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스는 대공황으로 시장이 무너지고 실업자가 속출하자 재정을 활용한 수요 창출을 치유책으로 제시했다. 이후 그의 유효수요 창출 이론은 경기 침체에 빠진 나라들의 단골 처방전으로 활용됐다. 국가가 재정이라는 마중물을 부어서 일자리를 만들어내면 새로운 수요가 창출돼서 침체에 빠진 경기가 살아난다는 것이다. 실제 단기적으로 경기를 부양하는 효과는 있는 것으로 입증되자, 각국 정부는 수시로 케인스 처방전을 꺼내들고 있다. 

문재인정부의 소득주도성장론(J노믹스)도 그 뿌리는 케인스다.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와중에 출범한 버락 오바마 미국 민주당 정부도 예외가 아니었다. 오바마정부가 의회에 보낸 1호 법안이 경기부양법안이었다. 대량 실업으로 소비할 여력이 없는 국민 대신 정부가 돈을 풀어서 얼어붙은 시장에 온기가 돌도록 하자는 취지였다. 미국판 추가경정예산안이었다. 야당인 공화당은 “연방정부의 지출은 경제를 회생시킬 수 없고 증가 일로인 재정적자만 키운다”고 주장했지만, 오바마와 집권 민주당은 부양정책을 밀어붙여 집권 8년 동안 소방관과 경찰관, 교사 같은 공공 일자리를 늘렸다. 소득·자산 양극화 해소를 통한 중산층 복원, 내수 진작을 통한 경기 회복이 목표였다. 결과적으로 국가 부채는 늘었지만 경기는 살아났다.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10%에 육박했던 실업률은 지난달 16년 만에 최저치인 4.3%까지 떨어졌다. 


조남규 경제부장

J노믹스도 그만한 성과를 거둘 수 있을까. 세금으로 공공 일자리를 늘리는 일이야 큰 어려움은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것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문재인정부가 저성장 늪에 빠진 우리 경제를 퀀텀점프(대약진) 시키려면 구조개혁이라는 쓴 약을 피해선 안 된다. 미국의 경기 회복은 오바마의 재정투입에 기업가의 혁신이 뒷받침된 결과였다. 미국은 세계 어느 나라보다 기업하기 좋은 환경이라는 사실을 간과해선 안 된다.

성장 지체병에 걸려있던 영국과 독일은 구조개혁 수술을 통해 회생했다. 친노동자 정당인 독일 사민당의 게르하르트 슈뢰더 총리는 구조개혁법안 통과에 총리직을 거는 리더십을 발휘했다. 슈뢰더와 사민당은 정치감각이 무뎌서 노동개혁을 밀어붙인 것이 아니다. 그 여파로 슈뢰더와 사민당은 정권을 내줘야 했지만 독일은 살아났다. 국익을 당리당략에 우선한 지도자의 리더십이 경제를 살려내고 더 많은 일자리를 만들어냈다.

이들 선진국의 구조개혁이 성공할 수 있었던 또 다른 요인은 수십년 동안 촘촘히 구축해온 사회안전망이었다. 일자리 상실이 생존권을 위협하는 사회에서는 구조개혁의 진통이 더 클 수밖에 없다. 자산·소득 불평등이 심화된 사회에서는 이해 당사자들의 타협을 이끌어 내기가 더 힘들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주거, 보육 등 국민의 기본적 복지 수준을 높이고 불평등을 완화하겠다는 J노믹스의 지향점은 과녁을 제대로 겨냥한 것이다.

노무현정부의 ‘비전 2030’은 사회안전망을 확충하고 불평등을 완화할 수 있는 로드맵이었다. 이 로드맵이 폐기되지 않고 이명박정부로 계승됐다면 박근혜정부의 구조개혁은 성공 가능성이 더 높아졌을 것이다. 한국의 보수가 깊이 성찰해야 할 대목이다. 한국의 미래가 걸린 구조개혁 과업은 ‘비전2030’을 제시했던 정부의 계승자에게로 넘어갔다. 

조남규 경제부장

 

*아래는 조선일보 강경희 논설위원이 2017년 9월 방한한 게르하르트 슈뢰더 전 독일총리를 인터뷰한 내용.

게르하르트 슈뢰더 전 독일 총리는 '유럽의 병자'라 불리던 독일에서 노동 및 연금·복지 개혁을 감행해 경제 회생의 발판을 만든 인물이다. 인기 없고 고통스러운 개혁을 추진한 대가로 슈뢰더는 2005년 총선에서 패배하고 정계를 떠났다. 지난 8일 방한한 슈뢰더 전 총리는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노조와 기업 다 개혁에 반발했다. 하지만 실업률이 극적으로 낮아지고 사회보장제도가 안정적으로 유지되는 지금의 결과를 보면 '어젠다 2010' 개혁이 얼마나 큰 역할을 했는지 알 수 있다. 결국 우리가 결정했던 그 길이 옳았다"고 말했다. 2000년대 초 500만명이 넘던 독일 실업자는 현재 절반으로 줄었다. 실업률은 독일 통일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다.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세계 각국에 포퓰리즘이 확산되는 추세에 대해 슈뢰더는 "실업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이 근원이라면 정치인들이 이 불안을 진지하게 성찰해서 정책적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잃어버린 일자리를 새로운 일자리로 대체할 방안을 강구하고, 평생 교육의 기회를 넓혀 재취업 기회도 적극 열어줘야 한다"고 했다.

중도 좌파 정당인 사민당 출신의 게르하르트 슈뢰더 전 총리가 집권하던 당시(1998~2005년) 독일 경제는 마이너스 또는 제로 성장이 이어졌다. 독일 통일의 반짝 호황은 사라지고 막대한 통일 비용, 500만명에 달하는 실업자, 연금·실업수당·건강보험의 누적된 복지 부담이 경제를 짓눌렀다. 슈뢰더 전 총리는 2003년 '혁신, 성장, 일, 지속 가능성'이라는 표제의 '어젠다 2010' 개혁안을 발표했다. 50년간 손보지 않은 복지에 메스를 가하고 경직된 노동시장을 개혁하는 정책이었다. 해고를 쉽게 하고, 32개월이던 실업수당 지급 기간을 12개월로 줄이고, 연금 수령 시기도 늦췄다. 노조는 슈뢰더를 '사회 부적응 자폭꾼'이라 공격하며 연일 시위를 벌이고 거세게 반발했다. 그럼에도 개혁을 밀고 나갔다.

―사민당의 전통 지지층이 노동자 계층인데 지지 기반을 무너뜨릴 노동 개혁을 한 이유가 뭔가.

"독일 실업자가 500만명에 육박했다. 사회 안전망도 위협받았다. 연금·실업수당·건강보험이 더 이상 지속 가능하지 않았다. 사회보장제도는 재정이 감당할 수준이어야 하고 미래에도 지속 가능해야 한다. 재정은 교육과 R&D(연구·개발)에도 투입돼야 하는 돈이다. 노동시장의 경직성을 타파해서 더 유연하게 만들고, 사회보장 중에서도 특히 연금과 실업수당을 개혁해야 한다고 봤다. 네덜란드처럼 노·사·정 대타협을 시도했지만 독일에서는 노사가 절대 타협할 수 없다는 걸 금세 깨달았다. 그래서 정부 주도 개혁에 나섰다. 시대를 앞서가지 못하면 시대에 잡아먹힌다는 위기감이 있었다. 개혁에 노조와 기업 다 반발했다. 노조는 개혁이 과하다 했고, 기업은 개혁이 부족하다 했다. 오늘날 결과가 증명하듯 우리가 결정했던 그 길이 옳았다. 독일은 개혁으로 유럽 내 다른 어떤 국가와도 큰 차이를 갖는 위치에 올라가 있다."

―집권당 내에서도 반대가 있지 않았나. 노조는 어떻게 설득했나.

"독일 의회는 절반만 넘으면 된다. 집권당은 어떤 개혁 법안도 가능하다. 당시 적녹 연정(사민당과 녹색당의 연립정부)이었는데 연정 파트너라고 무조건 '예스'는 아니다. 녹색당도, 사민당 내부도 설득해야 했다. 사민당 지역별 콘퍼런스를 비롯해 수많은 회합에서 '어젠다 2010'을 몇 시간씩 설명했다. 노조도 설득했지만 노조 간부들은 이념적으로 교조화되어 설득이 쉽지 않았다. 나를 향해 격렬한 시위도 벌였다. 노조와의 대화에서 '이 개혁은 결국 관철될 것이다. 이것으로 상황 끝(더 이상 토론하지 않겠다는 뜻)'이라고 말한 적 있다. 그 후로 내 별명이 '상황 끝 총리(Basta Kanzler·바스타 칸츨러)'가 됐다. 긍정적 성과가 나타나면서 노조 시위도 줄었지만 그렇다고 노조가 '총리 말이 옳았다'고 대놓고 인정하진 않는다."

 
―어려운 개혁에 어떤 리더십이 필요한가.

"여론조사를 해보자. '우리나라에 개혁이 필요하다'고 90%가 응답한다. 막상 개혁으로 자신에게 조금이라도 피해가 오면 90%가 반대로 돌아선다. 독일이나 한국처럼 어느 정도 부를 축적한 민주사회에서 국민에게 개혁과 변화의 필요성을 설득하기란 매우 어렵다. 더 큰 문제는 개혁 결정은 오늘 내려야 하는데, 효과는 최소한 2~3년 지나서 나온다는 점이다. 이 사이에 선거가 있으면 집권당이 선거에서 패배할 수 있다. 국민은 당장 드러나는 부정적 측면만 보지 앞으로의 긍정적 효과는 보지 않는다. 그럼에도 정치 지도자라면 반드시 국익을 위해 어려운 결정을 내려야만 한다. 어떤 정치인도 선거에 패하고 싶지는 않다. 나도 그랬다. 하지만 정치 지도자란 어떠해야 하는가. 국가 이익을 위해서라면 자기 직책을 잃어버릴 위험 부담도 감내하고 개혁을 추진할 용기를 가진 사람이어야 한다."

