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신명 경찰청장은 세월호 사태 와중에 중도 퇴진한 이성한 전 청장의 후임으로 취임했다.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의 변사 사건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한 경찰, 이 전 청장은 그 책임을 지고 임기를 채우지 못한 채 옷을 벗었다. 강 청장은 추락한 경찰의 위상을 바로 세우겠다는 각오로 1년을 달려왔다. 오는 25일 취임 1년이 되는 강 청장은 지난 14일 서울 서대문 경찰청 청사 집무실에서 세계일보와 인터뷰를 갖고 “다시 기본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국민이 위기에 처했을 때 응답하는 것이 경찰의 존재 이유”라고 역설했다. 그는 “경찰청장으로서 법이 부여한 임기 2년 동안 아무런 과오 없이 국민과 경찰을 위해 노력하는 게 최선의 목표일 뿐 그 외에는 어떠한 생각도 해본 적이 없다”면서 “반드시 실천할 테니 지켜봐 달라”고 말했다.


 

오는 25일 취임 1주년을 맞는 강신명 경찰청장이 14일 서울 서대문구

-경찰이 기본으로 돌아가야 국민의 신뢰를 얻을 수 있다는 말에 동의한다. 국민의 신뢰를 얻기 위해 어떤 일을 해왔나.

“취임하자마자 ‘112 청장’을 자임했다. 국민이 위기에 처했을 때 응답하는 것이 경찰의 존재 이유다. 국민의 입장에서 평생 한두 번 112 신고하는데 얼마나 절박하고 심각한 상황이었겠느냐. 그 순간에 경찰이 달려와서 위기에서 구해준다면 국민은 세금이 아깝지 않다고 느낄 것이다. 무법과 무질서의 상징인 조직폭력배 소탕에도 주력했다. 법이 통하지 않는 폭력배가 있다면 법치국가라 할 수 없고 경찰의 존재 이유도 없다. 112 잘하고 조폭 제압 잘하는 게 기초 치안이라고 생각한다. ‘양은이파’ 같은 범죄단체만 조폭이 아니다. 국민은 술 먹고 행패를 부리거나 노점상으로부터 자릿세를 갈취하는 깡패도 조폭이라고 본다. 폭력배는 잡초와 같아서 주기적으로 뽑아내야 한다. 오는 9월부터는 동네 건달까지 단속 대상을 확대할 생각이다.”

-‘거악의 퇴치’처럼 좀 거창한 각오일 줄 알았는데 굉장히 미시적이다.

“신뢰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제일 중요한 방법은 기초 치안을 다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임기 중에 반드시 이 목표를 이루겠다고 다짐했다. 이건 기본이다. 임기 2년 차에는 ‘생활 법치’에 더 주력할 생각이다. 생활 법치의 핵심 축은 교통질서와 집회질서다. 재임 중 사회적 파장이 컸던 사건도 모두 해결했다. 행정적인 미제사건은 있을 수 있지만 경찰청장이 생각하는 미제사건은 없다고 감히 말할 수 있다. 시화호 토막살해 사건이나 안산 인질 살해 사건, 잠원동 새마을금고 사건, 용산 아파트 쇠구슬 테러 같은 주요 사건의 범인은 모두 잡았다.”


-평소 시위 문화를 개선해야 한다는 지론을 폈다. 재임 기간 시위 문화가 개선됐다고 평가하나.

“시위 문화는 그 나라의 법질서 수준에 비례한다. 일부 과격세력의 시위가 남아 있긴 하지만 이제 폭력시위의 시대는 저물었다고 단언할 수 있다. 예전에는 서울역에서 모인 시위대가 남대문 쪽으로 행진하면서 차를 막고 도로를 대각선으로 가로질렀다. 지금은 1000명씩 끊어서 신호에 맞춰서 행진해달라고 요청하면 그렇게 한다. 전교조 시위대가 제일 잘 지킨다. 물론 ‘우리가 왜 경찰 말을 들어야 하느냐’면서 막무가내로 행동하는 단체도 있지만 일부에 불과하다.”

-집회·시위 현장에서 발생하는 소음 문제도 종종 논란 거리가 되고 있다.

“지난해 10월부터 소음기준을 5db(데시벨)씩 하향 조정했는데 10분간 내는 소음의 평균을 단속 기준으로 삼고 있다. 그러다 보니 5분 동안 120db 넘는 소음을 내다가 나머지 5분 동안 소음을 뚝 떨어뜨리면 단속 기준을 넘지 않는다. 이를 다른 나라처럼 일정 기준을 넘지 못하도록 바꿀 필요가 있다. 집회·시위도 법 테두리 내의 기본권 행사는 보호받아야 한다. 하지만, 국민 생활에 불편을 초래하는 교통체증과 소음은 엄격하게 관리하고 경찰관 폭행 등 불법행위는 반드시 사법조치해 준법 시위 문화가 확립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나가겠다.”

-올 초 경찰 승진시험에서 만점을 받고도 승진에서 탈락한 사례가 속출해 논란이 일었다. 100점 맞고도 떨어지면 당사자는 억울하지 않겠나.

“개인적으로는 경찰 조직을 망친 게 승진 시험이라고 생각한다. 승진자 절반을 시험으로 뽑다 보니 승진시험이 치러지는 1월이 다가오면 경찰이 전부 공부만 한다. 국민들은 승진 시험 공부하는 경찰을 이해 못한다. 누구는 빵 씹어먹으며 잠복근무하는데 누구는 두어 달 공부하고 승진해서 상사로 복귀하는 일이 반복되다 보니 경찰 내부의 사기가 저하된다. 경찰이 모두 공부만 하고 있으면 소는 누가 키우나. 솔직히 취임 초반엔 경찰 승진시험 자체를 없애버리려고 했다. 그런데 이 제도가 70년된 것이라서 당장 없애면 충격이 너무 클 것 같아서 시험은 쉽게 내고 근무평정을 많이 반영하는 식으로 개선했다. 앞으로 근무평정의 변별력을 높이고 객관화해서 일을 열심히 한 경찰이 인정받고 승진할 수 있는 조직으로 만들겠다.”


