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은 지난달 한·미 정상회담 계기에 “북한의 4차 핵실험은 동북아의 안보지형을 근본적으로 뒤흔들어 놓을 것”이라고 말했다.
세월호 참사 국면이라서 부각되지는 않았지만, 사실 이 언급은 매우 엄중한 상황 인식에 바탕한 것이다. 4차 핵실험을 통해 북한이 ‘핵무기 소형화’(미사일에 핵무기를 탑재할 수 있는 기술)에 성공할 수도 있다는 의미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물은 100도에 이르면 질적 변화를 일으킨다. 4차 핵실험이 물을 끓게 하는 마지막 불꽃이 될 수 있다.

한반도와 일본 전역을 타격할 수 있는 북한의 노동·스커드 미사일에 핵탄두가 탑재되면 북한은 절대무기인 핵을 흔들며 우리를 겁박하려 들 것이다. 북한의 도발에 맞선 우리의 칼날은 무뎌질 수밖에 없다. 북한의 도발 즉시 도발 원점은 물론 북한군 지휘부까지 타격한다는 계획이 북한 핵무기 앞에서도 주춤거림 없이 실행될지는 의문이다. ‘전쟁할 수 있는 나라’를 만들어가고 있는 일본은 이제 북한의 핵보유를 빌미로 군사대국화의 길로 폭주할 것이다. 국내에서도 핵보유를 주장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안보 위기를 해소하기 위한 경제적·심리적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 북한 핵문제가 이런 식으로 흘러가선 안 되지만 상황은 그런 식으로 흘러가고 있다.

지난 20년 동안 부침을 거듭한 북핵 협상은 북한이 더 이상 핵을 협상 대상으로 여기지 않고 있음을 스스로 증명했다. 북한은 언제부터인가 핵을 김일성·김정일·김정은 3대 세습정권의 유지를 위한 생존 수단으로 간주하기 시작했다. 북한 지도부가 이런 생각이라면 협상을 통해 자발적으로 핵을 포기할 가능성은 희박해진다. 한·미 행정부는 북한의 그런 생각이 바뀌지 않는 한 북핵 협상은 시간 낭비라는 생각을 공유하고 있다. 최근 만난 외교 당국자는 6자회담 전망을 묻는 질문에 “똑같은 일을 반복하면서 다른 결과를 기대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라는 앨버트 아인슈타인의 경구로 답변을 대신했다. 버락 오바마 미국 행정부는 북한이 ‘북·미 2·29 합의’ 문서의 잉크가 마르기도 전인 2012년 4월 장거리 로켓 ‘은하 3호’를 쏘아올린 이후 북한을 대화 파트너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이런 판국에 북한 풍계리 핵실험장에서 네 번째 폭발음이 들려온다면 그것은 6자회담의 종언을 알리는 조종(弔鐘) 소리가 될 것이다.

 



지금은 북핵 당사자들 사이의 불신감이 너무 커서 어느 쪽도 위기관리의 주체가 되지 못하고 있다. 박근혜정부의 ‘창조적’ 돌파구가 필요한 시점이다. 조만간 이뤄질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한국 방문에서 실마리를 찾아야 한다. “중국은 이제 북한이 문제가 될 뿐 아니라 자국의 안보에도 큰 문제라는 것을 지금 인식하기 시작했다”는 오바마 대통령의 발언은 출발점에 불과하다. 북한 비핵화의 짐을 중국에 떠넘기는 식의 접근법으로는 중국을 움직일 수 없다. 세계 전략 속에서 북핵을 바라보는 미국은 그럴 수 있어도 남북한 7500만의 생존 차원에서 북핵을 바라봐야 하는 우리는 그럴 수 없다.

동북아 패권을 다투는 미·중이 모두 만족할 수 있는 해법을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서로 이해가 엇갈리는 미·중을 설득해서 우리 국익을 극대화할 해법을 찾아내야 한다. 북한의 핵보유를 막는 일이야말로 박근혜정부 외교안보팀에 부여된 최우선 과제다. 그 어떤 과제가 남북한 주민의 생존 문제보다 중요할 수 있겠는가. 윤병세 외교장관은 최근 유엔에서 “북한이 핵실험으로 국제사회에 도전할 경우 가장 심각한 결과에 직면하게 될 것임을 분명히 경고해야 한다”고 역설했지만, 북한을 향해 으름장을 놓는 일이라면 군인 출신이 수장을 맡고 있는 청와대 국가안보실만으로도 충분하다. 미국과 중국을 움직여야 하는 보다 정교한 작업은 윤병세 외교부의 몫이다. 더 이상 감나무 밑에 누워서 홍시가 떨어지기만 기다려서는 안 된다. 북한을 향해 호통치고 중국이 나서야 한다고 떠들어대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이 또한 ‘똑같은 일을 반복하면서 다른 결과를 기대하는 어리석은 일’이 될 것이다.

