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은 의료기관이 환자에게 의료비나 약제비 등을 적절하게 청구했는지를 평가하는 기관이다. 건강보험이 적용되는 의료 행위는 2만개, 사용되는 약은 2만5000종에 달한다. 어떤 의료 행위가 적절한지, 의료비와 약값은 적정한지를 감시·감독하는 곳이어서 ‘의료계의 감독원’으로도 불린다. 심평원이 일을 잘 해야 국민의 의료비 부담이 가벼워질 수 있는 것이다. 한국은 세계에서 의료비 관리가 투명하게 이뤄지는 모범국으로 꼽힌다. 그런데도 일반 국민에게 의료비는 여전히 버거운 부담이다. 지난 22일 서울 서초구 심평원 서울지원 집무실에서 손명세 심평원장을 만나 국민의 의료비 부담 완화 방안 등을 물었다. 

손명세 건강보험심사평가원장이 지난 22일 서울 서초구 심평원 서울지원 집무실에서 세계일보와 인터뷰를 갖고 국민의 의료비부담 경감 방안 등에 대한 견해를 밝히고 있다.
사진=남제현 기자

 

―병원이나 제약업체에서는 심평원 직원들을 싫어할 것 같다.

“1977년 박정희정부가 북한과의 체제 경쟁 차원에서 국민 의료보험을 도입했다. 당시 다른 분야에서는 북한을 넘어섰는데 의료 부문에서는 북한보다 못하다는 얘기가 외국에서 나왔다. 병원 문턱이 높아서 아픈데도 제대로 치료받지 못하면 얼마나 억울한가. 그래서 사회보장체계를 확대하는 차원에서 도입된 것이다. 당시도 반발이 있었다. 기본적으로 보건의료 분야는 시장실패 요인이 많다. 병원이나 제약업체 같은 공급자가 정보의 비대칭이 강한 재화(치료 행위, 치료 약 등)의 사용 여부를 결정하기 때문이다. 이를 교정할 시스템이 필요하다.”

박정희 대통령이 기업 근로자를 대상으로 의료보험을 도입하려하자 전경련은 근로자 의료보험료의 50%를 기업이 부담하면 경영이 어려워진다면서 반대했다. 그러자 박 대통령은 기업의 의료보험 지출을 세금에서 공제해주는 제도를 도입해 기업의 참여를 유도했다. 500인 이상 기업 1700개 업체에 근무하는 근로자 200여만명이 혜택을 받게됐다. 전두환 대통령은 의료보험을 중소기업으로 확대 도입햇고 노태우 대통령은 자영업자와 농어촌 주민을 대상으로 한 지역의료보험 제도를 실시했다. 기업 의료보험은 보험료 수입이 많아서 양질의 의료 서비스를 받았지만 보험료 수입이 적은 지역 의료보험은 상대적으로 의료 서비스의 질이 낮았다. 그래서 두 의료보험의 통합론이 제기됐지만 기업 측에서 반대해 성사되지 못했다. 김대중 대통령이 2000년 두 의료보험을 통합한 현행 건강보험제도를 도입했다. 부담 능력대로 보험료를 납부하고 혜택은 동일하게 받는 의료보험 제도가 만들어진 것이다.     

―2012년 대선 당시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가 ‘4대 중증질환(암·심장·뇌혈관·희귀난치질환) 전액보장’ 공약을 내걸었다. 얼마나 이행됐나.

“박근혜 대통령이 당선된 이후로 4대 중증질환 비급여(건강보험에서 보장하지 않는) 항목을 많이 급여로 끌어들여서 한때 62%까지 떨어졌던 건강보험 보장률을 최근 65%까지 3%포인트 정도 올렸다. 하지만 여전히 국민이 비급여 항목 때문에 많은 돈을 의료비용으로 지출하고 있다. 국민 부담을 줄이기 위해 보다 적극적으로 비급여 항목을 관리하고 보장률을 70%까지 올려나갈 계획이다. 최근 국회에서 의료법개정안이 통과되면서 비급여 진료비용의 항목과 기준, 금액에 관한 현황을 조사·분석하고 결과를 공개할 수 있게 됐다. 32개에 불과하던 공개 항목이 시력교정술인 라섹·라식과 치과술인 금니 등의 비급여 항목 등을 포함해 52개로 확대됐다.”

―병원에서 MRI(자기공명영상) 찍자고 하면 좀 부담스럽다. 그것도 가격이 병원마다 천차만별이다.

“MRI 비용을 병원별로 조사해서 공개하고 있다. 똑같은 MRI 진료지만 병원에 따라서 진료비가 2∼3배까지 차이가 난다. 이를 공개함으로써 환자가 보다 저렴한 의료서비스를 이용하면 자연스럽게 비급여 의료비가 감소하게 된다. 이를 통해 MRI에 지출하는 국민의 의료비는 절반까지 줄어들고 다른 비급여 항목의 진료비용도 점진적으로 적정화될 것으로 기대한다.”

―최근 의료인들의 DUR(Drug Utilization Review, 의약품 처방·조제 지원서비스) 점검이 의무화됐다. 국민에게 어떤 서비스가 가능한가.

“의료법·약사법이 지난 9일 개정돼 새해부터는 의사와 약사가 약을 처방하고 조제할 때 의약품 정보를 의무적으로 확인해야 한다. 모든 전문의약품에는 고유한 일련번호를 부여해서 유통단계마다 추적·관리하게 된다. 그러면 위조·불법 의약품을 차단할 수 있다. 이렇게 축적된 전 국민의 의약품 사용 데이터를 일반에 개방한다. 국민은 최근 3개월 동안 본인이 투약한 약품의 이력을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다. 국민의 건강관리와 의료서비스에 대한 알권리를 충족시킬 수 있을 뿐 아니라 의료기관이 환자의 의약품 복용 이력을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어 중복처방 방지 등 진료의 질도 향상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보건의료자원 신고일원화가 새해부터 시행된다. 어느 정도의 비용 절감 효과가 있나.

