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68년 5월16일 미국 상원 본회의장.

이날은 미 역사상 처음으로 탄핵소추된 앤드루 존슨 대통령(17대)의 운명이 결정되는 날이었다.

존슨 대통령은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의 재선 당시 부통령으로, 링컨 대통령이 암살당한 직후 대통령직을 승계했다. 의회 다수당인 공화당은 존슨 대통령과 사사건건 충돌했다.

존슨 대통령은 의회가 남북전쟁 패전 주(州)에 대한 가혹한 조치나 행정부에 대한 과도한 간섭을 담은 법률안을 제안하면 거부권으로 맞섰다. 존슨 탄핵안은 양측의 갈등이 쌓이고 쌓인 끝에 과격한 공화당 의원들이 뽑아든 극약 처방이었다.

탄핵안의 핵심은 존슨 대통령의 에드윈 스탠턴 국방장관 해임이 공무원 임기법을 위반하고 의회를 모독했다는 것이었다.

존 F 케네디 미 대통령의 퓰리처상 수상 저서인 ‘용기 있는 사람들’(Profiles in courage·범우사)은 현직 대통령 탄핵위기 속에서 빛을 발한 한 의원을 기리고 있는데, 바로 캔자스주 상원의원인 에드먼드 로스다.

당시 연방에 가입된 27개 주의 상원의원은 54명으로, 탄핵안 가결 정족수는 재적의원 3분의 2인 36표였다. 의석 수 42석인 공화당은 탄핵안 통과를 자신했다. 그런데 공화당 의원 6명이 ‘증거 불충분’을 이유로 탄핵 반대 입장을 밝히는 돌발사태가 발생했다. 민주당 의원 12명은 반대표가 확실한 만큼 공화당으로선 남은 소속의원 36명 전원의 찬성표가 필요했다. 이들 중 로스를 제외한 의원들은 모두 찬성 입장이었다.

 


마침내 로스가 투표할 차례가 됐다. 이미 24명의 의원들이 탄핵에 찬성한 뒤였다. 로스만 찬성하면 존슨 탄핵안이 가결되는 절체절명의 순간이었다.

상원의 탄핵 표결을 주재한 연방 대법원장이 마른 침을 삼키며 물었다.

“로스 의원, 피고 앤드루 존슨은 유죄입니까, 무죄입니까?”

본회의장을 가득 메운 의원들과 방청객들의 시선이 일제히 캔자스 출신의 젊은 초선 상원의원에게 쏠렸다. 그는 분명한 어조로 “무죄요!”라고 외쳤다.

35 대 19, 단 한 표 차이로 공화당 과격파의 대통령 탄핵 기도는 무산됐고 대통령은 살아났다. 대신 로스의 정치 인생은 막을 내렸다. 동료 의원들은 ‘반역자 로스’(무죄라고 외친 이후 로스가 얻은 별명)를 저주했다.

존슨 대통령은 퇴임 후 상원의원으로 다시 의회에 입성했으나 그를 지지했던 로스 등 7명의 공화당 의원은 단 한 명도 재선되지 못했다. 캔자스로 돌아온 로스 의원은 냉대와 질병, 가난에 시달려야 했다.

로스 의원은 왜 반대표를 던졌을까. 그는 탄핵 소동이 있은 지 몇 년 후에 그 이유를 털어놨다.

“만약 대통령이 당파적 이유로 축출된다면 대통령직의 권위는 크게 실추될 것이며, 행정부는 입법부의 종속적 기관으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존슨 탄핵안은 당파 독재정치를 초래하고 국가조차 위험에 빠뜨렸을 것이다.”

로스는 탄핵 표결 직후 부인에게 “오늘 나를 저주하는 수많은 사람들은 내일이 오면 나를 축복할 것이다. 하나님 외에 그 누구도 나의 가치 있는 투쟁을 이해하지 못한다 해도, 나는 이미 가장 큰 위험으로부터 이 나라를 구해냈기 때문”이라고 토로했다.

그의 예언대로, 역사는 그를 국익을 지키다 정치적 순교를 당한 영웅으로 재평가했다.

국익을 위해선 당 지도부와 지역구민의 비난을 기꺼이 감수하는 의원. 온갖 편견과 오도된 분위기에도 굴하지 않고, 물거품 같은 인기를 경멸하고, 전라도나 경상도, 다른 어느 지역의 의원이 아닌 대한민국 의원으로서, 당 내의 반역자라는 오명은 기꺼이 감수하는 의원.