조남규 외교안보부장

2011년 동북아시아의 평화와 공동번영 실현을 목적으로 출범한 한·중·일 3국 협력사무국(Trilateral Cooperation Secreteriat·TCS)이 최대 난관에 봉착했다. 3국간 역사인식의 차이라는 암초를 만나 3국 정상회의는 2012년 5월, 3국 외교장관 회의는 2012년 4월 이래 2년째 표류하고 있다. 지난해 10월 신봉길 초대 사무총장에 이어 3국협력사무국의 지휘봉을 잡은 이와타니 시게오(岩谷滋雄) 사무총장의 어깨가 무거운 이유다. 이와타니 사무총장은 세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3국이 역사인식의 문제를 넘어서기 위해서는 한·중·일 3국이 서로 ‘톨레랑스’(자신과 다른 생각·신념을 가진 것을 용인하는 관용)를 갖고 서로 차이를 인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인터뷰는 지난달 25일 서울 종로구 새문안로 3국 협력사무국에서 이뤄졌다.


 

―2년째 한·중·일 정상회의는 고사하고 외교장관 회담도 열리지 않고 있다.

“한·중·일 정상회의가 2년간 열리지 않는 상황은 3국 협력에서도 손실이다. 다만 협력이 연기되는 분야가 있으나 이전과 같은 페이스로 협력이 진행되고 있는 분야도 있다. 정치 부문에서는 업·다운(부침)이 있기 마련이다. 현재는 약간 다운되는 시기이나 장기적으로 볼 때 개선되는 시점이 올 것이다.”

―어떻게 풀어야 할까.

“두 개의 어프로치(접근법)가 있다. 하나는 이런 상황에 관계없이 계속 발전할 수 있는 3국 협력관계를 더욱 촉진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전체적인 관계가 개선되는 방향으로 노력한다. 2010년 5월 3국 관계가 조금 더 좋았던 시기에 ‘비전 2020’이라는 3국 정상이 합의해 작성한 문서가 있다. 그 시점부터 향후 10년간 3국 협력을 해나가자는 꽤 긴 문서였는데 아직 실행되지 않고 있는 분야가 엄청 많다. 이것을 착실하게 하나하나 실현시키는 것을 통해 3국 관계를 개선할 수 있다. 또 하나는 양자 문제의 경우 3국협력사무국이 다룰 수는 없지만 3국이 관심을 가질 수 있는 테마를 정해서 작으나마 공통인식을 만들도록 할 수 있다면 지금의 양자 문제를 해결하는 것과도 연관될 수 있다. 현재의 상황에서는 3국 정부 간에 이런 일을 진행하기는 몹시 어려울지 모른다. 그러나 학자 등 민간대화를 촉진해 (3국간의) 핵심적인 문제에 관해서도 상황을 개선할 돌파구를 찾도록 하는 것도 사무국의 역할이 아닌가 생각한다.”

―예를 들자면.

“3국 공통의 문제라고 한다면 한·일, 중·일 양자 관계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역사문제가 있다. 다만 역사문제도 양자 간에는 공동연구가 이뤄졌으나 그 결과가 양국 관계를 촉진하는 것으로 그리 연결되지는 못했다. 만약 한·중·일 학자와 함께 (제2차 세계대전) 전전(戰前)부터 전후에 걸쳐 이 지역에 크게 관여한 미국의 역사, 정치학자들이 모여 논의한다면 무엇인가 역사문제를 뛰어넘을 수 있는 지혜라든지 아이디어가 나올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한·일 일본군위안부 관련 국장급 협의가 진행되고 있다. 이 부분에 성과가 있으면 한·일 정상회담으로 이어질 분위기다. 사무국 차원에서 절충안이나 제안을 내놓을 계획은 없는가.

“양국 간 문제, 개별적 문제는 사무국의 업무 범위 안에 들어 있지 않다. 그래서 이런(위안부) 문제에 대해 제안을 하면 3국 정부 모두 찬성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주제를 보다 넓게 설정해 역사문제에 대해 서로 공통이익을 갖도록 인식을 좁혀간다는 목적 하에 사무국이 무엇인가 기여할 부분이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3국간 어떤 차이가 관계 개선의 걸림돌로 작용한다고 보나.