“지금까지 보건의료 인력·시설 등 자원에 대한 신고·관리 체계가 의료법을 근거로 하는 지방자치단체와 국민건강보험법을 기반으로 하는 심평원 두 곳으로 이원화돼 있었다. 때문에 신고가 중첩되고 행정력이 낭비된다는 지적이 잇따랐다. 이번에 국민건강보험법 시행규칙을 개정함에 따라 2016년 1월부터 의료기관과 약국 휴·폐업, 의료인 수 신고 등 13개 보건의료자원 신고업무에 대해 하나의 기관에 한 번만 신고하면 되도록 신고절차가 일원화된다. 내년 한 해 동안 중복신고로 인한 사회적 비용 24억원 정도가 절감될 것으로 기대한다.”

―올 상반기에 한국을 강타한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로 막대한 인적·물적 피해가 났다. 보건당국과 의료기관 등의 선제 조치가 아쉬웠던 대목이다.

“동의한다. 심평원 차원에서는 메르스 발병 지역인 중동 방문자들을 실시간으로 병원에 알려 메르스가 확산되지 않도록 기여했다. DUR 서비스를 통해 환자들에 관한 정보를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환자 정보를 병원에 알리는 조치를 메르스 사태 초기(5월20일 메르스 첫 번째 환자 확진)부터 시행하자고 건의했지만 초기에는 이뤄지지 못했다. 사태가 어느 정도 진행된 6월9일부터 체계가 갖춰지고 업무가 진행된 점은 아쉬움으로 남았다. 나중에는 메르스 감염자 발생 병원을 다녀간 사람들의 정보까지 다 병원에 제공했는데 메르스 사태 동안 심평원이 의료기관에 제공한 의료정보만 6만건에 달했다. 전자방역시스템에 따라 실시간으로 질병 감시가 이뤄진 것은 세계 보건의료 역사에 기록될 만한 값진 경험이었다.”

―환자 정보 관리는 다른 한편으로 개인 정보유출의 위험도 있는 양날의 칼 아닌가.

“그렇다. 그래서 심평원은 개인의 의료정보를 보호하기 위해 보안강화 등 시스템 고도화 작업을 추진하고 있다. 보안문제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고 항상 기민하게 준비를 하기 때문에 심평원이 설립된 이래로 건강정보와 개인정보가 유출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한의학계에서는 국민건강보험이 한의학 부문을 홀대하고 있다는 인식이 강하다.

“지금까지는 가루약인 한약재만 보험적용이 가능했는데 내년부터는 짜먹는약과 알약도 건강보험 적용을 받게 된다. 국민입장에서는 한약 복용이 보다 편리해진다. 한의약에 대해서는 최대한 급여항목을 열어주겠다는 입장을 갖고 있다. 현재 전 국민이 연간 의료비로 지출하는 비용이 한 해 104조원으로 추정된다. 이 중 급여항목으로 심평원이 구매한 보건의료 서비스가 62조원인데 한방의료가 차지하는 비중은 2조2000억원에 불과하다. 비급여 항목 진료와 약값을 포함해도 여전히 미미한 상황이다. 최근 몇 가지 사안을 두고 양의와 한의가 갈등을 반복하고 있는데 한국의 전체적인 의료서비스 질을 향상시키기 위해 양측이 힘을 합치고 협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심평원 원장으로서 꼭 해보고 싶은 일은 뭔가.

“올해는 세계에서 기후변화협약이 주목을 받았지만 그 다음 국제사회가 주목해야 할 의제는 ‘보편적인 의료 보장’이 될 것이다. 유엔이 지속가능개발목표의 실천 방안 중 하나로 보편적 건강보장을 꼽은 적이 있는데 가까운 미래에 국제적인 의제로 떠오를 것으로 전망한다. 이런 세계적인 흐름에 맞춰 심평원은 다음달 14∼15일 서울 JW 메리어트 호텔에서 ‘보편적 건강보장을 위한 국제회의’를 개최해 국가 간의 보건의료 경험을 공유하고, 보편적인 건강보장을 달성할 협력방안을 논의할 예정이다. WHO(세계보건기구)와 월드뱅크, 록펠러재단 관계자들도 참석할 예정이다. 이 자리에서 우리나라의 뛰어난 보건의료시스템을 알릴 계획이다. 한국의 보건의료시스템이 세계에 알려지게 되고 수출길이 열리면 우리나라 의료인과 의약품, 치료재료도 함께 해외로 나갈 수 있다. 우리의 의료 인프라를 수출하게 되면 ICT(정보통신기술) 회사도 함께 수출될 수 있고 우리의 시스템이 외국에 깔리면 계속해서 용역비 등의 수익을 창출할 수 있다. 재임 기간뿐 아니라 퇴임 이후에도 이 분야에서 나름의 역할을 해보고 싶다.”

대담=조남규 사회부장
정리=이재호 기자

손원장은…

●1954년 서울 출생

●연세대학교 의대, 연세대학교 보건학 석사, 박사

●세계의료법학회 부회장

●WHO(세계보건기구) 집행이사

●연세대학교 보건대학원 원장

●한국보건행정학회 회장, 식품의약품안전평가원 원장

●제8대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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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는 올 들어 가짜 백수오 사태로 홍역을 치렀다. 대다수 국민이 한두 가지씩은 챙겨먹고 있는 건강기능식품이 도마에 오르면서 식약처의 존재감이 크게 부각됐다. 건강기능식품뿐만 아니라 떡볶이, 순대에서 의약품에 이르기까지 식약처와 국민의 삶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다. 취임 6개월을 맞은 김승희 식약처장을 지난 22일 서울 목동에 위치한 서울지방식약청 집무실에서 만나 먹거리 안전 문제 등을 물었다.