 자신의 정치적 무덤을 들여다보면서도 진실과 거짓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서 진실의 길을 걸어가는 의원.

19대 국회에선 이런 의원들을 보고 싶다.

조남규 정치부 차장

미국 서부의 옐로스톤 국립공원을 찾았을 때가

2005년 8월이니, 벌써 7년 전 입니다.

그런데도 어제 일처럼 생생합니다.

워낙 기묘한 곳이어서 그랬을까요.

 

느닷없이 지하에서 뜨거운 물줄기가 하늘로 솟구치는 곳이니

원주민이었던 인디언들이나 서부 개척에 나섰던 미국인들에게는

경외와 호기심의 대상이었을 것입니다.

 

 

 

위 사진은 옐로스톤의 유명 간헐천 중 하나인

Giant Geyser가 분출하는 모습입니다.

물론 누구나 이런 장관을 볼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제가 갔던 2005년엔 11번, 2006, 2007년엔 각각 47, 54번 분출했습니다.

하지만 2008년 들어선 분출 횟수가 13 차례에 그쳤고

2009년엔 아예 문을 닫았습니다.

왜 이렇게 불규칙적인지는 미스테리입니다.

현재의 과학 수준으론 분출 시점도 예상할 수 없다는 군요.

터질 때마다 100m 가깝게 솟아올랐습니다.

저희 가족은

거인의 잠자는 모습을 지켜보다

아쉬운 발길을 돌려야 했습니다.

 

 

                         

  인근의 Steamboat Geyser도 과거

힘찬 물줄기를 창공으로 뿜어올린 적이 있었지만,

 

 

 

 제가 갔을 땐 새근 새근 잠들어 있었습니다.

 

 

                                                                                                  <깨어나라 간헐천아!>

 

Excelsior Geyser는 1890년 이후 분출 활동이 멈췄다가

1985년 9월14일, 오랜 잠에서 깨어났습니다.

분출은 무려 47시간 동안 지속됐다고 합니다.

그리곤 지금껏 쉬고 있습니다.

 

 

 

 

하지만 모든 간헐천들이 잠들어있는 것은 아닙니다.

옐로스톤 공원 남서쪽에 위치한 Old faithful Geyser는

약 90분 만에 한 번씩 주기적으로 분출하고 있습니다.

 

 

 

Old faithful Geyser는 그 활동성 덕분에

옐로스톤 간헐천 중 가장 먼저 지금의 이름을 얻었습니다.

이름 그대로, 믿음이 가는 오랜 친구같죠?

이 친구 말고도 여기 저기서 "나도 있다"고 손짓하는 친구들이 많습니다.

 

 

 

 

 

 

 

 

 

 

 

 

 

 

 

 

제각각 생긴대로 이름들이 있는데

아래 간헐천은 Castle Geyser.

정말 성(城)처럼 생겼죠?

 

 

 

 

볼거리가 많은 곳이지만

사실 옐로스톤은 매우 위험한 곳입니다.

옐로스톤 지역은 지표 근처까지 올라온 뜨거운 마그마(용암) 위에

얹혀있는 형국이기 때문입니다.

땅이 용암 위에서 출렁거린다고 보시면 됩니다.

그래서 관광할 때도 지정된 길로만 다녀야지

만용을 부리다간 참사로 연결될 수 있습니다.

땅이 쑥 꺼지면서 뜨거운 팥죽 속으로. ++;;

독가스를 품어내는 간헐천도 있습니다.

어지러운 증세가 느껴지면 즉시 탈출해야 합니다.

 

                               <안전한 길만 따라서 조심 조심>

 

 

    

 

옐로스톤의 또 다른 명물은 협곡.

화산, 침식 활동이 만들어낸 자연의 명작으로

옐로스톤 강과 협곡이 멋진 조화를 이루고 있습니다.

 

 

 

 

 

 

 

협곡 트레일을 따라서 걷다보면

Upper Falls가 나타납니다.

 

 

Upper Falls까지는 트레일이 잘 닦여있어

폭포를 코 앞에서 볼 수 있습니다.

 

 

계속 걷다보면

협곡의 전경을 한 눈에 조망할 수 있는

Artist Point에 도달하게됩니다.

그 곳에서 볼 수 있는 옐로스톤 협곡의 모습은

정말 장관입니다.

