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론 선의로 시작된 정책이 부메랑으로 돌아올 때가 있다.  

문재인정부가 추진 중인 ‘세일즈 앤드 리스백’(sales and lease back) 정책이 그럴 것 같다. 이 제도는 대출로 집을 샀다가 생계가 곤란해진 ‘하우스푸어’를 구제하기 위한 것이다. 정부가 이들의 주택을 매입한 뒤 월세나 전세로 재임대해서 하우스푸어의 주거비 부담을 덜어주자는 취지다. 새해 예산안에 1000억원을 잡아놨다. 국민의 세금이 민간주택 소유주에게 투입되는 것이다. 이는 공공재인 임대주택 건설이나 무주택자 지원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다.  


누구나 부동산에 투자(투기)할 때는 부지불식간에 ‘더 큰 바보 이론’(Greater Fool theory)에 따른다. 설사 자신이 바보처럼 실제 가치보다 비싼 값을 주고 집을 샀더라도 나중에 누군가 더 비싼 값에 사주길 바란다. 집값이 상승하는 국면에선 이 이론이 잘 적용된다. 금리 인상이나 실직 등으로 빚 부담이 커져도 ‘더 큰 바보’가 나타나서 곤란한 상황을 해소시켜 준다. 하지만 집값이 하락하는 시점에선 상투를 잡은 ‘마지막 바보’가 손해를 볼 수밖에 없다. 투자에는 리스크가 따른다. 리스크가 없다면 누구나 빚을 내서라도 투자에 나설 것이다. 시장이 돌아가는 단순하지만 엄중한 원칙이다.  

문재인정부의 세일즈 앤드 리스백 정책은 이 원칙에 배치된다. 정부가 투자 실패를 보상해 주는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왜 정부가 ‘마지막 바보’ 역할을 맡느냐는 지적이 나올 수밖에 없다. 더욱이 문재인정부가 이 정책에 투입하겠다는 주택도시기금은 무주택자의 주거복지에 써야 할 공적자금이다. 이 돈으로 주택 소유주를 지원하는 정책은 공정한가. 향후 금리 인상기에 하우스푸어가 더 늘어나면 한정된 예산을 누구에게 먼저 투입할 것인가. 매입가 책정도 쉽지 않은 일이다. 형평성 시비도 피할 수 없다. 정부도 이런 부담감 때문인지 하우스푸어 주택을 채권자인 시중은행이 직접 매입하도록 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주택 소유주의 책임을 정부가 떠맡겠다고 약속해 놓고 이제 그 책임을 애꿎은 시중은행에 떠넘기겠다는 발상이다. 원래대로 정부가 책임지든지 정책 자체를 폐기하는 게 옳다.  

우리보다 앞서 하우스푸어 지원 논란을 겪은 미국의 사례를 참고할 만하다.

버락 오바마 민주당 정부는 집권 초인 2009년 2월 ‘주택소유안정화계획’(Homeowners Affordability and Stable Plan)을 발표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로 집값이 대출금 아래로 내려간 ‘깡통주택’ 소유주를 구제하는 조치였다. 집을 압류당할 처지에 놓인 수백만명이 구제 대상에 올랐다. 오바마 정부는 수백억 달러의 회생자금을 투입해 가계부채 일부를 조정해 줬다. ‘깡통주택’ 소유주 가운데는 투기꾼도 있었지만 대다수는 대출의 덫에 걸린 실소유주였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불거지기 전만 해도 부동산 투자로 한몫 챙겼다는 사람들이 많았다. 너도나도 대출을 받아 집을 사던 시절이었다. 금융기관은 소득이 없거나 신용이 낮은 사람들에게까지 대출 상품을 팔았다. 이런 서브프라임모기지(비우량주택담보대출)가 금융위기를 불렀다. 뱅크런이 일어나자 곳곳에서 은행들이 무너졌다. 부동산 거품이 꺼지자 깡통주택 소유주들은 길거리에 나앉게 됐다. 미 정부는 은행을 살리기 위해 천문학적 규모의 혈세를 투입했다.  

그러자 한쪽에선 “국민을 고통 속에 몰아넣은 금융기관을 내가 낸 세금으로 구제하지 말라”는 항의가 빗발쳤다. 당시 하버드대 로스쿨 교수였던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의원은 금융기관만 살리려는 재무부 관료들에 맞서 집을 차압당할 위기에 놓인 주택 소유주들도 구제하라고 목청을 높였다. 그 반대쪽에선 “무책임하고 게으른 사람들을 세금으로 지원하지 말라”는 여론이 비등했다. 

오바마 정부의 주택소유안정화계획은 선의에 바탕을 둔 것이었지만 누군가는 이 조치에 분개했다. CNBC의 편집장인 릭 샌텔리가 “정부가 무책임한 사람들의 빚을 대신 갚아주려 한다”면서 세금 낭비를 막기 위한 시민운동을 전개하자고 제안했다. 이로써 오바마 대통령을 임기 내내 괴롭힌 ‘티 파티’(Tea Party) 운동의 서막이 올랐다. 야당인 공화당은 티 파티 세력의 지원으로 이듬해 중간선거에서 압승했다. 명분도 실효성도 약한 정책 하나가 정권의 토대를 흔들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조남규 경제부장

“미국 경쟁법의 원리를 너무 엄격하게 적용하다 보면 을의 눈물을 덜어주기 힘들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은 취임 이후 ‘경쟁법의 목적은 경쟁자를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경쟁을 보호하는 것’(The antitrust laws were enacted for the protection of competition, not competitor)이라는 미국 경쟁법의 판례를 종종 인용하고 있다. 본래 취지는 소비자 후생에 악영향을 미치지 않는 한 경쟁 당국은 가급적 시장의 거래 행위에 개입하지 말라는 것이지만 김 위원장은 그 반대의 주장을 펴기 위해 그 판례를 활용하고 있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지난 25일 서울 중구 한국공정거래조정원에서 세계일보와 인터뷰를 갖고 가맹, 유통, 하도급, 대리점 분야 등의 불공정 관행 개선책과 재벌개혁 방향을 밝히고 있다.
이재문 기자


김 위원장은 지난 25일 서울 중구 한국공정거래조정원에서 세계일보와 인터뷰를 갖고 “미국 경쟁법의 원리를 받아들인 공정거래법을 집행해야 하는 현실과 을의 눈물을 닦아달라는 여론의 사이에서 고민이 크다”고 말했다.

―취임 한 달이 지났다. ‘김상조 효과’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많은 기대를 받고 있다.

“저와 공정위에 대한 국민들의 기대가 크다는 점을 잘 알고 있고, 그만큼 부담감이 큰 것도 사실이다. 그동안 공정위가 할 수 있었는데 제대로 하지 못했던 것에 대한 반성과 함께 국민의 기대와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 열심히 하라는 의미로 받아들인다. 한편으로는 기대를 충족시킬 수 있을지에 대한 걱정과 한순간에 무너져 내리는 것 아닌가 하는 우려도 있지만, 매일 소임을 되새기고 있다.” 

―최근 가맹 분야 불공정관행 개선조치를 내놨다. 가맹본부와 가맹점주의 갑을 관계를 상생 관계로 바꾼다는 취지에 동감한다. 그런데 필수품목 마진 공개 등은 지나친 시장 개입이라는 지적도 있다.

“정보공개의 폭과 수준에 관해서는 아직 결정된 것이 아니다. 어떤 것이 필수품목이고, 어떤 가격으로 공급하느냐는 핵심적 영업비밀이다. 이 때문에 공개 방법에 대해 개별 공개가 어려운 부분은 업종별 공개, 일정한 범위 내 공개 등 다양한 형태로 조율할 계획이다. 프랜차이즈 사업이라는 게 기업 대 기업의 거래인데 공정위가 개입할 수 있는 데는 분명 한계가 있다.” 

  ―가맹점 종업원 임금이 변동되면 납품단가를 조정할 수 있도록 한 대목은 최저임금 인상을 염두에 둔 것인가.

