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인층 트럼 현상 원인 복합적으 작용 과이지 저변에 우월주의 자리잡 있었다.

트럼프 힐러리 과정 되돌아보 사람 1960년대 미 사회 소용돌이치 민권운동 베트남전 반대 과정에 장소 있었다.

1947년생 힐러리 대학 전까 살았 일리노이 파크 Park Ridge 중산 백인들 보수적 도시였다. 주민들 대부 공산주의 정부 반대하 서사이어티John Birch Society 멤버였다. 서사이어티 오바 초기 생겨 대중운동 파티 할아버지뻘 단체였다.

힐러리 클린턴 모녀. 힐러리클린턴 인스타그램

열렬 공화당원이었 아버 로댐 프랭클 스벨트 트루먼, F. 케네 민주 대통령 싫어했다. 로댐 전형적 중서 중산층으 조그 사업체를 운영하면 자립 절제, 책임 모토 살았다. 공산주의자, 부패 정치인, 부도덕 사업가 싫어했다.

힐러리 아버지 인정 노력하 과정에 저절로 공화당원 됐다. 어려서부 정치 관심 많았 힐러리 고등학 때부 공화 서클 가입 활동했 1964 골드워 공화 후보 선거운동원으 뛰었다. 웰즐리여 절에 초반에 공화 서클 주도했다. 하지 민권운동 트남전 운동 힐러리 변화시켰다. 힐러리 2 서클 탈퇴했다. 힐러리 자서전에 3학년 돼서는 1968 민주 대선경선 뛰어 반전주의 매카 Eugene McCarthy 상원의원 지지하됐다 밝혔다. 1968 4 발생한 사건 힐러리 공화당 결별하 계기 됐다. 화당 힐러리 민주당원으 전향했다.

힐러리 클린턴(가운데 안경쓴 학생)이 웰즐리여대 학내 시위에 참가하고 있다. -힐러리클린턴 인스타그램

힐러리 학생들 마찬가지 극심 성장통 었다. 누구이고, 무엇 되어 하는냐 고민이었다. 러리 친구에 편지에 “얼 다수 사람이 되기보다 사람들 이끄 지도자 싶다” .*(주1) 힐러리 앨린스Saul Alinsky 만남 특기 만하다. 린스키 시카 빈민가 무대 활동했 지역사회운동가다. 러리앨린스키 지역사회조직운동 주제졸업논문 쓰면서 앨린스키 인연 된다. 앨린스키 힐러리에 일자리 안했으 힐러리 거절했다. 체제 변화시키 방법 생각 달랐다. 힐러리 자서전에 “앨린스키 밖에서 변화 만들어 있다 믿었지 내에서 변화가 가능하다 생각했다” 썼다.

힐러리 앨린스키 제안 받아들여 활동가 시작했다 콜럼비 대학 졸업 활동가 되겠다 시카고 오바마 만났을지 모른다. 하지 러리세상변화시키 위해권력잡아한다생각했다. 힐러리 앨린스키 제안뿌리치 예일로스쿨 입학했다. 오바마 시카 빈민가에 앨린스키 걷다 하버드 스쿨 진학했다.

2016 기간 논객들 힐러리 ‘앨린스키 제자’ 표현하면 힐러리 성향 부각시켰다. 시절 안에 점진 변화 이루 싶어했 힐러리 밖에서 제도 뒤엎으 앨린스키류 운동가라니, 앨린스키 배꼽 일이었다.

예일 로스 시절에 힐러리 진보운동 참여했다. 베트 운동 주도했 급진적 흑인운동 Black Panthers 동조했다. 하지 한계 넘어서지 않았다. 끝까지 개혁가 남았다.

예일대 로스쿨 시절의 빌과 힐러리

1946년생인 트럼프는 건축업으로 성공한 아버(프레드 트럼Fred Trump) 덕분 퀸스 대저택에 자라 금수저 출신이다. 백인들 동네에 자라났다. 프레드 트럼프 버릇 고치 1959 트럼프 뉴욕군사학교 보냈는데 트럼프 의외 군사학 생활 적응했다.

뉴욕군사학교 시절의 도널드 트럼프. 왼쪽은 아버지 프레드 트럼프, 가운데는 어머니 메리 트럼프. -도널드 트럼프 인스타그램

1964 뉴욕군사학교 졸업 트럼프 브롱크스 있는 포드햄대학입학했으 펜실베이니 파이낸 스쿨 편입했다. 1968 스쿨 졸업 아버 사업 돕다 1973부동산임대업 뛰어들었다. 기반으 부동산재벌 성장했. 위기겪으면 자신부동제국키워갔다. 개인성취, 확장국가사회도움 있다믿고 살아 전형적 사업가다. 부동산임대업 하면 흑인에 임대해주 않았다 이유 법무부 고소 있다. 흑인 민권운동 트럼프 생각 무엇이었는 대목이다.

1964 흑인들 인권운동사 기념비적 해였다. 케네 대통령 1963 의회 제출했 민권Civil Rights Act 산고 의회 통과했다. 형태 인종( 흑인) 차별행위를 금지 민권법 흑인노예들 세기 넣은 흑인들 권리장전이었다.

