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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반란(叛亂)’이 성공했다. ‘아웃 사이더’ 도널드 트럼프가 3일(현지시간) 공화당 대선후보 지명을 사실상 확정짓고 162년 역사의 공화당을 접수했다.

트럼프는 백악관도 점령할 수 있을까. 

미국 대선은 50개주와 워싱턴D.C.에서 선출된 선거인단 투표를 통해 치러진다. 오는 11월8일 대선에서는 50개주에서 단 한 표라도 더 얻은 후보가 해당 주의 선거인단을 모두 확보한다. 이른바 ‘승자독식’ 방식이다. 선거인단은 모두 538명. 인구가 많은 주일수록 선거인단 수도 많다. 대선 승리를 위한 매직 넘버는 전체 선거인단의 최소 과반인 270이다.

선거인단 투표와 승자독식제를 병행하다보니 일반 유권자 투표에서 이기고도 대통령이 되지 못하는 후보가 나올 수있다. 민주당 앨 고어 후보와 공화당 조지 W. 부시 후보가 맞붙었던 2000년 대선이 바로 그런 경우다. 고어 후보는 일반 유권자 투표에서 부시 후보 보다 54만3895표를 더 얻었지만 대통령이 되지 못했다. 부시가 더 많은 선거인단을 확보했기 때문이다.(부시 271 대 고어 266)

각당의 대선 후보를 선출하는 예비선거와 대선은 차원이 다른 게임이다. 트럼프가 공화당 경선 과정에서 획득한 표는 전체 미국 유권자의 4.7%에 불과했다. 공화당 경선 과정에서 트럼프는 뉴욕, 펜실베이니아, 일리노이주에서 압승했지만, 이들 3개주는 최근 대선에서 연거푸 민주당 후보에게 승리를 안겨준 곳이다. 아래 그래픽은 1992년 대선부터 2012년 대선까지 민주당, 공화당 후보가 50개주와 워싱턴D.C.에서 몇 번씩 승리했는지를 정리한 것이다. 


 

 

한 눈에 봐도 민주당에 유리한 구도다. 캘리포니아를 비롯한 18개주와 워싱턴D.C.의 경우 지난 6번의 대선에서 매번 민주당 후보가 이겼다. 이들 18개주와 워싱턴D.C.의 선거인단 수는 모두 242명이다. 줄기차게 민주당 후보를 지지한 이들 18개주와 워싱턴D.C.는 ‘민주당 장벽(Blue Wall)’으로 불리기도 한다. 민주당 강세 지역인 Blue Wall에 플로리다(29명)만 보태면 매직 넘버를 채우고도 1명이 남는다. 올해 대선에서도 이런 구도가 재연된다면 힐러리 클린턴의 낙승(樂勝)이다.

하지만 이번 대선에서는 그런 구도가 20년만에 무너질 것이 확실시된다. 대선경선 과정에서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과 트럼프 후보가 그 조짐을 미리 알렸다. 미국의 유권자들이 ‘워싱턴 정치’에 레드 카드를 꺼내든 것이 ‘샌더스 바람’, ‘트럼프 돌풍’의 본질이다. 미국인들은 민생은 돌보지 않은 채 정쟁만 일삼고 있는 정치권에 분노했다. 응징 대상엔 민주당, 공화당이 따로 없었다. 미국을 떠받치던 중산층이 붕괴하고 서민의 삶은 더 힘들어졌기 때문이다.

한 때 미국 제조업의 중심이었던 중서부와 동북부의 ‘러스트 벨트(Rust Belt·제조업 사양으로 쇠락한 지역)’ 주민들의 상실감은 더 컸다. 트럼프, 샌더스가 이들 지역에서 강세를 보였던 것은 우연이 아니다. 사업가인 트럼프가 이 점을 놓쳤을리 없다. 러스트 벨트 지역이 산재해 있는 뉴욕과 펜실베이니아, 일리노이, 미시건, 위스콘신주는 ‘Blue Wall’에 포함돼 있다. 트럼프가 클린턴을 꺾기 위해서는 지금까지 민주당 아성이었던 ‘Blue Wall’부터 무너뜨려야 한다.

아래는 미국 CNN방송 정치팀이 자체 분석한 대선 판세도다. 

 

 

위 지도에서 노란색은 격전지로 분류된 주다. 콜로라도와 플로리다, 아이오와, 뉴 햄프셔, 네바다, 오하이오, 버지니아, 위스콘신, 노스 캐롤라이나주 등이다.

하늘색은 민주당이 우세를 보이는 주(미시간, 펜실베이니아)다. 파란색은 민주당 강세 지역으로 분류된 주다. 트럼프는 민주당 강세주는 버리고 민주당 우세주와 격전지로 분류된 주에서 승부를 보려 할 것이다. 그 중에서도 러스트 벨트 지역인 펜실베이니아와 위스콘신, 미시간주가 최대 승부처다. 러스트 벨트 지역에는 트럼프의 핵심 지지층인 백인 노동자층의 비중이 높다. CNN은 “트럼프는 펜실베이니아와 위스콘신, 미시간, 오하이오 주에서 이른바 ‘레이건 민주당원’(Reagan Democrat·로널드 레이건 시대에 민주당에서 공화당으로 전향한 백인 노동자)들의 지지를 얻기를 희망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올해 대선의 최대 격전지는 러스트 벨트다.

트럼프의 러스트 벨트 공략 전략은 승산이 있을까. 트럼프가 위 지도에서 빨간색으로 칠해진 공화당 강세주와 분홍색으로 칠해진 공화당 우세주를 모두 지키면 선거인단 191명을 확보한다. 그런 뒤 러스트 벨트의 펜실베이니아와 위스콘신, 미시간주에서 승리하면 선거인단을 237명까지 늘릴 수 있다. 매직넘버까지는 33명이 부족하지만 트럼프에게는 격전지가 남아있다. 러스트 벨트 전투 결과는 인근 주인 아이오와,오하이오주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또 하나 중요한 변수가 트럼프의 향후 지지율 추이다. 지지율이 높아지면 러스트 벨트나 격전지에서 트럼프의 승률이 높아진다.