“프랜차이즈는 관련자들이 공통의 이익을 나누는 상생의 모델이다. 가맹본부와 가맹점주가 갑을 관계인데 점주 측에는 고용의 문제가 있다. 공정위 차원에서는 갑의 을에 대한 횡포가 불공정 거래가 되지 않도록 해야 하지만 을인 점주들도 고용하고 있는 종업원들과 이익을 공유할 수 있어야 한다. 최저임금은 영세 자영업자나 소상공인에게 적용되는 부분이기 때문에 최저임금 인상 부분을 가맹본부가 공유하는 방식으로 상생협력 모델을 유도하자는 취지다.”  

―가맹본부와 점주의 상생을 위해서는 본부가 일정 기간 직영점을 운영한 뒤 가맹점을 모집하는 등 규제를 둬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고민한 부분이다. 사실 가맹본부가 시장에서 성공 가능성이 확인됐을 때 가맹점주를 모으는 방식이 맞다. 하지만 이미 4200개가 넘는 가맹본부가 만들어진 현실에서 그것을 법률적으로 정해놓는 것이 맞는 방식인가에 대해서는 생각해 볼 문제다. 일단 계약서에 정보공개를 강화하는 방식으로 하고, 해결이 안 되면 구조적으로 제약을 가하는 식이 될 것이다. 가맹본부 4200개가 모두 똑같은 ‘갑’은 아니다. 가맹본부나 가맹점주가 (매출액 등에서) 별 차이 없는 곳도 많다. 그래서 50개 주요 가맹본부 먼저 조사하겠다는 것이다. 이들 중에는 삼성전자보다 영업이익률이 높은 곳도 있다. 영업이익을 공유할 수 있는 여력이 있는 곳들이다.”


―갑을 문제가 심각한 또 다른 분야는 하도급이다. 우리나라 중소기업의 태반이 하도급 거래로 먹고산다.

“그렇다. 갑을 문제 4대 영역이 가맹·유통·하도급·대리점이다. 얘기한 순서대로 대책을 준비하고 있다. 우리나라 하도급 분야는 원사업자가 1차 하도급 업체뿐 아니라 2, 3차 하도급업체까지 관여하는 사실상 ‘전속거래’ 형태를 보인다. 재벌계열 대기업과 1차 하도급 거래의 불공정 문제는 많이 개선됐다. 2, 3차 하도급으로 가면 갈수록 상황이 나빠진다. 임금은 대기업의 절반, 더욱이 비정규직은 3분의 1까지 떨어진다. 최근 공정위가 중견, 중소기업의 갑질에 과징금을 때리고 있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을의 갑질’이다. 공정위가 고민하는 핵심이 2, 3차 하도급 거래 구조를 어떻게 공정하게 만들 것인가 하는 부분이다. 그런데 법적으로는 원사업자가 2, 3차 하도급업체에 개입할 수 없다. 특히 임금문제에 개입하면 노동관계법 위반이 된다. 그래서 법 제도 개선이 어디까지 가능한가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대통령께서 이번에 14개 대기업을 만나 당부하고 싶은 게 이런 점이라고 본다. 상생 노력이 1차 하도급업체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2, 3차 협력업체까지 내려갈 방안을 고민해달라는 것이다.”

―중소기업들이 공동사업을 할 때 공정거래법의 담합금지 규정에 대한 예외를 인정하고 하도급 불공정 거래 개선을 위해서는 하도급 정보 공개가 필요하다는 주장을 편 것으로 알고 있다. 

“중소기업들의 수평적 네트워크를 강화해서 협상력과 경쟁력을 높이자는 취지였다. 스위스에서는 중소기업들이 회사를 만들어서 공동으로 구매, 판매를 한다. 우리도 중소기업이 협력사업을 할 때 담합 예외를 인정해주고 협력 네트워크에 대한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 개별 기업 지원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이것은 공정위를 넘어서 범정부적 차원의 노력이 필요한 부분이다. 공정위가 그런 노력을 주도하려고 한다. 하도급 기업 명단 등 관련 정보를 공개하는 문제는 당분간 쉽지 않을 것이다. 원사업자는 하도급 정보가 영업기밀이라고 주장하는데 이 벽을 넘어야 한다.” 

 

―하도급 정보 공개는 공정위 과제에서 빠져 있나. 

“취임 이후 해야 할 일을 단기, 중기, 장기 과제로 나눴다. 하도급 거래 정보 공개는 중기 내지는 장기 분야가 될 것이다.” 

―재벌개혁 관련해서 “시간이 얼마 없다”, “지배구조 개선은 사후적이고 시장접근적 방법이 좋겠다”고 말했다.

“소수 재벌로의 경제력 집중과 대·중소기업 간 힘의 불균형 문제 등을 해소해 한국 경제가 재도약하는 데 주어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의미다. 재벌개혁을 몰아치듯이 하지 않고 기업의 자발적 변화를 유도하겠다고 밝혔지만, 마냥 기다릴 수는 없다. 정부는 재벌개혁의 기회를 잃어버릴 수 있다고 판단되면, 법령 개정을 통한 제도적 해결을 추진하는 등 민주주의 틀 내에서 가능한 모든 정책적 수단을 동원할 것이다. 시장접근적 방법은 소액주주나 기관투자가 등 시장의 플레이어들이 기업 지배구조에 압력을 가하는 것이 우선이라는 취지다. 상법 개정(문재인 정부는 총수 일가의 전횡을 방지하기 위해 2018년까지 다중대표소송, 전자투표제, 집중투표제 의무화 등을 추진하겠다고 발표했다)과 스튜어드십 코드(주주권 행사 모범기준) 활성화를 추진하고 효과를 보면서 공정거래법 규제를 얼마나 강화해야 할지를 판단하겠다. 순환출자 해소나 금산분리 등은 법률 개정 사항이다.”

―4대 그룹이 바람직한 기업 지배구조 모델을 만들어 달라고 당부했는데.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일감몰아주기 규제 대상과 관련해서 상장사의 경우 30%로 해놨더니 29.9%로 만든 회사가 있다.(현행법상 오너 일가가 대기업 상장 계열사 지분을 30% 이상 갖고 있으면 일감몰아주기 규제 대상에 포함된다)” 

―법 규정이 그렇다면 법을 지킨 것 아닌가. 

“법을 어긴 것은 아니지만, 사회적 비난 가능성은 있다. 이제 대기업은 법을 지켰다는 것만으로 안 된다. 대기업에 대한 국민들의 요구와 사회적 기대에 대해 돌아보고 스스로 고칠 수 있는 부분은 개선해달라는 뜻이다. 적어도 올해 말까지는 국민이 납득할 수준의 자발적 변화를 보여줘야 할 것이다. 자발적 선제 조치를 취하지 않는다면 법률 개정 압력이 높아질 수밖에 없고,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하는 상황이 오게 된다.”

―기업 지배구조 개선을 위한 상법 개정안은 국회에서 어느 정도 합의됐나.

"다중대표소송, 전자투표 거의 다 됐는데 집중투표제, 감사위원분리선출제는 아직 논의 중이다. 개인적으로는 집중투표제와 감사위원분리선출제 가운데 하나만 하고, 둘 중 하나를 고른다면 감사위원분리선출제가 더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정책은 곧 정치다. 정책만 하는 입장에서는 당위와 효율을 따지지만 결과를 만들어가는 과정은 정치다. 여의도 정치 뿐 아니라 국민의 여론을 만들어가는 것도 정치다. 공감대를 모아가는 과정이 중요하다."  

 ―최근에 신장섭 싱가포르대 교수같은 인사들은 기업의 가업 승계를 인정해주고 그 대신 해당 기업이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도록 하자는 이른바 정부와 기업의 대타협을 주문하는 목소리가 있다.  

"문재인 대통령도 대타협론자다. 그런 타협을 포기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대타협은 주고 받는게 확인돼야 한다. 약속을 깼을 때 거기에 대한 엄정한 처벌이 보장됐을 때 대타협이 가능하다. 하지만 타협 주체 중에 일방이 약속을 깼을 때 어떤 패널티를 줄 것인지에 대한 담보가 안되면 타협이 이뤄질 수 없다. 대타협 주장의 선의를 의심하지는 않지만, 그런 주장을 펴는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이나 신장섭 교수는 좀 더 자신의 말에 책임감을 가졌으면 한다. 좋은 말만 하면 안된다. 구체적 방법에 대해 생각해야 한다. 노조를 사회적 대타협 안에 어떻게 가져올 수 있고, 재벌의 실천을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없다. 장하성 실장이 선의를 가졌다는 것은 의심하지 않지만 실현 방법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선험적으로 규정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제가 고민하는 것은 사회적 대타협을 가능하게 하는 조건을 만들어내는 부분이다." 

