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세청은 세금 걷는 기관이 아니다.”

취임 1년6개월을 맞은 김영문 관세청장은 거침이 없었다. “취임하기 전까지 관세청의 주된 목표는 ‘신속 통관’이었다. 극단적으로 말해 신속 통관이 목적이라면 관세청을 없애 버리면 된다. 수사기관의 존재 목적이 수사이듯이 관세청의 존재 목적은 물류 국경을 수호하고 관리하는 것이다.” 39년 만에 검사 출신 청장을 맞은 관세청은 대대적인 혁신 대상이 됐다. 검사 출신 관세청장 등장을 기다리기라도 한 듯, 김 청장이 취임하자마자 한진그룹 일가의 밀수·탈세 사건, 북한산 석탄 위장 반입 사건이 잇따라 터졌다. 한진그룹과의 유착 의혹이 불거지면서 인천공항에서 근무하던 통관 담당 국장을 포함해 세관직원 220명이 교체되기도 했다. 김 청장 체제의 관세청은 환골탈태 수준으로 바뀌었다. 지난 7일 국회 예산안 처리를 앞두고 서울 여의도에서 대기 중이던 김 청장을 한 카페에서 만났다.

 
 

 

―오랫동안 운용돼온 성과관리평가시스템을 없애 버렸다. 개선해서 활용할 수는 없었나.

“관세청 성과관리시스템(CPM: Customs Performance Management)에 대한 직원들의 불만이 많았다. CPM은 과거 노무현정부에서 정부업무평가를 도입한 이후 2012년에 관세청이 자체적으로 도입한 시스템인데, 도입 당시에 평가 지표와 방식을 정교하게 만들면서 매년 정부업무평가에서 우수기관으로 선정됐다. 그러나 모든 제도는 시간이 지나면 질곡이 생기게 마련이다. 성과관리시스템으로 모든 업무를 지표화하고, 매년 상향되는 기준에 맞춰 성과를 끌어올려야 하니 부작용이 생긴 거다. 실적을 높이기 위해 과잉 단속과 추징을 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업무 성과마다 배점이 정해져 있으니 상대적으로 성과 내기 어려운 큰 사건은 덮어두고, 성과가 보장되는 작은 사건을 여러 건 처리하는 사례도 생겼다. 객관적으로 지표는 좋은데 일은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간부나 직원들도 실제 CPM이 폐지될 것이라고는 생각 안 했을 것이다.”

―그럼 업무평가는 어떻게 하나.

“직원들에게 정부업무평가에서 꼴찌를 해도 좋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각 세관장들에게 분기별로 기관 운영보고서를 제출하도록 했다. 지역 여건에 맞는 혁신과제를 자체적으로 발굴해 추진할 수 있다. 자율성을 높인 것이다. 각 평가 항목마다 점수를 매기지 않지만 세관장의 운영보고서와 직원 관리를 포함한 다양한 기준으로 평가할 계획이다. 나중에 결과가 나올 것이고 불만이 있다면 비판을 달게 받겠다. 분명한 것은 공정성 확보를 위해 객관적 기준을 세우고 업무 평가를 한다고 했는데 사실상 객관적 기준이 없었다. 매년 100% 달성되는 평가는 평가가 아니다. 평가 지표가 없어지면 자신이 무슨 일을 해야 할지 고민하게 된다. 조사, 단속으로 실적을 내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법이 지켜지도록 하는 것이 목적이다.”

―실제 어떤 성과가 있나.

“사전계도와 예고단속 등 사전 예방 중심으로 업무 초점을 맞추고, 고의적으로 규정을 어기는 사례는 단호하게 단속하고 있다. 자발적인 성실신고세액이 전년 대비 20% 늘었고, 조세 분쟁은 감소했다. 무역 관련 경미 사건은 지난해 360여건에서 100건 가까이 감소했고, 휴대품 자진신고가 지난해 10만건에서 15만건으로 증가했다. 대신 4조4600억원 상당의 재산국외도피·불법외환거래·조직밀수 등 중대범죄를 대거 적발했다.”

 

―내년 관세청의 핵심 추진 과제는 무엇인가.