“불충분한 지식으로 그런 큰 문제에 대해 일반적으로 짧게 말하면 오해를 일으킬 것으로 우려된다. 그래서 먼저 각론으로 들어가면 한·중·일 3국의 의식주(衣食住)에서 차이를 발견하고 그 차이의 배경이 무엇인지를 이해하면 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특히 예의와 습관, 교제 방식에서 서로 간의 차이를 3국이 서로 이해하고, 그래서 좋은 관계를 만드는 게 중요하다. 구미(歐美)에는 톨레랑스라는 말이 있다. 톨레랑스가 없으면 좋은 인간관계를 맺어나가는 게 꽤 어렵다. 상대방의 차이를 인식하고, 상대방을 자신의 방식으로 바꾸려고 하지 않고, 상대방의 방식도 존중하고 자신의 방식도 존중받는 인간관계가 가능하다면 나라와 나라 사이도 그렇게 될 수 있지 않을까.”

―3국협력사무국은 2011년 이후 어떤 역할을 했나.

“협정에 규정된 역할은 크게 다섯 가지다. 3국 정상회의 등 각종 회담 준비, 아세안 등 다른 국제기구와 연계, 기존에 협력 분야가 없거나 촉진시켜야 할 분야에 대한 아이디어 제안, 3국협력진척보고서 작성, 3국협력 분야에 대한 연구다. 특히 다른 국제기구와의 연계와 관련해 3국 협력이 발전하면 아세안(동남아국가연합)과도 일체화(통합)하는 방향도 생각하고 있어 아세안 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또 러시아, 몽골, 유럽연합(EU)과도 좋은 관계를 유지하려고 한다.”

―한·중·일 3국이 유럽처럼 공동체로 발전할 수 있을까. 이를 위한 관건은.

“물론 유럽에는 유럽의 문화가 있고, 여기(동아시아)에는 여기의 문화가 있다. 그래서 완전히 유럽처럼 이쪽도 나아가야 한다는 식으로 생각할 필요는 없다. 다만 역시 유럽에서 배울 부분이 많다. 동아시아는 여러 분야에서 협력하고 있으나 확실한 법적인 의무, 문서에 근거한 의무가 아닌 수준의 협력에 머물러 있다. 반면 유럽은 좀 더 확실한 법적 틀 안에 있다. 이것이 큰 차이다. 3국간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이 끝나고 실제 발효되면 조약의 형식으로 (3국이) 의무적으로 지켜야 하는 부분이 있게 된다. 법적인 틀을 만들어 협력의 수준을 높이는 방법은 경제뿐 아니라 문화, 환경 등 다른 많은 분야에서도 필요하다.”

―3국 협력을 새롭게 촉진시켜야 할 분야는 어떤 것이 있나.

“스포츠가 뜻밖에 아직 충분한 교류가 이뤄지지 않는 분야다. 그런 의미에서 스포츠담당 장관급 회의라든지 고위급 레벨에서의 3국 회의가 필요하지 않나 생각해서 제안한 바 있다.”

―그동안 부임 후 3국간 편견의 극복을 강조한 것으로 안다. 편견을 극복하기 위해 구상하거나 실행 중인 프로그램은.

“3국에서 모두 동아시아 문화권에 속해 있다. 그래서 3국의 문화, 사고방식이 비슷하다고 생각(오해)하기 때문에 그게 오히려 부작용이 되고 있어 서로 차이에 대해 깊이 인식하지 못하는 것 같다. 이런 부분을 극복하기 위해 3국 문화의 차이점과 유사점을 주제로 전문가의 강연을 듣는 월간 강좌(Monthly Lecture) 행사를 열고 있다. 어떤 특정한 면뿐 아니라 전체적으로 어떤 차이가 있는지 서로 파악하면 편견을 극복하는 데 좋은 방법이 될 것이다. 일례로 3국이 모두 젓가락을 쓰지만 형태나 사용법은 다 다르다. 그래서 하나하나의 사례를 통해 3국의 문화, 사고방식의 차이를 일반 시민에게 설명하고 책자로 배포한다면 서로 올바로 이해하는 좋은 계기가 될 것으로 본다.”