―총선 패배로 개혁을 후회하지 않았나.

"안타깝게도 내가 총리직에서 물러난 후부터 개혁 효과가 나타났다. 후임자 메르켈 총리는 내가 한 개혁의 긍정적 과실을 수확한 셈이다. 메르켈 총리도 이 점을 인정했다. 실업률이 극적으로 낮아지고 사회보장제도가 안정적으로 유지되는 지금을 보면 '어젠다 2010'이 얼마나 큰 역할을 했는지 알 수 있다. 정치인으로서 차세대가 미래에 평가내릴 것을 생각한다면 개혁의 성과를 알기에 후회한 적은 없었다."

―당시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와 '제3의 길' '신(新)중도'를 선언했다. 왜 좌파 정당의 노선 변화를 시도했나.

"유럽 중도 좌파 정당들은 '분배를 통한 정의 실현'에 역점을 뒀다. 토니 블레어와 나는 이것만으로 충분치 않다고 판단했다. 경제가 성장해야 그에 기초해 분배도 할 수 있다고 봤다. 독일 사민당과 달리 프랑스 사회당은 좌파 성향이 더 강했고 그런 변화가 없었다. 사회당 출신 올랑드 전 프랑스 대통령은 노조와 국민의 반발을 살 것이라는 우려 때문에 개혁을 못했다. 그 실수를 만회하고자 지금 마크롱 대통령이 개혁을 추진한다. 개혁 여부가 오늘날 독일과 프랑스 경제의 차이를 가져왔다."

―한국 정부는 독일을 모델로 탈원전을 추진한다. 당시 탈원전을 추진하면서 짓던 원전도 공사 중단한 적 있나.

"그건 없었다. 우리는 원전 건설을 신규로 허가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밝혔다. 그리고 에너지 대기업들과 토론을 통해 어떤 시점에 탈원전을 할 것인지 합의를 이룬 뒤 법안을 마련했다. 기업들은 40년이 필요하다고 했고, 연정 파트너 녹색당은 25년을 주장했다. 그 중간쯤인 2032년에 원전을 통한 마지막 전력 생산을 하기로 합의했다. 탈원전을 몇년 내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누구도 단언 못한다. 독일은 그 정도면 대안을 마련할 수 있다고 봤기에 시한을 그리 정한 것이다. 메르켈 정부에서 탈원전 법안을 무효화했다가 후쿠시마 사고 이후 재추진했다. 그런데 2032년이 아니라 2022년으로 앞당겼다. 이 결정은 잘못됐다고 본다. 너무 촉박하다. 탈원전 시한을 정할 때는 대체 에너지원이 충분히 마련돼야 한다. 우리는 신재생 에너지에 엄청나게 투자했다. 독일은 햇빛이 많지 않아 태양광은 충분치 않았고 풍력에서 특히 세계적으로 앞서나가게 됐다."

―에너지 기업과 합의는 누가 끌어냈나.

"내가 직접 몇년에 걸쳐 토론했다. 기업과 합의는 2002년 성사됐다. 정부가 연방 하원의 다수석을 차지하고 있어 법안을 그냥 통과시켜도 그만이었다. 하지만 탈원전은 정부 의지뿐 아니라 에너지 기업도 합의하는 것이 중요하고 적절한 에너지 대안이 있어야만 합의도 이뤄질 수 있다. 이해 당사자를 참여시켜 합의를 이루는 것은 시간도 많이 걸리고 과정도 힘든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정치 지도자는 바로 이런 일 하라고 있는 존재다. 우리가 하는 일이 시대 흐름에 맞고 진정한 의지가 있다면 협상에 드는 시간과 노력은 즐겁게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아래는 김동연 경제부총리가 2017년 9월15 조선일보와 가진 인터뷰 내용. 

 

 

김동연 경제부총리

김동연 경제부총리가 한국 경제가 재도약하려면 고용의 안정성과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맞교환하는 '사회적 대타협'이 절실하다는 소신을 밝혔다.

김 부총리는 지난 15일 정부서울청사에서 가진 본지와 인터뷰에서 "(저성장에 빠진) 우리 경제의 도약을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사회적 대타협"이라며 "고용 안정성과 유연성을 같이 확보하는 '한국형 고용 안정·유연 모델'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새 정부 출범 이후 최저임금 대폭 인상,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성과연봉제 폐지 같은 친(親)노동 정책이 쏟아지는 가운데, 경제부총리가 노동시장 구조 변화라는 새 화두를 던진 것이다.

다만 김 부총리는 고용 안전망 강화를 선결 과제로 제시했다. 그는 "(고용 안전망이 취약한 상태에서는) 일자리를 잃을 경우 곧바로 절벽으로 떨어진다. 고용의 안정성이 어느 정도 확보되지 않은 상황에서는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논의조차 할 수 없다"고 말했다. 현재 우리나라 실업급여는 직전 평균 임금(월급)의 최대 50%를 최장 8개월간 받을 수 있다. 반면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들은 평균적으로 실직 전 월급의 65%를 최장 15개월간 지급하고 있다.

집값 안정 대책으로 거론되는 보유세 인상과 관련, 김 부총리는 "현재로는 검토하고 있지 않지만, 초과다 부동산 보유자에 대한 과세나 보유세·거래세 비중 조정 같은 이슈는 곧 구성될 조세개혁특별위원회에서 논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 부총리는 최저임금 인상에 대해 "내년 상황을 보면서 인상 속도와 폭에 대해 어떤 입장을 취할지 결정하겠다. 그때는 (2020년까지 최저시급을 1만원으로 인상한다는) 공약에 '문자 그대로(literally)' 구속받지 않고 신축적으로 하겠다"고 답했다.

*아래는 한국경제 주용석 기자가 박승 전 총재를 인터뷰해 2017년 9월25일자에 보도한 기사.

박승 전 한국은행 총재(81)는 지난해 10월 문재인 대통령의 싱크탱크이던 ‘국민성장’에 합류하면서 자신을 ‘중도 실용주의자’라고 했다. 그는 지금도 좌우를 넘나든다. 과거 보수 정부의 경제정책 실패를 질타하고 새 정부의 소득 주도 성장을 지지하면서도 진보 정부가 꺼리는 노동개혁과 규제개혁의 필요성을 역설하는 식이다.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을 놓고 진보와 보수의 갈등이 계속되는 가운데 지난 21일 서울 평창동 자택에서 박 전 총재를 만났다.

▷지금 우리 경제를 어떻게 진단하십니까.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만 해도 연 4~5% 성장했는데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선 연 2~3%대로 주저앉았습니다. 성장 환경이 달라졌는데 보수 정부에서 수출 주도, 대기업 주도로 성장하는 박정희 시대의 산업화 모델을 그대로 쓰면서 경제의 역동성이 떨어졌습니다. 지금은 낙수효과 엔진이 고장났습니다. 수출은 과거처럼 우리 경제를 끌고 갈 힘이 없습니다. 대기업이 국내 투자도 잘 안 하고 설령 투자를 해도 고용이 거의 안 늘어요.” 

▷그래서 소득 주도 성장을 지지하는 건가요.

“소득 주도 성장은 수요 측면의 성장 엔진입니다. 소득재분배 정책을 통해 민간 소비를 늘려주는 겁니다. 과거처럼 선(先)성장, 후(後)복지가 아니라 성장·복지 병행 정책으로 가는 거예요. 이것이 소득 주도 성장의 핵심인데, 이것만으로는 안 됩니다. 좋은 물건을 싸게 생산해서 국제 경쟁력을 갖추는 공급 측면의 성장 엔진이 필요한데, 그걸 위해선 생산성 혁신을 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려면 노동개혁, 규제개혁을 해야 합니다.” 

▷문재인 정부의 지지 기반이 노동계인데, 노동개혁이 잘 될까요.

박승 전 총재가 대학생 시절 쓴 일기를 보여주고 있다. 박 전 총재는 자신의 일기를 모두 보관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래도 노동개혁을 안 하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대선 후) 문 대통령에게 노동개혁이 필요하다는 말을 한 적도 있습니다.”

▷노동개혁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 것입니까.

“한국은 노조가 꼭 필요한 영세 사업장에는 노조가 없고, 노조가 없어도 되는 고임금 사업장에는 강성노조가 있어서 노동 기득권을 형성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정부가 노동 여건을 개선하고 복지를 늘려야 하지만 동시에 노조도 산업 평화를 위해 불합리한 투쟁을 자제해야 합니다. 파업 없는 노사 관계를 위해 노사분규 중재기구를 둬 파업 전에 반드시 이 기구를 거치도록 하고 중재기구의 반대에도 파업하려면 조합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하도록 하면 좋겠다는 아이디어를 (저는) 갖고 있습니다.”

▷규제개혁도 속도가 더딥니다. 

“서비스 규제 개혁안은 여야가 다 좋다고 하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문제 되는 부분이 있다면 그걸 빼고라도 빨리 처리해야 합니다. 특히 4차 산업혁명에 대응하려면 규제개혁이 절대 필요합니다. 드론도, 빅데이터도, 인터넷뱅크도 규제가 풀려야 제대로 작동을 할 텐데 참 답답해요.” 

▷‘2020년까지 시간당 최저임금 1만원’ 정책은 어떻게 보십니까.

“최저임금이 최저생계비도 보장 못 하는 현실에서 최저임금을 올리는 건 맞습니다. 하지만 기업이나 산업, 영세 사업장이 견뎌낼 수 있는 범위를 감안해야 합니다. 무리하게 목표를 정해서 ‘언제까지 1만원까지 올려야 한다’고 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어느 정도 인상률이 적당할까요. 