“수출입 분야에 대한 총력지원이다. 특히 중소기업을 전폭적으로 지원할 계획이다. 대기업과 달리 중소기업은 지원하면 성과를 높일 수 있다. ‘전자상거래수출 종합지원대책’이 그런 고민의 산물이다. 전 세계 전자상거래 규모가 14%정도다. 전자상거래를 활용한 수출입 거래가 앞으로 무역시장의 주류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나라는 아직 미미한 수준이다. 우리가 시장을 선점하려면 수출 절차를 간소화해야 하고 배송비용을 줄여야 한다. 반품 절차도 쉽게 이뤄져야 한다. 우선 수출 신고 항목을 현재의 절반 수준으로 대폭 간소화하려고 한다. 전자상거래를 통해 물품이 판매되면 전산을 통해 자동으로 수출신고가 이뤄지도록 할 계획이다. 개인이나 업체가 물품 보관과 배송, 수출 통관을 ‘원스톱’으로 처리할 수 있는 물류센터도 설립할 계획이다. 반품되는 물품의 재수입 면세 절차도 줄이려고 한다. 경제 활성화를 위해 관세청이 할 수 있는 정책이라고 생각한다. 관세청이 가진 수출 통계를 가공·분석해 가격 경쟁력 등을 지원할 수 있는 부분도 고민하고 있다.”

―입국장 면세점 도입에 반대 입장이었는데.

“입국장 면세점을 관세청이 반대한 이유는 면세점의 본질과 맞지 않아서였다. 면세품은 국내에서 사용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면세해주는 것인데 입국장 면세점은 이에 맞지 않다. 무엇보다 해외여행을 할 수 있는 사람은 담배를 2500원에 살 수 있지만 해외여행을 가지 못하는 사람은 4500원에 사는 소득의 역진성 문제가 있다. 그래서 신중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규제혁신 차원에서 정부가 입국장 면세점 도입 방안을 마련한 것이다. 관세청 차원에서는 입국장 면세점이 도입되더라도 부작용이 최소화되도록 할 계획이다.”

―해외여행자 휴대품 면세한도(600달러)를 높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있다.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평균 면세 한도가 576달러다. 유럽연합(EU) 주요국가도 430유로 정도 수준이다. 다만 해외여행이 보편화하고 정부가 입국장 면세점 시범사업에 착수하기로 했으니 절충안 차원에서 현재 600달러 면세 한도 이외에 별도 면세를 부과하는 술(1병·1리터·400달러), 담배(1보루), 향수(60mL)를 통합해 1000달러 수준으로 확대하는 방안이 있다. 여행자 편의를 높이면서도 조세 형평성 문제와 서비스 수지 악화를 최소화할 수 있는 방안이라고 생각한다.”

 

―한진그룹 일가 밀수 관련 조사가 8개월째 이어지고 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은 신용카드 해외 구매 내역이다. 직원들도 물건을 옮겼다고 증언하고 있지만 그것 만으로는 입증이 어렵다. 우리는 전담 수사팀을 편성해서 100명 넘게 소환조사하며 수사했다. 수사기록만 7000페이지에 달한다. 그럼에도 수사 결과가 국민들의 기대수준에 미치지 못할까 우려된다. 미흡한 부분에 대해 비판받을 것은 받겠다.”

―수사 대상인 한진그룹 일가(조양호 한진회장 부인인 이명희씨와 자녀인 현아,현민,원태씨) 모두 검찰에 송치되는가.

“일부는 송치대상에서 빠질 수 있다. 구속영장이 반려된 조현아씨에 대해서는 영장을 재신청하지 않을 계획이다.”

―관세청의 수사권 확보 문제는 검찰과 잘 협의되고 있나.

“잘될 것이라고 본다. 관세법이나 외국환거래법 위반 사범을 수사하다보면 횡령이나 사기 사건으로 연결되는 경우가 있다. 관세법 위반은 성립하지 않고, 횡령이나 사기에만 해당하는 경우가 있다. 그럼 관세청은 수사를 더 이상 진행할 수 없다. 그대로 검찰에 넘겨야 하는데 검찰은 처음부터 다시 수사해야 한다. 기왕에 사안을 잘 알고 있는 관세청이 수사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다.”

