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찬 총리의 '3.1절 골프 파문'을 바라보면서
개인적으로 안타까움을 느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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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파문이 그의 사퇴 문제로 비약된 주된 이유는
라운딩 시기와 멤버의 부적절성 탓이기 때문입니다.
'시기'의 문제라면,
지난해 본인이 '식목일 산불 골프' 등으로 곤욕을 치르면서
교훈을 얻었을 법 한데도 다시 반복됐습니다.
'멤버' 문제에 대해서는,
지난해 10월 제가 블로그를 통해 지적하고
총리비서실 관계자에게도 문제제기를 한 바 있으나
역시 무시됐다는 생각이 듭니다.
총리와 그 측근들이 지금 맞고 있는 매는,
그간 언론의 지적과 충고를
'가당치 않다'는 투로 내쳐온 오만이
부메랑으로 돌아온 측면이 있습니다 .
당시 이 총리 골프회동에 관한 저의 문제제기를
이기우 총리비서실장이 진지하게 받아들였다면,
그래서 이 총리의 일정을 보다 엄격히 관리했더라면,
이번 건과 같은 '부적절한' 골프 회동은
성사되지 않을 수도 있었다는 점에서,
안타깝다는 말입니다.
 
 *아래 글은 지난해 10월1일 제 블로그에
 '이해찬 총리와 골프'라는 제목으로 올린 글입니다.  
 
 
 
 {이해찬 총리가 얼마 전
국순당 배중호 사장과 골프 라운딩을 가졌다고 합니다.
용산고 동기 동창 모임이었다는군요.
추석 연휴에 고등학교 친구들과의 라운딩이었으니
지난 식목일 날의 '산불 골프' 때와는 달리,
편안한 자리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모임이 市場에 알려지자
'삐딱한' 촌평들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저런 말들이 있었지만 요지는,
이 총리와 배 사장,
이 두 사람의 만남이 부적절했다는 것입니다.
이런 반응이 선뜻 와 닿지않아
알아봤더니 이랬습니다.
 
 공교롭게도 두 사람이 골프를 친 날은
소주세 인상을 골자로 한 주세법 개정안이
논란끝에 국무회의에서 통과되기 전날이었더군요.
그런데 국순당은 올초
'삼겹살에 메밀 한 잔'이라는 술을 내놓고
소주 시장 공략에 나섰습니다.
'삼겹살에 소주 한 잔'이 보편적인 서민들의 술 자리에
명함을 내민 셈이지요.
 
 도전장을 받은 소주업계는 소주세 인상이
소주 값 인상과 소주 판매량 감소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소주세 인상에 반대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열린우리당의 반발을 무릅쓰고 주세법 개정안을 밀어붙인 이 총리가,
소주 시장 공략에 나선 주류업체 사장과 골프를 쳤다고 하는데,
두 사람이 고등학교 동창이라고는 하지만
하필이면 주세법 개정안 의결을 코 앞에 둔 시점에 쳐야했느냐는
뒷 말이었던 것입니다.
 
 이 총리로서는,
호사가들의 입방아로 일축할 수 있겠지만
총리라는 자리가 그 만큼 엄중하다는 반증이라는 생각입니다.
최근 논란거리가 된 총리의  '대부도 땅'도
총리가 부동산 대책을 책임지는 자리에 없었다면
그처럼 증폭되지는 않았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는 매우 명석한 정치인이었습니다.
다선 의원으로 여야 가길 것 없이
두루 두루 신망이 높았습니다.
정파적이지 않았고 인품도 훌륭했습니다.
특히 여성 단체들의 지지가 높았습니다.
여권 신장 문제에 각별한 관심을 보였기 때문입니다.
소속 정당이 당론으로 반대하는 낙태 문제에서도
그는 정치적 위험을 감수하면서 다른 입장을 표명했습니다.
이 때문에 낙태 반대론자들의 협박을 받아
의회 경찰이 그의 신변 보호에 나서기도 했을 정도입니다.
참모 중에도 좋은 자리는 가급적 여성에게 배려했습니다.
 