―마지막으로 국제기구에 속해 있어 주한 일본대사관 소속 일본 외교관보다는 자유로운 입장이라고 생각된다. 위안부 할머니들을 만나서 한·일 간 현안이 되고 있는 문제에 대한 이해를 깊게 할 계획은 혹시 없나.

“사무총장의 입장을 떠나 한 명의 일본인, 외교 분야에서 일한 일본인으로서 이 문제가 한·일 관계 개선의 걸림돌이 되고 있는 것은 아주 안타깝다. (이 문제) 해결을 위해 제가 가능한 것이 있다면 하고 싶은 생각도 있으나, 무엇이 가능할까 생각해 보면 몹시 어려운 일이라고밖에 할 수 없다. 저는 사무총장직에 전념하면서 하나하나의 문제에 몰두하는 것보다 보다 큰 틀에서 불행한 역사문제가 양국 관계 개선에 걸림돌이 되는 상황을 넘어설 길이 없을까 좀 더 크게 생각해 보고, 3국 정부 간에는 힘들지만 민간 레벨이 무언가 할 수 있도록 하는 역할이 있으면 하고 싶은 마음이다.”

대담=조남규 외교안보부장, 정리=김청중, 사진=김범준 기자

■이와타니  3국협력사무국 사무총장 약력…

▲1950년 일본 고치(高知)현 출생 ▲일본 히토쓰바시(一橋)대 법학부 ▲1973년 외무성 입성 ▲주중국공사 ▲주독일공사 ▲주하와이호놀룰루총영사 ▲주케냐대사 ▲주오스트리아대


 

박근혜정부 2년차로 접어든 새해 들어 이산가족 상봉 행사가 성사되는 등 남북관계가 해빙 조짐을 보이는 가운데 이명박정부의 외교·안보 유산 조정 여부가 정부 내에서 논의되고 있다. 이명박정부의 외교·안보정책을 총괄했던 천영우(62·사진) 전 대통령실 외교안보수석비서관은 세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최근 북한이 저렇게 유화공세로 나오는 건 이명박정부의 원칙 있는 대북정책으로 북한이 버틸 수 있는 체력이 떨어졌기 때문”이라면서 “한반도 평화·안보를 약화시키더라도 남북관계를 좋아 보이게 하는 정책만큼 쉬운 게 없다”고 강조했다. 인터뷰는 지난달 26일 서울 광화문 세계일보 사옥에서 이뤄졌다.



―박근혜정부 1년을 맞아 실시된 각종 조사에서 현 정부가 외교·안보 분야는 잘한다는 평가가 나왔다. 동의하나.

“외교안보정책이란 건 인기가 있느냐 없느냐보다 국익이 얼마나 더 향상됐는가, 안보가 얼마나 더 강화됐는가 하는 점이 중요하다. 앞으로 무슨 결실을 맺을지 두고봐야 한다. 남북 긴장이 완화되는 게 우리 외교안보정책의 목표가 아니다. 긴장완화가 목표라면 우리 쌀 달라면 쌀 주고, 비료 달라면 비료 주고, 돈 달라면 돈 주면 된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북한이 핵을 포기하지 않고 버틸 수 있는 체력을 강화하는 데 이용된다면 그 정책은 실패다. 이명박정부는 이전 10년간 북한이 키운 체력을 소진시키는 데 집중했다. 당시 국민 눈엔 남북관계가 나쁘게 보였을 수 있다. 그러나 그 체력을 누가 빼앗았나.”

―남북 고위급 접촉을 통해 이산가족 상봉이 성사됐다. 이제 북한이 우리에게 명세서를 내밀 차례가 된 것 같다.

“북한은 이미 기대하는 것 이상을 얻어 갔다고 본다. 북한이 가장 바라는 것은 비방 중단이다.(남북은 지난달 14일 고위급 접촉에서 이산 상봉과 비방 중단에 합의) 쌀이나 비료, 현금보다 비방 중단이 북한엔 더 소중한 것이다. 북한은 우리 정부의 5·24조치(이명박정부 당시 천안한 폭침 사건에 대응한 북한 제재조치) 이후 우리에게 줄곧 요구해오던 것을 얻어냈다. 그런 만큼 이산 상봉 대가로 쌀 달라, 비료 달라, 금강산 관광 재개해 달라, 이런 말 못한다.”

―북한에 비방 중단이 그렇게 중요한가.

