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장 유권자 혁명의 전조(前兆)


양극화된 미국 정치

 미국의 시사주간 내셔널 저널 National Journal은 매년 미 연방 상 하원 의원들의 투표 성향을 분석해 일반에 공개한다. 미 상원의원 100명, 하원의원 435명이 1년 동안 투표한 기록을 토대로 누가 어느 정도 보수(진보)적인지를 상대적으로 계량화한 통계치다. 이를 기준 으로 의원들을 왼쪽부터 오른쪽까지 배치하면 가장 진보적인 공화 당 의원과 가장 보수적인 민주당 의원 사이에는 다수의 중도파 의원 들이 포진한다.

 과거에는 민주당 의원보다 더 진보적인 공화당 의원들도 많았다. 2008년 대선 당시 공화당 후보로 나섰던 존 매케인John McCain  상원의원이 그런 정치인이다. 그는 민주당 의원들과 손잡고 선거자금,이민 개혁을 추진하다가 공화당 강경파에게 찍혀서 당내 경선 때마 다 어려움을 겪었다. 2004년 대선의 민주당 후보였던 존 케리 상원 의원은 매케인에게 부통령 자리를 제안하면서 민주당으로 당적을 바꾸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공화당 의원보다 더 보수적인 민주당 의 원들도 많았다. ‘블루독 민주당원’* Blue Dog Democrats이 대표적이다. 매케인 같은 중도파 공화당원들이나 민주당 블루독 의원들은 공화 당과 민주당 사이에서 완충 지대가 됐다.

 블루독은 그동안 보수 성향 주에서 당선됐으나 2010년 선거에서 는 티 파티Tea Party ** 바람에 휩쓸려 대부분 생환하지 못했다.

 최근엔 ‘공화당 정부=감세, 복지 축소’, ‘민주당 정부=증세, 복 지 확대’가 공식으로 굳어졌지만 이전 정부는 융통성이 있었다. 민 주당 존 F. 케네디 대통령은 세금을 감면했고 공화당의 리처드 닉 슨Richard Nixon  대통령은 세금을 올리고 전국민의료보험 도입을 추 진했다. 당의 노선에 반기를 들고 소신 투표에 나섰던 의원들도 많 았다. 이제 그런 의원들은 찾아보기 힘들다.

 워싱턴포스트 집계에 따르면 1982년 의회만 해도 가장 보수적인 민주당 의원과 가장 진보적인 공화당 의원 사이에는 344명의 중도 파 의원들이 포진해 있었다. 그런데 2013년 의회에선 이들 중도파 의원의 숫자는 4명으로 쪼그라들었다. 공화당 의원들은 더 오른쪽으로 몰려가고, 민주당 의원들은 더 왼쪽으로 이동했기 때문이다. 공화당 내에서는 더 이상 매케인 같은 중도 개혁주의자들을 찾아보기 힘들게 됐다. 민주당에서도 블루독 의원들이 잇따라 당내 경선에 서 낙마, 멸종위기에 몰리고 있다. 중도파 의원들은 공화당과 민주 당이 충돌할 때 그 충격을 완화해주는 범퍼 역할을 해왔다.

 미국 의회에서 중도파 의원들이 사라져가고 있는 이유로는 ‘게리 맨더링’Gerrymandering을 첫 손에 꼽을 수 있다. 게리맨더링은 특정 정당이나 특정 후보자에게 유리하도록 선거구를 획정하는 행위다. 가령 보수적인 백인 거주 지역만을 이리 저리 묶어서 선거구를 만들 면 그 선거구에서는 공화당 후보가 당선되기 쉬워진다. 이 선거구에 서는 공화당 후보 경선이 사실상 본선이나 다름없게 된다. 미국에선 양당 모두 공직 후보를 당원이나 주민들이 상향식으로 선출한다. 바 쁜 시간을 쪼개서 경선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소속 정당의 핵 심 지지층이다. 공화당 후보 경선에서 선명성 경쟁이 이뤄지는 이유 다. 그렇게 당선된 의원이 의정 활동을 하면서 더 보수적으로 행동 하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게리맨더링은 당내 경선을 실제 선거보 다 중요하게 만들고 유권자의 의사를 왜곡시킨다. 한국 선거에서 지 역주의가 문제되고 있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그런데도 게리맨더 링은 사라지지 않는다. 당이 달라도 이 문제에서만큼은 현역의원들 의 이해가 일치하기 때문이다. 한국 정치권이 지역주의를 해소할 수 있는 선거제도를 도입하지 않는 것도 지역주의로 이득을 얻는 정치 인이 더 많기 때문이다.