-지난 1년을 돌아봤을 때 아쉽다는 느낌이 드는 대목은 없나.


“경찰 조직 내부의 사기 진작 부분이다. 지난 1년간 신뢰의 위기를 극복하겠다면서 지나치게 업무 중심으로 드라이브를 걸었다. 당근은 없이 채찍만 휘두른 셈이다. 이제 현장 경찰관의 사기를 높일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 대다수 경찰이 기대하고 있는 것이 근속승진 제도다. 순경은 5년, 경장은 6년, 경사는 7년6개월의 근속연수를 채우면 승진 대상자의 20%에 한해 승진할 수 있다. 일반 공무원은 1급에서 9급까지 9단계인데 경찰은 치안정감에서 순경까지 10단계다. 일반 공무원보다 1단계가 더 많다. 그러다 보니 근속승진에 걸리는 시간도 일반 공무원보다 더 길다. 그 기간을 단축시키는 것이 1차적인 목표다. 두 번째는 경찰 공무원을 공안직에 포함시키고 싶다. 같은 공안 업무를 하는 검찰이나 법무부 공무원은 공안직이지만, 경찰은 일반직 공무원으로 분류된다. 공안직이 일반직에 비해 급여가 다소 많다. 공안직 분류가 어렵다면, 경찰의 치안활동수당을 기본급여에 포함해 정근수당이나 퇴직금 등에서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노무현정부 시절 추진됐다가 무산된 검경 수사권 조정 문제는 박근혜정부의 국정과제이기도 하다. 강 청장의 생각은 무엇인가.

“수사권 조정 문제는 현 정부의 국정과제 중의 하나로 구체적인 방안에 대해 국무조정실 주관으로 계속 협의가 진행 중이다. 합리적인 수사권 조정방안은 경찰이 1차 수사를 담당하고, 검찰은 2차 수사권을 갖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종국적으로는 수사와 기소가 분리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우리나라 경찰은 현실적으로 94%의 수사를 진행하고 있는데 법적으로는 수사권이 없는 조직이다. 이런 경찰 조직은 전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다. 국민들은 아무 권한이 없는 경찰에게 수사를 받고 그다음에 권한이 있는 검사에게서 검증받는 시스템인 것이다. 일본 경찰은 경감 이상 간부가 부분적인 영장 청구권까지 갖고 있다. 그 정도까지는 바라지 않는다. 사건을 검찰에 송치하기 전 단계까지라도 경찰이 수사를 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것이다. 사건 중에서 민생 수사만이라도 경찰에 맡겨달라는 것이 우리 경찰의 바람이다. 교통사고나 단순절도 같은 사건까지 검찰이 지휘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검찰은 수사권을 경찰에 넘겨주지 못하는 근거로 경찰의 수사 능력 부족을 거론하고 있다. 경찰의 비리 가능성도 이유로 든다.


“비리는 비리로 접근해야지 비리 있는 조직이니까 자율적으로 수사하면 안 된다는 논리는 합리적이지 않다고 본다. 인원 대비 비리 비율은 검찰 수사관이 경찰보다 더 높다. 자질론으로 얘기하면 우리에게도 경찰대, 변호사 출신 자원이 있다. 다만 수사권 조정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경찰 수사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얻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남은 재임 기간에 수사권 조정이 이뤄지도록 소신을 갖고 추진하겠다.”

대담=조남규 사회부장, 정리=박세준 기자

◆ 강신명 경찰청장은… ▲경남 합천(1964년) ▲대구 청구고 ▲경찰대(2기) ▲서울 송파경찰서장 ▲안전행정부 치안정책관 ▲경찰청 수사·정보국장 ▲경북지방경찰청장 ▲청와대 사회안전비서관 ▲서울지방경찰청장


여성가족부(여가부)의 모태는 여성부다. 2001년 1월 여성부로 출범한 이후 이름에 가족이 추가됐다. 지금은 ‘양성평등부’로 변경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저출산 고령화라는 시대의 추이에 맞춰 여성가족부는 꾸준히 진화했다. 과거 여성인권 문제에 한정됐던 업무 영역은 인터넷 중독 청소년, 이혼 가정의 양육비, 국제결혼, 학교 밖 청소년 지원, 양성 평등 등으로 확대됐다. 다음달 취임 1년을 맞는 김희정 장관을 16일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 17층 장관접견실에서 만나 날로 그 중요성이 더해가는 청소년과 여성, 가족 문제를 주제로 방담했다.

 



―우리 사회가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와 사실상 전쟁을 벌이고 있다. 여가부 차원에서 어떤 정책들을 추진하고 있나.

“메르스로 고통받고 있는 가정을 도와드리기 위한 가족돌봄 긴급서비스 등을 확대하고 있다. 전국 청소년 시설에 대한 긴급 점검도 병행해 메르스 확산과 이로 인해 어려움을 겪는 국민을 돕기 위해 전 직원이 노력 중이다. 가족 중에 메르스 확진 판정을 받은 환자나 격리 대상자가 발생한 가정을 위한 서비스를 한 가구당 90시간까지 무료로 제공하고 있다. 지금과 같은 비상 상황에서 꼭 필요한 공적서비스다. 자녀를 돌봐야 할 부모가 메르스에 걸린 경우뿐 아니라 어린이집과 유치원, 학교의 휴원 또는 휴업으로 가정 내 양육에 어려움을 겪는 가정에 지원된다. 평소 오후 6시까지 이뤄지던 상담 및 신청 시간을 오후 10시로 확대했다. 해당 지역에 아이 돌보미가 부족하면 인근 지역과 연계하여 서비스 이용에 지장이 없도록 운영하고 있다. 메르스 확진 환자의 가정에는 무료로 제공된다. 노인 가사 등 돌봄 서비스는 한국건강가정진흥원(02-3479-7600)으로 신청할 수 있고 아이돌봄은 1577-2514 또는 홈페이지(ww.idolbom.go.kr)로 신청해주시면 된다.”