“북한은 북한 체제와 외부세계에 대한 진실이 유입돼서 북한 사람들이 알게 되는 것을 비방·중상으로 간주한다. 진실이 곧 비방·중상이다. 북한은 배가 고프거나 현금이 없어서 체제가 무너질 것이라는 생각은 안 한다. ‘김일성 왕조’에 대한 신앙심과 충성심이 무너질 때 체제가 무너진다고 본다. 장성택(국방위 부위원장)을 비롯해서 북한 체제 내부의 적은 이미 다 소탕했다. 남은 적은 남한으로부터 오는 진실과 정보다. 진실과 정보를 차단하지 못하면 아무리 쌀이 넘쳐나고 돈이 넘쳐나도 북한 체제는 무너진다. 우리는 5·24조치로 북한산 농수산물과 모래, 자갈 수입이 금지돼 북한이 연 5억달러 정도 손해 보는 게 아플 거라고 생각하지만, 북한으로선 (2004년 군사분계선에서의 선전활동 중단 등을 골자로 한) ‘6·4합의’가 파기되고 비방·중상 중단 합의가 파기된 게 가장 아픈 대목이었다. 이명박정부 당시에도 북한은 비방 중단 합의를 살리려고 별 이야기를 다 했다. 우리는 천안함 폭침 책임을 인정하면 6·4 합의가 복원된다고 했으나 북한은 수용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번 정부에서 6·4 합의 복원 조건을 대폭 완화하니까 그 기회를 빨리 잡아야겠다고 북한은 판단한 것이다.”

 

 

―박 대통령이 새해 들어 ‘통일 대박’을 외치며 통일 붐을 조성하고 있다. 하지만 통일 과정은 생략한 채 통일 이후의 장밋빛 미래만 부각하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통일대박론’ 이후로 나오는 여러 통일담론은 일단 좋은 현상으로 본다. 그동안 통일에 대한 무관심, 통일 회의론, 통일 재앙론 등이 통일담론 시장에서 더 우세한 형국이었는데, 통일에 대한 부정적 생각들을 일거에 바로잡아 놓았다. 다만 통일정책은 북한 김정은 체제의 미래를 현실적으로 진단하면서 구체적으로 세워나가야 한다. 김정은(국방위 제1위원장)이 공포정치를 하고 큰 사고를 치다가 하루아침에 운명이 끝날 수 있겠다는 가능성에만 기대하면서 통일정책을 세워선 안 된다. 김정은이 하기에 따라서는 북한 체제가 더 오래 갈 수 있다는, 10년 이상도 갈 수 있다는 생각으로 대북 정책을 세워야 한다.”

―북한 김정은 체제가 단기간에 무너질 가능성은 없다는 의미인가.

“장성택 처형 이후 김정은 체제의 불확실성이 높아졌다고들 하는데, 단기적으론 그렇지 않다고 본다. 장성택 처형으로 높아진 불확실성보다 처형이 감소시킨 불확실성이 더 크다고 본다.”

―무엇보다 북핵 문제가 걱정이다. 어떤 식으로 풀어가야 하나.

“북한이 하고 있는 전략적 계산의 공식을 바꾸면 북한은 핵을 포기할 수 있다. 중국과 미국을 포함한 국제사회가 지금까지 북한의 전략적 계산을 바꿀 만큼 대북 제재를 가한 적이 없다. 이란 제재의 5분의 1도 안 된다. 북한으로선 지금 수준의 제재 같으면 핵을 포기 안 하고 버티는 게 낫다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다. 제재 대상이 북한 대외무역의 10분의 1도 안 된다. 국제사회가 이란에 가한 수준의 대북 제재를 결심하면 북한은 버틸 수가 없다. 중국이 외상으로 북한에 석유 수출하는 것만 막아도 북한의 전략적 계산을 바꿀 수 있다.”

―중국은 북한 정권이 무너질 수 있다는 걱정을 하는 것 같다.

“북한은 정권이 무너지기 전에 핵을 포기할 것이다.”

―박근혜정부 들어 한·중 관계가 좋아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한·중 관계의 미래는 서로 좋은 말만 하는 것으로 좋아지는 것이 아니라 북한 비핵화에 중국이 얼마나 실질적으로 힘을 쓰느냐에 좌우된다는 메시지를 중국에 던져야 한다. 북한이 비핵화를 안하면 우리는 북한 핵과 미사일을 막아내기 위해 자구 차원에서 미국 미사일방어(MD) 시스템에 참여할 수 밖에 없다는 입장을 전달해야 한다.”

―지금 한·일 관계가 잘 풀리지 않는 게 이명박 대통령 책임이란 말도 나온다. 독도 방문 사례처럼 너무 강경한 대일 정책을 구사했다는 것이다.