 92년 11월,
그에 관한 기사가 실리자
모두가 놀랐습니다.
그를 지지했던 수 많은 여성들은 경악했습니다.
그가 70년대부터 20여명이 넘는 여성들을
성적으로 괴롭혀왔다는 기사였습니다.
의회 윤리위 조사 결과, 이 중 최소 17명의 여성이
그에 의해 성적 괴롭힘을 당한 것으로 결론이 났습니다.
의원실 보좌관과 선거 운동원, 수행 비서 등이
그 대상이었습니다.
어깨에 손을 두르고 입맞춤을 시도하거나
강제로 껴안으려 한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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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의 성추행 행위를 고발하는 한 여성 단체의 포스터>
 
 언론 보도로 사건이 공론화하자
여성의원들이 벌떼처럼 들고 일어났습니다.
여야가 없었습니다.
사건이 터진 타이밍도 최악이었습니다.
한 대법관 지명자의 성추행 의혹 사건이
유야무야된 직후였기 때문입니다.
두 사건은 국민들의 머릿 속에서
하나의 성추문 사건으로 결합했습니다.
순식간에 정치적 쟁점이 됐습니다.
이 사건은 상원 윤리위에 회부되고
공개 청문회 개최 여론이 빗발쳤습니다.
그는 신문과의 인터뷰를 통해
자신에게 제기된 일부 혐의를 시인하고
당사자들에게 사죄합니다.
그의 부적절한 행동이 알코올성 정신장애 탓이라는
의사의 소견서도 첨부됐습니다.
때 늦은 사죄, 공허한 변명으로 치부됐습니다.
 
 의회 윤리위는 95년 9월 6일
그의 알코홀릭 증세를 인정하면서도
'알코홀릭 증세는 면책 사유가 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립니다.
그리고 여야 합의하에 만장일치로
그를 의회에서 추방하기로 결정합니다.
그는 그 다음날 의원직을 사퇴합니다.
부적절한 처신으로
한 순간에 정점에서 나락으로 떨어진
어이없는 인생의 주인공은
미 오리건주 출신의
밥 팩우드 전 상원의원입니다.
 
 
 
 
 
 환상을 품고온 여행자라면,
그랜드 캐년은 실망스러울 수 있습니다.
먹을 것 없는 소문난 잔치처럼.
그렇지 않은 여행자라도,
다리 품이 아깝다는 생각을 할지 모릅니다.
액션 영화를 관람한 후의 허전함처럼.
 

 
 

 저도 그랬습니다.
다른 여행자들과 같은 탄성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간 들어온 그랜드 캐년의 소문이
내 안에 들어와 비현실의 신화로 커간 탓입니다.
 
 

                                                            <사우스림의 서쪽 버스 종착점, 허밋 레스트에서 내려 트레일하다 한 장>
 
 그러나,
 엄청 큰 협곡이로군-.
이렇게 말하고 눈을 돌려버린 계곡은
그렇고 그런 곳이 아니었습니다.
협곡의 단면은 무지개 떡 처럼 대략 12개의 층을 이루고 있는데
최근에 형성된 맨 윗쪽층의 나이가 2억7000만 살.
눈에 보이는 맨 밑바닥층은 18억년 전에 형성된 것입니다.
 


 인류의 시원이 길게 잡아도 500만년 전이라는 사실을 감안하면,
영겁의 시간을 기록해 온 협곡 앞에서
등골이 서늘한 경외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랜드 캐년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것은
대략 1만년 전으로 고고학자들은 추정하고 있고
첫 서양인 방문자인 스페인의 가르시아 로페즈 카드나스가
이 곳에 도착한 시점이 1540년 가을이라 하니,
그랜드 캐년과 인간의 인연은 최근의 사건이랄 수 있습니다.
 