 

 

 

 

멀리 보이는 폭포가 Lower Falls.

분당 850만 리터 가량의 물을 쏟아낸다고 합니다.

 

 

옐로스톤 인증샷 명소라는 명성은

역시 허명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저도 한 컷.

 

 

최근 유타대 로버트 스미스 교수팀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옐로스톤 지하에 있는 용암의 양이 지금까지 알려진 것 보다

20% 가량 많은 것으로 드러나 화제가 됐습니다.

옐로스톤 지역은 약 200만 년 전과 130만 년 전, 64만2000년 전에

3차례 대폭발을 일으킨 전력이 있습니다.

사방 수 십 마일에 이르는 옐로스톤 공원의 중심 분지 지역은

마지막 대폭발의 결과물입니다.

아래는 약 50만 전에 용암이 식으면서 만들어진 암석.

마치 누군가 돌을 깍아서 차곡 차곡 쌓아올린 성벽 같지요.

 

 

 

옐로스톤은 1872년 3월 세계 최초로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이래

생태계의 보고가 됐습니다.

하지만 1988년 자연 발화로 추정되는 화재가 발생,

공원 절반 가량이 소실됐습니다.

 

 

 

아래는 그로부터 17년이 지난 2005년의 모습,

 자연은 놀라운 복원력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옐로스톤은 간헐천과 호수, 협곡 등이 어우러진

종합선물세트 같은 관광지입니다.

 

옐로스톤 호수는 둘레가 160km에 달합니다.

보기만 해도 서늘해지는 청록색 호수 주위 곁에서

간헐천이 수증기를 내뿜고 있는 풍광은 

기묘한 대조를 이룹니다.

겨울 온천의 느낌.

 

 

 

그 중에서도 눈길을 끄는 곳은

호수와 인접한 곳에서 펄펄 끓고 있는 '천연 냄비'.

그 곳에서 인디언들은

호수에서 잡은 고기를 삶아 먹었다고 합니다.

천연 냄비 가에 빙 둘러앉아서

갓 잡아 올린 송어를 즉석에서 요리하고 있는

인디언들의 모습을 떠올려 봅니다.

 

 

 

 

협곡을 둘러본 뒤

마지막으로 찾은 Mammoth Country 지역.

지구상에서 가장 큰 지열(地熱) 지대라고 합니다.

 

 

 

 

 

 

 오며 가며 만나는 동물들도 반갑습니다.

 

 

 

 

 

 

 

 

                                   Via Flckr:yellowstonenps

구름과 수증기가 범벅이 된 옐로스톤 상공에

돌연 먹구름이 형성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더니 갑자기 우박이 쏟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콩알 만한 우박비에 얼굴이 얼얼해질 정도였습니다.

 

 

 

한여름에 우박이라니,

사방에서 이리 뛰고 저리 뛰는 관광객들 속에서

괴성과 환호성이 터져나왔습니다.

대피소를 찾기 위해 방향도 모른채 뛰는 저도

웃음을 참을 수 없었습니다.

정말 상쾌한 경험이었습니다.

  


이공계 분야 고급 인재들 “美는 연구천국 최대 장점”
독보적 기술·美특허 취득
매년 수백명씩 현지 정착

한국인 최초로 미국 하버드 대학 종신교수가 된 박홍근(45) 교수는 한국인 노벨과학상에 근접한 과학자들 중 한 명이다. 박 교수는 서울대 화학과를 수석 입학한 뒤 서울대를 전체 수석으로 졸업한 과학 영재다. 서울대 졸업 이후 미국 스탠퍼드대학에서 4년 만에 박사 학위를 받은 뒤 1999년 하버드대 교수로 임용됐다. 박 교수는 자신이 개척한 분자전자과학 분야의 최고 권위자이며 화학과 물리학, 의학을 넘나드는 ‘통섭’의 학문 연구로 하버드에서도 초고속 승진을 거듭, 교수로 임용된 지 5년 만에 종신교수가 됐다.

그는 왜 한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미국에 남았을까. 박 교수는 세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처음 미국 유학을 떠날 때만 해도 한국 대학으로 돌아가는 것이 꿈이었다”면서 “하지만 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한국의 연구 투자 여건이 좋지 않았다”고 말했다. 미국이 박 교수를 붙잡을 수 있었던 가장 큰 무기는 자유롭게 연구할 수 있는 환경이었다.