 주(州) 전체가 선거구여서 게리맨더링이 개입할 수 없는 미국 상 원에서도 중도파 의원들은 희귀종이 됐다. 미국 사회의 이념적 분열이 이전보다 더 심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갈수록 보수적인 주에서는 보수 성향이 더 강한 후보를, 진보적인 주에서는 진보 성향이 짙은후보를 선출하다보니 결과적으로 중도 성향 정치인은 도태될 수밖 에 없다. 과거보다 하원의장의 영향력이 막강해진 점도 양극화의 원 인으로 거론된다. 정당 보스의 힘이 강하면 아무래도 의원들은 당론 을 무시하기 어려워진다. 상임위 배정이나 선거자금 지원 등에서 차 별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선출된 의원은 자신의 정치 생명을 위협할 수 있는 타협 노선 대신 소속 정당 노선을 추종할 가능성이 높다. 더 진보적인 민 주당 의원과 더 보수적인 공화당 의원이 많아지면 의회에선 어떤 일 이 일어날까.

 민주당 의원은 보수적인 정책을 반대한다. 반대로 공화당 의원은 진보적인 정책을 반대한다. 중간은 없다. 양당의 공통분모는 제로에 수렴된다. 쟁점 법안은 여간해선 절충되지 않는다. 타협하면 배신자 로 찍힌다. 협상론자인 공화당의 존 베이너John Boehner는 하원의장 시절 오바마 대통령과 물밑 협상을 벌이다가 당내 우파 세력에 의해 사실상 축출됐다. 대통령, 부통령에 이어 미국 권력서열 3위인 하원 의장도 그런 수모를 당하는 판인데 어느 의원이 총대를 메고 백악관 이나 민주당 지도부와 협상할 수 있을까. 민주당 지도부도 당내 강 경파에 휘둘리기는 마찬가지다.

 민주당과 공화당은 마치 ‘화성 남자’와 ‘금성 여자’처럼 다른 세계 관 속에 갇혀 사사건건 싸운다. 정쟁으로 날을 지새우는 한국 정치 를 생각하면 쉽게 이해가 될 것이다. 정치학자들은 이런 현상을 정치 ‘양극화’Polarization라고 부른다.

 오바마 정부 시절 민생과 직결된 법안도, 대외 신인도를 좌우하는예산안도 제때 처리되는 법이 없었다. ‘식물 의회’다. 그래도 의원 수 당과 활동비(세비)는 꼬박꼬박 나온다. 식물 의회가 야기한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의 몫이다. 먹고살만하면 그러려니 하겠지만 미국 중 산층과 서민의 삶은 갈수록 팍팍해지고 있다. 정치인을 바라보는 국 민의 눈초리가 사나워질 수밖에 없다.
 
 2016년 대선판을 뒤흔든 ‘트럼프 현상’과 ‘샌더스 돌풍’을 만들어 낸 것은 국민의 정치 불신이고 그 원천은 수십 년 동안 서서히 진행돼 온 정치의 ‘양극화’였다.

 

*아래 글은 고려대 조성택 교수(철학, 전 뉴욕주립대 교수)가 중앙일보에 게재한 글. 중앙일보 2020년 6월8일자.

[조성택의 퍼스펙티브] 역사에 반복은 없다…그러나 반복되는 어리석음은 있다

“역사는 생물학의 한 조각이다. 인간의 생명은 육지와 바다에서 유기체들이 겪는 온갖 우여곡절의 일부다.” 
  
1968년 윌 듀란트가 부인 아리엘과 함께 저술한 명저 『역사의 교훈』의 한 구절이다. 바이러스가 인간의 역사를 다시 쓰고 있다. 세계사를 주도해온 서구 강대국들이 코로나바이러스에 무너지고 있다. 미국과 영국은 희생자 수에 있어 세계 1·2위를 기록하고 있다. 사망률은 각각 6.0%와 14.3%로, 한국의 2.4%를 훨씬 상회하고 있다.
 