―학교 밖 청소년 지원대책은 김 장관이 국회의원 시절부터 관심을 갖던 사안으로 알고 있다. 장관으로서 직접 정책화한 사안인데 효과는 어떤가.

“국회에서 ‘학교 밖 청소년 지원법’을 대표 발의해 통과시켰다. 제도권 교육에서 벗어나 학교 밖에서 배회하는 청소년이 36만명에 달한다. 매년 8만명이 학교를 중도에 그만두고 있다. 이들에 대한 지원체계를 처음으로 공식화했다는 의미가 있다. 이들을 우리 사회가 어떻게 보듬느냐에 따라 장차 국가적 부담이 될 수도 있고 국가에 도움이 되는 인재로 성장할 수도 있다. 학교밖청소년치유센터인 꿈드림센터를 전국에 200여개 만들었다. 교육부와 손잡고 이들이 학교를 그만두기 전부터 학업중단 문제를 상담하는 숙려(熟慮)제를 운영하고 있다. 그 결과 학업중단을 고민하는 학생들 중 82%가 상담 후 학교에 남기로 결정했다.”

 
―자녀들의 인터넷 중독 문제는 모든 가정의 골칫거리다. 여가부에서 운영 중인 인터넷중독치료 학교가 학부모들 사이에서 회자되고 있다. 어떤 프로그램인가.

“전북 무주에 ‘인터넷드림학교’라는 인터넷중독치료 대안학교를 만들었다. 폐교를 매입해서 몇 주간 숙식을 하며 치료프로그램을 받는다. 중독 치료는 생활 습관을 바꾸는 일이기 때문에 공부만 시켜서는 안 된다. 부모들은 아이의 치료 기록이 알려져 낙인이 찍히지 않을까 걱정을 많이 하는데 학생기록부 등에 전혀 기록이 남지 않는다. 대안학교로 인가를 받았기 때문에 학기 중에 오더라도 수업단절 같은 문제도 없다. 사회적 편견이나 공연한 두려움으로 인터넷 중독 치료를 꺼릴 이유가 없다. 장기적으로는 이곳에서 치료를 받은 아이들이 인터넷에 중독된 다른 청소년의 멘토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김 장관부터가 한국 사회의 대표적인 워킹맘(workingmom)이다.(김 장관은 일곱 살배기 딸과 네 살배기 아들을 둔 엄마다.) 일과 가정을 어떻게 양립시키고 있나.

“‘세상에 슈퍼우먼, 알파걸(alpha girl·모든 분야에서 남성과 동등하거나 뛰어난 첫째가는 여성)은 없다. 피곤해하는 여성만 있을 뿐’이라는 어느 여성학자 분의 말에 크게 공감한다. 일과 가정을 양립시켜야 하는 고충은 개인적으로도 현재진행형이다. 아이들이 이제 ‘일하는 엄마’를 둔 환경에 제법 익숙해진 것 같고, 놀아줄 땐 확실하게 놀아주면서 함께하는 시간만큼은 최대한 집중한다. 둘째를 낳고 아이돌봄서비스를 1년간 이용했고, 지금도 두 아이 모두 직장어린이집에 보내고 있다. 워킹맘으로서 정부의 일·가정양립 지원정책을 직접 경험하다 보니 국민 입장을 더 잘 이해하고 정책개선에도 반영하게 된다.”

―최근 포털에서 가장 인기를 끈 검색어 중 하나가 여가부가 출범시킨 ‘양육비이행관리원’이다. 그만큼 갈라선 부부간에 양육비 문제를 놓고 다툼이 많다는 증거인 것 같다.

“지난 3월 양육비이행관리원 콜센터를 열자마자 문의가 폭주했다. 상담을 받기 위한 사람들이 장사진을 이뤘다. 출범 이후 상담만 1만3600건이 들어왔고 3481건이 공식 접수됐다. 자녀 양육비에 인색한 우리 사회의 세태를 보여주는 풍경 같아서 씁쓸했다. 일방 배우자가 다른 배우자에게 양육비를 주지 않는 이유는 다양하다. 주다가 끊은 경우도 있고, 처음부터 안 주는 경우도 있다. 대체로 연락이 끊긴 사례가 많다. 가정 형편이 어려운 경우에는 정부가 먼저 긴급양육비를 지원하고 뒤에 양육비 부담의무가 있는 배우자에게 구상권을 청구하기도 한다. 양육비이행관리원은 또 다른 분란을 일으키는 곳이 아니라 그것을 종식하는 곳이다. 부부관계는 결별됐어도 아이를 돌봐야 할 책임은 사라져서는 안 된다. 양육비이행관리원의 존재 자체가 자녀에 대해서는 부모가 확실히 책임을 져야 한다는 인식을 확산시킬 것이다.”

―‘양성평등법안’이 다음달 시행된다. 여가부 정책이 여성 중심에서 양성평등으로 진화하는 양상이다. 어떤 점들이 달라지나.

“성별영향평가, 성인지(性認知) 예산 등 어려운 용어가 많은데 쉽게 풀어 보면 똑같은 정부 예산을 들였을 때 한 성별에만 혜택이 되는 문제를 바로잡자는 것이다. 회사에서 휴가를 정할 때 할머니 상은 3일, 외할머니는 1일로 정하는 경우도 있다. 육아휴직도 여성은 3년이고 남자는 1년밖에 안 된다. 우리 삶 속에서 국가가 하는 정책이나 규율이 성별 차이로 있는 차별을 겪는 정책이 의외로 많다. 이와 관련해 국민 공모 제안을 했더니 녹색어머니회를 녹색학부모회로 바꾸자는 제안도 있다. 이런 부분을 형평성에 맞게 조정한다.”