 



정리=안용성 기자 ysahn@segye.com 

대담=조남규 경제부장

 
김상조 위원장은 
●1962년 경북 구미 ●서울 대일고 ●서울대 경제학과 ●서울대 대학원 경제학 석·박사 ●한성대 무역학과 교수 ●참여연대 경제민주화위원회 부위원장 ●참여연대 재벌개혁감시단 단장, 경제개혁센터 소장 ●경제개혁연대 소장 ●한국금융연구센터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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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스는 대공황으로 시장이 무너지고 실업자가 속출하자 재정을 활용한 수요 창출을 치유책으로 제시했다. 이후 그의 유효수요 창출 이론은 경기 침체에 빠진 나라들의 단골 처방전으로 활용됐다. 국가가 재정이라는 마중물을 부어서 일자리를 만들어내면 새로운 수요가 창출돼서 침체에 빠진 경기가 살아난다는 것이다. 실제 단기적으로 경기를 부양하는 효과는 있는 것으로 입증되자, 각국 정부는 수시로 케인스 처방전을 꺼내들고 있다. 

문재인정부의 소득주도성장론(J노믹스)도 그 뿌리는 케인스다.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와중에 출범한 버락 오바마 미국 민주당 정부도 예외가 아니었다. 오바마정부가 의회에 보낸 1호 법안이 경기부양법안이었다. 대량 실업으로 소비할 여력이 없는 국민 대신 정부가 돈을 풀어서 얼어붙은 시장에 온기가 돌도록 하자는 취지였다. 미국판 추가경정예산안이었다. 야당인 공화당은 “연방정부의 지출은 경제를 회생시킬 수 없고 증가 일로인 재정적자만 키운다”고 주장했지만, 오바마와 집권 민주당은 부양정책을 밀어붙여 집권 8년 동안 소방관과 경찰관, 교사 같은 공공 일자리를 늘렸다. 소득·자산 양극화 해소를 통한 중산층 복원, 내수 진작을 통한 경기 회복이 목표였다. 결과적으로 국가 부채는 늘었지만 경기는 살아났다.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10%에 육박했던 실업률은 지난달 16년 만에 최저치인 4.3%까지 떨어졌다. 


조남규 경제부장

J노믹스도 그만한 성과를 거둘 수 있을까. 세금으로 공공 일자리를 늘리는 일이야 큰 어려움은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것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문재인정부가 저성장 늪에 빠진 우리 경제를 퀀텀점프(대약진) 시키려면 구조개혁이라는 쓴 약을 피해선 안 된다. 미국의 경기 회복은 오바마의 재정투입에 기업가의 혁신이 뒷받침된 결과였다. 미국은 세계 어느 나라보다 기업하기 좋은 환경이라는 사실을 간과해선 안 된다.

성장 지체병에 걸려있던 영국과 독일은 구조개혁 수술을 통해 회생했다. 친노동자 정당인 독일 사민당의 게르하르트 슈뢰더 총리는 구조개혁법안 통과에 총리직을 거는 리더십을 발휘했다. 슈뢰더와 사민당은 정치감각이 무뎌서 노동개혁을 밀어붙인 것이 아니다. 그 여파로 슈뢰더와 사민당은 정권을 내줘야 했지만 독일은 살아났다. 국익을 당리당략에 우선한 지도자의 리더십이 경제를 살려내고 더 많은 일자리를 만들어냈다.

이들 선진국의 구조개혁이 성공할 수 있었던 또 다른 요인은 수십년 동안 촘촘히 구축해온 사회안전망이었다. 일자리 상실이 생존권을 위협하는 사회에서는 구조개혁의 진통이 더 클 수밖에 없다. 자산·소득 불평등이 심화된 사회에서는 이해 당사자들의 타협을 이끌어 내기가 더 힘들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주거, 보육 등 국민의 기본적 복지 수준을 높이고 불평등을 완화하겠다는 J노믹스의 지향점은 과녁을 제대로 겨냥한 것이다.

노무현정부의 ‘비전 2030’은 사회안전망을 확충하고 불평등을 완화할 수 있는 로드맵이었다. 이 로드맵이 폐기되지 않고 이명박정부로 계승됐다면 박근혜정부의 구조개혁은 성공 가능성이 더 높아졌을 것이다. 한국의 보수가 깊이 성찰해야 할 대목이다. 한국의 미래가 걸린 구조개혁 과업은 ‘비전2030’을 제시했던 정부의 계승자에게로 넘어갔다. 

조남규 경제부장

 

*아래는 조선일보 강경희 논설위원이 2017년 9월 방한한 게르하르트 슈뢰더 전 독일총리를 인터뷰한 내용.

게르하르트 슈뢰더 전 독일 총리는 '유럽의 병자'라 불리던 독일에서 노동 및 연금·복지 개혁을 감행해 경제 회생의 발판을 만든 인물이다. 인기 없고 고통스러운 개혁을 추진한 대가로 슈뢰더는 2005년 총선에서 패배하고 정계를 떠났다. 지난 8일 방한한 슈뢰더 전 총리는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노조와 기업 다 개혁에 반발했다. 하지만 실업률이 극적으로 낮아지고 사회보장제도가 안정적으로 유지되는 지금의 결과를 보면 '어젠다 2010' 개혁이 얼마나 큰 역할을 했는지 알 수 있다. 결국 우리가 결정했던 그 길이 옳았다"고 말했다. 2000년대 초 500만명이 넘던 독일 실업자는 현재 절반으로 줄었다. 실업률은 독일 통일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다.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세계 각국에 포퓰리즘이 확산되는 추세에 대해 슈뢰더는 "실업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이 근원이라면 정치인들이 이 불안을 진지하게 성찰해서 정책적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잃어버린 일자리를 새로운 일자리로 대체할 방안을 강구하고, 평생 교육의 기회를 넓혀 재취업 기회도 적극 열어줘야 한다"고 했다.

중도 좌파 정당인 사민당 출신의 게르하르트 슈뢰더 전 총리가 집권하던 당시(1998~2005년) 독일 경제는 마이너스 또는 제로 성장이 이어졌다. 독일 통일의 반짝 호황은 사라지고 막대한 통일 비용, 500만명에 달하는 실업자, 연금·실업수당·건강보험의 누적된 복지 부담이 경제를 짓눌렀다. 슈뢰더 전 총리는 2003년 '혁신, 성장, 일, 지속 가능성'이라는 표제의 '어젠다 2010' 개혁안을 발표했다. 50년간 손보지 않은 복지에 메스를 가하고 경직된 노동시장을 개혁하는 정책이었다. 해고를 쉽게 하고, 32개월이던 실업수당 지급 기간을 12개월로 줄이고, 연금 수령 시기도 늦췄다. 노조는 슈뢰더를 '사회 부적응 자폭꾼'이라 공격하며 연일 시위를 벌이고 거세게 반발했다. 그럼에도 개혁을 밀고 나갔다.

―사민당의 전통 지지층이 노동자 계층인데 지지 기반을 무너뜨릴 노동 개혁을 한 이유가 뭔가.

"독일 실업자가 500만명에 육박했다. 사회 안전망도 위협받았다. 연금·실업수당·건강보험이 더 이상 지속 가능하지 않았다. 사회보장제도는 재정이 감당할 수준이어야 하고 미래에도 지속 가능해야 한다. 재정은 교육과 R&D(연구·개발)에도 투입돼야 하는 돈이다. 노동시장의 경직성을 타파해서 더 유연하게 만들고, 사회보장 중에서도 특히 연금과 실업수당을 개혁해야 한다고 봤다. 네덜란드처럼 노·사·정 대타협을 시도했지만 독일에서는 노사가 절대 타협할 수 없다는 걸 금세 깨달았다. 그래서 정부 주도 개혁에 나섰다. 시대를 앞서가지 못하면 시대에 잡아먹힌다는 위기감이 있었다. 개혁에 노조와 기업 다 반발했다. 노조는 개혁이 과하다 했고, 기업은 개혁이 부족하다 했다. 오늘날 결과가 증명하듯 우리가 결정했던 그 길이 옳았다. 독일은 개혁으로 유럽 내 다른 어떤 국가와도 큰 차이를 갖는 위치에 올라가 있다."