아래는 클린턴이 트럼프 보다 지지율 10% 포인트 정도 앞서는 상황을 전제로 뉴욕타임스(NYT)가 예측한 대선 전망이다. 지난 4일(현지시간) CNN이 공개한 여론조사 결과가 이 정도 수준이다.

 

 

 



트럼프 후보가 모든 주에서 지지율을 5% 포인트씩 더 높이면?

트럼프는 CNN이 격전지로 분류한 플로리다, 노스 캐롤라이나, 오하이오에서 승리하는 것으로 예측됐다. 대선 판세는 박빙 경합 국면이 된다.

 

 


트럼프가 지지율을 모든 주에서 10% 포인트씩 더 높이면? 트럼프는 CNN이 격전지로 분류한 콜로라도와 플로리다, 오하이오, 노스 캐롤라이나, 버지니아, 뉴 햄프셔주에서 승리하는 것으로 예측됐다. 이러면 트럼프 대통령이 탄생한다.

 


조남규 국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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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미국 대선은 보수 성향의 유권자들이 공화당을 심판한 선거로 기록될 전망이다.

‘아웃 사이더’ 도널드 트럼프가 26일(현지시간) 치러진 미국 동북부 5개주 경선을 싹쓸이하면서 트럼프의 후보 지명 가능성이 한층 커졌다. ‘트럼프 대항마’로 나선 테드 크루즈 상원의원이 트럼프의 독주를 저지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로써 7월 ‘중재 전당대회’ 경선에서 트럼프 대신 다른 후보를 세우려던 공화당 주류의 구상은 차질을 빚게됐다. 

원래 공화당 주류가 밀던 후보는 크루즈가 아니었다. 주류는 젭 부시 전 플로리다 주지사를 공화당 대선 후보로 내세우려했다. 부시가 낙마한 뒤엔 마르코 루비오 상원의원에게 희망을 걸었다. 그런데 루비오마저 ‘트럼프 돌풍’에 쓰러지자 우선 트럼프의 후보 지명부터 막고보자면서 궁여지책으로 선택한 게 크루즈였다. <8회 ‘공화당 주류와 크루즈의 오월동주(吳越同舟)’ 참고> 크루즈는 우파 대중운동인 ‘티 파티’ 세력의 전폭적 지원 아래 정치권에 입문했다. 티 파티 세력은 응집력이 강하지만 소수파다. 보수 진영의 절반 가량은 ‘다소 보수적(somewhat conservative)’인 성향으로 분류된다. ‘온건·중도 보수’로 부를 수도 있다. 온건·중도라고 해서 모든 쟁점에서 온건하거나 중도라는 말은 아니다. 쟁점마다 왔다갔다하는 사람들이다. 티 파티 세력처럼 소신이 뚜렷한 우파 전사(戰士)가 아니다. 바로 이런 ‘다소 보수적’인 백인 유권자들이 트럼프를 띄웠다.

워싱턴포스트는 26일 “‘다소 보수적’이라고 밝힌 유권자로부터 더 많은 지지를 받은 주(州)가 트럼프는 18개인 반면 크루즈는 3개에 불과했다”고 보도했다. 고졸 이하 유권자 지지에서 승리한 주도 트럼프는 18곳인데 크루즈는 4곳에 그쳤다. ‘고졸 이하 학력’은 대체로 ‘블루 칼라’로 지칭되는 백인 노동자층과 겹친다.

블루 칼라는 원래 민주당 성향이었다. 그들은 프랭클린 루스벨트 민주당 행정부가 대공황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시행한 ‘새로운 정책(New Deal)’을 전폭적으로 지지했다. 뉴딜은 정부 재정을 풀어서 대공황으로 무너진 농민과 노동자, 노인 등을 구제한 조치다. 실업자 구제 조치와 각종 사회보장 정책이 도입됐다. 

사진 = GETTY IMAGES
뉴딜의 수혜자인 백인 노동자들은 민주당의 지지 기반인 ‘뉴딜 연합’의 주력군이 됐다. 이후 백인 노동자들(저소득, 저학력 백인을 통칭하는 개념으로 사용했다)의 정치 성향 변화는 미국 대선을 가르는 주요 변수로 작용했다.

아래는 역대 미국 대선 결과를 시각화한 지도다. 민주당 후보가 승리한 주는 파란색, 공화당 후보가 승리한 주는 빨간색으로 표시돼 있다.

 

 

남부가 오랫동안 민주당의 텃밭이었음을 보여준다. 특히 루스벨트가 민주당 후보로 나섰던 1932년, 1936년, 1940년, 1944년 대선은 미 전역이 파란색으로 도배돼 있다. 

 

 

존 F. 케네디, 린든 존슨 민주당 후보가 각각 승리한 1960년, 1964년 대선에서도 남부는 민주당의 아성이었다. 이 때까지는 백인 노동자들이 ‘뉴딜 연합’에 남아있었다는 방증이다.

그런데 린든 존슨 행정부가 흑인 인권 보호를 위한 민권법 제정에 나서면서 남부의 백인 노동자들이 공화당으로 말을 바꿔타게 된다. 남북전쟁 당시 남부연합을 공격한 공화당은 남부 백인들의 적이나 다름 없었다. 남부 백인들은 자신들의 노예였던 흑인과 친구가 되느니 자신들을 공격했던 북부 백인들과 화해하는 편을 택한 셈이다.