미·영 언론은 정치적 양극화와 망가진 정치문화(damaged political culture)를 방역 실패의 주요 원인으로 꼽는다. 칼럼니스트 조지 팩커는 시사 월간지 애틀랜틱 6월호에 “우리는 실패한 국가에 살고 있다: 미국은 코로나바이러스로 무너진 것이 아니다”라는 제목의 칼럼을 실었다. 그는 미국 사회가 오랫동안 방치된 기저 질환 상태에서 바이러스의 침입을 맞아 무너졌다고 진단한다. 부패한 정치, 융통성 없는 관료주의, 활기를 잃은 경제, 반목하는 시민들에 분열을 부추기는 트럼프류의 정치가 더해지면서 이미 무너지고 고장 난 시스템이 팬데믹을 맞아 드러났을 뿐이라고 지적한다. 가디언의 네스린 말릭도 5월 10일 자 칼럼에서 “영국과 미국이 세계 최대의 코로나바이러스 희생국이 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면서 양국 지도자의 선동적 정치행태로 인한 망가진 정치문화를 비판하고 있다.
  
“한국인은 잘 생기고 명민하고 똑똑”
 
바이러스가 침입하기 전에 이미 망가진 정치로 스스로 무너지고 있었다는 지적은 우리에겐 시사적이다. 100여 년 전 ‘실패한 나라’를 살아야 했던 만해 한용운(1879~1944) 또한 일본의 침략으로 조선이 망한 것이 아니라 조선의 자멸(自滅)이라고 했다. 그때의 침입자는 바이러스가 아닌 일본이었을 뿐이다.
 
영국 지리학자 이사벨라 비숍(1831~1904)은 1894년부터 1897년까지 한국을 네 차례 방문했다. 그 기간은 동학농민전쟁, 청일전쟁, 갑오개혁, 을미사변, 아관파천 등 조선의 운명이 결정되는 주요 사건들이 일어났던 시기다. 비숍은 일본·러시아 등 열강이 한반도 지배권을 놓고 다투는 와중에 정치 엘리트의 분열과 만성화된 정치적 불안을 목격하면서 한국의 운명을 절망적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한국 ‘사람’에 대해서는 미래의 희망을 본다. 비숍은 중국인·일본인과 비교하면서 “잘 생기고” “대단히 명민하고 똑똑한 민족”이라고 평가하면서 “미래에 있을 이 나라의 더욱 큰 가능성에 대해 눈을 뜨게 되었다”고 술회했다. 1897년 1월 한국을 떠나면서 비숍은 “러시아와 일본이 한국의 운명을 놓고 서로 대결하는 상태에서 한국을 떠나게 된 것은 매우 유감스럽다”는 표현으로 한국 정세에 드리워진 어두운 그림자를 예감하고 있었다. 

비숍의 관찰은 마치 예언처럼 실현됐다. 그의 예감대로 식민지라는 실패 국가를 겪었지만, 한국인은 그 경험을 딛고 다시 일어섰다. 지금 한국은 세계 10위의 경제 강국일 뿐 아니라 문화·예술·스포츠 분야에서 한국의 젊은이들은 아시아를 넘어 월드클래스다. 이번 코로나19 방역 성공으로 세계는 찬사와 함께 한국을 다시 주목하고 있다.
 
그러나 냉정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망가진 정치 때문에 실패한 미국과 영국을 생각하면 한국의 방역 성공은 역설적이다. 망가진 정치에도 불구하고 성공한 경우다. 바이러스와의 싸움은 단기전이 아니라 장기전이다. 우리는 바이러스와의 1차 전투에서 이겼을 뿐 전쟁에서 이긴 건 아니다. 팬데믹 이후 불확실한 세계를 생각하면 지금의 성공은 물거품 같은 것이 될 수도 있다.
  
정치인들, 메아리 방 만들어 여론 청취라 우겨
 
한국의 정치문화도 미국과 영국 못지않게 망가져 있다. 막말과 선동, 편 가름의 진영 정치 가운데 사회적 현안에 대한 진지한 토론은 실종됐다. 지난 20대 국회는 파행과 교착의 식물국회, 때로는 동물국회로 4년을 마쳤다.
 
진영과 패거리 정치는 시민사회에서도 재현됐다. 조롱과 경멸의 폭력적 언어가 인터넷 공간의 상용어가 된 지 오래다. 인터넷 공간은 집단지성을 위한 공론장이 아니라 자아도취의 ‘메아리 방’, 에코 체임버(echo chamber)로 변질했다. 정치인들은 자신들만의 방을 만들어 여론 청취라 우기거나 서초동·광화문 혹은 여기저기 입맛에 맞는 ‘메아리 방’을 찾아다니면서 그것을 국민의 소리라고 주장한다. 

정치는 메아리 방처럼 폐쇄된 격실에서 자아 도취하는 일이 아니라 다른 소리를 모아 아름다운 합창을 만들어 내는 지휘자의 일이다. 서로 다른 것들의 어울림이라는 점에서 합창의 화음과 정치의 화쟁은 다르지 않다.
 