그들 가시밭길 걸어왔다. 흑인노 드레 Dred Scott 1856 자신 주인 아이 에머Irene Emerson 부인에 주고 자유 연방대법원 않았 다. 연방대법원(대법원 Roger Taney) 1857 3 ‘드레드 샌포드Dred Scott vs Sandford 사건( 에머 부인 동생 샌포드 당사자 지명했다) 7 2 스콧에 판결 렸다.

대법원 판결문에 “흑인헌법에 citizen이라 어휘로 지칭 계급 포함되 않으 헌법 제정 그들 포함시 의도조 없었 때문 그들 미합중 시민에 보장하 법상 권리 가운 주장 자격 없다” 판시했다. 그러면 “스콧 법원 소송 자격조차 없다고 보아 한다” 덧붙였다. 한마디 흑인 인간으 없다는 취지였다.

노예제 지지했 주에서 환호성 터져나왔으북부의 노예 폐지론자들 격분했다. 판결 연방의회 문제 해결 쏟았 노력 수포 돌아가게 했다. 노예제둘러 남북 깊어졌다. 역사 1860 대선에 노예 폐지론자 공화당 에이브러 링컨 당선되 이듬 조지아 8 연방에 탈퇴, 남북전American Civil War 발발하 비극 연출하됐다. ‘드레스콧 샌포드 판결 ‘역사 최악 판결’이라 오명 됐다.*(주2)

전쟁에 북부 승리 의회 노예제도 지하 흑인들 투표권 인정하 흑인 권리 강화하 수정헌법(13, 14, 15) 통과시켰다. 그렇지 주에서는 유무형 흑인차별 지속됐다. KKK단으 대표되 백인우월주 단체들 흑인 불법적 외에 이른 ‘격리하되 동등하게separate, but equal 대우한다 정책 도입됐다. 1892 백인 차량 탔다 수감 플레Homer Plessy 루이지애나주 법령 위헌이라 소송 제기했으 연방대법원 8 1 루이지애나 법령 합헌이라 결했다. 계기 ‘격리하 동등하 원칙’ 근거 갖게 됐으 흑백분 정책 학교 전반으 급속 확대됐다.

흑백분 관행 연방대법원에 제동 때까 반세 시간 필요했다. 학부모 브라 “흑 학생 백인 학생 분리해 교육하도 정책 위헌”이라면 캔자스주 토피카 교육위원회 상대 제기 ‘브라 토피카 교육위 Brown vs. Board of Education of Topeka사건판결(1954)에서다. 연방대법원 (대법원 Earl Warren) 만장일치 “격리 차별, 분리 본질적으 불평등하다” 판시했다. 이로 ‘격리하 동등하게’라 관행 법적으 선고 받았다.

그렇지 판결 현실에 실현되기까지 진통 않았다. 주들 정책 유지하 연방대법 판결 공공연히 저항했다.

아칸 주지 퍼버Orval Faubus 1957 9명이 일색 리틀 센트 고등학교 등교하려하 폭력사태우려하면 방위군 학교 배치했다. 아이젠하 대통령 공수부대 투입, 흑인학생들 보호하 조치 취해야했다. 남북전 재건 연방정부군 흑인 권리 보호하기 동원 이번 처음이었다.

1963년에 연방정부 사법부 압력 앨라배 대학교 3 학생들 입학 허가하 백인우월주의자인 앨라배 월러George Wallace 자치권 내세우 흑인 학생들 세우 촌극 연출했다 소식 들은 F. 케네 대통령 방위사령관 학교 월러스 물러나도 했다.

1955년에 재봉사 파크Rosa Parks 백인 승객 자리 비우라 운전사 요구 거절하 체포되 역사 사건 발생했다. 흑백분 관행 뒤엎 기회만 엿보 지도자들 안타 운동 시작, 연방 대법원으로부 버스 좌석 분리 위헌이라 판결 얻어냈다. 흑인들 시위앞장섰 지도자 사람마틴 목사다. 흑인들 중심으 뭉쳐 인종차 철폐운동 펼쳐나갔다. 목사 1963 828악관 의회 바라 보이 워싱턴DC 기념 앞에 “나에 있다I Have a Dream 외쳤다. 1964 의회에 통과된 민권법 흑인들 눈물 , 얼룩 것이었다.

승객 좌석 파크스 행동 작지 위대 이었다. 그로부 반세기 2008 대선에 오바마 흑인 대통 시대 열었다. 노예 백악관 대통령 주인으 입성 것이다.

2008 국면에 미국 Jay-z 오바 대통령 헌정 ‘나 대통령 흑인My president is black 이런 가사 나온다.

Rosa Parks sat so Martin Luther Could walk, Martin Luther walked so Obama could run, Barack Obama ran so all the children could fly.

파크스 앉았 때문 루터 있었고, 루터 걸었 때문 오바마 있었다네,

오바마 달렸 때문 아이들 됐다네.

