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공계 분야 고급 인재들 “美는 연구천국 최대 장점”
독보적 기술·美특허 취득
매년 수백명씩 현지 정착

한국인 최초로 미국 하버드 대학 종신교수가 된 박홍근(45) 교수는 한국인 노벨과학상에 근접한 과학자들 중 한 명이다. 박 교수는 서울대 화학과를 수석 입학한 뒤 서울대를 전체 수석으로 졸업한 과학 영재다. 서울대 졸업 이후 미국 스탠퍼드대학에서 4년 만에 박사 학위를 받은 뒤 1999년 하버드대 교수로 임용됐다. 박 교수는 자신이 개척한 분자전자과학 분야의 최고 권위자이며 화학과 물리학, 의학을 넘나드는 ‘통섭’의 학문 연구로 하버드에서도 초고속 승진을 거듭, 교수로 임용된 지 5년 만에 종신교수가 됐다.

그는 왜 한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미국에 남았을까. 박 교수는 세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처음 미국 유학을 떠날 때만 해도 한국 대학으로 돌아가는 것이 꿈이었다”면서 “하지만 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한국의 연구 투자 여건이 좋지 않았다”고 말했다. 미국이 박 교수를 붙잡을 수 있었던 가장 큰 무기는 자유롭게 연구할 수 있는 환경이었다.




◆천재들에게 아낌없이 주는 미국

세계적인 과학 잡지 네이처가 “2010년 노벨물리학상 공동 수상자로 선정됐어야 마땅한 인물”이라고 평가했던 김필립(44) 미국 컬럼비아대 교수나 생물물리학(Biophysics) 분야의 선두 주자인 하택집(44) 미 일리노이대 교수도 미국에 남아 연구를 계속하고 있는 과학 인재들이다. 김 교수는 서울대(물리학)에서 석사학위를 받은 뒤 하버드대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컬럼비아대 교수로 임용됐다. 서울대 물리학과를 졸업하고 버클리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하 교수는 2005년 미국 과학계 최대 규모 연구비인 ‘하워드 휴즈 그랜트’ 대상자로 선정됐다. 그는 “조건 없는 연구비 덕에 실용화 가능성에 얽매이지 않고 창의적인 연구를 할 수 있다”고 밝혔다.

코네티컷대의 주경선(49) 교수는 올해로 미국 생활 26년째다. 서울대 물리학과를 졸업한 뒤 미국 유학길에 올라 매사추세츠공대(MIT)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핵물리학 분야의 권위자인 주 교수는 미국 과학재단(NSF)에서 정부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다. 주 교수는 세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미국 정착 이유를 묻는 질문에 “유학생 대부분은 특별한 계획 없이 미국에 와서 공부한다”면서 “개인적으로도 한국에 일자리가 생기면 갈 생각이었으나 코네티컷대 교수 기회가 먼저 주어져 미국에 정착하게 됐다”고 말했다. 미국에서 생활하다 보면 자녀들의 교육 문제 때문에 한국으로 돌아가기가 점점 더 어려워진다는 것이 주 교수의 설명이다.


서울대에서 전자공학 석사를 받고 유학길에 오른 K씨(49)는 현재 미국 서부의 실리콘 밸리 인근 대학에서 교수로 재직 중이다. K씨는 박사 후 연구원 기간에 유수의 한국 대학에서 교수 자리를 제안받았지만 아들의 교육 문제를 고민하다 미국 정착을 결심한 케이스다. 그는 “한국 유학생들 상당수가 자녀의 교육 문제를 걱정하다가 한국행을 포기하고 있다”면서 “해외 인재들을 끌어들이려면 대학뿐 아니라 입시 제도를 비롯한 교육 시스템 전반의 수준이 높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특히 지체부자유 자녀를 둔 부모들은 미국에서 공부를 마친 뒤 열이면 열 모두 미국에서 먼저 일자리를 찾는다고 그는 전했다.

◆매년 수백 명의 천재를 빼앗기는 한국

한국에서 박사 과정을 마친 L씨(34)는 최근 취업 이민 1순위 자격으로 미국에 이민했다.

L씨는 독보적인 폐수 처리 방식을 개발, 외국 저널에 논문을 발표하고 미국 특허를 따냈다. 미국은 L씨를 ‘특수한 능력 소유자’로 인정, 영주권을 줬다. 미국은 취업 이민 1순위(EB-1)에 해당하는 사람을 ‘우선 취업인’(priority workers)으로 분류한다. 자격 조건이 엄격하지만 조건을 갖춘다면 이민 신청이 신속하게 처리된다. 미국이 2010년 한 해 동안 EB-1 자격으로 영주권을 부여한 외국인 인재는 4만1055명에 달한다. 이 중엔 한국인도 수백 명에 달하는 것으로 재미 과학계는 추산하고 있다.

