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에 미국 연방 대법원 판사인 앤서니 M. 케네디가
시체말로 사고를 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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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가 만든 대법원 판례를 스스로 깨고 그와는 정 반대의 판례를 만든 것입니다.
이번 판결의 요지는
범죄 당시 18세 미만의 청소년 범죄자를 사형시키는 처벌은 위헌이라는 것인데
이는 범죄 당시 16세 이상이면 사형시킬 수 있다는 1989년 대법원 판례를
뒤집은 것입니다.
연방 대법원 판사 9명 중 5명이 찬성하고 4명이 반대한 이번 판결은
전적으로 89년 당시 '청소년 범죄자 사형이 합헌'이라고 주장한 진영에 가담했다가
말을 바꿔탄 케네디의 작품입니다.
당시도 5 대 4로 합헌론이 가까스로 우세했으니 만큼
케네디는 양 쪽 끝에 4명씩 앉아있는 시소의 이 쪽 저 쪽을 옮겨다닌 셈입니다.
변신의 辯은 구구했지만 한 마디로 '시대가 변했다'는 것이 케네디의 주장이었습니다.

 

 사형 제도에 반대하는 민주당원과 자유주의자들은 환호했습니다. (보수주의자와 진보주의자들이 어떻게, 왜 다른지는 제 블로그의 '미국의 보수주의자, 진보주의자'라는 글을 참고하시압)

반면 공화당원과 보수주의자들은 '케네디가 그럴 줄은 몰랐다'면서 황당해하는 반응입니다. 케네디는 다름 아닌 공화당의 레이건 대통령이 임명한 대법원 판사(대통령이 임명하고 상원이 인준합니다)이기 때문입니다.
대통령은 신임 대법원 판사를 임명할 때
될 수 있으면 자신과 정치적 이념적 지향점이 같은 사람을 고르고 또 고르지만
케네디 같은 '마이 웨이'는 나오기 마련인 모양입니다.
저는 케네디 사례를 보면서 그간의 궁금증-공화당 대통령이 임명한 판사들이
대다수인 연방 대법원에서 왜 공화당 노선과 다른 판결이 속출할까?-이 풀렸습니다.
참고로 현 연방 대법원의 인적 구성을 보면,
1972년 닉슨 대통령이 대법원 판사로 임명한 윌리엄 렌퀴스트 대법원장을 비롯,
6명의 대법원 판사가 공화당 대통령에 의해 임명됐습니다.
순서대로 보면 포드 대통령이 존 폴 스티븐스를, 레이건 대통령이 산드라 데이 오코너(여)와 앤터닌 스캘리어, 케네디를, 부시 대통령이 데이빗 해킷 수터, 클레런스 토머스를 임명했습니다. 민주당 쪽은 클린턴 대통령 시절 임명된 루스 베이더 긴스버그(여)와 스테판 G. 브레이어 2명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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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뒷줄 좌측부터 긴스버그, 수터, 토마스, 브레이어, 앞줄 좌측부터 스캘리어 , 스티븐스, 렌퀴스트, 오코너, 케네디> 

 그런데 미국 언론의 연방 대법원 관련 기사들을 보면
현 대법원 내에 진보 성향의 판사가 4명이라는 대목이 자주 나옵니다.
산술적으로 공화당 대통령에 의해 임명된 7명 가운데 2명이 변절했다는 말인데
기사만으로는 상황이 왜 그렇게 됐는지 도통 알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도서관을 뒤져봤습니다.
저자의 이름 때문인지 그 많은 책들 중에서 케네스 스타의 'First Among Equals'(평등 속의 최고)에 손이 가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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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는 클린턴 대통령 재임 당시 그의 부동산 투기 의혹('워터 게이트 사건')과 성추문 사건을 조사하는 특별 검사를 맡아 이름 그대로 '스타'가 된 인물입니다. 힐러리가 자서전 '살아있는 역사'에서 상종 못할 인간으로 묘사한 장본인이지요.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그에 대해 그다지 좋지 않은 선입견을 갖고 있는데
인간성은 몰라도 경력은 화려합니다.
스캘리어와 긴스버그가 워싱턴 D.C. 연방 항소법원 판사 시절의 동료였으니
관운만 따랐으면 벌써 대법원 판사가 돼있을 만한 경력이지요.
본론으로 들어가면,
그가 분석한 연방 대법원의 해부도는 이렇습니다.

