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1월5일 


리비아 군사작전은 ‘힐러리의 전쟁’이었다. 

2011년 2월 ‘아랍의 봄’이 리비아에 상륙했다. 리비아 벵가지에서 시작된 반정부 시위는 소셜 미디어를 타고 주요 도시로 확산됐다.
리비아 독재자 무아마르 카다피는 1988년 스코틀랜드 로커비 상공에서 189명의 미국인을 포함해 259명이 타고 있던 팬암기를 폭발시킨 장본인이었다. 로널드 레이건 미 대통령이 ‘중동의 미친개’라고 불렀던 카다피가 장갑차 부대를 진격시키자 버락 오바마 정부 내에서는 미군 파병 문제를 놓고 격론이 벌어졌다. 조 바이든 부통령과 로버트 게이츠 국방장관은 반대론을 폈다. 당시 국무장관이던 힐러리 클린턴은 강경론을 펼쳤다. 명분은 카다피에 의한 민간인 대량살상이었다. 힐러리는 서방의 군사 개입을 꺼리는 인근 아랍국가를 움직였다. 유럽에 가서 프랑스와 영국을 포함한 카다피 축출 군사 연합을 만들어냈다.  


오바마 대통령은 미국의 지상군 파병은 제외한다는 조건아래 클린턴의 리비아 개입안을 승인했다. 오바마 외교안보팀 내의 반대론을 물리치고 사실상 카다피 제거 작전을 이끌어 낸 것이다. 카다피는 TV에 출연해 시민군을 향해 “자비란 없다”고 으름장을 놨다. 덕분에 클린턴이 리비아에 개입하기가 한결 쉬워졌다. 2011년 3월19일 밤, 리비아 북쪽 지중해상에서 토마호크 미사일들이 하늘로 솟아오르며 ‘오디세이 새벽’ 작전이 개시됐다. 그해 8월21일 리비아 수도 트리폴리가 함락되고 카다피 정권은 무너졌다. 행방을 감춘 카다피는 시르테에 은신한 채 라디오 방송으로 결사항전을 촉구하다 시민군에 붙잡혀 비운의 최후를 맞았다. 

민주당 클린턴 후보가 올해 대선에서 당선되면 대북 정책을 전면 재검토할 것이다. 오바마 정부의 ‘전략적 인내’(북한이 의미 있는 비핵화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대화하지 않겠다는 정책)는 클린턴의 스타일이 아니다. 북한의 핵·미사일 능력이 어느 시점에 달하면 기습적인 선제 타격 카드가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의제로 오를 가능성이 높다. 


공화당 도널드 트럼프 후보는 대외 정책에서 가급적 국제 문제에 개입하길 꺼리는 ‘고립주의’ 성향으로 분류된다.  

트럼프는 대선 캠페인 기간에 클린턴이 상원의원 시절 조지 W 부시 공화당 행정부의 이라크 전쟁에 찬성하고 국무장관 재직 시 리비아와 시리아 사태 개입을 주도한 것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 그렇지만 북한 문제에서만큼은 클린턴보다 유화적이지 않다. 트럼프는 2000년 대선을 앞두고 개혁당 후보로 나서려 했다. 그때 자신의 공약집이나 다름없는 저서를 통해 북한에 대한 시각의 일단을 내보였다. 그는 저서에서 북한이 핵 미사일로 미국 본토를 공격할 능력을 갖추게 되면 더 이상 협상은 의미가 없게 된다면서 “대북 협상이 실패하면 북한의 위협이 현실화하기 전에 무법자를 겨냥해 재래식 무기로 북한의 목표물을 정밀 타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클린턴이나 트럼프 모두 대북 선제 타격에서는 한목소리를 내고 있는 것이다. 그 시점은 북한의 핵·미사일 능력이 미국 본토나 해외 미군기지를 타격할 수준에 이르렀을 때다. 지금 북한은 서서히 그 능력을 완성해 가고 있다. 미국의 차기 행정부 내에 한반도는 백악관의 최우선 관심 지역으로 부상할 수 있다는 얘기다. 한반도 운명을 좌우할 미국의 최고통수권자가 오는 8일(현지시간) 결정된다.