―가짜 백수오 사태 파장이 컸다. “이엽우피소가 인체에 해롭지 않다”고 발언해서 논란이 됐는데.

“인삼과 도라지를 생각하면 된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지금까지 백수오라고 속고 먹은 사람은 인체에 무해하니 안심해도 좋다. 가짜인 이엽우피소를 속아서 먹으면 안 되니 먹지 말라는 의도였다. 지금까지 국내에서 이엽우피소는 별 용도가 없는 것이었다. 이 때문에 우리가 식품원료로 허용하지 않았다. 수요가 있고 기능이 있어서 개발자가 어떤 용도로 사용하겠다고 신고를 하면 검사를 하는데, 그런 요청이 있기 전에 식약처가 선제적으로 조사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정부가 이엽우피소를 실험으로 규명해 주면 앞으로 백수오하고 혼합해서 써도 된다는 걸 의미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의 한 의원이 ‘정부가 안전하다고 하는데 안전하다는 사실을 입증할 수 있는 데이터가 없으면 어떻게 하느냐’고 해서 결국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가짜 백수오 사태의 재발 방지 대책은 어떻게 세우고 있나.

“백수오 사태가 재발하지 않도록 원점에서 건강기능식품 관리체계의 전면 개편 방안을 마련했다. 원료 인증 단계에서 5년마다 재평가하고 이상사례 급증 시 재평가한다. 사용금지 원료를 사용할 경우 처벌을 두 배로 강화해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억원 이하의 벌금으로 강화할 예정이다. 자가품질검사도 부적합이 나오면 바로 식약처에 보고토록 한다. 유통 소비단계의 경우에도 허위과대광고를 하면 최고 1000만원 이하의 포상금을 지급하는 ‘국민 포상제’ 도입을 추진 중이다. 또 소비자가 이상 제품에 대한 검사를 요청할 수 있는 ‘소비자 행정조사 요청제도’를 도입한다.”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등 신종 감염병에 대한 우려가 높다. 10년 전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가 발병했을 때는 백신 도입이 늦어져 혼란이 있었다. 이를 막기 위한 대책이 있나.

“물류-교통의 발달로 전 세계가 하나의 생활권이 되면서 바이러스로 인한 신종 감염병이 국제적인 문제로 부상했고, 변종바이러스의 출현 때문에 미래에 출현할 감염병을 사전에 예측하기가 어려워졌다. 식약처는 감염병 예방을 위한 백신 개발과 자체 생산력을 높이기 위해 국내에서 생산이 가능한 ‘백신자급화’를 추진하고 있다. 매년 초 제약회사의 백신 개발계획을 조사하고 연도별 개발지원 계획을 수립해 백신의 개발부터 허가까지 맞춤형 컨설팅을 실시할 계획이다. 또한 감염병이 유행하는 국가 비상상황이 발생하면 신속하고 안정적으로 의약품을 공급하기 위해 국내 품목허가를 받지 않은 의약품을 수입하거나 국내에서 자체 제작할 수 있게 하는 ‘의약품 안정공급지원 특벌법’ 제정을 추진 중이다. 일부 시민사회에서는 안정성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있지만 법률의 대상이 되는 약품은 적절한 치료제가 없어 생명을 위협받는 희귀·난치성 환자들을 위한 용도로 한정된다. 희귀·난치성 환자를 대상으로 긴급히 도입된 의약품도 추후 임상시험을 통해 안정성을 계속 점검할 계획이다.”

―중국 ‘투유유 중국전통의학연구원’ 교수가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아 중의학계의 관심을 받고 있다. 우리나라도 전통의학이 있고 서양의학도 최신 기술과 접목해 눈부신 발전을 이뤘는데 왜 아직 노벨상 수상자가 나오지 못할까.

“기초가 약하다는 생각이 든다. 뚝심 있게 연구해야 하는데 ‘빨리빨리 문화’가 강하다 보니 연구 성과가 나올 때까지 기다리지 못하는 것 같다. 제약분야는 많은 시간과 투자가 필요한데 중간에 ‘뻥튀기’ 결과만 바라다보니 좋은 연구가 이뤄지기 어렵다. 1990년대 말에도 유전자 치료제라고 해서 줄기세포에 유전자 넣는 기술이 거품처럼 커졌다. 그런데 당시에 미국 학회에 참석해 보니 이미 수백편의 논문이 있더라. 당시 우리나라는 논문이 10편도 채 안 됐다. 의학분야 연구는 많은 연구 중에 하나의 결과가 나오는 것이지 하루아침에 운좋게 걸리는 게 아니다.”

―담뱃값 인상효과가 줄어들면서 금연 열기가 주춤하고 있다. 담배 관리는 어떻게 이뤄지고 있나.

“니코틴이 함유되지 않은 금연초·전자담배 등을 관리하고 있다. 금연초 등은 니코틴이 들어 있지 않지만 담배 기능을 할 수 있는 성분이 들어 있는데 이것이 몸에 해로운지 아닌지를 검사해 안전관리를 하는 것이다. 예컨대 궐련형 금연초도 담배처럼 불을 붙여 태우게 되는데, 연기 안에 유해물질이 얼마나 들어 있는지를 성분 분석해서 기준치를 넘으면 팔지 못하도록 한다. 지금까지는 니코틴이 들어 있는 담배에 대해서는 성분 분석을 하지 않고 있었는데 앞으로는 성분도 분석할 계획이다. 안철수 의원(새정치민주연합)이 발의한 ‘담배 유해성 관리에 관한 법률’에 근거해서 이뤄질 텐데 3000여 가지 물질로 이뤄진 담배의 성분을 분석해서 유해성분 등을 대중에 공개하는 것이 골자다. 다만 이를 담뱃갑에 표시할지는 민감한 문제여서 추후 협의가 필요한 부분이다.”