―집권당 내에서도 반대가 있지 않았나. 노조는 어떻게 설득했나.

"독일 의회는 절반만 넘으면 된다. 집권당은 어떤 개혁 법안도 가능하다. 당시 적녹 연정(사민당과 녹색당의 연립정부)이었는데 연정 파트너라고 무조건 '예스'는 아니다. 녹색당도, 사민당 내부도 설득해야 했다. 사민당 지역별 콘퍼런스를 비롯해 수많은 회합에서 '어젠다 2010'을 몇 시간씩 설명했다. 노조도 설득했지만 노조 간부들은 이념적으로 교조화되어 설득이 쉽지 않았다. 나를 향해 격렬한 시위도 벌였다. 노조와의 대화에서 '이 개혁은 결국 관철될 것이다. 이것으로 상황 끝(더 이상 토론하지 않겠다는 뜻)'이라고 말한 적 있다. 그 후로 내 별명이 '상황 끝 총리(Basta Kanzler·바스타 칸츨러)'가 됐다. 긍정적 성과가 나타나면서 노조 시위도 줄었지만 그렇다고 노조가 '총리 말이 옳았다'고 대놓고 인정하진 않는다."

 
―어려운 개혁에 어떤 리더십이 필요한가.

"여론조사를 해보자. '우리나라에 개혁이 필요하다'고 90%가 응답한다. 막상 개혁으로 자신에게 조금이라도 피해가 오면 90%가 반대로 돌아선다. 독일이나 한국처럼 어느 정도 부를 축적한 민주사회에서 국민에게 개혁과 변화의 필요성을 설득하기란 매우 어렵다. 더 큰 문제는 개혁 결정은 오늘 내려야 하는데, 효과는 최소한 2~3년 지나서 나온다는 점이다. 이 사이에 선거가 있으면 집권당이 선거에서 패배할 수 있다. 국민은 당장 드러나는 부정적 측면만 보지 앞으로의 긍정적 효과는 보지 않는다. 그럼에도 정치 지도자라면 반드시 국익을 위해 어려운 결정을 내려야만 한다. 어떤 정치인도 선거에 패하고 싶지는 않다. 나도 그랬다. 하지만 정치 지도자란 어떠해야 하는가. 국가 이익을 위해서라면 자기 직책을 잃어버릴 위험 부담도 감내하고 개혁을 추진할 용기를 가진 사람이어야 한다."

―총선 패배로 개혁을 후회하지 않았나.

"안타깝게도 내가 총리직에서 물러난 후부터 개혁 효과가 나타났다. 후임자 메르켈 총리는 내가 한 개혁의 긍정적 과실을 수확한 셈이다. 메르켈 총리도 이 점을 인정했다. 실업률이 극적으로 낮아지고 사회보장제도가 안정적으로 유지되는 지금을 보면 '어젠다 2010'이 얼마나 큰 역할을 했는지 알 수 있다. 정치인으로서 차세대가 미래에 평가내릴 것을 생각한다면 개혁의 성과를 알기에 후회한 적은 없었다."

―당시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와 '제3의 길' '신(新)중도'를 선언했다. 왜 좌파 정당의 노선 변화를 시도했나.

"유럽 중도 좌파 정당들은 '분배를 통한 정의 실현'에 역점을 뒀다. 토니 블레어와 나는 이것만으로 충분치 않다고 판단했다. 경제가 성장해야 그에 기초해 분배도 할 수 있다고 봤다. 독일 사민당과 달리 프랑스 사회당은 좌파 성향이 더 강했고 그런 변화가 없었다. 사회당 출신 올랑드 전 프랑스 대통령은 노조와 국민의 반발을 살 것이라는 우려 때문에 개혁을 못했다. 그 실수를 만회하고자 지금 마크롱 대통령이 개혁을 추진한다. 개혁 여부가 오늘날 독일과 프랑스 경제의 차이를 가져왔다."

―한국 정부는 독일을 모델로 탈원전을 추진한다. 당시 탈원전을 추진하면서 짓던 원전도 공사 중단한 적 있나.

"그건 없었다. 우리는 원전 건설을 신규로 허가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밝혔다. 그리고 에너지 대기업들과 토론을 통해 어떤 시점에 탈원전을 할 것인지 합의를 이룬 뒤 법안을 마련했다. 기업들은 40년이 필요하다고 했고, 연정 파트너 녹색당은 25년을 주장했다. 그 중간쯤인 2032년에 원전을 통한 마지막 전력 생산을 하기로 합의했다. 탈원전을 몇년 내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누구도 단언 못한다. 독일은 그 정도면 대안을 마련할 수 있다고 봤기에 시한을 그리 정한 것이다. 메르켈 정부에서 탈원전 법안을 무효화했다가 후쿠시마 사고 이후 재추진했다. 그런데 2032년이 아니라 2022년으로 앞당겼다. 이 결정은 잘못됐다고 본다. 너무 촉박하다. 탈원전 시한을 정할 때는 대체 에너지원이 충분히 마련돼야 한다. 우리는 신재생 에너지에 엄청나게 투자했다. 독일은 햇빛이 많지 않아 태양광은 충분치 않았고 풍력에서 특히 세계적으로 앞서나가게 됐다."

―에너지 기업과 합의는 누가 끌어냈나.

"내가 직접 몇년에 걸쳐 토론했다. 기업과 합의는 2002년 성사됐다. 정부가 연방 하원의 다수석을 차지하고 있어 법안을 그냥 통과시켜도 그만이었다. 하지만 탈원전은 정부 의지뿐 아니라 에너지 기업도 합의하는 것이 중요하고 적절한 에너지 대안이 있어야만 합의도 이뤄질 수 있다. 이해 당사자를 참여시켜 합의를 이루는 것은 시간도 많이 걸리고 과정도 힘든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정치 지도자는 바로 이런 일 하라고 있는 존재다. 우리가 하는 일이 시대 흐름에 맞고 진정한 의지가 있다면 협상에 드는 시간과 노력은 즐겁게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아래는 김동연 경제부총리가 2017년 9월15 조선일보와 가진 인터뷰 내용. 

 

 

김동연 경제부총리

김동연 경제부총리가 한국 경제가 재도약하려면 고용의 안정성과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맞교환하는 '사회적 대타협'이 절실하다는 소신을 밝혔다.

김 부총리는 지난 15일 정부서울청사에서 가진 본지와 인터뷰에서 "(저성장에 빠진) 우리 경제의 도약을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사회적 대타협"이라며 "고용 안정성과 유연성을 같이 확보하는 '한국형 고용 안정·유연 모델'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새 정부 출범 이후 최저임금 대폭 인상,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성과연봉제 폐지 같은 친(親)노동 정책이 쏟아지는 가운데, 경제부총리가 노동시장 구조 변화라는 새 화두를 던진 것이다.

다만 김 부총리는 고용 안전망 강화를 선결 과제로 제시했다. 그는 "(고용 안전망이 취약한 상태에서는) 일자리를 잃을 경우 곧바로 절벽으로 떨어진다. 고용의 안정성이 어느 정도 확보되지 않은 상황에서는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논의조차 할 수 없다"고 말했다. 현재 우리나라 실업급여는 직전 평균 임금(월급)의 최대 50%를 최장 8개월간 받을 수 있다. 반면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들은 평균적으로 실직 전 월급의 65%를 최장 15개월간 지급하고 있다.

집값 안정 대책으로 거론되는 보유세 인상과 관련, 김 부총리는 "현재로는 검토하고 있지 않지만, 초과다 부동산 보유자에 대한 과세나 보유세·거래세 비중 조정 같은 이슈는 곧 구성될 조세개혁특별위원회에서 논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 부총리는 최저임금 인상에 대해 "내년 상황을 보면서 인상 속도와 폭에 대해 어떤 입장을 취할지 결정하겠다. 그때는 (2020년까지 최저시급을 1만원으로 인상한다는) 공약에 '문자 그대로(literally)' 구속받지 않고 신축적으로 하겠다"고 답했다.