윤회가 단지 반복되는 삶이 아니듯 역사에 반복은 없다. 그러나 반복되는 어리석음은 있다. 정치문화가 개선되지 않는다면 21세기 번영하는 성공 국가로 갈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흘려보내고 다시금 실패한 나라로 돌아갈 수도 있다. 21대 국회의 각성과 시민들의 책임이 막중하다.

7세기 동아시아 불교계는 백가쟁명 시대였다. 원효는 특정 학파의 입장을 지지하거나 배척하지 않았다. ‘다름’의 차이를 인정하는 화쟁론을 제시했다. 서로 다른 주장을 대립과 갈등이 아니라, 상호보완적 관계로 바라봄으로써 부처님의 가르침을 더욱 풍부하게 이해하는 길을 열어 놓았다.
 
화쟁론에 등장하는 ‘장님과 코끼리’의 예화는 자신의 ‘앎과 경험’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인간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장님은 자신이 만진 것만을 코끼리라고 생각한다. 코끼리 다리를 만진 장님은 ‘코끼리는 기둥과 같다’고 주장하고 배를 만진 또 다른 장님은 ‘코끼리는 벽과 같다’고 주장한다.
 
에코 체임버 효과는 ‘장님 코끼리 만지기’의 21세기 버전이다. ‘닫힌 방’ 안에서 유사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 끼리끼리 이야기를 주고받으면서 자신들이 믿는 바를 더욱 강화하고 증폭시키는 현상을 말한다. 자신들만의 방안에서 사실과 의견을 구별하는 일은 중요하지 않고 자신들의 메아리를 사실이라고 믿는다. 지금 한국사회에서 에코 체임버는 가짜뉴스를 만들고 확산하는 산실이며 확증편향과 정치 양극화의 주범이다.
 
화쟁의 현대적 의미는 대화와 소통이다. 진영 논리에 갇힌, 정치 평론가들의 입만으로는 결코 온전한 코끼리를 알 수 없다. 화쟁의 첫 출발은 ‘나의 코끼리만 코끼리’라는 주장을 잠시 내려놓고 상대방의 주장에 귀를 기울이는 일이다. 입을 닫고 귀를 여는 것이 대화의 시작이다. 대화란 ‘나의 옳음’을 잠시 유보하고 ‘타인의 옳음’에 대해 숙고하는 과정이며, 질문을 통해 차이의 본질을 이해하고 더 큰 ‘옳음’을 모색하는 과정이다.
 
화쟁은 단호함으로 포장된 독선적 정의(正義), ‘신념화된 정의’를 경계한다. 대화를 위한 공간이 없기 때문이다. 화쟁은 선과 악, 정의와 불의의 이분법적 세계가 아니라 다원적·개방적 세계를 지향한다. 차이와 다양성을 긍정하고 대화와 질문을 통해 ‘더 큰 옳음’, 사회적 공동선을 모색하는 것이 화쟁의 정치다. 

추천사

 미국이 금융위기 여파로 휘청거리고 있을 때인 2009년 3월 저는 주미 한국대사로 워싱턴에 부임했고 수십 년간 서로 교류하고 지내던 저자는 한 달 앞서 워싱턴특파원으로 부임했습니다. 버락 오바마 행 정부가 출범한 직후였습니다. 당시 한·미 양국의 최대 현안은 자유 무역협정(FTA) 비준 문제였습니다. 개인적으로 한·미 FTA 비준을 위해 미국 의회를 설득하고 미국인의 여론을 우호적으로 만들기 위해 동분서주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미 의회가 예전처럼 원활히 작동되지 않고 있는 현실을 목도했습니다.