“동의하지 않는다. 이 대통령이 독도에 간 건 독도가 우리 영토라는 걸 보여주려는 게 아니었다. 영토 문제와는 아무 관계가 없었다. 영토 문제와 상관없이 천연기념물 보호 문제 등을 목적으로 간다면 대한민국 영토에 대통령이 못 갈 곳은 없다. 대한민국 섬 3000개 어디든 갈 이유가 있으면 가는 거다.”

―누구 책임이든 결과적으로 한·일 관계가 파탄 직전이다.

“일본 아베 신조 총리가 역대 어느 정부보다 과거 회귀적인, 퇴행적인 행태를 보이는 건 틀림없다. 우리가 보기에 가슴 아프고 한심하다. 하지만 국민감정만 갖고 국가 간 관계를 할 순 없다. 가장 중요한 요소는 국익이다. 동아시아에서 민주주의와 시장경제, 범세계적 가치관 등에서 일본처럼 가까운 나라가 없다. 아베 총리의 시대착오적 행동에 과잉대응할 필요는 없다.”

―양국 정상이 일단 만나야 하지 않겠나.

“정상 간 회담이 어렵다면 장관급이라도 수시로 만나서 서로 협의할 일이 있으면 해야 한다. 대통령이 일본 총리를 만나고 싶지 않다고 해서 장관들도 눈치 보면서 일본의 카운터파트들과 만나서 협의하기를 꺼려하는 건 좋지 않다. 특히 유의해야 할 점은 우리가 다른 나라와 손잡고 일본을 망신시키는 데 앞장서는 건 옳지 않다. ”

―미국이 한·일 과거사 갈등을 중재하는 방식은 어떤가.

“미국 입장에서도 아베 총리의 야스쿠니신사 참배 등과 같은 행태가 한심하니 한마디씩 거들지만, 그렇다고 미국 사람들이 우리 편을 든다고 착각해선 안 된다. 미국이 일본에 갖고 있는 가장 큰 이해관계가 안보다. 역대 일본 정부 중에서 아베 총리만큼 미국의 전략을 잘 이해하고 협조해주는 총리가 없었다. 미·일 관계의 근간이 아베 총리의 과거사 인식 문제로 흔들리지 않는다.”

대담=조남규 외교안보부장, 정리=김예진, 사진=허정호 기자

◆ 천영우 한반도미래포럼 이사장은…?

▲1952년 경남 밀양 출생 ▲ 동아고, 부산대, 미국 컬럼비아대 국제관계학 석사 ▲외무고시 11회 ▲북핵6자회담 수석대표 ▲외교통상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 ▲주영국 대사 ▲대통령실 외교안보수석 ▲현 아산정책연구원 고문

 

일본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가 존경하는 역사 인물은 다카스기 신사쿠(高衫晋作)다.

아베 총리의 이름 중 ‘신(晋)’자는 그의 이름에서 따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다카스기는 아베의 고향인 조슈 출신으로 민병대를 조직해 도쿠가와(德川) 막부의 숨통을 끊어놓은 인물이다. 아베 총리의 부친인 아베 신타로(安倍晋太郞) 전 외상의 이름에도 ‘晋’자가 들어있다. 그에 대한 아베 부자의 존경의 깊이를 짐작케 한다. 다카스기의 스승인 요시다 쇼인(吉田松陰)은 일본을 제국주의로 몰아간 ‘정한론(征韓論)’ 주창자다. 아베 총리가 정한론자를 존경하는 것과 그의 외조부인 기시 노부스케(岸信介)가 태평양전쟁의 A급 전범이었다는 점은 동전의 양면이다.
일본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역사 인물은 일본 근대화의 영웅인 사카모토 료마(坂本龍馬)다.

 

                                                                                                    <사카모토 료마>

하급무사 출신인 그는 견원지간인 사쓰마번(현 가고시마현)과 조슈번(현 야마구치현)이 오랜 반목과 불화를 넘어 동맹(삿초동맹)을 맺도록 하고, 메이지유신의 토대를 닦은 인물이다. 그가 성사시킨 삿초동맹은 백제와 신라를 손잡게 하는 일에 비견할 만한 기적 같은 일이다. 일본의 메이지유신사는 가슴을 뛰게 한다. ‘서양 오랑캐를 내쫓고 국왕을 받들어 모시자’(尊王攘夷·존왕양이)는 대의명분 아래 수많은 지사들이 목숨을 초개와 같이 버렸다. 그들의 헌신에 천운이 더해진 덕분에 일본은 주변국보다 먼저 근대화에 성공했다. 메이지유신을 통해 일본은 도쿠가와 막부 중심의 봉건체제에서 일왕을 정점으로 한 근대국가로 탈바꿈했다. 중국의 국부(國父) 쑨원(孫文)이 한때 “우리는 메이지유신의 지사들이다”고 말한 데서 당시 메이지유신을 바라보는 조선과 중국 개혁가들의 선망 어린 눈길을 느낄 수 있다.

