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쓰면 약, 잘못 쓰면 독’  

민주당 힐러리 클린턴(이하 힐러리) 대선후보가 올해 대선에서 승리할 가능성이 점쳐지면서 남편인 빌 클린턴(이하 빌)의 역할이 새삼 조명을 받고 있다.

힐러리 클린턴 미국 민주당 대선후보(오른쪽)와 남편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이 지난달 28일(현지시간)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에서 열린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서로 마주 보며 웃고 있다. 필라델피아=AFP연합뉴스
힐러리가 당선되면 미 역사상 첫 여성 대통령이 되고 빌도 첫 ‘퍼스트 젠틀맨’(여성 대통령의 남편)이 된다. 더욱이 빌은 전직 대통령을 지낸 특별한 신분이다. 호사가들은 벌써부터 힐러리 시대에 빌이 맡을 역할을 놓고 설왕설래하고 있다.

클린턴 부부의 관계는 ‘정치적 동지’로 표현된다. 빌이 1992년 대선 캠페인을 벌이면서 자신을 뽑으면 유능한 힐러리도 덤으로 얻을 수 있다고 주장한 것은 유명하다. 빌은 참모보다 힐러리의 조언을 우선시했다. 뉴스위크는 “빌은 힐러리와 상의하지 않고는 그 어떤 일도 결정하지 않았다”면서 “백악관 참모들은 농담으로 힐러리를 ‘연방대법원’으로 불렀다”고 보도했다. 당시 백악관 대변인을 지낸 디디 마이어는 뉴스위크와의 인터뷰에서“빌이 위층으로 올라가면 참모들은 힐러리와 의논하기 위해 가는 걸로 알았고 내려올 때는 빌의 견해가 달라져 있곤 했다”고 전했다.

퍼스트레이디 시절에도 힐러리는 달랐다. 대통령이 근무하는 웨스트 윙에 퍼스트레이디로는 처음으로 사무실을 뒀다. 빌 클린턴 정부 시절 힐러리의 참모진은 앨 고어 부통령의 참모진보다 숫자가 많았다. 빌은 핵심 국정과제인 건강보험개혁 작업을 힐러리에게 맡겼다. 둘 사이의 이 같은 관계를 고려하면 퍼스트 젠틀맨이 된 빌이 전통의 퍼스트레이디 역할인 백악관 안살림 챙기기로 시간을 보낼 것 같지는 않다.

힐러리 캠프는 조용히 대선 승리 이후 빌의 위상 문제를 검토하고 있다. 힐러리는 지난 5월 심중의 일단을 내보인 적이 있다. 그는 유세 도중 “내가 대통령이 되면 빌은 경제를 살리는 임무를 맡을 수 있다”면서 “빌의 집권 시절 모든 이들의 소득이 증가하고 저소득층 비율이 가장 낮은 수준으로 떨어졌다”고 역설했다. 다른 곳에서는 빌을 특사로 파견할 수 있다고도 했다. 미 언론은 힐러리의 이 발언이 나오자 “교착 상태에 놓인 중동 문제를 해결하는 데 빌만한 적임자는 없다”고 해설했다. 빌은 대통령 시절인 1993년 이츠하크 라빈 이스라엘 총리와 야세르 아라파트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 의장을 중재해 팔레스타인 임시 자치정부 출범의 계기가 된 오슬로협정을 성공시켰다. 막후 정치 참모로서 힐러리를 도울 수도 있다. 빌은 재선 대통령을 지내면서 구축한 정치적 인맥과 풍부한 외교 경험을 지니고 있다. 미국 정치판도 손바닥 보듯 알고 있다.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은 2012년 재선 캠페인을 전개하면서 수시로 빌에게 조언을 구했다. 2008년 민주당 경선 과정에서 맞붙었던 오바마팀과 힐러리팀이 하나로 뭉칠 수 있었던 배경에 빌의 역할이 숨어있었다. 

