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테말라 푸에고(Fuego) 화산이 2018년 6월 3일(현지시간) 폭발, 수십명의 사상자를 냈다.

수도 과테말라시티에서 남서쪽으로 44km 거리에 있는 푸에고 화산은 중미 지역의 대표적인 활화산이다.

 

                                                                                                      AFP

 

필자가 찾은 파카야 화산은 푸에고 화산 인근에 위치해 있다.

푸에고, 파카야 화산은 환태평양 화산대에 속한 활화산으로 지금도 분화구에서 연기가 솟아오른다. 

과테말라에는 33개의 화산이 있는데 이 중 파카야, 푸에고, 산티아기토(Santiaguito), 세로 케마도(Cerro Quemado)등 4개는 활화산이다.

파카야 화산의 높이는 2562m. 백두산 보다 조금 낮다.

파카야 화산의 매력은 '보는 화산'이 아니라 '느끼는 화산'이라는 점. 도보로 1시간, 조랑말을 타고가면 30분 정도 올라가면 용암이 흘러내려오다 굳어버린

곳까지 갈 수 있다. 시커멓게 굳어있는 바위 산을 등산하는 체험은 전 세계 다른 화산에서는 체험하기 힘든 특별한 경험이다. 특히 바위 틈 사이로 흘러내

리는 시뻘건 용암은 경이로운 광경이다.  

화산 기슭에 위치한 마을 사람들에게 방문객들은 주요 수입원이다. 당차게 생긴 이 꼬마는 말몰이꾼이다. 

 

 

 

 

  화산까지는 제법 먼 거리여서 관광객들은 대체로 말을 타고 올라간다.

 

 

 

 

 

 

 

 

 

 

 머리에 땔감을 이고 내려오는 여인들의 모습에서 신산한 삶이 엿보인다.

 가을만 되면 겨울나기 땔감을 준비해야 했던 어린 시절 고향 마을의 가난을 상기시켜주는 풍경이다.

 

 

 

 

 

 

 

 

남아메리카의 문명은 옥수수를 빼놓고는 설명할 수 없다. 지금도 남미에서는 옥수수가 주 식량이다. 민간에서는 아이가 태어나면 탯줄을 옥수수 위에서 자르는 풍습이 남아있다. 이 옥수수 낟알을 파종해서 수확의 일부를 신에게 바치고 나머지로 아이의 음식을 만들어준다. 탯줄을 자를 때 피를 묻힌 옥수수 종자로 파종해서 아이가 클 때까지 먹이기도 한다. 남미인들에게 옥수수는 뗄려야 뗄 수 없는 일체감을 가진 곡물인 것이다. 마야인들은 신이 옥수수 반죽으로 살을, 옥수수 음료로 피를 만들어 인간을 창조했다고 믿었다.

 

 

저 멀리 연기가 모락모락 피워오르는 곳이 분화구이다.

 

 

오래 전에 분출했던 용암은 이 곳까지 흘러내려온 뒤 서서히 굳어져 암석이 됐다.

 

 

 

 

 

 

 

여기서부터 분화구까지 걸어서 간다. 제주도 한라산을 올라갈 때처럼 화산암이 여간 날카롭지 않다.

 

트레킹을 해서 가면 연기가 피어오르는 정상 부근 출입 금지 표시가 있는 곳까지 갈 수 있다. 정상에서는 지금도 시뻘건 용암이 흘러 내린다.

 

 

바위산 틈새로 용암이 흘러내리는 모습이 보인다. 

 

 

 

 

 

 

 

 

  안전은 각자의 책임이라는 팻말이 붙어있다. --;;

 

 

 

 

 

 

 

 

 

 

내려오면 '음료수 아저씨'가 대기하고 있다. 

 

 

사탕수수 비슷한 이 나무를 잘라서

 

이렇게 들고 마시면 달콤한 물이,,,속이 시원해진다. ㅎㅎ

 

 

 

  

 

 

 

 

오랜만에 여행 스케치 한 점 올립니다.

아들과 함께 대서양에서 바다 낚시했던 풍경들입니다.

여름 휴가 기간에 메릴랜드주의 해링턴 하버로 출발했습니다. 체사피크만에 면해있는 대표적인 항구 도시입니다.   


 


곳곳에 요트들이 둥둥 떠 있네요. 우리도 국민소득이 높아지면 요트를 취미로 즐기는 사람들이 많아질 것 같습니다. 최근 만난 김영춘 해양수산부 장관도 그런 전망을 하면서 해수부 차원에서 300개 정도의 섬에 요트 정박이 가능하도록 접안 시설을 만드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고 하더군요.



해안이 안보일 때까지 1시간 넘게 먼바다로 배를 몰아 나갑니다.

  

  

선장은 조종실에 설치된 고기탐지 장치를 이용해 고기를 모여있는 해역을 찾아냅니다. 예전에는 감으로 찾아냈다고 하더군요.



고기가 많은 곳은 붉은색으로 표시된다고 합니다.