우선 대법원장인 윌리엄 렌퀴스트.
72년 공화당 닉슨 대통령이 그를 대법원 판사로 임명했으니 올 해로 대법원 봉직 34년 째입니다. 워렌 버거 대법원장 시절(1969~86)에는 보수적인 소수 의견을 서슴지
않아 '외로운 감시인'(Lone Ranger)이라는 별명이 붙었습니다.
8 대 1의 소수 의견도 많이 냈다고 하니
그의 고집을 알 만 합니다.
86년 공화당 레이건 대통령이 워렌 버거 대법원장 후임으로 그를 대법원장에
임명했을 당시 상원의 민주당 의원들이 그의 보수 성향을 문제삼았습니다.
렌퀴스트의 상원 인준 표결(찬성 65, 반대 33)을 보면
보수 성향의 대법원장을 맞이하는 민주당의 걱정이 얼마나 자심했는지
짐작이 갑니다.
렌퀴스트의 영전으로 생긴 공백은 그 보다 더 보수적인
스캘리어가 메웁니다.
레이건 행정부는 진보적인 워렌 버거가 물러가고 렌퀴스트가 대법원장에 임명된데다 보수적인 스캘리어까지 충원했으니 이제 대법원은 보수화할 것으로 잔뜩 기대합니다.
그리고 워렌 버거 대법원장 체제에서 양산됐던 진보적 판례(낙태권 인정 등)를
뒤집기 위한 시도에 나섭니다.
이 때 누구도 예상치 못한 상황의 반전이 이뤄집니다.
렌퀴스트가 대법원장 취임을 계기로 더 이상 '외로운 감시인'이 되기를 거부합니다.
그리곤 연방 대법원 내 진보파와 중도파의 맏형 역할을 자처합니다.
케네스 스타는 '렌퀴스트는 대법원장이 되고부터 급격한 변화를 꺼리는 실용주의자로 변했다'고 썼습니다.

 수터는 대법원 판사가 된 이후 부시 대통령(아버지 부시)과 그를 적극 추천한 부시 참모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들었습니다.
수터가 느닷없이 전통적 보수주의자에서 진보주의자로 전향한 이유는
여전히 미스테리라고 합니다.
75년 포드 대통령에 의해 임명된 스티븐스는 '뉴욕 타임스 사설 편집진의 잣대로
평가했을 때, 가장 이상적인 대법원 판사'(케네스 스타)라고 합니다.
철두 철미한 낙태 지지자이자 사형 반대론자이기 때문입니다.
여권 운동 변호사 출신인 긴스버그는
아직까지는 임명권자인 클린턴을 실망시키지 않고 있습니다.
제일 늦게(94년) 렌퀴스트 대법원에 합류한 브레이어도 진보 성향으로 분류됩니다.
이번에 대형 사고를 친 케네디는 87년 레이건이 임명한 로버트 보크를
상원의 민주당 의원들이 결사 반대하는 바람에 대타로 임명됐습니다.
보크 보다 덜 보수적이어서 인준을 받았고요.

 스티븐스와 수터, 긴스버그 등 '진보 3인방'에
진보적 중도 정도되는 브레이어, 보수적이라지만 가끔 삐딱선을 타는 케네디,
이전 판례를 가급적 뒤집지 않으려는 렌퀴스트.
공화당 행정부로서는 현 대법원이 마땅치 않을 만 합니다.
그래서 지난해 갑상선 종양 제거 수술을 받은 렌퀴스트나
올 해로 만 85세가 된 스티븐스 등이 사임하면,
좀 확실한 공화당 사람을 심겠다는 것이 부시 행정부의 희망 사항인 듯 합니다.
더군다나 지난해 선거에서 공화당이 상원까지 장악했으니 이런 천재일우의 기회를
놓칠 수 없다는 태세입니다.
어쩌면 부시 행정부는 그런 인물을 대법원에 앉힐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연방 대법원이 그 다음 날부터 보수화할지는 의문입니다.

 공화당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53년 대법원장에 임명한 사람은
중도 노선의 공화당원인 얼 워렌이었습니다.
워렌은 그러나 대법원장이 되고부터 '진보주의 깃발을 들고 거침없이 진군하는 십자군'으로 돌변했습니다.
흑백 차별을 금지하고 피의자 인권을 보호하는 역사적 판례가 바로 워렌 대법원(1953~69)에서 무더기로 만들어집니다.

 미국의 건국 헌법은 '살아 있는 문서'로 부릅니다.
연방 대법원의 끊임 없는 해석을 통해 성장을 거듭하기 때문입니다.
대다수 연방 대법원 판사들 역시 임명되는 순간부터
임명권자에 얽매이지 않은 채
'살아 있는 헌법 기관'이 되고 싶어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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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글은 한국 대법원의 판결 성향을 분석한 동아일보 2020년 9월23일자 A4면 보도.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회장을 지냈던 김선수 대법관, 진보성향 법관 모임인 우리법연구회에서 활동한 박정화 노정희 대법관, 국제인권법연구회 출신의 김상환 대법관, 젠더법연구회 회장 출신인 민유숙 대법관….