조남규 국제부장

2016년 10월30일

미국 연방수사국(FBI)이 대선을 11일 앞둔 28일(현지시간) 민주당 힐러리 클린턴 대선후보(이하 힐러리)의 ‘이메일 스캔들’에 대한 재수사에 나섰다.
대선 전까지 결론은 나지 않겠지만 재수사 발표만으로도 힐러리는 큰 타격을 입게됐다. 공화당 도널드 트럼프 대선후보가 힐러리의 이메일 스캔들을 공격하고 있는 것은 중요치 않다. 경쟁 후보인 트럼프의 공세는 당연한 것이다. 문제는 이메일 스캔들 재수사가 힐러리의 측근주의와 비밀주의를 미국인들에게 상기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대선이 코 앞이다. 아직 마음을 정하지 못한 부동층과 중도층이 힐러리를 외면할 수 있다.

힐러리의 이메일 스캔들은 대선판을 뒤흔들 ‘게임 체인저’(game changer)였다.

이메일 스캔들은 힐러리가 개인 이메일 계정을 통해 공무를 보고, 그 과정에서 일부 기밀 서류가 유출됐다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힐러리도 “실수였다”고 인정했다. 더 큰 문제는 이메일 스캔들로 드러난 힐러리의 정실주의, 비밀주의 행태다. 힐러리는 왜 보안이 철저한 국무부 공용 메일을 놔두고 개인 이메일 계정을 통해 측근들과 밀담을 나눴을까.  

최근 필자가 쓴 칼럼이 하나의 답이 될 수 있다.

미국 민주당 힐러리 클린턴 대선후보는 시련의 정치인이었다.
 
1992년 남편인 빌 클린턴(이하 빌)의 대선 승리로 퍼스트레이디가 된 힐러리는 보수 진영의 표적이 됐다. 그럴 만도 했다. 힐러리는 대통령 집무실이 있는 백악관 웨스트윙에 퍼스트 레이디 사무실을 마련했다. 그때까지 퍼스트 레이디의 사무실은 백악관 이스트윙에 있었다. 남편을 내조하던 기존의 퍼스트레이디와 달리 힐러리는 빌 클린턴 정부의 의료개혁을 진두지휘하는 등 빌과 사실상 ‘공동 통치’를 했다. 여성과 동성애자 권익 보호에도 앞장섰다. 전통을 중시하는 공화당 의원들의 눈에 힐러리가 곱게 보였을 리 없다. 
 
공화당은 다수당이 되자 의회는 특별검사를 임명해 힐러리와 관련된 모든 의혹을 파헤치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다. 믿고 의지했던 측근은 권총 자살을 했다. 언론과도 불화를 겪었다. 힐러리는 안으로 움츠러들었다. 측근들과 똘똘 뭉쳐서 외부 공세에 맞섰다. 힐러리의 측근을 일컫는 ‘힐러리랜드’(Hillaryland)가 이때 생겨났다. 거의 전원이 여성이었다. 이들은 힐러리가 시련을 겪을 때마다 곁을 지켰다. 힐러리도 이들을 가족처럼 대했다. 힐러리랜드에 소속되면 클린턴 부부에게서 특별한 대우를 받았다. 미 언론은 힐러리가 측근들의 애경사를 직접 챙겼다고 전했다. 측근들은 충성심으로 보답했다. 법원 판결로 공개된 이메일에서 그들은 힐러리를 ‘보스’로 불렀다.
 
힐러리가 2000년 상원의원으로 정치 활동을 시작한 이래 그의 정치는 측근들을 중심으로 돌아갔다. 이런 측근 정치는 힐러리가 2008년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버락 오바마 후보에게 패배한 원인 중 하나로 거론된다. 의리로 뭉쳐 있던 힐러리 캠프는 능력있는 인재와 참신한 전략을 쉽게 수용하지 못했다. 인재와 전략은 오바마 캠프로 흘러 들어갔다. 힐러리는 이후 외부 인사에도 힐러리랜드의 문호를 일부 개방했다. 그래도 힐러리랜드에는 아직도 빌 클린턴 정부 시절부터 함께해온 측근들이 다수 포진해있다. 
 