이런 빌이 너무 나서면 힐러리의 존재감이 약해질 수 있다. ‘힐러리 정부’가 아니라 ‘빌 클린턴 정부 3기’로 비칠 수 있다. 빌의 참모였던 딕 모리스는 과거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아버지(조지 H W 부시 대통령)와 거리를 뒀듯이 힐러리도 대통령은 자신이라는 점을 분명히 하려할 것”이라면서 “힐러리는 빌에게 권한을 부여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힐러리 지지자들 중에는 “빌을 버리고 백악관에 혼자 들어가라”고 요구하는 이들도 많다. 그래서 힐러리가 기후변화나 지구촌 기아 대책, 에이즈 퇴치 방안처럼 미국의 주도적 역할이 필요한 글로벌 현안을 빌에게 맡길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데이비드 거겐 하버드대 케네디스쿨 교수는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빌이 힐러리의 정책에 영향력을 행사함으로써 대통령 재임 시절의 역사를 다시 써보려는 욕구가 발동할 수 있다”면서 “빌과 힐러리가 동시에 백악관으로 들어가는 상황은 매우 민감한 주제이고 두 사람 모두 조심해야 할 대목”이라고 말했다.

조남규 국제부장

 

 

2001년 미국 연방 상원의원으로 자기 정치를 시작한 힐러리 클린턴(이하 힐러리)은 2003년 상원 군사위 위원이 됐다. 전통과 관행을 중시하는 미 상원에서 초선 의원이 군사위에 배정되는 경우는 극히 이례적이다. 기적은 우연이 아니다. 힐러리의 군사위 배정도 그렇다. 힐러리는 상원에 들어간 직후부터 군사위를 주목했고, 오랫동안 기회를 노린 끝에 군사위의 자리가 나자 그 기회를 붙잡았다. 정치 전문가들은 힐러리가 상원 군사위에 집착한 행태를 그의 대통령 꿈과 연결시키곤 했다. 군 최고통수권자(대통령)가 되려한 힐러리가 군 경험을 하기 힘든 여성의 한계를 그런 식으로 극복하려했다는 것이다. 대권 재수 끝에 민주당 대선후보가 된 힐러리이고 보면 정치 전문가들의 평가가 옳았다는 생각이 든다. 

힐러리는 군사위 활동을 계기로 군심(軍心)을 얻게된다. 힐러리에 관한 군의 인식은 좋지 않았다. 힐러리는 대학 시절 베트남전 반대 시위를 주도했다. 사회에 나와서도 미국의 친 이스라엘 정책을 비판하면서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 관련 인사들과 친하게 지냈다. 남편인 빌 클린턴도 대학 시절 베트남전에 반대하면서 베트남전 징병을 회피했다. 클린턴 부부는 보수 성향이 강한 군인들이 가장 싫어하는 유형의 정치인이었다. 그런 사실을 잘 알고 있는 힐러리는 군사위 위원으로 활동하는 기간 이런 인식을 돌려놓기 위해 애썼다. 군 장성들은 힐러리 의원에게서 과거 자신들이 생각해온 힐러리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었다. 힐러리는 미국 패권을 유지할 수 있는 강한 군대를 지지했다. 

힐러리는 2002년 조지 W 부시 대통령에게 이라크전쟁 권한을 부여하는 상원 결의안에 찬성했다. 결의안 찬성 기록은 2008년 민주당 대선경선 과정에서 버락 오바마 후보의 결의안 반대 투표와 대비되면서 이라크 전쟁에 반대하는 민주당 좌파가 오바마에게 쏠리는 요인이 됐지만 군의 힐러리에 대한 평판은 좋아졌다. 오바마 정부의 국무장관으로 재임하는 기간에도 힐러리는 공화당원인 로버트 게이츠 국방장관과 호흡을 맞추며 오바마 정부 내에서 대외 강경파의 목소리를 대변했다. 민주당 내에서 힐러리는 대외정책에 관한 한, ‘매파’(hawks)로 분류된다.