◆천재들에게 아낌없이 주는 미국

세계적인 과학 잡지 네이처가 “2010년 노벨물리학상 공동 수상자로 선정됐어야 마땅한 인물”이라고 평가했던 김필립(44) 미국 컬럼비아대 교수나 생물물리학(Biophysics) 분야의 선두 주자인 하택집(44) 미 일리노이대 교수도 미국에 남아 연구를 계속하고 있는 과학 인재들이다. 김 교수는 서울대(물리학)에서 석사학위를 받은 뒤 하버드대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컬럼비아대 교수로 임용됐다. 서울대 물리학과를 졸업하고 버클리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하 교수는 2005년 미국 과학계 최대 규모 연구비인 ‘하워드 휴즈 그랜트’ 대상자로 선정됐다. 그는 “조건 없는 연구비 덕에 실용화 가능성에 얽매이지 않고 창의적인 연구를 할 수 있다”고 밝혔다.

코네티컷대의 주경선(49) 교수는 올해로 미국 생활 26년째다. 서울대 물리학과를 졸업한 뒤 미국 유학길에 올라 매사추세츠공대(MIT)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핵물리학 분야의 권위자인 주 교수는 미국 과학재단(NSF)에서 정부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다. 주 교수는 세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미국 정착 이유를 묻는 질문에 “유학생 대부분은 특별한 계획 없이 미국에 와서 공부한다”면서 “개인적으로도 한국에 일자리가 생기면 갈 생각이었으나 코네티컷대 교수 기회가 먼저 주어져 미국에 정착하게 됐다”고 말했다. 미국에서 생활하다 보면 자녀들의 교육 문제 때문에 한국으로 돌아가기가 점점 더 어려워진다는 것이 주 교수의 설명이다.


서울대에서 전자공학 석사를 받고 유학길에 오른 K씨(49)는 현재 미국 서부의 실리콘 밸리 인근 대학에서 교수로 재직 중이다. K씨는 박사 후 연구원 기간에 유수의 한국 대학에서 교수 자리를 제안받았지만 아들의 교육 문제를 고민하다 미국 정착을 결심한 케이스다. 그는 “한국 유학생들 상당수가 자녀의 교육 문제를 걱정하다가 한국행을 포기하고 있다”면서 “해외 인재들을 끌어들이려면 대학뿐 아니라 입시 제도를 비롯한 교육 시스템 전반의 수준이 높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특히 지체부자유 자녀를 둔 부모들은 미국에서 공부를 마친 뒤 열이면 열 모두 미국에서 먼저 일자리를 찾는다고 그는 전했다.

◆매년 수백 명의 천재를 빼앗기는 한국

한국에서 박사 과정을 마친 L씨(34)는 최근 취업 이민 1순위 자격으로 미국에 이민했다.

L씨는 독보적인 폐수 처리 방식을 개발, 외국 저널에 논문을 발표하고 미국 특허를 따냈다. 미국은 L씨를 ‘특수한 능력 소유자’로 인정, 영주권을 줬다. 미국은 취업 이민 1순위(EB-1)에 해당하는 사람을 ‘우선 취업인’(priority workers)으로 분류한다. 자격 조건이 엄격하지만 조건을 갖춘다면 이민 신청이 신속하게 처리된다. 미국이 2010년 한 해 동안 EB-1 자격으로 영주권을 부여한 외국인 인재는 4만1055명에 달한다. 이 중엔 한국인도 수백 명에 달하는 것으로 재미 과학계는 추산하고 있다.

미국이 한국 인재들을 흡수하는 또 다른 제도는 ‘노동허가 면제’(NIW) 제도다. 이는 공적인 분야에서 국가적 규모의 일을 수행하면서 미국의 국가 이익에 중대한 기여를 한 외국인을 영주권 신청 과정에서 특별히 배려하는 제도이다. 주로 미국 대학에서 박사 과정을 마친 뒤 미 정부 연구기관에서 중요한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유학생들이 수혜 대상이다. 이민 변호사 업계에 따르면 최근엔 MIT에서 유학한 뒤 미 공군연구소에서 탄도 미사일 궤도 추적 프로그램을 개발한 Y씨와 쥐를 이용한 암세포 연구 분야에서 획기적 업적을 세운 K씨 등이 이 제도를 통해 영주권을 받았다. 이들은 필수 서류인 미 연방공무원 3명 이상의 추천서를 받아냈다. 미 정부가 반드시 필요한 인재라고 판단되면 주저없이 추천서를 발급하는 것이다.