미국이 한국 인재들을 흡수하는 또 다른 제도는 ‘노동허가 면제’(NIW) 제도다. 이는 공적인 분야에서 국가적 규모의 일을 수행하면서 미국의 국가 이익에 중대한 기여를 한 외국인을 영주권 신청 과정에서 특별히 배려하는 제도이다. 주로 미국 대학에서 박사 과정을 마친 뒤 미 정부 연구기관에서 중요한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유학생들이 수혜 대상이다. 이민 변호사 업계에 따르면 최근엔 MIT에서 유학한 뒤 미 공군연구소에서 탄도 미사일 궤도 추적 프로그램을 개발한 Y씨와 쥐를 이용한 암세포 연구 분야에서 획기적 업적을 세운 K씨 등이 이 제도를 통해 영주권을 받았다. 이들은 필수 서류인 미 연방공무원 3명 이상의 추천서를 받아냈다. 미 정부가 반드시 필요한 인재라고 판단되면 주저없이 추천서를 발급하는 것이다.

◆한국, 인재 유치전략 없다

대학과 민간 기업의 해외 인재 유치 노력 등에 힘입어 해외 인재들이 일부 한국으로 복귀하고 있으나 가뭄에 콩 나듯 한 실정이다.

김필립 컬럼비아대 교수는 올 3월부터 2년간 모교인 서울대 초빙 석좌교수로 활동하며 학부생과 대학원생을 대상으로 강의를 하고 물리학과 교수들과 공동 연구를 진행할 예정이다. 얼마 전엔 이길여 가천대 총장이 샌프란시스코와 보스턴, 워싱턴을 순회하며 미국의 한국 인재들을 선발했다. 주경선 교수는 “한국 대학의 연구 여건이 과거에 비해 많이 향상된 것은 사실이지만 여전히 미국 대학이나 연구소의 지원 규모에는 미치지 못한다”면서 “정부 차원의 적극적인 인재 유치 전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사람이 국부다] 전종준 美 이민전문 변호사 인터뷰




“꼭 필요한 인재 이민법 걸렸다면 한사람 위한 영주권 법안 내기도”


“미국은 반드시 필요한 인재라면 세계 누구라도 영입해 미국인으로 만든다.”

전종준(사진) 미국 이민전문 변호사는 4일(현지시간) 워싱턴에서 가진 세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미국은 이민법이 만들어진 1960년대부터 해외 인재들의 미국 이민 창구인 취업 이민 1, 2순위 쿼터(할당 숫자)를 줄이지 않았다”면서 “매년 수만 명씩 유입되는 해외 인재들이 미국 경쟁력의 원천”이라고 말했다.

―미국은 어떤 방법으로 해외 인재들을 견인하나.

“이민 정책이다. 취업 이민하기 위해선 고용주가 필요하다. 하지만 해외 인재를 대상으로 한 1순위 이민은 고용주가 없어도 된다. 과학이나 예술, 교육, 경영, 체육 분야에서 국제적 명성을 가진 사람이 그 대상이다. 노벨상 수상자를 떠올리면 된다. 1순위 수준은 아니어도 특출한 능력을 보유한 사람은 2순위에 해당된다. 1, 2순위는 심사가 엄격하기 때문에 매년 쿼터가 남아돈다. 미국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어도 독보적이지 않으면 선택되지 않는다. 수많은 박사들 중 한 명이어선 안 된다. 미국에선 쉽게 찾아볼 수 없는 유일한 그 누구여야 한다.”

―미국은 이민 정책 외에 어떤 인재 충원 정책을 활용하고 있나.

“정말 필요한 인재인데 이민법상 부적격자인 때에는 연방 의원이 그 인재를 위해 영주권 신청 법안을 발의한다. 흔하지는 않지만 왕왕 그런 사례가 있다. 유능한 인재들은 비공식적으로 영주권을 주기도 한다.”

-미국 대학에서 과학이나 기술, 공학, 수학 분야에서 석사학위 이상을 취득한 사람에게 영주권을 부여하는 법안이 의회에서 논의되고 있다.