“아무 계산 없이 구체적인 숫자를 제시할 순 없지만 최저임금을 올리고 정부가 (인상분 일부를) 보전해주는 건 잘못이라고 봐요. 정부가 보전해준다는 건 비정상입니다. 그 돈이 하늘에서 떨어진다면 모를까, 결국 세금으로 주는 건데 지속가능한 것도 아니고요. 정부가 보전해주지 않아도 되는 범위만큼만 올려야 한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정부가 복지를 확대하면서 ‘서민 증세는 없다’고 했습니다.

“여러 가지 복지 공약을 하면서 마치 증세는 없는 것처럼 하는 건 잘못입니다. 정직해야 합니다. 국민에게 복지를 주는 것만 약속할 게 아니라 고통 감내도 동시에 요구해야 합니다. 증세를 안 하면 결국 재정적자를 키우거나 복지를 후퇴시킬 수밖에 없어요. 정부는 ‘5년간 이러이러한 복지를 주겠다. 대신 세금은 얼마를, 어떻게 걷겠다’는 로드맵을 내놔야 합니다.” 

▷증세는 어떻게 하는 게 바람직합니까. 

“중장기적으로 볼 때 법인세, 소득세, 종합부동산세, 그러고도 모자라면 부가가치세 순으로 해야 한다고 봅니다. 소득세는 고소득자가 더 부담하더라도 적어도 중산층 이상은 올려야 한다고 봅니다. 법인세도 그렇습니다.”

▷법인세는 세계적으로 내리는 추세입니다.

“다른 나라는 법인세가 높기 때문에 낮추는 겁니다. 미국은 법인세 최고세율이 30%가 넘습니다. 우리는 법인세 명목세율이 22%지만 실효세율은 (각종 비과세·감면 때문에) 10%대 중반 아닙니까. 지금 기업들이 쌓아둔 현금성 자산만 200조원입니다. 법인세 인상은 단순히 복지 재원 문제가 아니라 정부가 세금을 걷어서 기업이 안 하는 고용과 투자를 대신 하고 일자리를 늘리라는 의미도 있습니다.”

▷부동산 문제는 어떻게 보십니까. 

“우리는 해방 이후 지난 정부까지 모두 부동산을 경기 부양 수단으로 봤습니다. 그 결과 지난 50년간 물가가 30배 정도 올랐는데 땅값은 3000배 뛰었습니다. 최근에도 경제성장률보다 집값 상승률이 훨씬 더 높았습니다. 그 결과는 ‘빈곤화 성장’입니다. 경제는 성장했는데 삶의 질은 갈수록 후퇴하는 거예요. 부동산 가격 상승은 양극화의 근본 원인이고 (생산) 원가를 상승시켜 경쟁력을 약화시키죠. 그래서 부동산 경기 부양은 일시적으로 남고, 영원히 밑지는 정책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합니까. 

“부동산을 경기 부양 수단이 아니라 국민생활 안정 수단으로 봐야 합니다. 부동산을 재산 형성 수단에서 제거하라는 겁니다. 그렇다고 지금 부동산 값을 떨어뜨리면 문제가 복잡해집니다. 제 주장은 ‘장기적으로 부동산 값을 현상 유지하면서 가계 소득을 계속 올려주라’는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종합부동산세를 강조하는 겁니다. 한국은 보유세가 낮습니다. 집값 대비 보유세가 미국이 1.5%, 일본이 1%인데 한국은 0.15%입니다. 보유세를 올리고 거래세는 낮춰야 합니다.”

▷미국 중앙은행(Fed)이 양적완화를 끝내려 하고 있습니다. 한은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미국 정책금리가 2년쯤 뒤에는 연 3% 수준으로 갈 가능성이 있습니다. 우리가 당장 금리를 안 올린다고 해도 내년부터는 달라질 겁니다. 우리 경제 성장이 정상화될 때 적정금리는 연 3% 내외라고 봅니다.”

박승 전 한국은행 총재는 대학 교수, 청와대 경제수석, 장관, 한은 총재를 모두 지낸 흔치 않은 이력을 갖고 있다. 2012년 대선과 올해 대선에서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를 도왔다. 이번 대선에선 문 후보의 개인 싱크탱크이던 ‘국민성장’의 자문위원장을 맡았다. 화려한 이력과 달리 그는 ‘흙수저’다. 논밭에서 일하고 땔감을 해가며 중·고등학교를 다녔고 대학 시절에도 농사를 짓다가 시험 때만 서울로 올라가 공부한 적이 많았다. 그는 인터뷰에서도 “어릴 적 논에서 일할 때 농민들의 땀 냄새, 흙냄새, 푸른 모 냄새가 어우러진 냄새가 내 코에 입력돼 70년이 지나서도 머리에 남아 있다”고 했다. 그 냄새를 떠올리며 자신의 호를 ‘푸른 벼’라는 의미의 청도(靑稻)로 지었다.
 
한은에서 첫 사회생활을 했으며 교수, 장관 등을 거쳐 2002년 김대중 정부 말기부터 2006년 노무현 정부 중반까지 한은 총재를 지냈다.

△1936년 전북 김제 △이리공고, 서울대 경제학과 졸업 △미국 뉴욕주립대 경제학 박사 △중앙대 정경대 경제학과 교수 △청와대 경제수석(1988년) △건설부 장관(1988~1989년) △한국경제학회장(1999~2000년) △한은 총재(2002~2006년) △‘국민성장’ 자문위원장(2016~2017년)

‘절절포’(절대 절대 포기하지 말자). 임종룡(58) 금융위원장 하면 떠오르는 단어다. 농협금융지주 회장 시절 금융규제 완화 노력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취지로 했던 말인데, 금융위원장 시절엔 금융개혁을 강조하는 의미로 확장됐다. 금융위원장 부임 일성으로 “국가경쟁력보다 뒤처져 있는 금융산업 경쟁력을 어떻게 높일 것인가가 저한테 주어진 소명”이라고 밝혔다. 그리고 재임 기간 인터넷은행 출범,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 도입 같은 금융개혁 조치들을 잇따라 내놨다. 퇴임을 앞둔 지금 임 위원장이 매진했던 금융개혁은 미완의 과제로 남았다. 퇴임을 앞둔 임 위원장을 지난 16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위원장 접견실에서 만나 소회를 들어봤다. 


 

-새 정부 출범 하루 전에 사표를 낸 것으로 알고있다. 금융감독기관 수장으로서 어떤 소신으로 일해왔나.

“부임할 때부터 금융당국이 모든 것을 지시하고 간섭하고 관여하려고 하는 ‘코치’의 자세에서 벗어나는 것이 급선무라고 생각했다. 시장이 공정한 원리대로 돌아갈 수 있도록 하는 ‘심판관’ 역할을 제대로 해내는 것이 소명이라고 생각했다. 이를 위해 금융혁신을 위해서 불필요한 규제들은 대폭 없애거나 개선했다. 현장에서 시민들이 겪는 금융애로 상황을 파악해 이를 줄이기 위한 혁신적인 서비스가 등장할 수 있도록 노력했다. 업권 내, 업권 간 장벽을 허물고 자유로운 경쟁을 유발해 금융 산업의 국제경쟁력 강화를 위한 혁신을 이끌고자 했다.”

-좀 구체적으로 말해달라. 

“인터넷 전문은행이 지난 4월 출범해 24시간 영업을 하고 있다. 또 16년 만에 우리은행이 민영화에 성공했고 22년 만에 보험업권 내 상품가격 등을 규율하던 각종 규제가 철폐됐다. 증권업에서는 초대형 투자은행(IB) 육성을 위해서 자기자본 4조원이 넘는 회사들에 한해 7월부터 발행어음 업무를 시작할 수 있도록 했다. 이를 통해 IB들이 기업금융에 집중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했다.” 

 

 
 

 


-아쉬운 부분은 없는가. 

"가장 아쉬운 점은 은행법, 자본시장법 등 금융개혁 입법이 아직 마무리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인터넷 은행이 금융시장의 혁신을 유발하는 건강한 메기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IT(정보기술)산업이 주도해서 금융과의 융합을 추진해 기존 은행과는 차별화된 서비스들을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인터넷은행에 한해서만 ‘은산분리’(산업자본의 은행 지분 소유 한도 4% 제한)를 완화해주기위한 법적 기반이 마련되지 못했다. 한국거래소를 지주회사로 개편해 시장에서 경쟁을 시키려 했으나 역시 관련 법안이 계류 상태다. 세계적으로 거래소들을 지주회사 체제로 개편해 혁신을 도모하는 추세다. 우리는 이미 늦었다. 새 정부에서 하루속히 이들 법안이 입법화 돼 국제적인 금융 산업의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기를 소망한다." 

-금융업권 간의 경쟁이 제한적이라는 지적이 있다. 

"우리나라의 금융 시스템 자체가 전업주의에 기초해 있기 때문에 한꺼번에 금융업권 간 장벽을 모두 허무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금융소비자들 사이에서 중요성이 높아지고 있는 자산운용 등 몇몇 분야에 한해서는 증권과 보험, 보험과 은행, 은행과 증권의 업무를 분리하고 있는 장벽을 낮춰야 한다. 그래야 금융기관들이 활발한 경쟁을 통해 고부가·혁신 서비스를 내놓을 수 있다.” 

 
 

 


-금융기관들의 업권 이기주의도 문제 아닌가. 

“그렇다. 일부 규제들은 금융권 스스로 원하고 있다. 금융회사들은 규제가 있어서 편하게 장사를 할 수 있는 측면도 있기 때문이다. 이제 금융회사들도 바뀌어야 한다. 경쟁을 하려고 해야 한다. 우리나라 제조업이 금융업보다 경쟁력이 높은 것은 국내에 안주하지 않고 해외에서 치열하게 경쟁했기 때문이다. 금융 산업도 마찬가지다. 서로를 막고 있는 장벽을 깨고, 경쟁하고, 해외로 진출해야한다. 경쟁 과정에서 살아남기위해서는 혁신을 유발해야 한다. 앞으로 그런 혁신이 이뤄지지 못하면 우리나라의 국가 경쟁력이 훼손될 것이다. 금융산업이야말로 고부가가치 산업이다.” 