김명수 대법원의 판결 분석 결과 가장 눈에 띄는 특징은 진보 성향인 ‘신(新)독수리 5형제’의 등장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 1, 2년 차인 2017∼2018년 임명한 5명의 대법관을 말한다. 이들은 전원합의체 판결 10건 중 7건에서 같은 의견을 내며 두터운 ‘진보벨트’를 형성하고 있다. 여기에 우리법연구회와 국제인권법연구회 회장을 지냈던 김명수 대법원장과 역시 우리법연구회 출신으로 이달 8일부터 임기를 시작한 이흥구 대법관을 더하면 전원합의체 과반(7명)이 확보된다.

○ 진보법관 5명, 전합 판결 71% 일치


김명수 대법원의 진보 성향이 커지고 있다는 인식은 동아일보가 서울대 한규섭 교수팀과 함께 최근 15년간 전원합의체 판결 274건을 입수해 분석한 결과로 확인된다. 현직 대법관 14명 중 5명이 진보 성향으로 나타났으며 이들 중 김선수 대법관이 가장 진보적이었다. 김선수 대법관은 분석 대상이 된 전·현직 대법관 46명 중 진보 4위였다. 박정화, 김상환 대법관이 전체 진보 6, 7위로 뒤를 이었다. 민유숙, 노정희 대법관도 진보 9, 14위로 분류됐다.

이들 5명의 대법관은 정치 성향이나 이념에 따라 찬반이 갈릴 수 있는 사건에서 대부분 한목소리를 냈다. 2018년 12월∼2020년 9월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 38건 가운데 27건(71.1%)에서 같은 의견을 냈다. 행정이나 노동 등 특별 재판으로 분류된 사건에선 10건 중 9건에서 의견이 같았다. ‘진보 톱3’인 김선수, 박정화, 김상환 대법관은 전체 40건 중 32건(80%)에서 의견이 일치했다.

5명의 대법관은 ‘여순 사건’ 당시 반란군에 협조했다는 이유로 사형당한 민간인의 유족이 재심을 열어달라며 낸 소송에서 “재심을 열 수 있다”는 다수 의견을 냈다. 재심은 판결이 확정된 사건의 재판을 다시 연다는 뜻이지만, 이 사건은 확정 판결문이 남아있지 않아 재심 대상인지 불분명했다. 김선수 대법관은 “유족을 특별법으로 구제해야 한다는 이유로 재심 청구를 거절할 수 없다. 더 나은 입법을 기다린다며 사법의 역할을 포기해선 안 된다”며 보충 의견도 냈다.

김선수 대법관을 제외한 4명의 대법관은 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 공표 혐의로 기소된 이재명 경기도지사에 대한 상고심에서 “질문에 답했을 뿐 적극적으로 허위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며 올 7월 함께 무죄 의견을 제시했다. 중도 성향인 권순일 전 대법관, 김재형 대법관이 같은 의견을 내면서 유죄를 선고한 원심이 파기 환송됐다. 4명의 진보 대법관은 이정희 전 통합진보당 대표 부부가 정치 평론가 변희재 씨 등을 상대로 “종북, 주사파라고 비방해 명예를 훼손했다”며 낸 소송에서도 “보수 정권기에 종북, 주사파로 낙인찍히는 건 상상 못할 공포”라며 이 전 대표 측 손을 들어주는 소수의견을 함께 냈다.

○ ‘보수 4형제’는 반대의견 결집


대법원 구성원 과반이 진보로 기울면서 ‘보수 4형제’가 반대의견에 결집하는 양상이 나타나고 있다. 현직 대법관 중에선 노태악, 이기택, 안철상, 이동원 대법관이 보수 성향이었다. 46명의 전·현직 대법관 가운데 각각 6, 12, 15, 16번째로 보수적이다. 현직 보수 1위인 노태악 대법관이 올 3월 4일 임기를 시작하기 전까지는 조희대 대법관과 이기택, 안철상, 이동원 대법관 순서로 대법원 안의 ‘보수 4형제’ 역할을 했다.

노태악, 이기택, 안철상, 이동원 대법관은 박상옥 대법관과 함께 이재명 경기도지사에 대한 상고심에서 이 지사의 혐의를 유죄로 봐야 한다면서 “TV토론회에서의 허위 발언을 처벌할 수 없다는 듯한 다수의견은 논리적으로 설득력이 떨어질 뿐 아니라 대법원이 확립해온 태도를 벗어나는 것”이라고 강하게 비판해 화제가 됐다. 이기택, 이동원 대법관은 전국교직원노동조합에 대한 법외노조 통보를 무효로 본 다수의견을 비판하면서 “완벽한 법체계를 애써 무시하면서 입법과 사법의 경계를 허물고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판결 성향 지수로 보면 ‘보수 4형제’는 임기 도중 점점 보수화되는 모습을 보였다. 중도 성향을 보이던 조희대, 이기택 대법관은 김명수 대법원장 취임 이후인 2017년부터 지난해까지 지속적으로 보수 방향으로 기울었다. 이동원, 안철상 대법관은 취임 후부터 매년 보수 쪽으로 이동했다. 김명수 대법원의 ‘진보화’ 여파로 중도와 보수 성향을 오가던 대법관들이 오히려 보수 쪽으로 결집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내년부터는 전체 대법관 14명 중 진보 성향 대법관이 10명에 이를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박근혜 정부에서 임명돼 각각 중도, 보수로 분류된 박상옥, 이기택 대법관은 내년 5월과 9월 퇴임한다. 박 전 대통령의 파면으로 문재인 대통령은 이 2명의 공석을 포함해 대법관 총 13명을 임명할 수 있게 됐다.