“아이디어 차원이다. 과학 분야 해외 인재들을 미국에 남게 하자는 차원에서 논의되고 있으나 불법 체류자 구제를 포함한 포괄적인 이민 개혁 법안의 일부이기 때문에 실제 그런 법안이 발의될지는 미지수다. 의회에서는 미국이 경제적으로 번영하고 국가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서 세계의 인재를 적극적으로 유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미국의 영주권 정책은 매년 바뀌나.

“상황에 따라 의회에서 정한다. 한 나라에서 전체 7%를 초과하면 더 이상 영주권을 신청할 수 없다. 인도와 중국은 매년 쿼터를 채울 정도로 미국 이민이 활발하다.”

―미국이 여전히 세계 초일류 국가 지위를 유지할 것으로 보나.

“로마 제국은 1000년이 지속됐다. 미국의 역사는 300년이다. 앞으로도 오랫동안 세계 중심 국가로서 역할을 할 것이다. 교육과 환경 등 많은 분야에서 메리트(장점)가 많은 나라이기 때문이다.”


워싱턴=조남규 특파원

미국에 대통령 당선자를 족집게처럼 집어내는 전문가가 있다. 점술가가 아니고 학자라는 점이 자못 눈길을 끈다. 그는 1992년 미국 대선 결과를 정확히 예측해 일약 스타가 됐다. 앨런 리히트먼(사진) 아메리칸대 교수다. 그는 걸프 전쟁을 승리로 이끌며 지지율이 90%까지 치솟은 조지 H 부시 대통령의 재선 실패를 예언했다. 그는 미 역사상 첫 흑인대통령이 탄생한 2008년 대선 결과를 3년 전에 예측했다. 1984년 이후 치러진 일곱 번의 대선 결과를 모두 맞혀 ‘대선 족집게’라는 별명을 얻었다. 그에게 올해 실시되는 미국 대선의 결과를 물어봤다.



-공화당 대선 후보 경선에서는 밋 롬니 전 매사추세츠 주지사의 압승으로 막을 내린 플로리다 경선을 계기로 ‘롬니 대세론’이 재점화되고 있다. 롬니가 공화당 대선 후보로 선출될 것으로 보나.

“공화당 경선은 초반 3개주인 아이오와와 뉴햄프셔, 사우스캐롤라이나 경선 1위가 제각각인 전례없는 결과를 내놓으면서 매우 역동적으로 진행되고 있다(아이오와 1위는 릭 샌토럼 전 상원의원, 뉴햄프셔 1위는 롬니, 사우스캐롤라이나 1위는 뉴트 깅리치 전 하원의장이다). 롬니의 플로리다 승리는 사우스캐롤라이나 경선 이후 형성된 롬니와 깅리치의 팽팽한 균형이 깨지고 무게중심이 롬니 쪽으로 이동됐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하지만 플로리다가 끝이 아니다. 3월부터 6월 사이에 치러지는 경선에는 수많은 대의원들이 걸려 있다.”

―롬니의 플로리다 경선 승리에도 불구하고 출구조사에서는 복음주의 유권자들이 깅리치를 더 지지한 것으로 조사됐다. 롬니의 몰몬교 신앙이 공화당 경선 결과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보는가.

“공화당 대선 주자들이 롬니의 신앙을 공개적으로 거론하지는 않지만 롬니의 몰몬교 신앙은 부인할 수 없는 경선 변수다. 복음주의 유권자들 중 상당수가 몰몬교를 ‘이단’으로 간주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민들은 대체로 대선 후보 선출 과정에서 몰몬교도를 유대교도나 여성보다 더 기피하는 경향이 있다.”




―객관적으로 평가했을 때 공화당 대선 주자 중에서 누가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맞수로 가장 적합한가.

“여론조사 지표상 오바마에 대적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공화당 후보는 롬니다. 중도파인 롬니의 지지율이 다른 주자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은 이유는 대다수 미국민들이 중도 성향이기 때문이다. 물론 경선 초반의 지지율이 최종 결과를 담보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개발한 대선 결과 예측 시스템에 따르면 롬니든 깅리치든 본선에서 오바마의 상대는 되지 못한다.”

―당신이 개발한 대선 예측 시스템의 원리를 설명해 달라.

“내가 동료 교수와 함께 개발한 대선 예측 시스템은 1860∼1980년에 치러진 모든 대선 통계를 면밀히 검토한 결과다. 우리는 이를 기초로 대선의 향방을 결정짓는 13개 변수를 추출해냈다. 이들 13개 변수 중 6개 변수 이상에서 긍정적 평가를 받은 현직 대통령은 모두 재선에 성공했다. 이 원리의 근저에는 현직 대통령과 집권당의 성적표가 대선 결과를 좌우한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대통령과 집권당의 성적표는 집권 중반이면 윤곽이 드러나기 때문에 이 시스템을 적용하면 다른 대선 예측 시스템과 달리 조기에 결과를 예측할 수 있다. 오바마 대통령은 9개 부문에서 긍정적 평가를 받았다. 부정적 평가는 3개였고 나머지 1개는 판단이 유보됐다.”