-대우조선해양 채무재조정에 관해서는 소회가 남다를 것 같다. 대우조선 사태가 남긴 교훈은 무엇인가.

“기존 채권단 주도의 구조조정은 이제 한계에 이르렀다는 사실이다. 채권은행 입장에서는 단기적인 경영실적 악화를 우려해 한계기업에 대한 적극적인 구조조정을 미룰 수 있다. 기업들이 구조조정의 적기를 놓치면 그만큼 국가 경제 전체의 경쟁력이 떨어지는 것 아닌가. 이미 자본시장에는 지난 10여년간 크게 성장해온 사모펀드(PEF)를 중심으로 역량있는 인재들이 많다. 이들이 구조조정 대상 기업을 사서, 경쟁력 있는 기업으로 탈바꿈시켜 부가가치를 높이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법원도 향후 프리패키지드 플랜(pre-packaged plan·워크아웃과 법정관리의 장점을 합친 새로운 구조조정 제도)등을 통해 기업 구조조정 과정에서 중추적 역할을 담당할 것이다.” 

 


-한진해운에는 금융논리가, 대우조선에는 산업논리가 각각 다르게 적용되었다는 지적도 있다.

"결과만을 놓고 보면 마치 원칙이 달랐다는 인상을 불러일으킬 수 있지만 사실 2년간 기업 구조조정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적용한 원칙은 두 가지였다. 먼저 구조조정은 결국 이해관계인들의 손실 분담에 대한 합의가 전제되어야 한다는 점이었다. 손실을 좀 감수하더라도 더 큰 회수 가치를 얻기 위한 합의가 제대로 이뤄져야 국책은행에서도 지원을 할 수 있다. 또 이해관계자들이 자구노력을 보여야 한다는 점이었다. 대우조선 채권단 등 이해관계자들은 법정관리로 가는 것이 아니라 손실을 조금씩 감수하고 구조조정을 하겠다는 선택을 했다. 결과 여부만 놓고 다른 기준이 적용되었다고 말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그렇지만 대우조선의 회생 여부에 따라 대우조선 채무재조정에 대한 평가가 달라질 것이다.

“생존 여부는 장담할 수 없다. 조선업황 개선, 임직원들의 경영능력 등에 좌우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적어도 대우조선은 현재 구조조정을 통해 금융위가 목표로 했던 ‘작고 단단한 경쟁력을 갖춘 조선사’로 거듭나기 위한 최적의 여건은 갖췄다고 판단한다. 일단 재무구조 건전성 측면에서 부채율이 200%대로 줄었고 산업구조도 세계적으로 경쟁력 있는 상선과 방산을 강화하고 플랜트는 대폭 줄였다.” 

 


-재임 기간 가계부채가 1300조원을 훌쩍 넘어서면서 우리 경제의 리스크로 부상했다.

“추세적으로 가계부채는 완화국면이다. 갚을 수 있는 만큼만 돈을 빌리게 해 처음부터 나눠 갚게 하는 ‘여신심사가이드라인’이 전체 금융권으로 도입되면서 은행들이 리스크 관리를 보다 철저히 하고 있다. 시장 환경도 금리는 오름세고 부동산 시장이 서서히 안정화하면서 대출수요가 감소하고 있다. 무엇보다 대출자의 ‘빚 갚는 능력’을 종합적으로 살피는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이 여신관리 지표로 활용된다면 금년 중에 증가율이 한자리 수 이내로 줄어들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2014년 시행된 주택담보대출비율(LTV)과 총부채상환비율(DTI) 완화 조치가 7월 말 끝난다. 각각 70%, 60%인 LTV·DTI를 둘 다 50%로 되돌려야하나. 

“그렇지 않다. LTV, DTI는 원래 금융회사의 건전성 장치다. 이걸 움직이는 것 자체가 경제주체에게 좋지 않다. 이 비율은 상수로 두고 믿음을 줘야 한다. 더욱이 가계부채 문제는 LTV, DTI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 결국 일자리 정책, 재정 정책 등을 통해 가계의 소득을 높이는 종합 처방이 이뤄져야 한다.”

-문재인정부가 대선 공약으로 내건 ‘가계부채총량 관리제’는 현실성이 있나.

“가처분 소득 대비 부채비율을 (150% 이하로) 관리하겠다는 방향은 타당하다. 다만 공약에서 제시한 150% 기준을 너무 엄격하게 적용하면 실물 경제에 부정적 영향이 있을 수 있다. 지금도 153% 정도다.”

 


-문재인정부는 빚 갚을 능력이 없는 채무불이행자 203만여명의 빚을 탕감해주겠다는 공약을 내걸고 출범했다.

“빚을 갚을 수 없는 개인에 대한 구조조정, 경제적 재기를 위해 채무를 조정해주는 제도 자체는 필요하다. 다만 이 경우 모럴 해저드(도덕적 해이)를 방지하기 위한 세심한 세부설계가 관건이다. ‘빚은 끝까지 갚아야만 하는 것’이란 대원칙을 흐트러뜨리지 않기 위해 어떤 경우든 빚을 전액탕감해줘선 안 된다. 개인이 빚을 감당할 수 있는 범위 내로 조정해 주는 것, 성실히 상환했을 경우 더 큰 혜택이 돌아갈 수 있도록 인센티브를 부여하는 조치가 병행돼야 한다.” 

-법정 최고이자율 상한선을 20%로 제한하겠다는 문재인정부 공약에 대해서도 찬반 여론이 팽팽하다.

“부채를 일정 수준 이하로 관리하는 것, 서민들의 이자 부담이 적어질 수 있도록 목표를 설정하고 방안을 마련하는 것 자체는 바람직하다. 다만 추진과정에서 특정 수치를 목표치로 제시하고 융통성 없이 추진하면 부작용을 유발할 수 있다. 세심한 접근이 필요하다. 예컨대 최고 이자율을 낮추려 한다면 ‘20%’라는 특정 수치를 당장 제시하기에 앞서 먼저 대부업체들의 영업상황, 비용구조를 얼마까지 낮출 여지가 있는지를 따져보는 것이 먼저라는 얘기다. 무리하게 이자율을 낮추면 자칫 양성화되었던 대부업체들을 음지로 내보내고, 저신용자들을 불법사채 시장으로 내모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새 정부의 정부조직 개편을 앞두고 금융의 감독 기능과 정책 기능을 나누자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정부조직개편 논의는 5년마다 등장하는 단골 소재였다. 역사적으로 재무부, 재경원, 재정경제부, 금감위 등 모든 형태를 다 취해봤다. 과거의 경험을 통해 얻어진 교훈은 결국 ‘개편을 위한 개편’은 비효율과 혼란만 가중시킨다는 것이다. 금융감독과 정책수립 기능을 무 자르듯이 분리한다는 것 역시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다. 정책이 있고 또 이를 집행하는 기관이 있다. 억지로 분리한다고 해도 되레 기관 간 ‘밥그릇 싸움’만 유발할 것이다. 이미 새 정부가 출범했고 해결해야 할 금융 과제들은 산적해 있다. 개편 논쟁으로 시간을 끌 여유가 없다. 현 체제의 모순이 있으면 이를 조금씩 보완하는 방향으로 가는 것이 타당하다고 본다.“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1959년 전라남도 보성 출생 △영동고, 연세대 경제학과 졸업. 오리건대학교 대학원 경제학과 석사 △ 재정경제부 금융정책국 은행제도, 증권제도, 금융정책과 과장 △주 영국 대사관 △ 재정경제부 금융정책국 금융정책심의관 △ 기획재정부 경제정책국 국장 △ 기획재정부 기획조정실 실장 △ 대통령실 경제비서관 △ 대통령실 경제금융비서관 △ 기획재정부 제1차관 △ 국무총리실 실장 △ NH농협금융지주 회장 △ 제5대 금융위원회 위원장


대담=조남규 경제부장, 정리=김라윤 기자, 사진=이재문 기자

‘중소기업 중심의 경제구조’를 대선 공약으로 내세웠던 문재인정부가 출범했다. 중소기업을 더 키워서 가계 소득을 늘리면 내수와 투자, 고용도 늘어난다는 ‘분수 효과’(Fountain Effect)에 바탕한 경제정책이 예상된다. 이런 문재인정부 시대에 한층 어깨가 무거워진 금융기관이 IBK기업은행(이하 기업은행)이다. 기업은행은 중소기업이 위기에 처할 때마다 그 존재 이유를 선명히 드러냈다. IMF 외환위기와 카드 사태, 글로벌 금융위기 파고가 거셌을 때 기업은행은 어려움에 처한 중소기업 곁을 지켰다. 외환위기 당시 전체 은행권이 중소기업 대출을 13조9000억원가량 줄일 때 기업은행은 오히려 6000억원을 더 늘렸다. 카드사태와 글로벌 금융위기 때도 기업은행은 각각 전체 은행권의 중소기업 대출액의 74%, 91%를 책임졌다. 당시 살아난 수많은 중소기업들은 위기 이후 더 큰 회사로 성장했고 기업은행의 충성 고객이 됐다. 

 

 

 

 

 

취임 5개월을 맞은 김도진 IBK기업은행장이 지난 15일 서울 중구 을지로 기업은행 본점 행장 접견실에서 세계일보와 인터뷰를 갖고 기업은행의 역할을 기존의 ‘자금 공급자’ 차원을 넘어 중소기업의 성장단계별 애로사항 해소에 보다 능동적이고 창의적으로 개입하는 ‘동반자 금융’ 수준으로 끌어올리겠다는 포부를 밝히고 있다.
남제현 기자


“지금까지 기업은행이 ‘자금 공급자’, ‘금융 조력자’ 등 수동적 역할에 그쳤다면 이제는 중소기업의 성장단계별 애로사항 해소에 보다 능동적이고 창의적으로 개입하는 ‘동반자 금융’으로 발전해나가겠다.”

