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출간된 책 한 권이 미국 대선판에 파문을 일으켰다.

힐러리 클린턴이 미국 민주당 대선 경선에서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을 꺾고 대선후보 지위를 굳힌 시점이었다. 

저자는 힐러리가 퍼스트 레이디이던 시절 백악관 경호원으로 활동했던 게리 J. 번.

 그는 저서 ‘성격의 위기’(Crisis of Character)에서 힐러리의 남편인 빌 클린턴이 대통령 재임 시절 엘레노어 먼데일과 백악관에서 밀회를 즐기는 광경을 목격했다고 폭로했다. 엘레노어는 지미 카터 정부의 부통령을 지내고 1984년 대선에서 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나섰던 월터 먼데일의 딸이다.  

“(1996년) 크리스마스 시즌이었다. 대통령은 (백악관) 맵 룸에 있었다. 한 경호원이 맵 룸의 문을 열었다. 우리는 노크를 먼저 했어야 했다. 엘레노어 먼데일이 보였다. 대통령과 낯 뜨거운 자세를 취한 채. 경호원은 황급히 자리를 떴고 문은 닫혔다.”

엘레노어 먼데일, 빌 클린턴, 모니카 르윈스키

엘레노어는 당시 36살로, 방송 앵커로 활동 중이었다. 2011년 뇌암으로 숨진 엘레노어는 생전에 “빌과는 단지 친구 사이였다”고 말했다. 번은 저서에서 빌과 엘레노어를 불륜 관계로 묘사했다. 번은 동료 경호원의 진술을 인용해 빌이 엘레노어 뿐 아니라 백악관 여성 직원과 성적 관계를 맺었다고 암시했다. 이 백악관 여성 직원은 빌을 탄핵 직전까지 몰고간 백악관 인턴 모니카 르윈스키와는 다른 여성이다. 빌이 르윈스키와 백악관 집무실인 오벌 오피스 옆 작은 서재에서 오럴 섹스를 즐긴 사실은 공지의 사실이다.

 번의 저서는 출간되자마자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목록에 이름을 올렸다. 번의 폭로성 저서는 다분히 정치적이지만 이를 계기로 미국인들은 빌과 힐러리의 관계를 다시 한번 생각해보고 있다. 미 역사상 최초의 여성 대통령을 꿈꾸는 힐러리는 빌의 도움으로 여기까지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결코 평탄한 길은 아니었다. 무엇보다 힐러리를 괴롭힌 것은 빌의 바람기였다.

빌이 르윈스키와의 ‘부적절한 관계’를 토로했을 때, 힐러리의 심정은 어땠을까. 그의 고백 외에는 그 누구도 알 수 없을 것이다. 

‘나는 거의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숨을 한번 꿀꺽 삼키고, 울음을 터뜨리면서 그에게 고함을 질러대기 시작했다.…나는 점점 더 분노에 사로잡혔다.…너무 기가 막혀서 말이 나오지 않았다.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 내가 빌을 철석같이 믿었다는게 분통이 터졌다.…나에게 남은 것은 깊은 슬픔과 실망과 풀리지 않는 분노뿐이었다.…아내로서 나는 빌의 목을 비틀어버리고 싶었다.’(‘살아있는 역사’(Living History), 김석희 옮김, 웅진닷컴) 

뉴욕주 상원의원 출마를 결심한 힐러리는 빌과의 결혼 생활을 깨지 않기로 결정했다. 자신이 빌을 여전히 사랑하기 때문이고, 두 사람이 함께 보낸 세월을 소중히 여기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지난 7월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에서 열린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이 아내인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대선후보를 지지하는 연설을 하고 있다.
필라델피아=EPA연합뉴스
빌은 지난달 힐러리를 대선후보로 선출하는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매우 사적인 찬조연설을 했다.  

그 연설은 “1971년 봄, 나는 한 소녀를 만났다”는 문장으로 시작했다. 힐러리와 함께 한 45년을 얘기했다. 르윈스키는 거론하지 않았지만 부부로서, 정치적 동지로서 함께 해온 애환을 담담히 풀어냈다. 그 연설을 지켜본 미국인들의 심경은 한 갈래가 아닐 것이다. 두 갈래 길에서 빌을 선택한 힐러리의 결정도 이번 대선에서 새롭게 평가받을 것이다. 힐러리가 대선에서 승리하면 빌도 함께 백악관으로 돌아간다. ‘퍼스트 젠틀맨’ 빌 클린턴은 힐러리 클린턴 대통령과 그의 행정부에 큰 도전이 될 것이라고 뉴욕타임스는 보도했다. 