―기관 기업 내 성희롱 문제가 사회 이슈가 된 지 오래다.

“성희롱뿐 아니라 성폭력·성매매·가정폭력 등 폭력근절을 위해서는 ‘인식개선’과 ‘가해자 엄벌’ 두 가지가 핵심이다. 인식개선을 위해 국가·지자체·공공단체의 폭력예방 교육을 의무화하고, 양성평등 관점에서 가정폭력·성희롱·성폭력에 대한 통합교육을 실시할 수 있도록 지난해 법과 제도를 정비했다. 이제 모든 정부기관과 지방자치단체, 공직유관단체는 예방교육을 의무적으로 실시하고 그 결과를 여가부에 제출해야 한다. 가해자에 대해서는 지난 3월 관계부처 합동으로 발표된 ‘우월적 지위를 이용한 성폭력근절대책’에서 밝혔듯이 지위고하, 업무성과 등에 상관없이 무관용 원칙을 적용해야 한다.”

―다른 부처와 업무가 중복된다는 지적이 많다. 여가부만의 정체성은 뭐라고 생각하나.

“여가부는 기능이 아니라 여성·청소년·가족 등 대상 중심의 정책을 추진하는 부다. 다른 부처와 상호보완적으로 해나가야 더 큰 성과를 거두는 일들이 많다. 일례로 청소년 중에서 학교를 다니는 청소년은 교육부가 담당하지만, 학업중단·가출 등 ‘학교 밖 청소년’은 여성가족부가 보호를 해주고 있고, 학교 단위가 아닌 방과 후 청소년활동도 담당하고 있다. 복지부가 보편적 저소득층 지원을 한다면, 여가부는 한부모가족·다문화가족 등 취약계층 가족의 역량강화와 자립을 지원한다.”


대담=조남규 사회부장, 정리=조병욱 기자, 사진=이재문 기자 brightw@segye.com

◆ 김희정 장관은… ▲1971년 부산 출생 ▲1994년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졸업 ▲2002년 연세대 정치학 석·박사 수료 ▲2004년 17대 국회의원(부산 연제구) ▲2009년 한국인터넷진흥원장 ▲2010년 대통령실 대변인 ▲2012년 19대 국회의원 ▲2012년 새누리당 정책위원회 정책위부의장 ▲2012년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간사 ▲2014∼여성가족부 장관


노무현정부가 임기 초반 ‘더 내고 덜 받는’ 국민연금 개혁을 추진했을 때 반대 여론이 70%를 넘었다. 당시는 평균 소득의 9%를 보험료로 내고 평균 소득의 60%(소득대체율)를 연금으로 받았을 때다. 30년 정도 보험료를 낸 직장 가입자는 보험료(절반은 회사 부담)의 2배 정도를 연금으로 돌려받았다. 이런 짭짤한 연금 체계를 ‘보험료율은 점진적으로 15.9%까지 올리고 소득대체율은 즉시 50%로 낮추자’고 했으니 국민은 선뜻 동의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좌파 정당인 열린우리당(새정치민주연합)이 연금 축소에 반대한 것은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명색이 우파 정당이라는 한나라당(새누리당)까지 반대하고 나선 것은 기이한 모습이었다. 대체로 우파 정당들은 복지 같은 군살을 뺀 ‘작은 정부’를 추구한다. 국민연금은 가입자의 보험료로 운영되지만, 장기적으로 연금기금이 고갈되면 우파가 싫어하는 ‘증세’로 가야 한다. 4년여의 국민연금 개혁 논란 끝에 한나라당은 2007년 2월 노무현정부의 국민연금법 개정안을 부결했다. 그것도 열린우리당보다 더 좌파적인 민주노동당(정의당)과 손잡고 그랬다. 이런 블랙 코미디가 따로 없다.
당시 한나라당과 민주노동당의 기이한 정책연합은 ① 65세 이상의 모든 노인에게 매달 국민연금 가입자 평균의 20%에 해당하는 연금(2007년 기준 34만원)을 지급하고 ② 국민연금은 보험료율과 소득대체율을 각각 7%, 20%로 낮추는 국민연금 개혁안을 만들어냈다.

①은 2012년 대선 과정에서 박근혜 후보가 약속했던 ‘기초연금(65세 이상 모든 노인에게 월 20만원씩 지급)’ 공약보다 급진적이다. 노인 기초연금은 매년 세금을 거둬서 지급하는 것이라 고령화 속도가 빠른 우리에게는 재정 부담이 만만치 않다. 오죽했으면 약속은 반드시 지킨다는 박근혜 대통령조차 65세 이상 노인 중 소득 하위 70%를 대상으로, 그것도 국민연금과 연계해서 차등 지급하는 식으로 공약을 후퇴시켰겠는가. ②는 소득대체율 40%인 지금도 ‘용돈 연금’으로 불리는 연금을 ‘껌값 연금’으로 전락시켰을 것이다. 다행히 좌·우파 정책연합의 이율배반적인 개혁안도 정부안과 함께 부결됐다. 이런 우여곡절을 거친 뒤에야 여야는 2007년 7월 보험료율은 9%로 유지하고 60%인 소득대체율만 2028년까지 점진적으로 40%까지 인하하는, ‘그대로 내고 덜 받는’ 국민연금법 개정안을 합의 처리했다. 현행 국민연금 제도가 만들어진 ‘흑역사(黑歷史)’다.
당시 한나라당은 70%가 넘는 반대여론이 두려워서 국민연금 개혁에 반대했을 것이다. 재원 조달 계획도 없이 불쑥 꺼내든 노인 기초연금 제도는 해마다 늘어나는 노인 표를 노린 선심 정책이었다. 대중에게 영합한 것이다.