김도진(58) 은행장은 지난 15일 서울 중구 을지로 기업은행 본점 행장 접견실에서 세계일보와 인터뷰를 가진 자리에서 이 같은 포부를 피력했다. 취임 5개월을 맞은 김 행장은 늘 현장을 강조한다. 지점장 시절 SUV(스포츠유틸리티차량)를 타고 현장을 누비며 2년 연속 전국 실적 1등을 기록했다. 김 행장은 지난 2월 전국 영업점장 회의에서 1000여명의 직원들에게 구두 한 켤레씩 선물하며 현장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새 정부가 중소기업이 중심이 된 경제구조를 만들겠다고 천명했다. 기업은행의 역할이 더 중요해졌다.

“전임 두 정부는 대기업 성장을 도모해 중소기업들이 이를 따라오게 하는 소위 ‘낙수 효과’(trickle-down effect)를 택했다. 현 정부는 중소·중견기업 중심으로 허리와 하부조직을 더 탄탄하게 만드는 ‘분수 효과’가 지금 한국 경제에 더 적정한 성장 패러다임이라고 보고 있다. 기업은행도 정부의 중소기업 정책을 세밀하게 들여다보고 있다. 정부직제가 갖춰지면 기업은행도 긴밀한 역할을 할 수 있는 부분이 있을 것이다. 그 일환으로 우리는 올해 중소기업 대출 목표를 지난해보다 1조5000억원 늘린 43조5000억원으로 설정했다.”

 


―다른 시중은행들도 중소기업 대출을 한다. 기업은행만의 차별점은 무엇인가.

“중소기업 대출규모 면에서 기업은행은 시장점유율이 약 22.7%인 반면 시중은행은 보통 12% 내외다. 10%포인트가량 차이가 난다. 또 기업은행은 신용등급이 낮은 회사와도 거래를 하지만 시중은행은 리스크 관리 차원에서 신용등급이 높은 회사 위주로 거래한다. 영세 소기업이 양질의 고객이 아니라고는 할 수 없지만 기업은행에서 대출받은 26만 개 기업 중 약 94%가 20인 이하 영세 소기업이다. 기업은행이 시중은행에 비해 대손충당금 규모가 높고 수익이 낮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 

―중소기업이 커 나갈 수 있는 그런 마중물 역할을 하는 데서 기업은행의 존재 의의가 있는 것 같다.

“그렇다. 우리 설립목적이 그것이다. IMF 외환위기, 카드 사태, 글로벌 금융위기란 세 번의 금융위기에서 시중은행들은 중소기업에 대한 대출 문을 닫았다. 그러나 기업은행은 대출을 늘렸고 기업들이 죽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었다. 이때 기업은행의 자산도 많이 늘었고, 거래기업도 증가했다. 경기가 좋을 때는 기업은행 대출이 감소하는 반면 시중은행은 (대출이) 늘어난다. 경기가 어려울 때는 반대현상이 나타난다. 우리는 이것을 경기조절자 역할이라고 한다.” 

 


―중소기업을 성장시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안정적으로 대출을 해주려면 우선 기업은행도 수익을 내야 하지 않겠나. 

“우리도 수익률을 제고해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대손충당금을 적게 쌓아야 한다. 또 양질의 고객들을 끌어들여야 한다. 영세 소기업 중에서도 좋은 회사들이 많이 들어와 충당금을 적게 쌓고 그러면서도 이 회사들이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게 우리의 임무다. 직원들이 현장을 뛰면서 유망한 중소기업을 발굴하도록 독려하는 이유다.” 

―영세 중소기업 대출이 많아서 건전성 관리가 중요할 것 같다. 

“건전성이 나빠지면 성장이 유망한 중소기업에 대한 지원 여력이 위축될 수밖에 없는 게 사실이다. 그래서 신용평가나 조기 경보 등 사전 건전성 관리를 강화하고 기업이 일시적으로 유동성 위기를 겪으면 긴급 유동성 자금을 지원하고 있다. 기업이 부실화되면 적극적인 구조조정을 통해서 경영정상화도 지원한다. 직원들도 기업을 찾아 (경영상태 등) 상황을 파악한다. 외환위기, 카드 사태, 글로벌 금융위기 때도 영세 중소기업의 대출 연체율이 평시보다 크지 않았다. 앞으로도 영세 중소기업의 성장과 경영안정 지원을 위해 노력하겠다.”

―창업 단계부터 지원을 해주면 이들이 기업은행의 우량 고객으로 성장해갈 수 있지 않나.

“물론 우리도 창업에서 성장, 성숙단계까지 계속 지원하고 있다. 다만 지원이 많지 않은 게 우리나라 현실이다. 기업은행과 벤처캐피털, 기업체들이 이들을 지원하지만 자본 규모나 공간적, 금융적으로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제도적으로 중소기업이 중견기업으로 성장하면 큰 불이익이 없어야 하는데 이들이 중견기업으로 올라가면 (그동안 받았던) 혜택이 많이 사라진다. 그래서 중소기업들이 (중견기업으로 성장을) 많이 안 하려고 한다. 그러면서 대기업도 함께 성장해야 하는 등 여러 상황을 고려해야 한다.” 

 


―금융지원 외에 어떤 중소기업 지원책을 시행하고 있나. 

“기업은행은 11개의 어린이집이 있는데 시설이 상당히 좋다. 중소기업 근로자들이 이곳을 이용할 수 있도록 하겠다. 또 중소기업들이 스마트워크처럼 이용할 수 있도록 전국 기업은행 점포의 유휴공간을 살펴보고 있다. 일과 가정이 양립할 수 있도록 중소기업 근로자들의 복지를 간접적으로 지원해나가겠다. 기업은행은 대학생들에게 취업 멘토링 서비스와 함께 장학금을 주고 있는데 이 학생들을 전국 중소기업 근로자 자녀와 연결해 무료과외를 하도록 하는 프로그램도 진행 중이다.” 

―취임 후 줄곧 디지털을 강조하고 있는데. 

“기존의 국내 핀테크는 개인, 소매금융을 대상으로 발전했지만 기업고객을 위한 핀테크는 미미했다. 기업은행은 중소기업에 특화된 핀테크를 개발할 계획이다. 취임 후 첫 조직개편을 통해 중소기업 핀테크 모델을 발굴하는 ‘기업핀테크채널부’도 신설했다. 기업의 카드매출 내역이나 부가세 환급 예상액 등을 모바일로 확인하고, 온라인을 통한 크라우딩펀딩을 이용해 자금이 필요한 중소기업과 투자자를 연계하고 있다.”

―해외시장이 점차 중요해지고 있다. 향후 전략은 무엇인가. 

“기업은행은 수익의 약 90%가 이자수익이다. 이것만으로는 은행이 성장할 수 없다. 해외로 나갈 수밖에 없다. 기업은행의 특성에 맞게 우리나라 중소기업이 많이 진출한 곳으로 나갈 계획이다. 베트남과 인도네시아 같은 나라다. 현재 베트남에는 점포가 2개 있는데 법인을 설립하지 않는 한 점포를 늘리기가 어려워 보인다. 그래서 본부 파견 인력을 늘려 영업력을 확대할 계획이다. 인도네시아는 현지 은행을 인수하는 방식으로 진출할 계획이다. 해외진출 과정에서 공적개발원조(ODA) 사업과 연계해 해당 국가에 중소기업 금융지원에 대한 경험, 노하우, 시스템 등을 전수해주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금융기관 성과연봉제 논란이 뜨겁다. 

“현 정부도 성과연봉제를 재검토하고 노사가 다시 합의하면 새로운 것을 만들 수 있다는 입장이다. 완전한 호봉제를 유지하기보다는 (노사가) 절충점을 찾아야 한다.” 

―정부가 비정규직의 처우 개선에 관심이 많다. 기업은행은 상황이 어떤가.

“기업은행의 준 정규직은 급여만 차이가 날 뿐 정년 보장 등 복지는 정규직과 동일하다. (그럼에도) 준 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명제에는 충분히 공감한다. 다만 준 정규직들도 (정규직과 비교해) 자신들의 부족한 부분을 학습해 대출, 외환, 금전신탁 업무 등 정규직 업무를 분담해줄 수 있어야 한다.”

◆김도진 IBK기업은행장 약력 
 
●1959년 경북 의성 출생 ●대륜고, 단국대 경제학과 졸업 ●1985년 기업은행 입행 ●인천 원당지점장 ●본부기업금융센터장 ●카드마케팅부장 ●대외협력부장 ●전략기획부장 ●남중지역본부장 ●남부지역본부장 ●경영전략그룹장(부행장) ●제25대 기업은행장



정리=염유섭 기자 yuseoby@segye.com 

대담=조남규 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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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미국 대선에서 패배한 밋 롬니 공화당 후보는 캠페인 도중 ‘47% 발언’으로 곤욕을 치렀다.

롬니는 당시 고액 후원자들과 편하게 만난 자리에서 ‘미국인 중에 47%는 소득세를 내지 않으면서 건강보험이나 음식, 집 등을 정부에 의존하려는 무임승차자들(freeloaders)이며 이들이 버락 오바마 대통령에게 투표할 것’이라는 취지로 말했다. 비공개 모임이었는데 바텐더가 몰래 촬영해서 이 영상을 공개해버렸다. 롬니의 ‘47% 발언’은 민주당 오바마 후보의 ‘부자 증세’ 공약을 비판하는 과정에서 나왔다. ‘왜 부자들이 정부에 기생하는 사람들을 위해 돈을 더 내놔야 하느냐’는 것이었다. 롬니의 발언이 알려지자 소득세 면세 대상자(과세 미달자)들이 벌떼처럼 일어났다. 롬니는 남은 캠페인 기간 내내 ‘47% 발언’을 사과하고 다녀야 했다.