매파 힐러리는 올해 민주당 대선경선에서도 미국의 대외개입 정책에 반대하는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의 거센 도전을 받아야 했다. 샌더스 지지자들은 힐러리를 군수업체의 이익을 대변하는 후보로 몰아붙였다. 본선에서는 공화당 대선후보인 도널드 트럼프로부터 유사한 공격을 받고 있다. 역사는 한 번은 비극으로 또 한 번은 우스꽝스러운 희극으로 반복된다더니, 아프가니스탄 전쟁과 이라크 전쟁을 시작한 공화당이 트럼프를 대표 주자로 내세웠다는 것은 한 편의 코미디다.

공화당 행정부에 참여했던 외교 국방 인사들이 지난 주 트럼프 대신 클린턴를 공개적으로 지지했다. 조지 W 부시 행정부에 참여했던 인사들이 다수 포함됐다. 미국에선 정치적 소신에 따라 상대당 대선후보를 지지하곤한다. 2008년 공화당원인 콜린 파월 전 국무장관이 같은 흑인인 오바마 후보 지지를 선언했듯이 말이다. 그런데 외교안보 인사들이 집단으로 자신들이 소속된 정당의 대선후보를 비토한 사례는 필자가 과문한 탓인지 처음 본다. 이들 중 일부가 트럼프 비토를 넘어서 힐러리 지지까지 한 발 더 나아간 것은 힐러리가 외교 안보 인사들로부터 군 통수권자 인증서를 받아든 것이나 다름없다. 힐러리라면 치를 떠는 미국 보수가 ‘매파’ 힐러리는 인정한 셈이다. 

조남규 국제부장 

 

지난 6월 출간된 책 한 권이 미국 대선판에 파문을 일으켰다.

힐러리 클린턴이 미국 민주당 대선 경선에서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을 꺾고 대선후보 지위를 굳힌 시점이었다. 

저자는 힐러리가 퍼스트 레이디이던 시절 백악관 경호원으로 활동했던 게리 J. 번.

 그는 저서 ‘성격의 위기’(Crisis of Character)에서 힐러리의 남편인 빌 클린턴이 대통령 재임 시절 엘레노어 먼데일과 백악관에서 밀회를 즐기는 광경을 목격했다고 폭로했다. 엘레노어는 지미 카터 정부의 부통령을 지내고 1984년 대선에서 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나섰던 월터 먼데일의 딸이다.  

“(1996년) 크리스마스 시즌이었다. 대통령은 (백악관) 맵 룸에 있었다. 한 경호원이 맵 룸의 문을 열었다. 우리는 노크를 먼저 했어야 했다. 엘레노어 먼데일이 보였다. 대통령과 낯 뜨거운 자세를 취한 채. 경호원은 황급히 자리를 떴고 문은 닫혔다.”

엘레노어 먼데일, 빌 클린턴, 모니카 르윈스키

엘레노어는 당시 36살로, 방송 앵커로 활동 중이었다. 2011년 뇌암으로 숨진 엘레노어는 생전에 “빌과는 단지 친구 사이였다”고 말했다. 번은 저서에서 빌과 엘레노어를 불륜 관계로 묘사했다. 번은 동료 경호원의 진술을 인용해 빌이 엘레노어 뿐 아니라 백악관 여성 직원과 성적 관계를 맺었다고 암시했다. 이 백악관 여성 직원은 빌을 탄핵 직전까지 몰고간 백악관 인턴 모니카 르윈스키와는 다른 여성이다. 빌이 르윈스키와 백악관 집무실인 오벌 오피스 옆 작은 서재에서 오럴 섹스를 즐긴 사실은 공지의 사실이다.

 번의 저서는 출간되자마자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목록에 이름을 올렸다. 번의 폭로성 저서는 다분히 정치적이지만 이를 계기로 미국인들은 빌과 힐러리의 관계를 다시 한번 생각해보고 있다. 미 역사상 최초의 여성 대통령을 꿈꾸는 힐러리는 빌의 도움으로 여기까지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결코 평탄한 길은 아니었다. 무엇보다 힐러리를 괴롭힌 것은 빌의 바람기였다.