여야가 바뀌자 이제는 새정치민주연합이 그 길을 따라가고 있다. 박근혜정부의 공무원연금 개혁에 딴지를 걸고 과거 자신들이 인하했던 국민연금 소득대체율을 다시 올리자는 자가당착에 빠져있다. 공무원 표밭을 다지고 노후가 불안한 국민의 마음을 사서 정권을 되찾아오겠다는 속내가 빤히 보인다.

개혁은 누군가의 손해를 전제로 하는 것이다. 그런데 사람 심리가 그렇다. 뭔가를 빼앗기지 않으려는 욕망이 자신에게 없는 것을 소유하려는 욕망보다 더 크다. 개혁이 혁명보다 어렵다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그래도 개혁을 이뤄내는 지혜로운 국민과 정당은 있다. 연금 개혁만 놓고 봐도 나라 밖으로 눈을 돌려보면 국민의 노후 보장과 재정 안정성을 동시에 이룬 사례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이들은 머리를 맞대고 상충하는 이해를 절충할 수 있는 최적(最適)의 지점을 찾아냈다.

우리 정치권이 만들어낸 공무원연금 개혁안은 최선의 선택이었나. “그렇다”고 대답할 국민은 공무원 가족을 제외하면 많지 않을 것이다. 이해 당사자의 과도한 욕망과 정치권의 대중영합주의가 손잡으면 개혁은 성공할 수 없다. 로마 시대의 철학자인 세네카는 “국민의 뜻을 따르기만 하면 국민과 함께 망하고 국민의 뜻을 거스르기만 하면 국민에 의해 망한다”고 말했다. 대한민국이 저출산·고령화의 덫에서 빠져나와 선진국으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국민과 지도자 모두 세네카의 충고를 마음에 새겨야 할 것이다. 조남규 사회부장


                                                'The dying Seneca' by Peter Paul Rubens

 

 

대법관 출신 인사의 변호사 개업 문제가 법조계의 고질적 병폐로 지목돼온 ‘전관예우’ 관행과 맞물리면서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총리 후보자인 안대희 전 대법관이 대형 로펌에서 거액의 수임료를 받았다는 이유로 낙마한 사실은 우리 사회가 전직 대법관의 돈벌이에 부정적이라는 방증으로 볼 수 있다. 그렇다고 대법관 출신이라는 이유만으로 변호사 개업조차 막는 것은 헌법상 직업선택의 자유를 침해하는 위헌적 발상이란 반론도 만만치 않다. 이 문제를 처음으로 공론화한 하창우 대한변호사협회 회장을 만나 그의 반대 논리를 들어봤다. 변협이 최근 차한성 전 대법관의 변호사 개업신고서를 반려한 조치와 관련해법조계 안팎에서는 ‘지나치다’는 목소리도 나오지만, 그는 오히려 “대법관뿐만 아니라 헌법재판관, 검찰총장, 법무장관 등도 전관예우 적폐가 심하다고 판단되면 변호사 개업을 만류하겠다”고 말했다. 인터뷰는 31일 서울 강남구 대한변협 회장 집무실에서 진행됐다.


―차한성 전 대법관은 ‘공익 활동을 하기 위해 변호사 개업 신고를 했는데 이를 철회하라는 변협의 취지를 이해하기 어렵다’고 항변했다.



“공익 목적의 활동은 변호사 등록만으로 가능하다. 굳이 변호사 개업을 하겠다는 것은 사익을 취하기 위해 사건을 수임하겠다는 의도가 숨어 있는 것이다. ‘전관예우’ 폐습을 원천적으로 봉쇄하려면 개업을 제한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본다. 지난 30년간 변호사 생활을 하면서 경험한 대법관 출신 변호사들의 전관예우 모습은 실로 부끄럽기 짝이 없다. 대법관 출신 변호사들은 대법원 상고사건(2심 판결에 대한 불복신청으로 대법원에 제기)을 거의 독점한다. 일반 변호사에게서 상고사건을 의뢰받고 자신의 이름을 올리는 ‘도장값’으로 수천만원을 받는다. 재작년까지 3000만원이었는데 작년에 5000만원까지 올랐다는 소리도 들린다.”

―아무리 대법관 출신 변호사라고 해도 도장값으로 3000만원이면 너무 많지 않나.

“지금은 대법관 출신들이 변호사 개업을 자제하다보니 그러지 않는 몇 사람이 상고사건을 독점한다. 그래서 도장값이 올라가는 것이다. 도장값 수천만원은 최종판결을 앞둔 소송 당사자인 국민의 호주머니에서 나온 돈이다. 대부분은 주위에서 빌리거나 대출을 받아서 어렵게 마련한다. 최고 법관으로 재직하다 이런 식으로 돈을 버는 나라는 우리나라가 거의 유일하다. 200만∼300만원의 월급을 받는 젊은 변호사들은 이런 사실 앞에서 절망하고 있다. 후배 법관들은 전직 대법관 도장이 찍힌 사건 앞에서 심리적 부담을 느낀다.”


 

 

―변호사 숫자가 늘면서 전관예우 논란이 더 증폭되고 있는 것 같다.



“로스쿨이생기고 변호사가 양산되면서 등록변호사가 2만명을 훌쩍 넘었다. 광복 이후 변호사가 1만명이 되는 데 100년이 걸렸는데, 2만명 되는 데 8년밖에 안 걸렸다. 이런 추세라면 앞으로 5∼6년이면 3만명 된다. 공급과잉 문제가 심각하다. 지난해 변호사 배출 숫자에서 우리보다 인구가 많은 일본은 1810명인데 우리는 근 2500명이다.”

―변호사 수가 늘면 국민에게 더 많은 법률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지 않나.