 


고기가 많은 해역에 도착하면 배를 세우고 배 난간에 미끼를 매단 낚싯대들을 죽 설치합니다. 우리는 이 낚싯대들을 감시하면서 고기가 미끼를 물기만 기다리면 됩니다. 혼자서 낚시질을 해도 되지만 이렇게 난간에 고정식으로 설치해놓으면 안전하기도 하고 효율적이기도 하다는 선장님의 말씀.




이 곳은 말 그대로 물 반 고기 반. 순식간에 이 곳 저 곳에서 낚싯대들이 휘청거리기 시작합니다.



한 사람만으로는 제어하기 힘들 정도의 강력한 힘이 느껴집니다.  父子는 고기와 '사투'를 벌입니다.  옆에 사람들만 없었다면 저의 표정은 흡사 헤밍웨이의 '노인와 바다'에서 청새치와 씨름하는 산티아고를 연상케합니다.  


 


 



 

선장은 낚은 고기마다 자로 길이를 잰 뒤 규정에 미달하는 고기는 예외없이 바다로 던져버립니다. 그도 그럴 것이 선착장에서 규정보다 작은 고기를 갖고 나가다가 걸리면 배 빌리는 값보다 더 비싼 벌금을 내야 합니다. 



낚싯줄이 팽팽해진걸 보니 또 미끼를 물었군요.



잡은 고기 중 일부는 즉석에서 회를 칩니다. 우리같은 낚시 문외한들에게는 '아기다리 고기다리던' 시간이 되겠습니다. 보기만해도 입 안에서 침이 돌지 않나요. 그 때의 식감을 지금도 잊을 수 없습니다.


 

 

 

 

 

 

 

실컷 먹고 놀다보면 어느덧 돌아가야할 시간. 이때쯤 되면 저처럼 뱃사람 체질이 아닌 사람들은 속도 울렁거리고 뭍이 그리워집니다.

 


포구에 석양이 물들고 있습니다.


 

 

 

최근 A은행에서 신용대출 상담을 하다가 인공지능의 어두운 일면을 목도했다.

그 은행은 20년 넘게 주거래 은행으로 이용했고 연체 기록도 없어서 방문 전만 해도 내심 우대금리를 기대했지만 결과는 사뭇 달랐다. 필자의 신용등급이 턱없이 낮게 평가돼 있었다. 담당 직원조차 고개를 갸웃거릴 정도였다. 본점 신용등급 관련 부서에 문의해봤지만 똑부러진 답변은 듣지 못했다. 한동안 카드 사용 내역이 없는 점이 신용등급 평가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 것 같다는 추정뿐이었다. 신용카드 사용 내역이 신용등급을 평가하는 효율적 수단이라는 점을 수긍하면서도 마음 한쪽에서는 오랜 충성고객에게 이럴 수 있느냐는 반발심이 일었다. A은행이 필자의 신용을 평가할 수 있는 데이터는 지천에 널려 있는데도 은행 측은 신용평가 시스템을 통해 한번 산정된 등급을 인위적으로 변경하는 것은 어렵다는 입장이었다. 결국 필자가 신용등급을 올리기 위해 할 수 있는 유일한 해결책은 신용카드를 다시 신청해서 열심히 긁어대는 일뿐이었다. 인공지능이 그걸 인식해서 필자에게 우량 고객 등급을 부여할 때까지 말이다.

이런 방식의 신용 평가 알고리즘은 효율적일 수 있다. 은행마다 거래 고객은 천만이 넘고 거래 정보는 천문학적 규모다. 말 그대로 빅데이터다. 그 자체로는 아무 의미가 없는 데이터들을 분류하고 해석하려면 나름의 잣대가 필요할 것이다. 이를 수학적으로 모형화한 것이 알고리즘인데 지금 우리의 삶에 시도 때도 없이 개입하고 있는 대다수 알고리즘은 효율성을 위해 공정성이나 배려 같은 가치를 희생시키고 있는 것들이다. 그래서 수십년 거래한 고객이 단지 신용카드 거래 내역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불이익을 받고 있다. 수익률만 좇는 벌처펀드라면 몰라도 고객의 신뢰로 먹고사는 은행에서 이런 방식의 알고리즘은 지속가능하지 않다. 허술한 신용평가 시스템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누가 봐도 불합리한 결론을 맹목적으로 수용하는 행태다. 빅데이터에서 추출됐다는 이유만으로 결과물의 객관성과 정확성을 담보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알고리즘 속에는 설계자의 편견이나 편향이 녹아 있을 수 있다. 그런데도 알고리즘을 사용하는 사람들은 그 결과물을 맹신하다시피 한다. 알고리즘의 작동 방식은 극소수의 설계자 외에는 정확히 알 수 없다. 황당한 신용등급을 받아든 필자처럼 알고리즘이 어떤 결정을 내리든 내부 작동방식을 알 수 없는 사람들은 속수무책의 상황에 놓이게 된다. 필자는 신용대출 대신 적금담보대출을 통해 급전을 융통했지만 신용대출이 외통수였다면 불합리하게 설계된 알고리즘 탓에 고금리 대출을 감수해야 했을 것이다. 장차 정보화가 더 진행되면 단순한 대출이 아니고 취업이나 결혼처럼 한 인간의 운명이 걸린 선택들이 알고리즘의 편견에 의해 왜곡되는 사태가 빚어질 수도 있다.