빌이 르윈스키와의 ‘부적절한 관계’를 토로했을 때, 힐러리의 심정은 어땠을까. 그의 고백 외에는 그 누구도 알 수 없을 것이다. 

‘나는 거의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숨을 한번 꿀꺽 삼키고, 울음을 터뜨리면서 그에게 고함을 질러대기 시작했다.…나는 점점 더 분노에 사로잡혔다.…너무 기가 막혀서 말이 나오지 않았다.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 내가 빌을 철석같이 믿었다는게 분통이 터졌다.…나에게 남은 것은 깊은 슬픔과 실망과 풀리지 않는 분노뿐이었다.…아내로서 나는 빌의 목을 비틀어버리고 싶었다.’(‘살아있는 역사’(Living History), 김석희 옮김, 웅진닷컴) 

뉴욕주 상원의원 출마를 결심한 힐러리는 빌과의 결혼 생활을 깨지 않기로 결정했다. 자신이 빌을 여전히 사랑하기 때문이고, 두 사람이 함께 보낸 세월을 소중히 여기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지난 7월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에서 열린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이 아내인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대선후보를 지지하는 연설을 하고 있다.
필라델피아=EPA연합뉴스
빌은 지난달 힐러리를 대선후보로 선출하는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매우 사적인 찬조연설을 했다.  

그 연설은 “1971년 봄, 나는 한 소녀를 만났다”는 문장으로 시작했다. 힐러리와 함께 한 45년을 얘기했다. 르윈스키는 거론하지 않았지만 부부로서, 정치적 동지로서 함께 해온 애환을 담담히 풀어냈다. 그 연설을 지켜본 미국인들의 심경은 한 갈래가 아닐 것이다. 두 갈래 길에서 빌을 선택한 힐러리의 결정도 이번 대선에서 새롭게 평가받을 것이다. 힐러리가 대선에서 승리하면 빌도 함께 백악관으로 돌아간다. ‘퍼스트 젠틀맨’ 빌 클린턴은 힐러리 클린턴 대통령과 그의 행정부에 큰 도전이 될 것이라고 뉴욕타임스는 보도했다. 

조남규 국제부장

 

 

오는 11월 대선을 앞두고 미국 보수가 분열하고 있다.

보수의 분열은 ‘아웃사이더’ 도널드 트럼프가 공화당 대선후보로 깜짝 선출되는 드라마를 통해 가시화했다. 트럼프 후보는 공화당 주류와 타협하지 않았다. 트럼프는 공화당의 기조인 자유무역이나 개입주의를 배척했다. 자유무역과 개입주의는 공화당의 전성기를 구가한 로널드 레이건, 조지 W 부시 정부의 국정 운용 기조다. 레이건과 부시의  보수는 낡은 보수 취급을 받고 있다. 왜 이렇게 됐을까. 자유무역이 확대되고 미국의 세계 경찰 역할이 커질수록 공화당을 떠받친 핵심 지지층인 백인 노동자들의 삶이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백인 노동자의 소득은 감소했고 자살률과 마약 범죄율은 치솟았다. 백인의 자존감은 급격히 추락했다. 이들은 워싱턴 정치를 원망했고, 헌신적으로 지지했던 공화당을 성토했다. 그러던 차에 백인 우월주의를 외치는 트럼프가 등장하자 그를 자신들의 대변자로 내세웠다. 이제 대선이 끝날 때까지 공화당은 ‘트럼프의 당’이 됐다. 트럼프와 공화당 주류는 11월 선거 승리를 위해 손을 잡아야 하는 오월동주(吳越同舟)의 처지이나 최근 내분이 격화되면서 트럼프호는 난파 직전이다. 

 레이건과 부시 행정부에 참여했던 보수 인사들은 거의 전원이 트럼프 반대 진영에 남았다. 최근에는 그나마 트럼프에 우호적이었던 뉴트 깅리치 전 미국 하원의장마저 트럼프와 선을 긋고 나섰다. 트럼프는 공화당 1인자인 폴 라이언 하원의장과 2008년 공화당 대선후보였던 존 매케인 상원의원이 자신의 인종주의적 편견을 비판하자 두 사람을 비토했다. 