―오바마 대통령은 어떤 항목에서 부정적 평가를 받았나.

“첫째, 대선 전에 치러진 중간선거 결과다. 대통령을 배출한 집권당이 중간선거에서 승리하면 현직 대통령의 재선 가능성이 높아진다. 하지만 집권 민주당은 2010년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에 하원 다수당 자리를 내주며 참패했다. 둘째, 장기 경제 전망이다. 미국은 사실상 경기침체 국면이 지속되고 있다. 오바마는 경제 이슈에서 불리한 위치에 놓여 있다. 마지막으로 오바마 대통령의 카리스마 부족이다. 오바마는 카리스마가 넘치는 대통령도 아니고 국민적 영웅 후보도 아니다. 오바마는 건강보험 개혁 토론 당시 선두에서 이를 주도하지 못한 채 끌려다녔고 뛰어난 화술을 타고났음에도 불구하고 경기 침체 국면 속에서 국민을 분발시키지도 못했다. 2008년 대선이 끝난 이후 국민과 소통하는 능력도 약화됐다는 것이 나의 판단이다.”




―오바마가 긍정적 평가를 받은 항목은 어떤 것들인가.

“단기 경제 전망 변수는 올 대선 시점에 어떻게 작용할지 예측하기 힘든 측면이 있다. 그래서 판단 유보 평가를 내렸다. 나머지 9개 변수는 오바마에게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란 판단을 내렸다. 우선 오바마는 유일한 민주당 대선 후보다. 현역 대통령이라고는 하지만 당내 도전 없이 재선을 치르게된 점은 플러스 요인이다. 진보 성향의 제3후보가 오바마 표를 잠식하지 않게 된 것도 오바마에게 유리한 국면이다. 이와 함께 오바마 대통령은 첫번째 임기 동안 건강보험 개혁과 획기적인 경기부양책 등 이전 정부와의 정책 차별화를 시도했다. 이는 현직 대통령의 재선 캠페인에 도움이 된다. 또한 통치 능력이 위협받을 만한 사회 불안 요인이 없고, 아직까지는 정권 차원의 스캔들이 없다는 점도 오바마 대통령이 재선 캠페인을 한결 수월하게 치를 수 있도록 하는 요인이다. 오바마 정부는 외교·안보 분야에서 ‘피그만 실패’(케네디 미 행정부가 1961년 4월 쿠바 피델 카스트로 정권을 전복시키기 위해 쿠바 망명자들로 침공군을 조직, 쿠바 피그만을 공격했다가 실패로 끝난 사건)와 유사한 실책이 없다. 오히려 (알카에다 수장인) 오사마 빈 라덴을 사살하는 등 혁혁한 전과를 세웠다.”

―대선 기간의 여론조사는 대선 예측 변수가 아닌가.

“여론조사 결과는 반영하지 않는다. 이 예측 시스템은 대통령이 국정을 잘 이끌고 있는지, 집권당이 의정 활동을 통해 여론의 지지를 얻고 있는지 등과 같은 큰 그림에 바탕하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의 맞수인 공화당 대선 후보가 탁월하면 예측 결과가 달라질 수 있지 않나.

“물론 현직 대통령과 맞붙는 상대 후보의 카리스마도 평가 항목 중 하나다. 하지만 현재 공화당 대선 주자로 뛰고 있는 그 누구도 카리스마가 넘치거나 국민적 영웅인 사람은 없다.”

―당신은 2년 전에도 오바마 대통령의 재선을 확신했다. 올해 들어 오바마 대통령의 재선 가능성이 더 높아졌다고 보나.

“그때나 지금이나 나의 대선 예측에는 큰 변화가 없다. 장기적 경기 전망이 밝지 않은 만큼 경제는 분명 중요한 대선 변수로 작용할 것이다. 하지만 경제가 대선 결과를 좌우하는 유일하고 결정적인 변수는 아니다.”

―대선 전망과 관련된 에피소드가 있다면 말해 달라.