고도예 yea@donga.com·유원모·박상준 기자

 

최근 숨진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는 미국 연방대법원의 판결 성향 분석에서 재직 기간 27년 내내 진보 성향 1, 2위를 꾸준히 유지했다. 가장 많은 소수 의견을 낸 것도 긴즈버그의 몫이었다. 이 때문에 그는 미국 사법부 ‘진보의 상징’으로 불렸다.

한국은 2004년 “여성과 소수자 보호를 위한 시대적 요청”이라는 이유로 김영란 전 대법관이 첫 여성 대법관으로 발탁됐고 현재까지 7명의 전현직 여성 대법관이 임명됐다. 김 전 대법관을 포함한 전수안 박보영 김소영 전 대법관, 박정화 민유숙 노정희 대법관 등 전체 여성 전현직 대법관 7명은 모두 ‘진보 대법관’ 상위 20위 안에 위치했다. 여성 대법관 2호인 전수안 전 대법관은 김영란 전 대법관에 이어 전체 대법관 중 진보 성향이 2위였다. 진보 성향으로 순서를 매기면 김소영 전 대법관은 전체 대법관 가운데 16위, 박보영 전 대법관이 18위였지만 전체 대법관의 판결 성향으로 보면 진보에 가깝다. “대법원 내부의 서열화를 없애고 소수자 의견을 반영하기 위해 여성 대법관의 발탁이 더 필요하다”는 법원 안팎의 여론이 판결 분석만으로 본다면 일리가 있는 주장인 셈이다.

전체 대법관 중에서 가장 진보적인 성향을 보인 김영란 전 대법관은 여성 대법관 중에서 사회적 약자를 위한 가장 두드러진 판결을 남겼다. 김 전 대법관은 2008년 ‘제사 주재자 승계’ 판결에서 소수의견을 통해 ‘장남이나 아들만 제사 주재자를 승계하지 않는다’는 의견을 밝혔다. 2009년엔 13명의 대법관 중 유일하게 소수 의견을 내며 성폭력 피해 아동 본인이 처벌 의사를 철회했더라도 가해자를 처벌할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이후 김 전 대법관의 소수의견은 국회에서 입법화됐다.

‘김명수 코트’에서는 여성 대법관이 3명으로 역대 최대다. 김 전 대법관이 퇴임 전인 2010년 “적어도 여성 대법관이 3명은 돼야 한다”고 했던 바람이 이뤄진 것이다.

현직 여성 대법관 3명은 문재인 대통령이 임명했지만 박정화 대법관은 양승태 전 대법원장 제청, 민유숙 노정희 대법관은 김명수 대법원장의 제청을 거쳤다. 현직 중에서는 박 대법관이 전체 대법관 중에서 진보 성향이 6위, 민 대법관은 9위, 노 대법관은 14위였다. 박 대법관과 노 대법관은 진보 성향의 법관 모임인 우리법연구회 출신이다. 민 대법관과 노 대법관은 양성 평등을 연구하는 모임인 젠더법연구회 회장 출신이다. 한 법조계 인사는 “현직 여성 대법관들에게 긴즈버그 전 대법관과 같은 실질적 변화를 이끌어내는 판결을 기대하는 목소리가 있다”고 말했다.

박상준 기자 speakup@donga.com

 

0.021(이용훈)→0.166(양승태)→―0.391(김명수).

최근 15년간 대법원 전원합의체 재판장인 이용훈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김명수 대법원장의 판결 성향지수는 당대 대법원의 지향점이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그대로 보여준다. 이 전 대법원장은 분석 대상 46명의 중간 지점인 왼쪽에서 23번째, 오른쪽에서 24번째에 위치했다. 양 전 대법원장은 오른쪽에서 19번째로 보수 성향을 보였고, 반대로 김 대법원장은 왼쪽에서 13번째로 진보적인 색채가 뚜렷했다.

대법원장은 전합에서 맨 마지막에 표결을 하고, 관례적으로 거의 다수의견에 선다. 최고 법률심인 전원합의체의 재판장이 소수의견에 설 경우 생길 수 있는 사회적 혼란을 줄이자는 취지다. 그런 점에서 대법원장의 판결성향지수는 해당 대법원의 성격을 대변하는 가늠자로 볼 수 있다.