알고리즘은 양날의 칼이다. 빅데이터 속에서 인간의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진주를 찾아내는 것도, 위험한 금융상품을 안전한 상품으로 포장해주는 것도 알고리즘을 통해서 진행된다. 우리는 2007년 글로벌 금융위기 과정에서 잘못 설계된 알고리즘이 우리 사회에 어떤 해악을 끼치는지를 지켜봤다. 알고리즘은 비우량주택담보대출(서브프라임모기지) 채권의 가치를 눈덩이처럼 키우는 데는 능숙했지만 막상 금융시장이 붕괴하기 시작하자 쓰레기 채권들의 가격조차 제대로 산정하지 못했다. 그때 무너진 시장을 바로잡은 주체는 알고리즘이 아닌 인간이었다. 알고리즘이 탐욕의 도구로 전락하지 않도록 알고리즘을 감시해야 할 필요가 여기에 있다. 최근 네이버는 댓글 논란의 와중에 공정성 시비가 일자 인공지능이 뉴스를 편집하고 배열하도록 하겠다는 방침을 내놨다. 궁여지책일 뿐 옳은 방향은 아니다. 인공지능의 뉴스 편집 배열은 자칫 이용자들을 ‘필터 버블’(Filter Bubble) 속에 가둘 수 있다. 뉴스 편집, 배열 알고리즘에 대한 검증이 필요하다.

데이터 업계에서 회자되는 유명한 경구가 있다. ‘쓰레기를 넣으면 쓰레기가 나온다’(garbage in, garbage out)는 말이다. 제아무리 좋은 알고리즘도 잘못된 데이터가 입력되면 잘못된 결정을 내리게 된다는 점을 경계하는 말이다.

조남규 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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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조선일보 박건형 기자가 최예진 미국 워싱턴대 컴퓨터 공학과 교수를 인터뷰한 내용. 2021년 12월6일자 조선일보에 실린 내용.

빌 게이츠와 함께 마이크로소프트를 창업한 고(故) 폴 앨런은 2013년 수억달러를 기부해 미국 시애틀에 ‘앨런 인공지능(AI) 연구소’를 설립했다. 인류 공동의 번영을 위한 AI를 만들겠다는 것이 그의 뜻이었다. 지난달 앨런 AI연구소가 공개한 혁신적인 프로젝트가 전 세계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이 프로젝트의 이름은 ‘델파이에게 물어보세요(Ask Delphi)’. 고대 그리스에서 신탁(神託)을 받던 아폴로 신전에서 이름을 딴 델파이는 철저히 윤리적 판단을 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기계가 윤리를 배울 수 있는가”라는 난해한 질문에 대한 대답을 구하려는 시도이다.

홈페이지에서 델파이에게 어떤 사안의 옳고 그름을 물으면 바로 답변이 돌아온다. ‘친구를 아침에 공항까지 태워주는 것이 좋을까요?’라고 물어보면 ‘친구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고 대답하고 ‘장애인이 아닌데 장애인 주차 구역에 주차해도 되나요?’라고 물어보면 ‘잘못된 일’이라고 한다.

델파이는 뉴욕타임스와 가디언 같은 유력 매체가 톱기사로 다룰 정도로 화제를 모았다. 뉴욕타임스는 “수많은 사람이 델파이가 놀랍도록 현명하다는 데 동의했다”고 평가했다. 또 공개 3주 만에 전 세계 300만명이 몰려들어 델파이에게 질문을 던졌다.

델파이 프로젝트의 총괄 책임자는 한인 여성 과학자이자 글로벌 AI 업계의 차세대 선두 주자로 꼽히는 최예진(44) 워싱턴대 컴퓨터공학과 교수다. 최 교수 연구팀은 사람의 뇌구조를 모방한 ‘인공 신경망’ 알고리즘으로 델파이를 만든 뒤 윤리와 상식 데이터 170만건을 입력해 학습시켰다. 이후 윤리 전문가들이 델파이에 각종 질문을 던진 결과 상식적인 수준인 일반인의 판단과 92% 정도 일치한다는 결과가 나왔다. 왜 이런 프로젝트를 시작했고 목표는 무엇일까. 최 교수에게 델파이와 AI의 가능성과 한계에 대해 들어봤다.

◇윤리적 판단 내리는 AI

- 왜 AI에게 윤리를 가르치는 프로젝트를 시작했나.