◆한국, 인재 유치전략 없다

대학과 민간 기업의 해외 인재 유치 노력 등에 힘입어 해외 인재들이 일부 한국으로 복귀하고 있으나 가뭄에 콩 나듯 한 실정이다.

김필립 컬럼비아대 교수는 올 3월부터 2년간 모교인 서울대 초빙 석좌교수로 활동하며 학부생과 대학원생을 대상으로 강의를 하고 물리학과 교수들과 공동 연구를 진행할 예정이다. 얼마 전엔 이길여 가천대 총장이 샌프란시스코와 보스턴, 워싱턴을 순회하며 미국의 한국 인재들을 선발했다. 주경선 교수는 “한국 대학의 연구 여건이 과거에 비해 많이 향상된 것은 사실이지만 여전히 미국 대학이나 연구소의 지원 규모에는 미치지 못한다”면서 “정부 차원의 적극적인 인재 유치 전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사람이 국부다] 전종준 美 이민전문 변호사 인터뷰




“꼭 필요한 인재 이민법 걸렸다면 한사람 위한 영주권 법안 내기도”


“미국은 반드시 필요한 인재라면 세계 누구라도 영입해 미국인으로 만든다.”

전종준(사진) 미국 이민전문 변호사는 4일(현지시간) 워싱턴에서 가진 세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미국은 이민법이 만들어진 1960년대부터 해외 인재들의 미국 이민 창구인 취업 이민 1, 2순위 쿼터(할당 숫자)를 줄이지 않았다”면서 “매년 수만 명씩 유입되는 해외 인재들이 미국 경쟁력의 원천”이라고 말했다.

―미국은 어떤 방법으로 해외 인재들을 견인하나.

“이민 정책이다. 취업 이민하기 위해선 고용주가 필요하다. 하지만 해외 인재를 대상으로 한 1순위 이민은 고용주가 없어도 된다. 과학이나 예술, 교육, 경영, 체육 분야에서 국제적 명성을 가진 사람이 그 대상이다. 노벨상 수상자를 떠올리면 된다. 1순위 수준은 아니어도 특출한 능력을 보유한 사람은 2순위에 해당된다. 1, 2순위는 심사가 엄격하기 때문에 매년 쿼터가 남아돈다. 미국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어도 독보적이지 않으면 선택되지 않는다. 수많은 박사들 중 한 명이어선 안 된다. 미국에선 쉽게 찾아볼 수 없는 유일한 그 누구여야 한다.”

―미국은 이민 정책 외에 어떤 인재 충원 정책을 활용하고 있나.

“정말 필요한 인재인데 이민법상 부적격자인 때에는 연방 의원이 그 인재를 위해 영주권 신청 법안을 발의한다. 흔하지는 않지만 왕왕 그런 사례가 있다. 유능한 인재들은 비공식적으로 영주권을 주기도 한다.”

-미국 대학에서 과학이나 기술, 공학, 수학 분야에서 석사학위 이상을 취득한 사람에게 영주권을 부여하는 법안이 의회에서 논의되고 있다.

“아이디어 차원이다. 과학 분야 해외 인재들을 미국에 남게 하자는 차원에서 논의되고 있으나 불법 체류자 구제를 포함한 포괄적인 이민 개혁 법안의 일부이기 때문에 실제 그런 법안이 발의될지는 미지수다. 의회에서는 미국이 경제적으로 번영하고 국가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서 세계의 인재를 적극적으로 유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미국의 영주권 정책은 매년 바뀌나.

“상황에 따라 의회에서 정한다. 한 나라에서 전체 7%를 초과하면 더 이상 영주권을 신청할 수 없다. 인도와 중국은 매년 쿼터를 채울 정도로 미국 이민이 활발하다.”

―미국이 여전히 세계 초일류 국가 지위를 유지할 것으로 보나.

“로마 제국은 1000년이 지속됐다. 미국의 역사는 300년이다. 앞으로도 오랫동안 세계 중심 국가로서 역할을 할 것이다. 교육과 환경 등 많은 분야에서 메리트(장점)가 많은 나라이기 때문이다.”


