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1 테러 이후엔 미국 어느 곳을 가나
경비가 삼엄합니다.
미국 의회도 예외는 아니지요.
의회 안팎 가릴 것 없이
총을 든 무장 경찰들이 곳곳에 포진하고 있습니다.
그들 옆을 지날 때면
죄 지은 것도 없는데 괜히 주뼛합니다. -_-;;
민의의 전당은 이같은 철통 경계 속에
주인인 국민들에게 개방되고 있습니다.
의회 투어 접수 창구 앞에는
전 세계와 미 전역에서 찾아온 투어 인파로
연일 장사진을 이룹니다.
저는 일반 투어 대신 워싱턴 타임스 인턴 자격으로
하루 짜리 출입 기자증을 발급받아 견학에 나섰습니다.
덕분에 일반 투어객들에겐 출입 제한 구역인
기자실이나 원내총무실 같은 곳도 둘러볼 수 있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제일 궁금했던 의회 기자실.
제가 가본 곳은 상원 기자실이었는데
흡사 청계천 중고 책방에 온 듯한 느낌이더군요.
백악관 기자실도 협소해서 올 여름 리모델링한다는데,
좁기로는 의회 기자실도 만만치 않습니다.
이 곳은 워싱턴 타임스 부스입니다.
워싱턴 타임스 부스 건너 편이
휴게실 겸 행정실이고요.
행정실 안 쪽은 뉴욕 타임스나 워싱턴 포스트 같은
이른바 메이저 언론의 부스인데
마이너들이 모여있는 기자실 보다
다소 넓어 보였습니다.
가방 크다고 공부 잘하는 것은 아니지만
미국 메이저 언론의 취재 조건은 마이너에 비해
여러 면에서 유리하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기자실을 둘러보면서 부러웠던 점은
기자실에서 문 하나만 열고 나가면
곧바로 상원 본회의장 2층 기자석과 연결되도록
배치한 구조였습니다
.
<사진 왼쪽 상단 2층이 기자실과 연결된 기자석입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국회 출입 시절
본회의장과 기자실이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
불편했던 기억을 갖고 있거든요.
마감 시간 임박해서
본회의장과 기자실 왔다갔다 하다보면
머리에서 연기납니다.
제가 상원 본회의장을 찾은 날은
'필리버스터'(의사진행방해) 문제로 공화당과 민주당이
대치하고 있을 때였는데
운 좋게도 본회의장에 앉아있는
존 케리 상원의원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다른 때는 어떤지 몰라도
그 날은 상원 본회의장에
케리 의원을 포함해 3명 뿐이더군요.
워싱턴 타임스 상원 출입기자인 스테판 다이난은
“상원 의원쯤 되면 워낙 바빠서 평상시 본회의 출석율은
대체로 저조한데 투표율은 매우 높다 ”고 설명했습니다.
여기는 옛 상원 본회의장입니다.
1868년 3월 30일 앤드루 존슨 대통령에 대한
탄핵 표결이 이뤄진 곳으로 유명하지요.
당시 탄핵 표결 과정에서
미 역사상 가장 용기있는 의원으로 평가받는
영웅이 한 명 탄생합니다.(제 블로그의 ‘용기있는 의원’ 참조)
로툰다 홀로 가는 도중에 들른
톰 딜레이 공화당 하원 원내총무실입니다.
그는 한국 방문 당시
여행 경비를 로비 단체로부터 받았다는
이른바 ‘공짜 여행 스캔들'에 휩싸여 고생 좀 하고 있죠.
그런데 그건 그거고
하원 다수당인 공화당 원내총무로서의 위상은
막강하다는 것이 다이난 기자의 설명입니다.
초선인 경우에는 민주당 의원들마저도
상임위 배정 등 이런 저런 사안에서
다수당 원내총무의 눈치를 봐야 할 정도라고 합니다.