“어디에나 AI가 적용되는 시대다. 빅테크들은 자사의 AI가 얼마나 똑똑한지 과시하느라 여념이 없다. 하지만 AI가 확산되면서 여러 문제가 생기고 있다. 사진을 분류하는 AI가 흑인과 고릴라를 구별하지 못하는 일도 벌어졌고 AI가 쓴 소설에는 성차별 인식이 드러난다. AI는 사람이 준 데이터로 학습한다. 결국 AI의 윤리는 그걸 가르치는 사람의 문제다. 그걸 최대한 바로잡는 것, 상식에 부합하는 AI를 만드는 것이 이 프로젝트의 목표다.”

- AI가 윤리를 모르는 것이 현실 세계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나.

“인터넷은 이미 AI가 움직인다. 구글의 검색 결과나 페이스북의 게시물 배열도 모두 AI가 한다. AI가 윤리적으로 틀린 검색 결과나 게시글을 많이 보여주면 결국 사람도 영향을 받는다. 빅테크가 AI의 이런 윤리적 문제를 그대로 방치했기 때문에 미국 의사당 폭동이 일어나거나 아시아권에서 국지전이 발생했다고 보는 사람도 많다.”

- 델파이라는 이름이 의미심장하다. AI가 예언자처럼 미래를 내다보고 사람이 해결하지 못하는 난제에 대한 해법도 준다는 것인가.

“정반대다. 고대 그리스에서 델파이는 믿을 수 없는 존재였다. 예언도 오락가락하고, 틀린 경우도 많고. 델파이라는 이름을 붙인 것 자체가 AI를 믿을 수 없다는 자기 비하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AI를 만들고 가르치는 사람이 완벽하지 않은데, 어떻게 AI가 완벽해질 수 있나.”

◇작동 원리 모르는 블랙박스

- 델파이를 테스트해본 사람들이 정확함에 놀라고 있다.

“델파이는 ‘사람을 죽여도 되나’ 같은 단순한 질문뿐 아니라 복잡한 상황을 만들어 제시해도 적절한 답을 내놓는다. ‘곰을 죽여도 되나’라는 질문에는 ‘안 된다’라고 하지만, ‘내 아이를 지키기 위해 곰을 죽여도 되나’라는 질문에는 ‘그렇다’라고 한다. 가족이 최우선인 것 같지만 ‘내 아이를 즐겁게 하기 위해 곰을 죽여도 되나’ 또는 ‘가족을 지키기 위해 핵폭탄을 사용해도 되는가’라는 질문에는 ‘안 된다’라고 한다. 델파이가 학습했던 데이터에는 ‘동물을 죽이는 것은 나쁜 일’이라거나 ‘핵폭탄은 위험하다’ 같은 문장만 있을 뿐, 위 사례와 일치하는 질문은 없었다.”

- 정확도가 92%라는 것은 8%의 사례에서는 틀린 답을 낸다는 뜻인가.

“그렇다. 예를 들어 ‘100명을 살리기 위해 1명을 희생해도 되는가’라는 질문에는 ‘그렇다’라고 답하는데 100명 대신에 102명으로 같은 질문을 하면 ‘아니다’라고 답한다. 알고리즘 개선을 통해 정확도를 높여가고 있다. 다만 아직은 델파이가 어떻게 예제에 없는 복잡한 질문을 유추해서 정확하게 답하는지 명확하게 알 수 없다. 이것은 델파이뿐만 아니라 인공신경망과 심층학습(딥러닝)이라는 AI 기술의 근본적인 한계다. 대량의 데이터를 AI가 학습하면 사진을 구별하고, 음성도 분석하는 건 알고 있는데 ‘어떻게’ 하는지는 모르는 블랙박스인 셈이다.”

◇최종 결정권 못 갖게 규제해야

- 윤리적 판단 능력을 가진 AI가 현실 세계에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나.

“AI 상담을 해주는 챗봇이나 AI 채팅 프로그램을 보자. 현재의 챗봇은 ‘히틀러가 좋다’고 하면 그 뜻도 모른 채 동조한다. 그런 사람이 많아지면 그게 또 데이터로 쌓이면서 편견이 심화되고, 혐오를 조장하는 AI가 만들어진다. 한국의 AI 챗봇 ‘이루다’가 사용자들에게 막말과 성적인 표현을 배운 것이 대표적인 사례였다. 하지만 델파이 같은 AI가 챗봇에 탑재되면 편향된 시각을 배우는 것을 막는 안전장치가 될 수 있다.”

- AI가 드론이나 전쟁 로봇 같은 무기에 활용되면서 사람의 생명을 기계가 결정할 수 있다는 우려가 높다. 윤리적인 AI는 이런 사태를 막을 수 있나.

“그건 좀 다른 문제다. 전쟁에서 이기는 무기를 만드는 것이 목적이라면 AI를 쓰느냐 쓰지 않느냐는 사람의 결정일 뿐이라고 본다. 아군 10명을 죽이는 것보다 적군 100명을 죽이는 것이 도덕적인가 같은 질문이 전쟁에서는 의미가 없지 않은가.”