―‘수능환’, ‘물범탕’ 등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앞두고 효능이 확인되지 않은 건강식품이 범람하고 있다. 제재할 계획은 없나.

“조사하고 있다. 시중 건강원과 한의원에서 수능환, 물범탕을 수거해 스테로이드 같은 의약품 성분이나 인체에 유해한 성분이 있는지 검사 중이다. 의약품 성분이 확인되면 즉시 행정처분과 회수폐기 조치를 할 예정이다. 또 관련 제품의 광고부분도 의약품으로 오인할 수 있도록 허위과대했는지 조사 중이다. 건강식품을 만드는 사람들이 주로 소상공인이다 보니 무조건 처벌하기보다는 지도·계몽을 하라는 목소리가 많은데 형량을 높이면 상당부분 정화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식품위생법 조항이 구체적이지 않고 주먹구구식이라는 지적이 있다.

“단체급식을 하는 곳이 늘고 있고, 전국에 음식점이 80만개에 달할 정도로 외식산업도 규모가 커져 이를 관리할 수 있는 ‘식품 조리·판매에 관한 법률(가칭)’을 따로 떼어 제정할 계획을 갖고 있다. 가공식품 제조회사의 생산단계나 유통단계에 대해서는 좀 더 관리를 엄격하게 하고, 음식점의 위생관리는 또 다른 측면에서 관리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출발했다. 궁극적인 법 제정 취지는 음식점 위생관리 역량 강화다. 축산물위생관리법에 있는 축산물 가공식품의 관리업무를 식품위생법으로 이관하고, 식품위생법의 생산단계 안전관리와 농·수산물 품질관리법의 생산단계 안전관리를 통합해 ‘농·수산물 안전관리법(가칭)’을 제정할 계획이다.”

―외식문화는 빠르게 성장했지만 위생관리는 후진국 수준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식중독에 의한 사회·경제적 손실비용이 2조80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됐다. 집단급식의 증가와 외식산업의 발전으로 시간이 지날수록 음식점 위생관리가 중요해지고 있는데 식약처는 음식점의 위생수준을 평가해 우수한 업소에 등급을 부여하는 ‘위생등급제’를 시행함으로써 위생을 향상하고 소비자의 선택권을 보장하려고 하고 있다. 전문가가 음식점의 위생수준을 현장평가하고 위생수준이 우수한 업소를 3개 등급으로 표시해 기술지원, 간판제공, 시설·설비 개보수 융자지원 등의 인센티브를 제공할 계획이다. 2017년은 관광특구 내 음식점 3만5000개 업소를 대상으로 하고, 2018년에는 모범음식점 1만9000여곳을 음식점 위생등급제 참여를 유도할 예정이다. 미국 등 해외에서 위생등급제를 도입하고 식중독이 10∼30%가 줄었다는 연구 결과가 있는데 국내에서도 식중독이 감소하면 2800억원의 사회적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

김승희 처장은

●1954년 서울 출생

●경기여고, 서울대 약학과, 서울대 약리학 석사, 노트르담대 대학원 생화학 박사

●식품의약품안전청 생물의약품국 국장

●식품의약품안전평가원 원장

●식품의약품안전처 차장


정리=이재호, 사진=이재문 기자
대담=조남규 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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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신명 경찰청장은 세월호 사태 와중에 중도 퇴진한 이성한 전 청장의 후임으로 취임했다.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의 변사 사건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한 경찰, 이 전 청장은 그 책임을 지고 임기를 채우지 못한 채 옷을 벗었다. 강 청장은 추락한 경찰의 위상을 바로 세우겠다는 각오로 1년을 달려왔다. 오는 25일 취임 1년이 되는 강 청장은 지난 14일 서울 서대문 경찰청 청사 집무실에서 세계일보와 인터뷰를 갖고 “다시 기본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국민이 위기에 처했을 때 응답하는 것이 경찰의 존재 이유”라고 역설했다. 그는 “경찰청장으로서 법이 부여한 임기 2년 동안 아무런 과오 없이 국민과 경찰을 위해 노력하는 게 최선의 목표일 뿐 그 외에는 어떠한 생각도 해본 적이 없다”면서 “반드시 실천할 테니 지켜봐 달라”고 말했다.


 

오는 25일 취임 1주년을 맞는 강신명 경찰청장이 14일 서울 서대문구

-경찰이 기본으로 돌아가야 국민의 신뢰를 얻을 수 있다는 말에 동의한다. 국민의 신뢰를 얻기 위해 어떤 일을 해왔나.

“취임하자마자 ‘112 청장’을 자임했다. 국민이 위기에 처했을 때 응답하는 것이 경찰의 존재 이유다. 국민의 입장에서 평생 한두 번 112 신고하는데 얼마나 절박하고 심각한 상황이었겠느냐. 그 순간에 경찰이 달려와서 위기에서 구해준다면 국민은 세금이 아깝지 않다고 느낄 것이다. 무법과 무질서의 상징인 조직폭력배 소탕에도 주력했다. 법이 통하지 않는 폭력배가 있다면 법치국가라 할 수 없고 경찰의 존재 이유도 없다. 112 잘하고 조폭 제압 잘하는 게 기초 치안이라고 생각한다. ‘양은이파’ 같은 범죄단체만 조폭이 아니다. 국민은 술 먹고 행패를 부리거나 노점상으로부터 자릿세를 갈취하는 깡패도 조폭이라고 본다. 폭력배는 잡초와 같아서 주기적으로 뽑아내야 한다. 오는 9월부터는 동네 건달까지 단속 대상을 확대할 생각이다.”