Run 단어 ‘출마하다’ 있다 착안해 민권 운동 역사 sit, walk, run, fly 4 풀어 가사 품이었다.

케네 대통령 암살당 대통령직 승계 존슨 형적 카멜레 정치가였다. 하원의 자신 지역구 () 루스벨 성향 뉴딜정 지지자들 손잡 진보 노선 걸었으 텍사 전체 선거구 상원의 시절에는 당선 인종차별주의자와 손잡 민권보호법 반대했다. 그러 1950 대통 시작하면서부터 걸었다. 대통령 진보파 문제에 어떤 입장 취할 불안했다. 하지 존슨 1963 1127상하 합동회 연설에 케네디 숙원이었 민권법 통과시키겠다 약속하 진보파 불안 불식시켰다. 고향 텍사스에서 정치인(상원, 하원의원, 부통령) 잔뼈 존슨 막후정치의 대가이 설득 귀재였다. 대통령 되고 정치력 민권법 통과 투입했다.

민권법 반대 상원의원 골드워터 비롯, 8 과했다. 남북전 100 민주당 지지했 스’(Deep South. 미시시피, 루이지애나, 조지아, 사우 캐롤라이나, 라배마) 1964 대선에 공화 지지 돌아 골드워 민권 입장 고려하 않고 설명하 힘들다. 골드워 대선에 승리 사우스 제외하 고향 애리조나 유일하다. 1964 대선 남북전 민주 텃밭이었 변화예고신호탄이었다. 대통령 1964 민권법에 서명 자신 보좌관이었 모이어Bill Moyers “이 남부공화당 것”이라 말했다. 예견현실화 하기까지 시간 걸리 않았다. 남부 공화당 땅이됐고, 2016 대선에서 트럼프 선택했다.

1992년부 2012년까 6 대선 돌아보 민주 펜실베이니 18 워싱턴DC 연전연승했다. 18 ‘민주 장벽Blue Wall 불렸다.

그런 2016 대선에서 트럼 후보 민주 성향 동자층 흔들면 민주 장벽 일각 허물어뜨렸다. ‘러스 지역 산재 펜실베이니아, 미시간, 위스콘신주 대표적이다. 1992 2012 대선까 6 선거에 민주당 5승리 아이오와주 4 승리 오하이오 민주 아성도 트럼프 점령당했다.

공화 과정에서 무슬림이 히스패닉 희생양으 삼는 트럼프 편가르 전략 노동자층 결집시키 효과 . 트럼프 본선 시작 이후에 전략 고수했다. 트럼프 지지층 45 이상 노동자층으 조사됐다. 투표에서 이들 투표율 낮았다. 그래 본선 승리 위해서 공화 온건파 물론이 중도층 무당파 표도 필요했다. 경합주에서 중도층 무당파 향배 중요했다.

공화 지도부 트럼프 공약 순화해 공화 텐트 넓어진다 봤다. 하지 트럼프 백인 결집 쪽으 방향 잡았다.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대선후보가 2016년 11월8일 노스캐롤라이나를 찾아 유세를 하고 있다. 트럼프인스타그램

트럼프 공화 전당대회에 연설 ‘마 웨이’ 선언했다.

체류추방, 멕시국경장 등은 히스패 유권자 자극 것이지 트럼프 개의 않았다. 경관흑인에 총격 사건 차원저격범 경관들 살해 사건으 인종갈등 고조되 시점 트럼프 ‘법 질서’ 강조했다. 반발 감수하겠다 태도 역력했다. 트럼프 이러리라는 것 부통 러닝메이트 마이 Mike Pence 인디애 주지사 지명 예상됐다. 주지사 여성이 소수인 배려와는 거리 대표적 정치인이었다.

트럼프 전용기

공화 지도부 트럼프 노동자 결집 주력했 공화 전략 본선용으 수정 것으 기대했다. 본선은 유권자 위주 참가하 공화 경선과 게임이 문이다. 하지 트럼프 전당대회에 중심 선거전략 수했 아니 부통 러닝메이트 주지사 지명하면서 전략 강화했다.

2016 공화 전당대회 일색 잔치 치러 당연 귀결이었다. 허핑턴포스트지 대의 비율 2472 49( 2%) 불과했다 보도했다. 우월주의 골드워터 후보 선출했 1964 공화 전당대회에서 대의 비율 1% 그쳤다.

히스패닉 유권 잃더라 결집시키 있다 트럼프 셈법이었다. 그러려 후보 힐러 소수인종 주자로, 경찰 주축 공권력 반대편으로, 남성 적으 몰아 필요 있었다. 공식 전당대회 비전, 통합 외쳐 공화 전당대회와 오바 행정부 실정 미국 암울 현실 부각시 발언으 채워졌다. 연사들 클린 비판 대부분 할애했다. 공화 전성시대 로널 레이건이 소수인종 포함 텐트 전략 구사 주니 등과 사뭇 전략이었다.

대선 ‘백 () 소수인종’ 대결구도 몰아 트럼프 처방 통했다.