한국 기자들 용어로 '뻗치기'라는 게 있습니다.
코멘트가 필요한 취재원을 죽치고 기다리는 일입니다.
미국 기자들도 이 문 앞에서 '뻗치기'를 한다는군요.
그러다 취재원이 나오면
거머리처럼 달라붙는거죠.
참고로 상원 의원(임기 6년)은 주의 크기에 관계없이
50개 주에서 2명씩 100명을 선출하고요,
임기 2년의 하원 의원 수는 인구 비례로 결정되는데
대략 55만 명에서 60만 명 사이에 한 명씩 뽑습니다.
그러다 보니 캘리포니아 처럼 인구가 많은 주에서는
하원 의원이 53명에 이르지만
알라스카나 델라웨어, 몬태나, 노스 다코타, 사우스 다코타,
와이오밍 처럼 인구 밀도가 희박한 주에서는
상원 의원은 2명인데 하원 의원은 1명에 불과합니다.
미 의회를 밖에서 보면
의사당 돔이 상징처럼 다가오지만
안으로 들어가면 돔 내부의 로툰다 홀이야말로
미 의회의 심장부라는 생각이 듭니다.
로마의 판테온 신전을 본떴다는 로툰다 홀은
천정의 프레스코화가 압권입니다.
로툰다 홀에 서서 180 피트 위의 천정을 바라보면
브루미디 작품인 ‘조지 워싱턴의 승천(昇天)’이 아스라이 보입니다.
이 작품을 좀 더 클로즈 업을 하면 이렇습니다.
조금 더 확대하면, 워싱턴이 잘 보입니다.
워싱턴이 15명의 여자들과 함께 하늘로 오르는 광경인데
2명은 자유와 승리를, 나머지 13명은
독립 전쟁 후 미 합중국에 가입한 13개 주를
상징한다는군요.
로툰다 홀은 영예로운 시민들의 유해가 조문객을 맞기 위해
잠시 안치되는 장소로도 유명합니다.
2014년 6월 5일 서거한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이 추모객을 맞기 위해
며칠 동안 로툰다 홀에 안치됐고요,
애브라함 링컨과 케네디, 아이젠하워 대통령,
에드가 후버 FBI 국장, 헨리 클레이 상원의원, 더글라스 맥아더,
1,2차 세계대전과 베트남전, 한국전에서 전몰한 무명 용사 등이
이 홀에서 추모됐습니다.
로툰다홀에는 역사적 사건을 소재로 한 명작들이 다수 걸려있는데요
미국 역사화가 존 트룸벌(John Trumbull.1756~1843)의 '미국 독립 선언'이 유명합니다.
미 의회의사당 사이트
이 그림은 트룸벌이 미 의회의 주문을 받아 2년 동안 그린 것으로
당시 영국 식민지였던 미 대륙의 13개주 대표들이 독립선언서 초안을 대륙회의 의장에게 전달하는 모습을 마치 사진을 찍어놓듯이 묘사했습니다.
버지니아주의 토머스 제퍼슨(그림 속에서 독립선언문 초안을 전달하고 있는 빨간 조끼를 입은 인물, 미국 3대 대통령)이 기초한 독립선언문은 장차 전 세계 민주주의 이념의 뿌리가 될 자유와 평등의 이념들을 담았습니다.
"우리는 다음과 같은 것들을 自明한 眞理로 믿는다. 즉, 모든 사람은 평등하게 창조된다는 것, 그들은 창조주로부터 양도할 수 없는 일정한 권리를 부여받는다는 것, 그리고 이에는 삶, 자유 및 행보의 추구가 포함된다는 것, 이러한 권리를 확보하기 위해 사람들 사이에 정부들이 수립되며, 이들의 정당한 권력은 被治者의 同意에서 나온다는 것, 어떠한 형태의 정부라도 그러한 목적을 파괴하는 것이 될 때에는 그 정부를 바꾸거나 없애고 새 정부를 수립하되, 인민들에게 자신들의 안전과 행복을 가장 잘 이룩할 것 같이 보이는 그러한 원칙들에 입각하여 그 토대를 마련하고 또 그런 형태로 권력을 조직하는 것이 인민의 권리라는 것 등이다."