-‘거악의 퇴치’처럼 좀 거창한 각오일 줄 알았는데 굉장히 미시적이다.

“신뢰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제일 중요한 방법은 기초 치안을 다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임기 중에 반드시 이 목표를 이루겠다고 다짐했다. 이건 기본이다. 임기 2년 차에는 ‘생활 법치’에 더 주력할 생각이다. 생활 법치의 핵심 축은 교통질서와 집회질서다. 재임 중 사회적 파장이 컸던 사건도 모두 해결했다. 행정적인 미제사건은 있을 수 있지만 경찰청장이 생각하는 미제사건은 없다고 감히 말할 수 있다. 시화호 토막살해 사건이나 안산 인질 살해 사건, 잠원동 새마을금고 사건, 용산 아파트 쇠구슬 테러 같은 주요 사건의 범인은 모두 잡았다.”


-평소 시위 문화를 개선해야 한다는 지론을 폈다. 재임 기간 시위 문화가 개선됐다고 평가하나.

“시위 문화는 그 나라의 법질서 수준에 비례한다. 일부 과격세력의 시위가 남아 있긴 하지만 이제 폭력시위의 시대는 저물었다고 단언할 수 있다. 예전에는 서울역에서 모인 시위대가 남대문 쪽으로 행진하면서 차를 막고 도로를 대각선으로 가로질렀다. 지금은 1000명씩 끊어서 신호에 맞춰서 행진해달라고 요청하면 그렇게 한다. 전교조 시위대가 제일 잘 지킨다. 물론 ‘우리가 왜 경찰 말을 들어야 하느냐’면서 막무가내로 행동하는 단체도 있지만 일부에 불과하다.”

-집회·시위 현장에서 발생하는 소음 문제도 종종 논란 거리가 되고 있다.

“지난해 10월부터 소음기준을 5db(데시벨)씩 하향 조정했는데 10분간 내는 소음의 평균을 단속 기준으로 삼고 있다. 그러다 보니 5분 동안 120db 넘는 소음을 내다가 나머지 5분 동안 소음을 뚝 떨어뜨리면 단속 기준을 넘지 않는다. 이를 다른 나라처럼 일정 기준을 넘지 못하도록 바꿀 필요가 있다. 집회·시위도 법 테두리 내의 기본권 행사는 보호받아야 한다. 하지만, 국민 생활에 불편을 초래하는 교통체증과 소음은 엄격하게 관리하고 경찰관 폭행 등 불법행위는 반드시 사법조치해 준법 시위 문화가 확립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나가겠다.”

-올 초 경찰 승진시험에서 만점을 받고도 승진에서 탈락한 사례가 속출해 논란이 일었다. 100점 맞고도 떨어지면 당사자는 억울하지 않겠나.

“개인적으로는 경찰 조직을 망친 게 승진 시험이라고 생각한다. 승진자 절반을 시험으로 뽑다 보니 승진시험이 치러지는 1월이 다가오면 경찰이 전부 공부만 한다. 국민들은 승진 시험 공부하는 경찰을 이해 못한다. 누구는 빵 씹어먹으며 잠복근무하는데 누구는 두어 달 공부하고 승진해서 상사로 복귀하는 일이 반복되다 보니 경찰 내부의 사기가 저하된다. 경찰이 모두 공부만 하고 있으면 소는 누가 키우나. 솔직히 취임 초반엔 경찰 승진시험 자체를 없애버리려고 했다. 그런데 이 제도가 70년된 것이라서 당장 없애면 충격이 너무 클 것 같아서 시험은 쉽게 내고 근무평정을 많이 반영하는 식으로 개선했다. 앞으로 근무평정의 변별력을 높이고 객관화해서 일을 열심히 한 경찰이 인정받고 승진할 수 있는 조직으로 만들겠다.”


-지난 1년을 돌아봤을 때 아쉽다는 느낌이 드는 대목은 없나.


“경찰 조직 내부의 사기 진작 부분이다. 지난 1년간 신뢰의 위기를 극복하겠다면서 지나치게 업무 중심으로 드라이브를 걸었다. 당근은 없이 채찍만 휘두른 셈이다. 이제 현장 경찰관의 사기를 높일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 대다수 경찰이 기대하고 있는 것이 근속승진 제도다. 순경은 5년, 경장은 6년, 경사는 7년6개월의 근속연수를 채우면 승진 대상자의 20%에 한해 승진할 수 있다. 일반 공무원은 1급에서 9급까지 9단계인데 경찰은 치안정감에서 순경까지 10단계다. 일반 공무원보다 1단계가 더 많다. 그러다 보니 근속승진에 걸리는 시간도 일반 공무원보다 더 길다. 그 기간을 단축시키는 것이 1차적인 목표다. 두 번째는 경찰 공무원을 공안직에 포함시키고 싶다. 같은 공안 업무를 하는 검찰이나 법무부 공무원은 공안직이지만, 경찰은 일반직 공무원으로 분류된다. 공안직이 일반직에 비해 급여가 다소 많다. 공안직 분류가 어렵다면, 경찰의 치안활동수당을 기본급여에 포함해 정근수당이나 퇴직금 등에서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노무현정부 시절 추진됐다가 무산된 검경 수사권 조정 문제는 박근혜정부의 국정과제이기도 하다. 강 청장의 생각은 무엇인가.