유권자 결집하 누구 대통령 만들어 있다. 지난 50 유권자로부 트럼 수준 압도 지지 1984 공화 후보 재선 도전했 로널 레이 대통령 유일했다. 레이건 트럼프 백인들 하나 뭉치 후보였지 방법 달랐다. 레이건 통합 희망 연설 통해, 트럼프 분열 갈등 독설 백인들 편으 만들었다

입력 : 2019-09-24 23:21:18 수정 : 2019-09-24 23:21:19

최근 노모가 시내 병원을 다녀오다 낙상했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크게 놀랐다. 구순을 바라보는 노모에게 몇 십리 떨어진 병원을 오가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혈압약 정도는 집에서 의사로부터 원격진단을 받은 뒤 배송받으면 좋으련만 현행법상 이런 원격의료 행위는 위법이다.

그동안 정부가 손을 놓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고령층이 많고 의료환경이 열악한 지역을 중심으로 원격의료 시범사업을 추진해 왔다. 거동이 불편한 환자가 인근 보건진료소를 찾아 혈압이나 혈당을 측정한 뒤 그곳에 비치된 원격의료시스템을 통해 의사가 있는 보건소로 전송하는 방식이다. 보건소 의사나 간호사는 관내 보건소 전문의와 협진을 통해 해당 보건소를 찾은 환자에게 보다 질 높은 의료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 그마저 여의치 않은 환자라면 가정에서 직접 혈압 등을 측정해서 스마트폰 앱으로 보건소 의사에게 전송한 뒤 서비스를 받는다. 원격 처방전이 있으니 보건소에 비치된 약도 바로 받을 수 있다. 바로 필자의 노모가 간절히 원하는 의료서비스다. 필자의 노모뿐일까.

보건복지부가 2016년 전남 완도군, 장성군, 옹진군 주민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이 같은 원격의료는 참여 주민의 83%가 만족해한 것으로 조사됐다. 88.9%는 건강관리에 도움이 됐다고 답변했다. 그 전해 실시한 원격의료 시범사업 평가에서는 참여 주민의 만족도가 10점 만점에 8.3점으로 집계됐다. 원격의료 관련 합병증 발생, 이상반응은 없었다. 이런데도 원격의료는 먼 나라 얘기다. 박근혜정부의 정책이라서 폐기된 것도 아니다. ‘스마트진료’로 이름이 바뀌긴 했지만 문재인정부에서도 원격진료는 주요 정책 과제다.

올 들어서는 중소벤처기업부가 원격진료를 ‘규제개혁’ 목록에 포함시키면서 새로운 국면이 열렸다. 중기부는 강원도를 디지털 헬스케어 규제자유특구로 지정하면서 원격의료 시범사업을 시작했다. 박근혜정부 당시 이미 합격판정을 받은 바로 그 원격의료다. 보건복지부도 도서벽지나 원양선박, 교도소, 군부대 같은 의료 취약지에 한해 원격의료를 허용하는 내용의 의료법 개정을 2019년 주요 업무계획에 포함시키며 발을 맞추고 있다. 그렇지만 이번에도 결과는 낙관하기 힘든 상황이다. 강원도 시범사업은 참여 의원이 거의 없어 사업이 유명무실해졌다. 의사단체의 조직적 반발 탓이다.

의사단체는 원격의료를 ‘핸드폰진료’로 폄하하면서 오진 가능성, 과잉 진료, 대형병원 쏠림현상 등을 반대 이유로 들고 있다. 그런 우려가 나올 수 있지만 원격의료를 반대하는 논리로는 궁색하다. 전국의 수재들만 모인다는 한국 의료계다. 우리나라는 통신속도와 반응속도가 월등히 향상된 5세대 이동통신(5G)을 세계 최초로 상용화한 나라다. 이만한 인재와 기술을 갖추고도 원격의료의 리스크를 최소화할 수 있는 서비스를 개발하지 못한다는 게 말이 되나. 미국이나 일본은 의료 후진국이라서 원격의료를 허용한 게 아니다. 우리보다 앞서 고령사회로 진입한 일본은 병원 중심에서 자택 진료 등 지역사회 중심으로 의료체계를 전환시켰다. 우리도 이제는 의사와 간호사, 사회복지사, 요양보호사가 팀을 이뤄서 종합적인 의료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 농·어촌이나 격오지 같은 의료 취약지에서 이런 서비스가 가능하려면 원격의료가 허용돼야 한다.

정보통신기술이 발달하면서 민간 보험회사와 헬스케어 업체들도 국민의 건강을 관리하는 주체로 새롭게 등장했다. 해외에서는 환자의 건강상태를 체크해서 의사에게 전달하는 웨어러블 기기들이 속속 출시되고 있다. 보험사들은 이런 기기들을 활용해서 고객들에게 다양한 헬스케어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헬스케어 시장이 날로 커지는 추세이지만 아직은 ‘의료행위의 주체는 의료인’이라는 의료법 규정에 막혀 한정적인 서비스에 머물고 있다. 각종 규제가 의료서비스의 질은 높이지 못한 채 관련 산업의 혁신만 옥죄고 있는 꼴이다.