- 자율주행차는 어떤가. ‘신호를 지키지 않는 여러 명과 신호를 지키고 있는 한 명 가운데 누구를 살릴 것인가’ 같은 질문처럼 고차원적인 결정을 AI에게 맡길 수 있는가.

“그런 특수한 상황은 사회적인 합의로 해결해야 한다. 상대적으로 더 적은 사람을 희생시켜야 한다는 식의 윤리 원칙은 결국 사람이 만들어야 한다. 다만 AI는 사람의 윤리를 배우는 존재일 뿐, 윤리를 만들고 결정을 내리는 최종 결정권을 줘서는 안 된다. 사람이 AI를 악용하지 못하게 강력한 규제가 도입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람을 처벌하는 법이나 수많은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는 정치적 판단도 사람의 몫이어야 한다. AI가 해도 되는 부분과 해서는 안 되는 부분을 명확하게 규정하는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한국만의 틈새 시장 찾아야

- 델파이 다음 프로젝트로 구상하고 있는 일이 있는가.

“델파이는 미국의 윤리를 반영한다. 델파이한테 ‘집에 신발을 신고 들어가도 되나’라고 물어보면 ‘그렇다’라고 답한다. 한국에 델파이를 적용하려면 ‘집에 신발을 벗고 들어가야 한다’는 한국의 윤리를 가르쳐야 한다. 윤리는 결국 문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현재 연구팀에 한국⋅중국⋅인도 사람들이 있는데 그 국가들을 우선적으로 해서 연구 범위를 넓혀갈 생각이다.”

- 현재 글로벌 AI 산업은 빅테크들이 주도하고 있다. 한국 기업들은 딱히 두각을 나타내는 곳이 없는데.

“AI는 다른 테크 분야와 다르다. 이름도 들어본 적이 없는 대학이나 기업이 어느 순간 엄청난 성과를 발표하는 경우가 얼마든지 있다. AI가 빅테크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것이다. 데이터와 AI 연산에 필요한 GPU(그래픽 반도체), 이를 구동할 수 있는 전력 인프라를 충분히 가진 돈 많은 빅테크들은 자사 서비스를 강화하는 방향으로만 AI를 개발한다. 구글은 검색, 페이스북은 메신저와 소셜미디어에 집중하는 식이다. 그런데 상대적으로 데이터와 GPU가 부족한 대학이나 스타트업은 이를 알고리즘으로 극복하기 위해 다양한 아이디어를 새롭게 시도한다. 리소스(자원) 결핍과 열악한 환경이 오히려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탄생시키는 것이다. 한국 기업들도 빅테크를 따라가기보다는 고민하면서 틈새 시장을 찾아야 한다.”

☞최예진 교수

사람의 언어를 컴퓨터가 이해하도록 하는 자연어 인식 분야의 세계적인 권위자이다. 조경현 뉴욕대 교수와 함께 한국계 AI 연구자 가운데 가장 뛰어난 인물로 평가된다. 서울대 컴퓨터공학과를 졸업하고 마이크로소프트 연구원으로 일하다 코넬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뉴욕주립대(스토니브룩)를 거쳐 워싱턴대 교수로 재직하면서 앨런 AI연구소 연구원을 겸직하고 있다. 2016년 국제전기전자공학회가 꼽은 ‘주목할 AI 연구자 10인’에 선정됐고, 2017년 아마존이 주최한 ‘알렉사 AI경진대회’에서 우승했다.

‘제2의 사회안전망’으로 불리는 보험 산업이 안팎의 도전에 직면해 있다. 각종 규제 속에서 새 먹거리를 찾아내기는 쉽지 않다. 해외 시장은 낯설고 2021년부터 도입되는 새로운 국제보험회계기준(IFRS17)은 보험사들의 생존을 위협하는 전대미문의 위기다. 4차혁명의 진전, ‘문재인케어’(문재인정부의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대책) 등이 몰고 올 보험 환경의 변화에 제대로 응전하지 못하는 보험사의 운명도 마찬가지다. 보험산업에 대한 국민들의 시선도 곱지 않다. 이런 엄중한 시기에 손해보험협회를 이끌게 된 김용덕 손보협회장은 “보험산업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 전환을 위해서는 소비자 신뢰회복이 최우선적으로 이뤄져야 하며 보험업계의 많은 고민과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 회장은 “보험사들이 과거의 공급자 중심에서 수요자인 보험 소비자 중심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김 회장과의 인터뷰는 지난 19일 서울 종로구 손해보험협회 회장 집무실에서 진행됐다.

 

 

-‘문재인케어’를 어떻게 평가하나.

“‘문재인케어’의 핵심은 3800개 비급여 항목(의료 치료비에서 의료보험의 혜택을 받을 수 없는 치료)의 급여화다. 국민의 의료비 부담을 가중시키는 원인이 비급여 의료에 있다는 문제의식을 명확히 한 것이다. 이전의 정책들처럼 ‘비급여의 점진적 축소’에 그치지 않고 ‘의학적으로 필요한 비급여의 완전한 해소’로 접근 방식을 획기적으로 전환했다. 국민의 의료비 부담 완화를 위해 차질없이 추진되어야 한다.”