―관세청이 북한산 석탄 위장반입 사건에 늑장, 부실 대응했다는 지적이 있다.

“이번 사건 수사에 대해 확인 요청이 왔을 때 정부가 ‘노코멘트’로 대응을 했다. 정보 제공 국가에서 밝히지 말라는 요청이 있었다. 그 때문에 언론과 국회에서 확인이 왔을 때 ‘북한산 석탄이 들어왔다는 정보를 받았고, 관세청이 수사하고 있다’고 사실 그대로 밝히지 못했다. 그래서 정부가 북한을 비호하고 은닉하고 있다는 의혹이 확대 됐다.”

―이 사건 피의자가 해외의 제3자에게 석탄 대금을 송금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 돈이 북한으로 흘러들어간 것인가.

“그 부분은 제3자를 조사해야 알 수 있다. 하지만 제3자를 조사할 권한이 있는 나라가 적극적이지 않다.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추가로 드러난 북한산 석탄 위장반입 건도 다른 국가에서 정보를 제공받은 건인가.

“우리가 직접 인지해서 하는 수사다. 북한산 석탄은 맞는 것으로 보인다. 곧 수사결과를 발표할 거다. 국회에서는 러시아산 석탄을 다 조사하라고 하는데, 몇 십만건을 다 조사할 수도 없고 조사해도 서류가 위조가 돼 있으면 밝혀내기가 어렵다.”

대담=조남규 경제부장 
정리=박영준 기자

 


 
김영문 청장은 △경남 울산(1964년) △경남고·서울대 법학과 △사법고시 34회 △대구·수원지검 마약조직범죄수사부 부장검사 △법무부 법질서선진화 과장 △서울중앙지검 첨단범죄수사1부장 △대구지검 서부지청 형사1부장 △법무법인 지평 파트너변호사 
“위급한 상황에 놓인 사람들이 저축은행에서 급한 자금을 수혈받아 재기에 성공하고, 그런 사람들의 좋은 평가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면서 저축은행이 지역에서 존경받는 금융기관이 되었으면 좋겠다.” 이순우 저축은행중앙회장은 인터뷰 내내 저축은행 역할론을 폈다. 이 회장은 저축은행의 역할이 과소평가되거나 과거의 잘못된 행태 탓에 저축은행의 이미지가 왜곡돼 있는 현실을 안타까워하면서 “저축은행도 욕심을 과하게 부리거나 어려운 소비자를 심하게 몰아붙여선 안 된다”고 저축은행의 책임을 강조했다. 2015년 저축은행중앙회장으로 부임해 임기를 두 달여 남겨둔 이 회장을 10월 11일 서울 마포구 저축은행중앙회 회의실에서 만나 저축은행의 현재와 미래를 물었다.
 
 

 


-디지털시대가 열리면서 저축은행의 존재감이 줄어들고 있는 것 같다. 저축은행의 존재 이유가 뭔가.

“당장 급한 사람을 도와주는 빠른 서비스다. 예를 들면 모두가 서울대병원이 좋은 것을 알지만 바로 진료를 받지는 못한다. 오래 기다려야 한다. 그러다 죽는 것보다는 가까운 병원에서 우선 응급치료를 받는 게 낫다. 기업이나 서민이 은행에 가면 지점장, 본점 심사 거쳐야 대출을 받는다. 그거 기다리다 다 죽는다. 그 공백을 저축은행이 채워 준다.”

-사람들은 저축은행 하면 흔히 고리대출을 떠올린다. 드라마 등 각 매체에서도 저축은행은 부정적으로 묘사되곤 한다.

“부실률이 상대적으로 높은 금융 취약계층이 많이 이용하다 보니 어느 정도 불가피한 측면이 있었던 것 같다. 그렇지만 저축은행 중 괜찮은 회사는 대출금리가 은행보다 1∼2% 높은 정도다. 어떤 곳은 은행과 금리가 비슷한 데도 있다. 저축은행 차원에서는 부정적 이미지를 씻고 포용적 금융을 강화하기 위해 현재 약 21개사가 38개 중금리 상품을 출시해 판매하며 시장의 인식 개선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또 우리은행, DGB대구은행, Sh수협은행 등과 연계대출 업무협약을 맺어 대다수 저축은행에서 은행권 대출심사에서 아쉽게 거절된 고객들에게 대출을 해주고 있다. 이런 연계대출은 부실률이 은행과 비슷하다.”