이제 1968년 대선 이후로는 남부에서 파란색을 찾아보기가 쉽지 않게됐다. (1976년 대선과 1992·1996년 대선은 예외다. 민주당이 각각 남부 조지아주 출신인 지미 카터와 남부 아칸소주 출신의 빌 클린턴을 후보로 내세웠기 때문이다.) 로널드 레이건이 공화당 후보로 나섰던 1980년, 1984년 선거는 압권이다. 남부는 물론이고 민주당의 아성인 동북부와 서부까지 온통 빨간색으로 물들었다. 레이건 시대에 미 전역의 백인 노동자들이 대거 민주당에서 공화당으로 전향했다. 이른바 ‘레이건 민주당원(Reagan Democrat)’이다. 보수 진영의 논객들이 민주당을 ‘엘리트의 정당’, 집안 배경이 좋은 ‘강남 좌파의 정당’으로 색칠하는 배경엔 백인 노동자를 포함한 레이건 민주당원들을 공화당에 붙잡아 두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 낙태나 동성애, 신앙 같은 문화적 변수들도 백인 노동자들을 보수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세월이 흐르면서 동북부·서부주에선 민주당이, 남부·중부주에서는 공화당이 우세한 정치 구도가 만들어졌다.

 
 

 

가장 최근에 치러진 2012년 미 대선 결과도 그렇다. 민주당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챙긴 선거인단 332명의 대부분은 동북부, 서부 주에서 챙긴 것이다. 밋 롬니 공화당 후보는 중부와 남부 주를 석권하고도 선거인단이 206명에 그쳤다.

사족이지만 위와 같은 그래픽은 실상을 정확히 반영하지 못한다는 지적이 많다. 위 그래픽만 보면 공화당이 승리한 것 같은 착시를 불러일으킨다. 그래서 지리적 개념이 아니라 대통령 선거인단 수를 기준으로 아래와 같은 지도를 그려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다.

 

 


이야기가 옆길로 샜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면 레이건 이후 공화당원으로 변신한 백인 노동자들은 이번 공화당 대선후보 선출 경선에서 공화당 주류 후보 대신 트럼프를 압도적으로 지지했다. 왜 그랬을까. 공화당이 2008년 금융위기로 타격을 입은 백인 노동자들을 외면했기 때문이다. 

2008년 11월 뉴욕 데이비드 레터만 스튜디오 근처 구직판을 목에 걸고 서있는 한 실직자. AP = 연합
2008년 대선에서 미국인들이 압도적으로 민주당 버락 오바마 후보를 선택한 것은 그가 흑인이여서가 아니다. 그 해 민주당 대선후보 선출경선에서 힐러리 클린턴이 이겼어도 같은 결과가 나왔을 것이다. 2008년 대선은 금융위기를 부른 공화당 조지 W. 부시 행정부의 실정(失政)을 응징한 선거였다.1997년 한국 대선에서 국민들이 외환위기를 부른 김영삼 정부를 심판했듯이. 공화당은 대선 뿐 아니라 동시에 치러진 상·하원 선거에서도 참패했다. 당시 민심은 경기침체로 고통받는 국민들 편에서 정치를 하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공화당은 민생을 챙기기보다는 이념투쟁에 몰두했다. 그 대표적 사례가 경기부양법안 반대투쟁이다.

오바마 정부는 출범하자마자 7670억 달러 규모의 경기부양 방안부터 마련했다. 정부 돈을 풀어서 얼어붙은 시장에 온기가 돌도록 하자는 취지였다.

프랭클린 루스벨트 민주당 정부가 1930년대 대공황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이런 방식의 재정지출 정책으로 효과를 봤다. 모두 알고 있듯이 뉴딜 정책은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스의 처방전에 따른 것이었다. 케인스는 정부가 재정지출 등을 통해 수요를 창출하면 경제성장률이 높아지고 실업률이 낮아지면서 경기침체를 극복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케인스는 이런 생각을 루스벨트 대통령에게 제시했고, 루스벨트는 케인스의 권고를 받아들여 재정지출 규모를 크게 늘렸다. ‘케인스주의’로 통칭되는 경기회복책이다. 

존 메이너드 케인스. 자료사진
하지만 2009년 1월28일 미 하원 표결에서 공화당 의원은 전원이 반대표를 던졌다. 이는 오바마 정부의 험난한 여정을 보여준 상징적인 예고편이었다. 공화당은 왜 경제를 살리자는 오바마 정부의 경기부양법안에 반대했을까. 당시 공화당 하원 원내대표였던 에릭 캔터는 “재정지출 정책은 경제는 회생시키지 못하고 재정적자만 키우는 구닥다리 정책”이라고 비판했다. 캔터는 오바마 대통령에게 국민의 세금을 깎아주는 게 우선이라고 제안했다. 굳이 부양책을 쓰려거든 부양 지출 만큼 다른 부처의 지출을 줄이라고 요구했다. 이런 요구가 먹히지 않자 부양법안에 반대한 것이다.

공화당의 이런 기조는 공화당 우파의 시조격인 배리 골드워터의 생각이다. 골드워터는 경제학자 프리드리히 하이예크의 생각에 깊이 공감했다.

평생을 케인스의 대척점(對蹠點)에 서 있었던 하이예크는 개인의 자유로운 시장활동을 제약하는 정부의 개입은 비효율적이며 경기침체와 같은 자본주의의 문제점을 더 악화시킬 뿐이라고 주장했다. 심지어는 정부의 개입이 파시즘과 같은 폭정을 낳을 것이라고도 했다. 하이예크는 1944년 출간한 저서 ‘예종(隸從)의 길’에서 “경제적 자유 없이는 개인의 자유와 정치적 자유도 없다”고 강조했다. 그에게는 우파의 전체주의든 좌파의 사회주의든 정부가 경제를 좌지우지한다는 점에선 똑같이 나쁜 체제였다. 오바마 정부의 처방이 맞는지, 공화당의 반대가 옳은 길인지를 놓고는 보수, 진보 진영이 아직도 갑론을박하고 있다. 케인스와 하이예크가 평생을 싸웠던 것 처럼 어떤 경제정책이 효과적인지를 좌우하는 변수는 한둘이 아니다. 그렇지만 불이 났으면 불부터 꺼야한다. 그런데 공화당은 불을끄기 보다는 소방관의 불끄는 방법이 잘못됐다면서 소방호스를 잠궈버렸다.