○ 대법원장 주관 드러나는 ‘7 대 6’ 사건


전합은 대법원장과 12명의 대법관(법원행정처장 제외) 등 13명이 참여해 다수결로 결론을 낸다. 보통 토론과 합의를 통해 중론을 모으는 방식을 취하지만 대법관들의 의견이 첨예하게 나뉘어 최종 의사를 표명하는 대법원장에 의해 결론이 좌지우지되는 ‘7 대 6’ 사건도 종종 발생한다. 이 전 대법원장은 3건, 양 전 대법원장은 5건, 김 대법원장은 2건의 7 대 6 판결을 내렸다. 대법원장의 판단이 뚜렷이 드러나는 이 같은 사례를 통해서도 해당 대법원의 성향을 짐작해볼 수 있다.

김 대법원장 재임 때 가장 의견 대립이 치열했던 전합 재판은 ‘백년전쟁’이다. 이승만 전 대통령을 ‘부도덕한 플레이보이’, 박정희 전 대통령을 ‘스네이크 박’이라고 비방한 다큐멘터리 백년전쟁에 대한 방송통신위원회 제재의 부당성을 따진 사건이다. 진보 대법관 성향과 중도·보수 성향 대법관이 6 대 6으로 팽팽히 나뉜 가운데 김 대법원장은 “정치인 등 공인에 대한 표현의 자유는 최대한으로 인정돼야 한다”며 진보 대법관들의 손을 들어줬다.

반면 양 전 대법원장은 2012년 시국선언에 참여한 전교조 교사에 대한 형사처벌 가능성을 따지는 재판에서 “공무원의 중립 의무를 위반한 것”이라며 보수 의견에 섰다. 이 전 대법원장은 MBC ‘PD수첩’의 광우병 보도에 대해 언론의 표현의 자유를 인정하면서도 허위사실에 대해선 정정보도의 대상이 된다며 7 대 6 결정을 내렸다.

○ 김능환, 고영한, 권순일은 캐스팅보터


각 대법원별로 중도적 입장을 취하는 대법관들의 판결 성향을 통해서도 각 대법원의 상대적 이념 분포를 가늠할 수 있다. 이 전 대법원장 때는 김능환 전 대법관, 양 전 대법원장 시기에는 고영한 전 대법관, 김 대법원장 때는 이달 7일 퇴임한 권순일 전 대법관이 중도에 위치했다. 대법관들의 의견이 갈리는 사건에서 캐스팅보터 역할을 자주 하는 이들 3명의 공통점은 대법원 수석재판연구관이나 법원행정처 차장 등을 거치며 법리에 밝고 대법원 사정에 정통하다는 점이다.

권 전 대법관은 진보에서 21번째이자 판결성향지수가 ―0.010으로 46명의 대법관 가운데 평균값인 0에 가장 근접한 대법관이다. 강제징용 재상고심 사건에선 다수의견과 달리 일본 측의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할 수 없다는 보수적 판결을 내리기도 했지만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한 무죄 판결 등에선 진보 쪽에 섰다.

고영한 전 대법관은 양승태 원장 때 8 대 5로 나뉘었던 한명숙 전 국무총리의 불법 정치자금 혐의 유죄 인정 재판 등에서 캐스팅보터 역할을 하며 보수적인 결론에 손을 들었다. 김능환 전 대법관은 종교학교에 배정된 학생들의 종교적 자유를 인정해야 한다는 판결 등에서 다수의견에 섰다.

○ 대통령 바뀌면 이념 분포 넓어져


임명권자인 대통령의 변화에 따라 대법관들의 판결 성향이 달라지는 경향도 발견된다. 이, 양 전 대법원장은 6년 임기 중간에 대통령이 바뀌었는데 자신을 임명하지 않은 대통령과 공존하는 후반부로 갈수록 대법관들의 의견이 보다 다양해지는 패턴을 보였다. 정권 변화에 따라 판결 성향이 달라지는 것은 대법관이 대법원장 제청으로 국회의 동의를 얻어 대통령이 임명하는 방식이어서 일부 정치적 영향을 받도록 설계되어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있다. 한 전직 대법관은 “대법관들은 한쪽으로 경도되지 않고 균형을 찾아가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시대 변화를 수용하면서도 보수로 쏠리면 진보로, 진보로 뭉치는 것 같으면 보수로 균형을 잡으려는 특성이 반영된 결과”라고 설명했다.

유원모 onemore@donga.com·박상준·고도예 기자

 

동아일보는 2005년 9월부터 2020년 9월까지 약 15년 치의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문 274건을 입수했다. 여기엔 전현직 대법원장과 대법관 등 총 46명이 참여했다. 각 사건별로 과반수의 다수의견과 반대의견, 다수의견과 결론은 같지만 논리가 다른 별개의견으로 분류했다.