-저축은행이 고객을 상대하면서 유의해야 할 부분은 뭔가.

“돈 버는 데 혈안이 돼서는 안 된다. 저축은행 간판만 보고도 눈물이 나는 고객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 얼마 전에 지방에 갔다가 ‘나는 ○○은행 마크만 보면 눈물이 나온다’는 사람을 만났다. 모두가 외면할 때 자신을 믿고 5000만원을 빌려준 덕분에 재기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 사람은 가는 곳마다 그 은행을 홍보한다. 저축은행들도 그렇게 자발적으로 입소문을 내주는 고객들을 만들어가야 한다. 요즘처럼 저축은행 이익이 괜찮을 때 과거의 부정적 이미지를 털어내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소문 중에 최고가 입소문이다.”

-2011년 저축은행 사태의 어두운 그림자가 아직도 남아 있다.

“당시 사태가 남긴 부정적 이미지를 없애기 위해서는 고객들에게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금리정보는 물론 각종 경영정보 등을 수시로 제공하고 있다. 그리고 저축은행 소비자 포털 구축도 준비하고 있다. 저축은행들은 예금보험공사 기준에 맞춰 꾸준히 건전성을 강화해 왔다. 업계에서는 자기자본비율은 8% 이상, 고정이하여신비율은 8% 이하를 안정적인 것으로 보고 있는데 올해 2분기 기준 국내 저축은행 평균 자기자본비율은 14.3%로 지방은행의 평균(15.3%)과 비교해도 크게 떨어지지 않는다. 같은 기간 고정이하여신비율도 하락해 6%를 기록했다.”

-저축은행은 주로 고령층이 이용한다는 고정관념이 있다.

“지점을 근처에서 쉽게 찾을 수 없는 데다 모바일 환경이 익숙한 20~40대에는 비대면 거래시스템이 타업권에 비해 발달하지 않은 저축은행이 그렇게 비쳐졌을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최근 업계에서 모바일뱅킹 역량을 강화하기 위한 일환으로 공동 모바일금융 애플리케이션(앱)인 SB톡톡 등을 출시하는 등의 노력으로 젊은층 유입이 급격히 늘고 있다. 전체 이용자 중 20~30대가 70%를 차지한다.”

-한편으론 비대면 채널 강화가 고령층을 소외시킬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지점을 통한 대면영업 강화와 혁신적인 디지털화를 통한 비대면 채널의 강화, 사실 어느 것 하나도 놓칠 수 없는 부분이다. 금융환경의 중심이 모바일로 넘어가면서 모바일 플랫폼 발전에도 애쓰고 있지만 동시에 우리 업계는 오프라인 지점에서 고객과 직접 만나며 고객의 상황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신뢰관계를 이어가며 ‘관계형 금융’의 묘를 이어가는 것 역시 여전히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단순 재무·신용등급 등 정량적 정보뿐만 아니라 직접 얼굴을 마주 보고 현장을 발로 뛰면서 확인했을 때 얻은 정성적인 지표 역시 고객과의 거래에서 중요한 요소다.”

-최고금리 인하 이후 저신용자가 저축은행에서도 밀려나 사채로 내몰리지는 않았나.

“7등급 이하 저신용자 대출비중이 인하 직전보다 소폭 하락한 측면이 있지만 꼭 최고금리 인하 때문이라고 단정지을 수는 없다. 국내외 경제상황, 가계부채 문제, 저축은행 영업상황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업계에서도 대출원가 절감을 통해 금리 인하로 인한 영향을 흡수하기 위해 다방면으로 노력하고 있다. 다만 고객에게 부실이 전가되는 것을 막기 위해 금리보다 높은 EL(기대손실)을 지닌 저신용 고객에게 대출을 해주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는 있다. 저신용 서민의 높은 금리는 높은 손실률에 따라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혁신이 화두다. 저축은행의 혁신을 가로막는 규제는 없는가.