“92년 대선 당시의 일이다. 어느 날 남부 억양의 한 여성이 전화를 걸어왔다. (후에 민주당 대선 후보로 선출된) 빌 클린턴 캠프의 참모였다. 그 여성은 과연 민주당이 92년 대선에서 승리할 것인지 여부를 알고 싶어했다. 나는 민주당의 대선 승리를 확신시킨 뒤 클린턴 캠프에 내 저서와 메모를 전달했다. 클린턴 후보의 대선 승리는 역사가 기록하고 있는 바다. 2008년 대선에선 공화당이 필패한다는 전망을 내놨다. 전화번호부에서 아무나 골라 민주당 후보로 내세워도 대통령에 당선될 것이라고 장담했다. 그리고 3년 후에 미 역사상 처음으로 민주당 소속의 흑인 대통령이 탄생했다.”

―미국 대선이 항상 민주당과 공화당 후보의 양자 대결 방식으로 진행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대선을 치르려면 천문학적 규모의 자금이 소요된다. 제3후보가 기존 유력 정당과 자신을 차별화하면서 대선 캠페인을 진행하는 것 자체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언론도 제3후보를 심각하게 취급하지 않고 유권자들의 ‘사표(死票) 방지 심리’도 제3후보에겐 불리한 대목이다.”

―당신의 정치 성향은 보수와 진보 중에서 어느 쪽에 가깝나.

“보수주의자는 아니다. 오바마 대통령이 건강보험 개혁과 재정규제 개혁, 이라크 철군, 미 자동차 산업 구제 등 많은 부문에서 업적을 남겼다고 본다.”

워싱턴=조남규 특파원

■ 앨런 리히트먼 교수 약력

▲미국 브랜다이스대, 하버드대 박사(역사학)

▲아메리칸대 교수

▲1993년 올해의 교수상 수상

▲미 법무부 인권조사위원

▲‘백악관으로 가는 열쇠’(The Keys to the

White House) 저술

여성 지위 높아지고 소득 늘어…전통적 역할 뒤바뀐 가정 많아


 칼리 피오리나가 1999년 여성으론 처음으로 휴렛팩커드(HP) 최고경영자(CEO) 자리에 올랐을 때 피오리나의 남편은 아내를 ‘내조’하기 위해 직장을 그만뒀다.

피오리나 남편 프랭크의 사직은 컴퓨터 업계 첫 CEO 탄생 뉴스와 함께 장안의 화제가 됐다. 앞서 1994년 투자회사 찰스 슈워브에서 첫 여성 CEO로 돈 르포어가 임명되고 같은 회사에 근무하던 그의 남편 켄 글래든이 회사 측의 사직 권고를 받아 직장을 그만둔 사실도 세간의 화제가 됐다.



하지만 요즘 미국에선 잘나가는 아내를 위해 사직서를 제출하고 집안에 들어앉는 남편들의 얘기는 더 이상 뉴스거리가 되지 못한다.

미 경제전문지 포춘이 선정한 500대 기업 여성 CEO 18명 중에서 제록스 CEO인 우르술라 번스와 펩시코 회장 겸 CEO인 인드라 누이, 웰포인트 CEO인 안젤라 브랠리 등 7명이 ‘전업주부’ 역할을 하고 있는 남편을 두고 있다고 블룸버그비즈니스위크가 보도했다.


남편과 아내의 전통적 역할이 뒤바뀐 세태는 사회 각 부문에서 목도되는 여성들의 약진 때문이다.

블룸버그비즈니스위크에 따르면 포춘 선정 500대 기업의 여성 CEO는 1970년 단 한 명도 없었으나 2012년 1월 현재 18명으로 늘었다.



아내의 소득이 가계 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같은 기간 27%에서 36%로 커졌다.

대도시 지역에 거주하는 30살 이하의 여성들은 같은 연령대 남성들보다 소득이 높은 것으로 조사돼 여성의 소득 우위 현상은 갈수록 뚜렷해질 전망이다.

내조 남편의 증가를 가져온 또 다른 원인은 금융위기 과정에서 남성들의 실직률이 여성 실직률보다 더 높았기 때문이다. 명실상부한 여성 파워 시대가 도래하면서 내조 남편들의 수도 대폭 늘었다. 아내 대신 5살 이하 자녀를 정기적으로 돌보는 남편의 수는 1988년 19%에서 2010년 32%로 증가한 것으로 미 인구센서스국은 집계했다.