사카모토 료마 등 개명한 지사들은 일본의 근대화가 주변국과의 연대속에 진행되길 바랐다. 여론의 인정을 받는 좋은 정치를 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료마와 같은 개명파 지사들이 암살당하거나 메이지유신 이후 노선 투쟁에서 극우파들이 승리하면서 일본은 아류 제국주의의 길로 폭주했다. 이는 일제의 침략으로 자주적 근대화가 좌절된 조선과 중국뿐 아니라 일본에게도 불행이었다. 청일전쟁에서 태평양전쟁으로 이어진 일제의 침략전쟁으로 수백만의 ‘황군(皇軍)’이 목숨을 잃었다.

일본사 연구의 세계적 권위자인 마리우스 잰슨의 분석은 명료하다. 그는 저서 ‘사카모토 료마와 메이지유신’(푸른길)에서 “진정한 진보로 이어질 이성적인 계획에 눈을 뜨면서 폭력적인 수단을 버렸던 메이지유신의 선각자들과, 입으로는 그들의 후계자를 자처하면서 실제로는 이성에 등을 돌리고 근거 없고 시대착오적인 미신의 불합리로 조국을 내모는 허망한 시도를 하면서 폭력에 호소한 후세의 아류들의 차이점을 보지 못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평가했다. 잰슨이 살아있다면 아베 총리에게 이런 충고를 할 것이다. 메이지유신 선각자들의 이상을 곡해한 채 ‘폭력에 호소한 후세 아류들’의 전철을 밟지 말고 주변국과의 협력을 통해 일본을 존경받는 나라로 만들라고.

개인적으로 필자는 아베 총리가 요시무라 간이치로(吉村貫一郞)의 꿈을 실현하기 위한 정치를 펼쳐 보이길 기대한다.

그는 영화 ‘철도원’의 원저자로 우리에게도 친숙한 아사다 지로(淺田次郞)가 그의 장편소설 ‘임생의사전(壬生義士傳)’에서 주인공으로 삼은 인물이다. 아사다는 사료에 이름 정도 기록돼 있던 평범한 무사를 주인공으로 삼아 대의 명분의 기치 아래서 스러져간 민초들의 삶을 그려 보인다. 메이지유신 시대의 영웅전에 익숙한 독자라면 요시무라는 파격 무사다. 주군(또는 일왕)에 대한 충성과 의리를 앞세우며 시도 때도 없이 배를 그어대던 다른 사무라이들과 달리 그는 처자식을 위해 목숨을 걸었다. 그는 형식만 남은 껍데기 무사정신에 얽매이지 않았다. 사무라이가 목숨을 바칠 상대는 주군이 아니라 우리를 먹여 살리는 백성이라고 외치면서. 사카모토나 요시무라 같은 무사들이 근대 일본을 주도했다면, 일본은 주변국의 존경을 받는 동북아 강국이 돼 있을 것이다. 아베 총리가 그런 나라를 만드는 데 힘쓰길 바란다.

조남규 외교안보부장

일본 아베 신조 총리의 참배로 또다시 논란거리가 된 야스쿠니 신사의 전신은 도쿄 초혼사(招魂社)다. 초혼사는 히로히토 일왕(日王)의 할아버지인 메이지 일왕의 뜻에 따라 세워졌다.
 도쿠가와 막부를 무너뜨리고 일왕 중심의 체제를 수립하는 과정에서 숨진 전몰자, 그중에서도 일왕 편에 섰던 이들의 영혼을 위로하기 위한 추모 시설이다. 제국주의로 치닫던 일본은 메이지 일왕의 명령으로 도쿄 초혼사를 ‘나라를 태평하게 한다’는 뜻의 야스쿠니(靖國)로 개칭했다. 그런 뒤 청·일, 러·일 전쟁 전사자들이 야스쿠니 위령자 명부에 등재됐고 야스쿠니는 군국주의의 도구로 활용됐다. 일왕은 야스쿠니 신사의 주요 제전(祭典) 때마다 직접 참배했다. 야스쿠니는 패전 직후 국가 시설에서 종교 법인으로 격하됐으나 일왕은 꾸준히 야스쿠니를 찾았다.
 그런데 히로히토의 야스쿠니행은 1975년 11월21일 이후 돌연 중단됐다. 히로히토의 뒤를 이은 아키히토 일왕도 1989년 즉위 이후 지금껏 야스쿠니에 참배하지 않고 있다.