“핀테크 발달로 비대면 거래가 늘어나면서 영업구역 내 의무대출 비율을 맞추기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햇살론 등 정책금융상품에 대해서는 서민금융 확대 차원에서 영업구역 내 의무대출비율의 예외를 인정한다든지, 영업구역 내 의무대출비율을 충실히 지키고 있는 저축은행에는 별도의 규제 예외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방식 등으로 저축은행의 규제부담을 덜어주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카드사, 인터넷은행까지 뛰어든 중금리 시장에서 저축은행의 비교우위는 무엇인가.

“그간 저축은행만이 축적할 수 있었던 서민대출 관련 데이터들이다. 현재 저축은행은 2012년부터 햇살론, 사잇돌대출 등 다양한 서민금융상품을 취급하면서 쌓은 현장경험과 상품운영결과에 대한 데이터들을 신용평가시스템에 접목하는 고도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내년부터는 서울보증보험에서도 사잇돌대출  관련 소득수준, 근속연수, 연체정보 등을 저축은행에 제공할 예정이다. 이러한 종합적 데이터들이 머신러닝으로 정밀 분석된다면 타업권과 비교했을 때보다 정교한 신용평가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건전성, 포용적 금융 등 다방면의 노력이 아직은 금융당국 등으로부터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저축은행의 예금보험료율이 과거 저축은행 부실사태가 불거졌던 2011년 0.4%로 책정된 이후 멈춰 있다. 은행(0.08%), 보험·증권(0.15%) 등 타 금융사들과 비교했을 때 매우 높은 수준이다. 회원 저축은행들이 경영상 어려움으로 가장 많이 지적하는 것도 내려가지 않는 예보료율이다. 그동안 저축은행들의 자본건전성과 경영환경이 크게 개선되었는데 같은 예보료율을 적용받는 것은 죽은 자의 짐을 산 자에게 떠넘기는 셈이다. 우리가 노력을 하고 있으니 이제는 칭찬을 좀 받을 때가 되지 않았나 싶다. 그러면 신이 나서 더 잘할 수 있을 텐데….”(웃음)
 
-최근 정부는 증권, 카드사에 한해 소액 해외송금 규제를 완화했는데 저축은행은 배제됐다.

“당국에서는 저축은행의 자금세탁방지 능력 부족을 명분으로 내세웠는데 그간 관련 제도 이행에 상당한 노력을 기울여 온 우리 업계로서는 정말 당혹스럽다. 그동안 저축은행은 타업권과 동일한 수준으로 자금세탁방지 의무를 충실하게 준수해 왔기 때문이다. 2015년에는 외부 컨설팅을 통해 내부통제 체제를 정비하고 관련 시스템을 고도화했을 뿐만 아니라 최근에는 국제자금세탁방지기구(FATF)에서 권고하는 위험기반(RBA) 자금세탁방지체계 구축도 진행하고 있다.”

-바야흐로 금융업의 춘추전국시대다. 저축은행의 혁신을 강화하고 경쟁력을 제고하려면 무엇이 필요한가.

“저축은행이 과거의 과오로 인해 여전히 타 금융업에 비해 많은 규제부담을 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동안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규제가) 차곡차곡 쌓이기만 하고 시대에 맞게 바뀌지 않은 규제들을 일시에 풀고, 네거티브로 전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생각이 든다. 저축은행의 경쟁력이 커지고 경영환경이 더욱 좋아져야만 결국 서민금융생활 지원이라는 저축은행 본연의 역할도 더욱 잘 수행할 수 있게 되리라 믿는다. 그러려면 예대마진 위주의 단순 수익구조를 탈피해 혁신을 일으킬 수 있도록 과거의 멍에를 벗겨줄 필요가 있다. 문제가 우려된다면 위반 페널티를 강화하면 되지 않나.”