 
 그랜드 캐년은
20억년 가까운 시간대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곳.
단층 속의 화석들이 한 때 이 곳이 바다이기도 했고,
사막이기도 했으며 빙하 지역이기도 했다는 사실을 말해줍니다.
공상과학 영화 A.I.(Artificial Intelligence)에서
바닷 속에 잠들어 있던 주인공 로봇이
미래의 인류에게 발견될 때까지
강물이 협곡을 이루고, 그 협곡이 융기하고,
빙하기와 해빙기가 반복되는 장면으로 시간을 형상화하던 장면이 연상됩니다.
 그랜드 캐년은 우리에게
눈에 보이는 것 너머에 존재하는,
생활의 더께에 덮혀 보이지 않던
그 무엇을 일깨워줍니다.
사람들이 그랜드 캐년을 찾는 이유를
돌아와서야 알게된 듯한 느낌입니다.
살아가는 동안
세상사가 번잡스럽게 느껴질 때,
인간사가 씁쓸한 회의를 안겨줄 때,
가끔씩 별을 바라보는 심정으로
그랜드 캐년을 떠올려 봅니다.
 

 

                                  Via Flickr:stuseeger


 


 
 
 
 
 
 
 
 
 
   
 
 
 
 
 
 
 
 


13일 강릉 MBC 주최의 열린우리당 당의장 후보 합동토론회장. 5월 지방선거 전략과 관련, ‘범양심세력 대연합론’을 펴는 김근태 후보와 ‘중도개혁세력 통합론’의 기치를 든 임종석 후보가 상호 토론에 나섰다.

“많은 분이 (임 후보가) 민주당과의 선거연합에서 (외연을) 확대한 것은 진일보한 것으로 평가한다.”(김 후보)

“처음부터 반한나라당 선거연합이었고 고건 전 총리도 그 대상에 포함된다.”(임 후보)

“저는 대연합을 통한 지방선거 승리를 주장하는데 정동영 후보는 선(先) 우리당 중심 강화론이다.”(김 후보)

“정 후보가 분명한 입장을 보일 필요가 있다고 본다.”(임 후보)

반(反) 한나라당 연합전선이 지방선거 승리의 전제조건이라는 데 두 후보의 인식이 접근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김 후보는 대연합 과정에 ‘기득권’을 내놓을 수도 있다고 말할 정도로 적극적이다.

임 후보도 “허벅지를 베어내는 아픔도 감수하자”고 호소한다. 김혁규 후보도 민주당과의 통합을 고려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에 반발하는 인물이 김두관 후보다. 그는 “우리당이 전통민주개혁세력”이라면서 “당을 먼저 살려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정동영 후보와 같은 방향이다.

하지만 후보 간 연대흐름은 김근태-임종석, 정동영-김두관이 아니라 김근태-김두관, 정동영-김혁규다. 경선 후보들이 비전으로 선택받기보다는 맞수의 득표력을 줄이기 위해 명분 없는 짝짓기를 시도하고 있다는 지적은 그래서 나온다. 벌써부터 당의 지방선거 전략이 도대체 뭐냐는 말이 나올 만하다.

조남규 정치부 기자

 리어커에 새참을 실고

어머니와 밭일가던 시절이 가끔 생각납니다.

천태산 가는 길목에 있는 재 너머 밭과 황새 밭,

문중 선산 일부를 개간해 만든 큰 벌안과 작은 벌안.

어머니는 큰 벌안과 작은 벌안은 도지(賭地)를 놓으시고

재 너머 밭과 황새밭에는 고추나 참깨, 고구마, 콩 따위를

직접 심어 경작하셨습니다.

고등학교가 있는 대처(大處)로 유학갈 때까지 밭일을 거들었으니

저의 얼치기 농사꾼 이력도 십년은 족히 되는 셈입니다.

그 때는 왜 그리도 농사일이 싫었는지,

죽어도 농사는 짓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보낸 시절이었습니다.

대학생이 되어 농촌봉사 활동을 하면서도

농사일은 고역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입니다.

언제부터인지 예전 모습 그대로인 고향의 밭들이

그리워지기 시작했습니다.

저 밭들이 언젠가 돌아가야 할 곳이려니...

이미 농사지으러 낙향한 이들의 체험담에 귀를 기울인 것이

그 즈음이고 미국판 귀농기(歸農記)인 스코트 니어링과 헬렌 니어링 부부의

조화로운 삶(Living the Good Life)을 손에 잡은 것도 그 즈음이었습니다.