경기부양 조치만이 아니다. 공화당은 오바마 대통령과의 협상 과정에서 사회보장 예산을 삭감하는데 전력 투구했다.

그런데 중요한 사실은 백인 노동자를 비롯한 일반 공화당원들은 오바마의 경기부양 조치나 사회보장 정책을 더 선호했다는 점이다.

2014년 ‘시카고카운실’이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공화당 의원 등 지도부의 50%가 사회보장 예산 삭감에 찬성한 반면 일반 공화당원들은 10%만이 삭감에 찬성했다. 그럼 트럼프는? 트럼프 후보는 “사회보장 예산은 절대 건드리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트럼프가 이민 개혁과 자유무역협정에 반대하고 있는 것도 어쩌면 일반 공화당원들이 그렇게 원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공화당이 우파 논리에 발목이 잡혀서 부질없는 정쟁을 벌이는 사이에 트럼프가 밑바닥 공화당원들의 불만을 대변하는 지도자를 자처하고 나선 셈이다.

조남규 국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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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미국 의회의 정쟁 사례(증세)

“더 이상 새로운 세금은 없습니다”

이렇게 장담한 사람은 1988년 미국 대선 당시 미국 공화당 대선후보로 지명된 조지 H.W. 부시(이하 부시)였다.

부시는 1988년 8월19일, 공화당 전당대회에서 대통령 후보 지명을 수락하면서 대통령이 되면 재임 기간에 어떤 형태의 증세 조치도 단행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상대 후보(민주당 대선후보인 마이클 듀카키스)는 세금 인상안을 배제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단호히 배제하겠습니다. 의회가 세금을 인상시키라고 압력을 가할 테지만 나는 안된다고 말할 것입니다. 그러면 또 압력을 가하겠지요. 나는 또 안된다고 말할 것이고, 그러고도 또 압력을 가하면 나는 '내 입술을 보시오. 새로운 세금은 더 이상 없습니다'라고 말할 것입니다”

좀 세게 나간 느낌이 든다면 정확한 진단이다. 로널드 레이건 공화당 행정부에서 부통령을 지낸 부시는 온건파로 분류된다. 레이건의 후광에 힘입어 대선 후보가 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집권 8년 동안 보수 진영의 영웅이 된 레이건과 비교할 때 카리스마도 약하고 정체성도 불분명한 미적지근한 후보였다. 특히 레이건 집권기에 증세 필요성을 제기했다가 공화당 우파의 미움을 샀다. 부시는 본선을 앞두고 공화당 우파의 환심을 사기 위해 ‘증세는 없다’는 화끈한 공약을 던진 것이다.

<조지 H.W.부시 전 대통령과 빌 클린턴 전 대통령(좌측)>

 

공화당 온건파니, 우파니 하는 용어가 혼선을 야기할 수 있겠다.

이 대목에서 잠시 공화당 계보를 따져보자. 지금 공화당을 장악하고 있는 우파의 시조(始祖)는 1964년 대선 당시 공화당 후보였던 배리 골드워터다. <3회, ‘인종차별 트럼프의 정치적 스승' 참고> 골드워터 보다 더 보수적인 공화당원들은 이전에도 많았지만 골드워터는 우파의 이념을 체계화하고 우파 진영의 전사들에게 영감을 제시한 첫번째 인물이다. 골드워터는 사회 부문에서는 흑인의 권리 증진을 위한 민권법에 반대했고 경제 부문에서는 보수적 자유주의자였다. 피닉스에서 백화점을 운영했던 조부처럼 그도 ‘작은 정부론’을 신봉했다. 골드워터는 저서 ‘한 보수주의자의 양심(The Conscience of a Conservative)’에서 “정부 효율을 높이는 데는 별 관심이 없다. 내가 원하는 것은 정부의 크기를 줄이는 것이다”고 주장했을 정도로, 연방 정부의 개입과 간섭을 혐오했다.

무명의 레이건은 골드워터 덕분에 일생 일대의 기회를 잡게된다. 1964년 10월27일 저녁 레이건의 골드워터 후보 지원 연설 ‘선택의 시간(Time for Choosing)’이 미 전역에 방송되면서 레이건은 단숨에 미 보수진영의 기대주로 떠올랐다. 보수 진영은 2년 뒤 레이건을 캘리포니아 주지사 후보로 밀었다. 레이건은 민주당 소속의 재선 주지사를 대패시키며 공화당 대선 후보군에 이름을 올렸다. 골드워터 지원 연설이 1980년 레이건 대통령 탄생의 시발점이 된 셈이다.

레이건은 골드워터 지원연설에서 미국인의 세금 부담이 너무 과중하다고 역설했다. 정부의 경제개입 정책으로 경제가 망가졌으니 이제 개인과 시장에 더 많은 자유를 주는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민주당 정부의 복지 정책은 국민의 근로의욕을 감퇴시키고 도덕적 해이를 초래한다고 했다. 이날 연설의 주제였던 작은 정부, 경쟁, 감세 등은 후일 레이건 행정부의 국정 기조가 됐다. 1980년 대선에서 승리한 레이건은 대통령 취임사에서 “정부는 우리가 안고 있는 문제의 해답이 아니다. 정부가 오히려 문제다”라면서 자신이 골드워터의 후계자임을 공식 선언했다. 골드워터가 뿌린 씨앗은 16년 뒤 레이건 시대가 열리면서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게 된 것이다.

레이건이 골드워터의 후계자라면 부시는 온건 보수 성향의 넬슨 올드리치 록펠러의 후계자로 볼 수 있다. 골드워터가 64년 공화당 대선후보 선출 경선에서 록펠러를 누른 배경은 <3회, ‘인종차별 트럼프의 정치적 스승' >에서 소개한 바 있다. 간단히 정리하면 온건 보수는 이념 보다는 현실을 중시하는 실용파다.

