하고, 공화 유권자 낙태 대한다.

연방대법원 1973 웨드Roe vs. Wade 소송에 “임신 3개월 여성 여부 선택 권리 갖는다”면 낙태 합법화하 판결 진영 판결 뒤집 사력 다해왔다. 1980 기독 우파 적극적으 지원 로널 레이 공화 정권 들어서 대법관 연방대법원에서 다수 차지 계기 대법원 요건 까다롭 하는 판결 잇따 내놨다. 과정에 공공병원이 시설의 사용 제한하 18 이하 보호자 승인 의무화했다.

하지 거기까지였다. 합법 판례 뒤집 낙태 금지하는 판결까지 않았다.

그러 보수성 주들 차원에 낙태 어렵 잇따 제정하면 대법 판결 무력화시키 했다. 아직까 연방대법원 입장 바꾸 있다. 연방대법원 20166 20 태아 낙태 금지 텍사스 낙태금지법이 위헌이라 판결했다. 이는 낙태 합법화 웨이드 가장 중요 판결로, 당분 낙태 금지하 차원 제정 제동 걸리 됐다.(트럼프 공화 후보 생명을 존중하 pro-life 대법관 임명 웨이 판결 뒤집겠다고 공약했다.)

‘트럼 대항마’ 부상 크루즈 트럼프 성채 무너뜨리기 문제 공략했지 크루즈 트럼프 달성 저지하 못했다. 공화당 신주류 등장 파티 계열 공화 성향 복음주 세력 출마했다. 부시, 마르 루비오 이후에 이들 밀었 공화 지도부 지원까 받았지 허사였다.

크루즈 무너졌을까. 무엇보 ‘독 장군 행태 반감 샀다. 크루즈는 2012 당선 상원의원이다. 국회 그렇지 미국 의회에서 선수(選數) 중요 기준이다. 선수 기준으 당내 랭킹매겨진다. 상원하원보 전통관행존중하 분위기 강하다. 상원에 1970년생 크루즈 1942 공화 원내대표 맥코넬 맞짱 떴다. 2013 맥코 비롯 공화 지도부 백악관·민주당과 예산 정에 오바마케 예산 포함시키 타협안 마련하자, 루즈 맥코넬 ‘거짓말쟁이’라 부르 강하 비판했다. 공화당 지도부 대해서 공화 유권자 저버리 오바 정부에 투항 인사들 매도했다.

국회 드라마 익숙 우리로서 와닿 않지 의회에서 의원 ‘거짓말쟁이’ 부르 정도 발언도 논란거리 된다. 언론 다룬다. 2009 공화당 Joe Wilson 하원의원 상·하 합동연설 오바 통령 “당 거짓말이야!You lie! 소리쳤다 성명을 했다. 정당 의원이 의회품격락시키 행위 용납하 않는다. 워싱턴특파원으로 사태의 추이를 지켜봤던 필자는 같은 공화 의원들 윌슨 않는 점에 눈길이 갔다. 민주당 의원 규탄결의안까 추진했다. 의사규칙 구체적으 의원들 직·간접적 비난 발언 못하도 규정하 있다. 그러 의원 눈에 크루즈 거침없 언행 시쳇말 ‘싸가지 없는 행태 보였 것이다. 크루즈에 앙심 공화 의원들 았다. 과정에 의원들 크루즈 사과 지지하 않겠다 말했다. 크루즈 공화당 통합 치면 의원들에 러브콜 보냈지 때늦 외침이었다.

크루즈 2012 텍사스 상원의 선거에 대중운동인 세력 전폭적 지원 받았다. 덕분 공화 예비경 과정에 텍사스 부지사 이변 연출하면 전국적으 이름 알렸다. 크루즈 파티 대사(大使)’를 자처하면 오바 정부 건강보험개혁이 이민개혁, 정책 반대하 파티 목소리 대변했다. 공화 주류 정부 정책 반대한다 점에서 파티 다르 았다. 공화당 2010 중간선 과정에서 운동 편승, 다수 탈환 성공했다. 의원들 공화당 하원 유입됐다.