 미 의회에서의 한·미 FTA 이행법안은 조지 W. 부시 공화당 정부 에서 민주당이 상·하원 다수당을 차지한 의회의 감독하에 체결된 협 약을 집행하는 법안이기 때문에 원론적으로 민주당과 야당인 공화당 사이에 이견이 없어야 하는 법안이었습니다. 그러나 금융위기가 초래 한 대량 실업사태, 경제의 침체, 자동차 업계의 파산 위기 등으로 추 진동력을 거의 상실한 상태였습니다. 거기에다 오바마 행정부는 최우선 과제로 삼은 경제회복방안, 의료보험 및 금융개혁 등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의회와 마찰을 빚었기 때문에 한·미 FTA 이행법안은 우선 순위에서 뒤로 밀려있는 상황이었습니다. 한·미 양국의 경제성장과 일자리 창출의 동력이 될 수 있는 FTA 처리가 지연되는 것을 보면서 당시 미국 정치가 고장이 났다는 느낌이 들었는데 저자도 저와 비슷 한 문제의식을 갖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저자가 백악관과 의회의 대립을 오바마 정부의 주요 국정과제별로 분류해 정리한 ‘오바마의 정쟁(政爭)’ 편은 저서의 백미로 평가할 만합 니다. 저서를 읽어내려가다보면 미국의 보수와 진보가 어떤 철학과 이념 속에서 갈등하고 있는지, 특정 쟁점이 어디에서 발원했는지, 과 거 정부에서는 그 문제가 어떻게 다뤄졌는지 등이 쉽게 이해가 됩니 다. 물론 지금 세계는 과거와 같은 보수와 진보로 확연히 구분되지는 않습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으나 모두가 이념적 진보와 보수 그 자 체를 위한 철학과 정책을 택하지 않고 무엇이 국가와 국민에 도움이 되는 정책인지를 선택해서 집행하고 있습니다. 모두가 나름대로 제3 의 길을 선택해 걸어가고 있다 하겠습니다.

 전 세계인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트럼프와 샌더스 현상은 미국인의 분노와 절망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국민이 살아가면서 겪는 문제와 고민을 정치가 제대로 반영하지 못할 때 국민은 분노하고 절망감을 느낍니다.

 저자는 미국 정치의 실패가 ‘트럼프 현상’과 ‘샌더스 돌풍’을 만들어 냈다고 진단하면서 미국 정치가 왜, 어느 지점에서 실패했는지를 분 석합니다. 저자의 통찰은 이념과 세대, 계층과 지역갈등 문제가 해소 되지 않고 있는 한국 사회에도 큰 시사점을 던져주고 있습니다. 내년 에는 한국에서도 대선이 치러집니다. 저자와 함께 미국 대선이 미리 보여준 ‘유권자 혁명’의 전개 과정을 되밟아 보는 것도 의미있는 일이 라고 생각합니다.

 책을 읽어내려가다보면 공직 경험이 전무한 도널드 트럼프를 미국 인들이 대통령으로 만들어준 이유가 무엇이었는지, 경륜의 힐러리 클 린턴이 어떤 이유로 미 역사상 첫 여성 대통령이 될 수 있는 천재일우 의 기회를 놓쳤는지 이해가 갑니다.

 ‘워싱턴 아웃사이더’ 대통령을 맞은 미국은 리더십과 국내정책 등에서 환골탈태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대외전략에서도 새로운 세계질서를 만들어갈 것입니다. 당장 한국으로서는 트럼프 행정부의 동북아 정책, 특히 북핵 해법에 촉각을 곤두세워야 합니다. 저자는 트럼프의 공약과 발언, 행적을 추적하면서 트럼프 정부의 한반도 정책 등을 미 리 전망해 보입니다.

 저자의 노고를 치하드리며 독자 여러분의 일독을 권합니다.


전 총리, 주미 대사

한덕수



'포퓰리스트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 - 목차



이변의 미국 대선


제1 장 | 유권자 혁명의 전조(前兆)

양극화된 미국 정치

돈 정치 거부한 유권자 

천문학적인 선거 자금 

월가의 탐욕

벼랑 끝으로 내몰린 미국인


제2 장 | 오바마의 정쟁(政爭)

티 파티

오바마 1호 법안

오바마케어

부시 감세 연장

국가부채 상한 인상


제3 장 | ‘트럼프 현상’과 ‘샌더스 돌풍’

공화당 접수한 트럼프 

공화당 반란 소사(小史) 

트럼프 띄운 백인 노동자 

티 파티가 민 테드 크루즈 

월가를 점령하라

진보 아이콘 샌더스

 

아웃사이더 대통령


제1 장 | 힐러리는 왜 무너졌나

힐러리 위협한 섹시즘 

선거판 흔든 인종 변수 

기록적으로 결집한 백인표

민권 프리즘으로 바라본 트럼프와 힐러리

주류 언론 무력화시킨 트럼프 

권력욕으로 비친 힐러리의 대권 꿈 

힐러리 발목잡은 힐러리랜드 

힐러리 타격한 IS 테러


제2 장 | 트럼프와 공화당

보수주의자, 진보주의자 

따로 노는 트럼프와 공화당 

트럼프의 대북 ‘레드라인’


제3 장 | 아웃사이더 대통령

아웃사이더들의 정치 전복

‘거래’하는 대통령

트럼프의 미국


에필로그

참고문헌


아래 글은 필자가 2016년 11월 미국 대선 직후 '포퓰리스트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라는 제목으로 출간한 책의 내용이다.