조남규 국제부장

 

 

오는 11월 대선을 앞두고 미국 보수가 분열하고 있다.

보수의 분열은 ‘아웃사이더’ 도널드 트럼프가 공화당 대선후보로 깜짝 선출되는 드라마를 통해 가시화했다. 트럼프 후보는 공화당 주류와 타협하지 않았다. 트럼프는 공화당의 기조인 자유무역이나 개입주의를 배척했다. 자유무역과 개입주의는 공화당의 전성기를 구가한 로널드 레이건, 조지 W 부시 정부의 국정 운용 기조다. 레이건과 부시의  보수는 낡은 보수 취급을 받고 있다. 왜 이렇게 됐을까. 자유무역이 확대되고 미국의 세계 경찰 역할이 커질수록 공화당을 떠받친 핵심 지지층인 백인 노동자들의 삶이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백인 노동자의 소득은 감소했고 자살률과 마약 범죄율은 치솟았다. 백인의 자존감은 급격히 추락했다. 이들은 워싱턴 정치를 원망했고, 헌신적으로 지지했던 공화당을 성토했다. 그러던 차에 백인 우월주의를 외치는 트럼프가 등장하자 그를 자신들의 대변자로 내세웠다. 이제 대선이 끝날 때까지 공화당은 ‘트럼프의 당’이 됐다. 트럼프와 공화당 주류는 11월 선거 승리를 위해 손을 잡아야 하는 오월동주(吳越同舟)의 처지이나 최근 내분이 격화되면서 트럼프호는 난파 직전이다. 

 레이건과 부시 행정부에 참여했던 보수 인사들은 거의 전원이 트럼프 반대 진영에 남았다. 최근에는 그나마 트럼프에 우호적이었던 뉴트 깅리치 전 미국 하원의장마저 트럼프와 선을 긋고 나섰다. 트럼프는 공화당 1인자인 폴 라이언 하원의장과 2008년 공화당 대선후보였던 존 매케인 상원의원이 자신의 인종주의적 편견을 비판하자 두 사람을 비토했다. 

 깅리치는 1994년 중간선거에서 만년 야당 공화당을 42년 만에 하원 다수당으로 만들면서 보수 진영의 영웅이 된 정치인이다. 이른바 ‘깅리치 혁명’이다. 그 힘으로 하원의장이 된 깅리치의 정적(政敵)이 다름 아닌 당시 백악관 주인이던 클린턴 부부였다. 특히 깅리치는 퍼스트 레이디였던 힐러리 클린턴의 저격수로 이름을 날렸다. 깅리치가 올해 대선 과정에서 트럼프 후보의 부통령 러닝 메이트로 이름이 오르내린 데는 이런 배경도 고려됐을 것이다. 트럼프의 낙점을 받지는 못했지만 깅리치는 트럼프 편에 서서 민주당 대선후보로 선출된 힐러리 클린턴 때리기에 동참했다. 그런 깅리치마저 트럼프와 거리를 두고 있다면 트럼프에게 큰 문제가 생겼다는 신호다. 

 

뉴트 깅리치 전 미국 하원의장

이미 공화당은 온전한 상태가 아니다. 중도파 공화당원들은 공화당 대선경선 과정에서 젭 부시 전 플로리다 주지사나 마르코 루비오 상원의원을 밀었다. 지금은 굿이나 보자는 관망자로 돌아섰다. 이들에게 트럼프의 편집증적인 히스패닉 공격 행태는 여간 불편하지 않을 것이다. 중도 공화당원들은 2008, 2012년 대선의 패배 원인 중 하나로 소수인종 증가세를 들고 히스패닉 끌어안기에 나섰다. 그래서 불법 체류자를 합법화하는 버락 오바마 민주당 정부의 이민개혁에 동조했다. 하지만 트럼프는 백인 노동자층의 분노를 이용해 공화당의 이런 중도화 노력을 흔적도 없이 지워버렸다.