                                                    ⓒ google.com 


 조화로운 삶은 쉰 살이 다 되어서야 농사일에 뛰어든 스코트 니어링이

일흔 두 살에 펴낸 영농 체험기이자 인생 독본입니다.

정치학 교수 출신인 스코트 니어링은 헬렌 니어링을 만나

물질 문명의 굴레를 벗고 자연 속에서 조화롭게 살기로 마음먹고

1932년 버몬트州 시골로 들어가 농사지으며 19년을 삽니다.

이후 버몬트 농장 일대마저 개발 바람이 불어닥치자 니어링 부부는

52년 봄 메인주로 옮겨가 새로운 농장을 일굽니다.

조화로운 삶 이어가기 (Continuing the Good Life)에는

니어링 부부의 50년 가까운 귀농 체험이 고스란히 담겨있습니다.

이 책을 펴낼 때 스코트 니어링과 헬렌 니어링의 나이 각각

아흔 다섯살, 일흔 다섯살.

그럼에도 그들은 책의 서두에

우리는 삶에서 뒤로 물러설 뜻이 없다. 아니 오히려 살고자 하는

의욕에 불타오르고 있다고 썼습니다.

그 대목을 읽으면서

그들의 흔적이나마 느껴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습니다.

 

 그래서 메인주에 있는

니어링 부부의 농장을 찾아 보기로 했습니다.

농장이 있는 메인주 하버사이드는 대서양 물길이
육지 쪽으로 들어온 피놉스캇 만과 면한 지역으로

니어링 부부가 책에 적었듯이 거칠고 메마른 땅입니다.

 니어링 부부는 쓸모 잃은 농장을 사들여 기름진 땅으로 되살려냈습니다.

버지니아에서 700 마일을 달려 메인주 항구 도시인 벨파스트에

여장을 풀었습니다. 한 때는 조선소로 번성했던 항구였다는데

지금은 바닷 가재를 잡는 한산한 어촌이었습니다.

 




 피놉스캇 만은 눈이 시린 쪽빛입니다.

 


 3월 말인데도 겨울은 좀체 떠날 마음이 없는 듯 합니다.

얼마 전에 내린 눈으로 풍경은 완연한 겨울입니다.

그래도 얼음과 눈이 녹기 시작합니다.

머지않아 메인주 농사꾼들이 바빠지는

봄이 올 것이 분명합니다.

메인주 농부들에게 장작은 긴 겨울을 나기위한 필수품 중 하나입니다.

 


 벨파스트에서 농장까지는 차로 2시간 거리입니다.

시골 길을 물어 물어 농장을 3마일 정도 남겨둔 지점까지

어렵사리 찾아갔는데 그 곳부터 농장에 이르는 길은

며칠 전에 내린 눈으로 접근이 불가능한 상황이었습니다.


                          

 ‘굿 라이프 센터(니어링 부부 기념관)에 확인, 또 확인하고

출발했건만 메인주의 3월 날씨는 역시 종잡을 수 없더군요.

결국 우리는 안타까운 마음으로 발길을 돌려야 했습니다.
니어링 부부가 직접 지은 돌집과 손수 가꾼 농장을 보고싶었는데...
너무 억울해서 여행을 마치고 굿 라이프 센터에 사정을 설명했더니
날이 풀리면 꼭 한 번 찾아오라면서 농장 사진을 보내줬습니다.

                                                                                  <니어링 부부가 손 수 지은 돌 집>

        


                                                                       <거름더미>

                                                                <니어링 부부가 고안한 태양열 온실. 겨울철에도 신선한 채소를...>

*이 글은 미국 연수중이던 2005년 상반기에 블로그에 올린 글로 블로그 개편 도중 사진 배열이 뒤섞여 다시 올리게됐습니다. 미국에 계신 독자들이라면 올 봄에 날 풀리면 한 번 방문하셔서 저의 못다이룬 꿈을 이뤄주시길...방문하신 분들은 저에게도 니어링 부부의 농장을 간접경험할 기회를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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