*아래는 한국경제 주용석 기자가 박승 전 총재를 인터뷰해 2017년 9월25일자에 보도한 기사.

박승 전 한국은행 총재(81)는 지난해 10월 문재인 대통령의 싱크탱크이던 ‘국민성장’에 합류하면서 자신을 ‘중도 실용주의자’라고 했다. 그는 지금도 좌우를 넘나든다. 과거 보수 정부의 경제정책 실패를 질타하고 새 정부의 소득 주도 성장을 지지하면서도 진보 정부가 꺼리는 노동개혁과 규제개혁의 필요성을 역설하는 식이다.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을 놓고 진보와 보수의 갈등이 계속되는 가운데 지난 21일 서울 평창동 자택에서 박 전 총재를 만났다.

▷지금 우리 경제를 어떻게 진단하십니까.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만 해도 연 4~5% 성장했는데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선 연 2~3%대로 주저앉았습니다. 성장 환경이 달라졌는데 보수 정부에서 수출 주도, 대기업 주도로 성장하는 박정희 시대의 산업화 모델을 그대로 쓰면서 경제의 역동성이 떨어졌습니다. 지금은 낙수효과 엔진이 고장났습니다. 수출은 과거처럼 우리 경제를 끌고 갈 힘이 없습니다. 대기업이 국내 투자도 잘 안 하고 설령 투자를 해도 고용이 거의 안 늘어요.” 

▷그래서 소득 주도 성장을 지지하는 건가요.

“소득 주도 성장은 수요 측면의 성장 엔진입니다. 소득재분배 정책을 통해 민간 소비를 늘려주는 겁니다. 과거처럼 선(先)성장, 후(後)복지가 아니라 성장·복지 병행 정책으로 가는 거예요. 이것이 소득 주도 성장의 핵심인데, 이것만으로는 안 됩니다. 좋은 물건을 싸게 생산해서 국제 경쟁력을 갖추는 공급 측면의 성장 엔진이 필요한데, 그걸 위해선 생산성 혁신을 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려면 노동개혁, 규제개혁을 해야 합니다.” 

▷문재인 정부의 지지 기반이 노동계인데, 노동개혁이 잘 될까요.

박승 전 총재가 대학생 시절 쓴 일기를 보여주고 있다. 박 전 총재는 자신의 일기를 모두 보관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래도 노동개혁을 안 하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대선 후) 문 대통령에게 노동개혁이 필요하다는 말을 한 적도 있습니다.”

▷노동개혁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 것입니까.

“한국은 노조가 꼭 필요한 영세 사업장에는 노조가 없고, 노조가 없어도 되는 고임금 사업장에는 강성노조가 있어서 노동 기득권을 형성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정부가 노동 여건을 개선하고 복지를 늘려야 하지만 동시에 노조도 산업 평화를 위해 불합리한 투쟁을 자제해야 합니다. 파업 없는 노사 관계를 위해 노사분규 중재기구를 둬 파업 전에 반드시 이 기구를 거치도록 하고 중재기구의 반대에도 파업하려면 조합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하도록 하면 좋겠다는 아이디어를 (저는) 갖고 있습니다.”

▷규제개혁도 속도가 더딥니다. 

“서비스 규제 개혁안은 여야가 다 좋다고 하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문제 되는 부분이 있다면 그걸 빼고라도 빨리 처리해야 합니다. 특히 4차 산업혁명에 대응하려면 규제개혁이 절대 필요합니다. 드론도, 빅데이터도, 인터넷뱅크도 규제가 풀려야 제대로 작동을 할 텐데 참 답답해요.” 

▷‘2020년까지 시간당 최저임금 1만원’ 정책은 어떻게 보십니까.

“최저임금이 최저생계비도 보장 못 하는 현실에서 최저임금을 올리는 건 맞습니다. 하지만 기업이나 산업, 영세 사업장이 견뎌낼 수 있는 범위를 감안해야 합니다. 무리하게 목표를 정해서 ‘언제까지 1만원까지 올려야 한다’고 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어느 정도 인상률이 적당할까요. 

“아무 계산 없이 구체적인 숫자를 제시할 순 없지만 최저임금을 올리고 정부가 (인상분 일부를) 보전해주는 건 잘못이라고 봐요. 정부가 보전해준다는 건 비정상입니다. 그 돈이 하늘에서 떨어진다면 모를까, 결국 세금으로 주는 건데 지속가능한 것도 아니고요. 정부가 보전해주지 않아도 되는 범위만큼만 올려야 한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정부가 복지를 확대하면서 ‘서민 증세는 없다’고 했습니다.

“여러 가지 복지 공약을 하면서 마치 증세는 없는 것처럼 하는 건 잘못입니다. 정직해야 합니다. 국민에게 복지를 주는 것만 약속할 게 아니라 고통 감내도 동시에 요구해야 합니다. 증세를 안 하면 결국 재정적자를 키우거나 복지를 후퇴시킬 수밖에 없어요. 정부는 ‘5년간 이러이러한 복지를 주겠다. 대신 세금은 얼마를, 어떻게 걷겠다’는 로드맵을 내놔야 합니다.” 

▷증세는 어떻게 하는 게 바람직합니까. 

“중장기적으로 볼 때 법인세, 소득세, 종합부동산세, 그러고도 모자라면 부가가치세 순으로 해야 한다고 봅니다. 소득세는 고소득자가 더 부담하더라도 적어도 중산층 이상은 올려야 한다고 봅니다. 법인세도 그렇습니다.”

▷법인세는 세계적으로 내리는 추세입니다.

“다른 나라는 법인세가 높기 때문에 낮추는 겁니다. 미국은 법인세 최고세율이 30%가 넘습니다. 우리는 법인세 명목세율이 22%지만 실효세율은 (각종 비과세·감면 때문에) 10%대 중반 아닙니까. 지금 기업들이 쌓아둔 현금성 자산만 200조원입니다. 법인세 인상은 단순히 복지 재원 문제가 아니라 정부가 세금을 걷어서 기업이 안 하는 고용과 투자를 대신 하고 일자리를 늘리라는 의미도 있습니다.”

▷부동산 문제는 어떻게 보십니까. 

“우리는 해방 이후 지난 정부까지 모두 부동산을 경기 부양 수단으로 봤습니다. 그 결과 지난 50년간 물가가 30배 정도 올랐는데 땅값은 3000배 뛰었습니다. 최근에도 경제성장률보다 집값 상승률이 훨씬 더 높았습니다. 그 결과는 ‘빈곤화 성장’입니다. 경제는 성장했는데 삶의 질은 갈수록 후퇴하는 거예요. 부동산 가격 상승은 양극화의 근본 원인이고 (생산) 원가를 상승시켜 경쟁력을 약화시키죠. 그래서 부동산 경기 부양은 일시적으로 남고, 영원히 밑지는 정책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합니까. 

“부동산을 경기 부양 수단이 아니라 국민생활 안정 수단으로 봐야 합니다. 부동산을 재산 형성 수단에서 제거하라는 겁니다. 그렇다고 지금 부동산 값을 떨어뜨리면 문제가 복잡해집니다. 제 주장은 ‘장기적으로 부동산 값을 현상 유지하면서 가계 소득을 계속 올려주라’는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종합부동산세를 강조하는 겁니다. 한국은 보유세가 낮습니다. 집값 대비 보유세가 미국이 1.5%, 일본이 1%인데 한국은 0.15%입니다. 보유세를 올리고 거래세는 낮춰야 합니다.”

▷미국 중앙은행(Fed)이 양적완화를 끝내려 하고 있습니다. 한은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미국 정책금리가 2년쯤 뒤에는 연 3% 수준으로 갈 가능성이 있습니다. 우리가 당장 금리를 안 올린다고 해도 내년부터는 달라질 겁니다. 우리 경제 성장이 정상화될 때 적정금리는 연 3% 내외라고 봅니다.”