지금의 의료계를 바라보면 독점으로 이권을 챙겨온 중세 유럽의 동업자조합(길드)이 떠오른다. 진입 장벽을 높이 쌓아놓고 기득권을 굳게 지키던 길드는 근대가 열리면서 무너졌다. 길드로 대표되던 독점체제가 포용적 제도로 바뀐 이후에야 산업혁명이 가능해졌다.

조남규 산업부장

*2019년 가을, 이 글을 쓸 때만해도 원격의료는 의료 단체의 반대에 부딪혀 시범 정책마저 고사될 위기였는데 2020년 전 세계를 엄습한 신종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사태라는 비상한 국면 속에서 원격의료가 한시적으로 시행되면서 원격 의료 물꼬가 트였다. 우리 정부도 2020년 4월29일 비대면 관련 산업을 육성하는 차원에서 원격 의료 도입을 추진하기로 발표했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날 "원격의료와 원격교육, 온라인 비즈니스 등 비대면 산업은 현재의 위기를 기회로 활용하는 측면이 있다. 규제 혁파와 관련 산업 육성에 각별히 역점을 두겠다"고 밝혔다. 이번엔 원격 의료가 시행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2020년 5월13일 김연명 청와대 사회수석이 원격의료 애드벌룬을 띄웠다. 2020년 4.15총선에서 177석의 거대 여당이 된 더불어민주당 당선인 대상 강연에서다. 이 사실이 언론에 보도되자 의료계가 반발하는 등 파장이 생겼다. 그러자 그 다음날 민주당 조정식 정책위의장은 "김 수석이 코로나19 때문에 의료 혜택을 받지 못한 분에 대해 비대면 의료를 했더니 성과가 있다고 이야기했던 것인데, 이는 원격의료를 본격적으로 추진하는 것과는 별도의 이야기다. 원격의료보다는 비대면 의료라는 용어를 쓰는 게 맞다"고 진화에 나섰다.

*원격의료와는 별개로 당청은 2006년부터 3058명으로 동결된 의대 정원을 500명 확대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2006 개봉 《크래시 Crash 인종차별주의자 백인 라이언 라이언 파트너 핸슨 등장한다. 핸슨 이언 인종차 행태 경멸했지 청년 호주머니 손을 꺼내려 것으 오인, 청년 사살하 만다. 영화 사회 고질병 인종차 문제 다루면 백인들 무의 잠재 편견 섬세 터치 그려 수작이었다.

2016 대선에서 경찰 저격범 사건 잇따 발생하면 미국 해묵 갈등 촉발시켰다. 대선판 변수 불거지면 출렁거렸다. 대선에 변수 유난 강하 작동되 있었다. 2008 대선 그랬다. 민주당 오바마 내세우자 소수인 유권자 투표율 높아졌다. 히스패닉·흑 인구 많은 플로리다주 2000, 2004 대선에 공화 주니 부시를 선택하 부시 대통령으 만들어줬지 2008 오바마 쪽으 기울었다. 오바마 민주 과정에 흑인들 지지이끌어내 힐러리호() 침몰시켰다. 본선에서 바마 플로리다 비롯 경합Swing State 휩쓸 최초의 대통령 됐다. 소수인종 힘이었다.

히스패 유권 늘어나면 소수인종 향력 커졌다. 히스패 유권자 2008 2000 정도였으 2016년에 2730 것으 추산됐다. 경합주인 플로리다 네바다, 콜로라도주에 히스패 유권자 비중 졌다. 노스캐롤라이나 펜실베이니아, 버지니아주 히스패 권자 5% 된다. 5% 미미 같지 승부에 결정적이다. 노스캐롤라이나 5% 20 넘는다. 2008,2012 대선에 노스캐롤라이나 차이 승부 갈렸다.

2016 대선 ‘백 우월주의’ 부추기 트럼프 공화당 대선후보 되면 변수 도드라졌다. 트럼프 공화 경선 과정에 백인 소수인종 갈라치 전략 구사하 백인표 결집 나섰다. 히스패 불법체류자들 추방하 멕시코와 국경 장벽 설치하겠다 트럼프 공약 유권자 이에 트럼 현상 만들어냈다. ‘미국 주인 백인’이라고 생각하 유권자들 쏟아 트럼프 대선후보 밀어 올 ‘트럼 현상’ 일면이었다. 하지 트럼프 동시 건드렸다.

히스패닉 유권 등록 2012 때보 증가했다.

2016 대선에 히스패닉 민주 성향 강해졌 히스패닉 투표율 힐러 당선 기여했다. 오바 정부 이민개혁안은 체류자 사면해주자 아니었다. 이민자 더라 세금 어기 성실 살아 람들사면하 영주혜택부여하자 것이었다. 여론대체 이민자라 사면해줘 않느냐 쪽으 움직였다. 트럼프 나타나 이민개혁안 찬물 끼얹었다.