2013년 기준으로 미국의 과세 미달자는 약 5282만명이다. 근로소득자의 35.8%다. 롬니는 여기에 근로소득이 없는 노인층까지 포함시켰다. 과세 미달자든 노인이든 소득세를 내지 않으면서 각종 복지 혜택을 누리고 있다는 롬니의 발언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들을 ‘무임승차자’로 규정한 것은 옳지 않다. 이들도 사회보장세나 부동산보유세를 내고 물건을 살 때마다 부가가치세를 납부한다. 

한국에서도 과세 미달자 비율이 근로소득자의 48.1%(2014년 기준)에 달한다. 2013년 32.4%였던 과세 미달자 비율이 치솟은 것은 박근혜정부의 책임이다. 2013년 소득세 공제방식을 바꾸면서 연말정산 파동이 일자 부랴부랴 성난 민심을 다독거리기 위해 면세점 이하 근로자 비중을 늘린 탓이다. 그러자 요즘에는 ‘소득 있는 곳에 세금 있다’는 원칙론을 거론하면서 과세 미달자에게도 소득세를 물려야 한다는 주장이 터져나오기 시작했다. 그런데 소득세만 세금인가. 주민세도 세금이고 소비세도 세금이다. 저소득층의 소득은 대부분 소비된다. 우리 세수에서 소비세 비중이 높다는 점을 감안하면 저소득층의 세 부담은 결코 낮지 않다.

과세 미달자 비율은 좀 더 낮춰야 하지만 그에 앞서 불합리한 조세 체계부터 바꿔야 한다. 박근혜정부 시절 무산된 임대소득 과세는 차기 정부가 반드시 이행해야 한다. 부동산 보유세도 합리적 수준에서 현실화해야 한다. 필자가 미국 체류 시 기거했던 30만달러대 주택의 보유세는 연 5000달러 수준이었다. 한국에선 3억원(공시가격) 아파트 기준으로 재산세 등이 60만원 정도 부과된다. 한·미의 보유세 부과 체계가 같지 않다는 점을 고려해도 한국의 보유세는 좀 더 올릴 여지가 있다. 금융소득에 대한 과세도 손을 봐야 한다. 지금은 금융소득 2000만원까지는 14%의 낮은 세율을 적용해 분리과세한다. 임대·금융소득 과세나 보유세 인상은 이 시대의 화두로 등장한 양극화 해소에도 기여할 수 있다. 

프랑스 루이 14세 시절 재무상 콜베르는 “예술적인 과세는 거위가 비명을 덜 지르게 하면서 최대한 많은 깃털을 뽑는 것과 같다”는 조세정책의 경구를 남겼다. 박근혜정부의 조원동 청와대 경제수석이 연말정산 파동 와중에 콜베르의 ‘거위 깃털’ 발언을 인용했다가 몰매를 맞은 것은 박근혜정부가 불합리한 조세 체계는 그대로 놔둔 채 서민과 중산층의 호주머니를 터는 ‘꼼수 증세’에 나섰기 때문이다. 모든 후보가 복지 확대 공약을 내건 이번 대선에서는 누가 당선되든 증세는 불가피하다. 공정한 증세라야 깃털이 뽑히는 거위도 고통을 감내할 것이다.

조남규 경제부장

 

*아래는 한국경제 허원순 논설위원이 2017년 6월22일자 신문에 게재한 칼럼. 제 칼럼과 결이 좀 다릅니다.

 

외교관 특권 가운데 하나가 면세(免稅) 특혜다. 관습법에 따랐던 외교관의 이 특권이 국제적 규범으로 굳어진 계기가 1961년 81개국이 참가한 ‘외교관계에 관한 빈 조약’이다. 한국도 관련 법들을 통해 수교국 외교관뿐 아니라 국제기구 종사자도 면세 범위에 넣어두고 있다. 북한이 외교관까지 동원한 밀수 스캔들로 종종 물의를 일으키는 주요 통로도 면세 특례다. 

상당수 종교인들도 여전히 세금의 예외지대에 있다. 근로소득세를 자진납부하는 성직자가 늘어나고는 있지만, 세금을 내지 않아도 처벌받지 않는 ‘특별 대우’를 받고 있다. ‘종교의 자유’를 규정한 헌법 제20조의 두 번째 항 ‘국교는 인정되지 아니하며, 종교와 정치는 분리된다’는 것과 연결해보면 법리적으로나 논리적으로나 타당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많다.

종교인 과세는 문재인 정부로서도 ‘뜨거운 감자’다. 2015년 법은 개정됐지만 막상 2018년부터인 시행시기가 다가오자 종교계 저항이 만만찮다. 더구나 여권 내에서 ‘시행 2년 추가 연장’(김진표 국정기획자문위원장)과 ‘예정대로 내년 시행’(김동연 경제부총리) 주장이 맞부딪치면서 정부 방침을 확정짓지 못하고 있다. 

면세자는 일반 월급쟁이 중에도 상당히 많다. 온갖 감면조항 덕에 결과적으로 면세자가 됐다는 점에서 외교관이나 종교인과는 다르다. 논점은 국내 근로자의 46.8%(2015년, 국세청)가 소득세를 한 푼도 안 낸다는 사실이다. 근로소득세 면제자가 과도하게 많다는 지적은 새삼스런 것도 아니지만, 810만 명이나 된다니 어떤 식으로든 손볼 때가 됐다. 

그제 조세재정연구원 주최로 열린 ‘소득세 공제제도 개선방안 공청회’에는 그래서 관심이 더 쏠렸다. 지난해 기획재정부가 이 연구원에 면제자비율 축소방안을 의뢰한 결과를 논의하는 자리였다. 여러 갈래인 감면조항과 축소범위를 두고 갑론을박이 벌어졌다. ‘소득주도 성장’을 내건 문재인 정부에서 저소득층 세부담 증가가 기재부엔 부담스러운 모양이다. 그렇다고 ‘넓은 세원, 낮은 세율’로 경제에 활력 불어넣기를 포기할 수도 없다. 

외국 사례를 보면 정부가 너무 주저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 소득세 면제 비중이 미국 35%, 호주 25%, 영국 6%다. 한국의 면제자 비중이 너무 높음을 한눈에 알 수 있다. 국민개세(皆稅)주의 차원에서도 개선이 필요하다. 늘어나는 복지지출에 따라 설사 나중에 증세론을 펴더라도, 세제의 틀을 건전하게 갖춘 뒤에라야 최소한의 설득력을 가질 수 있다. ‘필요는 하지만 내 임기 중엔 않겠다’로 가다가는 ‘조세포퓰리즘’이란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허원순 논설위원 huhws@hankyung.com 

 미국의 작가인 마크 트웨인은 “세상에는 세 가지 거짓말이 있다. 거짓말, 새빨간의 거짓말, 그리고 통계”라고 말했다. 현대인들은 매일 수없이 많은 통계를 접하며 살아간다. 통계를 바탕으로 정치인은 공약을 만들고 정부는 정책을 추진한다. 통계가 잘못되면 우리 사회가 길을 잃는다. 마크 트웨인의 독설에도 정확한 통계를 생산하기 위해 매일 고군분투하는 사람들이 있다. 통계청 직원들이다. 지난 17일 통계청장 집무실에서 만난 유경준 통계청장은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촘촘하고 튼튼한 사회안전망”이라면서 “이를 제대로 구축하기 위해서는 국민 개개인의 소득을 비롯해 삶의 수준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정책을 제시하기에 앞서 정확한 통계를 바탕으로 문제점을 제대로 진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유경준 통계청장이 지난 17일 통계청장 집무실에서 세계일보와 인터뷰를 갖고 “사회안전망을 제대로 구축하기 위해서는 국민 개개인의 소득을 비롯해 삶의 수준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서상배 선임기자

 

― 통계청이 최근 한국 삶의질 학회와 공동으로 발표한 ‘삶의 질 종합지수’가 세간의 화제다.

“사회 발전상을 드러내는 지표로 흔히 국내총생산(GDP) 지표가 사용된다. 하지만 ‘먹고사는 생존문제’가 일단 극복되면 삶에서 양적지표보다 질적인 측면의 중요도가 올라간다. GDP라는 하나의 지표만으로는 한국의 발전상을 정확하게 반영하지 못한다. 사회발전상을 드러낼 수 있는 보완지표들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예컨대 경제개발하면 환경은 파괴될 가능성이 크므로 이를 종합적으로 보는 환경계정도 필요하다. 위성을 통해서 환경정보를 수집하고 있으니 가능한 일 아닌가. 이를 통해 GDP의 맹점을 보완해야 한다고 여겼다. 이에 더해 공유 경제, 인터넷 경제 등 경제가 발전하면서 GDP에는 반영이 안되는 경제영역이 점차 확대되고 있다. 가정주부의 가사노동이 GDP에 보완되지 않는 것 역시 큰 문제다. 이를 현실에 맞게 잘 보완해서 GDP가 국민총생산을 잘 대변할 수 있도록 해야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삶의 질 지표를 개발하는 과정에서 개발 지표만 80개였는데 진도가 안나갔다. 개별 지표를 발표해도 사람들의 반응이 없었다. 지표가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려면 대중들의 피드백이 필요하다. 사람들이 뭘 중요하다고 생각하는지를 알아야 사회적 컨센서스를 확보할 수 있고 좋은 지표를 만들 수 있다. 여튼 이번에 발표된 삶의 질 지표로 확인됐듯이 최근 10년간 우리 GDP는 29% 올랐지만 삶의 질은 12% 남짓 올랐다. 무엇이 문제인지를 파악해야 좋은 정책이 나올 수 있다. 삶의 질 지표가 공개된 후 우리 사회에서 상대적으로 뒤처진 분야가 어디인지, 국민들이 삶의 질 개선을 위해 무엇을 요구하는지, 도대체 어떤 정책을 도입해야 국민이 더 행복해질 수 있는지가 보다 분명해졌다. 삶의 질 지표를 개선하려면 학계와 시민사회의 동참이 필요하다. 이를 유도하려고 이번에 지표를 발표한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 삶의 질을 대변하는 지표가 이런 것이다, 라는 사회적 컨센서스가 일어나는 것인데 이런 것이 공표됨으로써 가능해진다. 지표가 총 80개니까 앞으로 사람들의 의견을 반영해서 뺄건 빼고 넣을 건 넣겠다.”