 

 이제 공화당은 트럼프의 대선 승리 여부에 관계없이 보수 유권자들이 인증한 ‘트럼프주의(Trumpism)’의 수용 여부를 놓고 노선 투쟁을 벌여야 할 판이다.
트럼프 정부가 들어서면 공화당 주류는 급속히 재편될 전망이다. 트럼프의 등장으로 백인 노동자층과 기업인, 복음주의 유권자로 이뤄진 공화당 연합은 급속히 구심력을 잃어가고 있다.  일각에선 트럼프가 대선후보가 되면 급진적인 경선 전략을 완화시킬 것으로 예상했지만 대선후보가 된 이후 발언이 더 거칠어지고 있다. 공화당원들 사이에서 트럼프 지지율이 80%대에 머물고 있는 이유다. 2012년 대선 당시 공화당 후보였던 밋 롬니는 공화당 성향 투표자의 93% 지지를 받고도 오바마에게 졌다.    
트럼프가 대선에서 지면 소수인종을 포용하려 했던 레이건, 부시의 정당으로 회귀할 가능성이 높다. 그렇지만 트럼프가 남긴 유산은 두고두고 공화당 내분의 불씨로 남아 있을 것이다.  

 

사족 하나. 이 글을 정리해서 보내놓은 뒤 트럼프가 매케인과 라이언을 지지하는 쪽으로 입장을 번복했다는 외신 기사가 올라왔다. 할 수 없이 기사를 고쳐보낼 수 밖에 없었다. 국외자인 나도 짜증이 나는데 미국 유권자들은, 특히 트럼프를 대선후보로 선출한 백인 노동자층 유권자들은 트럼프의 오락가락 행태를 지켜보면서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조남규 국제부장 
삽화 = 워싱턴타임스 제공 

 

미국 민주, 공화당의 대선 경선이 시작되기 전에도 대선 주자들은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기 위해서 치열한 경쟁을 벌인다. 정당 내 유력 인사들을 자기 편으로 끌어들이고 선거자금을 모금하고 언론에 자주 노출되기 위해 노력한다. 이런 일련의 활동을 ‘보이지 않는 경선’(invisible primary)이라고 부른다. 경선을 앞두고 기초 공사를 하는 시점이다. 왜 ‘보이지 않는’ 경선일까. 그건 경선 전에 특정 후보를 중심으로 이뤄지는 정당 유력 인사나 후원자, 로비스트들의 움직임들은 은밀하게 전개되기 때문이다. 아이오와주 코커스(당원경선)를 시발로 민주, 공화당의 경선이 본격화하면 ‘보이지 않는 경선’의 성적표대로 순위가 매겨지곤 한다. 주요 정치인의 지지 선언도 중요하고 후원금 모금액도 중요하지만 미디어의 영향력을 과소 평가하면 안된다. 일반 유권자에게 어떤 정보가, 얼마나 자주 입력되느냐에 따라서 후보들의 지지율이 출렁거리게 된다. 미디어 노출이야말로 ‘보이지 않는 경선’의 핵심 요인이라고 할 수 있다. 이달말 각각 민주, 공화당 대선후보로 공식 선출된 힐러리 클린턴과 도널드 트럼프는 ‘보이지 않는 경선’에서 이미 1위를 차지한 후보였다. 특히 미디어 노출 빈도에서 트럼프는 압도적 우위를 보였다. 좀 과장되게 표현한다면 언론이 클린턴과 트럼프를 대선후보로 만든 셈이다. 

미디어가 선거에 미치는 영향은 기존에 밀실에서 결정되던 폐쇄적 후보 선출 방식이 경선 방식으로 바뀌면서 더욱 커졌다. 미디어는 유권자들의 생각과 화제를 좌우한다. 

  