“그건 이상적인 말이다. 현실적으로는 재작년 로스쿨 출신 변호사시험 합격자 중에 아직 취업 못한 사람이 수두룩하다. 수습 때 100만원 받고 일했던 변호사가 정식 채용이 안 돼서 계속 100만원을 받고 있는 경우도 있다.”

―고급 인력인데 우리 사회에 도움이 되도록 제대로 활용할 방안은 없나.”

“지금은 국가소송을 변호사 자격 없는 공무원이 수행하고 있는데 이래서는 국가가 패소할 확률이 높다. 미국에서는 행정부 안에 변호사 일자리가 많다. 국가가 당사자인 소송은 변호사 자격 있는 사람이 수행하도록 해야 한다. 그런데 행정부 공무원들이 반대한다. 자기네 밥그릇이니까. 노무현정부에서 가동됐던 사법제도개혁추진위원회가 행정부 내 법무담당관을 변호사 자격이 있는 자로 임명해야 한다는 법안을 발의한 적이 있다. 이 법안은 행정부 법무담당 공무원들이 집단적으로 반발해서 무산됐다.”

―변호사들이 너무 좋은 일자리만 찾아다니는 것 아닌가. 공익적 일자리도 있는데.

“실상을 모르고 하는 소리다. 월 200만원 준다고 해도 달려올 변호사들이 많다. 실제 변협 관련 재단에는 월 200만원 받고 일하는 변호사가 있다. 지금은 그런 자리도 없다는 게 문제다. 얼마 전에 부산시에서 7급 계약직 변호사를 공채했다. 초창기엔 격이 떨어진다고 해서 7급엔 지원하지 말자는 움직임도 일부 있었지만 지금은 간다. 일자리가 없으니까.”


―행정부에서 변호사 직역을 확대하면 사법시험은 폐지해도 되나.



“사시와 로스쿨은 다른 문제다. 서민의 아들딸이 판검사도 되고 변호사도 될 수 있는 ‘희망의 사다리’를 남겨놔야 한다. 사시 존치는 서민 정책이다. (책상 서랍에서 편지 한묶음을 꺼내보이며) 고등학생들이 내게 보낸 편지들인데, 집안이 가난해서 로스쿨엔 갈 수 없지만 꼭 법조인이 되고 싶다는 내용이 담겨있다.(하 회장은 농부의 아들이다)”

―실력 없는 로스쿨 졸업생이 판사나 검사로 임용됐다는 소문이 있는데 사실인가.

“판검사 임용뿐만 아니라 일류 로펌에 들어간다든가, 사시 1차도 합격하지 못한 사람이 로스쿨을 거쳐 판사가 된 케이스가 있다. 자격 미달자가 유명 로펌 ×××에 들어가 있고, 우리는 다 알고 있다. 로스쿨 출신이 치르는 변호사 시험 합격자는 성적을 공개하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로스쿨 출신을 법관으로 채용하고도 누굴 판사로 임용했는지 공개를 안 한다. 이러니 로스쿨 제도 자체의 공정성이 의심받는 것이다. 임용 즉시 공개해야 한다.”

―로스쿨 출신과 사시 출신 사이에 갈등이 심하다는 얘기를 들었다.

“서로가 상대 탓에 피해를 봤다고 생각한다. 사시 출신은 로스쿨 출신 때문에 자기 일자리를 빼앗겼다고 생각하고, 로스쿨 출신은 반대로 연수원 출신 때문에 제대로 대접을 못 받고 있다고 생각한다.”


―변협이 ‘김영란법’(공직자의 금품수수 및 부정청탁 방지 등에 관한 법률)에 대해 헌법소원을 냈다.



“김영란법 자체는 환영한다. 검사가 벤츠를 받아도 처벌받지 않는 현실은 바꿔야 한다. 그런데 위헌적 요소가 있다. 왜 법 적용 대상에 언론인을 포함하나. 내가 대한변협 신문 발행인이고 변협 공보이사가 편집인이다. 우리처럼 정부 예산 한 푼도 받지 않는 민간 언론이 왜 김영란법의 적용 대상이 되어야 하나. 본래 김영란법은 공직자를 대상으로 한 것이었다.”

―언론은 공공성이 강한 곳이어서 들어간 것 아닌가.

“그런 논리라면 언론 외에도 들어갈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니다. 시민단체도 들어가야 하고, 의료·법률·공기업도 다 포함해야 한다. 국회의원은 공무원인데 왜 빠졌나. 한마디로 과잉입법이다.”

―‘법관평가제’가 호평을 받고 있다. 어떤 식으로 운용하고 있나.

“사건 담당 변호사가 항목별로 재판장을 평가한다. 판사가 “늙으면 죽어야지”, 이런 발언을 하면 밑에다가 적게 돼 있다. 평가표를 모아서 점수를 매긴다. 지금은 인터넷, 모바일로도 평가한다. 베스트(best) 법관 10명씩 뽑아서 발표한다.”


―워스트(worst) 법관을 공개해야 하는 것 아닌가.



“지난해 그러려고 했는데 난리가 났다. 대신 법원이 자체적으로 법관 평가를 인사에 반영하겠다고 했다. 3년 전 워스트 법관 한 명은 승진에서 탈락했고 사법연수원 성적이 좋아서 승진 대상이었는데 전보 조치된 사례도 있다. 법관 평가 이후 법정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졌다.”

―검사도 사실상 견제받지 않는 권력인데 평가해야 하지 않나.

“사실은 검사 평가가 더 중요하다. 예전에는 검사가 피의자를 조사할 때 구타도 했다. 지금도 헌법에 보장된 피의자 변론권이 침해되고 있다. 인권 침해 요소가 있었는지, 회유·압박이 있었는지를 평가해야 한다. 올해가 영국 귀족들이 왕을 굴복시켜 승인 받은 ‘마그나카르타(대헌장)’ 제정 800주년이 되는 해이다. 정확히 800년 되던 지난 2월23일 변협 회장에 취임했다. 소명으로 알고 검사 평가도 정착시키겠다.”