여성들의 사회활동을 독려해온 린다 히르슈만 변호사는 “가정 내에서 남편과 아내의 전통적인 역할 분담이 역전되면서 남자들은 갑자기 오랜 역사 속에서 여성들이 담당해온 가사 업무를 자각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슈퍼 엄마의 탄생은 자녀들의 인성 교육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르포어는 가끔 자녀들이 자신의 영향을 받아서 너무 소극적이지 않을까 걱정한다. 힘든 업무를 마치고 집에 돌아올 때마다 직장 생활에 대한 불만을 토로했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집에 남은 아빠와 하루 종일 시간을 보내면서 전통적인 남녀 역할에 대한 인식도 정반대로 하게된다. 르포어의 회상이다.
 "하루는 딸 친구가 집에 놀러와서 '아빠는 매일 회사에 가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딸이 이렇게 말하더라. '바보같은 소리말아, 아빠는 집에 있는 사람이잖아"  

워싱턴=조남규 특파원


이단 취급 몰몬교 극복한 롬니의 질주
신앙보다 리더십 중시하는 성숙한 민도


1928년 미국 대선은 후보의 종교가 본격적으로 쟁점이 된 최초의 선거였다.

민주당 대선 후보로 선출된 앨 스미스 뉴욕 주지사가 가톨릭 신자였기 때문이다. 미 선거사상  가톨릭 신자가 주요 정당의 대선 후보로 나선 것은 이때 선거가 처음이었다. 그러자 허버트 후버 공화당 후보 지지자들은 “가톨릭 대통령은 교황의 하수인이 될 것”이라는 논리를 펴며 종교를 쟁점화했다. 후버는 “정교 분립이 헌법에 명문화된 상황에서 선출직 후보의 종교를 문제 삼는 것은 편협한 태도”라면서 거리를 뒀지만, 스미스는 종교 문제로 선거 기간 내내 고전을 면치 못했다. 예상대로 결과는 후버의 압승으로 끝났다. 스미스는 프로테스탄트(신교도)가 많은 남부에서 대패했다. 종교 문제는 스미스의 주요 패인 중 하나로 분석됐다.

당시만 해도 미국민들은 ‘프로테스탄트인 백인 남성’만이 대통령이 될 수 있다는 고정 관념이 강했다. 언론도 이런 ‘조건’에서 벗어난 대선 후보들에 대해선 예외성을 부각시키는 방식으로 일반인들의 ‘상식’을 따랐다. 존 F 케네디는 이런 ‘비상식의 상식’을 깨뜨린 최초의 대통령이다. 그 벽을 뛰어넘는 과정은 결코 순탄치 않았다. 1960년 대선에 나선 그는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 과정에서부터 신교도인 휴버트 험프리의 도전에 직면해야 했다. 케네디는 종교 문제를 ‘관용’의 문제로 바꾸는 전략을 구사했다. 현실적으로 가톨릭 신자가 미국 사회의 비주류인 상황에서 종교 문제를 정면 돌파하기는 힘들다는 판단을 내린 것이다.

캐슬린 H 재미슨 펜실베이니아대 교수는 저서인 ‘대통령 만들기’(Packaging the presidency)에서 “60년 당시 미국의 가톨릭 신자 비율은 20∼30%로 추정됐으나 프로테스탄트는 여전히 가장 중요한 유권자 집단이었다”면서 “하지만 일단 문제가 관용 또는 편협의 문제로 되자 험프리는 교살당해 버렸다”고 썼다. 국민들은 더 이상 가톨릭 대통령을 꺼리지 않게 됐다. 이런 기류를 읽은 리처드 닉슨 공화당 후보 진영은 케네디와의 본선 대결에서 종교 문제를 쟁점화하지 않았다. 대통령에 당선된 케네디는 재임 기간 교황청의 지시대로 움직이는 꼭두각시가 아니라는 사실을 증명했다. 이후 가톨릭은 미 정치인의 약점으로 작용하지 않게 됐다.

 

 

케네디 

롬니

                                                                                                    

2008년 대선에선 몰몬교가 도마에 올랐다. 몰몬교 신자인 밋 롬니 전 매사추세츠 주지사가 공화당 대선 후보 경선에 뛰어들면서 ‘몰몬교도가 대통령이 될 수 있느냐’는 논쟁이 전개됐다. 롬니의 증조부는 몰몬교도들이 19세기 신교도의 핍박을 피해 서부로 이동, 유타주에 정착할 당시 교인들을 이끈 지도자 중 한 명이었다. 롬니는 몰몬교 재단의 브리검영대학을 졸업한 뒤 해외 선교 활동을 벌이고 매사추세츠주에서 교구장을 지낸 독실한 몰몬교도다. 롬니는 끝내 몰몬교 벽을 넘지 못하고 중도하차했다. 미국 내에서 몰몬교도는 약 600만명에 불과한 소수파다. 일부 신교도들은 몰몬교를 ‘이단’으로 간주한다. 롬니가 넘어야 할 벽은 케네디가 뛰어넘었던 벽보다 더 높은 것처럼 보였다.