힐러리의 최측근인 셰릴 밀스와 힐러리의 분신이나 다름없는 후마 에버딘은 클린턴 정부 시절부터 힐러리랜드에 소속돼 있던 인사들이다. 밀스와 에버딘은 힐러리가 국무장관에 임명됐을 때 각각 비서실장과 비서실차장에 임명됐다. 힐러리와 에버딘의 관계를 놓고는 “빌조차도 힐러리와 접촉하려면 에버딘을 통해야 한다”는 보도가 나올 정도다.  
 
힐러리의 비밀주의 행태는 쉽게 바뀌지 않았다. 힐러리는 국무장관 시절 개인 이메일을 통해 측근들과만 은밀히 소통했다. 그 과정에서 국가기밀로 분류된 정보들이 사적으로 유통됐다. 미국 사법당국이 힐러리를 기소했다면 올해 대선은 전혀 다른 양상으로 전개됐을 것이다. 2016년 대선 과정에서 힐러리를 괴롭혔던 ‘이메일 스캔들’은 비밀주의 행태가 낳은 예고된 참사였다. 공화당 도널드 트럼프 대선후보는 대선 캠페인 기간에 힐러리의 측근 정치와 비밀주의 행태를 공격했다. 힐러리의 측근 중에는 컨설팅 회사를 차려놓고 세계 각국의 기업을 고객으로 두고 떼돈을 번 인사도 있었다. 보수 진영은 힐러리가 그 측근의 돈벌이를 도왔다는 의혹을 집중적으로 제기했다. 힐러리가 비혐오 후보가 된 여러 이유 가운데 하나다. 이메일 스캔들과 관련해선 힐러리가 직접 “실수였다”고 여러 차례 고개를 숙여야 했다. 비선(秘線) 측근에 과도하게 의존해온 박근혜 대통령도 대국민 사과를 해야 했다. 공교롭게도 한·미 양국에서 대표적 여성 리더의 측근 정치가 도마 위에 올랐다.




이 칼럼은 힐러리의 기질과 행태를 중심으로 분석해본 글이다.

그런데 최근 위키리크스가 공개한 또 다른 힐러리 관련 이메일을 검토해보니, 그간 공화당이 폈던 음모론도 전혀 근거가 없는 허무맹랑한 주장은 아닐 것이란 심증이 생겼다.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 록키마운트에서 아내인 민주당 힐러리 클린턴 대선후보 지원 유세에 나선 빌 클린턴 전 대통령(왼쪽)이 한 참석자와 사진을 찍고 있다.
노스캐롤라이나=AP연합뉴스
위키리크스에 따르면 빌은 자신이 고문으로 있던 글로벌 컨설팅 기업 ‘테네오’를 통해 고액강연을 주선 받은 정황이 드러났다. 테네오를 설립한 사람은 더글라스 밴드로, 빌이 대통령 시절부터 중용해온 측근이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2012년 재선 캠페인 과정에서 빌의 도움을 받기위해 접촉한 창구가 밴드였다.

밴드는 클린턴재단의 창립 멤버였지만 클린턴 부부의 외동딸인 첼시가 클린턴재단에 개입하면서 마찰이 빚어지자 테네오를 만들어서 독립했다. 빌은 밴드의 사업을 돕기위해 테네오의 고문직을 수락한 것이다. 하지만 현직 국무장관의 남편이 국무장관이 다루는 나라의 기업들을 의뢰인으로 둔 기업에서 돈을 받고 고문 역할을 수행하는 것은 적절치 않은 행동이었다. 아무리 조심해도 이해 충돌이 생길 수 밖에 없다.  