선거에서는 무엇보다 인지도가 높아야 한다. 우선 누군지 알아야 좋아하든 싫어하든 선택이 가능하다. 인지도를 높이는 첩경은 언론에 나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후보들은 신문이나 방송의 광고를 돈을 주고 산다. 그런데 트럼프는 단 한푼도 안들이고 수천만달러 어치의 광고 효과를 냈다. 쇼맨십과 튀는 공약을 통해서다. 트럼프가 지난해 공화당 대선경선 출마 선언을 했을 당시 지지율은 한자리수에 그쳤다. 공화당 유력 정치인 중 그 누구도 트럼프를 지지하지 않았다. 일반 공화당원 중에서도 트럼프의 출마는 가십거리로 비쳤다. 보통 이런 후보는 미디어가 진지하게 다루지 않는다. 자주 소개하지도 않는다. 그런데 트럼프는 뉴스를 좇는 미디어의 속성을 역이용했다. 정치인의 금기로 돼있는 인종차별, 성차별 발언을 거침없이 쏟아내며 뉴스거리를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언론이 자주 다루자 트럼프의 인지도가 높아지기 시작했고, 트럼프의 지지율도 상승했다. 지지율이 상승하자 언론은 이제 더 자주 트럼프를 다루기 시작했고 그 덕분에 트럼프의 지지율이 상승하는 선순환이 이뤄졌다. 미디어는 시청율과 가독성을 높이기 위해 보도했을 뿐인데 결과적으로 트럼프를 띄우는 역할을 제대로 수행한 것이다.  

미국 하버드대 케네디스쿨 미디어분석팀이 올초 미국 대선 경선이 시작될 때까지 1년 동안의 미디어 보도를 분석한 결과, 트럼프가 미디어 노출로 얻은 광고 효과는 무려 5500만 달러(약 614억원) 어치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공화당 경선에서 트럼프에게 패배한 테드 크루즈 상원의원은 미디어의 과도한 트럼프 보도행태에 불만을 토로하면서 미디어가 2억 달러에 달하는 광고 효과를 트럼프에게 안겨줬다고 비판했다. 이런 비판에 미디어는 트럼프를 비판하는 보도가 더 많았다고 반박하고 있지만, 실제 정치인은 자신을 비판하는 기사도 싫어하지 않는다. 자신에 대한 기사는 부음 기사 빼고는 다 좋아한다는 농담도 있다.  

조남규 국제부장 

 

미국 공화당 대선후보로 선출된 도널드 트럼프가 백인표 결집을 통한 대선 승리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21일(현지시간) 공화당 전당대회 마지막 날 대선후보 수락 연설을 통해서다. 백인 표를 겨냥한 트럼프의 대선 전략은 오하이오주 클리블랜드에서 개최된 공화당 전당대회장에서 분명히 드러났다. 트럼프의 후보 수락 연설은 백인 표심을 겨냥하는 내용으로 일관했다.  

미국 공화당 대선후보로 선출된 도널드 트럼프가 공화당 전당대회 마지막 날인 21일(현지시간) 오하이오주 클리블랜드 ‘퀴큰론스 아레나’에서 대선후보 수락연설을 하고 있다.
클리블랜드=AP연합뉴스

불법 체류자 추방, 멕시코 국경 장벽 설치 공약 등은 히스패닉 유권자를 자극할 수 있는 것이지만 트럼프는 개의치 않았다. 백인 경관이 흑인에게 총격을 가한 사건과 이에 대한 보복 차원에서 흑인 저격범이 백인 경관들을 살해한 사건으로 흑백 인종갈등이 고조되고 있는 시점에 트럼프는 ‘법과 질서’를 강조했다. 흑인 사회의 반발은 감수하겠다는 태도가 역력했다. 트럼프가 이러리라는 것은 부통령 러닝메이트로 마이크 펜스 인디애나 주지사를 지명할 때 예상됐다. 펜스 주지사는 여성이나 소수인종 배려와는 거리가 먼 대표적인 우파 정치인이다. 

미국 공화당 도널드 트럼프 대선후보의 부통령 러닝메이트인 마이크 펜스 인디애나 주지사가 20일(현지시간) 오하이오주 클리블랜드에서 열린 공화당 전당대회 행사에서 부통령 후보 수락 연설을 하고 있다.
클리블랜드=AP연합뉴스
일각에서는 트럼프가 백인 노동자층 결집에 주력했던 공화당 경선 전략을 본선용으로 수정할 것으로 기대했다. 본선은 보수 유권자들 위주로 참가하는 공화당 경선과는 다른 게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트럼프는 전당대회에서 백인 중심의 선거전략을 고수했을 뿐 아니라 부통령 러닝메이트로 펜스 주지사를 지명하면서 그 전략을 더 강화했다. 