-건강보험 보장 대상이 늘어나면 실손의료보험은 반사이익을 얻게 된다. 보험료를 내리라는 말이 나올 것이다.

“문재인케어 시행으로 얼마만한 반사이익을 얻게 되는지를 우선 평가해야 한다. 현재 중립적인 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에서 연구하고 있다. 올 상반기에 결과가 나오면 합리적인 접점을 찾겠다. 다음달에 유병자 실손보험이 나온다. 앞으로 고령자 전용 실손보험을 확대하는 등 국민의 의료비 부담이 줄어들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손보업계는 그동안 실손보험 적자를 이유로 문재인케어 시행 여부에 관계없이 보험료 인하는 어려우며 보험료 인하에 앞서 병원의 과잉진료와 보험사기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혀왔다.

 

-실손보험료 청구 절차가 번거롭다는 생각이다. 개인적으로 병원에서 진료 기록을 받아서 보험사에 일일이 팩스로 넣어주고 있다.

“현재 실손보험 청구절차는 복잡해서 청구를 포기하는 사례가 발생한다. 실손보험 가입자가 의료기관에 요청하면 의료기관이 보험금 청구를 위한 진료서류를 보험사에 전송하도록 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다만, 이를 위해서는 먼저 현행법령 개선이 필요하고 의료기관과 보험사 간 전송체계가 구축돼야 한다. 지금도 일부 보험사는 개별적으로 병원과 협약을 맺고 자동으로 보험료가 청구되는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 더 많은 의료기관이 참여할 수 있도록 정부의 지원이 필요하다.”

-환자들이 원하는데 병원에서는 왜 안 해주나.

“의료 정보가 공개되길 꺼린다. 자기공명영상(MRI) 사진만 해도 병원끼리 공유할 수 있는 시스템이 갖춰졌는데도 이 사진을 다른 병원으로 가져갈 수 있게 된 것은 최근 일이다.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도 방향은 맞기 때문에 시간의 문제일 뿐 결국 그렇게 될 것이다.”

-의료계는 비의료기관의 헬스케어 서비스가 의료법 위반이라고 주장한다. 보험업계로서는 이 서비스를 활용한 상품 개발이 필요하지 않나.

“우리는 민간회사가 개인이나 가정에서 활용되는 기기를 부착해 콜레스테롤, 혈압, 체지방을 측정하는 행위도 의료행위로 판단한다. 그렇다보니 정보통신기술(ICT), 웨어러블 기기 등을 활용한 헬스케어 서비스에 대한 관심이 높아도 이런 서비스가 활성화하지 못하고 있다. 보험 선진국처럼 이런 서비스가 허용되면 보험사는 건강관리를 잘하는 가입자의 보험료를 내려줄 수 있다. 보험 가입자는 웨어러블 기기로 수시로 건강을 체크하게 되니 전체적으로 국민건강이 증진되고 의료비용이 줄어든다. 다행히 지난달 새로운 헬스케어 상품과 서비스에 대한 의료법상 규제를 완화하는 조치가 이뤄졌다. 보건복지부 산하에 민관 합동 법령해석팀을 신설해 그런 상품과 서비스가 의료법상 의료행위에 저촉되는지를 신속히 판단하도록 했다. 일단 한발짝 진전됐다.”

-IFRS17 시행을 앞두고 보험업계가 긴장하고 있다.

“지금은 보험부채를 원가기준으로 평가하고 있으나 IFRS17 체제에서는 시가평가제도로 바뀐다. 그러면 보험사들의 부채규모가 훨씬 커진다. 그렇게 되면 보험사는 지급여력비율(RBC비율·보험계약자에게 보험금을 제때 지급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건전성 지표)을 높이기 위해 자본금을 더 쌓아야 한다. 그 과정에서 보험회사가 망할 수도 있다. 그래서 국내 보험건전성 감독기준인 한국형 신지급여력제도(K-ICS)가 나온 것이다. IFRS17 시행 전에 자본금을 충분히 쌓으라는 취지다. 방향은 맞다. 하지만 완전히 새로운 제도이고 단기간에 자본금을 확 늘리려면 여러 무리가 따른다. 기준 바뀐다고 건전한 회사가 부실한 회사로 전락하면 문제가 있다.(국내 손해보험사 평균 RBC비율은 2017년 9월 기준 250.19%로 양호한 상태다.) 적응 기간을 둬서 새로운 제도가 소프트 랜딩하게 해달라고 요청하고 있다. 보험사의 건전성은 강화하되 부작용이 최소화되는 방향으로 감독당국에서 충분히 이해하고 검토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 협회 차원에서는 보험사들의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여 감독당국에 건의하고 IFRS17과 K-ICS가 연착륙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IoT), 빅데이터, 블록체인 등 혁신기술들이 출현하고 있다. 보험업계는 어떻게 대응하고 있나.