위키리크스가 공개한 2011년 11월자 밴드의 메모에는 “내가 맡은 업무가 클린턴재단을 위해 모금 활동을 펼치고 클린턴 전 대통령의 유급 강연 기회를 조율하는 일”이라면서 이런 활동을 ‘빌 클린턴 주식회사’, ‘영리 활동’이라고 표현했다. 클린턴재단의 기금모금자로 10년 이상 활동해온 밴드는 당시 코카콜라와 다우케미컬, 대형은행인 UBS가 클린턴재단에 수백만 달러를 기부하도록 했다. 빌은 UBS에서 3차례 강연하고 90만 달러를 받았다. 이런 식으로 밴드가 빌에게 보장해준 유급강연 등 비즈니스 주선은 3000만∼6000만 달러(343억∼686억 원)에 달했다. 밴드는 메모에서 “우리는 클린턴 전 대통령의 개인적, 정치적, 사업적목표와 클린턴재단의 비영리 목표를 동시에 수행하는 등 균형을 맞출 수 있다”고 주장했다. 밴드가 클린턴재단 변호사들에게 보낸 이 메모는 위키리크스가 최근 해킹해 공개한 존 포데스타 힐러리캠프 선거대책본부장의 개인 메일에 포함돼 있었다. 힐러리는 이 메모에 언급되지 않았다. 하지만 힐러리는 국무장관 재임 시절 남편에게 강연료를 지급한 최소 15개의 기업 대표와 만나거나 대화했다고 AP통신이 보도했다. 트럼프는 “오늘 우리는 클린턴의 절친한 친구인 밴드가 클린턴 주식회사에 수천만 달러를 몰아준 것을 자랑하는 내용을 읽었다”며 “클린턴 일가가 백악관 밖에 있을 때도 그들의 기업을 마음대로 갖고 놀았는데, 그들이 다시 백악관에 들어가면 어떻게 할지 상상해보라”고 공격했다.

밴드는 빌이 재단 기부자들로부터 개인 수입을 올렸고 비싼 선물들을 받았다는 이메일도 썼다. 

‘로리엇 국제대학’은 빌에게 명예 회장에 앉힌 뒤 매년 350만 달러(약 40억원)를 줬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밴드가 기업체 인사들을 골프장 등에서 빌에게 소개해주고 재단에 기부할 것을 압박했다고 보도했다. 

테네오 측은 “클린턴재단이 전 세계적으로 전개하는 좋은 일을 지원하기 위해 기부금을 기업들에 요청한 것”이라며 “우리 회사는 이 일과 관련해 어떤 금전적 혜택도 받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클린턴 캠프는 성명을 통해 “클린턴 가족은 전 세계 수백만 명을 도운 클린턴재단의 일을 매우 자랑스럽게 여긴다”고 밝혔다. 하지만 대다수 미국인들은 위키리크스가 공개한 이메일 내용에 더 주목하는 분위기다. 클린턴 부부의 정실주의, 비밀주의 행태가 부메랑이 돼서 힐러리를 괴롭히고 있다.

조남규 국제부장

 

미국 대선이 코앞에 닥쳤다. 19일 저녁(현지시간) 진행된 마지막 TV토론은 비전 제시도, 통합의 메시지도 없는 시정의 난투극을 방불케 했다. 어차피 새로 끌어올 표는 없으니 상대 후보의 표나 깎아보자는 투였다. 역대급 비호감 후보들의 대결다웠다.

 
공화당 도널드 트럼프 후보는 대선 불복 가능성까지 시사하는 승부수를 띄웠다. 지지층 결집을 위한 극약 처방이다. 정책 토론에서도 트럼프는 기존의 불법 체류자 추방,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 공약을 반복했다.