트럼프 대선‘백 소수인종’ 대결구도 몰아갔다. 유권 비율 2000 78% 2012 71%, 2016 69%(추산) 추세지 아직 백인 다수다. 전체에서 인구 64%, 히스패닉 12.5%, 흑인 12%, 아시아계 5% 된다.(2010 인구센서 기준)

소수인종 그동 플로리다 경합 선거 좌지우지할 있었 백인표 민주당 공화당으 갈렸 때문이다. 수인 영향력 사실 백인 분할 반사효과 불과 이었다. BBC방송 텔레그래프2016 대선 참여 유권 25000 대상으 조사 결과, 유권자 58% 트럼프를, 37% 힐러리 지지 것으 나타났다.

트럼프 공화 대선후 지위 뒤에 히스패 때리기 멈추 않았다. 통상적 후보라 과정에 제시했 강경 공약 순화시키 중도 견인 나섰 것이다. 그런 트럼프 달랐다. 멕시코주 방문 자리에 공화 소속 멕시코 지사 공격하 라이 하원의장 세웠다. 인디 혈통설이 나도 민주 엘리자베 상원의원 ‘포 혼타스(개척시 인디 ) 인종차 표현 사용하 비아냥댔다. 트럼 소송 진행하 곤잘레 쿠리 연방판사 냥해 히스패 혈통이라 편파적 것이라 예단했다. 판사 미국에 태어 시민권자 멕시 마약조 정에 위협까 인물이었는데 트럼프 공격은 피해가 못했다.

트럼프 올랜 테러 발생하 무슬 꺼내들었다. 트럼프 쿠리 비판이 무슬 입국 주장 관련해 대다 유권자들 동의하 조사됐다. 사이 힐러리 민주 대선후 지명 필요한 선거인단 확보하면 반전 계기 마련했다. 워싱턴포스트는 트럼프 천금같 50 쓸데없 논란이나 불러일으키 낭비하 있다 분석했다. 하지 트럼프 워싱턴포스트 미국인들, 백인들 생각 정확 읽지 못했것으판명났다. 트럼프 일관히스패 때리기 절대 다수 백인층 결집시키 효과 셈이다.

2013 3 트럼프 보수적정치행동위원CPAC “불 1100 명에 투표권 사람들 민주당 투표 것”이라면 공화당 오바 정부 이민개혁안 협조해 된다 주장했다. 트럼프 발언 2016 대선 이해 있는 중요 하나 제공한다. 소수인종, 히스패닉 비율 속도 커지면 백인 나라 미국 정체성 위협받고 있다 백인들 위기감이다.

센서스국 2010 인구조 결과(미국 10 구조사 통계 낸다) 토대 분석 결과, 2000 10 동안 히스패닉 아시아 인구 급증 인구 감소 나타났다. 히스패 인구 출산율 증가 힘입 5000 넘어 것으 집계됐다. 3900 명의 16·2% 미국 6 1히스패닉 셈이다. 지금 세라 2050 어름이 () 인구 과반수 차지, 백인이 소수인종으 전락하 것으분석됐다. 비율200069% 2010 64% 떨어졌다.

백인 정체 위기 증폭되 보수, 진보 구분 희미해진다. 저소득, 저학력 백인일수 트럼프 백인 위기감에 민감하 반응했다.

 

힐러리 미국인 호불(好不好) 분명갈리정치인이다. 힐러리 2016 출마 선언 실시 여론조사에 응답자 이상 싫다 답변했다. 2016 8 워싱턴포스트·ABC 조사에서 비호감률 56%달했다. 호감률 41% 그쳤다. 트럼프 비호감률(63%) 만만 않았다. 유권자들에 2016 대선 후보’ 선택하 선거 됐다. 트럼프 극단적 인종· 행태 미국인들, 소수인종 여성층 반발 샀다. 힐러리 싫다 이유 넘쳤다. 거짓말쟁이라서, 스캔들 많아서, 진보적이어서, 남편 바람둥이여서….

일리 주장이지 근본적 이유 있었다.

정치 힐러리 지지 추이 살펴보 일관 패턴 견된다. 힐러리 정치 야망( 대통 ) 드러 때마 지지율 하락했다. 힐러리 지지율 상원의 시절(2001 12009 1) 곡선 그리다 출마설 피어 오르 시점부 꺾이 시작해 2008 민주 대선후 기간 내리막길 걸었다. 경선에 오바마에 패배한 힐러리 지지율 올라가 시작했다. 힐러리 지지율이 높았 시기 오바 대통 밑에 국무장관으 묵묵 일할 때다. 재직기 지지율 66%(갤럽) 치솟았다. 그런데 힐러리 2013 2 국무장관직에 물러 직임 보이 지지율 50% 떨어졌다.

힐러리 정치 도전 때마 지지율 떨어지 이유는 뭘까.

‘섹시즘Sexism이다.

여성 체질이 성격, 면에서 남성보 열등하다 인식( 의식) 이뤄지 차별 행태 섹시 말이다. 미국 대통령 남성이었다. 자리 여성 도전한다니, 사람들 힐러리의 도전 뺨이라 얻어맞 반응 보였다. 힐러리 정치 시작하 전에 여론 그녀 전통적 여성상에 벗어나려 때마 들었다.