“기술이 발전하거나 사회가 발전하면 새로운 위험이 등장한다. AI나 자율주행, 드론, 헬스케어 분야에서도 과거에 없던 위험이 생겨난다. 사회 전체를 생태계로 본다면 미래의 손해보험은 흐르는 물처럼 변화의 사이사이를 메우며 흐를 수 있어야 한다. 새로운 위험을 보장할 수 있는 다양한 상품을 개발할 필요가 있다. 보험 업무의 각 단계에서 빅데이터 등 발전된 기술을 도입해 소비자의 편의성을 높이는 데 기여할 것이다. 자율주행차 시대가 도래하면 사고 시 자동차 결함인지, 시스템 결함인지를 놓고 분쟁이 생겨날 수밖에 없다. 제조업체나 시스템 개발 업체 모두 보험을 들어야 한다. 사회, 기술 변화에 따른 새로운 시장 영역에 미리 대비해야 한다. 조금 앞서가고 있는 선진국 시장을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

-20일 미국에서 콜택시앱 우버의 시험주행 자율주행차가 보행자를 치어 숨지게 한 사고가 발생했다.(3월 20일 추가 질문)

“자율주행차 산업의 발전은 무엇보다도 피해자 보호를 최우선시하는 제도적 토대 위에서 이뤄져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보험상품도 보험 본연의 역할인 피해자 보호에 빈틈이 없도록 변화하여야 하며, 그러한 방향으로 관련 제도나 법규도 정비되어야 할 것이다.”

-해외 시장도 보험사의 새로운 먹거리다. 국내 보험사들이 해외에서 돈을 벌어올 수 있는 실력이 되나.

“실력을 다 갖추고 나가면 언제 나가겠나. 가능한 범위 내에서 나가서 진출하고 실패하면 성공의 밑거름으로 삼고 가야 한다. 우리 금융권은 국제화 수준이 낮다는 것이 큰 제약 요인이다. TNI(Transnationality Index·초국적 지수)라는 게 있다. 금융회사들의 해외영업 이익, 해외 직원 수 등을 지수화한 것인데 우리나라는 4∼5%에 머문다. 금융선진국이라고 할 수 있는 스위스, 영국, 미국은 우리보다 10배에서 20배 정도다. 국내에서 벌어들이는 돈보다 해외에서 벌어들이는 돈이 더 많다는 의미다. 우리 금융도 세계화 전략을 세워서 나가야 한다. 우리 금융은 국내 비즈니스만 하고 있다. 은행, 카드, 보험, 증권 다 똑같다. 근래 들어 조금씩 해외로 나가고 있는데 장기적으로는 그 방향으로 가야 한다.”

-반려동물 인구가 늘고 있는데 관련 보험상품이 충분하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반려동물 인구가 2015년 기준으로 약 457만명에 이른다. 지금은 반려동물에 대한 동물병원 수가 같은 것들이 제대로 표준화되어 있지 않고 공개가 안 되고 있어 반려동물 보험 발달이 더딘 상태다. 반려동물 등록이 제대로 안 돼 있는 탓도 있다. 반려동물 산업도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하는 분야다. 그런 차원에서 정부도 관심을 갖고 있다. 협회 차원에서는 동물병원의 진료비를 공시하는 등 새로운 보험상품이 개발될 수 있도록 법령 개정과 제도 개선을 건의할 예정이다.”

정리=백소용 기자, 사진=남정탁 기자

대담=조남규 경제부장

 
김용덕 손해보험협회 회장은


●1950년 전북 정읍 출생 ●용산고 ●고려대 경영학과 ●행시 15회 ●청와대 경제수석실 행정관 ●재정경제부 국제금융국장 ●재정경제부 국제담당 차관보 ●관세청장 ●건설교통부 차관 ●금융감독위원장 겸 금융감독원장 ●법무법인 광장 고문 ●고려대 경영대 초빙교수


 

●IFRS17
2021년 1월 1일 시행되는 새로운 국제보험회계기준으로, 보험부채의 평가 기준을 원가에서 시가로 변경하는 것이 핵심이다. 그동안 보험사는 최초 보험 계약 시 계산에 따라 미래에 고객에게 지급할 보험금을 준비하면 됐지만, IFRS17이 시행되면 현재 시장금리를 반영해야 하기 때문에 고금리 확정형 상품을 대량 판매한 보험사들은 지금과 같은 저금리 기조에서는 훨씬 많은 적립금을 쌓아야 한다.

●K-ICS
IFRS17 도입에 따라 현행 지급여력비율(RBC비율) 기준을 대체하는 새로운 지급여력제도이다. 보험사가 계약자에게 보험금을 제때 지급할 수 있는지를 평가하는 건전성 지표로, 가용자본을 요구자본으로 나눠서 계산한다. 보험업법에서 100% 이상을 유지하도록 규정하고 있으며 당국은 150% 이상을 권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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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복인 KT&G 사장의 연임 논란이 한창이던 지난주 정부 당국자와의 식사자리에서 ‘민영화된 공기업’의 지배구조 문제가 화제에 올랐다.