이변의 대선이 낳은 아웃 사이더 대통령


정치가에게는 다른 무엇보다 다음 세 가지 자질이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대의를 위한 열정, 책임감, 그리고 균형잡힌 판단력이 그것이다.

 - 막스 베버, ‘소명으로서의 정치’


2016년 미국 대선은 초반부터 이변을 연출했다.


민주당에선 대선후보 경선이 시작되자마자 민주당 힐러리 클린턴Hillary Clinton 후보의 ‘대세론’이 무너졌다. 힐러리 대세론을 일거에 무너뜨린 버니 샌더스Bernie  Sanders  상원의원은 민주당원도 아니었다. 민주당 경선에 참여하기 전까지 30년 넘게 무소속으로 정치를 해 왔다. 힐러리는 남편 빌 클린턴Bill Clinton과 함께 ‘워싱턴 정치’를 상징하는 정치인이었다. 공화당 경선에선 더 극적인 드라마가 펼쳐졌다. 정치 경험이 전무한 부동산 재벌(도널드 트럼프Donald Trump)이 현직 상원의원(테드 크 루즈 Ted Cruz, 마르코 루비오 Marco Rubio)과 전직 주지사(젭 부시 Jeb Bush) 경력의 주자들을 쓰러뜨렸다. ‘트럼프 반란(叛亂)’은 성공했다.


‘워싱턴 아웃 사이더’ 트럼프는 162년 역사의 공화당을 접수했고 백악관 입성에 성공했다. 민주·공화당 모두 ‘워싱턴 정치’, ‘제도권 정치’에 발을 담근 주자들이 ‘아웃 사이더’ 앞에서 맥을 못추었다.


2008년 대선 때도 ‘워싱턴 정치’가 도마 위에 올랐다. 초선 상원의원 임기 중에 대선 출마를 선언했던 버락 오바마Barack  Obama  후보는 워 싱턴 정치를 ‘변화’시켜 미국 사회에 ‘희망’을 불어넣겠다고 약속했다.


‘우리는 할 수 있다’Yes We Can고 외쳤고, 많은 미국인이 그 외침에 공감했다. 정치를 바꾸자는 국민의 여망이 민주당 경선 승리도 불투명했던 오바마를 미 역사상 최초의 흑인 대통령으로 밀어 올렸다.


재선에 성공한 오바마의 8년 집권 기간에 워싱턴 정치는 변화했는가. 미국인들은 2016년 대선에서 “그렇지 않다”고 대답했다. 기성 정 치에 물들지 않은 샌더스나 트럼프에 환호했다. 그리고 힐러리의 당선 가능성을 높게봤던 미국 주류언론과 여론조사 기관의 예상을 뒤엎었다. 오바마의 ‘담대한 희망’을 지지했던 백인 노동자층은 8년 뒤 백인 트럼프의 ‘위대한 미국’을 지지했다. 미 역사상 첫 흑인 대통령 시대를 개막시킨 미국인은 8년 뒤 인종차별주의 행태를 보인 트럼프를 대통령으로 만들었다.


워싱턴 정치는 언제 부터인가 국민의 삶과 유리된 채 헛바퀴를 돌리고 있었다. 한때 세계가 등대로 삼았던 ‘언덕 위의 도시’City upon a Hill 미국이 왜 이 지경이 됐을까. 미국 연방의사당을 감싸고 있던 타협과 관용의 문화는 어디로 간 것일까.


필자는 이런 문제의식을 바탕에 깔고 아웃 사이더 대통령을 배출한 2016년 대선을 되돌아봤다. 미국 정치가 키워온 갈등과 분노의 마그마는 트럼프와 샌더스라는 분출구를 통해 지표면 위로 치솟았다.


필자는 1995년 미국 워싱턴타임스의 교환기자로 체류하면서 워싱턴 정치를 접했다. 당시 뉴욕의 부동산개발업자였던 트럼프는 파산의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었고 퍼스트 레이디 힐러리는 자신의 의료개혁 실패 등이 초래한 중간선거 참패의 후유증을 극복하기 위해 애를 쓰고 있었다. 워싱턴 정국은 연일 요동쳤다. 한 해 전에 치러진 상·하원 선거에서 다수당이 된 공 화당은 백악관과 사사건건 충돌했다. 급기야 연방정부가 폐쇄되는 사태를 현장에서 지켜봤다. 막연히 ‘워싱턴 정치=선진 정치’라고 생각해온 필자에게는 충격이었다. 2004년 워싱턴에 위치한 조지타운대학의 방문연구원 신분으로 미국을 다시 찾았을 때는 보수와 진보의 갈등이 폭발 직전의 임계점에 도달해 있었 다. 금융위기로 미국이 휘청거리고 있을 때 필자는 워싱턴특파원으로 부임, 미국이 금융위기를 극복해나가는 과정을 현장에서 지켜볼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