올해 전당대회가 백인 일색의 잔치로 치러진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미국 허핑턴포스트지는 흑인 대의원 비율이 전체 대의원 2472명 중 49명(약 2%)에 불과했다고 보도했다. 1964년 공화당 전당대회에서도 흑인 대의원 비율이 1%에 그쳤다. 백인 우월주의자인 배리 골드워터가 1964년 공화당 대선후보였다. “역사는 그대로 반복되지 않지만, 그 흐름은 반복된다(History Doesn’t Repeat Itself, But It Does Rhyme)” 소설가 마크 트웨인이 정확히 짚었다. <3화, ‘인종차별 트럼프의 정치적 스승 참고’>  

히스패닉과 흑인 유권자 표를 잃더라도 백인 표만 결집시키면 승산이 있다는 것이 트럼프의 셈법이다. 그러려면 백인 후보인 민주당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을 소수인종의 대표 주자로, 백인 경찰 등 공권력의 반대편으로, 백인 남성의 적으로 몰아갈 필요가 있다. 이 공식을 따른 공화당 전당대회는 꿈과 비전, 통합을 외쳐온 역대 공화당 전당대회와는 달리 민주당 버락 오바마 행정부의 실정과 미국이 처한 암울한 현실을 부각시키는 날선 발언으로 채워졌다. 연사들은 클린턴 비판에 대부분의 시간을 할애했다.  

공화당 전성시대를 연 로널드 레이건이나 소수인종까지 포함한 ‘빅 텐트’ 전략을 구사한 조지 W 부시 후보 등과는 사뭇 다른 전략이다.

지난 회에 필자는 트럼프가 이번 대선을 ‘백인 대(對) 소수인종’의 대결구도로 몰아가면 트럼프의 승리는 확정적이라고 전망했다. <22화, ‘미국 인종 갈등, 대선판 흔든다’ 참고> 그 근거로 백인 유권자 비율은 2000년 78%에서 2012년 71%, 올해 69%(추산)로 감소 추세지만 아직은 백인이 절대 다수라는 점을 들었다.

 

 

하지만 이 전망에는 전제 조건이 있다. 백인 유권자가 기록적인 수준으로 결집해야 한다. 특히 트럼프가 클린턴에게 밀리는 백인 여성을 우군으로 만들어야 한다. <19화, ‘트럼프가 대선에서 이기려면’ 참고> 

2012년 대선에서 백인 유권자는 59%가 밋 롬니 공화당 후보를 찍었다. 미국 의회전문매체인 ‘더힐’은 트럼프가 롬니 정도의 백인 표를 획득하고 대선에서 승리하려면 비백인 유권자 지지가 30% 넘어야 한다고 예측했다. 소수인종에 우호적인 공약을 내세웠던 롬니가 얻은 비백인 유권자 표도 17% 정도였다. 소수인종의 트럼프 비토 분위기를 고려하면 이들에게서 30% 넘는 지지를 얻는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결국 트럼프로서는 백인 유권자를 더 결집하는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우선은 트럼프 지지세가 강한 백인 유권자의 투표율, 특히 역대 대선에서 투표율이 낮았던 백인 노동자층의 투표율을 확 끌어올려야 한다. 


 

 

로널드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의 생전 사진. AP = 연합
트럼프가 롬니 정도의 비백인 유권자 표를 획득한다고 가정하면(현재 여론조사에서는 17% 미만이다) 어떨까. 더힐은 트럼프가 백인 유권자 65% 이상의 표를 얻으면 대선에서 이길 것으로 관측했다. 지난 50년 동안 백인 유권자로부터 그 정도 수준의 압도적 지지를 얻은 후보는 1984년 공화당 후보로 재선에 도전했던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이 유일하다. 트럼프가 레이건의 영광을 재현할 수 있을까.

조남규 국제부장

 

12일(현지시간) 흑인 저격범에 의해 피살된 백인 경찰관들의 추모식이 열린 미국 댈러스주의 모튼 H 메이어슨 심포니 센터에서 미국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 부부가 손을 잡고 미국의 통합을 촉구하고 있다. 왼쪽부터 로라 부시, 부시 전 대통령, 미셸 오바마, 오바마 대통령.
댈러스=AP연합뉴스
백인 경찰과 흑인 저격범의 총격 사건이 미국의 해묵은 인종 갈등을 촉발시키면서 미국 대선판이 출렁거리고 있다. 