“수사권 조정 문제는 현 정부의 국정과제 중의 하나로 구체적인 방안에 대해 국무조정실 주관으로 계속 협의가 진행 중이다. 합리적인 수사권 조정방안은 경찰이 1차 수사를 담당하고, 검찰은 2차 수사권을 갖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종국적으로는 수사와 기소가 분리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우리나라 경찰은 현실적으로 94%의 수사를 진행하고 있는데 법적으로는 수사권이 없는 조직이다. 이런 경찰 조직은 전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다. 국민들은 아무 권한이 없는 경찰에게 수사를 받고 그다음에 권한이 있는 검사에게서 검증받는 시스템인 것이다. 일본 경찰은 경감 이상 간부가 부분적인 영장 청구권까지 갖고 있다. 그 정도까지는 바라지 않는다. 사건을 검찰에 송치하기 전 단계까지라도 경찰이 수사를 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것이다. 사건 중에서 민생 수사만이라도 경찰에 맡겨달라는 것이 우리 경찰의 바람이다. 교통사고나 단순절도 같은 사건까지 검찰이 지휘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검찰은 수사권을 경찰에 넘겨주지 못하는 근거로 경찰의 수사 능력 부족을 거론하고 있다. 경찰의 비리 가능성도 이유로 든다.


“비리는 비리로 접근해야지 비리 있는 조직이니까 자율적으로 수사하면 안 된다는 논리는 합리적이지 않다고 본다. 인원 대비 비리 비율은 검찰 수사관이 경찰보다 더 높다. 자질론으로 얘기하면 우리에게도 경찰대, 변호사 출신 자원이 있다. 다만 수사권 조정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경찰 수사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얻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남은 재임 기간에 수사권 조정이 이뤄지도록 소신을 갖고 추진하겠다.”

대담=조남규 사회부장, 정리=박세준 기자

◆ 강신명 경찰청장은… ▲경남 합천(1964년) ▲대구 청구고 ▲경찰대(2기) ▲서울 송파경찰서장 ▲안전행정부 치안정책관 ▲경찰청 수사·정보국장 ▲경북지방경찰청장 ▲청와대 사회안전비서관 ▲서울지방경찰청장


여성가족부(여가부)의 모태는 여성부다. 2001년 1월 여성부로 출범한 이후 이름에 가족이 추가됐다. 지금은 ‘양성평등부’로 변경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저출산 고령화라는 시대의 추이에 맞춰 여성가족부는 꾸준히 진화했다. 과거 여성인권 문제에 한정됐던 업무 영역은 인터넷 중독 청소년, 이혼 가정의 양육비, 국제결혼, 학교 밖 청소년 지원, 양성 평등 등으로 확대됐다. 다음달 취임 1년을 맞는 김희정 장관을 16일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 17층 장관접견실에서 만나 날로 그 중요성이 더해가는 청소년과 여성, 가족 문제를 주제로 방담했다.

 



―우리 사회가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와 사실상 전쟁을 벌이고 있다. 여가부 차원에서 어떤 정책들을 추진하고 있나.

“메르스로 고통받고 있는 가정을 도와드리기 위한 가족돌봄 긴급서비스 등을 확대하고 있다. 전국 청소년 시설에 대한 긴급 점검도 병행해 메르스 확산과 이로 인해 어려움을 겪는 국민을 돕기 위해 전 직원이 노력 중이다. 가족 중에 메르스 확진 판정을 받은 환자나 격리 대상자가 발생한 가정을 위한 서비스를 한 가구당 90시간까지 무료로 제공하고 있다. 지금과 같은 비상 상황에서 꼭 필요한 공적서비스다. 자녀를 돌봐야 할 부모가 메르스에 걸린 경우뿐 아니라 어린이집과 유치원, 학교의 휴원 또는 휴업으로 가정 내 양육에 어려움을 겪는 가정에 지원된다. 평소 오후 6시까지 이뤄지던 상담 및 신청 시간을 오후 10시로 확대했다. 해당 지역에 아이 돌보미가 부족하면 인근 지역과 연계하여 서비스 이용에 지장이 없도록 운영하고 있다. 메르스 확진 환자의 가정에는 무료로 제공된다. 노인 가사 등 돌봄 서비스는 한국건강가정진흥원(02-3479-7600)으로 신청할 수 있고 아이돌봄은 1577-2514 또는 홈페이지(ww.idolbom.go.kr)로 신청해주시면 된다.”

―학교 밖 청소년 지원대책은 김 장관이 국회의원 시절부터 관심을 갖던 사안으로 알고 있다. 장관으로서 직접 정책화한 사안인데 효과는 어떤가.

“국회에서 ‘학교 밖 청소년 지원법’을 대표 발의해 통과시켰다. 제도권 교육에서 벗어나 학교 밖에서 배회하는 청소년이 36만명에 달한다. 매년 8만명이 학교를 중도에 그만두고 있다. 이들에 대한 지원체계를 처음으로 공식화했다는 의미가 있다. 이들을 우리 사회가 어떻게 보듬느냐에 따라 장차 국가적 부담이 될 수도 있고 국가에 도움이 되는 인재로 성장할 수도 있다. 학교밖청소년치유센터인 꿈드림센터를 전국에 200여개 만들었다. 교육부와 손잡고 이들이 학교를 그만두기 전부터 학업중단 문제를 상담하는 숙려(熟慮)제를 운영하고 있다. 그 결과 학업중단을 고민하는 학생들 중 82%가 상담 후 학교에 남기로 결정했다.”

 
―자녀들의 인터넷 중독 문제는 모든 가정의 골칫거리다. 여가부에서 운영 중인 인터넷중독치료 학교가 학부모들 사이에서 회자되고 있다. 어떤 프로그램인가.