본 저서 제1부 도입부인 ‘유권자 혁명의 전조(前兆)’ 편은 당시 상황을 스케치한 글이다. 오바마 정부는 집권 초기부터 정쟁에 시달렸다. 정쟁의 결과는 치명적이었다. 연방정부가 폐쇄되고 미국의 국가신용등급이 강등되는 사상 초유의 사태가 빚어졌다. ‘오바마의 정쟁’ 편에서는 오바마 정부의 주요 국정과제를 중심으로 대통령과 의회, 공화당과 민주당, 정치권과 시민사회의 갈등 양상을 추적했다.


2016년 대선이 써내려간 격동의 드라마는 ‘트럼프 현상과 샌더스 돌풍’ 편에 담았다.


트럼프의 대선 승리는 '유권자 혁명'의 산물이었다. 워싱턴 정치와 세계화 흐름에서 소외된 미국인들은 기존의 정치문법에 충실했던 힐러리 대신 자신들의 속내를 거침없이 대변해준 트럼프를 선택했다. 겉으로만 ‘정치적으로 올바른’ 행동을 하고 속으로는 기득권 유지에 혈안이 돼있는 제도권 정치를 심판했다. 힐러리의 ‘이메일 스캔들’은 워싱턴 정치의 추한 속내를 미국인들에게 상기시켰다. 트럼프도 문제가 많은 후보였지만 2016년 미국 대선의 시대 정신은 ‘열심히 노력해도 살림살이가 고달프기만 한 나라’를 만들어낸 기성 정치를 심판하자는 것이었다. 그런 면에서 트럼프가 당선됐다기 보다는 워싱턴 정치의 대표 주자인 힐러리가 패배한 선거였다.


 2부 들머리에서는 힐러리의 실패를 복기해봤다. 트럼프 대통령 당선자의 집권 구상은 불확실하다는 점만 확실한 상황이다. 북핵을 머리에 이고 사는 우리로서는 트럼프의 결단 하나에 한반도의 위기가 고조될 수 있는 비상한 시점이다. 우리는 트럼프의 기질과 정책 지향, 백악관과 의회의 역학 모두를 면밀히 주시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도움이 될만한 내용을 2부의 나머지 장에서 다뤘다.


 한 가지 우려되는 바가 있다. 이 책이 미국 정치의 문제점을 다루고 있다고 해서 미국 정치를 낮추어 본 것은 아니다. 미국 정치의 장점과 저력은 이 책이 다루고 있는 문제점을 상쇄하고도 남는다. 미국 의회는 백악관의 거수기가 아니다. 미국 대통령은 의회와의 소통에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투표에 임하는 의원들의 자세도 진지하다. 미국 의회 청문회는 정말 부럽다. 1부 말미에 소개한 필립 하트Philip  Hart, 존 윌리엄스John J. Williams 상원의원의 일화만으로도 미국 정치가 건국 이후 240년 동안 쌓아온 민주주의의 전통과 품격의 깊이를 알 수 있다.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우리는 미국 정치에서 배울 점이 많다.


 글을 써내려가면서 미국 정치가 걸려 넘어진 턱이 발견될 때마다 한국 정치라면 그 턱을 넘어설 수 있었을지를 생각해봤다. 미국 정치 가 실패한 대목을 반면교사로 삼는다면 여의도 정치는 워싱턴 정치보다 더 높은 수준으로 도약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이 한국 정치의 발 전에 겨자씨만한 보탬이라도 된다면 더할 나위없는 기쁨이 되겠다.


 


지난 주말 중학교 동기들과의 송년회를 끝내고 귀가하는 마음이 편치 않았다. 올해는 부쩍 먹고살기 힘들다는 푸념이 많아졌다. 시골 중학교를 나온 동기들은 50대 중반의 나이가 됐다. 당시만 해도 대학은 고사하고 고등학교 진학률도 높지 않던 시절이었다. 우리 중학교의 경우 동기 100명 중 2명꼴로 대학에 갔다. 나머지 중 절반은 중학교를 마친 뒤 공장 근로자가 되거나 가게 점원이 되거나 농사를 지었다. 고등학교까지 나온 동기들도 비슷한 행로를 밟았다. 대다수가 식당이나 가게를 운영하는 자영업자다. 몇몇은 택시 기사가 됐고 시골에 남아 농사를 짓고 있는 친구들도 있다. 많은 친구들은 1980년대 초중반에 말 그대로 ‘무작정 상경’해서 한국 경제의 고도성장 흐름에 올라탔다. 먹고살만하다 싶었는데 그들의 생업전선이 흔들리고 있다. 자녀들 취직과 결혼 문제도 걱정거리로 등장했다.