하지선명성 투쟁시기필요덕목이다. 2010 중간선 공화당 비타 노선으 일관하 의원들에 발목 잡혀 오바 정부와 타협 불가능 정당으 변해갔다. 공화당 우경화됐다. 의원들은 공화당 골칫거리 됐다. 운동 과도 지출 반대하면 시작 운동이었는 우파 개입하면서 사실 오바 정부 반대하 운동으 변질됐다. 종교 우파 기독 복음주의 인종주 세력까 파티 흘러들어갔다. 2013 연방정 사태 야기 주범 루즈 필두 의원들이다. 크루즈 오바마 집행예산 2014 회계연 예산안 포함되 위해 21 19 필리버스터 했다. 크루즈 전국 인물 상했지 공화당 연방정 책임론 휩싸였다.

파티 원리주의 노선 공화 지도부 바라는 진로 아니었다. 공화 지도부 인구 늘어나 히스패닉 소수인종이 중도층 끌어안 않고서 공화당 미래 생각했 때문이다.

그런 세력 자신들 노선대 운영하 않는다 이유 2014 6 공화 원내대표 지역 예비선거에 낙선시키 반란까 일으켰다. 희생자 2010 간선거에 공화당 승리 원내대 자리 올랐 에릭 캔터다. 다수 원내대표 예비선거에 낙선 의회 역사 초유 참사였다. 캔터 은퇴 선언했다. 사건을 계기 공화 주류 세력 사이 멀어졌다. 2008공화 대선후보였 점잖 매케 상원의원 크루즈 ‘미 자식wacko bird 이라 해댔 정도였다.

*(주1) 공화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과반 대의원을 확보한 주자가 나오지 않을 경우 대선후보를 선출하는 전당대회. 현행 공화당 룰에 따르면 전당대회 대의원들은 1차 투표에서는 원칙적으로 각 주의 경선 결과대로 표를 던져야 한다. 1차 투표에서도 과반 후보가 안나오면 2차 투표부터는 아무 후보에게나 자유롭게 투표할 수 있는 대의원들이 늘어난다. 이때부터는 공화당 지도부 등 유력 정치인들이 개입, 막후에서 중재에 나선다. 그래서 '중재 전당대회' brokered convention 라고도 한다.

*(주2) 왜 가난한 사람들은 부자를 위해 투표하는가, 토마스 프랭크(김병순 옮김, 2012), 갈라파고스, p119-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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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통합당이 ‘김종인 비대위’ 문제로 갑론을박하던 20일 오후 논란의 당사자인 김종인 대한발전전략연구원 이사장을 만나러 갔다. 4·15 총선에서 총괄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아 통합당을 지원했던 김 이사장은 서울 광화문 대한발전전략연구원에서 책을 읽고 있었다. 인터뷰 도중 쉴 새 없이 휴대전화가 울렸다. 그는 보수, 진보 정당을 가리지 않고 선거 때마다 위기에 처한 정당의 구원투수로 등장해 선거를 승리로 이끌었다. 2012년 총선과 대선에선 새누리당(통합당 전신)을, 2016년 총선에선 더불어민주당을 살려냈다. ‘닥터K’라는 별칭이 생겼다. 하지만 이번 총선에서는 ‘김종인 마법’이 통하지 않았다.

―민주당이 180석 대승을 거뒀다.

“문재인정부 3년간의 정책 결과만 보면 여당이 선거에서 이길 수 있는 요인은 하나도 없었다. 그런데 코로나19 사태가 터졌다. 그런 천재지변이 나면 항상 집권세력에 대해 국민이 신뢰를 갖고 그걸 의지하려는 성향이 생긴다. 국민 모두에게 긴급재난지원금 주겠다는 말도 여당 호재로 작용했을 것이다. 독일은 무조건 국민 일인당 5000유로씩 지급했다. 선거 때 돈을 푸는 계기가 생기면 그게 유리하게 작용한다는 건 틀림 없다. 독일 유학 중이던 1965년 독일 총선이 있었다. 당시 기민당 루트비히 에르하르트 총리가 대학생들에게 매월 용돈을 주겠다는 공약으로 이겼다. 그런 식으로 나가다가 재정이 악화돼서 결국 물러났다.”

―통합당도 긴급재난지원금 주겠다고 하지 않았나.

“야당 이야기는 잘 안 먹힌다. 유권자들은 집행 능력도 없는 야당이 무슨 힘으로, 하는 생각을 하면서 야당 공약을 안 받아준다.”