서울대 폴랩(한규섭 교수 연구팀·사진)은 이 자료를 앤드루 마틴 미국 워싱턴대 교수팀이 미국 연방대법원의 판결 성향 분석에 사용한 기법으로 분석했다. 가령 10 대 3 판결에서 A, B, C 세 대법관이 반대의견으로 함께 판결한 뒤 다른 판결에서 A, B 두 대법관이 11 대 2로 함께 반대의견을 냈다면 A와 B 대법관이 가장 유사한 점수를 부여받게 된다. 7 대 6 판결에서 6명의 의견에 동참하는 것보다 11 대 2 판결에서 2명의 의견에 함께한 것이 진보나 보수 성향 점수에 더 큰 영향을 미친다. 미국 대학수학능력시험(SAT)에서 같은 수의 정답을 맞혔더라도 남들이 많이 틀리는 문제에서 정답을 맞혔을 때 더 높은 점수를 부여하는 원리와 같다.

분석값은 점수가 낮을수록 진보, 높을수록 보수 성향이다. 기준이 되는 0점은 전체 분석대상인 대법관 46명의 평균값이다. 통계기법의 원리상 판결 성향 점수의 진보와 보수가 이념적 성향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여러 조합의 대법관들끼리 얼마나 같은 의견을 냈는지를 과학적으로 분석하기 때문에 소수의 가치관을 지향하는지 등의 포괄적인 의미도 담고 있다. 무수한 서로간의 유사도에 근거하여 상대적 위치를 측정하기 때문에 같은 시기에 함께 대법관을 하지 않았더라도 비교가 가능하다.

한 교수는 “미국은 대법원 구성에 따라 사회에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나기 때문에 (임명권자인) 대통령 선거 때부터 큰 관심사”라며 “한국의 대법관 임명 과정은 인상 평가나 진영 논리로 얼룩졌는데 앞으로 계량적인 성향 분석을 통해 합리적인 논의와 검증이 이뤄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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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위대한 개츠비'의 작가입니다.
한 여자를 지독스레 사랑하다

끝내는 그 사랑 때문에 파멸해버리는 남자 개츠비.
저는 고등학교 친구 자취방에서 그를 처음 만났습니다.
제 나이 스무 살이었습니다.
영문학도이던 그 친구는

'교수님이 입에 침이 마르도록 추천한 책'이라면서
일독을 권했습니다.
그러나 내게는 그저

'돈 걱정 없는 미국 유한(有閑)층의

팔자좋은 사랑 타령'이었습니다.
그 때는 고리끼의 '어머니'나

조정래의 '태백 산맥'같은 소설이

가슴을 더 뛰게 하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리고 십 몇 년이 흘렀습니다.
제 나이도 삼십대 중반이 됐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개츠비 열풍이 불더군요.
무라카미 하루키라는 일본 작가가 일으킨 바람이었습니다.
그의 소설 '상실의 시대'(원제 '노르웨이의 숲')에서

주인공(와타나베)이 '위대한 개츠비'를

최고의 소설로 추켜세운 때문입니다.
언제 읽어도,
단 한 페이지도 시시한 대목은 없다는 극찬을 하면서.
와타나베의 선배라는 친구는
'위대한 개츠비를 세 번 읽은 사람하고는

친구가 될 수 있다'고 거들더군요.

그는 또 죽은지 30년이 지나지 않은 작가의 책에는

손도 대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는데

'위대한 개츠비'의 작가인 피츠제럴드 만은

예외라고 말했습니다.
난데없는 하루키 열풍에

개츠비도 덩달아 스타가 된 셈입니다.
그런데 하루키가 '상실의 시대'를 통해

말하려고 했다는 주제,
'사람이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의 의미'를

나는 정작 그의 책에서는 찾지 못했습니다.
대신 하루키 덕분에 다시 만나게 된 개츠비를 통해

그 의미를 알게됐습니다.
그 후 '위대한 개츠비'는 저의 애독 소설이 됐습니다.

 또 몇 년이 지났습니다.
올 해로 제 나이 마흔 살이 됐습니다.
하루키가 고백했던 것 처럼

스무 살 청년이 20년이 지나면

마흔 살이 된다는 사실을,
저 역시 실감할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저는 올 해 마흔입니다.
서른 살 되던 해,

저는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를 주절거리고 다녔는데
마흔 살이 되니 노래 따위는 부르고 싶지 않아졌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저는 신문을 뒤적이다

피츠제럴드가 메릴랜드주 락빌에 묻혀있다는 기사를 봤습니다.
차로 30분 거리 밖에 안되는 가까운 곳에 그가 묻혀있다니-.
갑자기 그의 묘소에 가고 싶었습니다.


 

 

무슨 청승이냐는 생각도 들었지만,
마음 한 구석엔 혹시 그가

마흔 살의 의미에 대해 뭐라고 한 마디 던져주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감이 있었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 역시 마흔 살의 인생은 참으로 힘든 시절이었으니 말입니다.