 깅리치는 1994년 중간선거에서 만년 야당 공화당을 42년 만에 하원 다수당으로 만들면서 보수 진영의 영웅이 된 정치인이다. 이른바 ‘깅리치 혁명’이다. 그 힘으로 하원의장이 된 깅리치의 정적(政敵)이 다름 아닌 당시 백악관 주인이던 클린턴 부부였다. 특히 깅리치는 퍼스트 레이디였던 힐러리 클린턴의 저격수로 이름을 날렸다. 깅리치가 올해 대선 과정에서 트럼프 후보의 부통령 러닝 메이트로 이름이 오르내린 데는 이런 배경도 고려됐을 것이다. 트럼프의 낙점을 받지는 못했지만 깅리치는 트럼프 편에 서서 민주당 대선후보로 선출된 힐러리 클린턴 때리기에 동참했다. 그런 깅리치마저 트럼프와 거리를 두고 있다면 트럼프에게 큰 문제가 생겼다는 신호다. 

 

뉴트 깅리치 전 미국 하원의장

이미 공화당은 온전한 상태가 아니다. 중도파 공화당원들은 공화당 대선경선 과정에서 젭 부시 전 플로리다 주지사나 마르코 루비오 상원의원을 밀었다. 지금은 굿이나 보자는 관망자로 돌아섰다. 이들에게 트럼프의 편집증적인 히스패닉 공격 행태는 여간 불편하지 않을 것이다. 중도 공화당원들은 2008, 2012년 대선의 패배 원인 중 하나로 소수인종 증가세를 들고 히스패닉 끌어안기에 나섰다. 그래서 불법 체류자를 합법화하는 버락 오바마 민주당 정부의 이민개혁에 동조했다. 하지만 트럼프는 백인 노동자층의 분노를 이용해 공화당의 이런 중도화 노력을 흔적도 없이 지워버렸다.

 

 이제 공화당은 트럼프의 대선 승리 여부에 관계없이 보수 유권자들이 인증한 ‘트럼프주의(Trumpism)’의 수용 여부를 놓고 노선 투쟁을 벌여야 할 판이다.
트럼프 정부가 들어서면 공화당 주류는 급속히 재편될 전망이다. 트럼프의 등장으로 백인 노동자층과 기업인, 복음주의 유권자로 이뤄진 공화당 연합은 급속히 구심력을 잃어가고 있다.  일각에선 트럼프가 대선후보가 되면 급진적인 경선 전략을 완화시킬 것으로 예상했지만 대선후보가 된 이후 발언이 더 거칠어지고 있다. 공화당원들 사이에서 트럼프 지지율이 80%대에 머물고 있는 이유다. 2012년 대선 당시 공화당 후보였던 밋 롬니는 공화당 성향 투표자의 93% 지지를 받고도 오바마에게 졌다.    
트럼프가 대선에서 지면 소수인종을 포용하려 했던 레이건, 부시의 정당으로 회귀할 가능성이 높다. 그렇지만 트럼프가 남긴 유산은 두고두고 공화당 내분의 불씨로 남아 있을 것이다.  

 

사족 하나. 이 글을 정리해서 보내놓은 뒤 트럼프가 매케인과 라이언을 지지하는 쪽으로 입장을 번복했다는 외신 기사가 올라왔다. 할 수 없이 기사를 고쳐보낼 수 밖에 없었다. 국외자인 나도 짜증이 나는데 미국 유권자들은, 특히 트럼프를 대선후보로 선출한 백인 노동자층 유권자들은 트럼프의 오락가락 행태를 지켜보면서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조남규 국제부장 
삽화 = 워싱턴타임스 제공 

 