그 롬니가 2012년 공화당 대선 후보 경선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다. 아이오와, 뉴햄프셔 경선에서 연승을 기록하며 ‘대세론’을 굳혀가고 있다. 그 배경엔 과거보다 확대된 미국민의 관용 정신이 깔려 있다. 퓨리서치센터의 지난해 7월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68%가 몰몬교 신앙은 대선 후보의 결격 사유가 아니라고 응답했다. 올 초 열린 공화당 아이오와 코커스(당원대회)에서 복음주의 신교도들은 같은 신교도인 릭 페리 텍사스 주지사(12%)나 미셸 바크먼 하원의원(11%)보다 롬니(15%)를 더 많이 지지했다. 신교도들의 이런 선택은 일부 복음주의 목사들이 “몰몬교는 이단이며 롬니도 진짜 기독교인이 아니므로 복음주의 교인들은 그에게 투표해서는 안 된다”고 목청을 높이는 가운데 이뤄진 것이다. 2012년 미 대선은 그 결과에 관계없이 미국민들의 종교적 관용 정신이 또 한번 빛을 발한 선거로 기록될 것이다.

조남규 워싱턴 특파원


2012년, 세계의 눈이 동북아시아를 향하고 있다. 아시아 중시 전략으로 선회한 미국과 21세기 패권국으로 도약하는 중국이 태평양 주도권 다툼을 본격화하는 가운데 북한 김정일의 갑작스러운 사망으로 동북아 정세의 유동성이 더 커졌다. 미국 내 대표적 아시아 전문가인 데이비드 스타인버그 조지타운대 교수 겸 아시아연구소장은 세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한·미 동맹은 동북아 지역의 세력 균형을 유지하고 역내 안정을 확보하기 위한 주요한 지렛대”라고 강조했다. 스타인버그 교수를 지난 달 워싱턴DC 조지타운대 연구실에서 만나 동북아 정세 등을 주제로 대담했다.

                                      스타인버그 교수와 필자


-미국이 버락 오바마 행정부 들어 외교·안보 정책의 중심축을 중동·유럽 지역에서 아시아·태평양 지역으로 이동시키고 있다. 미국의 아시아 중시 행보를 어떻게 평가하나.

“미국의 대아시아 정책은 150년 전과 똑같다고 생각한다. 동아시아에서 그 어느 나라도 패권국으로 부상해선 안 된다는 일관된 기조다. 19세기에 미국은 유럽의 아시아 제패를 막기 위해 중국을 개방시키는 전략을 구사했다. 1922년 워싱턴 군축회의에서 체결된 ‘해군군축조약’(미국, 영국, 일본, 프랑스, 이탈리아 등 5대 해군국이 군함의 총량을 제한하기로 합의)은 1차 세계대전 이후 아시아 맹주로 떠오르던 일본을 견제하기 위한 것이었다. 잘 알다시피 한국 전쟁과 베트남 전쟁은 아시아로 세력권을 넓히려는 공산주의를 막아내는 전쟁이었다. 이제 중국이 아시아의 패권국으로 부상하고 있다. 미국은 한국과 좋은 관계를 유지할 필요가 있다. 한·미 동맹은 역내 세력 균형을 유지하고 어느 한 나라가 너무 강력해지지 않도록 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차원에서 한국은 큰 나라가 아니지만 미국엔 매우 중요한 나라다.”

―한국이 통일되면 아시아의 또 다른 ‘호랑이’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가.

“미국은 통일된 한국이 나쁘지 않다고 본다. 통일 한국은 ‘중립적 호랑이’가 될 수 있다. 분명 미국은 중국과 가까운 통일 한국을 원치 않는다. 그런 상황은 미국과 일본 모두에게 악몽이 될 것이다. 반면 중국은 미국의 영향력이 압록강까지 확대되길 원치 않는다. 현실적으로 한반도 통일을 위해서는 중국의 인정이 필요하다. 중립적인 통일 한국은 역내 이해 관계국 모두에게 이익이다.”

 



-오바마 대통령이 미국 대통령으로는 처음으로 동아시아정상회의(EAS)에 참석하고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은 고위 당국자로는 50여년 만에 처음으로 미얀마를 방문했다. 미국은 지금 중국을 포위하는 외교·안보 전략을 구사하는가.