“전북 무주에 ‘인터넷드림학교’라는 인터넷중독치료 대안학교를 만들었다. 폐교를 매입해서 몇 주간 숙식을 하며 치료프로그램을 받는다. 중독 치료는 생활 습관을 바꾸는 일이기 때문에 공부만 시켜서는 안 된다. 부모들은 아이의 치료 기록이 알려져 낙인이 찍히지 않을까 걱정을 많이 하는데 학생기록부 등에 전혀 기록이 남지 않는다. 대안학교로 인가를 받았기 때문에 학기 중에 오더라도 수업단절 같은 문제도 없다. 사회적 편견이나 공연한 두려움으로 인터넷 중독 치료를 꺼릴 이유가 없다. 장기적으로는 이곳에서 치료를 받은 아이들이 인터넷에 중독된 다른 청소년의 멘토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김 장관부터가 한국 사회의 대표적인 워킹맘(workingmom)이다.(김 장관은 일곱 살배기 딸과 네 살배기 아들을 둔 엄마다.) 일과 가정을 어떻게 양립시키고 있나.

“‘세상에 슈퍼우먼, 알파걸(alpha girl·모든 분야에서 남성과 동등하거나 뛰어난 첫째가는 여성)은 없다. 피곤해하는 여성만 있을 뿐’이라는 어느 여성학자 분의 말에 크게 공감한다. 일과 가정을 양립시켜야 하는 고충은 개인적으로도 현재진행형이다. 아이들이 이제 ‘일하는 엄마’를 둔 환경에 제법 익숙해진 것 같고, 놀아줄 땐 확실하게 놀아주면서 함께하는 시간만큼은 최대한 집중한다. 둘째를 낳고 아이돌봄서비스를 1년간 이용했고, 지금도 두 아이 모두 직장어린이집에 보내고 있다. 워킹맘으로서 정부의 일·가정양립 지원정책을 직접 경험하다 보니 국민 입장을 더 잘 이해하고 정책개선에도 반영하게 된다.”

―최근 포털에서 가장 인기를 끈 검색어 중 하나가 여가부가 출범시킨 ‘양육비이행관리원’이다. 그만큼 갈라선 부부간에 양육비 문제를 놓고 다툼이 많다는 증거인 것 같다.

“지난 3월 양육비이행관리원 콜센터를 열자마자 문의가 폭주했다. 상담을 받기 위한 사람들이 장사진을 이뤘다. 출범 이후 상담만 1만3600건이 들어왔고 3481건이 공식 접수됐다. 자녀 양육비에 인색한 우리 사회의 세태를 보여주는 풍경 같아서 씁쓸했다. 일방 배우자가 다른 배우자에게 양육비를 주지 않는 이유는 다양하다. 주다가 끊은 경우도 있고, 처음부터 안 주는 경우도 있다. 대체로 연락이 끊긴 사례가 많다. 가정 형편이 어려운 경우에는 정부가 먼저 긴급양육비를 지원하고 뒤에 양육비 부담의무가 있는 배우자에게 구상권을 청구하기도 한다. 양육비이행관리원은 또 다른 분란을 일으키는 곳이 아니라 그것을 종식하는 곳이다. 부부관계는 결별됐어도 아이를 돌봐야 할 책임은 사라져서는 안 된다. 양육비이행관리원의 존재 자체가 자녀에 대해서는 부모가 확실히 책임을 져야 한다는 인식을 확산시킬 것이다.”

―‘양성평등법안’이 다음달 시행된다. 여가부 정책이 여성 중심에서 양성평등으로 진화하는 양상이다. 어떤 점들이 달라지나.

“성별영향평가, 성인지(性認知) 예산 등 어려운 용어가 많은데 쉽게 풀어 보면 똑같은 정부 예산을 들였을 때 한 성별에만 혜택이 되는 문제를 바로잡자는 것이다. 회사에서 휴가를 정할 때 할머니 상은 3일, 외할머니는 1일로 정하는 경우도 있다. 육아휴직도 여성은 3년이고 남자는 1년밖에 안 된다. 우리 삶 속에서 국가가 하는 정책이나 규율이 성별 차이로 있는 차별을 겪는 정책이 의외로 많다. 이와 관련해 국민 공모 제안을 했더니 녹색어머니회를 녹색학부모회로 바꾸자는 제안도 있다. 이런 부분을 형평성에 맞게 조정한다.”

―기관 기업 내 성희롱 문제가 사회 이슈가 된 지 오래다.

“성희롱뿐 아니라 성폭력·성매매·가정폭력 등 폭력근절을 위해서는 ‘인식개선’과 ‘가해자 엄벌’ 두 가지가 핵심이다. 인식개선을 위해 국가·지자체·공공단체의 폭력예방 교육을 의무화하고, 양성평등 관점에서 가정폭력·성희롱·성폭력에 대한 통합교육을 실시할 수 있도록 지난해 법과 제도를 정비했다. 이제 모든 정부기관과 지방자치단체, 공직유관단체는 예방교육을 의무적으로 실시하고 그 결과를 여가부에 제출해야 한다. 가해자에 대해서는 지난 3월 관계부처 합동으로 발표된 ‘우월적 지위를 이용한 성폭력근절대책’에서 밝혔듯이 지위고하, 업무성과 등에 상관없이 무관용 원칙을 적용해야 한다.”

―다른 부처와 업무가 중복된다는 지적이 많다. 여가부만의 정체성은 뭐라고 생각하나.

“여가부는 기능이 아니라 여성·청소년·가족 등 대상 중심의 정책을 추진하는 부다. 다른 부처와 상호보완적으로 해나가야 더 큰 성과를 거두는 일들이 많다. 일례로 청소년 중에서 학교를 다니는 청소년은 교육부가 담당하지만, 학업중단·가출 등 ‘학교 밖 청소년’은 여성가족부가 보호를 해주고 있고, 학교 단위가 아닌 방과 후 청소년활동도 담당하고 있다. 복지부가 보편적 저소득층 지원을 한다면, 여가부는 한부모가족·다문화가족 등 취약계층 가족의 역량강화와 자립을 지원한다.”