1993 퍼스 레이 힐러리 백악 이스트East Wing (퍼스트 레이 집무공간) 웨스트West Wing(대통 집무공간) 사무실 마련했 , 건강보 개혁 지휘했 힐러 들끓었다. 웨스트윙 퍼스 레이디 힐러리 음이 마지막이었다. 그러 힐러리 건강보 반발 따른 1994 중간선 패배 책임 일선에 물러 이스트 다소곳 머무르 힐러리 인기 높아졌다.

1997년 2월 빌 클린턴 정부 2기 취임식날의 빌과 힐러리. 힐러리인스타그램.

정치권에 섹시즘 ‘정치적으 올바르 않는 행위 기시된다. 그런 트럼프‘정치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 따위는 무시 거침없 성·인 행태 여론 관심 집중시키 공화당 기반 남성표 결집 대선후보 . 힐러리 민주 후보 트럼프 선거운 과정에서 중도파 민주 진영 남성들 힐러리 갈라놓 시즘 구사했다.

트럼프 폭스뉴스 Megyn Kelly 섹시즘 압권이다. 트럼프 2015 8 공화 선후 TV토론에 발언 지적 메긴 ‘빔bimbo(예쁘지 머리 여자) 비하했다. 메긴 겨냥해 “토론회 진행하 그녀 눈에 나오 있었다. 그녀 어디에서 나오 있었 것”이라 말했 여성들 경악했지 남성들 트럼 지지 견고해졌다.

트럼프와 메긴 켈리

트럼프 2016 9·11 추모행사장에 휘청거 힐러리 겨냥해 (힐러리) 클린턴 하루 쉰다. 그녀 휴식 필요하다” 섹시즘 일종이었다. 트윗 이면에 여성은 남성보 신체적으 열등하다 전제 있었다.

힐러리 민주 과정에서 섹시즘 장벽 넘어서 . 2016 민주 경선에 남성들 힐러 샌더스를 밀었다. 샌더스 힐러리보 진보적이라 때문만 아니. 힐러리 여성이어 그랬다. 오바마 힐러리 2008 민주 남성들 ‘여 대통령 ‘흑 통령’ 선택했다.

정치인에게 대수롭 문제 정치인에게 점으 작용하 경우 많다. 힐러리 기침 멈추 않거 오르다 삐끗해 경호원 부축 받거 어지럼증으 휘청거리기라 그때마 미디어 법석떨었다. 2015 샌더스 수술 받았지 미디어 았다.

여론조 전문기관 갤럽 2014 3 미국인들에 힐러 대통령감 아니냐’ 물었다. ‘힐러리 대통 자격 갖추 못하 때문’이라 응답 많았다. 힐러리 통령 퍼스 레이 경험 상원의원, 국무장 출신이다. 정치인 정도 경력이라 논란 않았을 것이다. 시비 공연 주장이 ‘여 대통령 원하 않는다’ 답변 오히 솔직 답변일지 모른다. 힐러리 Y염색체 않다 사실 문제였다. ‘남편 대통령 백악관 재입성하 모습 싫다’ 응답도 나왔다. 남편 불륜 힐러 책임이라 말이다. 부인 불륜으로 추궁받 정치인 없었다. 섹시즘이다. 섹시즘 보이 벽이다.

도널 럼즈펠Donald Rumsfeld 국방장관 2002 이라 대량살상무기 테러리스트에 제공했는 여부 밝히 했다면 ‘알려 무지known unknown 표현 있다. 누리 루비Nouriel Roubini 뉴욕 교수 경제 불확실성 명하면 용어 사용하기 했다. 힐러리에 섹시즘 ‘알려진 무지’ 영역이었다. 자신 효과적으 통제 없고, 자신 영향끼칠정확 섹시즘. 힐러리 정치 여정 섹시즘과 투쟁사였다.

2008 도전 나섰 힐러리 역사 대선에 도전했 여성 가운 백악관 근접했 후보였다. 역사성 캠페 과정에 어떻 활용 것인지 놓고 힐러 캠프 갑론을박했다. 2007 초반까지 힐러리보다 유력 후보 떠오르 상태였다. 퍼스 레이 중에 대권 도전 인물 힐러리 유일했다. 민주 인맥 선거자금 능력, 진영에 쌓아 명성만으로 충분하다 조언이 많았다. 참모 Mark Penn ‘철 여인’으 마거릿 Margaret Thatcher 수상 마킹하라 조언했다. 힐러리 강인함으 자신 연단시 왔다.

2001 상원의원으 정치 시작 힐러리는 2003 군사 위원 됐다. 전통 관행 중시하 상원 의원 군사위 배정되 경우 이례적이었다. 러리상원들어직후부 군사위 주목했고, 오랫동 기회 군사위 자리 기회붙잡았다. 전문가들 힐러리 군사위 집착 행태 대통 결시키 했다. 최고통수권자(대통령) 힐러리 여성 한계 식으 극복하 했다 것이다. 힐러리 군사 활동 계기 군심(軍心) 된다.