대통령에 당선된 부시의 국정 기조는 실용주의였다. 보수주의자들이 선호하지 않는 환경이나 장애인 보호 정책을 추진했고 민주당 의원들의 도움을 받아서 관련 법안들을 입법화했다. 실용 대통령 부시는 집권 후 ‘증세는 없다’는 공약을 지키기 어렵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90년 여름 미국을 강타한 경기침체는 좀체 회복되지 않았다. 재정적자는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정부의 지출을 줄여야 할 필요성이 커졌다. 미국 정부 지출에서 가장 큰 덩어리가 저소득층과 고령층 위한 의료보장예산(메디케어, 메디케이드)과 사회보장 예산이다. 백악관과 의회의 재정 지출 삭감 협상 과정에서는 항상 이런 복지 예산 삭감이 주요 이슈가 된다. 이런 복지 정책은 역대 민주당 정부가 도입한 것으로 민주당이 가급적 손대지 않으려하는 성역이다. 그런 만큼 복지 예산을 삭감하기 위해서는 민주당에 뭔가를 양보해야 한다. 민주당 의원들을 움직일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카드가 바로 증세다.

 

부시는 고심 끝에 증세 카드를 꺼내들게 된다. 공화당 대통령 부시는 야당인 민주당과의 협상을 통해 1990년 10월5일 고소득자의 소득세율을 인상하는 내용 등을 담은 예산법안에 합의했다. 그러자 공화당 하원 원내총무였던 뉴트 깅리치를 중심으로 한 공화당 우파는 벌떼처럼 몰려들어 부시를 공격했다. 공화당 의원 173명 가운데 찬성표를 던진 의원은 10명 뿐이었다. 91년 걸프전 승리 직후 90% 가깝게 치솟았던 부시 대통령 지지율은 92년 여름쯤에는 30% 밑으로 추락했다. 그 해 대선에서 부시 대통령은 아칸소 주지사 출신의 빌 클린턴 민주당 후보에게 완패했다. 클린턴 캠프에서 ‘문제는 경제야, 이 바보야(It's the economy, stupid)'라는 캐치 프레이즈를 내걸었을 정도로 당시 최대 쟁점은 경제였다. 그렇지만 부시의 패인이 경제 변수 뿐이었을까. 필자는 공화당의 내분이 또 다른 패인이었다고 본다. 성경에도 나와있듯이 분열한 가정은 바로 설 수 없는 법이다.

깅리치는 그런 식으로 부시를 물어뜯으며 성장했다. 깅리치는 공화당 온건파를 상대로 한 내전에서 승리한 뒤 94년 중간선거에서 깅리치 사단을 대거 당선시켰다. 의회를 장악하고 결국 하원의장의 꿈을 이룬 깅리치의 다음 공격 대상은 클린턴 민주당 행정부가 됐다. 깅리치와 클린턴의 기 싸움은 연방정부 폐쇄로 이어졌다.

90년 10월 증세를 둘러싼 부시 대통령과 공화당 우파의 갈등은 21년 뒤 버락 오바마 민주당 행정부에서 주역만 바뀐 채 그대로 반복됐다.

금융위기 여파 속에서 대통령이 된 오바마는 공화당과의 협상 과정에서 번번이 벽에 부닥친다. 협상의 가장 큰 걸림돌은 바로 증세 문제였다. 양 측은 재정적자를 줄이자는 총론에는 동의했다. 그렇지만 재정적자를 어떻게 줄일 것인지를 놓고 각론에서 충돌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대체로 공화당이 부유층·고소득자 증세(정확히는 이들에 대한 이전 정부의 감세 조치를 추가로 연장해주지 않는 것) 방안을 수용하면 복지 지출을 삭감하겠다는 입장을 견지했다. 하지만 공화당은 오바마의 부유층·고소득자 증세안에 결사 반대했다. 2011년 정부부채상한 인상 협상 과정에서는 공화당이 미국의 부도(디폴트)를 볼모로 잡은 벼랑 끝 전술을 동원했다. 정부부채상한 인상 협상은 오바마 대통령이 증세 없이 정부지출을 줄이기로 양보하면서 극적으로 타결됐지만 그 과정에서 정치권이 보여준 극한 대결 행태가 결국은 국가 신인도에 악영향을 미치게 됐다. 미국의 신용평가기관인 스탠더드 앤드 푸어스(S&P)가 시급한 국가적 현안을 해결하지 못하는 정치권의 행태를 문제삼으면서 사상 처음으로 미 연방 정부의 신용등급을 강등시킨 것이다.

 

                           <2011년 7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공화당 존 베이너 하원의장과 에릭 캔터 하원 원내대표를 백악관으로 불러 설득하고 있다.  
                           왼쪽부터 베이너, 조 바이든 부통령, 오바마, 캔터.>  백악관 홈페이지

 공화당 우파는 왜 사생결단으로 증세에 반대하는 것일까. 부시 집권 시절 부통령을 지낸 댄 퀘일이 고소득자에게 더 많은 세금을 부과하는 누진세를 비판하면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왜 최선의 사람들이 벌을 받아야 하나” 이게 공화당 우파의 기본 인식이다. 돈 많이 번 사람들은 최선을 다한 사람들이다. 남들 놀 때 일하고 남들 돈 쓸 때 아끼면서 재산을 모았다고 보는 것이다. 부자는 그렇게 모은 돈으로 투자해서 일자리도 만들어낸다. 고소득자는 소비를 통해 경기를 되살아나게 한다. 이렇게 훌륭한 사람들에게 국가가 상을 주지는 못할망정 세금을 왕창 부과하는 것이 옳은 일이냐고 공화당 우파는 묻는다. 공권력을 행사해서 그런 못된 세금을 거두는 주체가 정부이기 때문에 우파는 정부의 규모가 작으면 작을수록 좋다고 본다.

다시 부시의 증세 결단으로 돌아가면, 그의 선택을 놓고는 ‘희대의 공약 뒤집기, 공화당 행정부 최악의 결정'이라는 비판이 있는가 하면 '국가경제를 위해 자신의 정치적 미래를 희생한 결단'이라는 평가도 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조남규 국제부장

 
 
① 미국 의회의 정쟁 사례(오바마 케어)

 

2016년 대선후보 선출 경선에서 표출된 공화당의 난맥상은 길을 잃은 미국 보수주의의 현 주소를 보여준다.