― 사람들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지표 중에 뭐가 빠졌나.

"비정규직이 증가하고 있는데 이 부분이 삶의 질 측정 부분에서 논란이 많아 빠졌다. 고용의 질 지표의 측정 도구로 비정규직 비율을 넣는 데 대한 의견이 분분했기 때문이다. 비정규직은 한국에만 있는 개념이고 다른 나라는 임시직(temporary worker)이라는 개념을 사용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자발적으로 파트타임을 선택하는 사람이 늘고 있는데 이들을 모두 비정규직 비율에 포함시켜 추산하는 것은 문제라는 이야기다. 그렇게 되면 사실상 우리나라 대기업 정규직 10% 빼고는 모두 삶의 질이 나쁘다고 평가할 수밖에 없게 된다. 현재 고용의 질을 가장 정확히 드러낼 수 있는 지표들을 개발하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다."

― 이번에 발표된 삶의 질 지표 가운데 일부는 국민들의 인식과는 동떨어져 있다는 지적이다. 과거 사회부장 시절에 '당신은 행복하십니까'라는 주제로 기획 시리즈를 진행한 적이 있다. 교육 관련한 국민들의 불만이 높았다. 그런데 이번에 발표된 삶이 질 지표 교육 부문에서 한국인의 삶의 질이 가장 좋아졌다는 결과가 나왔다. 특히 교육 부문은 강남 3구 같은 특정지역이 명문대를 독식하고 있지 않나.

“청년 실업 증가 등으로 주관적으로 느끼는 교육 효과는 떨어졌을 수 있겠지만 객관적인 지표상으로는 고등교육 이수율, 유치원 취학률, 취업률 등이 올라가서 좋아진 것이다. 교육 부문 종합지수는 2015년 123.9로 2006년(100)보다 23.9% 상승했다. 하지만 많은 국민들이 교육을 통한 계층상승 사다리가 사라진 것에 대해 깊은 좌절감을 공유한다는 것을 느꼈다. 통계청에서도 교육 불평등에 대한 통계가 교육의 질 평가 항목에 포함돼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강남 3구의 명문대 독식같은) 교육 불평등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부모세대부터 자식세대에 이르는 20년 이상의 시계열 자료가 축적돼 있어야 한다. 아버지가 소득 몇분위였는데 아들은 몇분위로 바뀌었는지 등의 자료가 현재는 없다.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다. 사회적 이동성 평가지표가 없는 셈이다. 10년 정도의 추이는 주관적으로 물어본 자료가 있긴하다. 이에 따르면 계층 하락세가 보인다. 실제로 계층간 이동 관련 통계는 꼭 구축해야 한다고 내가 부임하면서부터 꾸준히 이야기하고 있다. 준비 작업 중이나 당장은 어려운 측면이 있다. 삶의 질 지표가 현실과 괴리되어 있다는 비판도 있지만, 아직 시작에 불과하다. 다양한 의견을 수렴해 지표를 보완해 나가겠다.” 

― 교육청의 사교육비 통계를 보면 초중고 사교육비가 49만원밖에 안된다. 비현실적이다.

"사교육을 아예 안하거나 자녀가 없는 가구까지 포함돼 평균값이 매겨졌기 때문이다. 전 가구 평균이다. 자녀가 있는, 사교육을 하는 가구 통계도 별도로 있다. 이 통계도 같이 보도해야 한다."

― 사교육비 관련 설문 조사는 정확한가.

"고소득층이 실제 지출보다 적게 응답할 확률은 잇다. 물론 이를 보완하기 위해 학원에서 자료를 받는다면 좋겠지만 쉽지는 않을 것이다."

― 다른 부처에서 자료 협조 요청에 잘 응하고 있나.

"인식은 많이 좋아졌는데 아직도 문제는 있다. 일단 개인정보보호법 문제 때문에 자료 제공하고 피해볼까봐 조심한다. 관련 법을 개정해오라고 요구하는 경우도 있다. 아까 말한 자료를 받는 것도 7년 걸렸다. 또 부처마다 답변 형식이 모두 다르다. 주소 기입 방법도 제각각이다. 이걸 다 통일했다. 안 주려는 자료도 통계청 사망이라고 생각하고 끊임없이 설득해서 받으려 하고 있다. 빅데이터 시대에 공공행정자료는 빅데이터의 보고다. 개인정보는 활용 과정에서 조심할 필요는 있지만 연구목적으로 사용한다는 분명한 제한 속에, 그리고 사적으로 유용했을 때 엄격한 처벌 장치를 마련해놓고 관련 규제를 풀어줄 필요가 있다. 그래야 시민들의 삶의 질을 개선할 수 있는 다양한 지표들을 개발할 수 있다."

― 더 좋은 통계를 만들기위해 어느 부처 정보가 가장 필요한가.

"역점적으로 노력한 게 국세청 자료를 받은 문제였다. 소득, 기업매출, 이익 등의 정보가 국세청에 있는데 꾸준히 설득해서 많은 자료를 받고 있다. 금융관련법 때문에 처음에는 협조를 받는게 쉽지 않았다. 지금은 원활하게 잘되고 있는 편이다. 국세청에서 기업총조사라고 해서 매출액, 영업이익을 매년 수집하고 있는데 통계청에서 이 자료를 못받고 있다가 설득해서 받았다. 100억 정도 비용 절감 효과가 있었다. 사실 통계청도 별도로 기업 매출 등을 조사하러 나가는데 설문에 대한 응답 의지가 약하다. 2021년부터는 기업총조사도 인구총조사처럼 등록 센서스 방식으로 갈 것이다. 전 국민의 소득을 보다 정확하게 파악하는 데 결정적 근거가 될 수 있는 기업등록부를 통계청이 작성하기 시작했다. 통계청, 국세청이 각각 기업 자료를 작성하는데 통계청의 한계는 실체가 있는 회사와 업체의 매출만 조사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러다보니 사업자 등록을 돼있지만 실체가 없어서 통계에 잡히지 않는 영역이 넓게 발생하고 있다. 예컨대 인터넷 쇼핑 등 온라인 거래가 늘어나고 있는데 그런 것을 포함할 수 없는 게 한계였다. 그 자료가 국세청에는 있다. 그걸 받아서 기업등록부를 작성하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통계청 자료도 국세청에 제공해서 도움을 주기도 한다. 등록이 안된 영세 업체 자료는 우리가 국세청에 제공해서 탈세 영역을 줄인다."

취업률 통계를 더 자세히 설명해 달라.

"취업 시장으로 너도 나도 많이 나오니까 실업률이 오르긴 한다. 하지만 인구가 줄고 경제활동 참가가 활발해져서 취업률, 고용률도 꾸준히 올랐다. 물론 실업률이 더 많이 올라서 체감되는게 안 좋은 것이다."

― 고용·임금 부문 종합지수(103.2)도 다소 나아진 것으로 나왔다. 비정규직 비율 등을 포함한 ‘고용의 질’이 제대로 평가된 것인가. 

“비정규직 비율 증가를 고용의 질 악화로 단순 등치할 수 있을지에 대해선 사회적으로 고민이 필요하다. 그런 식으로 단순화하기 시작하면 대기업 정규직 10%를 빼고는 모두 불행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실상은 그렇지 않다. 자발적으로 시간제 일자리를 구하려는 사람 역시 존재한다. 또 산업이 발전하면서 고용의 형태 역시 다양화한다. 고용의 질을 가장 정확히 드러낼 수 있는 지표들을 개발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 취임 후 업적 중 하나가 각 부처에서 자료를 받아 통계작업 효율화를 꾀한 것이라고 본다.

"13개 기관, 24개 부처의 자료를 받아서 전수조사 형태의 인구 센서스 조사를 효율화시킨 것이 큰 역점 사업이었다.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우리가 일일이 묻고 질문해야 하던 인구 센서스 전수 조사 형태의 설문을 각종 부처에서 받은 행정 자료를 이용해 간소화, 효율화했다. 13개 기관, 24개 부처의 기초자료를 융복합했는데 행안부, 국세청, 보건복지부, 교육부 등에서 기초자료를 수집해서 2015년 등록 센서스로 전환했다. 7년 동안 각 기관들을 설득해서 정보를 수집한 결과, 이제는 기초 항목은 통계청이 설문하지 않고 이를 이용해서 추가적인 설문만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를 통해 설문 조사 비용이 절반 정도 절감돼서 1450억원 가량 줄었다. 2015년 히트 상품이라 할 수 있다. 전 국민의 20%를 조사하게 됐는데 이 정도 표본을 잡고하면 정확도는 99%라고 할 수 있다. 흥미로운 사실은 나이 많은 세대가 출생 신고를 늦게한 경우가 많았고 언니 이름으로 사는 사람, 부인 이름으로 사는 사람들이 많이 발견됐다."

 

― 소득·소비 부문 종합지수(116.5)도 삶의 질이 개선된 부문 순서에서 상위 랭킹 3위 안에 들었다. 소득 불평등이 사회 문제로 대두했는데 선뜻 납득하기 힘든 결과다. 



“소득불평등 정도를 나타내는 지니계수(0에 가까우면 평등하고 1에 가까우면 불평등)는 불충분한 지수다. 지금은 가구 설문조사를 통해 작성하고 있다. 국세청, 보건복지부 등의 개인 금융소득 자료 등을 활용해 소득통계를 보완해야 불평등 정도를 보다 정확히 파악할 수 있다.(이런 방식으로 산정한 ‘신(新)지니계수’는 오는 12월 나온다.)” 