대담=조남규 경제부장
정리=김라윤 기자 ryk@segye.com



 
이순우 회장은 …

△경북 경주(1950년생) △대구고, 성균관대 법학과 △1977년 상업은행 입행 △1999년 한빛은행 인사부장 △2002년 우리은행 기업금융단장 △2008년 우리은행 수석부행장 △2011년 우리은행장 △2013년 우리은행장 겸 우리금융지주 회장 △2014년 12월 우리카드 고문 △2015년 제17대 저축은행중앙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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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가 금속활자를 발명했던 시대에 서적은 최첨단 정보였다. 정보 유통이 활발해야 지식이 전파되고 기술이 발전한다. 생산력을 높이는 원천인 셈이다. 금속활자는 이런 서적을 목판활자보다 값싸게 대량생산해낼 수 있는 획기적 신기술이었다. 이 금속활자로 1377년에 찍어낸 ‘직지심체요절’은 독일의 구텐베르크가 금속활자로 인쇄한 ‘구텐베르크 성서’보다 70여년 앞선다. 고려는 당대 최고 수준의 금속활자 기술을 보유하고 있었던 셈이다. 이를 조선이 계승해서 개량에 나섰으나 금속활자는 상용화되지 못한 채 사실상 사장되고 말았다. 구텐베르크는 고려보다 늦게 금속활자를 만들고도 인쇄술의 신기원을 이룬 인물로 남게 됐다. 개량된 인쇄술은 흩어져 있던 지식의 융합을 촉발했다. 서양을 근대화시킨 과학 혁명, 산업혁명은 인쇄술 혁명의 자식이나 다름없다. 서양을 베낀 일제가 제국주의로 치닫고 있을 때까지 조선은 목판활자 시대에 머물러 있었다. 그 끝은 망국이었다. 세계 최초로 금속활자를 만들어낸 우리 조상들이 인쇄술 혁명까지 이뤄내지 못한 점은 곱씹을수록 안타까운 대목이다.

무엇이 승부를 갈랐을까. 한동안 떠나지 않았던 이 의문에 모 교수는 신분사회를 유지하려는 조선 지배층의 우민화 정책을 답으로 제시했다. 서적 간행이 쉬워지면 기존 체제에 위협이 된다고 생각했던 지배층이 금속활자를 민간에 공개하지 않고 관용(官用)으로만 사용했다는 주장이다. 그는 한글도 지배층의 외면을 받다가 구한말이 돼서야 국문(國文)으로 인정받지 않았느냐고 반문했다. 그럴듯했지만 선뜻 납득이 되지 않았다. 혁신적인 기술이 수백년 동안 비밀로 남아 있을 수는 없었을 것이라고 보는 게 상식적이다. 그런 해석보다는 최근 발간된 ‘투자자가 된 인문학도’의 저자 조현철의 설명이 보다 설득력이 있다. 저자는 고려인이 만든 금속활자가 ‘시제품’에 불과했다고 봤다. 이 시제품이 광범위하게 사용되려면 대량 인쇄가 가능한 수준까지 금속활자가 개량돼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는 것이다. 기술 수준은 생산력의 차이를 낳는다. 저자에 따르면 조선 세종 시대인 1434년에 만들어진 구리활자 갑인자(甲寅字)는 조선 최고의 활자로 평가받고 있지만 하루에 찍을 수 있는 양이 40장 정도에 그쳤던 반면 합금 활자로 내구성을 높인 구텐베르크의 인쇄기는 1500년대 초기에 300장, 1600년대에는 1500장 정도에 달했다. 

이로써 인쇄술 혁명의 무대는 동양에서 서양으로 이동해갔다. 금속활자의 내구성이 확보되자 이들 활자를 압착해서 연속으로 인쇄할 수 있는 프레스 기술이 파생됐다. 저자는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는 스티브 잡스의 아이폰이라고 할 만했다”고 평가했다. 수많은 개발자들이 스티브 잡스가 2007년 공개한 아이폰을 구상했지만 끝까지 혁신을 밀어붙여서 민간에 상용화시킨 승자는 잡스였다는 것이다.

4차 산업혁명이 화두다. 인류는 1차, 2차, 3차 산업혁명을 거칠 때마다 비약적인 생산력의 향상을 목도했다. 인공지능(AI) 등이 만들어낼 4차 산업혁명은 이제 초입 단계다. 인쇄술의 혁신이 동서양의 생산력 격차를 만들어냈듯이 21세기에는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주도권을 잡는 국가가 그 시대의 헤게모니를 장악하게 된다.