 

                                                                                                        아키히토 일왕


 아베 총리는 지난 26일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한 뒤 “두 번 다시 전쟁의 참화로 사람들이 괴로워하는 일이 없는 시대를 만들겠다는 결의를 전하기 위해 참배했다”고 밝혔다. 총리 재임 시절 야스쿠니를 6차례나 참배했던 고이즈미 준이치로는 당시 “가족을 두고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분들 모두에게 충심에서 추도를 행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런 숭고한 이유에서 이뤄진 참배라면, 왜 일왕은 근 40년째 야스쿠니를 외면하고 있는 것일까.
 고이즈미나 아베가 애써 외면하고 있는 ‘불편한 진실’이 바로 야스쿠니와 관련된 일왕의 마음이다. 일왕의 야스쿠니 참배가 돌연 중단된 이유를 놓고는 갑론을박이 있었다. 그러던 차에 2006년 궁내청(일본 왕실 주무부처) 장관을 지낸 도미타 도모히코의 메모가 공개됐다. ‘도미타 메모’에는 다음과 같은 히로히토의 독백이 기록돼 있다. “언젠가 A급(전범)이 합사되었다. …쓰쿠바는 신중하게 대처했다고 듣고 있지만, 마쓰다이라의 아들은 아버지의 마음을 모르고 있다. 그 때문에 나는 그때 이후 참배하고 있지 않다. 이것이 나의 마음이다.” ‘쓰쿠바’는 1966년 A급 전범 14명의 제신명표를 수령하고서도 그들을 합사하지 않았던 쓰쿠바 후지마로 궁사(宮司), ‘마쓰다이라의 아들’은 1978년 10월 비밀리에 A급 전범 합사를 단행했던 마쓰다이라 나가요시 궁사다. 해군 장교 출신인 마쓰다이라는 “도쿄 전범 재판을 부인해야 일본의 부활이 가능하다”는 소신을 갖고 있었다고 한다. 그는 A급 전범 합사 과정에서 일왕이나 유족의 뜻도 묻지 않았다.(도요시타 나라히코의 ‘히로히토와 맥아더’)
 마쓰다이라는 일본 우익 진영의 영웅이 됐다. 우익 진영을 대변해온 일본 자민당 정권은 야스쿠니에 합사된 전범들을 ‘쇼와(昭和)의 순난자(殉難者)’(히로히토 시대의 애국자)로 미화시켰다. A급 전범 용의자를 외조부(기시 노부스케 전 총리)로 둔 아베 총리는 정치 초년병 때부터 그 선봉에 섰던 인물이다. 아베의 야스쿠니 참배는 뼛속 깊이 각인된 우익 DNA의 발현인 셈이다.
 하지만 아베를 포함한 일본 우익이 야스쿠니를 부각시키면 시킬수록 일왕은 야스쿠니로부터 멀어질 수밖에 없다. 종전 이후 일본 체제는 연합군최고사령부 더글러스 맥아더 사령관과 히로히토 일왕 간 타협의 산물로, ‘히로히토의 전쟁 책임 면제-일왕제 유지-평화헌법’이라는 토대 위에 서 있기 때문이다. 일본 우익은 전범들을 야스쿠니에 합사한 뒤 총리의 참배를 이끌어내며 군국주의 시대로 시곗바늘을 되돌리려 하고 있으나 그러면 그럴수록 일왕의 전쟁 책임론이 부각되고 일왕을 전범 법정에 세웠어야 했다는 목소리들이 커진다. 일본 우익의 시대착오적 행태는 무엇보다 즉위 당시 “항상 국민의 행복을 염원하면서 일본국 헌법을 준수하고…우리나라가 한층 더 발전해 국제사회의 우호와 평화, 인류의 복지와 번영에 기여할 것을 간절히 희망”했던 아키히토 일왕의 뜻에 배치되는 것이다.

조남규 외교안보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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