이후 미국의 독립투사들은 왕의 정부 대신에 인민의 동의에 토대를 둔 정부를 수립하기 위해서 싸웠고, 마침내 독립을 쟁취했습니다.
이 그림은 '행운의 지폐'로 알려진 2달러짜리 미국 지폐 뒷면에 인쇄돼 있습니다.
아래는 로툰다 홀의 남쪽에 위치한 옛 하원 회의장입니다.
초창기 미국사에 단골로 등장하는 역사적 현장이지요,
미국 독립전쟁에 참가한 프랑스 정치가 라파예트가
미 의회에서 연설한 첫 외국인이 된 장소이고요,
제임스 매디슨이나 제임스 먼로, 존 퀸시 애덤스, 앤드류 잭슨,
밀러드 필모어 등이 이 곳에서 대통령에 취임했습니다.
특히 '대머리 대통령' 존 퀸시 애덤스와 이 곳과의 인연은 각별합니다.
그가 출마한 1824년 대통령 선거에서는
어느 후보도 과반수 선거인단을 확보하지 못해
헌법에 따라 하원으로 결정권(각 州가 한 표씩 행사)이 넘어갔는데
존 퀸시 애덤스는 1825년 2월 9일 이 곳에서
13개 주의 찬성표를 얻어 대통령에 당선됩니다.
그가 퇴임하자 고향 주민들이 하원 의원으로 추대,
17년 동안 하원 의원으로 이 곳에서 봉사했고요,
자신의 의석에서 쓰러져 숨집니다.
지금은 이 곳이 ‘National Statuary Hall’로 변해
각 주에서 헌정한 조각상들이 전시돼 있습니다.
각자 자신들 주의 대표 선수만을 골라 보낸 조각상들이지요.
버지니아주는 남북 전쟁 당시 남군 총사령관이었던 리 장군,
텍사스주는 텍사스 건국의 아버지 샘 휴스턴.
이런 식으로 50개 주가 2명씩 선발하도록 한 때가 1864년인데
미국 사람들 무슨 일이든 서두르는 법이 없습니다.
50개 주 전부 최소한 1명씩 선발을 마무리한 시점이 1971년입니다.
아직도 5개 주는 나머지 1명을 놓고 고심하고 있답니다.
옛 하원 회의장에서 로툰다 홀로 통하는
문 위에 눈이 머뭅니다.
‘Car of History’라는 조각상인데
‘역사의 수레바퀴’ 정도로 부르면 되겠네요.
역사의 여신 클리오가 시간의 마차를 타고 있는 모습입니다.
수 많은 미국사의 주역들이 이 곳을 거쳐갔지만
오직 클리오 만이 덧 없는 인생사를
말 없이 지켜보고 있다고 생각하니,
마의 태자 무덤가에 서서
신라 천년 사직을 회고한 정비석의 심정이
조금은 공감이 됩니다.
“고작 칠십 생애에 희로애락을 싣고 각축하다가
한 움큼 부토(腐土)로 돌아가는 것이 인생이라 생각하니,
의지 없는 나그네의 마음은 암연(暗然)히 수수(愁愁)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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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의회 견학 과정에서 바쁜 시간을 할애한
워싱턴 타임스 스테판 다이난 기자에게
이 자리를 빌어 다시 한 번 고마움을 전합니다.
솔직히 저도 현장에 있을 때
한창 바쁜 시간에 누가 찾아와서 내 시간 축나면
흔쾌할 수 없었거든요.
마감 시간 걱정하면서
총총히 기자실로 향하는 그의 뒷 모습이
좀체 잊혀지지 않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