―우리나라 분배 수준은 어느 정도인가. 

“2015년까지는 저소득층에 대한 공적 이전소득이 증가한 덕분에 소득분배가 개선됐다. 그 결과 우리 사회의 불평등 수준은 2011년부터 2015년까지 추세적으로 떨어졌다. 그러다 지난해부터 소득분배가 악화했다. 고령화로 노인 인구가 갈수록 더 증가하는데 경제 상황이 좋지 않아 빈곤 노인들이 많아졌다. 노인들에게 일괄적으로 주었던 기초연금의 기저효과가 사라진 것도 소득분배가 나빠진 한 요인이다. 노인은 계속 유입되고 청년 실업률도 악화일로다. 다른 나라와의 비교는 신중해야 한다. 분자, 분모로 뭘 사용하느냐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이다. 미국의 지니계수가 높게 나오는 것은 원래 높기도 하지만 조사가 촘촘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우리도 지니계수가 높은 수준이다. 우리가 영미식으로 사회보장제도를 꼭 짚어서 필요한 것 위주로 하다보니 소득 불평등도가 높은 국가에 속할 가능성이 높다. 그렇지만 세계 몇 등이라는 식의 비교는 위험하다. 지금은 현금 급여만 소득계정에 포함시키고 있는데 선진국일수록 사회적 현물 형태로 복지 지원을 많이 한다. 보육료나 노인들의 무료 지하철 이용 등이 모두 사회적 현물 제공이다. 현물 지원까지 통계에 포함시키면 소득분배율이 더 개선될 것이다. 지니계수를 15% 이상 개선시킬 것으로 예상한다.”

―2015년 지니계수는 0.295였다. 2016년 지니계수(오는 5월 발표)는 더 높아질 것이란 전망이다.

“지난달 발표된 2016년 4분기 가계동향에서 소득 1분위(하위 20%) 가구의 월평균 소득이 큰 폭으로 떨어졌다. 반면 소득 5분위(상위 20%) 소득은 늘었다. 이런 지표가 추세를 반영한다고 본다.”

― 0.30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하나. 

“아직 집계가 끝나지 않았지만 그럴 것으로 본다.” 
 
―지니계수가 오는 12월부터 바뀐다는데.
"아니다. 12월부터 나오는 것은 맞는데 기존에 있는 것을 중단하지는 않는다. 63년 동안 해오던 거라 과도기가 필요하다. 다만 2011년부터 나온 신 지니지수를 행정자료를 보완해서 좀 더 정교하게 하겠다는 수준으로 이해해 달라. 가계동향조사를 63년간 해왔는데 8700 가구에 매월 가계부를 보내달라고 해서 매월 소비지출소득을 조사한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이 프라이버시가 중요해지니까 답변을 안하기 시작했다. 회수율이 75% 정도인데 고소득이 몰려있는 강남구는 50% 정도에 불과했다. 그래펏 2010년부터 1년에 한번 하는 걸로 바꿔서 응답율을 80~90%로 높였다. 고소득층은 샘플을 더 많이 잡아서 통계 왜곡을 교정하기 위해 충분히 노력하고 있다. 이에 더해 행정자료를 이용해서 개인 금융소득 등 사람들이 대답하기 꺼려하는 부분까지 반영하려고 한다. 오는 10월에 금융자료를 받아서 이를 반영한 지표를 12월에 내놓는다."


 
 

 

― 대선 주자들마다 각종 사회문제들에 대한 나름의 공약을 쏟아내고 있다. 통계청장으로서 사회 문제 해결을 위해 가장 시급한 일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전 국민에 대한 정확한 소득 파악이다. 병을 치료하려면 정확한 진단이 우선이다. 우리 국민 48%가 소득세를 내지 않고 있다. 이들의 소득 파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상태다. 누가 얼마나 열악한 상태에 놓여 있는지, 취약층의 복지를 위해 개별적으로 얼마가 필요한지를 알기 어렵다. 이런 상황에서는 제대로 된 복지를 제공하기 어렵다. 개인적으로 우리 사회에 가장 시급한 문제는 사회안전망 확충이다. 이를 위해서는 전 국민의 소득을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예컨대 고용보험만 해도 전체 취업자 3분의 1 정도가 미가입 상태다. 고용보험 사각지대에 놓인 이들은 실직이라도 하면 당장 낭떠러지행이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선 누가 얼마나 빈곤하고 어떤 상태인지를 알아야 한다. 사회안전망 보완은 노동유연성 제고하고도 관련이 있다. 노동시장 유연하게한다고 하면 대기업과 공기업 측에서 바로 해고 촉진이라고 한다. 하지만 대기업, 공기업 다니는 사람들은 해고돼도 고용보험 등으로 기본적인 생활은 가능하다. 하지만 고용보험에서 빠져있는 사람은 정말 문제다. 정작 보호돼야할 사람들은 고용보험조차 없는 사람들이다. 사회안전망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사람들을 시스템 안으로 전부 포함시켜야 노동시장이 유연화돼도 충격이 덜할 수 있다. 해고돼도 실업급여와 직업훈련을 정상적으로 받으며 부활의 기회를 쉽게 얻을 수 있다. 지금 노동 유연화 반대하는 사람들은 오히려 사회안전망 잘돼있다. 사회안전망은 노인빈곤도 포함한다. 세율이 안정된 상태에서는 차등 지급하는 것이 좋다. 차등 지급의 기본이 소득 파악이다. 그게 안되어 있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통계청이 그 준비를 적극적으로 하고 있다. 일단 임금 근로자부터 데이터베이스 구축 중이고 그 다음이 자영업자다. 그건 우리가 기업총조사하니까 매출액 등을 근거로 추정이 가능하다. 고용보험 데이터베이스 등을 이용해서 일용노동자 소득도 다양한 추계 방식을 동원해서 할 수 있다고 믿는다.”  

― 일부 대선주자가 공약으로 제시한 ‘기본소득’ 지원은 효과가 있을 것이라 보나.

“시기상조라고 생각한다. 기본소득을 주려고 해도 기본적으로 누구에게 얼마나 줄지를 알려면 소득 파악부터 해야하는게 맞지 않겠나. 국민의 절반 가까이가 소득세를 안낸다. 지금 기본소득 논의가 오가는 나라들은 이미 사회안전망이 잘 갖춰져 있는 상태이다. 기본소득의 취지는 산업안전망이 잘 되어 있는 국가에서 근로의욕 감퇴를 방지하자는 차원에서 추가로 일하게 하도록 주자는 것인데 한국은 사회안전망부터가 부실핟. 게다가 복지국가로 유명한 핀란드조차 부분적으로 시행한 후에 일단 효과를 보고 전면적으로 시행한다는 입장이다. 1만명씩 기본소득 주는 집단과 안 주는 집단 비교해서 돈 받은 후 근로의욕 감퇴 여부를 가리려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아직 기본적인 사회안전망조차 갖춰지지 않은 상태이지 않은가. 누가 얼마나 가난한지부터 정확히 알고 이왕이면 그에 걸맞은 지원을 하는 것이 효과적이라 생각한다.” 
 

―그런 차원에서 통계청은 어떤 노력을 하고 있나. 

“국세청과의 협업을 통한 ‘기업 등록부’ 작성을 제1의 과업으로 추진하고 있다. 기업등록부는 전 국민의 소득을 파악하기 위한 첫걸음이다. 사업자등록이 되어 있지만 정작 실체가 없어 소득 파악이 되지 않았던 기업에 대한 정보를 국세청에서 넘겨받아 통계청이 보유하고 있는 정보와 합치고 있다. 필요한 정보가 있으면 다른 부처의 협조도 적극적으로 요청하고 있다. 빅데이터 시대에 소득 파악은 능력이 아닌 의지의 문제다. ‘부자 증세’든 복지 정책이든 임금 근로자부터 각종 자영업자까지 정확한 소득 파악이 가능해져야 실효성을 담보할 수 있다. 그래야 고소득자에게 세금을 더 부과할 수 있고 저소득자에게는 데이터에 근거한 차등화된 지원을 할 수 있다. 세수확보에서 ‘세율’을 생각하기 이전에 넓은 ‘세원’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국민 48%가 세금을 안내는 상황을 방치하는 것은 심각한 일이다.”

― 이전에 소득파악 시도 없었나.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정부 시절 자영업자 소득파악을 위한 소득파악위원회까지 있었다. 소득이 정확히 파악되면 고용보험공단, 산재보험공단이 따로 있을 필요가 없다. 한군데서 파악하고 같이 징수하면 된다. 그렇게 통합 공단만들어서 국세청 밑에 두려했는데 공단의 반발이 심했다. 구조조정 문제가 걸려있기 때문이다. 지금 국민이 원하는 것은 투명한 정부다. 고소득자에게 많이 받고 저소득자는 지원해야 한다. 그러려면 넓은 세원이 필요하다."


― 정확한 데이터가 좋은 정책을 위한 필요조건이라는 데 동의한다. 

“통계 데이터도 일종의 공공재라 시장에만 맡기면 과소 생산된다. 유료이던 통계자료들이 정책수립과 연구에 적극적으로 활용될 수 있도록 2015년 말부터 모두 무료로 전환했다. 2016년 마이크로데이터 이용건수는 3만1654건으로 전년(1만4398건)에 비해 2.2배 증가했다. 현재는 지난 1월1일 기준 통계청과 타 기관 자료 총 266종을 수집해 93종을 서비스하고 있다.” 

대담=조남규 경제부장 
정리=김라윤 기자

 
유경준 통계청장 
 
●1961년 서울 출생●부산 해동고, 서울대 경제학과, 미국 코넬대 경제학 박사●한국노동연구원 부연구위원●한국개발연구원 선임연구위원●고용노동부 장관 자문관●한국개발연구원 수석이코노미스트 겸 재정·복지부장●KDI국제정책대학원 교수●최저임금심의위원회 공익위원●한국기술교육대학교 교수●제15대 통계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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