금융 분야도 예외가 아니다. 앞서가면 도약의 기회를 잡을 수 있지만 뒤처지면 존폐의 기로에 서게 된다. 세계일보와 세계파이낸스가 지난 18일 개최한 ‘제1회 세계미래포럼’의 주제는 ‘4차 산업혁명과 금융의 디지털혁신’이었다. 기조 연설에 나선 셍홍위 앤트파이낸셜 리스크 담당 임원은 “우리는 이제 막 새로운 금융제도로 가는 여정의 출발점에 서 있다. 1만미터 중 100미터밖에 못 왔다”면서 분발을 촉구했다. 화약을 발명하고도 서양의 대포에 유린당했던 중국은 4차 산업혁명의 주도권을 잡기 위해 규제를 혁파하면서 혁신을 독려하고 있다. 우리는 어떤가. 대통령이 약속한 인터넷전문은행 특례법마저 일부 여당 의원들에 의해 발목이 잡히는 사태가 연출되고 있다. 이러다 우리 기업과 혁신가들이 제2, 제3의 구텐베르크에게 속절없이 추월당하는 사태가 재연될 수 있다.

조남규 경제부장

김규동(1925~2011)


<거지 시인 온다>


철없는 모더니스트 시절

명동에서

내 친구들이

새까만 얼굴의 

천상병이 나타나면

야, 저기 거지 시인 하나 온다라고

우스갯소리 했지요

상대 나왔다는 친구가

뭐 저러냐

너 또 200원 줘라

그러잖아도 너 알아보고

이쪽으로 오고 있다고 빈정댔지요


그런데 이상합니다

그때 천상병이를 거지 시인이라 놀려주던 친구들은 다 시인이 못되고

천상병이는 시인으로 남게 되었군요

영원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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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상대 출신 시인. 여늬 상대 출신들처럼 회사원 생활도 했다. 그러면서도 시인이었다. 기인이라는 말도 들었다.

1960년대 이른바 '동백림 사건'에 연루돼 고문을 받았다. 그 후유증으로 기인이던 사람이 폐인이 됐다. 

서울 인사동에서 '귀천'이란 찻집을 운영한 아내에게 매일 용돈을 받아썼다. 막걸리 한 병과 담배 한 갑 살 수 있는 정도.

조금씩 남겨서 아내에게 생일 선물도 사줬다고 한다.

김규동의 '거지 시인 온다'는 이 시절의 천상병을 노래한 시다.

충북대 정효구 교수는 '시 읽는 기쁨'이란 저서에서 천상병을 '위대한 폐인'이라고 부른다.

왜 위대하다고 했을까. 천상병의 시 '귀천'를 소개하면서 그 이유를 이렇게 얘기한다.

"이 엄청난 탐욕의 시대에 가난을 두려워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우리가 가난을 두려워하는 것도 궁극적으로는 가난이 죽음을 가져올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 죽음 앞에서 누가 쉽게 초연해질 수 있겠습니까? 천상병 시인의 시 '귀천'이 수많은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받는 까닭은 이 엄청난 공포의 대상을 전혀 공포스럽지 않은 존재로 바꾸어 놓았기 때문입니다. 죽음과의 화해를, 이 시인이 먼저 아주 적극적으로, 그리고 아주 자연스럽게 이룩해내었기 때문입니다."


천상병(1930~1993)


<귀천>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 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면은,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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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은 이기심과 탐욕이 뒤범벅된 채로 굴러간다. 좋은 의도로 시작된 정책이 때론 정반대의 결과를 낳는 이유다. 정책 집행자들이 디테일에 집중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중소벤처기업부(중기부)가 2011년부터 추진 중인 ‘창업선도대학’ 정책이 그런 사례다. 창업선도대학을 통해 유망 (예비)창업자를 발굴해 창업준비부터 창업 후 성장단계까지 창업 전 단계를 패키지 방식으로 지원하는 정책이다. 기술이 전 재산인 창업자들에게 오랫동안 희망 사다리 역할을 해왔다.