박승 전 한국은행 총재는 대학 교수, 청와대 경제수석, 장관, 한은 총재를 모두 지낸 흔치 않은 이력을 갖고 있다. 2012년 대선과 올해 대선에서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를 도왔다. 이번 대선에선 문 후보의 개인 싱크탱크이던 ‘국민성장’의 자문위원장을 맡았다. 화려한 이력과 달리 그는 ‘흙수저’다. 논밭에서 일하고 땔감을 해가며 중·고등학교를 다녔고 대학 시절에도 농사를 짓다가 시험 때만 서울로 올라가 공부한 적이 많았다. 그는 인터뷰에서도 “어릴 적 논에서 일할 때 농민들의 땀 냄새, 흙냄새, 푸른 모 냄새가 어우러진 냄새가 내 코에 입력돼 70년이 지나서도 머리에 남아 있다”고 했다. 그 냄새를 떠올리며 자신의 호를 ‘푸른 벼’라는 의미의 청도(靑稻)로 지었다.
 
한은에서 첫 사회생활을 했으며 교수, 장관 등을 거쳐 2002년 김대중 정부 말기부터 2006년 노무현 정부 중반까지 한은 총재를 지냈다.

△1936년 전북 김제 △이리공고, 서울대 경제학과 졸업 △미국 뉴욕주립대 경제학 박사 △중앙대 정경대 경제학과 교수 △청와대 경제수석(1988년) △건설부 장관(1988~1989년) △한국경제학회장(1999~2000년) △한은 총재(2002~2006년) △‘국민성장’ 자문위원장(2016~2017년)

‘절절포’(절대 절대 포기하지 말자). 임종룡(58) 금융위원장 하면 떠오르는 단어다. 농협금융지주 회장 시절 금융규제 완화 노력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취지로 했던 말인데, 금융위원장 시절엔 금융개혁을 강조하는 의미로 확장됐다. 금융위원장 부임 일성으로 “국가경쟁력보다 뒤처져 있는 금융산업 경쟁력을 어떻게 높일 것인가가 저한테 주어진 소명”이라고 밝혔다. 그리고 재임 기간 인터넷은행 출범,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 도입 같은 금융개혁 조치들을 잇따라 내놨다. 퇴임을 앞둔 지금 임 위원장이 매진했던 금융개혁은 미완의 과제로 남았다. 퇴임을 앞둔 임 위원장을 지난 16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위원장 접견실에서 만나 소회를 들어봤다. 


 

-새 정부 출범 하루 전에 사표를 낸 것으로 알고있다. 금융감독기관 수장으로서 어떤 소신으로 일해왔나.

“부임할 때부터 금융당국이 모든 것을 지시하고 간섭하고 관여하려고 하는 ‘코치’의 자세에서 벗어나는 것이 급선무라고 생각했다. 시장이 공정한 원리대로 돌아갈 수 있도록 하는 ‘심판관’ 역할을 제대로 해내는 것이 소명이라고 생각했다. 이를 위해 금융혁신을 위해서 불필요한 규제들은 대폭 없애거나 개선했다. 현장에서 시민들이 겪는 금융애로 상황을 파악해 이를 줄이기 위한 혁신적인 서비스가 등장할 수 있도록 노력했다. 업권 내, 업권 간 장벽을 허물고 자유로운 경쟁을 유발해 금융 산업의 국제경쟁력 강화를 위한 혁신을 이끌고자 했다.”

-좀 구체적으로 말해달라. 

“인터넷 전문은행이 지난 4월 출범해 24시간 영업을 하고 있다. 또 16년 만에 우리은행이 민영화에 성공했고 22년 만에 보험업권 내 상품가격 등을 규율하던 각종 규제가 철폐됐다. 증권업에서는 초대형 투자은행(IB) 육성을 위해서 자기자본 4조원이 넘는 회사들에 한해 7월부터 발행어음 업무를 시작할 수 있도록 했다. 이를 통해 IB들이 기업금융에 집중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했다.” 

 

 
 

 


-아쉬운 부분은 없는가. 

"가장 아쉬운 점은 은행법, 자본시장법 등 금융개혁 입법이 아직 마무리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인터넷 은행이 금융시장의 혁신을 유발하는 건강한 메기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IT(정보기술)산업이 주도해서 금융과의 융합을 추진해 기존 은행과는 차별화된 서비스들을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인터넷은행에 한해서만 ‘은산분리’(산업자본의 은행 지분 소유 한도 4% 제한)를 완화해주기위한 법적 기반이 마련되지 못했다. 한국거래소를 지주회사로 개편해 시장에서 경쟁을 시키려 했으나 역시 관련 법안이 계류 상태다. 세계적으로 거래소들을 지주회사 체제로 개편해 혁신을 도모하는 추세다. 우리는 이미 늦었다. 새 정부에서 하루속히 이들 법안이 입법화 돼 국제적인 금융 산업의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기를 소망한다." 

-금융업권 간의 경쟁이 제한적이라는 지적이 있다. 

"우리나라의 금융 시스템 자체가 전업주의에 기초해 있기 때문에 한꺼번에 금융업권 간 장벽을 모두 허무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금융소비자들 사이에서 중요성이 높아지고 있는 자산운용 등 몇몇 분야에 한해서는 증권과 보험, 보험과 은행, 은행과 증권의 업무를 분리하고 있는 장벽을 낮춰야 한다. 그래야 금융기관들이 활발한 경쟁을 통해 고부가·혁신 서비스를 내놓을 수 있다.” 

 
 

 


-금융기관들의 업권 이기주의도 문제 아닌가. 

“그렇다. 일부 규제들은 금융권 스스로 원하고 있다. 금융회사들은 규제가 있어서 편하게 장사를 할 수 있는 측면도 있기 때문이다. 이제 금융회사들도 바뀌어야 한다. 경쟁을 하려고 해야 한다. 우리나라 제조업이 금융업보다 경쟁력이 높은 것은 국내에 안주하지 않고 해외에서 치열하게 경쟁했기 때문이다. 금융 산업도 마찬가지다. 서로를 막고 있는 장벽을 깨고, 경쟁하고, 해외로 진출해야한다. 경쟁 과정에서 살아남기위해서는 혁신을 유발해야 한다. 앞으로 그런 혁신이 이뤄지지 못하면 우리나라의 국가 경쟁력이 훼손될 것이다. 금융산업이야말로 고부가가치 산업이다.” 

-대우조선해양 채무재조정에 관해서는 소회가 남다를 것 같다. 대우조선 사태가 남긴 교훈은 무엇인가.

“기존 채권단 주도의 구조조정은 이제 한계에 이르렀다는 사실이다. 채권은행 입장에서는 단기적인 경영실적 악화를 우려해 한계기업에 대한 적극적인 구조조정을 미룰 수 있다. 기업들이 구조조정의 적기를 놓치면 그만큼 국가 경제 전체의 경쟁력이 떨어지는 것 아닌가. 이미 자본시장에는 지난 10여년간 크게 성장해온 사모펀드(PEF)를 중심으로 역량있는 인재들이 많다. 이들이 구조조정 대상 기업을 사서, 경쟁력 있는 기업으로 탈바꿈시켜 부가가치를 높이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법원도 향후 프리패키지드 플랜(pre-packaged plan·워크아웃과 법정관리의 장점을 합친 새로운 구조조정 제도)등을 통해 기업 구조조정 과정에서 중추적 역할을 담당할 것이다.” 

 


-한진해운에는 금융논리가, 대우조선에는 산업논리가 각각 다르게 적용되었다는 지적도 있다.

"결과만을 놓고 보면 마치 원칙이 달랐다는 인상을 불러일으킬 수 있지만 사실 2년간 기업 구조조정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적용한 원칙은 두 가지였다. 먼저 구조조정은 결국 이해관계인들의 손실 분담에 대한 합의가 전제되어야 한다는 점이었다. 손실을 좀 감수하더라도 더 큰 회수 가치를 얻기 위한 합의가 제대로 이뤄져야 국책은행에서도 지원을 할 수 있다. 또 이해관계자들이 자구노력을 보여야 한다는 점이었다. 대우조선 채권단 등 이해관계자들은 법정관리로 가는 것이 아니라 손실을 조금씩 감수하고 구조조정을 하겠다는 선택을 했다. 결과 여부만 놓고 다른 기준이 적용되었다고 말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그렇지만 대우조선의 회생 여부에 따라 대우조선 채무재조정에 대한 평가가 달라질 것이다.