―코로나19 변수뿐이었나.

“민주당이 빅데이터를 이용해서 선거구별로 성향 파악도 하고 준비를 철저히 했다. 공천 잡음도 거의 없었다. 그러다 선거 막판에 돈(긴급재난지원금)을 준다는 한 방이 나왔다. 반면 통합당은 선거 준비가 철저하지 못했다. 공천도 당선 가능성을 따지며 세밀하게 하지 못했다. 적재적소에 맞춤형 공천을 못했다. 공천잡음도 너무 많았다.”

―올 1월에 민주당 공천 작업에 관여한 고위 인사를 만났는데 민주당이 지역구 130석이면 대승이라고 했다.(이번 총선에서 민주당은 지역구 당선인 163명을 배출했다.)

“그 당시엔 코로나 사태가 이렇게 전개되리라곤 상상도 못했겠지. 전 세계가 다 그렇다. 코로나 사태 와중에 집권당 지지율이 엄청나게 오르고 있다. 이탈리아는 내각이 잘 못하는데 주세페 콘테 총리 지지율이 70% 이상이다. 독일 앙겔라 메르켈 총리 지지율도 80%가 넘는다. 그런 현상이 우리나라 총선에도 영향을 미친 건 사실이다. 코로나 사태가 민주당 대승에 가장 크게 기여했다.”

―총선이 끝나고 정치적 지형 자체가 진보 위주로 재편됐다는 분석이 많이 나왔다. 특히 50대가 진보로 기울었다는 것이다.

“정확한 분석이 아니라고 본다. 이번 선거에서도 정당투표율을 보면 미래한국당(통합당의 비례위성정당)이 앞섰다. 지역구 투표 득표율에서도 차이가 크지 않다. 진보가 주류되고 보수가 비주류되고 하는 식의 분석은 너무 피상적이고 깊게 생각하지 못한 사람들의 이야기다.”

(이번 총선에서 민주당의 비례연합정당인 더불어시민당과 미래한국당의 정당득표율은 각각 33.10%, 33.84%. 지역구 후보 득표율은 민주당 49.9%, 통합당 41.5%였다.)

―통합당의 가장 큰 문제는 뭐라고 보나.

“시대 흐름에 대한 파악이 제대로 안 돼 있다. 유권자 정서는 항상 변하는데 그것에 제대로 적응을 못한다.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당했을 때 새누리당도 사실은 탄핵을 당한 것이다. 그런데 그런 인식을 하지 않았다. 왜 그렇게 됐는지를 놓고 솔직하게 잘못한 것은 잘못했다고 시인을 해야 하는데 지금까지 그걸 안 하고 있다. 보수 정권을 담당했던 두 대통령(박근혜, 이명박)이 법의 심판을 받고 있다. 그런데 통합당은 ‘보수’만 강조하니 국민이 짜증날 수밖에 없다.”

―‘보수 세력’만 남고 ‘보수의 가치’는 사라졌다는 얘기인가.

“나는 보수라는 말 자체를 별로 좋아하질 않는다. 세상이 옛날하고 달라졌는데 무슨 보수, 진보를 따지나. 그런 진영논리로 끌고간다는 게 잘못이다. 막연하게 보수만 부르짖는다고 국민이 동조한다고 생각하면 착각이다. 진보도 마찬가지다. 진보라는 가치로 실질적으로 실현하고자 하는 바가 뭔가. 5000만 국민을 누구는 진보, 누구는 보수라고 구분하면 안 된다. 이번 선거에서 나타난 유권자 성향이 다음 대선에도 이어진다고 생각하면 큰 착각일 것이다.”

―2022년 대선에선 다른 결과가 나올 수 있나.

“다음 대선은 완전히 다를 수 있다. 코로나 사태 이후 전 세계적으로 경제가 상당히 침체상황에 빠졌다. 일각에서 나오는 V 자 상승 예측은 너무 낙관적이라고 본다. 유세에서도 계속 말했지만 현 정부의 경제 정책 실력으로 봐선 코로나 이후 경제문제를 해결할 능력은 없다고 본다.”

―보수가 대선에서 부활할 수도 있다는 얘기로 들린다.