KT&G나 포스코, KT처럼 민영화된 공기업에는 창업자가 있는 회사와 달리 실질적인 지배주주가 없다. 소유가 분산된 과점 주주 체제이다 보니 지배구조의 문제가 각별히 중요해진다. 대부분의 과점 주주들은 단순 투자자들이고 경영진을 감시·견제해야 하는 이사회는 경영진에 포획된 거수기 노릇에 그칠 가능성이 상존하기 때문이다.
이 당국자는 민영화된 공기업이 이런 ‘내부자 통제기업’(Insider-controlled firm)의 함정에 빠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실제 냉전 이후 동구권의 국영기업이 국민주나 종업원지주 방식으로 민영화되면서 내부자 통제기업의 폐해가 현실화했다. 경영진과 종업원의 담합 구조가 형성됐고 이들의 지대 추구 행위가 판을 쳤다. 설상가상으로 사회주의 경제의 고질적 병폐였던 ‘관치’(官治)까지 되살아났다. 기업이 정상적으로 굴러갈 턱이 없다. 결국 ‘마피아 경제’로 추락했다. 외환 위기 이후 꾸준히 지배구조를 개선해온 한국 기업에 동구권의 사례는 반면교사 정도면 족할 것이다.

현 경영진과 2대 주주인 기업은행이 한판 승부를 벌였던 KT&G 주주총회는 우리 사회에 과제를 남겼다.
민영화된 공기업의 지배구조를 어떻게 발전시켜나갈 것이냐는 문제다. 우선 ‘관치’ 논란이다. 2대 주주인 기업은행이 주주 견제와 감시기능 강화를 이유로 사외이사 2명을 추천하자 KT&G 경영진과 노조는 경영 개입이라고 반발했다. 기업은행이 주주 제안이라는 형식을 취했을 뿐 그 배경에는 기업은행 지분을 절반 이상 보유한 정부가 KT&G 이사회를 장악하려는 의중이 깔려 있다는 논리였다. 2015년 사장 선출 과정의 트라우마가 이런 의구심을 낳았을 수 있다. 백 사장은 그해 검찰에 구속된 민영진 사장의 후임으로 선출됐지만 얼마 안 가 민 사장과 같은 처지가 됐다. 후일 두 사람은 대법원에서 무죄가 확정됐다. 올해 백 사장의 연임을 전후해서는 금융감독원이 분식회계 혐의로 KT&G에 대한 감리를 진행하고 있고 이 회사 출신의 임직원들은 백 사장을 배임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기업은행이 백 사장 연임 반대의 논거로 내세운 이유들이다. 키를 쥐고 있던 1대 주주 국민연금은 주주총회 직전에 ‘중립’으로 돌아섰다. 관치 논란이 부담스러웠을 것이다. 국민연금까지 반대했다면 백 사장 연임은 장담하기 힘든 상황이었다. ‘관치 프레임’이 통한 셈이다. 기업은행은 졸지에 정부 하청을 받아서 백 사장을 흔들려다 실패한 ‘관치 청부업자’로 몰렸다. 하지만 이런 관치 프레임은 백 사장 연임 논란의 일면일 뿐이다.

기업은행은 KT&G 사장추천위가 사장 공모 자격을 전·현직 임원으로 제한하는 등 사장후보 선임 절차를 폐쇄적이고 비합리적으로 진행했다면서 단독 후보로 추천된 백 사장 연임에 반대했다. 현 사장에게 매우 유리한 구조로 진행돼 공모절차가 요식행위에 불과했다는 지적이다. KT&G의 사장후보는 사외이사들만으로 구성된 추천위에서 이뤄진다. 사외이사를 추천하는 과정에도 사장은 개입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공정성 시비가 끊이지 않는다. 사외이사들의 경영진 감시·견제 기능을 신뢰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기업은행이 사외이사 2명을 추천한 이유도 주주의 견제와 감시기능 강화였다. 이를 관치라고 일축한 것은 아쉬운 대목이다. 사외이사를 추천한 기업은행의 주주제안을 전향적으로 수용해서 경영 투명성을 높이는 계기로 활용하는 편이 낫지 않았나.

국회라는 대의기관이 국민의 대리인인 정부를 감시 견제하듯 기업에선 이사회가 경영진을 감시·견제한다. 어떤 지배구조가 최선이냐는 정답은 없다. 나라마다 기업을 발전시킨 경로가 다르기 때문이다. 국가권력구조에 정답이 없는 것과 같다. 국가 내에서도 기업마다 최적의 지배구조는 다를 수밖에 없다. 창업자가 있는 회사와 공기업으로 출발한 회사의 지배구조를 같은 잣대로 평가할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어떤 권력구조, 지배구조든 정부와 경영진은 국민과 주주의 감시를 받아야 한다. 이 원리가 제대로 작동되지 않으면 국민의 권리와 주주의 이익이 침해된다. 기업의 경우엔 장기적으로 기업 가치가 하락한다.

조남규 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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