대담=조남규 사회부장, 정리=김민순 기자, 사진=이제원 기자

◆ 하창우 회장은

▲1954년 경남 남해 출생 ▲경남고, 서울대 법대 졸업 ▲사시 25회, 변호사 개업(1986) ▲서울지방변호사회 총무이사(1997), 대한변호사협회 공보이사(2001), 대검찰청 검찰개혁자문위원(2003), 법무부 법무행정혁신자문위원(2005), 방송위원회 전국동시지방선거 방송심의위원(2006), 서울지방변호사회장(2007),대한변호사협회 회장 ▲저서 ‘하창우 변호사의 변호사 길라잡이’


검찰이 모처럼 제대로 된 칼을 빼들었다.

 세계일보가 지난달 26일 포스코건설 비자금 조성 의혹을 단독 보도한 이후, 정부는 전광석화처럼 대응했다. 포스코 수사에 박근혜 대통령의 의지가 실렸다는 얘기도 들린다. 선친의 혼(魂)이 깃든 포항제철(포스코)이 역대 정권마다 복마전을 이뤄왔으니 뜬소문은 아닐 것이다. 언론은 집권 3년차에 접어든 정부가 다목적 포석으로 사정(司正) 정국을 만들어가고 있다는 해설을 쏟아내고 있다. 그럴 수도 있겠다. 그렇지만 모두 이번 수사의 본질과는 거리가 멀다.

 

                                                                             김진태 검찰총장


 본질은 검찰이 대상으로 삼고 있는 대기업 비리, 자원비리, 방산비리 수사가 대한민국 공동체를 좀먹는 ‘거악(巨惡)’과의 싸움이라는 점이다.
 포스코가 조성했다는 그 비자금이라는 것이 어떤 돈인지, 어떻게 쓰였는지, 국민은 이제 검찰 이상으로 잘 알고 있다. 전직 대통령부터 대기업 총수까지 연루됐던 그 숱한 비리 사건들을 지켜봤던 국민은 이제 비자금이라면 물릴 만큼 물렸다. 성실히 살아가는 대다수 국민에게 수백억, 수천억에 달하는 비자금 보도는 애써 다잡아 놓은 마음 한 귀퉁이를 무너뜨린다. 이럴 때마다 왜 싱가포르가 부정부패 사범을 극형에 처하고 있는지 십분 공감하게 된다. 싱가포르 성공의 열쇠는 사회 지도층의 솔선수범과 예외없는 법치다. 바로 이 지점에 검찰의 존재 의의가 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대한민국 검찰은 그동안 국민의 편에 서서 정의를 구현해온 조직이란 믿음을 주지 못했다. 기자로서 오랫동안 검찰을 지켜본 경험에 비춰보면 대한민국 검사는 사명감이나 능력에서 다른 어떤 나라의 검사보다 뛰어나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도 왜 국민은 검찰을 경원시할까. 이웃 일본 검찰의 역사가 그 물음에 대한 하나의 답이 될 수도 있겠다.
 정치 권력과의 관계라면 의원내각제를 채택하고 있는 일본의 검찰은 정치권력에 예속돼 있어야 정상이다. 그 나라에선 1954년 이른바 ‘조선(造船)의혹 사건’ 당시 정치인 법무상이 검찰총장에 대한 수사지휘권을 발동, 훗날 총리(한국의 대통령) 자리에 오르는 실세 정치인에 대한 수사를 무력화시킨 일도 있었다. 그렇지만 일본 검찰은 1976년 정치권력의 압박을 이겨낸 끝에 현직 총리(다나카 가쿠에이)를 뇌물수수 혐의로 구속시키며 조선의혹 사건의 패배를 설욕했다. 일본 검찰이 국민의 신뢰를 받기까지는 각고의 노력과 분투가 있었던 것이다. 일본 검사 중에도 권력을 좇는 해바라기형 인사들이 없지 않았지만 대다수 검사는 국민의 검찰로 남았다.
 일본 검찰이 사표(師表)로 삼고 있는 이토 시게키 전 검찰총장은 “검사는 소박한 정의감이 넘치는 사람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 서민이 무엇으로 고통받고, 무엇을 갈구하고 있는지 그것을 피부로 느낄 수 없으면 우수한 검사라고 할 수 없다”고 말했다. “나쁜 놈, 그중에서도 숨겨진 거악은 절대로 발 뻗고 자지 못하게 해야 한다”는 어록도 남겼다. 그는 ‘미스터 검찰’이란 명예로운 호칭을 얻었다.
 여기까지 쓰다 보니 좀 지나쳤다는 생각도 든다. 한국 검찰이라고 왜 이토 같은 검사가 없었을까. 우리가 그런 인재를 끝까지 키워내지 못하고, 검찰 조직 스스로 그들을 지켜내지 못했을 뿐이다. 그런 면에서 김진태 검찰총장은 행운아다. 법조 출입 기자 시절인 1990년대 중반, 대검 중앙수사부 검사이던 김 총장이 수월 스님의 행적을 담아 펴낸 수필집 ‘달을 듣는 강물’을 읽었다. 그 책은 흔들리며 30대를 살아가던 기자에게 큰 울림을 줬다. ‘이런 마음가짐이라면 국민의 사랑을 받는 검사로 성장하지 않을까’ 라고 생각했다. 최근 사회부로 복귀한 뒤에야 김 총장이 ‘고독한 칼잡이’로 불린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왠지 그와 어울리는 별칭 같다. 요즘 유행어를 빌리면, 나름 ‘에지(edge)’도 있다. 달을 듣는 강물처럼 살아간다면 좀 고독해져도 견딜 만하지 않을까. 김진태 검찰의 건투를 빈다.