미국 민주, 공화당의 대선 경선이 시작되기 전에도 대선 주자들은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기 위해서 치열한 경쟁을 벌인다. 정당 내 유력 인사들을 자기 편으로 끌어들이고 선거자금을 모금하고 언론에 자주 노출되기 위해 노력한다. 이런 일련의 활동을 ‘보이지 않는 경선’(invisible primary)이라고 부른다. 경선을 앞두고 기초 공사를 하는 시점이다. 왜 ‘보이지 않는’ 경선일까. 그건 경선 전에 특정 후보를 중심으로 이뤄지는 정당 유력 인사나 후원자, 로비스트들의 움직임들은 은밀하게 전개되기 때문이다. 아이오와주 코커스(당원경선)를 시발로 민주, 공화당의 경선이 본격화하면 ‘보이지 않는 경선’의 성적표대로 순위가 매겨지곤 한다. 주요 정치인의 지지 선언도 중요하고 후원금 모금액도 중요하지만 미디어의 영향력을 과소 평가하면 안된다. 일반 유권자에게 어떤 정보가, 얼마나 자주 입력되느냐에 따라서 후보들의 지지율이 출렁거리게 된다. 미디어 노출이야말로 ‘보이지 않는 경선’의 핵심 요인이라고 할 수 있다. 이달말 각각 민주, 공화당 대선후보로 공식 선출된 힐러리 클린턴과 도널드 트럼프는 ‘보이지 않는 경선’에서 이미 1위를 차지한 후보였다. 특히 미디어 노출 빈도에서 트럼프는 압도적 우위를 보였다. 좀 과장되게 표현한다면 언론이 클린턴과 트럼프를 대선후보로 만든 셈이다. 

미디어가 선거에 미치는 영향은 기존에 밀실에서 결정되던 폐쇄적 후보 선출 방식이 경선 방식으로 바뀌면서 더욱 커졌다. 미디어는 유권자들의 생각과 화제를 좌우한다. 

  

선거에서는 무엇보다 인지도가 높아야 한다. 우선 누군지 알아야 좋아하든 싫어하든 선택이 가능하다. 인지도를 높이는 첩경은 언론에 나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후보들은 신문이나 방송의 광고를 돈을 주고 산다. 그런데 트럼프는 단 한푼도 안들이고 수천만달러 어치의 광고 효과를 냈다. 쇼맨십과 튀는 공약을 통해서다. 트럼프가 지난해 공화당 대선경선 출마 선언을 했을 당시 지지율은 한자리수에 그쳤다. 공화당 유력 정치인 중 그 누구도 트럼프를 지지하지 않았다. 일반 공화당원 중에서도 트럼프의 출마는 가십거리로 비쳤다. 보통 이런 후보는 미디어가 진지하게 다루지 않는다. 자주 소개하지도 않는다. 그런데 트럼프는 뉴스를 좇는 미디어의 속성을 역이용했다. 정치인의 금기로 돼있는 인종차별, 성차별 발언을 거침없이 쏟아내며 뉴스거리를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언론이 자주 다루자 트럼프의 인지도가 높아지기 시작했고, 트럼프의 지지율도 상승했다. 지지율이 상승하자 언론은 이제 더 자주 트럼프를 다루기 시작했고 그 덕분에 트럼프의 지지율이 상승하는 선순환이 이뤄졌다. 미디어는 시청율과 가독성을 높이기 위해 보도했을 뿐인데 결과적으로 트럼프를 띄우는 역할을 제대로 수행한 것이다.  

미국 하버드대 케네디스쿨 미디어분석팀이 올초 미국 대선 경선이 시작될 때까지 1년 동안의 미디어 보도를 분석한 결과, 트럼프가 미디어 노출로 얻은 광고 효과는 무려 5500만 달러(약 614억원) 어치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공화당 경선에서 트럼프에게 패배한 테드 크루즈 상원의원은 미디어의 과도한 트럼프 보도행태에 불만을 토로하면서 미디어가 2억 달러에 달하는 광고 효과를 트럼프에게 안겨줬다고 비판했다. 이런 비판에 미디어는 트럼프를 비판하는 보도가 더 많았다고 반박하고 있지만, 실제 정치인은 자신을 비판하는 기사도 싫어하지 않는다. 자신에 대한 기사는 부음 기사 빼고는 다 좋아한다는 농담도 있다.  

조남규 국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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