힐러리 인식 않았다. 힐러리 트남 시위 주도했다. 사회 나와서 미국 이스라엘 정책 비판하면 팔레스타인해방기PLO 인사들 친하게 지냈다. 남편 클린턴 베트남전 반대하면 베트남 징병 회피했다. 클린 부부 성향 군인들이 가 싫어하 유형 정치인이었다. 사실 러리 군사 위원으 활동하 인식 돌려놓 위해 애썼다. 장성들 힐러 의원에게 자신들 생각해 러리 흔적 찾아 없었다. 힐러리 패권 유지 군대 지지했다.

힐러리 2002 주니 대통령에 이라크전 권한 여하 결의안 찬성했다. 결의 기록 2008 민주 대선경 과정에 오바 후보 결의 투표 대비되면 이라 전쟁 반대하 민주 좌파 오바마에 쏠리 요인 됐지 힐러리 평판 좋아졌다. 오바 정부 무장관으 재임하 기간에 힐러리 공화당원 로버 게이츠 국방장관 호흡 맞추 오바 내에 강경파 목소 대변했다. 게이츠보 강경입장섰다. 민주 내에 힐러리 대외정책 , ‘매파hawks 분류됐다.

2008 민주 도전 앞두 내에서 힐러리 대선 승리하 역사 대통령이라 의미 부각시키라 요청 있었지 힐러리 그러 않았다. 대통령 대한 유권자들 거부감 촉발시 있다 우려 있었 것이다. 경선 오바마 ‘변화’ 외치 대통탄생역사 적절 활용했지 힐러리 ‘준비 대통령’으 대통 탄생 메시지 부각시키 않았다.

경선에 패배 힐러리 연설 메시지 고민했다. 오바마 지지하 것만으로 충분 않았다. 힐러리 경선 패배실망힐러지지자들 투표장 나와오바마에 표를 던지 메시지 필요했다. 힐러리로서 도전 가능성 열어두 지지층 설득 필요성 있었다.

힐러리 2008 67 워싱 국립건축박물 그레이 섰다.

2008년 6월7일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패배한 뒤 오바마 지지를 선언하는 힐러리. Ron Edmonds, AP

“오바마 캠페인 시작했 사람들 어디에서나 똑같 질문 던졌다. 여성 최고통수권자 봉사 있을까? 그렇다 답변했다. 아프리 어메리컨 우리 대통령 있느냐고 했다. 오바마 질문 응답했다. 오바마와 미국 진보 핵심적 이정표 세웠다. 그것 완전한 연방 만들 우리 의무였다.

힐러리 연설 오바마 써내려가려 통령 역사 자신 이루려했 대통령 소명 결합시켰다.

오랫동 힐러리 괴롭혔 섹시 문제 거론했다.

“이 개인적으 있다. 여성으로 대통령 도전 의미냐 질문 때마 여성으로서 자랑스럽 최고 대통령 있다 생각했 때문 마했다 말했다. 그러 여성이다. 수많 여성들처럼 세상에 의식되 장벽 편견 있다 사실 알고 있다. 모두가, 최후 사람까 존중받 잠재력 정받 미국 건설하 원한다.

힐러리 도전 의미 성과 함축적으 표현 명문장 이어졌다.

“우리 이번 단단 유리천장 깨뜨리 했지만, 여러 덕분 천장 1800 균열(민주 참여 유권 가운 1772 클린턴에 던졌다) 있었다. 틈으새어들어오 것이다. 우리 번에 쉬워것이희망확신어넣 것이다.

힐러리 연설문 포함시 1800 균열 대목 러리 정치 도전 특징짓 키워드 됐다.

“정치권에서 여성에 끊임없 잣대 들이댄다. 옷이건 체형이 헤어스타일이건. 현실 좌절해 된다. 미소를 지으 전진하라.

섹시즘 힐러리 대응법이었다.

2016 재수 힐러리 섹시즘 정면으 맞섰다. 외동 첼시 외손주 할머니로서 일상 공개하 대통 내각 절반 여성으 것이 메시지 전하 대통령 역사성 적극적으 활용했다.

2016 67 1030.

힐러리 마침 민주 대선후 승리 선언했. “지 토요일(64) 어머니(도로 Dorothy Howell Rodham) 97 생일이었는데, 어머니 태어 그날 참정권 보장 수정헌 19통과 날이었다. (돌아가신) 어머니 자리에 민주 후보 모습 좋겠다.

도로시 하웰 로댐과 어린 시절의 힐러리. 힐러리인스타그램.

힐러리 1848 최초 뉴욕 세네 Seneca Falls에서 여성 참정 획득 선언 채택 사실 상기시 “우 세네 선언 참여 이들에 있다” 조했다. 트럼프와 대결에서 대통 탄생 의미를 적극적으 부각시켰다.

트럼프 행보 힐러리 마케 효과 대화했지 힐러리 마지유리천장 못했다. 2016대선에 남성들 압도적으 트럼프 지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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