 마흔 살에 그는,

사랑하는 아내 젤다 세이어와 별거 상태였습니다.

 

 아내의 정신병은 호전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의 육신도 과도한 음주와 질병으로

피폐해질대로 피폐해졌습니다.
그 해 MGM 영화사는

그와 맺은 전속 대본가 계약을 중단했습니다.
아내의 병원비로 빚은 눈덩이처럼 불어났습니다.
피츠제럴드가 심장 마비로 비명 횡사하기 4년 전,
그의 나이는 마흔이었습니다.
불행히도 그는 끝까지

자신을 실패한 인생으로 믿고 죽어갔습니다.
당시만 해도 아무도 그가

위대한 미국 작가의 한 사람으로
자리매김될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피츠제럴드의 분신인 개츠비도

데이지의 사랑을 얻지 못하고 죽어갑니다.
어느 평론가의 말처럼

데이지의 배신으로 개츠비의 죽음은 피할 수 없는 일이
되어버린 것인지도 모릅니다.
꿈꾸는 자는 그의 꿈이 사라진 이상,
존재의 이유를 상실하는 것이기에.

 '위대한 개츠비'는 피츠제럴드의 자전적 소설입니다.
소설 속의 개츠비가

그의 연인 데이지를 만나 사랑에 빠진 그 즈음,
현실의 피츠제럴드는 1918년 여름 어느 무도회장에서
젤다를 만나 사랑에 빠집니다.
1차 세계대전이 막바지로 치닫던 시절,
개츠비와 피츠제럴드는 군인이었습니다.
상류층인 데이지의 가문이

가난한 농부의 아들인 개츠비에게
넘을 수 없는 장벽으로 다가왔듯이
앨라바마주 대법원 판사의 딸인 젤다의 신분 또한
세일즈맨 아버지를 둔 피츠제럴드를 주눅들게 했습니다.
개츠비가 데이지를 얻기 위해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돈을 벌었듯이
피츠제럴드는 젤다와 결혼하려는 열망으로

소설에 매달렸습니다.
가난한 샐러리맨과는 살 수 없는 기질의 젤다가
그와의 약혼을 깨버리지 않았다면
우리는 지금의 피츠제럴드를 얻지 못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1920년 3월 26일은 피츠제럴드가
하룻 밤 사이에 유명해진 날입니다.
그의 처녀작 '낙원의 이 쪽'(This Side of Paradise)은
그를 단숨에 문단의 총아로 만들어놓습니다.
일주일 후 젤다는 그의 청혼을 받아들입니다.
1919년 봄,

젤다가 앨라바마에서 군 제대 후 뉴욕으로 간 피츠제럴드에게
보낸 편지(아래 사진)에는
'내 예감에 우리는 함께 죽을 거야'라고 적혀있습니다.
이 편지는 그 내용이 너무 마음에 들어
피츠제럴드가 '낙원의 이 쪽' 마지막장에

그대로 인용했다고 합니다.



 재능많고 아름다운 젊은 부부는

10년 동안 행복합니다.



 그 시절은 '위대한 개츠비'가 집필된

피츠제럴드의 황금 시절입니다.
피츠제럴드는 아내와 함께 묻혔습니다.


 <피츠제럴드가 묻힌 세인트 메리 교회. 교회 왼쪽이 공동 묘지>




<젤다의 편지>


그가 죽고 8년 뒤에

아내는 정신병동 화재로 숨졌습니다.

기구한 운명의 두 사람입니다.


그의 묘비 앞 석관 뚜껑 위에

'위대한 개츠비'의 마지막 문장이 새겨져있습니다.

 




"So we beat on,(우린 계속 앞으로 나아간다)
boats against the current,(배가 물살을 거슬러 올라가듯)
borne back ceaselessly into the past(끝없이 과거 속으로 물러서면서)"

 

 

 

 

 

끊임없이 그의 과거를 넘어서려고 발버둥쳤던 개츠비의 노력은

끝내 헛된 것으로 결론이 났습니다.
그러나 강물을 거스르려했던 개츠비의 노력을 피츠제럴드는
인간의 숙명이라고 봤습니다.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별 도리없이
바위를 산 정상까지 밀어붙여야 하는 시지프스의 운명처럼.
피츠제럴드를 만나고 와도 삶은 명쾌해지지 않습니다.
마흔 살이
불혹(不惑)이라는 말은

사실이 아닌 모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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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 10일은 'Touching Base Day' 였습니다.
무슨 국경일이냐구요. 우리 아이들이 다니는 미국 고등학교 행사일입니다.
그간 소식이 뜸했던 이들과 만나 얘기한다는 'Touch base'의 사전적 의미 그대로,
 학부모들이 학교로 찾아가 자녀들을 맡고 있는 과목 선생님들과

얘기하는 날이지요. 중간 성적표가 가정에 전달되기 직전에 열립니다.