“그렇다. 중국 ‘봉쇄 정책’(containment policy)이다. 미국은 50년 대부터 소련을 상대로 그런 정책을 취했고 지금은 그 대상이 중국으로 바뀌었다. 미국은 오바마 정부 들어 한·미, 미·일 동맹을 더욱 강화하고 호주 군사기지에 미 해병대를 주둔시키도록 했다. 중국은 미국의 이런 행보를 우려스러운 눈길로 지켜보고 있다. 그에 대한 두려움도 갖고 있다. 친분이 있는 수많은 중국 소식통들이 내게 전한 중국 지도부 내부 기류다. 클린턴 장관의 미얀마 방문은 남중국해를 하나로 묶겠다는 미국 정책의 결정판이다. 미얀마는 중국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지만 종속적이지는 않다. 독립 이후 중립 외교 정책을 표방했고 지금은 균형 외교를 하고있다.”

―미얀마와 관련해선 미 상원 군사위의 리처드 루거 의원 등이 북한과의 핵 커넥션 의혹을 지속적으로 제기하고 있다. 미얀마 권위자인 당신의 견해를 듣고 싶다.

“과거 미얀마 군부 실력자(1992∼2011년 국가평화발전평의회 의장)였던 탄 슈웨가 핵무기 개발을 시도했을 가능성은 있다. 하지만 의혹 수준일 뿐 확인된 사실은 아니다.”

―2012년 동북아 정세에서 가장 우려스러운 사안은 무엇인가.

“북한의 핵 개발이다. 북한이 핵 능력을 키워나가면 일본 등 주변국의 국수주의를 자극할 수 있다. 한국도 70년대에 자체적으로 핵 개발을 시도한 전력이 있지 않느냐. 일본 내에는 한반도가 일본 열도의 옆구리를 겨누는 ‘단도’라는 인식이 팽배하다. 북한의 핵 능력이 지속된다면 일본도 언젠가는 핵무기 개발에 나설 것이다. 그렇게 되면 동북아에서 ‘핵 도미노’ 상황이 전개될 수 있다. 개인적으로 북한은 김정일 사후에도 핵 능력을 포기하지 않을 것으로 본다. 나의 전망이 어긋났으면 좋겠다.”

―북한 김정일 사망 이후 북한의 3대 권력 세습이 연착륙할 수 있다고 보나.

“현재로선 확실치 않다. 김일성이 김정일에게 권력을 이양할 당시에도 몇 년이 걸렸다. 젊은 김정은에겐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김정일이 몇 년 더 살았다면 군부를 통제하면서 김정은의 권력 기반 강화를 도울 수 있었을 것이다. 북한 정권 붕괴의 가능성도 없지 않으나 이는 모두에게 좋지 않다. 중국도 바라지 않고 한국도 갑작스러운 북한 붕괴에 따른 통일 비용 부담을 원치 않을 것이다. 미국도 동북아의 불안정 국면은 가급적 피하고 싶어 한다. 미국은 북한이 정치체제를 유지하면서 시장 개방에 나선 중국 모델로 나아가길 바란다. 북한이 핵을 가진 상태로 붕괴하면 심각한 상황이 초래될 것이다. 김정일 사후 북한의 새 지도부가 어떤 형태를 띠든 한·미는 북한이 개혁, 개방의 길을 택하도록 유도해야 한다.”

―오바마 대통령이 재선에 실패, 공화당으로 정권이 교체되면 미국의 아시아·북한 정책이 변화할 것으로 보나.

“그렇게 많이 변하지는 않을 것이다. 공화당은 일반적으로 중국, 북한을 민주당보다 더 의심한다. 공화당은 지금 중국, 북한에 대해 매우 강경한 입장이지만 막상 정권을 잡게 되면 복잡한 외교·안보 현실을 도외시한 채 기존 정책을 변경하기는 힘들 것이다.”

―미 의회조사국(CRS)이 12월 한국 대선에서 진보 진영이 승리하면 한·미 관계가 시험대에 오를 것이라고 전망했다.

“약간의 긴장 관계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극복할 수 없을 정도의 문제는 아니다.”

워싱턴=조남규 특파원

스타인버그 교수 프·로·필

▲미국 조지타운대 국제정치학 교수 겸 아시아연구소장 ▲맨스필드 태평양문제센터 소장 ▲국무부 국제개발처 아시아·중동 담당 책임자 ▲아시아재단 한국 사무소장 ▲미국 다트머스대·하버드대, 영국 런던대 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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