불법 체류자 추방, 멕시코 국경장벽 설치 공약 등은 히스패닉 유권자를 자극할 수 있는 성질의 주장이지만 트럼프는 개의치 않았다. 과거 백인 경관이 흑인에게 총격을 가한 사건을 계기로 흑백 인종갈등이 고조되고 있는 시점에도 트럼프는 ‘법과 질서’를 강조했다. 흑인층의 반발 따위는 감수하겠다는 태도가 역력했다. 트럼프가 이러리라는 것은 부통령 러닝메이트로 마이크 펜스 인디애나 주지사를 지명할 때 예상됐다. 펜스 주지사도 여성이나 소수인종 배려와는 거리가 먼 대표적인 우파 정치인이다.  

이쯤 되면 트럼프의 대선 전략이 보인다. 백인표 결집을 통한 대선 승리 전략이다.

백인 유권자 비율은 2000년 78%에서 2012년 71%, 올해 69%(추산)로 감소 추세지만 아직은 백인이 절대 다수다. 하지만 전제 조건이 있다. 백인 유권자가 기록적인 수준으로 결집해야 한다. 특히 트럼프가 민주당 힐러리 클린턴 후보에게 밀리고 있는 백인 여성들의 표심이 중요하다. 

2012년 대선 당시 밋 롬니 공화당 대선후보는 고학력 백인 여성 표에서 재선에 도전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을 앞섰다. 트럼프가 펜실베이니아나 콜로라도 같은 경합주에서 승리하려면 고학력 백인 여성 표를 얻어야 한다. 트럼프가 아내 멜라니아를 앞세워서 여성 친화적 후보로 거듭나려 애쓴 이유다. 그런데 캠페인 막바지에 트럼프의 음담패설 파일이 공개되면서 트럼프의 백인 여성 구애 전략에 차질이 빚어졌다.

2012년 대선에서 백인 유권자는 59%가 롬니를 찍었다. 미국 의회전문매체인 ‘더힐’은 트럼프가 롬니 정도의 백인 표를 획득하고 대선에서 승리하려면 비백인 유권자 지지가 30%를 넘어야 한다고 예측했다. 롬니는 소수인종에 우호적인 공약을 내세우고도 비백인 유권자 득표율은 17% 정도에 그쳤다. 소수인종의 트럼프 비토 분위기를 고려하면 이들에게서 30% 넘는 지지를 얻는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결국 트럼프로서는 백인 유권자를 더 결집시키는 길밖에 없다. 우선은 트럼프 지지세가 강한 백인 유권자의 투표율, 특히 역대 대선에서 투표율이 낮았던 백인 노동자층의 투표율을 기록적인 수준으로 확 끌어올려야 한다. 더힐은 트럼프가 롬니 정도의 비백인 유권자 표를 획득한다는 전제 아래(현재 여론조사에서는 17% 미만이다) 트럼프가 백인 유권자의 65% 이상을 끌어들이면 대선에서 승리할 것으로 예측했다. 지난 50년 동안 백인 유권자로부터 그 정도 수준의 압도적 지지를 얻은 후보는 1984년 공화당 후보로 재선에 도전했던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이 유일하다. 트럼프는 레이건의 영광을 재현할 수 있을까. 각종 여론조사 결과만 놓고보면 트럼프는 레이건만큼의 백인 지지를 확보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렇지만 이변으로 기록된 역대 선거에서는 항상 여론조사가 잡아내지 못한 ‘숨은 표’가 있었다. 트럼프 지지 입장을 숨기고 있거나 클린턴을 혐오하는 유권자가 대거 투표장으로 몰려 나오면 기존 여론조사와 다른 결과가 나올 수 있다. 트럼프가 대통령이 될 수 있는 유일한 경우의 수다. 

조남규 국제부장

2016년 10월9일

임기말의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지지율이 55%를 기록했다.

6일(현지시간) CNN이 발표한 오바마의 국정수행 지지율은 2기 행정부 출범 이후 최고치였다. 무당파과 백인 응답자의 지지율이 지난해 조사 때보다 각각 14% 포인트, 15% 포인트 높아졌다. 임기말 대통령의 지지율이 상승하는 현상은 흔치 않다. 오바마가 집권 8년 동안 국민에게 보여준 통합과 경청의 리더십, 중산층 챙기기와 사회적 약자 보듬기, 스캔들 없는 청렴성, 가족 사랑 등이 만들어낸 성적표일 것이다.