워싱턴=조남규 특파원

미국에 대통령 당선자를 족집게처럼 집어내는 전문가가 있다. 점술가가 아니고 학자라는 점이 자못 눈길을 끈다. 그는 1992년 미국 대선 결과를 정확히 예측해 일약 스타가 됐다. 앨런 리히트먼(사진) 아메리칸대 교수다. 그는 걸프 전쟁을 승리로 이끌며 지지율이 90%까지 치솟은 조지 H 부시 대통령의 재선 실패를 예언했다. 그는 미 역사상 첫 흑인대통령이 탄생한 2008년 대선 결과를 3년 전에 예측했다. 1984년 이후 치러진 일곱 번의 대선 결과를 모두 맞혀 ‘대선 족집게’라는 별명을 얻었다. 그에게 올해 실시되는 미국 대선의 결과를 물어봤다.



-공화당 대선 후보 경선에서는 밋 롬니 전 매사추세츠 주지사의 압승으로 막을 내린 플로리다 경선을 계기로 ‘롬니 대세론’이 재점화되고 있다. 롬니가 공화당 대선 후보로 선출될 것으로 보나.

“공화당 경선은 초반 3개주인 아이오와와 뉴햄프셔, 사우스캐롤라이나 경선 1위가 제각각인 전례없는 결과를 내놓으면서 매우 역동적으로 진행되고 있다(아이오와 1위는 릭 샌토럼 전 상원의원, 뉴햄프셔 1위는 롬니, 사우스캐롤라이나 1위는 뉴트 깅리치 전 하원의장이다). 롬니의 플로리다 승리는 사우스캐롤라이나 경선 이후 형성된 롬니와 깅리치의 팽팽한 균형이 깨지고 무게중심이 롬니 쪽으로 이동됐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하지만 플로리다가 끝이 아니다. 3월부터 6월 사이에 치러지는 경선에는 수많은 대의원들이 걸려 있다.”

―롬니의 플로리다 경선 승리에도 불구하고 출구조사에서는 복음주의 유권자들이 깅리치를 더 지지한 것으로 조사됐다. 롬니의 몰몬교 신앙이 공화당 경선 결과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보는가.

“공화당 대선 주자들이 롬니의 신앙을 공개적으로 거론하지는 않지만 롬니의 몰몬교 신앙은 부인할 수 없는 경선 변수다. 복음주의 유권자들 중 상당수가 몰몬교를 ‘이단’으로 간주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민들은 대체로 대선 후보 선출 과정에서 몰몬교도를 유대교도나 여성보다 더 기피하는 경향이 있다.”




―객관적으로 평가했을 때 공화당 대선 주자 중에서 누가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맞수로 가장 적합한가.

“여론조사 지표상 오바마에 대적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공화당 후보는 롬니다. 중도파인 롬니의 지지율이 다른 주자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은 이유는 대다수 미국민들이 중도 성향이기 때문이다. 물론 경선 초반의 지지율이 최종 결과를 담보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개발한 대선 결과 예측 시스템에 따르면 롬니든 깅리치든 본선에서 오바마의 상대는 되지 못한다.”

―당신이 개발한 대선 예측 시스템의 원리를 설명해 달라.

“내가 동료 교수와 함께 개발한 대선 예측 시스템은 1860∼1980년에 치러진 모든 대선 통계를 면밀히 검토한 결과다. 우리는 이를 기초로 대선의 향방을 결정짓는 13개 변수를 추출해냈다. 이들 13개 변수 중 6개 변수 이상에서 긍정적 평가를 받은 현직 대통령은 모두 재선에 성공했다. 이 원리의 근저에는 현직 대통령과 집권당의 성적표가 대선 결과를 좌우한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대통령과 집권당의 성적표는 집권 중반이면 윤곽이 드러나기 때문에 이 시스템을 적용하면 다른 대선 예측 시스템과 달리 조기에 결과를 예측할 수 있다. 오바마 대통령은 9개 부문에서 긍정적 평가를 받았다. 부정적 평가는 3개였고 나머지 1개는 판단이 유보됐다.”

―오바마 대통령은 어떤 항목에서 부정적 평가를 받았나.