‘아웃 사이더’ 도널드 트럼프는 공화당의 골칫거리가 된 지 오래다. 공화당 주류가 어쩔 수 없이 트럼프 대항마로 내세운 테드 크루즈 상원의원도 공화당을 구해낼 지도자감은 아니다. 공화당 동료 의원들이 그렇게 보고 있다. 크루즈는 버락 오바마 민주당 행정부와 싸우면서 인지도를 키운 대표적 정치인이다. 우파 대중 운동인 티 파티 세력의 도움으로 상원의원이 됐고 공화당 보다는 티 파티를 대변하는 행보를 보였다. 국외자가 보기에도 트럼프나 크루즈 중 한 사람을 대선후보로 세워야 하는 공화당의 처지가 딱하다. 

트럼프를 띄운 힘은 국민을 신물나게 한 ‘워싱턴 정쟁’이었다. <1회 ‘샌더스·트럼프가 뜬 진짜 이유’ 참고> 그 정쟁의 한 복판에 버락 오바마 민주당 행정부의 정책에 사사건건 반대해온 강경파 크루즈가 있었다. <8회 ‘공화당 주류와 크루즈의 오월동주(吳越同舟)’ 참고>

정쟁 없는 정치도, 타협 없는 정치도 무의미하다. 정치가 ‘가능성의 예술’로 불리는 이유다. 무슨 일이든 지나치면 모자람만 못한 법이다. 공화당 우파의 문제는 너무 지나치다는 점이다. 좋게 표현하면 소신에 투철한 정치라고 할 수 있지만 대개는 이런 부류가 의회를 싸움판으로 만든다. 미국 대선경선이 소강상태에 접어든 만큼 당분간 미 정치권에서 벌어졌던 정쟁 사례들을 하나씩 짚어본다. 

대표적 정쟁 사례가 2013년 미국 연방정부 폐쇄 사태를 초래한 공화당의 ‘오바마 케어’(오바마 정부가 추진한 의료보험개혁법안, 정식 명칭은 ‘환자 보호 및 적정 가격의 의료서비스를 위한 법령’) 반대 투쟁이다. 오바마 대통령이 최대 치적으로 내세우고 있는 의료보험 개혁은 민주당 정부의 오랜 숙원이었다.

미국의 의료비는 가히 살인적인 수준이다. 맹장이라도 터지면 수 천 만원의 병원비를 각오해야 한다. 그래서 밥은 굶어도 보험은 들어야 하는데 보험료가 만만치 않다. 제대로 된 의료보험에 가입하려면 4인 가족 기준으로 최소 월 100만원은 부담해야 한다. 질병 이력이 있는 사람이 보험에 들려면 더 많은 보험료를 내야 한다. 그 것도 병력이 있으면 잘 받아주지도 않는다. 보통의 미국인들은 기업이 제공하는 의료보험에 가입해 있는데 직장에서 잘리면 의료보험도 사라진다. 의료보험 혜택을 제공하지 않는 영세 기업도 많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미 국민 수 천 만명이 보험 없이 하루 하루 불안한 삶을 살아가야 했다. 가족 중 누군가 큰 병에 걸리면 파산하기 일쑤다. 전체 개인 파산의 대부분이 의료비 부담에 따른 파산이다. 특파원 시절 필자도 병원가기가 무서웠다. 임산부들이 출산을 한 뒤 하루 만에 퇴원했다는 말도 들었다. 하루 수 백만원에 이르는 입원비를 감당하기 힘들어서다. 오바마 정부가 의료보험 개혁을 추진하기 이전의 미국 현실이었다. 단언컨대 전국민 의료보험 제도가 완비된 한국은 적어도 의료보험에 관한 한, 미국 보다 선진국이다.

오바마 정부 이전에도 수많은 의료개혁 시도가 있었다. 1912년 진보당 대선후보로 나섰던 시어도어 루스벨트가 전국민 의료보험 공약을 내건 이래 해리 트루먼이나 지미 카터 민주당 정부는 물론 공화당 정부인 리처드 닉슨, 제럴드 포드 대통령도 나름의 의료개혁을 추진했다. 그 만큼 미국의 의료 시스템 개혁은 역대 정부의 난제 중의 난제였다. 의료개혁에 있어서는 린든 존슨 민주당 정부의 ‘메디케어’(노인 의료보험제도)와 ‘메디케이드’(저소득층 의료보장제도)가 가장 획기적이다. 1964년 대선에서 공화당의 배리 골드워터 후보를 크게 누르고 승리한 바로 그 존슨이다. 존슨 정부는 1964년 대선과 의회선거에서 압승한 동력을 바탕으로 메디케어, 메디케이드 개혁을 성사시켰다. 그 이후로는 오바마 케어 외에 그 어떤 의료개혁 법안도 의회의 벽을 넘지 못했다. 1992년 대선에서 승리한 빌 클린턴 대통령이 취임 100일 안에 의료개혁안을 내놓겠다고 선언하고 야심차게 의료개혁을 추진했지만 결국 의회에서 발목이 잡혔다. 이 때 대통령 직속의 의료개혁 특별위원회 위원장을 맡은 인사가 다름아닌 퍼스트레이디 힐러리 클린턴이었다. 올해 민주당 대선후보로 확실시되는 힐러리 클린턴은 당시 의료개혁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보수 진영의 공적(公敵)이 됐다.

오바마 이전의 의료개혁이 실패한 이유는 한 둘이 아니다. 전국민 의료보험이 도입되면 수익이 줄어들 것을 우려한 보험 회사나 제약업체도 반대했고 이들의 로비를 받은 의원들도 비협조적이었다. 기존에 의료보험에 가입해있는 국민들도 전국민 의료보험을 선호하지 않았다. 여유 계층에서는 왜 내가 다른 사람의 의료보험 비용까지 부담해야하느냐고 생각할 수 있다. 민주당 의원들도 이런 여론을 쉽게 무시할 수 없다. 그래서 개혁이 혁명 보다 어려운 법이다.