A는 올 들어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인건비 부담을 감당하지 못한 끝에 직원을 내보내고 부인이 나와서 함께 장사를 하고 있다고 했다. A는 청춘을 바쳐 근무했던 공장이 문을 닫은 뒤 인근에 식당을 열었다. 직장에서 구조조정된 후 택시를 몰고 있는 B는 카카오택시가 도입되면 소득이 줄어들 것이라면서 신경이 곤두서 있었다. A와 B의 연소득은 4000만원 안팎이다. 시골에서 농사를 짓고 있는 C는 정부가 비축미를 공매 방출해 쌀값을 떨어뜨리려 한다면서 핏대를 올렸다. 자기 논과 빌린 논을 더해 60마지기(1만2000평)에서 논농사를 하고 있는 C는 직불금까지 포함해 연소득이 3000만원이 채 안 된다고 푸념했다. C는 자녀들의 대학 학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벼를 추수한 뒤에 보리를 심어서 2모작을 하고 있다. 

우리 동기들은 주어진 환경 속에서 열심히 살았지만 급변하는 국내외 환경 속에서 누구는 기회를 잡았고 누구는 어려움에 처했다. 세계 경제의 변화는 우리 힘으로 바꿀 수 없는 거대한 파고였다. 세계는 이제 저성장이 정상인 시대로 접어들었다. 저금리, 저물가, 저성장이 일반적 현상이 됐다는 이른바 ‘뉴노멀(new normal)’의 시대다. 우리 중에 누가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중국과 러시아, 동유럽국가들이 전 세계에 공산품을 쏟아낼 것이라고 예상이나 했을까. B와 C는 시장경제 체제에 편입된 중국의 저가 공산품과 농산물이 수입되면서 직장을 잃거나 어려움에 처했다. A를 비롯한 수많은 50대가 제조업에서 밀려난 뒤 자영업자로 변신했다. 2017년 말 기준 자영업자는 568만명이다. 전체 취업자의 21.3%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인 13.2%를 훨씬 웃돌 정도로 과포화 상태다. 그래도 A는 버텨보겠다고 했다. 정부는 최저임금을 올리기 전에 수많은 A들을 만나 그들의 생존조건을 면밀히 조사해 본 적이 있는가. 동기들 입에서 민주당과 민주당 소속 대통령을 비판하는 얘기를 오랜만에 들어봤다.

베이비 부머 세대인 동기들은 경제성장의 수혜자이면서 기여자였다. 인구 폭발을 불러온 50대들은 다양한 부문에 산업 인력을 제공했다. 수많은 촌놈들이 정든 고향을 떠나 산업역군이 됐다. 경제활동인구가 늘고 노동 투입량이 증가하면 경제성장률은 높아진다. 경제학에서 말하는 인구보너스 효과다. 앞으로 그런 시절은 다시 오지 않을 것이다. 지난해부터 경제활동인구는 줄기 시작했다. 여성이 가임기간(15~49세)에 낳을 것으로 기대되는 평균 출생아 수인 합계출산율은 지난해 1.05명이었다. 현재의 인구규모가 유지되려면 합계출산율이 대략 2.1명은 되어야 한다. 올해는 0명대 합계출산율 시대 원년이 될 것 같다. 인구가 줄고 고령화가 진척되면 생산성이 떨어진다. 총수요도 감소한다.

세계 경제환경은 우리가 바꿀 수 없고 인구를 갑자기 늘리는 것도 불가능하다면 생산성을 높이는 수밖에 없다. 그러려면 뼈를 깎는 구조조정과 임금·보상체계 개편 등이 필요한데 이는 조직화된 기득권층의 반발에 직면해 있다. 정치권의 포퓰리즘을 극복할 수 있는 리더십도 필요하다. 벼랑 끝에 선 민생을 되살리고 저성장의 덫에 걸린 경제를 누가 구해낼 것인가. 모두 힘을 모아야겠지만 누구보다 현 정부와 집권당의 책임이 가장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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