“첫째, 대선 전에 치러진 중간선거 결과다. 대통령을 배출한 집권당이 중간선거에서 승리하면 현직 대통령의 재선 가능성이 높아진다. 하지만 집권 민주당은 2010년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에 하원 다수당 자리를 내주며 참패했다. 둘째, 장기 경제 전망이다. 미국은 사실상 경기침체 국면이 지속되고 있다. 오바마는 경제 이슈에서 불리한 위치에 놓여 있다. 마지막으로 오바마 대통령의 카리스마 부족이다. 오바마는 카리스마가 넘치는 대통령도 아니고 국민적 영웅 후보도 아니다. 오바마는 건강보험 개혁 토론 당시 선두에서 이를 주도하지 못한 채 끌려다녔고 뛰어난 화술을 타고났음에도 불구하고 경기 침체 국면 속에서 국민을 분발시키지도 못했다. 2008년 대선이 끝난 이후 국민과 소통하는 능력도 약화됐다는 것이 나의 판단이다.”




―오바마가 긍정적 평가를 받은 항목은 어떤 것들인가.

“단기 경제 전망 변수는 올 대선 시점에 어떻게 작용할지 예측하기 힘든 측면이 있다. 그래서 판단 유보 평가를 내렸다. 나머지 9개 변수는 오바마에게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란 판단을 내렸다. 우선 오바마는 유일한 민주당 대선 후보다. 현역 대통령이라고는 하지만 당내 도전 없이 재선을 치르게된 점은 플러스 요인이다. 진보 성향의 제3후보가 오바마 표를 잠식하지 않게 된 것도 오바마에게 유리한 국면이다. 이와 함께 오바마 대통령은 첫번째 임기 동안 건강보험 개혁과 획기적인 경기부양책 등 이전 정부와의 정책 차별화를 시도했다. 이는 현직 대통령의 재선 캠페인에 도움이 된다. 또한 통치 능력이 위협받을 만한 사회 불안 요인이 없고, 아직까지는 정권 차원의 스캔들이 없다는 점도 오바마 대통령이 재선 캠페인을 한결 수월하게 치를 수 있도록 하는 요인이다. 오바마 정부는 외교·안보 분야에서 ‘피그만 실패’(케네디 미 행정부가 1961년 4월 쿠바 피델 카스트로 정권을 전복시키기 위해 쿠바 망명자들로 침공군을 조직, 쿠바 피그만을 공격했다가 실패로 끝난 사건)와 유사한 실책이 없다. 오히려 (알카에다 수장인) 오사마 빈 라덴을 사살하는 등 혁혁한 전과를 세웠다.”

―대선 기간의 여론조사는 대선 예측 변수가 아닌가.

“여론조사 결과는 반영하지 않는다. 이 예측 시스템은 대통령이 국정을 잘 이끌고 있는지, 집권당이 의정 활동을 통해 여론의 지지를 얻고 있는지 등과 같은 큰 그림에 바탕하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의 맞수인 공화당 대선 후보가 탁월하면 예측 결과가 달라질 수 있지 않나.

“물론 현직 대통령과 맞붙는 상대 후보의 카리스마도 평가 항목 중 하나다. 하지만 현재 공화당 대선 주자로 뛰고 있는 그 누구도 카리스마가 넘치거나 국민적 영웅인 사람은 없다.”

―당신은 2년 전에도 오바마 대통령의 재선을 확신했다. 올해 들어 오바마 대통령의 재선 가능성이 더 높아졌다고 보나.

“그때나 지금이나 나의 대선 예측에는 큰 변화가 없다. 장기적 경기 전망이 밝지 않은 만큼 경제는 분명 중요한 대선 변수로 작용할 것이다. 하지만 경제가 대선 결과를 좌우하는 유일하고 결정적인 변수는 아니다.”

―대선 전망과 관련된 에피소드가 있다면 말해 달라.

“92년 대선 당시의 일이다. 어느 날 남부 억양의 한 여성이 전화를 걸어왔다. (후에 민주당 대선 후보로 선출된) 빌 클린턴 캠프의 참모였다. 그 여성은 과연 민주당이 92년 대선에서 승리할 것인지 여부를 알고 싶어했다. 나는 민주당의 대선 승리를 확신시킨 뒤 클린턴 캠프에 내 저서와 메모를 전달했다. 클린턴 후보의 대선 승리는 역사가 기록하고 있는 바다. 2008년 대선에선 공화당이 필패한다는 전망을 내놨다. 전화번호부에서 아무나 골라 민주당 후보로 내세워도 대통령에 당선될 것이라고 장담했다. 그리고 3년 후에 미 역사상 처음으로 민주당 소속의 흑인 대통령이 탄생했다.”