그걸 오바마 정부가 해냈다. 2010년 3월 미국 의회는 시어도어 루스벨트가 공약한 지 100년만에 의료보험개혁법안을 통과시켰다.

2008년 대선과 의회 선거에서 민주당이 백악관과 상·하원을 장악하지 못했다면 엄두도 못냈을 일이었다. 역사적인 법안이었다. 100년만이라서 그런 것은 아니다. 수많은 난관들을 뚫고, 정치적 부담을 감수하면서 이뤄낸 것이라서 그런 것이다. 당리당략의 차원에서 평가한다면 오바마 대통령과 민주당의 의료보험개혁은 자해 행위나 다름없었다. 이후 오바마 정부가 겪고 있는 정치적 어려움은 상당 부분 의료보험개혁 때문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오바마는 ‘사회주의자’로 매도됐고 민주당 의원들은 2010년 중간선거에서 대거 낙선의 고배를 마셔야 했다. 공화당은 지금도 반대하고 있다. 크루즈가 그 선봉에 서 있다. 크루즈는 2013년 오바마 케어의 집행예산이 새해 예산안에 포함됐다는 이유로 필리버스터(합법적 의사진행방해)에 나서 연방정부 폐쇄 사태를 불렀다.

자유의 여신상이 미국 연방정부의 셧다운으로 인해 일시 폐쇄 되었음을 알리는 팻말.
EPA=연합. 자료사진
오바마 케어는 공화당 측이 위헌 소송을 제기하면서 연방대법원까지 올라가게 됐다. 연방대법원에서는 일반의 예상을 깨고 보수파인 존 로버츠 대법원장이 오바마 대통령의 손을 들어주는 바람에 5 대 4로 합헌 판결이 나온 사실은 모두가 알고있는 그대로다. 오바마 케어의 실효성을 놓고는 아직도 미국 사회에서 논란이 분분하다. 필자처럼 필요한 개혁이었다고 생각하는 국민도 있고, 개인의 선택을 제한하는 사회주의적 조치라고 반대하는 국민도 있다. 공화당은 집권할 경우 오바마 케어부터 폐지하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오바마 케어를 폐지하는 조치도 오바마 케어를 만들어내는 조치 못지 않은 반발에 직면할 것이다. 오바마 케어 반대를 통해 정치적 이득을 보려는 것과 정치적 부담을 감수하고 오바마 케어 폐지를 추진하는 것은 별개의 일이다. 크루즈가 올 대선에서 대통령이 되면 오바마 케어 폐지 여부가 최대 쟁점으로 부상할 전망이다.

조남규 국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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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정치는 ‘살아있는 생물’이다.

2016년 미국 공화당의 대선후보 선출 경선이 딱 그렇다.

불과 몇 달 전만해도 공화당 주류는 올 대선에서 테드 크루즈 상원의원을 밀어줘야하는 상황이 오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크루즈는 지난 5일(현지시간) 위스콘신주 경선에서 도널드 트럼프 후보를 꺾고 천금같은 승리를 거두면서 그런 상황을 만들어냈다.


크루즈가 트럼프의 ‘매직 넘버’(공화당 대선 후보 지명을 확정짓는 대의원 수 1237명) 달성을 효과적으로 막아낸다면 전당대회 경선이 불가피해질 전망이다. 이른바 ‘중재 전당대회’다. 중재 전당대회가 열리면 트럼프와 크루즈, 존 케이식 오하이오 주지사가 표 대결을 할 가능성이 높다. <‘조남규의 미국정치 이야기(6) ‘반란군 트럼프의 운명은’ 참고>


공화당 주류는 지금 크루즈가 좋아서 밀고 있는 게 아니다. 원래 지지했던 젭 부시 전 플로리다 주지사와 마르코 루비오 상원의원이 ‘트럼프 광풍’에 밀려 추풍낙엽의 신세가 됐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크루즈를 선택한 것이다. 공화당 주류로서는 트럼프가 전당대회 전에 공화당 대선후보 지명에 필요한 매직 넘버를 채우지 못하도록 하는 게 급선무다. 크루즈만이 그 일을 해낼 수 있다. 크루즈가 임무를 완수한 뒤엔? 그 건 그 때가서 보자는 것이 공화당 주류의 속내일 것이다.

크루즈가 남은 경선에서 트럼프와의 격차를 최대한 좁히면 공화당 주류는 크루즈에게 표를 몰아줄 것으로 관측된다. 크루즈가 희망하는 시나리오다.

미국 공화당 폴 라이언 하원의장이 지난 3월 워싱턴 연방의사당에서 도널드 트럼프 후보를 겨냥해 “공화당 대통령 후보가 되고 싶은 사람이라면 인종주의자 또는 인종주의 조직을 거부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워싱턴=AP연합뉴스


공화당 주류는 다른 그림을 그릴 수도 있다. 전당대회에서 트럼프도, 크루즈도 아닌 제3의 후보를 ‘추대’하는 방안이다. 본인의 의사와 무관하게 공화당 1인자인 폴 라이언 하원의장이나 2012년 공화당 대선후보였던 밋 롬니 전 매사추세츠 주지사 등의 이름이 꾸준히 거론되고 있는 이유다. 현행 공화당 전당대회 규정으로는 불가능한 일이지만 규정은 성경이 아니다. 공화당 규정위원회에서 얼마든지 바꿀 수 있다. 트럼프 대항마가 부시나 루비오였다면 거론되지도 않았을 제3후보 추대 주장 등이 나오는 것은 공화당 내의 크루즈 비토 기류 탓이다.

크루즈는 왜 그렇게 주류의 미움을 받고 있을까.