“생존 여부는 장담할 수 없다. 조선업황 개선, 임직원들의 경영능력 등에 좌우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적어도 대우조선은 현재 구조조정을 통해 금융위가 목표로 했던 ‘작고 단단한 경쟁력을 갖춘 조선사’로 거듭나기 위한 최적의 여건은 갖췄다고 판단한다. 일단 재무구조 건전성 측면에서 부채율이 200%대로 줄었고 산업구조도 세계적으로 경쟁력 있는 상선과 방산을 강화하고 플랜트는 대폭 줄였다.” 

 


-재임 기간 가계부채가 1300조원을 훌쩍 넘어서면서 우리 경제의 리스크로 부상했다.

“추세적으로 가계부채는 완화국면이다. 갚을 수 있는 만큼만 돈을 빌리게 해 처음부터 나눠 갚게 하는 ‘여신심사가이드라인’이 전체 금융권으로 도입되면서 은행들이 리스크 관리를 보다 철저히 하고 있다. 시장 환경도 금리는 오름세고 부동산 시장이 서서히 안정화하면서 대출수요가 감소하고 있다. 무엇보다 대출자의 ‘빚 갚는 능력’을 종합적으로 살피는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이 여신관리 지표로 활용된다면 금년 중에 증가율이 한자리 수 이내로 줄어들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2014년 시행된 주택담보대출비율(LTV)과 총부채상환비율(DTI) 완화 조치가 7월 말 끝난다. 각각 70%, 60%인 LTV·DTI를 둘 다 50%로 되돌려야하나. 

“그렇지 않다. LTV, DTI는 원래 금융회사의 건전성 장치다. 이걸 움직이는 것 자체가 경제주체에게 좋지 않다. 이 비율은 상수로 두고 믿음을 줘야 한다. 더욱이 가계부채 문제는 LTV, DTI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 결국 일자리 정책, 재정 정책 등을 통해 가계의 소득을 높이는 종합 처방이 이뤄져야 한다.”

-문재인정부가 대선 공약으로 내건 ‘가계부채총량 관리제’는 현실성이 있나.

“가처분 소득 대비 부채비율을 (150% 이하로) 관리하겠다는 방향은 타당하다. 다만 공약에서 제시한 150% 기준을 너무 엄격하게 적용하면 실물 경제에 부정적 영향이 있을 수 있다. 지금도 153% 정도다.”

 


-문재인정부는 빚 갚을 능력이 없는 채무불이행자 203만여명의 빚을 탕감해주겠다는 공약을 내걸고 출범했다.

“빚을 갚을 수 없는 개인에 대한 구조조정, 경제적 재기를 위해 채무를 조정해주는 제도 자체는 필요하다. 다만 이 경우 모럴 해저드(도덕적 해이)를 방지하기 위한 세심한 세부설계가 관건이다. ‘빚은 끝까지 갚아야만 하는 것’이란 대원칙을 흐트러뜨리지 않기 위해 어떤 경우든 빚을 전액탕감해줘선 안 된다. 개인이 빚을 감당할 수 있는 범위 내로 조정해 주는 것, 성실히 상환했을 경우 더 큰 혜택이 돌아갈 수 있도록 인센티브를 부여하는 조치가 병행돼야 한다.” 

-법정 최고이자율 상한선을 20%로 제한하겠다는 문재인정부 공약에 대해서도 찬반 여론이 팽팽하다.

“부채를 일정 수준 이하로 관리하는 것, 서민들의 이자 부담이 적어질 수 있도록 목표를 설정하고 방안을 마련하는 것 자체는 바람직하다. 다만 추진과정에서 특정 수치를 목표치로 제시하고 융통성 없이 추진하면 부작용을 유발할 수 있다. 세심한 접근이 필요하다. 예컨대 최고 이자율을 낮추려 한다면 ‘20%’라는 특정 수치를 당장 제시하기에 앞서 먼저 대부업체들의 영업상황, 비용구조를 얼마까지 낮출 여지가 있는지를 따져보는 것이 먼저라는 얘기다. 무리하게 이자율을 낮추면 자칫 양성화되었던 대부업체들을 음지로 내보내고, 저신용자들을 불법사채 시장으로 내모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새 정부의 정부조직 개편을 앞두고 금융의 감독 기능과 정책 기능을 나누자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정부조직개편 논의는 5년마다 등장하는 단골 소재였다. 역사적으로 재무부, 재경원, 재정경제부, 금감위 등 모든 형태를 다 취해봤다. 과거의 경험을 통해 얻어진 교훈은 결국 ‘개편을 위한 개편’은 비효율과 혼란만 가중시킨다는 것이다. 금융감독과 정책수립 기능을 무 자르듯이 분리한다는 것 역시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다. 정책이 있고 또 이를 집행하는 기관이 있다. 억지로 분리한다고 해도 되레 기관 간 ‘밥그릇 싸움’만 유발할 것이다. 이미 새 정부가 출범했고 해결해야 할 금융 과제들은 산적해 있다. 개편 논쟁으로 시간을 끌 여유가 없다. 현 체제의 모순이 있으면 이를 조금씩 보완하는 방향으로 가는 것이 타당하다고 본다.“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1959년 전라남도 보성 출생 △영동고, 연세대 경제학과 졸업. 오리건대학교 대학원 경제학과 석사 △ 재정경제부 금융정책국 은행제도, 증권제도, 금융정책과 과장 △주 영국 대사관 △ 재정경제부 금융정책국 금융정책심의관 △ 기획재정부 경제정책국 국장 △ 기획재정부 기획조정실 실장 △ 대통령실 경제비서관 △ 대통령실 경제금융비서관 △ 기획재정부 제1차관 △ 국무총리실 실장 △ NH농협금융지주 회장 △ 제5대 금융위원회 위원장


대담=조남규 경제부장, 정리=김라윤 기자, 사진=이재문 기자

‘중소기업 중심의 경제구조’를 대선 공약으로 내세웠던 문재인정부가 출범했다. 중소기업을 더 키워서 가계 소득을 늘리면 내수와 투자, 고용도 늘어난다는 ‘분수 효과’(Fountain Effect)에 바탕한 경제정책이 예상된다. 이런 문재인정부 시대에 한층 어깨가 무거워진 금융기관이 IBK기업은행(이하 기업은행)이다. 기업은행은 중소기업이 위기에 처할 때마다 그 존재 이유를 선명히 드러냈다. IMF 외환위기와 카드 사태, 글로벌 금융위기 파고가 거셌을 때 기업은행은 어려움에 처한 중소기업 곁을 지켰다. 외환위기 당시 전체 은행권이 중소기업 대출을 13조9000억원가량 줄일 때 기업은행은 오히려 6000억원을 더 늘렸다. 카드사태와 글로벌 금융위기 때도 기업은행은 각각 전체 은행권의 중소기업 대출액의 74%, 91%를 책임졌다. 당시 살아난 수많은 중소기업들은 위기 이후 더 큰 회사로 성장했고 기업은행의 충성 고객이 됐다. 

 

 

 

 

 

취임 5개월을 맞은 김도진 IBK기업은행장이 지난 15일 서울 중구 을지로 기업은행 본점 행장 접견실에서 세계일보와 인터뷰를 갖고 기업은행의 역할을 기존의 ‘자금 공급자’ 차원을 넘어 중소기업의 성장단계별 애로사항 해소에 보다 능동적이고 창의적으로 개입하는 ‘동반자 금융’ 수준으로 끌어올리겠다는 포부를 밝히고 있다.
남제현 기자


“지금까지 기업은행이 ‘자금 공급자’, ‘금융 조력자’ 등 수동적 역할에 그쳤다면 이제는 중소기업의 성장단계별 애로사항 해소에 보다 능동적이고 창의적으로 개입하는 ‘동반자 금융’으로 발전해나가겠다.”

김도진(58) 은행장은 지난 15일 서울 중구 을지로 기업은행 본점 행장 접견실에서 세계일보와 인터뷰를 가진 자리에서 이 같은 포부를 피력했다. 취임 5개월을 맞은 김 행장은 늘 현장을 강조한다. 지점장 시절 SUV(스포츠유틸리티차량)를 타고 현장을 누비며 2년 연속 전국 실적 1등을 기록했다. 김 행장은 지난 2월 전국 영업점장 회의에서 1000여명의 직원들에게 구두 한 켤레씩 선물하며 현장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새 정부가 중소기업이 중심이 된 경제구조를 만들겠다고 천명했다. 기업은행의 역할이 더 중요해졌다.