미국 대선에서 인종 변수가 유난히 강하게 작동되는 때가 있다. 2008년 대선이 그랬다. 민주당이 흑인 후보(버락 오바마)를 내세우자 소수인종 유권자의 투표율이 높아졌다. 히스패닉·흑인 인구가 많은 플로리다주는 2000년, 2004년 대선에서 공화당 조지 W 부시 후보를 선택하며 부시를 재선 대통령으로 만들어줬지만 2008년엔 오바마 쪽으로 기울었다. 오바마는 플로리다를 비롯한 경합주를 거의 휩쓸며 미 역사상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 됐다. 소수인종의 힘이다.  

최근 들어 히스패닉 유권자 수가 늘어나면서 소수 인종의 대선 영향력은 더 커졌다. 히스패닉 유권자는 2008년 2000만명 정도였으나 올해는 2730만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됐다. 특히 박빙 경합주인 플로리다와 네바다, 콜로라도주는 히스패닉 유권자의 비중이 커졌다.

 

 

노스캐롤라이나와 펜실베이니아, 버지니아주의 히스패닉 유권자도 5% 정도 된다. 5%는 미미한 것 같지만 박빙 승부에선 결정적이다. 노스캐롤라이나의 경우 5%면 20만표가 넘지만 2008년, 2012년 대선은 몇 만표 차이로 승부가 갈렸다. 

올해 대선은 ‘백인 우월주의’를 부추기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가 공화당 대선후보로 사실상 지명되면서 인종 변수가 도드라지고 있다. 트럼프는 공화당 경선 과정에서 백인과 소수인종을 갈라치는 전략을 구사하며 백인표 결집에 나섰다. 히스패닉 불법체류자들을 모두 추방하고 멕시코와의 국경에 장벽을 설치하겠다는 트럼프의 공약은 백인 유권자들 사이에서 트럼프 팬덤 현상을 만들어냈다. ‘미국의 주인은 백인’이라고 생각하는 유권자들이 대거 쏟아져 나와 트럼프를 대선후보로 밀어올린 것이 ‘트럼프 현상’의 일면이다. 

트럼프는 동시에 히스패닉 벌집을 건드렸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최근 히스패닉의 유권자 등록이 2012년 대선 때보다 대폭 증가했다고 보도했다. 올해 대선에서 히스패닉의 투표율이 높아질 것임을 예고하는 대목이다. 히스패닉 유권자는 직전 대선 때 보다 민주당 성향이 더 강해졌다. 

 어쩌면 트럼프는 이번 대선을 ‘백인 대(對) 소수인종’의 대결구도로 몰아가려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렇게만 되면 트럼프의 승리는 확정적이기 때문이다. 

백인 유권자 비율은 2000년 78%에서 2012년 71%, 올해 69%(추산)로 감소 추세지만 아직은 백인이 절대 다수다. 

 

 

소수인종이 그동안 플로리다주 같은 경합주 선거를 좌지우지할 수 있었던 것은 백인표가 민주당과 공화당으로 갈렸기 때문이다. 소수인종 영향력은 사실상 백인표 분할에 따른 반사효과에 불과한 것이다. 최근 퓨리서치센터 조사에 따르면, 백인 유권자의 51%가 트럼프를, 42%가 민주당 대선후보 지위를 굳힌 힐러리 클린턴을 지지했다. 전체적으로는 2012년 대선(민주당 오바마, 공화당 밋 롬니) 당시 지지율과 비슷하다. 

하지만 저학력(고졸 이하·대체로 저소득 백인층과 겹친다) 백인층에서는 트럼프 지지세가 2012년 롬니 지지세보다 다소 강해졌다. 동전의 앞뒷면처럼 소수인종 유권자들의 클린턴 지지세도 2012년 오바마 지지세보다 조금 더 굳어졌다. 통계상으로는 최소한 ‘저학력 백인 대 소수인종’ 구도가 확인된다. 주목할 만한 대목은 올해는 클린턴이 고학력 백인 여성층에서 트럼프를 압도하고 있다는 점이다.(클린턴 62%, 트럼프 31%) 2012년 대선에서 롬니는 고학력 백인 여성층 지지를 오바마와 절반씩 나눠가졌다. 하지만 흑백 갈등이 고조되면 고학력 백인 여성층의 클린턴 지지세가 흔들릴 수 있다. 인종별 투표율도 관건이다. 

조남규 국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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