―미국 대선이 항상 민주당과 공화당 후보의 양자 대결 방식으로 진행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대선을 치르려면 천문학적 규모의 자금이 소요된다. 제3후보가 기존 유력 정당과 자신을 차별화하면서 대선 캠페인을 진행하는 것 자체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언론도 제3후보를 심각하게 취급하지 않고 유권자들의 ‘사표(死票) 방지 심리’도 제3후보에겐 불리한 대목이다.”

―당신의 정치 성향은 보수와 진보 중에서 어느 쪽에 가깝나.

“보수주의자는 아니다. 오바마 대통령이 건강보험 개혁과 재정규제 개혁, 이라크 철군, 미 자동차 산업 구제 등 많은 부문에서 업적을 남겼다고 본다.”

워싱턴=조남규 특파원

■ 앨런 리히트먼 교수 약력

▲미국 브랜다이스대, 하버드대 박사(역사학)

▲아메리칸대 교수

▲1993년 올해의 교수상 수상

▲미 법무부 인권조사위원

▲‘백악관으로 가는 열쇠’(The Keys to the

White House) 저술

여성 지위 높아지고 소득 늘어…전통적 역할 뒤바뀐 가정 많아


 칼리 피오리나가 1999년 여성으론 처음으로 휴렛팩커드(HP) 최고경영자(CEO) 자리에 올랐을 때 피오리나의 남편은 아내를 ‘내조’하기 위해 직장을 그만뒀다.

피오리나 남편 프랭크의 사직은 컴퓨터 업계 첫 CEO 탄생 뉴스와 함께 장안의 화제가 됐다. 앞서 1994년 투자회사 찰스 슈워브에서 첫 여성 CEO로 돈 르포어가 임명되고 같은 회사에 근무하던 그의 남편 켄 글래든이 회사 측의 사직 권고를 받아 직장을 그만둔 사실도 세간의 화제가 됐다.



하지만 요즘 미국에선 잘나가는 아내를 위해 사직서를 제출하고 집안에 들어앉는 남편들의 얘기는 더 이상 뉴스거리가 되지 못한다.

미 경제전문지 포춘이 선정한 500대 기업 여성 CEO 18명 중에서 제록스 CEO인 우르술라 번스와 펩시코 회장 겸 CEO인 인드라 누이, 웰포인트 CEO인 안젤라 브랠리 등 7명이 ‘전업주부’ 역할을 하고 있는 남편을 두고 있다고 블룸버그비즈니스위크가 보도했다.


남편과 아내의 전통적 역할이 뒤바뀐 세태는 사회 각 부문에서 목도되는 여성들의 약진 때문이다.

블룸버그비즈니스위크에 따르면 포춘 선정 500대 기업의 여성 CEO는 1970년 단 한 명도 없었으나 2012년 1월 현재 18명으로 늘었다.



아내의 소득이 가계 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같은 기간 27%에서 36%로 커졌다.

대도시 지역에 거주하는 30살 이하의 여성들은 같은 연령대 남성들보다 소득이 높은 것으로 조사돼 여성의 소득 우위 현상은 갈수록 뚜렷해질 전망이다.

내조 남편의 증가를 가져온 또 다른 원인은 금융위기 과정에서 남성들의 실직률이 여성 실직률보다 더 높았기 때문이다. 명실상부한 여성 파워 시대가 도래하면서 내조 남편들의 수도 대폭 늘었다. 아내 대신 5살 이하 자녀를 정기적으로 돌보는 남편의 수는 1988년 19%에서 2010년 32%로 증가한 것으로 미 인구센서스국은 집계했다.

여성들의 사회활동을 독려해온 린다 히르슈만 변호사는 “가정 내에서 남편과 아내의 전통적인 역할 분담이 역전되면서 남자들은 갑자기 오랜 역사 속에서 여성들이 담당해온 가사 업무를 자각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슈퍼 엄마의 탄생은 자녀들의 인성 교육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르포어는 가끔 자녀들이 자신의 영향을 받아서 너무 소극적이지 않을까 걱정한다. 힘든 업무를 마치고 집에 돌아올 때마다 직장 생활에 대한 불만을 토로했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집에 남은 아빠와 하루 종일 시간을 보내면서 전통적인 남녀 역할에 대한 인식도 정반대로 하게된다. 르포어의 회상이다.
 "하루는 딸 친구가 집에 놀러와서 '아빠는 매일 회사에 가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딸이 이렇게 말하더라. '바보같은 소리말아, 아빠는 집에 있는 사람이잖아"  

워싱턴=조남규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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