“전임 두 정부는 대기업 성장을 도모해 중소기업들이 이를 따라오게 하는 소위 ‘낙수 효과’(trickle-down effect)를 택했다. 현 정부는 중소·중견기업 중심으로 허리와 하부조직을 더 탄탄하게 만드는 ‘분수 효과’가 지금 한국 경제에 더 적정한 성장 패러다임이라고 보고 있다. 기업은행도 정부의 중소기업 정책을 세밀하게 들여다보고 있다. 정부직제가 갖춰지면 기업은행도 긴밀한 역할을 할 수 있는 부분이 있을 것이다. 그 일환으로 우리는 올해 중소기업 대출 목표를 지난해보다 1조5000억원 늘린 43조5000억원으로 설정했다.”

 


―다른 시중은행들도 중소기업 대출을 한다. 기업은행만의 차별점은 무엇인가.

“중소기업 대출규모 면에서 기업은행은 시장점유율이 약 22.7%인 반면 시중은행은 보통 12% 내외다. 10%포인트가량 차이가 난다. 또 기업은행은 신용등급이 낮은 회사와도 거래를 하지만 시중은행은 리스크 관리 차원에서 신용등급이 높은 회사 위주로 거래한다. 영세 소기업이 양질의 고객이 아니라고는 할 수 없지만 기업은행에서 대출받은 26만 개 기업 중 약 94%가 20인 이하 영세 소기업이다. 기업은행이 시중은행에 비해 대손충당금 규모가 높고 수익이 낮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 

―중소기업이 커 나갈 수 있는 그런 마중물 역할을 하는 데서 기업은행의 존재 의의가 있는 것 같다.

“그렇다. 우리 설립목적이 그것이다. IMF 외환위기, 카드 사태, 글로벌 금융위기란 세 번의 금융위기에서 시중은행들은 중소기업에 대한 대출 문을 닫았다. 그러나 기업은행은 대출을 늘렸고 기업들이 죽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었다. 이때 기업은행의 자산도 많이 늘었고, 거래기업도 증가했다. 경기가 좋을 때는 기업은행 대출이 감소하는 반면 시중은행은 (대출이) 늘어난다. 경기가 어려울 때는 반대현상이 나타난다. 우리는 이것을 경기조절자 역할이라고 한다.” 

 


―중소기업을 성장시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안정적으로 대출을 해주려면 우선 기업은행도 수익을 내야 하지 않겠나. 

“우리도 수익률을 제고해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대손충당금을 적게 쌓아야 한다. 또 양질의 고객들을 끌어들여야 한다. 영세 소기업 중에서도 좋은 회사들이 많이 들어와 충당금을 적게 쌓고 그러면서도 이 회사들이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게 우리의 임무다. 직원들이 현장을 뛰면서 유망한 중소기업을 발굴하도록 독려하는 이유다.” 

―영세 중소기업 대출이 많아서 건전성 관리가 중요할 것 같다. 

“건전성이 나빠지면 성장이 유망한 중소기업에 대한 지원 여력이 위축될 수밖에 없는 게 사실이다. 그래서 신용평가나 조기 경보 등 사전 건전성 관리를 강화하고 기업이 일시적으로 유동성 위기를 겪으면 긴급 유동성 자금을 지원하고 있다. 기업이 부실화되면 적극적인 구조조정을 통해서 경영정상화도 지원한다. 직원들도 기업을 찾아 (경영상태 등) 상황을 파악한다. 외환위기, 카드 사태, 글로벌 금융위기 때도 영세 중소기업의 대출 연체율이 평시보다 크지 않았다. 앞으로도 영세 중소기업의 성장과 경영안정 지원을 위해 노력하겠다.”

―창업 단계부터 지원을 해주면 이들이 기업은행의 우량 고객으로 성장해갈 수 있지 않나.

“물론 우리도 창업에서 성장, 성숙단계까지 계속 지원하고 있다. 다만 지원이 많지 않은 게 우리나라 현실이다. 기업은행과 벤처캐피털, 기업체들이 이들을 지원하지만 자본 규모나 공간적, 금융적으로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제도적으로 중소기업이 중견기업으로 성장하면 큰 불이익이 없어야 하는데 이들이 중견기업으로 올라가면 (그동안 받았던) 혜택이 많이 사라진다. 그래서 중소기업들이 (중견기업으로 성장을) 많이 안 하려고 한다. 그러면서 대기업도 함께 성장해야 하는 등 여러 상황을 고려해야 한다.” 

 


―금융지원 외에 어떤 중소기업 지원책을 시행하고 있나. 

“기업은행은 11개의 어린이집이 있는데 시설이 상당히 좋다. 중소기업 근로자들이 이곳을 이용할 수 있도록 하겠다. 또 중소기업들이 스마트워크처럼 이용할 수 있도록 전국 기업은행 점포의 유휴공간을 살펴보고 있다. 일과 가정이 양립할 수 있도록 중소기업 근로자들의 복지를 간접적으로 지원해나가겠다. 기업은행은 대학생들에게 취업 멘토링 서비스와 함께 장학금을 주고 있는데 이 학생들을 전국 중소기업 근로자 자녀와 연결해 무료과외를 하도록 하는 프로그램도 진행 중이다.” 

―취임 후 줄곧 디지털을 강조하고 있는데. 

“기존의 국내 핀테크는 개인, 소매금융을 대상으로 발전했지만 기업고객을 위한 핀테크는 미미했다. 기업은행은 중소기업에 특화된 핀테크를 개발할 계획이다. 취임 후 첫 조직개편을 통해 중소기업 핀테크 모델을 발굴하는 ‘기업핀테크채널부’도 신설했다. 기업의 카드매출 내역이나 부가세 환급 예상액 등을 모바일로 확인하고, 온라인을 통한 크라우딩펀딩을 이용해 자금이 필요한 중소기업과 투자자를 연계하고 있다.”

―해외시장이 점차 중요해지고 있다. 향후 전략은 무엇인가. 

“기업은행은 수익의 약 90%가 이자수익이다. 이것만으로는 은행이 성장할 수 없다. 해외로 나갈 수밖에 없다. 기업은행의 특성에 맞게 우리나라 중소기업이 많이 진출한 곳으로 나갈 계획이다. 베트남과 인도네시아 같은 나라다. 현재 베트남에는 점포가 2개 있는데 법인을 설립하지 않는 한 점포를 늘리기가 어려워 보인다. 그래서 본부 파견 인력을 늘려 영업력을 확대할 계획이다. 인도네시아는 현지 은행을 인수하는 방식으로 진출할 계획이다. 해외진출 과정에서 공적개발원조(ODA) 사업과 연계해 해당 국가에 중소기업 금융지원에 대한 경험, 노하우, 시스템 등을 전수해주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금융기관 성과연봉제 논란이 뜨겁다. 

“현 정부도 성과연봉제를 재검토하고 노사가 다시 합의하면 새로운 것을 만들 수 있다는 입장이다. 완전한 호봉제를 유지하기보다는 (노사가) 절충점을 찾아야 한다.” 

―정부가 비정규직의 처우 개선에 관심이 많다. 기업은행은 상황이 어떤가.

“기업은행의 준 정규직은 급여만 차이가 날 뿐 정년 보장 등 복지는 정규직과 동일하다. (그럼에도) 준 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명제에는 충분히 공감한다. 다만 준 정규직들도 (정규직과 비교해) 자신들의 부족한 부분을 학습해 대출, 외환, 금전신탁 업무 등 정규직 업무를 분담해줄 수 있어야 한다.”

◆김도진 IBK기업은행장 약력 
 
●1959년 경북 의성 출생 ●대륜고, 단국대 경제학과 졸업 ●1985년 기업은행 입행 ●인천 원당지점장 ●본부기업금융센터장 ●카드마케팅부장 ●대외협력부장 ●전략기획부장 ●남중지역본부장 ●남부지역본부장 ●경영전략그룹장(부행장) ●제25대 기업은행장



정리=염유섭 기자 yuseoby@segye.com 

대담=조남규 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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