한국 경제는 3%대 성장에도 만족해야 하는 저성장시대를 맞았다. 청년 실업은 외환위기 이후 최악의 수준이다.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가진 창업가들은 저성장의 늪에 빠진 한국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다. 창업하는 젊은이들이 늘어나면 실업문제 해결에도 도움이 된다. 꾸준히 씨앗을 심어가다 보면 다양한 수종들이 한국 경제 생태계를 다채롭고 역동적으로 만들 것이다. 거목으로 성장한 창업 기업들은 수천, 수만의 일자리를 만들어낸다. 단기 성과에 일희일비하지 말고 진득하게 밀고 나가야 할 정책이다.

그런데 잘 굴러가던 이 정책은 정치색깔이 덧칠되면서 본래 궤도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 올해부터 신청조건에 정규직 채용 항목이 추가되면서부터다. 정부는 정규직 직원을 채용하면 지원 대상자 선정과정에서 인센티브를 주기로 했다. 채용 직원에게는 최저임금과 4대 보험을 제공해야 하고 지원협약 기간이 끝난 이후에도 고용을 유지해야 한다. 강제조항은 아니다. 그런데도 이런 조건이 붙자 그 조건에 맞춘 신청자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갑자기 창업자들의 자금 사정이 좋아졌을 리는 만무하다. 창업선도대학으로 계속 지정되길 원하는 대학들이 중기부의 입맛에 맞춰 지원대상을 선정했기 때문이다. 그러자 지원금이 절실한 ‘나홀로 창업자’들은 무리를 해서라도 고용조건을 맞추기 시작했다. 어떤 사람들은 가짜 직원을 만들어내는 편법을 동원하기도 했다.

이런 창업이 오래갈 리 없다. 그런 지원금은 모래 위에 뿌려진 물처럼 흔적도 없이 사라지게 된다. 그렇게 사라진 지원금은 이중의 손실이다. 그 과정에서 자격 있는 지원자의 창업 성공 가능성까지 날려보냈기 때문이다. 본지에 소개된 사물인터넷(IoT) 기술개발자도 그런 희생자들 중 한 사람이다. 이 개발자는 관련 특허도 여러 건 출원하는 등 나름 업계에서 인정을 받는 기술력을 갖췄지만 정부가 내건 고용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하는 바람에 창업지원을 받지 못했다. 벤처신화를 꿈꿨던 그는 지금 취업 준비를 하고 있다. <세계일보 2018년 8월22일자 1면 참조>

고용의무 인센티브가 도입된 이유는 물어보나 마나다. 청와대의 일자리 상황판이 아니고는 7년 동안 유지한 정책의 돌연한 변경은 선뜻 납득하기 힘들다. 마침 본지 보도를 계기로 중기부가 창업 지원신청과 관련한 고용의무 인센티브를 내년부터는 없애기로 결정했다니 다행스러운 일이다.

국민소득 3만달러 시대에 일자리 숫자만 늘리자는 식의 정책은 곤란하다. 통계청의 고용통계가 나올 때마다 취업자 수가 몇 명 늘었는지에만 관심을 보이는 작금의 풍토는 바람직하지 않다. 그런 풍토가 고용의무 인센티브 같은 시행착오를 부른다. 일자리 전쟁이라지만 중소기업들은 여전히 구인난에 허덕이고 있다. 지금 한국에는 일자리 수가 부족한 것이 아니라 질 좋은 일자리가 충분하지 않다는 방증이다.

정부는 가급적 양질의 일자리를 늘린 기업에 인센티브를 주는 게 바람직하다. 세금을 투입해서 기껏 만들어 놓은 일자리가 오래 지속되지 않는다면 필시 질이 낮은 일자리일 가능성이 높다. 그런 일자리 예산은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격이다. 단지 일자리 숫자를 늘렸다는 생색을 내려고 구조조정이 필요한 일자리를 지키기 위해 세금을 쏟아붓고 있지는 않은지 냉철히 점검해볼 필요가 있다. 내년도 일자리 예산이 역대 최대 규모로 편성됐다.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는 속담을 잊지 말자.

조남규 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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