 
오바마의 고공 지지율은 “힐러리 클린턴 집권은 ‘오바마 정부 3기’라 될 것”이라는 메시지를 던져온 공화당 도널드 트럼프 캠프를 곤혹스럽게 만들었다.

트럼프 캠프의 ‘오바마 3기’ 주장은 팩트에 근거한 것이다. 오바마는 재선 캠페인을 성공시킨 직후부터 클린턴을 후계자로 점찍고 물심양면으로 지원했다. 어쩌면 오바마는 클린턴이 2008년 민주당 경선 결과에 흔쾌히 승복했을 때부터, 아니면 집권 후 새 내각을 구성하면서 클린턴에게 국무장관직을 제안했을 때부터 그런 생각을 했을지도 모른다. 

클린턴의 화끈한 경선 승복 결단은 2008년 대선 승리의 초석이 됐다.

44대 미국 대통령으로 당선된 오바마는 경선 맞수를 새 행정부의 국무장관으로 임명했다. 

오바마 당선인은 도리스 굿윈의 링컨 전기인 ‘팀 오브 라이벌’(Team of Rivals)을 숙독하며 집권 준비를 했다. 

그는 당시 언론 인터뷰에서 “‘팀 오브 라이벌’을 읽고 링컨 대통령이 남북전쟁 시기에 소속 정당을 뛰어넘어 자신과 경쟁했거나 자신에게 반대했던 인사들을 내각에 포함시킨 점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며 “대통령으로서 역량있는 인재의 도움을 받기 위해서는 자존심이나 과거의 원한 따위에 구애받아서는 안 된다는 교훈을 얻었다”고 말했다. 

오바마의 링컨 사랑은 힐러리에게는 행운이었다.

세계를 경영하는 제국인 미국에서 국무장관은 부통령 이상의 자리다. 클린턴이 대권을 준비하기에 안성맞춤의 자리다. 경선 승복에 대한 보답 차원의 인사로 봐도 무방할 것이다. 클린턴은 8년을 인내하며 기다렸다. 그리고 2008년 승복 연설 그대로, 이번에는 더 쉽게 민주당 대선 후보 지위를 사실상 확정지었다. 민주당 경선에서 ‘샌더스 바람’이 거세게 불었지만 적어도 민주당 내부에서는 “이번에는 힐러리 차례”라는 무언의 공감대가 형성됐다. 2008년 경선 당시 흑인 대통령을 만들어내기 위해 오랜 친구 힐러리에게 등을 돌렸던 흑인들이 이번에는 빚을 갚는 심정으로 클린턴을 밀었다. 

올해 민주당 경선에서 맞붙었던 클린턴과 샌더스 지지자들을 하나로 융합시키는 과정에서 오바마 대통령의 역할이 컸다. 오바마야말로 샌더스 지지자들을 설득할 수 있는 최적의 인물이었다. 오바마는 8년전 클린턴에게 진 빚을 갚으려 했다. 그런 오바마가 임기말 재선 대통령치고는 괜찮은 지지율을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이 클린턴에게는 행운이다. 

미 역사상 ‘첫 흑인 대통령’이라는 역사를 만들어냈던 오바마는 ‘첫 여성 대통령’이라는 또 다른 페이지를 쓰고 있는 클린턴을 돕고 있다. 역사와 대화하길 좋아하는 오바마다운 프로젝트다. 

조남규 국제부장

2016년 10월27일

미국 민주당 힐러리 클린턴 대선후보는 시련의 정치인이었다.