이 날은 특히 아이들이 좋아하는 날입니다. 매일 새벽 밥 먹고 학교가는 일이 얼마나 지겨웠겠습니까. 등교 시간이 오전 10 10분으로 3시간 늦춰지는 이 날은 아이들이 꿀맛같은 아침 잠을 좀 더 만끽할 수 있는 날입니다. 대신 학부모들은 새벽 밥 먹고 학교에 갑니다.

그래서 저도 학교에 한 번 가봤습니다.
 학교 앞에 세워진 표지판은 언제봐도 인상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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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금 내 주신 학부모님들 고맙습니다'


 어디서나 학부모들은 정말 애들 교육엔 열심입니다. 평일인데도 거의 대부분의 학부모들이 참석한 것 같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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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줄서서 과목별 담당 선생님과 상담할 차례를 기다립니다>

 고맙게도 학교측에선 아침을 거르고 온 학부모들을 위해 빵과 커피, 주스 같은 간단한 요깃거리도 준비했더군요.

 

학부모들은 자녀들을 맡고 있는 선생님들을 과목별로 한 분씩 찾아다닙니다. 선생님들은 항목별 채점표를 보여주며 자녀들의 학업 성취도나 태도 등을 설명합니다. 개인적으로는 '현수는 가끔 수업 시간에 몽상을 하는 버릇이 있습니다' '호윤이는 지난해 10월 중순쯤부터 말문이 터졌으니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라는 등의 말씀이 너무 고마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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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어를 맡고 있는 Mrs. Deckerd(가운데), Mrs. Norell>

 

 지난 가을엔 학기가 시작되고 2주쯤 지나서 'Back To School Night' 행사가 있었습니다. 이날은 학부모들이 저녁 7시쯤 학교로 찾아가 아이들이 신청한 과목 담당 선생님들로부터 수업 방침 등에 관한 설명을 듣는 날입니다.

 

 이날 모든 선생님들은 참석한 학부모들에게 자신의 e-메일 주소를 알려줍니다. 상담은 가급적 e-메일을 이용해달라는 설명과 함께.
물론 학부모와 학생의 e-메일은 학교 등록할 때 필수 기재 사항이고 선생님들의 e-메일도 학부모에게 전달됩니다.

 

 저는 인터넷 강국이라는 한국의 학교에서 선생님과 학부모가 e-메일로 자녀 문제를 상담하는 광경을 좀체 본 적이 없습니다. 어찌보면 사소한 문제랄 수 있는 선생님-학부모간 e-메일 통신에 제가 왜 이렇게 대단한 의미를 부여하는지 한국의 학부모라면 십분 공감할 것입니다. 학교를 찾아가 선생님을 찾아 본다는 일이 요즘에 와선, 본래의 순수한 취지를 잃고 얼마나 학부모를 고민스럽게 하는지 말입니다.

 

학기가 시작된 직후 이 곳 학교에서는 학생들 편에 각종 등록 서류들을 들려 보냈습니다. 그 중에 기부금을 요청하는 서류가 2장 있었습니다. 하나는 학생들의 특별 활동과 선생님들의 재교육 프로그램 등을 위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학부모-학생-선생 협의회 명의의 포괄적 용도의 기부금 모금이었습니다. 액수는 각자 형편에 맞게 적어서 학생 편에 가계 수표와 함께 들려 보내면 됩니다. 이 기부금은 어떤 명목으로든 궁극적으로는 학교을 위해서 쓰여지는 돈입니다. 이 곳에서도 기부금을 듬뿍 낸 학부모는 주기적으로 열리는 학무모-학생-선생 협의회 등에서 발언권이 세다고 합니다. 그렇다고 기부금을 고리로 특정 학생이 특혜를 받거나 불이익을 받는 사례는 없다는 것이 지금까지의 결론입니다. 

   저는 지금까지 단 1달러도 기부하지 않은 채 학교와 선생님들의 태도를 지켜봤습니다. 그런 끝의 제 결론은, 기부 여부는 학교가 학생을 대하는 태도에 거의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촌지는 기부금과 차원이 다릅니다. 기부금은 학교를 위해 선용되지만 촌지는 누군가의 호주머니 속으로 들어갑니다. 기부금은 그 목적이 투명하지만 촌지는 불투명합니다. 주는 쪽은 대개가 자기 자녀가 다른 학생에 비해 더 나은 평가를 받을 수 있도록, 최소한 다른 학생 보다 못한 대우를 받지 않도록 하자는 생각을 할 것입니다. 누군가 특혜를 받으면 누군가는 불이익을 받을 수 밖에 없지않겠습니다. 이 건 공정하지 않은 게임입니다. 그렇다고 모든 학부모가 촌지를 건네서 조건을 평등하게 만들 수는 없는 노릇 아닙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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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 메인주의 캐나다 접경 도시인 잭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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