“통합당도 결국은 생존의 위기에 처한 것 아닌가. 생존위기에 처하면 살기 위해 몸부림칠 수밖에 없다. 지금까지 무엇을 잘못했는지 뼈저리게 느끼고 그 반성 위에서 새롭게 구축하면 기회가 있다. 그러지 못하면 영원히 사라지는 거다.”

―통합당 비대위원장을 맡게 된다면 어떻게 변화시키고 싶나.

“선거가 끝난 다음 날부터 내 일상으로 돌아간다고 이야기한 사람이다. 솔직히 이야기해서 나는 뭘 하겠다는 뚜렷한 목적의식이 없다. 그런데 (통합당 내에서) 무슨 내 이름을 자꾸 거론하고 그런 상황 자체가 불쾌하다.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 통합당의 생리는 2012년에도 경험해봤다. 아마 꽤 오래 논쟁하다 결론도 안 나고 적당히 넘어갈 가능성도 있다. 그러면 통합당은 다음도 기약하기 힘들어진다.”

―여당 180석 시대가 열렸다.

“숫자가 많다고 좋은 것도 아니다. 180석 있으니 마음대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게 쉽지 않다. 내년이 되면 대선 국면으로 간다. 과거 노태우정부 때 보수대연합인 3당합당이 이뤄졌다. 그때 여당이 217석이었다. 그래도 여당이 특별히 뭘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거대 의석을 만들어낸 여당이 그 힘으로 무슨 일을 해야 한다고 보나.

“180석이 됐으니 나라가 좋은 방향으로 가도록 해야 한다. 우리 경제를 위해서 제일 중요한 게 노동관계법을 정비하는 일이다. 앞으로 진행될 경제구조 개편,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걸맞은 개혁을 하면 거대 여당의 탄생이 긍정적이라고 본다. 하지만 여당이 그런 일을 하기는 힘들 것이라고 본다. 민주노총, 한국노총이 반대할 텐데 여당이 그걸 하겠나.”

―대한민국이 살려면 ‘제왕적 대통령제’를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우리나라 권력은 절제를 안 한다. 여태까지 성공한 대통령이 없었다. 말년이 모두 비참하게 끝이 났다. 그럼 현재 대한민국 제도에 문제가 있는 것만큼은 틀림없지 않나.”

―어떤 권력구조로 가야 하나.

“내각제로 가는 수밖에 없다. 그런데 대통령하고 싶은 사람은 내각제를 죽어도 안 하려고 한다.”

―국민에게도 의식과 판단의 ‘창조적 파괴’, ‘각성의 대전환’이 필요하다고 했다.

“정치인뿐 아니라 국민도 각성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내 고향사람이라서 찍어주고 아니라서 안 찍어준다. 권력을 비판적으로 평가하지 않고 맹목적으로 추종한다. 그러면 나라가 발전을 못한다. 재난지원금 준다는 정당에 180석을 몰아줬다.”

―어떤 지도자가 필요한가.

“보수에서 젊은 사람이 나왔으면 좋겠다. 1970년 이후에 출생한 사람들 중에서 대권 후보가 나와야 한다. 지난해에도 프랑스의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 같은 젊은 지도자가 등장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런 지도자가 제3세력이 돼서 거대 양당을 좀 허물어뜨려야 한다고 했는데 젊은 지도자가 나오질 못한다. 꿈적대던 사람들도 기껏해야 거대 정당에 붙어서 국회의원하는 걸로 마무리돼버렸다.”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가 ‘마크롱 혁명’을 말하면서 나오지 않았나.

“그 사람은 이미 시험이 끝났다. 20대 총선에서 제3세력으로 38석이나 얻었는데 그걸 계속 발전시키지 못했다. 더 이상 이야기할 게 없다.”

정리=김예진 기자 yejin@segye.com, 대담=조남규 정치부장

김종인 대한발전전략연구원 이사장은… ●서울 출생(1940) ●중앙고·한국외국어대학교 ●독일 뮌스터대학교대학원 박사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 ●노태우정부 보건사회부 장관, 청와대 경제수석 ●제11·12·14·17·20대 국회의원 ●국민경제자문회의 자문위원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 ●새누리당 박근혜 대선경선캠프 공동선대위원장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 ●21대 총선 미래통합당 총괄선거대책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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