1992년 남편인 빌 클린턴의 대선 승리로 퍼스트레이디가 된 힐러리는 보수 진영의 표적이 됐다. 그럴 만도 했다. 힐러리는 대통령 집무실이 있는 백악관 웨스트윙에 퍼스트 레이디 사무실을 마련했다. 그때까지 퍼스트 레이디의 사무실은 백악관 이스트윙에 있었다. 남편을 내조하던 기존의 퍼스트레이디와 달리 힐러리는 빌 클린턴 정부의 의료개혁을 진두지휘하는 등 빌과 사실상 ‘공동 통치’를 했다. 여성과 동성애자 권익 보호에도 앞장섰다. 전통을 중시하는 공화당 의원들의 눈에 힐러리가 곱게 보였을 리 없다. 
공화당이 다수당이 되자 의회는 특별검사를 임명해 힐러리와 관련된 모든 의혹을 파헤치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다. 믿고 의지했던 측근은 권총 자살을 했다. 언론과도 불화를 겪었다. 힐러리는 안으로 움츠러들었다. 측근들과 똘똘 뭉쳐서 외부 공세에 맞섰다. 힐러리의 측근을 일컫는 ‘힐러리랜드’(Hillaryland)가 이때 생겨났다. 거의 전원이 여성이었다. 이들은 힐러리가 시련을 겪을 때마다 곁을 지켰다. 힐러리도 이들을 가족처럼 대했다. 힐러리랜드에 소속되면 클린턴 부부에게서 특별한 대우를 받았다. 미 언론은 힐러리가 측근들의 애경사를 직접 챙겼다고 전했다. 측근들은 충성심으로 보답했다. 법원 판결로 공개된 이메일에서 그들은 힐러리를 ‘보스’로 불렀다. 

힐러리가 2000년 상원의원으로 정치 활동을 시작한 이래 그의 정치는 측근들을 중심으로 돌아갔다. 이런 측근 정치는 힐러리가 2008년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버락 오바마 후보에게 패배한 원인 중 하나로 거론된다. 의리로 뭉쳐 있던 힐러리 캠프는 능력있는 인재와 참신한 전략을 쉽게 수용하지 못했다. 인재와 전략은 오바마 캠프로 흘러 들어갔다. 힐러리는 이후 외부 인사에도 힐러리랜드의 문호를 일부 개방했다.  

힐러리의 최측근인 셰릴 밀스와 힐러리의 분신이나 다름없는 후마 에버딘은 클린턴 정부 시절부터 힐러리랜드에 소속돼 있던 인사들이다. 밀스와 에버딘은 힐러리가 국무장관에 임명됐을 때 각각 비서실장과 비서실차장에 임명됐다. 힐러리와 에버딘의 관계를 놓고는 “빌조차도 힐러리와 접촉하려면 에버딘을 통해야 한다”는 보도가 나올 정도다.  

힐러리의 비밀주의 행태는 쉽게 바뀌지 않았다. 힐러리는 국무장관 시절 개인 이메일을 통해 측근들과만 은밀히 소통했다. 그 과정에서 국가기밀로 분류된 정보들이 사적으로 유통됐다. 미국 사법당국이 힐러리를 기소했다면 올해 대선은 전혀 다른 양상으로 전개됐을 것이다. 2016년 대선 과정에서 힐러리를 괴롭혔던 ‘이메일 스캔들’은 비밀주의 행태가 낳은 예고된 참사였다. 공화당 도널드 트럼프 대선후보는 대선 캠페인 기간에 힐러리의 측근 정치와 비밀주의 행태를 공격했다. 힐러리의 측근 중에는 컨설팅 회사를 차려놓고 세계 각국의 기업을 고객으로 두고 떼돈을 번 인사도 있었다. 보수 진영은 힐러리가 그 측근의 돈벌이를 도왔다는 의혹을 집중적으로 제기했다. 힐러리가 비호감 후보가 된 여러 이유 가운데 하나다. 이메일 스캔들과 관련해선 힐러리가 직접 “실수였다”고 여러 차례 고개를 숙여야 했다. 비선(秘線) 측근에 과도하게 의존해온 박근혜 대통령도 대국민 사과를 해야 했다. 공교롭게도 한·미 양국에서 대표적 여성 리더의 측근 정치가 도마 위에 올랐다.

조남규 국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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