우선 그의 ‘독불 장군’ 행태가 반감을 자초한 측면이 강하다. 크루즈는 2012년에 당선된 초선 상원의원이다. 한국 국회도 그렇지만 미국 의회에서도 선수(選數)는 중요한 기준이다. 선수를 기준으로 당내 랭킹이 매겨진다. 상원은 하원 보다 전통과 관행을 존중하는 분위기가 강하다. 그런 상원에서 1970년생인 크루즈는 1942년생 공화당 상원 원내대표인 미치 맥코넬과 맞짱을 떴다. 2013년 맥코넬 대표를 비롯한 공화당 지도부가 백악관·민주당과의 예산안 협상 과정에서 ‘오바마케어’(버락 오바마 민주당 행정부가 마련한 건강보험 개혁 조치)집행 예산을 포함시키는 타협안을 마련하자, 크루즈는 맥코넬을 ‘거짓말쟁이’라고 부르며 강하게 비판했다. 공화당 지도부는 공화당 유권자의 뜻을 저버리고 오바마 정부에 투항한 인사들로 매도했다. 


 

미국 공화당 대선주자인 테드 크루즈 상원의원(왼쪽)이 5일 위스콘신주 경선에서 승리한 뒤 부인 하이디와 함께 경선 승리 연설을 하고 있다.
밀워키=AP연합뉴스


한국 국회의 막장 드라마에 익숙한 우리로서는 선뜻 와 닿지 않지만 미 의회에서는 동료 의원을 ‘거짓말쟁이’로 부르는 정도의 발언도 큰 논란거리가 된다. 언론도 크게 다룬다. 2009년 공화당의 조 윌슨 하원의원이 상·하원 합동연설을 하고 있는 오바마 대통령을 향해 “당신 거짓말이야”라고 소리쳤다가 사과 성명을 냈던 일도 있었다. 당시 민주당은 윌슨 의원에 대한 규탄결의안까지 추진했다. 상원 의사규칙은 구체적으로 동료 의원들에 대한 직·간접적인 비난 발언을 하지못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니 고참 의원들 눈에는 크루즈의 거침없는 언행이 시쳇말로 ‘싸가지가 없는’ 행태로 보였을 것이다. 공화당에는 지금도 크루즈에게 앙심을 품고 있는 의원들이 많다. 어떤 의원들은 크루즈의 공식 사과가 있기 전에는 그를 지지하지 않겠다고 말한다. 크루즈는 위스콘신주 경선 승리 이후 부쩍 자주 공화당의 통합을 외치면서 동료 의원들에게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

보다 근본적인 이유를 들자면, 크루즈와 공화당 주류의 갈등은 공화당 노선 투쟁의 산물이다.


 


크루즈는 2012년 텍사스주 상원의원 선거에서 우파 대중운동인 ‘티 파티’ 세력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았다. 그 덕분에 공화당 예비경선 과정에서 텍사스주 현직 부지사를 꺾는 이변을 연출하면서 전국적으로 이름을 알렸다. 이후 크루즈는 ‘티 파티의 의회 대사’를 자처하면서 오바마 정부의 건강보험개혁이나 이민개혁, 증세 정책에 결사 반대하는 티 파티의 목소리를 대변했다. 공화당 주류도 오바마 정부의 정책에 반대한다는 점에서는 티 파티와 크게 다르지 않다. 공화당은 2010년 중간선거 과정에서는 티 파티 운동에 편승, 다수당 고지 탈환에 성공했다. 이 때 티 파티 계열 의원들이 공화당 하원에 대거 유입됐다.

하지만 선명성은 투쟁의 시기에 필요한 덕목이다. 2010년 중간선거 이후 공화당은 비타협 노선으로 일관하는 티 파티 계열 의원들에게 발목이 잡혀서 오바마 정부와는 그 어떤 타협도 불가능한 정당으로 변해갔다. 공화당은 더 우경화됐다. 탈레반같은 티 파티 계열 의원들은 공화당의 골칫거리가 됐다. 원래 티 파티 운동은 과도한 정부 지출에 반대하면서 시작된 시민 운동이었는데 보수 우파가 개입하면서 사실상 오바마 정부에 반대하는 정치 운동으로 변질됐다. 나중에는 종교 우파인 기독교 복음주의와 인종주의 세력까지 티 파티로 흘러들어갔다. 2013년 미국 연방정부 폐쇄 사태를 야기한 주범이 바로 크루즈를 필두로 한 티 파티 계열 의원들이다. 이 때 크루즈는 오바마케어 집행예산을 막기위해 21시간19분 동안 ‘필리버스터(의사진행방해)’를 했다. 크루즈는 떴지만 공화당은 연방정부 폐쇄 책임론에 휩싸였다.

티 파티의 이런 원리주의적 보수 노선은 공화당 주류가 바라는 진로가 아니다. 공화당 주류는 날로 인구가 늘어나는 히스패닉 등 소수인종이나 중도층을 끌어안지 않고서는 공화당의 미래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티 파티 세력은 자신들의 노선대로 당을 운영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2014년 6월 공화당 하원 원내대표를 지역구 당내 예비선거에서 낙선시키는 정치 반란까지 일으켰다. 그 희생자가 2010년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을 승리로 이끈 뒤 원내대표 자리에 올랐던 에릭 캔터다. 하원 다수당 원내대표가 예비선거에서 낙선한 것은 미 의회 역사상 초유의 참사였다. 그 것도 정치 신인인 대학 교수에게 졌다. 캔터는 정계 은퇴를 선언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공화당 주류와 티 파티 세력의 사이는 더 악화했다. 2008년 공화당 대선후보였던 그 점잖은 존 매케인 상원의원이 크루즈를 향해 ‘미친 자식(wacko bird)’이라고 욕을 해댔을 정도였다.

두 세력의 불화는 크루즈가 대선후보로 지명되는 과정에서, 크루즈가 공화당 대선후보가 된 이후 본선을 치르는 과정에서 줄곧 걸림돌로 작용할 전망이다.

조남규 국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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