조남규 사회부장

 

*사실 이 칼럼을 쓸 때만 해도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이 정치권 금품 로비 의혹을 폭로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을 줄은 예상도 못했습니다. 세계일보 특종으로 시작된 검찰의 부패 수사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간 것입니다. 특별수사는 시작은 알 수 있어도 끝은 누구도 알 수 없다는 말이 새삼 떠오르는 요즘입니다. 한국일보 정병진 논설고문이 '성완종 리스트' 수사와 관련해서 게재한 칼럼이 저의 칼럼과 일맥 상통하는 것 같아서 소개합니다.

 

한국일보 2015년 4월18일자

[정병진 칼럼] 아이 엠 쏘리, 나는 총리다

‘아이 엠 쏘리(I’m Sorry)’라는 컴퓨터게임을 새삼 기억한다. 1970년대 후반이었으니 당시 유행했던 ‘벽돌 깨기’나 ‘갤러그’ 수준이었다. 주인공이 미로와 같은 길을 돌아다니며 금괴를 훔쳐서 집에 쌓는 게임이다. 통나무 같은 장애물이 나타나면 피하거나 뛰어넘어야 하고, 철문이 가로막으면 주먹으로 쳐부수고 나가야 한다. 훔치는 금괴의 양에 따라 점수가 높아지고, 주인공의 집은 점점 더 화려해 진다는 그런 내용이었다.

그 게임은 일제(日製)였는데, 우리나라는 물론 미국까지 유행이 번졌다. 게임의 원래 제목은 ‘나는 총리다(私は總理)’였으나 국제적으로 유행하는 과정에서 총리의 일본 발음이 ‘쏘리(そうリ)’인 까닭에 ‘아이 엠 쏘리’로 바뀌었다고 했다. 당시 일본을 뒤집어 놓았던 ‘록히드 뇌물수수 사건’을 패러디 한 것이었다니, 일본 국민의 자괴와 분노를 짐작할 만하다. 일본 국민 전체가 국제사회를 향해 “죄송합니다”라고 사죄했던 셈이다.

1976년 미국에서 록히드 항공사가 많은 국가의 유력한 권력자들에게 뇌물을 뿌렸다는 사실이 폭로됐다. 독일과 네덜란드 등 유럽국가 인사들도 포함돼 있었으나 일본에서 유난히 큰 사건으로 비화한 것은 뇌물을 받은 사람이 당대 최고의 권력자 다나카 가쿠에이(田中角英)였기 때문이었다. 미국에서 사건이 폭로되었을 때 일본 총리는 미키 다케오(三木武夫)였지만, 일본정치의 특성 때문에 당시 국민들이 느끼는 실질적 최고 권력자는 다나카 전 총리였다. 다나카 전 총리는 구속됐다.

우리 표현으로 ‘현직 왕(王)총리’를 구속한 일본 검찰은 이후 수십 년이 흐른 지금까지 세계에서 가장 강직하게 본분을 다하는 검찰로 명성을 떨치고 있다. 당시 검찰총장은 “모든 책임은 내가 진다”는 한 마디의 말로써 검찰조직의 방패막이가 돼 주었고, 수사팀장 검사장은 “수사가 난관에 부딪힌다는 이유로 망설인다면 앞으로 20년 동안 우리 검찰은 국민의 신뢰를 받지 못한다”는 말을 남겼다.

사건이 검찰의 손을 떠난 뒤 정치적 마무리가 흐지부지 됐던 것은 일본의 정치구도와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그는 구속된 지 한달 만에 보석금을 내고 출소했으며 이후에도 막강한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했다. 재판은 지지부진했고 판결은 미뤄졌다. 1993년 12월 그가 사망한 이후 상고심이 재개됐고, 14개월 뒤인 95년 2월에야 사망한 사람에게 수뢰혐의를 최종 인정했다. 하지만 ‘다나카-록히드 사건’은 법과 원칙을 지킨 일본 검찰의 위상과 ‘아이 엠 쏘리’라는 일본 국민의 각성과 사과를 전 세계에 남겼다.

당시 일본 검찰이 ‘왕총리’를 잡아들일 수 있었던 배경은 두 가지 정도로 알려져 있다. 우선 들끓었던 민심이었다. 국민 모두가 ‘국제적으로 창피하여 고개를 들 수 없다’는 자괴감에 빠져 있었다. ‘나는 총리다’ 패러디가 일본 열도를 휘저었던 이유다. 다른 하나는 당시 같은 당 소속의 미키 총리가 수뢰사건 수사를 완전히 방치(?)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사건의 모든 증거와 증언들이 미국에 있었고, 길거리에서 승용차끼리 접촉해 돈을 주고받았다는 정황 정도가 애초 드러난 단서였다. 검찰로서는 ‘수사가 난관에 부딪혀 망설여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분명했다. 하지만 검찰은 ‘앞으로 20년 동안 잃게 될 국민의 신뢰’를 염려했기에 최고 권력에 대한 수사의 끈을 다잡아 갔다.

30여년 전 ‘다나카-록히드 사건’을 다시 들춰본 것은 지금의 상황에서 너무나 뚜렷한 데자뷰를 느끼기 때문이다. 이른바 ‘성완종 리스트’에 대한 검찰의 수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국민들의 마음은 ‘창피해 죽겠다’는 자괴감을 넘어 ‘미워 죽겠다’는 증오감으로 바뀌어가고 있다. 같은 당에서도 수사 방치(?) 수준을 넘어 적극적인 협력도 아끼지 않을 태세다. 수사 대상도 일본 ‘왕총리’에 비하면 덜 껄끄럽고, 증거나 증언, 정황도 훨씬 풍부해 보인다. 현재 우리 검찰의 입장이 1970년대 일본 검찰의 입장보다 여러 면에서 여건이 좋다는 얘기다. 우리 검찰의 분발을 기대한다.

정병진 상임고문 bjju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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