대담=조남규 사회부장, 정리=조병욱 기자, 사진=이재문 기자 brightw@segye.com

◆ 김희정 장관은… ▲1971년 부산 출생 ▲1994년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졸업 ▲2002년 연세대 정치학 석·박사 수료 ▲2004년 17대 국회의원(부산 연제구) ▲2009년 한국인터넷진흥원장 ▲2010년 대통령실 대변인 ▲2012년 19대 국회의원 ▲2012년 새누리당 정책위원회 정책위부의장 ▲2012년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간사 ▲2014∼여성가족부 장관


노무현정부가 임기 초반 ‘더 내고 덜 받는’ 국민연금 개혁을 추진했을 때 반대 여론이 70%를 넘었다. 당시는 평균 소득의 9%를 보험료로 내고 평균 소득의 60%(소득대체율)를 연금으로 받았을 때다. 30년 정도 보험료를 낸 직장 가입자는 보험료(절반은 회사 부담)의 2배 정도를 연금으로 돌려받았다. 이런 짭짤한 연금 체계를 ‘보험료율은 점진적으로 15.9%까지 올리고 소득대체율은 즉시 50%로 낮추자’고 했으니 국민은 선뜻 동의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좌파 정당인 열린우리당(새정치민주연합)이 연금 축소에 반대한 것은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명색이 우파 정당이라는 한나라당(새누리당)까지 반대하고 나선 것은 기이한 모습이었다. 대체로 우파 정당들은 복지 같은 군살을 뺀 ‘작은 정부’를 추구한다. 국민연금은 가입자의 보험료로 운영되지만, 장기적으로 연금기금이 고갈되면 우파가 싫어하는 ‘증세’로 가야 한다. 4년여의 국민연금 개혁 논란 끝에 한나라당은 2007년 2월 노무현정부의 국민연금법 개정안을 부결했다. 그것도 열린우리당보다 더 좌파적인 민주노동당(정의당)과 손잡고 그랬다. 이런 블랙 코미디가 따로 없다.
당시 한나라당과 민주노동당의 기이한 정책연합은 ① 65세 이상의 모든 노인에게 매달 국민연금 가입자 평균의 20%에 해당하는 연금(2007년 기준 34만원)을 지급하고 ② 국민연금은 보험료율과 소득대체율을 각각 7%, 20%로 낮추는 국민연금 개혁안을 만들어냈다.

①은 2012년 대선 과정에서 박근혜 후보가 약속했던 ‘기초연금(65세 이상 모든 노인에게 월 20만원씩 지급)’ 공약보다 급진적이다. 노인 기초연금은 매년 세금을 거둬서 지급하는 것이라 고령화 속도가 빠른 우리에게는 재정 부담이 만만치 않다. 오죽했으면 약속은 반드시 지킨다는 박근혜 대통령조차 65세 이상 노인 중 소득 하위 70%를 대상으로, 그것도 국민연금과 연계해서 차등 지급하는 식으로 공약을 후퇴시켰겠는가. ②는 소득대체율 40%인 지금도 ‘용돈 연금’으로 불리는 연금을 ‘껌값 연금’으로 전락시켰을 것이다. 다행히 좌·우파 정책연합의 이율배반적인 개혁안도 정부안과 함께 부결됐다. 이런 우여곡절을 거친 뒤에야 여야는 2007년 7월 보험료율은 9%로 유지하고 60%인 소득대체율만 2028년까지 점진적으로 40%까지 인하하는, ‘그대로 내고 덜 받는’ 국민연금법 개정안을 합의 처리했다. 현행 국민연금 제도가 만들어진 ‘흑역사(黑歷史)’다.
당시 한나라당은 70%가 넘는 반대여론이 두려워서 국민연금 개혁에 반대했을 것이다. 재원 조달 계획도 없이 불쑥 꺼내든 노인 기초연금 제도는 해마다 늘어나는 노인 표를 노린 선심 정책이었다. 대중에게 영합한 것이다.

여야가 바뀌자 이제는 새정치민주연합이 그 길을 따라가고 있다. 박근혜정부의 공무원연금 개혁에 딴지를 걸고 과거 자신들이 인하했던 국민연금 소득대체율을 다시 올리자는 자가당착에 빠져있다. 공무원 표밭을 다지고 노후가 불안한 국민의 마음을 사서 정권을 되찾아오겠다는 속내가 빤히 보인다.

개혁은 누군가의 손해를 전제로 하는 것이다. 그런데 사람 심리가 그렇다. 뭔가를 빼앗기지 않으려는 욕망이 자신에게 없는 것을 소유하려는 욕망보다 더 크다. 개혁이 혁명보다 어렵다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그래도 개혁을 이뤄내는 지혜로운 국민과 정당은 있다. 연금 개혁만 놓고 봐도 나라 밖으로 눈을 돌려보면 국민의 노후 보장과 재정 안정성을 동시에 이룬 사례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이들은 머리를 맞대고 상충하는 이해를 절충할 수 있는 최적(最適)의 지점을 찾아냈다.

우리 정치권이 만들어낸 공무원연금 개혁안은 최선의 선택이었나. “그렇다”고 대답할 국민은 공무원 가족을 제외하면 많지 않을 것이다. 이해 당사자의 과도한 욕망과 정치권의 대중영합주의가 손잡으면 개혁은 성공할 수 없다. 로마 시대의 철학자인 세네카는 “국민의 뜻을 따르기만 하면 국민과 함께 망하고 국민의 뜻을 거스르기만 하면 국민에 의해 망한다”고 말했다. 대한민국이 저출산·고령화의 덫에서 빠져나와 선진국으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국민과 지도자 모두 세네카의 충고를 마음에 새겨야 할 것이다. 조남규 사회부장


                                                'The dying Seneca' by Peter Paul Rube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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